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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레이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5.14 <스피드 레이서>를 위한 변명 (3)
  2. 2008.05.06 강철중과 2008 한국영화 (5)
  3. 2008.05.05 [스피드 레이서] 황홀경을 뛰어넘은 영화적 신기원 (1)

<스피드 레이서>를 위한 변명

필진 리뷰 2008.05.14 07:08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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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이미지와 상징들이 현실을 지배한다는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감독들은 영화를 통해 ‘진실이 때론 끔찍하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매트릭스>의 네오, 키아누 리브스의 말이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촬영 전 워쇼스키 형제가 그에게 장 보드리야르의 대표작 <시뮬라시옹>을 읽게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맞다. 워쇼스키 형제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팬이다. 오죽했으면 이 책을 영화 속 네오가 불법 소프트웨어를 숨겨뒀던 책으로 등장시켰을까.

워쇼스키 형제는 분명 괴짜거나 천재들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영화적 세계를 부정하는데 공을 들인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세계에 저항하는 이야기 구조들이 그러하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기계들이 인간의 기억을 지배하는 가상현실, 제작과 각본을 맡은 <브이 포 벤데타>의 제3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 하의 2040년 영국이 그렇다. 심지어 느와르의 공간에서 장르성을 교묘히 비트는 데뷔작 <바운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워쇼스키 형제가 돌아왔다. <매트릭스> 2편, 3편이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개봉했던 2003년으로부터는 5년. 마침내 회심의 역작 <스피드 레이서>가 당도했다. 외양만 보면 어둡고 음침했던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은 듯 하다. 일탈과 전복, 혁명이란 메시지도 온데간데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기존 것을 고수하며 테크놀로지에 대한 실험을 가열 차게 진행 중인 야심가들일 뿐이다.

레이싱과 애니메이션, 저항 정신이란 키워드

1억 5천만 달러를 쏟아 부운 <스피드 레이서>는 시․ 청각적 황홀경이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최전선이다. 무엇보다 짜릿하고 눈부시다. 속도감에 있어 역대 최강이며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칼라풀한 화면이 지속된다. 10대 취향이라고? 분명 고전적인 이야기 위주의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이라면 당황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지에 도취되어 숲만 보고 나무를 놓치면 대략 낭패다.

일단 <스피드 레이서>로 진입하기 위한 단서 세 가지. 누가 뭐래도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하면 불릿 타임(Bullet-Time Effect)을 떠올릴 관객이 다반사일 것이다. 건물 옥상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한껏 허리를 굽혀 총알을 피하던 바로 그 명장면. 카메라 120대를 놓고 1초에 100프레임을 찍어 냈다는 플로 모션(flow motion) 기법은 99년 개봉 당시 영상 혁명으로 받아들여졌었다. 그들의 행보에 대중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그러나 <매트릭스> 시리즈의 개인적인 명장면 중 하나는 바로 2편 <리로디드>의 카 체이스 신이다. 실제 고속도로를 재현한 2마일짜리 세트에서의 역주행 카 체이스 신은 분량과 물량을 넘어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한 이 분야 최고봉이었다.

두 번째로 워쇼스키 형제가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열혈 팬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것. ‘네트는 광대하다’는 세계관이나 사이보그 여형사 쿠사나기나 바트의 이미지를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와 모피어스(로랜스 피쉬번)에게 이식시켰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상상력을 공수 받아 왔음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그리고 이번엔 TV 에니메이션과 망가로 알려진 <마하 고고고>다.

마지막으로 세계관. <매트릭스>의 시리즈의 근간은 어쨌건 저항 정신이다. 성서에 기초한 해석이랄지 이러저러한 철학적 담론들로 의견이 분분했던 <매트릭스>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지적 유희라고 치부해버리는 건 개인의 취향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매트릭스> 시리즈는 기존 수퍼히어로 시리즈물과 차별성을 분명히 할 정도로 우울한 세계관을 견지하면서도 철학적 담론을 공격적으로 수용했다.

그것이 포스트더니즘 시대, 다양한 담론을 흡수한 젊은 관객들이 <매트릭스> 시리즈를 단순한 SF 액션 영화로 폄훼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스피드 레이서>는 형식적으로 이를 한 차이를 한 차원 뛰어넘은 시도이며, 좀 더 폭넓은 관객들을 아우르려는 야심이 만난 결과다.

전무후무한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현란한 결합

시작부터 화면가득 펼쳐지는 알록달록 총천연색 칼라의 향연,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새겨진 로고 ‘Speed Racer’. 그런데 잠깐, 낮보다 밤이, 빛보다 어둠이, 실외보다 실내가 어울렸던 그 워쇼스키 형제 작품 맞느냐고?

이건 순전히 원작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원작 <마하 고고고>는 1967년 52부로 일본에서 방영되고 이후 미국을 강타한 저패니메이션으로 자극적인 원색이 주조를 이뤘던 시리즈다. 워쇼스키 형제를 재패니메이션의 세계로 이끈 만화와 TV시리즈로 국내에서는 <달려라 번개호>로 소개된 바 있다.

물론 만화와 가족, 성장 영화의 탈을 쓴 <스피드 레이서>는 전작들보다 부드러워 진 것이 사실이다. 어린이 관객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고, 간간이 유머도 구사한다. <매트릭스>의 다소 과격한 세계관을 지지했던 이들이라면 유치하다고 외면할 만한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나 레이싱이란 소재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형식적 관심 외에도 워쇼스키 형제의 세계관은 만큼은 분명 변치 않았다.

우선 내용을 보자. 주인공은 레이싱을 위해 태어난 스피드 레이서(에밀 허쉬). 그가 레이스 중 사망한 형에 대한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레이서 모터스’가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거대 기업 ‘로열튼’의 음모에 맞서 최고의 레이서로 거듭 난다는 단순 명료한 이야기 되겠다.

<스피드 레이서>는 ‘만화적이다’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시작부터 끝까지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의도로 가득 차 있다. 원근법을 무시한 채 한 프레임 겹겹으로 끼어드는 이미지로 인해 만화경을 들여다 볼 때의 착시 효과를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실사 아니메 영상(live-action anime look)’으로 명명된 이 기법들은 이제는 3D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우리에게 마치 추억의 셀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색감? <딕 트레이시>란 영화를 기억하는가? 미국 코믹 북의 색감을 그대로 실사 화면에 옮겨 놓았던 워렌 비티의 획기적인 프로젝트의 개봉년도가 무려 1990년. 그로부터 18년 뒤, 비슷한 색감일지언정 워쇼스키 형제는 한 차원 높은 전혀 다른 질감의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냈다. 왠지 팝아트와 키치 문화를 언급하는 것도 머쓱할 정도다. 그러니까 <폴라익스프레스>나 <베오울프>는 물론 기존 실사와 CG를 결합하려는 할리우드의 시도와는 다른 길을 모색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가공할 만한 컷의 분할로 인한 속도감 또한 역대 최고다. <매트릭스 리로디드> 오토바이 경주 장면이 실제를 염두에 둔 아슬아슬함으로 오감을 자극한다면, 영화 전반을 잇는 4회의 경주 대회는 가상현실의 안락함으로 포장된 상태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짜릿함을 온몸으로 체험케 한다. 솜씨 없는 문장과 스틸 컷 몇 장으로 레이싱 장면의 화려한 비주얼과 스피디한 쾌감을 따라잡기란 역부족인 지경이다.

또한 게임 화면과도 같은 액션 장면들은 원화평 무술 감독의 지도아래 정교한 합을 이뤄냈던 <매트릭스>시리즈와 결별하는 지점이다. 셀 애니메이션과 같은 아날로그적 화면 아래서 ‘스트리트 파이터’와 같은 동적인 향연은 분명 낯설지만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훈련이 되어줄 터다.

진실이 때론 끔찍할수 있다구!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 쾌감과 혁신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워쇼스키 형제가 매달리는 것은 ‘진실이 때론 끔찍할 수 있다’는 명제다. <매트릭스>가 인간들을 지배하는 ‘기계’들과의 싸움이었다면, <브이 포 벤데타>가 역사적인 맥락에 가깝지만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었던 파시즘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스피드 레이서>의 적은 좀 더 즉물적이고 현재적 관점에 가깝다.

그러니까 워쇼스키 형제는 스승 장 보드리야르의 가르침에 따라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지만 그건 단지 허상일 뿐이라고 경고하는 중이다. 영화의 초반부터 일찌감치 등장하는 로열튼 회사는 근대적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다.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난장이들 마냥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졌지만, 대기업 로열튼 그룹은 오직 주가 상승을 노리고 레이서(노동자)들을 사육하고 조련하는 현실의 초국적 기업과 다를 것이 없다.

이들에 맞서기 위해 앞장 선 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 스피드지만 뒤에서 이를 조력하는 건 가내수공업의 가치관을 상징하는 레이서 가족의 구성원들이다. "대기업 스폰서는 악마와도 같다"거나 "스폰서가 언론을 지배하고" 또 "큰 회사들은 다 위협적이다"라는 대사들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다.

레이싱으로 세상을 바꾸리란 희망에 차 있던 주인공은 결국 레이싱 대회가 거대 기업들의 자본 논리와 조작으로 돌아간다는 '끔찍한 진실' 앞에 절망하며 '허상'의 실체를 깨닫는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의 충고는 심금을 울린다. "우리의 의지가 중요한 거야. 넌 세상을 바꾸려 했잖아."


사실 '속도=스피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발과 진보를 등가로 받아들이는 근대적, 단선적 시간간과 맞닿아 있지 않은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일 수 있다고 폄훼할 수 있지만 <스피드 레이서>의 가족주의는 거대 자본에 대항하는, 장인의 자리를 이어받는 소규모 가족 기업과 닮아 있다.

이 순수한 열정을 찬양하는 가족 개개인은 시스템의 '허상'을 뒤늦게, 스스로 깨달은 <매트릭스>의 구성원들일 뿐이다. <스피드 레이서>가 식상한 가족주의에 대한 찬양으로 함몰되지 않는 건 그들이 견고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저항하는 개개인들이기 때문이리라. 이 순진한 가족들과 스피드 또한 시스템의 ‘허상’을 뒤늦게, 스스로 깨달은 것뿐이다.

그리하여 과도한 시각적 현란함은 워쇼스키 형제가 의도적으로 <매트릭스>의 암울한 현실과의 대비시키려는 의도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관객 또한 <스피드 레이스>의 세계를 주인공의 눈높이에 맞춰 보라는 주문인 셈이다. 그러니까 가상과도 같은 이미지에 포획된 레이스 패밀리의 현재를 스크린에 재현하고, 그 눈앞에서 재현된 '허상'에서 관객도 함께 깨어나길 촉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순정파 형제, 낙제점을 받아도 괜찮은 걸까?

혹자들은 밝은 얼핏 가족 영화를 답습하는 듯한, 터무니없이 밝아진 워쇼스키 형제에게 변절이란 딱지를 붙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빤한 수순으로 진행되는 큰 얼개를 두고도 뻔한 아동용 성장 스토리라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우려는 일정정도 현실로 나타났다. 북미 박스오피스 첫 주 주말 스코어 1,850만 달러. 망했다, 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해외 성적도 <아이언맨>의 절반도 못미친 우리를 포함해 기대에 못 미치긴 마찬가지다. 미국 내 평가를 보자. IMDB나 야후 관객 평점은 6.5, B를 받았으니 중간 정도다. 혹평은 엄숙주의에 빠진 일반 매체나 평론가들에게서 나왔다. 로튼토마토는 35%로 썩은 토마토라고 낙인 찍혔고 야후 비평가 평점도 C다. 미국에서 ‘아니메’는 마니아들의 장르다. 키치적 비주얼이 전세계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먹히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무언가 있어 보였던 <매트릭스>에 비해 아동 취향으로 비춰질 만한 소지가 다분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SF 액션이란 장르를 변주했던 <매트릭스>와 비교해 복잡다단한 실험을 선보인 <스피드 레이서>의 가치는 쉽사리 폄하될 만한 성질은 아닌 듯 싶다. 4번의 큰 레이싱 대회를 플롯의 중심으로 삼고, 그 중간 중간 개개인의 복잡한 플래시백과 주변 인물사를 배치하는 전개는 더욱 견고하면서 스피디하다. 네오 개인의 갈등과 성장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매트릭스>와 비교해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또한 철학적인 담론의 나열로 액션신의 빈 공간을 채워 넣었던 <매트릭스> 시리즈 중 2, 3편이 비대해진 덩치에 비해 작품에 대한 호응도가 떨어졌다는 점을 상기시켜 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워쇼스키 형제는 파격적인 형식 실험 안에 전세대를 아우를 코드로 무장한 채 자신들의 세계관을 지켜냈다. 설사 지금까지의 세상이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세계일지라도,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라는 깨달음. <매트릭스>에서의 네오와 트리니티의 키스신을 떠올려 보라. 워쇼스키 형제는 예상보다 순정파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트랜스포머>와 <아이언 맨> 그리고 복고 취향의 <인디아나 존스4>의 좀 더 단순명료하고 고전적인 블록버스터와 비교해 좀 덜 대중적이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스피드 레이서>는 점점 더 자본주의에 포획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응원은 분명 의미가 있다. 워쇼스키 형제여, 의기소침하지 말고 힘내시라! <매트릭스> 또한 열광적 지지자들과 철학적 담론의 형성은 꽤나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났음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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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lan9.co.kr/tt2 BlogIcon 주성치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었습니다.
    제작비 3억달러는 제작자 조엘실버의 뻥이었구요
    실제로는 1억2천만달러정도 들었다고 합니다.

    A급게런티 받는 스타도 출연하지 않았고 CG를 많이써서 세트도 많이 짓지않은 덕에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08.05.14 13:45
  2. 슈태른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쓰레기에 특별한 변명이 필요한가요
    매트릭스 2, 3 에서도 어설픈 개똥 철학을 보여주려다 스스로 무너졌듯이
    이번 스피드 레이서도 희대의 괴작으로 남겠죠
    박스오피스에서는 올해의 재앙으로 남을 것이 확실시 되구요...
    속편은 못 나올 확률이 높으니 다행입니다

    2008.05.17 08:22
  3. 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딱 떠오르는 한 마디 꿈보다 해몽...
    워쇼스키 형제가 과연 철학적 담론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을지,
    시각적 즐거움을 위주로 영화를 만들었을지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겠죠. 그나저나 스피드 레이서는 미국 내 제작사 측에서도
    아동을 주대상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아동들에게마저 외면당했으니 흥행 실패한건 당연하죠/.

    2008.05.25 18:10

강철중과 2008 한국영화

필진 칼럼 2008.05.06 08:41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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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인터뷰
를 보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간담회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기사화 된 내용은 대동소이 했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대목은 이거다. "재미가 없잖아! 우리가 못 만들었다. 식상하다. 조연할 배우가 주인공되고 조감독할 사람들이 다 감독됐다. 제작실장급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프로듀서가 됐다. 당연히 퀄러티가 떨어졌다. 제작편수가 많아진 후유증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족의 탄생' 같은 좋은 영화도 흥행이 안됐다. 총체적으로 난관이다. 언젠가 한번 겪을 일이었다. 극복해야지, 언제는 환경이 좋았나! 한 영화가 왕창 먹는 것보다 500만, 300만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

21세기 들어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멀티플렉스는 10대들과 20대들의 놀이터였다. <쉬리> 이후 '한국영화도 볼만하다'는 인식이 생기자 마자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 멀티플렉스에 10대와 20대 관객들이 줄을 섰다. <엽기적인 그녀> 같은 작품이 여름 성수기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이겨냈고,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같은 '조폭' 관련 상업 영화들이 추석과 크리스마스 시즌의 승자가 됐다. <반지의 제왕>시리즈에 열광한 관객들은 잠시 '재미'가 없어진 할리우드 영화보다 그래도 우리 이야기인 한국영화에 힘을 실어줬다. 10대들이 주머니를 쉽게 열 수 있도록 통신사들이 티켓값을 할인해 줬다. 그러자 충무로에 돈이 몰려왔다.

활황은 2006년까지였다. 여름시즌 <괴물>이 최다 관객을 동원했지만, 징후는 하반기 부터 나타났다. 비수기에도 한국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데이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청춘만화> <달콤, 살벌한 연인> 들이 연이어 정상에 올랐고 그 중간에 <연리지> 같은 영화들이 바닥을 쳤다. 바야흐로 한국영화끼리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네이버가 인터넷을 장악한 시대, 매체 환경의 대세가 관객 별점과 인터넷 매체의 기사로 완전히 교체된 것도 2006년 즈음이다. 그 해 500만을 넘긴 <미션임파서블3>와 <캐리비안의 해적2>가 외화 1, 2위를 차지했고 200-300만을 동원한 블록버스터들도 존재했지만 분명 2006년까지 한국영화가 대세였다. 어쨌건 <괴물> <왕의 남자> <타짜> <투사부일체> <미녀는 괴로워>등이 버텨냈던 2006년에 쏟아 들어져왔던 눈 먼 돈들은 2007년에 정점을 이뤘다.

그리고 2007년이 왔다. 2006년 천만 동원 영화 2편에 의해 58%를 기록했던 한국영화 점유율은 44%까지 떨어졌지만 개봉 편수는 112편까지 치솟았다. 추석이나 설날, 크리스마스를 제외한다고 해도 매 주 2편에서 1.5 편 이상의 한국영화가 경쟁했다는 뜻이다. 함량 미달의 영화들이 쏫아져나왔다. 강우석의 인터뷰를 곱씹어 보자. 일찍이 2006년 <가족의 탄생> 같은 영화들은 철저하게 외면 당했을때 부터 징후는 나타났다. 게다가 카드사들은 극장과의 뒷거래를 통해 발을 빼버렸고, 먹힐 만한 할리우드 속편들은 쏫아져 나왔다. 스크린쿼터제는 반토막이 나버렸다. 그리고 '볼거리'를 최우선하는 관객들은 <디워> 같은 영화를 그 해 최고 흥행 영화로 만들어줬다. 또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관객들의 기호는 또 달라졌는데 한국영화 투자사들의 눈은 그리 바뀌지 않아 보였다. 터지는 영화 몇 몇 영화와 폭삭 망하는 영화가 확실히 갈리는 사이 마케팅 비와 평균 제작비는 턱없이 올라버린 상태였다. 

위기론이 현실로 다가 온 2008년. 3월까지 개봉작은 28편, 점유율 58.3%을 유지했지만 그나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추격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월 1일까지 9편을 합치더라도 고작 37편. 여기서 작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내 사랑 유리에> <나비 두더지> <내부순환선> <과거는 낯선 나라다> <동거, 동락> <나의 스캔들> <어느날 그 길에서> <작별> <나의 노래는>와 인권위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2>와 OCN의 TV 영화 <전투의 매너> <색다른 동거>의 숫자는 무려 12편이나 된다. 역시나 죽을 썼던 지난해와 비교해 상황은 더 열악해 진 거다. 영화 노조가 출범한 것 2005년 말이지만 현장 인력들의 인건비가 현실화 된건 불과 얼마전이다. 보릿고개로 접어들며 마케팅비는 졸라매고 있으며 30억 이상 영화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통신자본이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아니, 앞으로의 상황만 놓고 보면 회의적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서울이 보이냐> <쇼킹 패밀리> <날라리 종부전> <방울토마토> <걸스카우트> <크로싱> <흑심모녀> <공공의 적1-1>. 6월 19일까지 개봉이 잡힌 한국 영화 목록이다. <아이언맨> <스피드 레이서> <인디아니존스 4>로 이어지는 5월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항하는 영화들이 아니라 사실 1~2년씩 묵힌 영화들(<서울이 보이냐> <날라리 종부전> <방울토마토>)일 뿐이다. 6월에 개봉하는 김선아, 나문희의 <걸 스카우트>나 차인표의 <크로싱>이 선전해 주고 <강철중:공공의 적1-1>이 대박을 터트려준다면 아마도 상반기 점유율은 40%를 넘기지 않을까 싶다.

강우석 감독의 "총체적 난관이다" 발언이 엄살이 아닌 것이다. 지금 제작되고 있는 한국 상업영화가 5편~10편 사이라는 엄한 소문도 들려온다. 촬연현장 공개도, 크랭크인 소식도 쉽사리 찾아 볼 수 없는 지금이다. 7월 이후 기대작이자 활황이던 시기 착수된 <놈놈놈> <신기전> <모던보이> <님은 먼곳에>도 숙성된 프로젝트들이긴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이 영화들마저 무너진다면 2008년에도 보릿고개는 한층 더 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영화들이 일단 살아줘야 숨통이 트인다.

그리하여 지금은 일단 상업영화 진영만 놓고 보자면, 잘 만든 영화는 밀어주고 안일한 영화는 철저하게 외면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작은 영화들의 게토화는 차치해 두자). 그렇다고 관객에게 읍소하는 안일한 영화를 양산해서는 또 안 된다. 진정 관객을 선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영화로 승부해야만 하는 시점인 것이다. 더불어 제작 시스템의 체계화, 마케팅비의 현실화, 러닝 개런티의 일반화, 부가판권 시장의 제고 등등 산적한 영화 산업의 문제 또한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병행해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 특이할 것 없는 뤽 베송표 스릴러 <테이큰>에 관객들이 몰려가는 걸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트렌드를 읽고, 기본기에 충실한 상업영화판을 다져나가야 한다. 보릿고개가 올 한 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건 자명하다. 한국 영화의 때이른 폭발세를 경계하고 산업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이미 2006~7년부터 이미 시작됐다. 지금이야말로 멀리 날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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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cyworld.com/happyacupuncturist BlogIcon dook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한국영화 한편이 그리울때입니다. 얼마전 아이언 맨과 포비든 킹덤을 봤는데, 흥미삼아 보기에는 좋지만 뭔가 메세지가 상실된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한동안 한국영화를 보면 길게 잔잔한 여운이 남았는데...

    디워같은 할리웃 따라잡기식 영화보다는 한국영화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더욱 살릴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2008.05.06 12:57
  2. gg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소고기협상이 도마위에 올랐는데, 영화계 입장에서는 그 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 스크린쿼터였죠. 왜 영화인들이 그토록 그것에 반대했는지 이제 보니 조금 이해가 갑니다. 지금 광우병소 먹게 생긴 국민들 심정이었겠지...

    2008.05.06 13:07
  3. 근데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없는 거 만들어 놓고 안처본자다고 지랄하는 거는 좀 이제 지겹고요^^*

    일단 재미있는 걸 만들어야 겠죠 ㅋㅋ

    2008.05.06 13:26
  4. giru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식상한 내용이네요...군사정부는 항상 북한을 들먹이며 안보를 강조했고, 기득세력은 저성장을 들먹이며 성장을 강조했지요? 영화라고 특히 한국영화라고해서 특별한 논리는 없는듯하네요...

    2008.05.06 16:36
  5.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고수의 은밀한 매력이란 영화도 있나요??오타요~

    2008.05.07 04:09



질서정연하게 정사각형의 대오를 갖춘 원색들로 알록달록하게 채워진 스크린이 만화경처럼 빙글빙글 돈다. 서로의 경계로 스며들 듯 가늘게 늘어지면서도 제 영역을 교묘히 유지하는 원색들의 회전. 정의할 수 없는 황홀경은 제 이름을 지닌 원색들로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스피드 레이서>는 그 황홀경을 선사하는 도입부처럼 실체가 존재하나 실로 환상에 가까운 것이다. 만화의 색상으로 구현한 실사의 세계, <스피드 레이서>는 새로운 물감을 통한 모사가 아닌 새로운 터치로 창조해낸 유례없는 가상이다.

1967년에 제작된 TV애니메이션 <마하 고고고>는 자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뒤, 미국에서도 <스피드 레이서>란 제목으로 방영되어 센세이션에 가까운 반향을 불렀다.-국내에선 <달려라 번개호>라는 제목으로 방영됨.- (어린 시절 이에 열광했다는) 워쇼스키 형제를 통해 스크린에 재현된 <스피드 레이서>는 영화화된 원작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답습했지만 그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완성했다. <스피드 레이서>는 만화에서나 가능할법한 비현실적 세계관을 영화로 재현한다. 롤러코스터의 노선처럼 아찔하게 높고 가파른 레이싱 트랙 위를 고속 주행하는 레이싱카의 드리프트는 차마 현실적이라 할 수 없는 비정상의 속도를 체감하게 만들지만 그로부터 발생하는 쾌감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카(car)와 쿵푸를 조합해 만들었다는 ‘카-푸(car-fu)’라는 생소한 용어로 명명된 레이싱카의 움직임은 <스피드 레이서>가 선보이는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다. 마치 운전자의 수족처럼 활용되는 자동차 바퀴의 쓰임새와 재주넘기하듯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차체의 날렵한 움직임은 동물적인 반사신경을 느끼게 한다. 육중한 무게감을 발생시키는 차체의 충돌, 스피디한 질주 속에서 뒤엉켜 회전하는 차량간의 맞물림, 그에 때론 공중으로 붕 떠올라 ‘플라잉 킥’처럼 상대차를 가격하는 움직임은 실로 흥미롭다. ‘이건 그냥 쇠 덩어리가 아니’라는 대사는 <스피드 레이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본보기와 같다. 순진무구한 유아적 믿음을 정의로 승화시키는 만화적 가치관을 <스피드 레이서>는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 솔직함은 유치할 만큼 단순한 것이지만 <스피드 레이서>는 이를 명쾌하고 정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유채색이 만연한 <스피드 레이서>의 세계는 무채색으로 그늘진 <매트릭스>와 이미지를 그려내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인간의 믿음을 시험하는 시스템의 함정은 존재한다. 시스템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개인의 운명은 <매트릭스>에 이어,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한) <브이 포 벤데타>에 이어, <스피드 레이서>로 계승된다. 다만 두꺼운 서적과도 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전자들에 비해 <스피드 레이서>는 막대사탕처럼 달고 가볍다. 팝 아트(pop art)의 색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원색적인 나열이 이루는 <스피드 레이서>의 이미지들은 자극적이라기보단 신선하다. 스피드 레이서(에밀 허쉬)라는 직설적인 이름은 더더욱 그렇다. 가치관의 윤리를 이름 그대로 대변하는 인물들이 <스피드 레이서>에는 유치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존재한다. 직설적인 상징들이 자기 존재를 스스로 명명하는 원색의 세계에서 선악의 대비는 더욱 분명하고 간결한 신념은 한층 명확해진다.

기계문명에 의해 능동적 삶을 말살 당한 인간들이 환각과도 같은 가상체험의 주입 속에서 사육되거나(<매트릭스>), 일원화된 권력 구조의 수호를 위해 개인의 자각을 철저하게 거세하는 전체주의적 강압의 공포에 굴복해야 하는(<브이 포 벤데타>) 현실들에 비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주체로서 개인이 보존된 온전한 현실이란 점에서 <스피드 레이서>는 전자들에 비해 한층 여유롭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거대한 구조적 억압은 소수자아의 정당성을 착취하고 짓누른다. 재능과 노력을 통해 승리가 부여되는 경쟁윤리는 자본의 음모로 훼손되고 정당성으로 위장된 굴절된 가치관의 편법이 사회를 조종한다. 질서를 유린하는 시스템의 은밀한 거래 속에서 개인은 선택을 강요 받는다. 그곳에서 재능의 가치란 탐욕을 위한 도구로서 유용한 것에 불과하다.

레이서 모터스는 가내수공업으로 모든 것이 수급되는 가족기업이다. ‘레이싱은 우리 가족에게 종교와도 같은 것’이란 스피드의 말처럼 그들에게 레이싱은 삶에 있어 가장 숭고한 가치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레이싱에서 중요한 건 선수와 경기가 아니라 돈과 권력’이라고 말하는 로열튼 기업의 대표 아놀드 로열튼(로저 앨럼)에게 레이싱은 그저 돈벌이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지배하는 건 스피드가 아닌 로열튼이다. 그는 자본력으로 매수한 권력을 통해 레이싱의 배후를 조종하고 이윤을 창출하며 자신의 지위를 굳건히 다진다. 그에게 뛰어난 실력만으로 우승을 거머쥐는 스피드는 위협적 상대이자 포섭의 대상이다. 매트릭스(matrix)의 환각 속에서 진짜가 아닌 안위를 누릴 것인가, 아니면 그를 벗어나 고난을 견디고 진짜 삶을 되찾을 것인가. 스피드는 네오와 마찬가지로 빨간 약과 파란 약의 갈래에 선다.

정신과 육체의 대비. 형형색색한 원색들이 형광빛을 내는 <스피드 레이서>의 트랙은 환상과 실재의 영역 구분이 없을 뿐, 그 현실은 또 다른 매트릭스로 작동한다. 결승지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 목표를 잊은 채, 오로지 그를 저지하기 위해 트랙 위에 올라선 수많은 상대에게 둘러싸인 스피드는 그 트랙 위에서 홀로 유일하게 결승선을 바라보고 달린다. 그는 네오처럼 홀로 유일하게 숙명을 짊어졌다. 거대한 기업의 담합은 레이싱을 허상으로 조작한다. 그에 열광하는 관객들도, 그 트랙 위를 달리는 선수들도 하나같이 거짓을 향유하고 영위할 뿐이다. 스피드는 그 안에서 진실을 본다. 매트릭스의 태연한 삶이 결코 안전한 것이 아닌 것처럼 정당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트랙 위에서의 승리가 결코 누릴만한 호사가 아님을 안다. 단순히 결승트로피의 명예를 탐욕하는 것이 레이싱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스피드는 그 트랙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며 이는 끝내 기술의 영역을 뛰어넘은 예술적 경지로 거듭난다.

<스피드 레이서>는 기술적 향연의 범주에 속하는 블록버스터의 체험을 넘어서 예술적 성취를 드러낸다. 자본력의 동원을 통한 CG기술의 진화는 영화의 구현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영화들은 제각각 거대한 현실을 스크린에 부지런히 전시한다. 관객은 블록버스터를 통해 비현실적인 현실을 대리적으로 체감하고 이를 통해 불가능한 현실을 탐닉한다. 하지만 <스피드 레이서>는 기술을 통한 예술의 창조력이 무엇인가를 증명한다. 단지 변신로봇과 거대괴물이란 허구적 산물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것만이 기술의 본질이 아님을 입증한다. 비현실의 색채를 통해 창조된 <스피드 레이서>의 세계는 예술적이라고 명명되는 가치를 지녔다. 만화적 상상력을 단순히 영화적 형식을 빌려 재현한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해석을 통해 개별적인 작품을 완성시켰다.

자본의 수하로 고용 당하길 거부하는 자신과 가족을 위협하는 거대한 실체에 대항하고자 하는 본능은 분명 숙연한 것이다. <스피드 레이서>가 추궁하는 승리의 실체는 그 모든 부조리의 극복에 있다. 장애물 같은 적을 넘어 결승선을 향해 내달리는 스피드의 질주가 육체적 쾌감을 뛰어넘은 숭고함으로 거듭나는 건 그 때문이다. 우승을 가로막으려는 무리들의 비열한 공작을 이겨내고 결승선을 향해 집념의 페달을 밟는 스피드는 그 상대를 뛰어넘고 결국 속도의 경지마저 뛰어넘고 인간의 한계마저 극복한다. 이는 본질을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선요한 것이다. <스피드 레이서>가 감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 뛰어난 경지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경지에 오르는 이의 숭고한 정신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승리에 현혹되지 않고 진실된 경쟁을 믿는 자만이 이룰 수 있는 미학적 가치가 <스피드 레이서>에 존재한다. 예술을 간과하고 상업을 중시하는 이들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재능과 열정이 스크린에서 황홀하게 빛을 발한다. <스피드 레이서>는 그렇게 블록버스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영화의 신기원은 이렇게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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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pgs1071 BlogIcon 피오나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편안한 하루 잘 보내시길...
    날 참 좋습니다..ㅎㅎ

    2008.05.0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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