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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보자마자 한마디

필진 리뷰 2009.04.28 10:22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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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송강호의 거시기 노출이 벌써 인터넷을 달궜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함 풀어보자. 그 장면, 뜬금없긴커녕 꽤나 의미심장하다. 송강호 왈 "1년 전부터 감독하고 고민하고 토론했던" 장면이란다. 500대 1을 뚫고 살아 돌아 온 이 사제를 병자들은 미신 받들 듯 추앙한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신을 저버린 이 남자, 신도 중 한 명(아, 황우슬혜!)을 강간하다 걸려 완벽하게, 그리고 추악하게 까발려진다. 거기서 성기가 노출된다. 욕망의 나락으로 추락해 버린 사제 상현은 이 장면의 마지막에서 자조어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건 어쩌면 칸에서 금의환향한 사제 박찬욱을 추앙하는 불특정다수의 대중들에게 <박쥐>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려는 감독 자신의 항변은 아니었을까.

각설하고 그 만큼 <박쥐>는 논쟁의 불을 당길, 아니 벌써 당기고야 만 영화다. 뱀파이어가 된 사제는 치정극에 휘말려 욕망에 눈 뜨고, 또 그 욕망에 배신당한다. 사제는 고해성사를 받아 준 신부를 죽이면서 신과 완전히 결별한다. 그리곤 연인 태주와의 파국이다. 그간 언뜻 언뜻 내비쳤던 죄의식과 구원의 문제가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에밀 졸라의 소설에서 빌려온 치정극과 욕망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중간 중간 뱀파이어란 설정 그 자체를 유머와 조소의 기제로 활용한다. 그리하여 <박쥐>는 <복수는 나의 것>의 정서를 바탕으로 <올드 보이>의 뜨거움과 <친절한 금자씨>의 농담과 속죄를 섞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라스트 신으로 승화시킨, 더없이 풍부한 플러스의 영화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뱀파이어나 치정극 하나만 집중했다면 좀 더 농밀해지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건 박찬욱 감독의 선택일 뿐. 그래서 그의 조소와 두 세신 걸러 분출되는 아드레날린과 대속이 뒤범벅된 복잡 미묘한 이 영화의 정서를 공감하느냐는 순전히 취향의 문제다. 어쩔 수 없이, 취향의 문제라고 썼다. 그런데 그 취향이 점점 언어와 배우를 제외하고, 김치가 아니라 버터 맛이 난다면 분명 대중들은 한 발자국 더 멀어질 것이 빤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찬욱은 제 갈 길을 갔다. 성취보다는 전진으로 보이는 이 <박쥐>를 살짝 응원해보는 것도, 좋지 아니할까? 아, 그리고 제목은 <박쥐>보다 영어제목 [Thirst]가 200배 더 섹시하고 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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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서 까발려지는지 알아버렸네요...-_-;;

    제목에 스포일러 워닝해주세요....

    2009.04.28 12:34
  2. 앍앍앍앍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했다 당했어!!!
    영화 줄거리를 거의 다 까발린 글에 경고문구 하나도 안 적어 놓다니...완전히 낚였다.

    2009.04.28 13:01
  3. 냉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독 취향도 좋지만, 돈 잔뜩 투자받아서 독립영화 찍고 관객들 외면해서
    투자자들 돈 다 날리고 나면.. 다른 후배 영화인들이 영화 찍기 힘들다는 건 아는건지..?

    2009.04.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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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식


<놈놈놈>에 대해 억지비판을 늘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어느 인터뷰에서처럼 감독이 내러티브의 결함에 대한 비판을 그냥 무시하겠다는 식의 발언은 상당히 안타깝다. 왜냐하면 내러티브에 대한 문제제기는 비단 일부 평론가들에 의해서 뿐만이 아니라 상당수 관객에 의해서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스토리의 비어있음'이 스타일 혹은 시각적 쾌감이 상쇄할 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던'하다고 까지 평가하는 분들도 있기도 하다. 일리가 있는 평가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평가야 말로 여러 가지 자가당착적인 요소를 띠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이런 식의 시각적 현란함과 스펙터클의 쾌락이 내러티브의 결핍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의도적이며 따라서 '포스트모던'한 새로운 영화라고 평가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가끔 '포스트모던'을 시각적 충동에 의한 스펙터클의 감각적 경험과 혼동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지극히 '나르시시스트적' 감성을 이론적 레테르로 때워보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 논란이 매우 의미 있는 담론의 장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놈놈놈>이라는 영화의 평가 그 자체와는 별도로 이 영화가 의미 있는 '대화'를 열어줄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찬탄 혹은 비난 식의 글보다는 조금 다른 시각의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이하 몇 가지의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보고자 한다.

영화에서 내러티브의 불완전함은 의도적으로 비워 내거나 그것이 다른 시각적 메타포들로 인해 상징화되고 풍부해질 때 상쇄되거나 오히려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것인데, 내러티브의 전개를 시각화하거나 상징화할 수 있는 미장센이 이 '결핍'들을 메워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락영화의 내러티브가 단순한 것 같지만 실제로 분석을 해나가다 보면 이 내러티브가 품고 있거나 사방팔방으로 열려질 담론의 꼭지가 상당수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디아나 존스>의 경우 '고고학'이라는 고루해 보이는 학문의 이력 아래 인간의 이성이 닿지 않는 '불가지한' 신성 혹은 초자연적 요소들을 통해 흥미를 끌고 있다. 나는 시리즈 중에서 특히 성배를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존스가 처하게 되는 화두 같은 물음에 답하는 장면들을 영화의 백미로 기억하고 있는데, 다들 기억하듯이 무조건적인 믿음을 통해 불구덩이의 칼날들을 피하고 절벽 위에서 한 발 더 내딛는 장면들은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이는 단지 보물을 찾으러가는 하나의 단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성 너머에 존재하는 신성이라는 것에 대한 접근이 매우 상징화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스타워즈>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거대한 우주에까지 인간지평의 한계를 넓히고 선악의 대립구조를 가족신화 안에 배치하였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영화의 플롯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구로사와의 영화는 거의 모든 작품들이 셰익스피어 모티브로 분석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갈등과 비극적 운명에 대한 오마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의 유행하고 있는 <맨>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주 단순한 선악구조로 보이지만 서브플롯과의 상관관계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매우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객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맨' 시리즈의 원동력은 이런데 있다.

그런데 감독은 '평론가들은 왜 감독이 만들어낸 것에 집중하지 않고 '내러티브'에 대한 비판만을 하는가'라고 묻고 있는데 여기에서 매우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영화에서 감독이 제시한 것만을 보라는 건 매우 전체주의적 발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첫 번째로 영화를 만나게 되는 관객의 한 사람인 '평론가나 기자'들은 '첫 눈'을 밟는 심정'으로 영화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뒤에 올 사람들에게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놈놈놈>이 불러일으키는 논란 아닌 논란을 피할 필요는 전혀 없다. 칭찬 일색의 예술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는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대중영화는 언제나 '논란' 속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담론'으로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놈놈놈>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어쩌면 아무런 저항 없이 칭찬 일색의 단순한 과정을 통해 단지 흥행작으로서 마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천만관객 이상을 동원한 영화들은 그야말로 논란 속에서 활발한 '담론'을 생산하도록 추동하는 '논란' 촉발제였기 때문이다. '동성애'담론에 대한 일정정도의 고정관념을 해체한 <왕의 남자>나 '분단이데올로기'가 단지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점과 그 한계를 명백히 했던 <실미도>,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심대한 질문을 '미국과의 굴종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담아 보냈던 <괴물> 등 모두가 한국 사회가 익히 제기했던 질문들을 극대화시켜낸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놈놈놈>이 질문을 두려워한다면 결코 심리적 한계선인 천만관객을 돌파하지 못할 것이다. 혹시 CJ가 천만관객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 말이다.

장광설이 길었다. 다시 <놈놈놈>의 내러티브 문제로 돌아가 보자. '세 놈'이 펼치는 스펙터클과 만주의 광활함이 스토리의 '결핍'을 넘어 영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최근의 '포스트모던' 담론에 의하면 스타일 그 자체는 이야기의 내용과의 분리를 넘어 일체화된 것이며 오히려 '스타일 그 자체가 이야기'라는 새로운 아포리아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놈놈놈>은 전형적으로 포스트모던한 새로운 담론의 위대한 영화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 정녕 새로운 '영화'인가에 대한 평가는 좀 더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 어쩌면 감독 혹은 제작진의 경우 오락영화에 무슨 그다지도 많은 '의미부여'가 많은가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위의 할리우드 영화의 단순해보이지만 '신화와도 같은 내러티브' 플롯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평론가나 기자'라는 직업이 원래 이런 일을 하는 집단이라는 점을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놈놈놈>의 호쾌한 액션이 불러일으키는 '스펙터클'의 짜릿한 쾌감은 분명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무사>에서 비롯되기 시작한 광활한 공간에 대한 욕망과 그 공간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은 점점 한국영화에서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말이 쓰러지고 총탄이 빗발치는 장쾌한 추격씬이 펼쳐지며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평원 위의 액션 씬은 분명 '할리우드' 키드로 자라난 한국의 감독들에게 매우 유혹적인 상상일 것이다. 만주라는 잃어버린 상상의 공간에 펼쳐지는 한국적 액션의 새로운 면모를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도약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쇠사슬을 끊어라!>가 정전처럼 여겨지는 한국영화의 만주웨스턴이 어디에서 기원했으며 한국영화사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안다면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평가해볼 여지가 생긴다. 그것은 이 국적불명의 영화들이 한국영화의 정점에서 선보였던 수많은 장르적 퓨전 혹은 아류작 남발의 와중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다. 만주웨스턴이라고 불리는 <쇠사슬을 끊어라!>를 정점으로 한국영화에서 수없이 많이 만들어졌던 홍콩무협영화 아류의 영화들 그리고 무협장르의 비틀림으로서의 '만주물'들이 점차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얼마나 많은 홍콩무협물과 아류작들 그리고 장르퓨전물들이 만들어졌는지는 영화사에서 그 목록들만 들춰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숫제 홍콩영화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분량의 무협물들이 만들어졌던 역사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왜 갑자기 이런 무협물들과 퓨전장르극들이 사라져버렸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보아 70년 말로 접어들면서 유신독재체제의 억압은 더 이상의 '영화적 욕망'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시대적 비극을 반영하는 멜로물이 대세를 이루며 80년대의 에로사극시대로 넘어갔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이다.

<쇠사슬을 끊어라!>가 한국영화에서 만주웨스턴의 정전이며 그에 따라 <놈놈놈>이 그 전통을 잇고 있다는 평가는 그런 점에서 단절적이기도 하고 연속적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런 고유의 전통이란 오직 홍콩무협 혹은 장르퓨전의 한 갈래로서 존재했다는 점에서 그런 이중적 측면이 발견된다 하겠다. 특히 <쇠사슬을 끊어라!>의 경우 세 명의 남자가 벌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교적 뚜렷한 공통점을 <놈놈놈>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영화가 갖고 있었던 '역사적 상상력'과 '영화적 욕망'을 단지 스펙터클로서만 편취할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에서 새로이 부활시켜낼 수 없었는가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좀 더 명백히 하자면 이 스펙터클들이 다른 글에서 밝혔듯이 지독한 '데자뷔'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플롯이 성긴 내러티브에 어딘가 본 듯한 장면들이 반복되는 영화라면 도대체 이 영화를 제대로 평가해 줄 수 있는 대목은 어디란 말인가? 스탭들과 제작진들의 지난한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서구웨스턴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 '흉내 내기'라면 그에 들인 공이 너무 허무해지지 않는가 말이다. 더욱이 <놈놈놈>의 시사 직후 느꼈던 소회는 이명세의 <형사> 혹은 <엠>을 보고 난 후 느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매우 시각적으로 훌륭한 스펙터클과 비주얼적 쾌감을 스크린 위에 수놓았지만 도무지 심장 아래 1센티미터도 쾌락이 전이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형사>가 제시한 퓨전사극의 무국적성이 새로운 이미지의 ‘과잉’ 속에서 전혀 녹아들지 않고 도드라지는 이상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모두들 극찬과 찬사를 퍼부어대는 속에서 이상하게 찜찜한 느낌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해 본 결과 제작한 측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것은 <형사> 때의 느낌과 흡사한 감각이었다. 이것은 무국적의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도드라지는 ‘낯선 대상’들과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낯선 대상'들은 이종적으로 결합된 풍경들의 스펙터클과 이야기 전개에서 나타나는 공간들이었고 사라져버린 것은 그것들을 매개할 개연성과 모험과도 같은 두근거림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역사적 상상력'의 심원한 저수지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내러티브들이 가 닿을 어떤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를 기대했으나 나는 결국 그다지 설득력도 없는 허무한 '170억짜리 맥거핀'만을 목도했다.

그에 반해 <님은 먼곳에>의 경우에는 반대로 매우 전통적 방식의 플롯을 통해 캐릭터를 복속시키는 어쩌면 매우 보수적인 스타일의 영화이다. 필자 스스로 보수적이라기보다는 진보에 가까운 영화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놈놈놈>의 이종배합보다는 정공법의 영화가 더 마음에 드는 건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아마 그것은 한국영화에서 ‘말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아우라 그러니까 역사적 상상력이 작용하는 공간에 대한 협소한 이해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인에게 만주라는 공간은 역사교과서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매우 추상적인 공간이기 쉽다. 그 공간을 배우들의 캐릭터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려면 매우 섬세한 세공술이 필요할 것이다. 말하자면 캐릭터의 일상이 짙게 배어있는 그런 삶의 토대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만주’를 달리는 기차의 액션은 호쾌했으되 플롯의 시작으로서 ‘지도의 가치’는 그다지 크게 않았고 게다가 만주를 누비는 마적단의 ‘폼’은 트랜디한 펑크족 스타일을 닮았다. 정우성의 모습은 어느 기자의 표현처럼 ‘간지 잘잘~’이지만 그 역시 아우라를 풍기기보다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데자뷔 현상만 일으켰다. 그가 멋지다는 의견에는 토를 달고 싶지 않지만 그저 멋지기만 하다는 데에도 이견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스펙터클을 감싸는 아우라가 어디에서도 뒷받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무국적의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도드라지는 ‘낯선 대상’들과 익숙하고 낯익은 세계라는 ‘생활세계’의 사라짐으로 인한 아쉬움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동시에 낯설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에 반해 <님은 먼곳에>의 경우에는 반대로 매우 전통적 방식의 플롯을 통해 캐릭터를 복속시키는, 어쩌면 매우 보수적인 스타일의 영화이며 <놈놈놈>의 이종배합보다 <님은 먼곳에>가 더 마음에 드는 건, 아마도 영화에 대한 배경을 알고 있는가, 아닌가라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 듯하다. 아마 그것은 한국영화에서 전통 혹은 역사라는 ‘말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아우라 그러니까 <님은 먼곳에>의 경우 베트남전이라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이 영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놈놈놈>의 낯섦은, 식민시기를 거치면서 만주라는 공간 자체가 한국인의 인식지도에서 사라져버린, 즉 한국사회의 구조적 억압과 역사적 망각에 의해 만들어진 효과일 것이다. <놈놈놈>에서 본 것이 데자뷔 현상만 일으킨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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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sh200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다 모르겠고 대사는 기억 나는데 내용은 전혀 연관이 안된다..
    송강호가 웃긴짓 할때 그때만 기억 남..
    정말 내용은 없었다..감독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으니 뭐;;; 할말 없고 영화는 상영관 독식해서 볼수 있겠끔 해놨고,, 어짜피영화는 사업이다

    우리부터 예술영화 상업영화 따지지 않는가? 그렇게 치면 나쁜살인 좋은 살인도
    인정해라.. 살인은 일단 나쁜것이고 영화는 일단 예술인거다
    기본적인 것은 좀.. 지킬 필요가..
    메시지를 주라는것이 아니라 최소한 왜 저장면이 나왔는가 이해는 가야할 것 아니니

    2008.07.23 01:59
  3. 늘 나오는 그지같은 영화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나오는 그지같은 조폭영화보단 훨씬 기발하니 좋던데...
    디워에서 보여줬던 우린 절대 저런거 못만들겠지란 생각에서 조금만 더하면 우리도 되겠군,. 이런것처럼 웨스턴스타일의 내용도 우리는 저런거 생각두 못했는데 그런 부분을 우리도 이런 스타일로 스토리를 짤수 있구나란 개척정신하나로도 충분히 박수받을만한데..왜이렇게 시작하지도 못하게 까구 난리야- 비평가들은 소위 예술영화라는 것들만 보고 졸 어려운 얘기들만 늘어놓고 니들끼리 노세요- 니들 잼나단 영화 난 하나두 재미없었고- 한번도 감동받은적 없으니.. 영화시장 불황이라 북돋아줘도 재개하기 힘든판에 무슨 하이애나 마냥 또 만신창이로 뜯어 벅구 그래- 남들 고생해서 만들어 논 영화 보면서 허점이나 잡으려는 듯 그러면 더 잘난 줄아는 ,,, 여튼 난 헐리웃의 시덥잖은 영웅이야기나 로맨틴코메디 우리나라 저질 조폭영화보단 낫다고 봤다-

    2008.07.23 02:04
  4. Favicon of http://modestride.com BlogIcon John L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마디로 줄이자면.. '웨스턴 영화에 줄거리가 필요한가?'입니다.
    만주웨스턴이든 스파게티웨스턴이든 말이죠. 작품성에 목매달며
    상업영화의 기본기 조차도 잊어버린 분 같군요.

    2008.07.23 02:28
  5. 글쎄여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부러 어렵게 쓸려고 노력한건지..정말 잘난척을 하고 싶었던건지..
    대학교 교수님이 이런말씀을 하셨는데, 바로 이렇게 어려운말만 하는 골라서 하는 글이 최악의 글이라고!! 정말 딱 들어맞는 글이네요.

    저는 영화를 본 관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재밌게 잘 봤습니다.
    평론가들이 뒤따라올 관객들에게 지표가 된다구요..? 그런 건 정말 옛날 애기죠.
    요즘 영화보시는 관객들 왠만한 평론가보다 더 글 잘 씁니다.

    놈놈놈을 보러 온 관객들은 그런 내러티브를 보러 온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국식 액션, 그리고 미국식 상업영화를 한국식으로 보여준 영화를 보기위해서 온 겁니다.

    2008.07.23 02:48
  6. 흠...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심히 글을 쓰신건 알겠지만....

    너무 못쓰셨네요.....

    당신이야말로 자가당착 아닐런지...

    어려운말 신나게 휘갈기면 뭐 좀 있어보이는것인지...

    독자들의 수준을 무시하지 마세요.

    2008.07.23 03:41
  7. ㅋㅋ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설픈 내러티브는 영화를 싸구려로 만든답니다.. 도대체 어떤 평론가가 내러티브가 없다고 비판을 합니까? 그게 글쓴이 당사자만의 생각같음...

    2008.07.23 04:21
  8. 지나가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루해서 언제끝나나 했습니다
    -_- 좀 더 잘 만들수도 있었겠는데 생각이 든 영화였어요.
    이미 영화내에 나온 내용만으로도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죠?ㅋ 지루하기 짝이 없었음...

    2008.07.23 04:59
  9. 폭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시간 20분짜리 영화니 왠만큼 재미를 안주면 지루 할 만도 하겠지..근데 난 하나도 안지루하던데...

    2008.07.23 06:35
  10. 아마추언줄 알았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론가가 아니라 어느 블로거가 자기 느낌에 심취해서 쓴줄 알았더니 평론가였군요 중간에 보면 논란이 되지 않으면 영화가 망한다, 그러므로 흥행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비판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부분을 보며 평론가는 혹시 쉽게 될 수 있는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정도 였습니다. 영화가 좋다 나쁘다는 어차피 관객 개인이 평가할 일이고 다만 이 평론자체는 엉망으로 밖엔 안보이는 군요.

    2008.07.23 07:36
  11. 누굴 향한 비평인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뭘 말하고 싶은건지는 알것 같은데 글을 못쓰시네. 글쓴이가 생각하는 독자가 영화 전문가들이나 작가들이 타겟인건지 불필요한 전문용어들의 난발. 일반인을 대상으로한 비평은 아닌듯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을 타겟으로한 비평이라면 대략난감.
    글이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와 공감을 주는것이 가장 기본이거늘,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으면 좀더 효과적인 단어나 어휘의 선택이 필요해 보입니다.

    2008.07.23 08:12
    • 그러게나 말입니다.  수정/삭제

      저글이 일반독자 대상으로 한 비평이라면 저 글은 실패한 글입니다. 나름 용어 많이 아는편인데도 이건 뭔 말이야? 라는 단어가 툭툭 튀어나오는군요.

      2008.07.23 10:11
  12. 그냥 쫌 아쉽긴 합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재밌게 봤습니다. 그치만 몬가 아쉬웠습니다. 오락 영화의 내용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내용이 짜임새가 어느 정도만 더해지면 정말 엄청난 대작이 될 수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재밌으니까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을 조금만 신경썼으면 훨씬 더 재밌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2008.07.23 09:13
  13. J3park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쓰신분 의도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다른분들 말씀처럼 정말 글쓰신분의 개인적 의견인듯 하네요.
    비평하는 글을 다른분들께 설명하시려는 글이라면, 적어도 대다수가 이해할 수 있게 쓰셔야 할것 같은데, 도통 이해를 못하겠네요.
    다른사람을 설득하기 위한글, 상대방을 이해시키려는 글이라면 적어도 본인 생각이 다른사람에게 "전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쉽게 풀어써도 될 말들을 너무 어렵게 쓰셔서 저도 읽다가 말았습니다.
    제가 무식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2008.07.23 09:31
  14. 액션영화보면서 이리 하품해본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호장룡 이후로 얼마만인지..
    송강호랑 이병헌 완~전! 좋아하고
    장화홍련도 무지 무섭게 보고 달콤한인생도 정말 재밌게 봐서 감독님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칭찬해주고 싶은데..
    정말.. 너무 ... 아쉽더라는...
    영화 참 의도도 좋고 다 좋은데 송강호랑 정우성이랑 누워서 같이 잔 이후부터는
    너무 엉망이었어요... 그때부터 예산이 딸렸는지.. 시간에 쫓겼는지..
    추격신에 그 음악도 너무 안어울렸고요..
    일본인들은 다 총을 안준건가요?
    마지막 결말도 너무 허무해서.. 어이 상실...
    영화평이 좀 그래서 기대를 많이하고 본것도 아닌데..정말 실망스럽더군요..

    2008.07.23 10:36
  15. 디워같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스토리가 무지하게 없던데..
    예전부터 저런 비판 받아왔으면 어느정도 전문 작가한테 의뢰해보거나 하지
    끝까지 무시하는건 뭥미
    영화보면서 거의 낚인듯한 느낌이었어염

    2008.07.23 11:23
  16. 다시 공부를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론으로 먹고 사실 분이면 먼저 단문 쓰기 공부좀 더하세요 이게 뭡니까? 님이 말 한 것 처럼 화려한 화면만 있어서는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없듯이 내용만 있다고(??사실 별내용도 없지만ㅡㅡ;) 잘쓴 비평은 아니거든요~~~

    2008.07.23 12:04
  17. 유성운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지운한테뭘 기대한거지 도대체?
    역시 박부식 선생님 입니다. ^^

    한국영화교육원의 학생으로서 교수님의 평론 큰 힘이 됐습니다.
    벌써 다음학기가 기대됩니다

    2008.07.23 13:41
  18. 쩝..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명 영화 분위기 있고 액션 참 잘만들었는데 이상하게 잠이오더군요.
    주위 본 분들 중에 졸렸다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만큼 영화진행에 몰입감을 주지 못한듯 하네요.
    위의 어떤분 표절, 잡탕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이건 동의 합니다. 외국 영화 일부를 고민하지 않고 그냥 배꼈더군요.
    아 그리고 정우성 진짜 멋지게 나오더군요. 몸매가 완전 ㅎㄷㄷ

    2008.07.23 14:53
  19. 보고 와서 한마디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러티브의 부재에 대한 비판의 글을 읽고 가서 봤습니다.
    흐음 어떤 점을 비판하시는 지 알겠더군요.
    그렇지만 그 지점에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장뤽 고다르가 찍었다는 이름이 붙는다면?
    과감히 내러티브를 포기하고 혼돈하는 일제 시대, 욕망으로 가득한 만주를 부활시키다.
    욕망의 상징 보물 지도를 향해 치닫는 세명의 인간 군.
    뭐 이런식으로 쓰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과연 이 영화에 내러티브를 강조하면 어떨까?
    물론 친절하게 설명하고 강조하고 그랬다면 우리 엄마가 연속극에 빠져 들듯이
    빠져 들었겠죠.
    인물에 몰입하도록 뒷얘기를 만들고 뭐하고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만주를 죽도록 달리는 게 낫다는 계산에서 나온거 같습니다.
    전 김지운 감독의 선택이 괜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렬한 추격신으로 내러티브의 약점을 대신할 만큼 자신있다는 계산이었겠죠.
    나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유물같은 웨스턴 장르를 다시 스크린에 부활시킨것,
    거기다 일제시대에 대한 무거운 역사의식에서 벗어났다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덕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할때 이 영화의 실패는 내러티브의 부재가 아니라
    캐릭터의 삼각 구도입니다.

    정우성과 이병헌.
    혹은
    이병헌과 송강호
    혹은
    송강호와 정우성.
    이렇게 일대 일 구도로 잡고 영화를 시작했다면
    시선 분산을 막아 좀더 효과적으로 몰입시킬수 있었겠죠.
    놈놈놈이 아니라
    놈놈 이었다면 집중력 있게 영화를 끝까지 끌고 갈수 있었을 거란 얘기죠.
    한마디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어 집중도가 떨어졌습니다.

    정우성은 멋졌지만 역 자체는 극의 중심을 위해서는 포기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군요.

    뭐 나름 장점도 많고 단점도 많은 영화였습니다.
    그렇지만 시도에 있어서는 박수를 주고 싶더군요.
    적당히 예술영화 흉내내며 불륜을 찬양하거나, 인간의 욕망을 그린다면서 뻔하고 뻔한 흔하디 흔한 예술 영화로 사람 진빼놓는 것도 아니고
    시덥잖은 연애담이나 늘어 놓는 드라마 같은 영화도 아니고
    액션이 어설픈 돈 아까운 블랙 버스터도 아니고.
    정성 드린 추격씬과 총격씬은 좋았습니다.
    다시 열정으로 가득찬 충무로가 되자.. 이런 화이팅의 기운을 느꼈달까요?
    여하튼 저는 나름 괜찮게 봤네요.

    2008.07.24 18:37
  20. 치킨롱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업적인 영화이지만 내러티브적인 요소가 가미된다면 좀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것이다"라는게 글쓴이의 생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만....^^;

    2008.07.27 09:12
  21. 내러티브가 부족하다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형적인 로드무비의 내러티브를 취하는 님은 먼곳에는 후한점수. 전형적인 웨스턴무비인 놈놈놈은 별로"??? 왜 돈 많이 쓴 액션 웨스턴이라서??

    당신은 이 영화에서 애국심을 강조했어도 비난했겠지.

    동의해?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런 애국적 반일요소는 감독의 말처럼 철저히 배제했지.

    하지만 각각의 인물이 상징하는 상징성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무슨 내러티브니 역사적 진실이니 허구를 논하냐..........

    내 이런 블로그서 그 상징하는 바를 알려주진 않는다. 아직 어느 평론가의 평론을 봐도 어느 영화광들의 리뷰를 봐도 그걸 파악 못하더라...쯧쯧.

    최소한의 상징성도 파악못하면서 내러티블 논하다니..

    2008.08.04 01:07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민용준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의도적으로) 연상시키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The good the bad the weird>(이하, <놈놈놈>)은 전자의 명성에 무임승차하고자 조합된 문자 나열의 결과물 따위에 불과한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놈놈놈>을 마카로니 웨스턴(스파게티 웨스턴)의 동양적(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적) 변주라고 섣불리 규정해버리는 것도 탐탁치 않다. 일단 <놈놈놈>의 부분을 채우는 다양한 이미지들은 대부분 어디선가 한번쯤은 본듯한, 그리 낯설게 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 낯익은 이미지들이 조합된 전체적 형태는 낯설게 입력된다. 이는 그 이미지들이 각각 과도기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혼재한 무질서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까닭이며 이런 시각적 작용은 그 당시 주인이 불분명했던 만주벌판의 지정학적 요건과도 맞물려 교묘하게 시대상과 연관되어 작동한다.

스스로 ‘만주 웨스턴’이라고 (홍보문구를 통해) 자처하는 <놈놈놈>은 서부극의 건조하고 황량한 정서를 만주벌판에 대입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만하다. 본래 조선의 국토였지만 일제강점기와 함께 반허공에 떠버린 만주벌판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은 독립군이거나 일제앞잡이,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아나키스트적 개인으로 생존한다. 마적단 두목으로 무리를 이끄는 박창이(이병헌)나 독고다이 도적질로 살아가는 윤태구(송강호), 그리고 현상금 사냥꾼으로써 그들의 뒤를 쫓는 박도원(정우성)도 돌아갈 곳을 잃은 채 그 자리를 떠도는 아나키스트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덕분에 역사적인 의식 따위도 그곳엔 부재하다. 그들에겐 잃어버린 국가에 대한 사명감보단 생이 붙어있는 현실의 돌파구를 찾아내는 게 더욱 큰 관심사다. ‘나라가 없어도 돈은 있어야지’라는 박도원의 대사는 그들의 욕망 너머에 담긴 허무적 정서를 관통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웨스턴 무비란 장르적 명칭을 허한 지정학적 배후에 무의식적으로 녹아있던 무질서의 개념을 역전시키는 설정이다. 웨스턴은 본래 정복자들로부터 시작된 사연이다. 초창기 웨스턴은 서부 개척이란 역사에 토착민이었던 인디언들의 야만성을 부각시키며 그들에 대한 공격적 행위를 개척정신으로 정당화함으로써 장르의 폭력성을 설득했다. 그 후, 웨스턴은 점차 인디언을 몰아내며 서부를 점령한 총잡이들의 이익 쟁탈전으로 심화되고 폭력성의 연출과 비열함을 가미하는 마카로니 웨스턴과 정복자들의 자기 성찰을 덧씌운 수정주의 웨스턴으로 진화해 나간다. 주인 없는-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입장에서 없다고 판단된- 땅에서 펼쳐지는 총잡이들의 물고 물리는 대결의 양상은 무질서의 혼란을 야기시키고 그 맥락이 발생한 지점은 결과적으로 외부에서 유입된 정복자들의 오만한 정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웨스턴의 정서적 기운을 함축한 <놈놈놈>의 만주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놈놈놈>에서 정서적 굴곡을 형성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망국의 자손들, 조선인이다. 만주는 일본 제국주의의 정복자들에게 국가를 빼앗긴 조선인의 망향지정이 서린 공간이다. 물론 그곳이 다양한 군락을 이룬 만주족들의 터이기도 하겠지만 <놈놈놈>의 주요맥락이 조선인 신분의 캐릭터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사안은 논외의 사안으로 간과될만하다. 사실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지니고 있었던, 혹은 그것이 응당 그러한 것이라 믿어지던 일련의 고정관념은 사실 그것을 잉태한 이들의 무의식에 정복의 역사를 합당하게 바라보는 관점이 개입된 까닭이다. 스스로 웨스턴을 표방한 <놈놈놈>은 그것을 의식했는가의 여부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웨스턴의 세계관이 지니고 있던 어떤 고정관념을 타파한 꼴이 됐다. 이는 <데어 윌 비 블러드>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이 공간성의 테두리로 잔존하거나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처럼 완전한 시대적 공간성으로 확보되는, 혹은 <3:10 투 유마>와 같이 활극의 요소를 가미한 자기 복제의 양상과는 확연히 판이한 꼴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명백히 장르의 중심지대를 이양함으로써 장르의 한계를 이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역설과도 같다. 애초에 영웅주의적 공식을 탈피한 마카로니 웨스턴의 시작이 미국 서부의 입지조건을 벗어나면서 형성됐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제목에서 명명된 세 명의 ‘놈’은 트라이앵글을 이루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구도를 형성한다. 캐릭터 삼각편대 구도 안에서 발생하는 빈번한 충돌은 활극의 스펙터클로 구사되며 이에 일제강점기 만주의 시대상과 신구가 맞물린 과도기의 이미지가 중첩되며 <놈놈놈>은 도가니탕의 신세계로 내달린다. 물론 노골적인 결말부의 삼자구도까지 확인하고 나면 전체적인 영화적 설정은 분명 세르지오 레오네의 그것과 접점을 이루는 면모가 다분함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놈놈놈>에서 실제를 구현하는 골격의 이미지가 아니라 가상적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소스의 출처에 가깝다. 중국 대륙과 러시아 연해주, 제국주의 일본, 그리고 조선의 유랑민까지 다국적의 인간들이 혼재해있으며 말과 오토바이가 공존하는 신구 문명의 발전적 과도기가 혼탁하게 얽힌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한 <놈놈놈>은 일제강점기 만주의 과도기적 이미지를 적극 차용한 시대극에 근접해 있다. 물론 그것 역시 사실적인 시대적 모사(模寫)로서가 아닌 전반적인 영화적 디테일을 구성하는 요소로써 산재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놈놈놈>은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활극적 모험담으로 규정될만한 것이다. 시대상과 지역성을 기초로 융합되어 가공된 영화만의 특수한 이미지들은 실제 연대를 가늠하되 현실적 시공간을 망각하게 만든다. 동시에 탁월하게 세공된 스타일을 자랑하는 캐릭터들이 펼쳐 보이는 활극의 동선은 제각각 오락적 반경을 확장해나간다. 대립적 갈등의 심리 묘사보단 외부적 충돌의 파괴력을 묘사하는 것에 중점을 둔 대결양상의 화려함도 이를 보탠다. 박창이와 윤태구, 박도원이 처음으로 접점을 이루는 기차 탈취 씬으로부터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박진감은 윤태구와 박도원이 손을 잡고 박창이의 무리와 대결하는 시가지 총격씬을 비롯해 크고 작은 액션 시퀀스를 점층적으로 나열한 뒤, 후반부 평원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추격전에서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무엇보다도 현란한 동선을 쫓는 필사적인 트래킹 샷과 거대한 평원을 스펙터클하게 펼쳐 넣는 부감 숏 등 장면을 효과적으로 비추는 구도적 능숙함과 고난이도의 액션에 만화적인 연속성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카메라 워크의 민첩한 노력은 <놈놈놈>의 세련된 이미지를 완성하는 가장 큰 공신이자 탁월한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쟁글거리는 기타 선율과 리드미컬한 퍼거션으로 채워진 남미 계열 멜로디와 일렉기타와 신디사이져음을 대거 차용하며 현대적 감각으로 복기된 웨스턴 풍의 음악으로 채워진 사운드트랙도 장면과 결착한 순간마다 절묘한 시너지를 발산한다.

물론 드라마상의 맥락이 드물게 느슨해지는 경향은 존재한다. 세 명의 주요 캐릭터가 격돌하고 다시 흩어지는 반복적 이야기 구조는 방대한 스케일만큼이나 산재한 조연들과 함께 개별적인 동선에서 빚어지는 각자의 사연을 크고 작게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종종 팽팽하던 실이 느슨해지듯 풀려나가는 경우가 발견된다. 이는 크고 작게 강약의 강세를 반복하듯 진행되는 내러티브의 흐름에서 강약의 간극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발생하는 경우에 종종 발견되는 면이라 할 수 있다. 전후 구조에서 전반부의 세기가 강했을 때, 상대적으로 후반부의 세기가 약할 경우 격차가 크게 느껴지는 이치다. 게다가 <석양의 무법자>를 완전히 본뜬 듯한 결말부의 설정은 그 의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아챌 경험의 기반이 없는 관객에게는 지독한 허무주의로 인식될 위험성도 분명 존재한다.

전반적으로 캐릭터의 역할 배분은 배우의 능력(?)마저도 고려한 듯 적절하게 안배됐다. 특히 입담을 자랑하는 송강호는 언제나 그렇듯 발군이며 가장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캐릭터 박창이를 연기한 이병헌은 자신의 역량과 노력을 보태며 철저히 캐릭터에 몰입한다. 무엇보다도 영화는 세 캐릭터 중 가장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박도원 역을 맡은 정우성의 이미지를 능숙하게 활용한다. 영화 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화려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박도원은 심리적 내면을 깊게 드러내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놈놈놈>의 세련미를 구축하는 전반적인 포석으로써 날고 뛰며 겨눈다. 물론 캐릭터의 갈등 지점이 명확하게 해소되지 않는 부분도 존재한다. 중반부부터 형태를 드러내는 윤태구를 향한 박창이의 집착은 후반부에서 의문을 명확히 해소하지만 박도원이 다소 의아하게 박창이의 이름을 중얼거리던 이유는 마지막까지 명확하지 않다.-단지 좋은 놈이라서?- 이는 (자체만으로도 인상적인 배우들이 이루는) 캐릭터의 삼각관계 형성이 역할에 맞아떨어지는 이미지의 구도를 형성하며 일정한 상승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은 확실하나 그 구도의 결속력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음은 지적될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놈놈놈>은 단연 즐길만한 여지가 풍부한 오락영화이자 일정한 수확을 얻었다고 여겨도 좋을법한 장르적 시도의 결과물이라 평가할만하다. 동시에 김지운 감독 특유의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전체적인 미장센과 적절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연출력, 확실한 몰입도를 선사하는 인상적인 액션의 응집력은 분명 수훈이다. 과거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고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되어 기대를 모았던 몇몇 대작들의 초라한 결과물과 비교했을 때 <놈놈놈>의 성과는 더욱 뚜렷해진다. 새로운 소재에 도전하는 과감성과 함께 탄탄한 연출을 통해 정석적인 성취를 거둘 줄 아는 방식은 분명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놈놈놈>은 김지운 감독 본인의 말대로 ‘걸작'이나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없을지 몰라도 지금만큼은 분명 간과할 수 없는 흥미로운 영화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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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eter153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땅에는 저런 촬영장소는 없는가요.....이궁 아쉽다. 만주 다시 가져와라

    2008.07.10 10:08

영화시사회의 씁쓸함

필진 칼럼 2008.07.10 09:50 Posted by woodyh98
박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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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최대 기대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시사회는 한마디 난장판이었다. 같이 보기로 한 형과 1시에 만나 점심을 먹고 2시에 영화를 보기로 한 터라 12시 50분쯤 용산에 있는 극장에 도착했다.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이 영화의 시사회를 진행한 주최 측의 정말 어이없는 행태에 대해 한마디 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다. 여유있게 도착해서 표를 받고 식사를 하려던 나의 계획은 입구에 길게 늘어선 행렬에 의해 일찌감치 일그러졌다. 뒤쪽에 서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줄을 보면서 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동안 10여 미터에 불과했던 줄은 삼십 분이 지나도 거의 줄어들지 않았고 세 줄로 나누어진 줄은 점점 끼어드는 사람들로 인해 흐트러졌다. 그러기를 한 시간 가량,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앞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난 배가 고프면 성질이 포악해지는 습성이 있어 안 그래도 식사를 하지 못하고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줄을 보며 점점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표가 없습니다." 난 한 시간여를 기다려 결국 '표가 없다는 말'을 듣고 말았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음에도 신분을 확인하고 표를 배분하는 사람은 고작 두 명, 게다가 4-5명이 뒤에서 코치를 하며 참견만 할 뿐 이 아수라장이 된 시사회 현장에 책임 있는 말로서 수습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난 배가 고팠고 귀를 때리는 천장 스피커에서 울리는 영화 예고편 소리에 앙칼져있었고 더군다나 기다리는 내내 거의 100명이나 될까 한 사람들만 표를 받고 돌아서는 것을 목격한 터에 1200명 분의 표가 모두 나갔다는 '거짓말'에 냉큼 성미가 돋구어지고 말았다.

"책임자 오라고 하세요", 나는 이전에 담당자들의 "표가 없다는 말"을 줄을 선 사람들에게 들으란 듯이 크게 외친 다음 내친 김에 이렇게 말했다. 보통 시사회에서 30분 전에만 가도 아무런 무리 없이 표를 받고 잠시 여유를 가진다면 영화를 볼 수 있다. <강철중> 때에도 꽤 많은 사람이 왔지만 금방 표를 받았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줄이 줄어들지 않고 1시간 여가 지난 다음에야 "표가 동이 났다"는 말은 그 전에 이미 대다수의 표가 다른 곳으로 빼돌려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내 억측이기를 바라고 싶으나 내가 1시간여를 지켜본 결과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한 시간 전부터 기다렸는데 결국 표를 받는데 실패한 나는 보통은 이런 부대낌 자체를 꺼려서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 마련이었지만 오늘은 오기가 나서 기어코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입구로 올라가 스태프에게 항의도 해보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결국 부아가 나서 앞서 무작정 얼굴 디밀며 들어가는 인사들을 보고는 나도 그냥 밀고 들어갔다. 들어갔더니 웬걸 빈자리도 군데군데 보이고 더군다나 일본에서 원정 오신 듯한 아줌마부대들도 로열 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론시사회에 왠 아줌마부대? 시사회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진행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여튼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시작되었다.

만주웨스턴이라고 홍보된 것과는 달리 영화는 시작부터 만주슬랩스틱 코미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송강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아무리 웨스턴 미장센이 등장하더라도 송강호 식의 코미디가 되어버렸다. 그건 분명 매우 의도적인 연출로 보였고 주인공 역시 송강호가 분명했다. 영화는 사실 '보물지도'를 둘러싼 세 '놈'이 펼치는 추적이 주된 스토리 라인이다. 그렇지만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 이야기 전개와 뻔해 보이는 스토리 라인은 한국식 웨스턴이라고 부르기에는 한참 모자란 것이었다. 특히 정우성의 연기는 확연히 모자라 보였고 이병헌의 마적 연기 역시 좀 지나치다 싶었다. 그나마 송강호의 연기가 중심을 잡아주지 않았으면 영화가 너무나 '불균질해’질 뻔 했다 싶었다. 영화 얘기는 여기까지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제부터인데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하면 소위 영화의 '수직계열화'에 대한 얘기이다. '수직계열화'란 제작, 배급, 상영을 일체화 시킨 방식을 말하는데 이는 1950년대 미국에서는 이미 '불법적인 독점'으로 판정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 폭스를 비롯한 거대 스튜디오는 몇 년을 끌어온 끝에 내려진 법적 판단으로 인해 강제로 극장체인들을 매각해야 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거대 스튜디오는 배급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장악력은 여전했다.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극장에 대한 독점력이 사라진 다음, 한동안의 침체기가 있었지만 뒤이어 나타나게 될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원동력이 바로 이 시장 독점에 대한 시정조치였다는 점이다. 현재 CJ엔터테인먼트 혹은 시네마 서비스 그리고 쇼박스 등의 거대자본들은 명실상부 한국 내에서 '수직계열체'를 형성하고 있다. 배급에 집중하던 CJ는 서서히 제작에 관여하면서 배급과 함께 CGV라는 막강 극장체인을 통해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으며 다소간 누그러졌지만 시네마서비스 역시 그러하며 쇼박스의 '메가박스' 역시 마찬가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식의 구조가 가지는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천만 관객의 신화'를 계속 꿈꾸도록 종용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과 시장지배력을 총동원해서 단기간에 초 대박 영화를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이며 반대편 그늘에 독립영화 혹은 저 예산 영화들만이 남게 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천만 관객을 열었던 시절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이런 식의 위험한 투자와 흥행대박에 대한 강박관념은 결국 한국영화의 뚜렷한 양극화로 진행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제작비규모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고 30-50억 사이의 영화들을 여러 편 다양하게 만들어내야 할 풍토가 이번 <놈.놈.놈>을 기화로 또 거대영화-유사 할리우드 전략으로 변질되어 버리지 않을까 매우 염려스럽다. '수직계열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비판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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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ru_happy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콤한 인생을 특별히 재밌게 본 편은 아니라 기대를 안 하다가, 예고편이 괜찮아서 기대감이 좀 생겼었는데, 아닌가? 보네요.
    조만간 직접 확인하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수직 계열화에 대해서는,
    시네마서비스와 쇼박스는 이미 사양길이고,
    CJ의 독주에 롯데가 따라가는 형태가 아닐까 싶네요.

    시네마서비스의 프리머스 소유권이 이미 CJ로 넘어간데다 (운영권은 당분간 보장이라고는 합니다만...) 시네마서비스 창립자인 강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중마저 CJ를 통해 배급되고 있으니까요.
    미디어플렉스(브랜드 명 쇼박스)도 이미 메가박스를 매각한데다,
    온스타일(메가박스의 수입 브랜드명) 영화였던 페넬로피도 CJ를 통해 배급되는 상황이었으니, 쇼박스의 위상도 예전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2008.07.1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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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고맙습니다. 님이 지적해주신 프리머스의 주식이 CJ측으로 팔렸던 것이나 메가박스가 외국계 자본에 넘어간 것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페넬로피>는 몰랐네요. 하지만 여전히 시네마서비스, 쇼박스 그리고 CJ 그리고 롯데시네마 등의 자본들이 일종의 배급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제가 산업현황에 대해서 그리 밝진 못하지만 저는 이런 '수직계열화'가 가지는 폐해가 현재의 한국영화를 망치는데 일정부분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 계속 비판글을 쓰고자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07.14 13:50
  2. paniefink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순히 한개 만들걸로 5개 만들자는 논리로 <놈놈놈>을 비판하신 건지...
    아님 엉성한 시사회에 대한 비판인지...
    현재 영화판의 거대 배급사의 독식을 비판하고자 하신건지...
    제목 봐서는 시사회에 대한 불만인거 같지만
    그닥 매콤한 유머 없이 지면의 1/3 이상을 <놈놈놈>시사회장에서 당했던 굴욕에 대해 서술해 놓으셔 놓고서는...
    영화에 대해서는 1/3 ....그리 영양가 없는 겉 핥기식 평론에
    나머지 1/3은 뜬금없는 거대 배급사의 횡포와 천만 신드롬에 사로잡혀 있는 영화판을 비판하시고....
    난장판이었다던 <놈놈놈>시사회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 산만하고 일관성 없는 글이군요.
    거대 독점 배급사의 횡포와 대박을 노린 눈먼 100억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블랙 버스터의 성공이 건강한 영화 시장을 망친다는 주장을 하시는 거라 생각됩니다.
    거대 독점 배급사의 횡포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미 만성이 되버렸으니
    게다가 시장 경제를 포기할것이 아니고서는 이런 판도를 바꿀수 없으니 더이상 소모적인 비판은 접고 대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08.07.2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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