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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함을 강요받는 시대다. 우리들은 자기 보호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서 내것을 지키거나 혹은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열정이란 것이 의미롭기는 하지만, 자칫 열정의 소용돌이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 순간 지금껏 쌓아온 인생의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것. 지금의 시대는 이렇게 냉정함을 우리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동물은 욕심이 너무 많은 존재다. 냉정함속에 자신을 가리고 살지만, 실은 한번쯤 내질러 보고 싶은 욕구, 즉 열정의 목마름 또한 안고 살아간다. 아, 한번쯤 기회가 된다면 끝까지 달려가보고 싶다는 생각들. 시대가 강요하는 냉정함은 결국 개인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열정에의 의지를 완벽하게 억누르지 못한다.

그러나, 열정에 빠져 삶을 송두리째 휘둘리든, 혹은 가까스로 이성의 힘을 빌어 냉정을 유지하던, 인생이란 것이 우리에게 해줄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그 무엇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더라도, 혹은 객관적 판단의 끈을 놓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든, 인생이란 것은 어떻게든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살아가든, 냉정하게 살아가든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없다. 가장 강력한 승자는 '어떻게든 되어진다'는 인생의 느긋함일 뿐이므로.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에는 이 인생의 느긋함이 들어있다. 비주류스포츠에 열정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 그들이 핸드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상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빚어지는 마찰을 스포츠 영화의 드라마틱한 전개를 빌어 보여준다. 영화속 인물들의 작은 사연들. 개개인이 모여 이뤄내는 스포츠맨쉽. 흔히보기 어려운 스포츠 장면의 재현. 영화는 열정을 다하고 있다. 핸드볼과 핸드볼을 하는 선수들의 사연에 대해서 우리생의 최고의 순간이었다는 신파의 경지까지 열정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 영화의 열정에 현혹된다.

그러나, 우생순이 단순히 이런 열정만을 보여주었다면, 이 열정은 휴머니즘의 외피를 두른 신파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우생순의 열정은 싸구려로 전락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영화속의 빛나는 열정들 사이로 보이는 냉정함때문이다.

우생순은 한 인물을 부각시키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인물들의 사연을 쪼개고, 그것을 슬쩍슬쩍 들여다 보고, 그렇게 핸드볼이란 것으로 선수들을 엮어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승리 혹은 패배의 클라이막스로 몰아치는 대신, 그 몰아치는 열정의 순간에 호흡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인물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김정은과 문소리가 핸드볼 코트에서 서로 공을 던지며 대치되는 장면에서도, 그들에게 감정이입될 수 있는 클로즈업을 미룬채, 바스트 샷으로 인물들을 잡아낸다. 분명 클로즈업을 사용했더라면,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들수 있었을 장면을 그 순간의 열정을 잠시 접어둔채, 냉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과정이 중요하다? 혹은 결과가 중요하다? 글쎄, 실은 그 무엇이든 중요할 수 있고, 혹은 그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러닝타임 120분이 넘어가는 스포츠 영화를 한편 봤다. 비주류 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의 희노애락에 관해 관객들은 조금씩 동화되어 가고,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그들이 안타깝게 놓친 승리. 즉 패배의 순간에 영화는 끝이난다. 아, 이렇게 선수들이 열심히 했구나. 라는 그들만의 과정에 박수를 칠 것인가? 혹은 그들이 남긴 결과에 안타까움을 보낼 것인가? 그들의 열정도 빛이 났고, 안타까운 패배가 남긴 드라마적 감동도 대단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열정과 냉정을 아우르는 느긋함이 있다.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는 것. 다만 어떻게된 되어질뿐이지 않을까?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것은 말이다. 이토록 드라마틱한 이야기에서 느긋함을 끌어낼 수 있는 연출의 묘미에 놀라울 뿐이다. 매번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일 수도 있고, 혹은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다만, 시간과 호흡하며 느긋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 인생의 무언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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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의 극복, 대중성의 획득


그동안 임순례 감독의 두 편의 장편 영화의 주인공들은 '실어증'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말 수가 적은 인물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두 편의 영화의 주인공들 즉 <세친구, 1996>의 무소속(김현성)이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의 성우(이얼)는 분명히 서사의 중심에 서 있기는 했지만 동시에 일종의 관찰자이기도 했다. 무소속과 성우는 자신의 친구들의 몰락 과정을 지켜 보면서 동시에 자신의 몰락을 접하게 된다. 일단은 서사적 관점에서 이 점이 임순례의 최신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미숙(문소리)과는 확연히 다르다.

따지고 보면 임순례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친구 집단들은 일종의 도플갱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중심 인물들은 '아줌마'라는 사회적 정의의 범주에 들어가거나 그 주변부의 인물들이다. 그건 변두리 동네에서 별볼일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하류층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았던 <세친구>나 쇠락해가는 온천 지역을 전전하는 뜨내기 밴드의 모습을 담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결코 '주류'가 아니며 늘 떠밀려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미 우리는 임순례의 두번째 장편 영화에서 그의 영화적 주제를 경험한 바 있다.



'꿈을 이룬다면 행복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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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친구>는 도무지 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였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어린 시절 꿈을 이루었지만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 꿈을 조금은 이루고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임순례는 쉽사리 '우리가 행복해진다'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모 평론가가 이야기했듯 임순례의 영화들 속에서 점점 '희망'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세친구>는 암울한 영화였다. 인생에서 가장 재기발랄한 시기를 보내야 할 세 아이들은 막 들어선 사회에 이리저리 떠밀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보낸다. 아이들의 삶을 결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이기는 하지만, 영화내내 주인공이 경험하는 C급 뮤지션의 세계는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은 언뜻 희망을 보여준다. 이 두 편의 영화들에 비하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주인공들은 적어도 혼자가 아니며 어떤 거대한 감동을 맞이한다. 이 세 편의 영화들을 통해 임순례는 여전히 희망 따위는 오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스포츠 영화의 규칙과 리얼리즘 영화의 감성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잘 알려진 것처럼 세계 최초의 핸드볼 영화이며 한국 영화에서는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영화다. 하지만 <우생순>은 전통적인 의미의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대개의 스포츠 영화는 궁극적으로 승리의 게임(경기의 결과와는 상관 없이 주인공의 성장이라는..)을 다룬다. 주인공들은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고 마침내 어떤 승리의 순간을 맞이하고 그것이 성장을 낳는다. 그래서 대개의 스포츠 영화는 암담한 첫 경기와 마침내 승리하는 마지막 경기의 모습이 늘 잡혀 있게 된다. <우생순> 역시 외형적으로 그런 형태로 시작되고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첫 시작은 미순의 소속팀인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해체된) 효명건설의 핸드볼 대잔치에서의 승리에서 시작되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런 영화적 설정과는 달리 이런 구성이 앞서 말한 데로 경기력 향상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스포츠 영화인 <록키>는 3류 지하 경기나 하던 필라델피아의 퇴물 복서 록키 발보아(실베스타 스탤론)가 인내와 원시적인 훈련 방법으로 (무하무드 알리 급의) 헤비급 세계 챔피언 아폴로(칼 위더스)와 명승부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록키는 놀라운 경기력 향상을 하게 된다. 팀 스포츠를 다룬 올리버 스톤의 <애니 기븐 선데이> 역시 그러하다. 이 영화의 첫 부분에서 샤크스는 허술한 팀이다. 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감독 토니(알 파치노)의 부임과 더불어 팀은 변화하고 마침내 승리한다. 하지만 <우생순>이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다른 의미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썰렁한 관중석의 핸드볼 경기장은 철저히 마이너리티에 속해 있는 핸드볼의 현실을 반영한다. <우생순> 역시 핸드볼 팀의 성장을 다루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부분이다. 더구나 <우생순>의 마지막 경기 장면의 박진감은 할리우드산 스포츠 영화들 또는 <슈퍼스타 감사용>같은 영화와 비교해 보아도 2% 정도는 부족해 보인다. 그런 차이는 감독이 말했듯 '기초 자료'의 부재에서도 발견될 수 있을 것이기는 하다. 즉 무수히 많은 야구 영화 위에 세워진 <슈퍼스타 감사용>과 달리 최초로 만들어진 핸드볼 영화인 <우생순>은 경기 장면을 영화적으로 구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우생순>의 본편이 끝난 후 보여지는 실제 핸드볼 경기 장면 속의 선수들의 리얼한 표정의 스틸 사진들이 영화 속 경기 장면보다는 더 감동적이며 박진감 있게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생순>의 결말이 감동적인 것은 이 영화가 임순례 감독의 장점이라고 할 '리얼리즘' 또는 '시대 정서'에 철저히 기반한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 속에서 선수들은 '여성'이라는 이유 더 나아가서는 '나이 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한국 사회가 맞이한 '경쟁 논리'라는 체계 속에서 처절히 깨어져 나가는 개인들의 모습을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지금의 20대는 이미 현실적인 배틀 로열(Battle Royale) 게임에 들어서 있고, 10대는 대학교 입시를 둘러싼 배틀 로열 게임에 들어서 있다. 문제는 이 무자비한 게임이 국민경제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데 에 있다. 이미 한국 경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포디즘(Fordism) 시대를 훌쩍 넘어서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모적인 게임, 그저 살아남기 위한 '획일성'의 경쟁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이 야릇한 사디즘적인 게임은 즉각 중지되거나 최소한 완화되어야 할 것이다. 」

- 우석훈, 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p.18.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급속히 경쟁 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과정 속에서 이른바 '승자독식게임'이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당연히 그 속에서 주류와 비주류, 메이저와 마이너의 구분은 좀 더 뚜렷해진다. 임순례의 <우생순>은 날카롭게 포스트 외환위기의 한국 사회의 고통을 담아내고 있는 영화다. '아줌마'는 생활 경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이며 <우생순>의 주인공 미숙(문소리)이 처한 현실 역시 평범한 아줌마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은근히 철저히 엘리트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스포츠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는데(운동 밖에 모르다가 사업해 패가망신한 미숙의 남편 규철의 에피소드) 빚더미를 떠 안은 미숙의 경제적 고통은 우리 기억에서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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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여성 묘사


이 영화 속의 중심 인물 여성 네 명은 모두 차별을 받고 있는데 현실적인 삶의 영역에서 고통 받는 미숙, 커리어우먼의 면모 속에서도 이혼녀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혜경(김정은), 운동을 위해 복용한 약 때문에 불임 판정을 받은 정란(김지영), 외모적인 차별을 받는 수희(조은지)가 모두 그러하며 또한 이들은 나이 많은 여성 즉 '아줌마'라는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 나아가 남성 코칭 스태프들에게 여성성을 인정 받지 못하는 핸드볼 팀 전체가 차별을 받는 장면도 등장한다. <우생순>이 자아내는 강력한 여성 연대는 이런 현실적 고난 속에서 비롯되며 바로 이것이 <우생순>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타자화되지 않으며 타자화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맞서는 인물들로 묘사된다.

필자는 <우생순>이 진보하는 한국 상업 영화의 긍정적인 모습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 영화의 균형 감각은 탁월하다. 스포츠 영화의 장르적 구성틀에다가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정서가 잘 결합되어 있으며 이 것이 이 영화를 감동적으로 만들어나가는 탁월한 힘이다. 또한 임순례라는 감독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깊은 애정은 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관객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세친구> 정도를 제외하면 임순례의 두 편의 영화는 모두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귀엽기까지 하다. 그것은 임순례라는 감독이 캐릭터를 연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우생순>은 오래간만에 심금을 울린 영화였다. <우생순> 속의 핸드볼 선수들은 저 멀리 신전에 위치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인물들처럼 느껴진다. <우생순>은 또한 IMF 이후의 '배틀 로얄'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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