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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영화, 그리고 친구들!

필진 칼럼 2010.01.21 05:52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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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원

1.
내게 시네마테크는 지금의 영화 친구들을 만난 곳이다. 나는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 익숙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이 곳에선 그러한 존재들을 꽤 많이 마주쳤다. 초반엔 경계심이 작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를 알아 챘다. 그것은 영화를 보고 나서 무언의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교신하려는 신호로서 이루어졌다. 내가 찌리릿한 이것을 너도 느꼈니? 너의 그 표정은 내 것과 같은 그것 맞지? 우리 같은 것을 본 것 맞지? 나는 어느 날인가부터 이 무언의 신호를 해석하고, 해석받고 싶어졌다. 온라인 회원 까페를 찾았고 무식한 티를 벗지 못한 어설픈 생각들을 감흥에 취한 채 나열하기 시작했다. 주업과는 관련 없는 공부를 들척이게 된 것 또한 이 곳의 영화들, 친구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까페 회원들이 반응을 해주는 날엔 세상이 밝아질 정도로 시야가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비 시네필이 시네필과 과연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늘 자괴감에 빠져 있던 나에게 시네필들은 하나 둘씩 말걸어 주었다. 나는 카페에서 지금의 친구들을 얻었다. 2008년 친구들 영화제 때에 트뤼포의 <녹색방>에 대한 글을 처음 썼는데 그 때에 한 10년 지기 시네필이 나에게 처음 반응해주었다. 믿기 어려웠다. 이어진 배창호 감독 특별전에서 알게 된 일본영화광이자 종교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는 심지어 내 글이 좋다며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 이후 역시 까페를 통해 만나게 된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영화에 도전하고 있는 영화광 그 자체가 정체성인 씩씩한 언니, 공포와 슬래셔 무비를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눈망울 굴려가며 보는 귀여운 소녀, 그리고 지금 여기 네오 이마주까지 이어진 사람들까지. 이 모든 친구들과의 영화적 인연은 순전히 시네마테크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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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영화가 생소하던 나에게 고전 영화의 개봉관이나 다름 없었다. 또한 이로 인해 제2의 삶의 가능성을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매너리즘의 낮 다음의 삶, 그 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흥분을 선사해주었다. 너무 늦게 온 것은 아닐까, 나만 혼자 멀리 온 것은 아닐까 싶은 순간마다 변함없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상영되었다. 불이 꺼지는 상태는 암흑이었으면서 동시에 또 다른 빛이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어둠은 절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막을 알리는 장면 전환효과로서의 암전이었다. 멀리 떨어진 오래된 시대의 영화들이 깜깜한 공간을 뚫고 빛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멀리 돌아온 현재의 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둥글게 둘러 싼 거대한 원형극장 같았다. 그것은 혼란에 빠져있는 나를 포용해주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언제나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들은 대개 한 두회 상영으로 끝이 나게 되어 있었다. 나는 꽤 긴박한 사명감이라도 띈 것처럼 극장을 밤마다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타인에게 말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약속있다'는 말을 밥먹듯이 하며 무척 바쁜 척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실상은 '시네마테크에 영화보러 간다'는 것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나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이것은 점차 내 삶의 은밀한 행위가 되었다. 나는 이 곳에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만 인지되고 싶었다. 이 곳에서는 일상과는 다른 사람이고 싶었다. 시네마테크의 영화들과 나는 예정된 운명처럼 만나고 있었다. 이 만남은 시기상으로, 시선상으로도 늘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미 알려진 유명한 고전을 나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처럼 보았고, 이미 지나간 영화적 표현 방식들을 나는 현대적인 방식으로서 수용했다. 이것은 시선의 오류를 낳기 시작했다. 그 날의 기록들은 엉뚱하고도 이해불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충분히 들떠있었고 영화도 이런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진 않았다.


영화는 어긋난 시간과 인식을 탓하지 않았다. 영화는 생각보다 관용이 깊었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환영이었으므로 나 같은 시선을 통과하는 것쯤은 별 문제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작은 움직임에도 온 몸을 통째로 반응하는 일은 영화도 나도 서로 즐거운 일이었다. 어쩌면 나의 영화에 대한 감정은 중세인들의 신에 대한 숭고심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흠모에 가까웠다. 나는 그것을 찬양하기보다 그것을 닮고 싶었고 따라하고 싶었고 닮아가고 싶었으며 훔쳐내고도 싶었다. 나는 내 안의 경직된 종교성을 버려가고 있었다. 환영들의 움직임에 따라 굳은 신념들이 부드러운 운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절대적 진리에 정죄되어온 상대적 진리들이 유예상태를 벗어나고 있었다. 해방감이었다.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오류가 시작된 지점에 늘 재차 도착했다. 그 곳에 서지 않고는 그 너머를 볼 수 없었다. 시네마테크가 아니고는, 스크린이 아니고는, 감독의 카메라가 아니고는, 나의 한계를 도저히 넘을 수 없었다. 결국 난 그 지점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영화는 그 지점에 나를 세워주었다. 그는 고마운 내 삶의 인도자였고 그 이후 가는 길을 배반하지 않은 동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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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얼마 전 진행되었던 '헐리우드 고전 특별전'에서 만난 막스 오퓔스의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는 오퓔스의 영화관과도 같은 영화다. 마치 멜빌의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를 떠올리게도 하는데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리사는 자신이 이미 죽은 시점으로부터 남자 주인공인 스테판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영화의 내레이션을 시작한다. 리사는 영화 바깥에 처한 존재로서 영화 안에서 상상화(이미지화)된다. 오퓔스의 영화는 전체가 회상의, 원형의 구조이다. 그것은 환상적이면서도 물리적인 구조이다. 회상은 영화의 시선을 새롭게 배치한다. 리사의 회상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드라마적 전개와는 별도로 시점과 메세지와 감정을 부과해간다. 거리에서 스테판에 의해 발견되는 리사의 이미지는 오퓔스가 영화에서 여성을 보여주는 방식의 전형적인 것이다. 그것은 거리의 여자, 창녀의 그것이다. 하지만 오퓔스 영화에서 이것은 관음적 시선이 아니다. 스테판이 리사를 보는 이미지는 스테판의 시선이 아니라 영화 바깥에서 내레이션하고 있는 리사의 시선이다. 이것은 스테판이 자신을 봐주길 바라는 상상적 이미지면서 동시에 리사가 쓰고 리사가 연출하고 있는 자신의 인생 극장같은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리사가 스테판과 첫 데이트를 하는 환영열차 신에서 다시 한번 분명하게 제시된다. 그들은 환영열차를 타고 마치 세계일주를 하는 것처럼 들뜬 채 실제 가보지 않은 여행지의 풍경을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이것은 영화의 환영성에 대한 반영적인 장치로 영화 이전의 파노라마를 연상시킨다. 리사는 자신의 스테판에 대한 운명적인 사랑을 철저히 판타지에만 의존한 채 재연한다. 그녀는 스테판과의 예정된 어긋남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그녀는 좌절하지도, 자신을 설명하지도,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리사와 스테판이 만나지 않은, 만날 수 없었던 시간을 재현한다.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가 도착하여 읽혀지는 그 시간은 마치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와 겹친다. 우리는 미지의 여인이 보낸 편지를 본다. 그녀는 철저히 자신의 상상적 이미지들을 우리에게 투영시킨다. 영화에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목도할 수 있는 이미지란 없다. 우린 그녀를 통해서만, 그녀의 상상력에 의존해서만, 그녀의 욕망에 의해서만 볼 수 있다. 편지가 읽혀지며 보여질 때에야 그녀는 미지로부터 벗어나 우리에게 인식의 존재가 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우리는 이제 그녀가 누군인지 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다른 세상에 있다. 그녀는 어찌 보면 순진함을 가장해 우리를 속였고, 조롱하기도 했으며, 이런 그녀는 부도덕하기도 했다. 그녀가 다른 세상으로 갔을 때(죽었을 때)에야 스테판이 그녀를 보기 시작한다. 이 또한 상상의 이미지다. 현실에서의 만남과 사랑의 맺음은 처음부터 리사의 의도로 인해 불가능했기에 치명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은 예정된 것이었다. 리사의 피학적 판타지와도 같은 이 영화는 필름의 릴이 돌아가며 상영해내는 고통스러운 영화의 상영을 상대적으로 느끼게 한다. 고다르와 세르주 다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푸코의 철학, 어떤 고통에 근거를 둔 윤리적 선택으로서 영화, 그 구제할 수 없는 오욕의 각인, 아니 오욕에 대한 윤리적인 구조 그 자체. 사물에 대한 감금이 해제됨과 동시에 해방과 감시가 교차하는 영역, 망각되어 있는 것의 오욕이 기억되어 있는 것의 오욕과 교착하는 영역의 그 영화. 영화는 개념적 망각의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빛으로 끌어 내는 것이었다. 여기엔 망각의 자유 속에서 안주할 지 모르는 것을 기억속으로 감광하는 오욕의 고통이 있다.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것의 윤리적 요청과 고통. 고다르에게 영화를 계속 찍는 다는 것의 윤리적 고통은 곧 스스로의 망각 속에 두어야 했을지 모르는 기억의 시선 속에 끊임없이 영화를 각인시키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스테판은 현실(결투)에 나가기 전 망각 속에 있었던 그녀의 영화를 봐야만 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시네마테크에서는 미지의 혹은 망각된 영화를 끊임없이 상영하고 우리는 그것을 계속해서 본다. 영화를 꿈꾸는 자들이 영화를 계속해서 찍듯이. 이것은 멈추지 않는 윤리적 고통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의 예정된 반복이자 그 운명이다. 이 강박은 운명에 힘을 싣는다. 관객은 압도된다. 새로운 응시들이 계속해서 이 운명을 우연처럼 목격한다. 응시의 대상으로, 기억의 대상으로서 탄생한 영화를 고통스럽더라도 지켜봐야하는 사회적인 윤리가 우리 안에 암묵적으로 형성되어가고 있다. 이것에 동의하는 이들이 영화에 매혹된다. 그들이 시네필이요 그들이야말로 영화의 친구들일 것이다. 시네마테크가 이 사회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적 근거는 어쩌면 여기에 있다. 영화가, 그리고 그것을 만들고 보여주는 동지들이, 그것의 목격자인 우리들이 이렇게 계속해서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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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원
친구들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추천작으로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 Don't Look Now>(1973) 를 보았다. DVD로 봤을 때의 날카로운 충격을 상대적으로 느낄 수 없었다. 영화가 나른한 공포감처럼 몰려왔다. 무척이나 강렬한 해체주의적 영화인데 예민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는 빨간 옷의 아이가 강물에 빠져 죽는 신으로부터 시작한다. 가족들은 아이의 죽음을 현재의 일상 속에서 목도한다. 인상적인 일상과 사건의, 집 안과 집 밖의 교차편집 오프닝 시퀀스는 그 이후 이어지는 영화의 모든 내러티브를 이 지점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 시퀀스는 죽음이 발생하는 과정을 마치 도미노처럼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물리적인 반응처럼 묘사한다. 마치 죽음을 위해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처럼 죽음은 순차적인 불길한 이미지들의 누적으로서 발생한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소금기의 바닷물에 의해 부식하는 도시 베니스에서 찍은 가장 인상깊은 영화중의 한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몰락하는 유럽의 문화와 도시의 비장미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등장인물들 모두가 실제로는 유령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줄리 크리스티가 식당에서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질 때, 그리고 도널드 서덜랜드가 성 니콜라스 성당의 복원 현장에서 사고를 당할 때 그들은 이미 죽은 것이며, 그 스스로의 죽음 이미지를 강 위에서 목도한 것이다. 그들은 이미 죽었고, 유령이 되었고, 그들이 좇는 심령술사 맹인 자매와 빨간 옷의 정체 모를 아이는 그들이 만들어 낸 환상이라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플래시 포워드 기법을 인상 깊게 사용한 부부의 정사신을 이야기하면서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영화라고 말했다. 특히 미래가 개입하고 있는 현재성에 대해 언급하며 이러한 시각은 숙명론적인 것이자 현재를 현재화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실패의 이미지, 즉 현실과 현재의 바깥, 온통 포커스 아웃된 것들의 이미지들의 총체적 결합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은 미래에 대한 현재적 나르시시즘과 같다. 그것은 이미 본 것(과거)에 대한 죄의식이자, 그것으로부터 발생된 미래의 심판 이미지이다. 현재는 이미 본 것과 앞으로 볼 것 안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에 점점 잠식당해가고 있다. 현재는 과거의 반작용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남편이 창문을 닫자 출입문이 열린다. 그 문으로 티끌이 들어와 맹인의 눈에 박힌다. 아내는 맹인을 돕는다. 과거의 행동에 반작용처럼 지배당하는 현재를 우리는 우연이라는 명목상으로 목도하고 경험한다. 현재는 온통 어지럽고, 목졸리고, 피를 토한다. 지금 보는 이미지는 과거로부터 투영된, 이미 보았던, 이미 겪었던 것의 반영체이다. 완전히 새롭고 낯선 것은 현재의 조망권에 포착되지 못한다. 남편이 보았던 자신의 장례식은 자신의 미래 이미지일 수 있지만 이미 죽은 아내의 현실 이미지일 수 있다. 그가 좇게 되는 빨간 우비의 정체 모를 아이는 이미 목도한 자신의 아이의 죽음, 그 빨간 색에 대한 죄의식의 이미지를 투영한 자의식적 결과물이다. 그것은 현재에 와 완전히 낯선 이미지(연쇄 살인마)로 포커스 아웃되지 못한다. 그의 누적된 과거 이미지들의 시각성이 이 연쇄 살인마를 친숙한 자신의 핏줄로서 포커스 인하는 것이다. 죽음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런 그야말로 시각적 영매일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 눈먼 영매는 어쩌면 맥거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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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은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에서 '영화를 통한 진정으로 강력한 체험이란 감독이나 작가가 자기의 삶에서 몸과 마음으로 절실히 느낀 체험을 관객들과 함께 느끼고 공유해서, 관객의 생각과 마음을 깊고 넓게 확장시켜주는 그런 체험이다'라는 말을 했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눈이란 성숙된 것이다. 친구들 영화제에서 감독들이 추천한 영화를 함께 보고, 그들과의 시네토크를 듣고 있으면 감독의 시각이란 관객보다 훨씬 정제되어 있고 밀도 있으며 입체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조망권역과 그 바깥의 영역을 나눈다. 영화의 화면을 만드는데 있어서의 내화면과 외화면, 즉 선택과 배제라는 영역을 항상 언급한다. 그들이 쇼트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영화를 확장시키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영화의 기술적인 효과가 아니다. 그것은 시각의 고도화에 대한 체험이자 그 훈련이다. 고도화는 공감각적인 감각과 과학적 공간지각능력과 인문학적 정신의 깊이까지를 포함하는 단어일 것이다.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언급했듯 깨지는 이미지, 유리의 잔상같은 영화적 이미지들을 동반하여 시작한다. 참을 수 없는 시각의 유혹층, 그 얇디 얇은 층에서 미끄러지듯 깨질 듯 시작하는 영화는 본 것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부정하지 못하는 곤경의 심안의 이미지체로 들어선다. 그 안에서 목도하게 되는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영혼의 이미지에서 감독은 이미지에 대한 영안에 도전하려한다. 이 영화에서 죽음은 시각의 가장 바깥층에 있는 유리의 깨짐으로부터 발생한다. 그 죽은 육체가 물안에 깊숙히 잠긴다. 얇은 시각층을 깨고 죽음을 목도한 시각이 물 속을 유영하며 아이의 시신을 찾아 건져올린다. 그는 이 물 속의 입체성을 통과하며 심안을 획득한다. 이 심안은 평안한 유리체로 구성된 현재의 이미지를 깨고 들어온 과거의 이미지를 찾아 유영한다. 그것은 이미 깨진 현재 바깥에 있었던 미래의, 보이지 않는 영역의 이미지들을 불러들인다. 이것은 영안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이미 목도한 것에 대한 윤리적인 질문들을 시각의 시간적, 공간적 층을 넘나들며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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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ondage.dwc.cc BlogIcon bondage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봐, 당신도 여기에 아주 멋진 문서를 가지고 좋은 블로그. 당신은 속박이 날 체크 아웃 좋아해요.

    2011.08.0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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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영화평론가)
서울토박이라서가 아니라 내 취향에 꼭 맞는 도시는 서울 밖에 없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공기가 나쁘고 인심 사나운 교통지옥일지언정,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사는 일을 없을 것이라 다짐하곤 했다. 얼마간의 여행지라면 몰라도 서울 외에 다른 지방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었으니, 문화예술 인프라에 관한한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딱 한 곳, 서울에 없는 것을 가진 부산이 부러워졌다. 서울에 없는 것이라면, 부산국제영화제? 그야 때맞춰 내려가면 그만이지. 아니면 세계최대의 백화점 신세계 센텀시티? 패리스 힐튼도 아닌 마당에 나와 무슨 상관인가. 도처에 펼쳐진 바다와 지천에 널린 횟감? 회도 바다도 모두 좋아하지만, 어디 그런 곳이 부산뿐일라고. 파리에도 있고 로마와 뉴욕에도, 서구의 웬만한 도시 마다 하나쯤은 있으며 하물며 부산에도 있는데, 서울에는 없는 것. 다름 아닌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그래서 나는 부산이 부럽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상문화도시로의 발돋움을 기획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실행시켜가고 있는 부산광역시 공무원을 가진 부산 사람이 부럽다. 역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살림을 맡고 있는 문화행정가들이 부끄럽다. 아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시네마테크가 뭐 그리 중요하기에 이렇듯 부산과 서울을 단순비교 하면서 호들갑이냐고 말할 런지 모르겠다. 시네마테크는 한 마디로 ‘영화의 집’이다. 영화를 발굴하여 보존, 복원하고 상영하는 공간으로서의 시네마테크의 시작은, 1930년대 초 유성영화 시대의 도래와 맞물린다. 즉 토키시대에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를 보존하고 이후 세대를 위한 영화 역사의 전달 임무를 지닌 시네마테크가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 알다시피 서구에서 영화는 산업에서 예술의 대상으로 종국에는 문화유산의 대상으로 변해왔다. 이때 시네마테크를 이루는 추동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시네필의 고유한 노력과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국가의 제도적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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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상징처럼 알려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ematheque Francaise)'를 보유한 프랑스의 경우, 일찌감치 영화를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고유한 지위를 부여했다. 프랑스가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에 대하여 제도적 지원을 적극 실시했다면, 미국의 경우는 시장에서 비상업적인 방식의 영화 상영을 통해 시네마테크 문화를 활성화시켰다. 예컨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재정의 90%가 문화부와 CNC(국립영화센터-우리의 영화진흥위원회 격)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미국의 대표적 시네마테크인 ‘필름포럼(Film Forum)’의 경우 이사회를 비롯해 개인, 단체, 기업 후원회원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도 서구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5월 10일 소격동 선재센터에서 개관해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정위탁’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현재까지, 영진위의 재정지원(임대료)과 극장활용수익을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시네마테크를 가진 도시답게 파리에는 약 150개의 독립영화관과 89개의 실험영화관이 있다. 게다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필두로 ‘제오드’, ‘포럼 데 이마지’, ‘퐁피두센터’ 등에서는 고전향취 물씬 풍기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네필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파리시의 영화산업 지원정책이다. 이를테면 상업 활동이자 예술로서,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여가활동으로서 영화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영화산업을 행정측면에서 지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위해 파리시에서는 프랑스 국립영화연맹 등과 협력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관람 권장 행사를 벌이는 한편, 영화관 현대화 정책을 병행함으로써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분투 중이다.

파리시는 독립영화관들, 오래된 유명 영화관들, 동네 영화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프랑스 예술 및 실험영화단체와 협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 모임인 ARP가 프랑스 및 유럽영화를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직접 '영화인들의 영화관(Le Cinema des cineastes)'을 경영하는 것도, 이러한 파리시의 적극적인 영화예술에의 지원정책에 힘입은 결과다. 정책방향과 정책적 지원주체와 형태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 ‘필름 소사이어티’나 ‘시네마테크 온타리오’ 같은 북미의 시네마테크들 역시, 영화산업의 육성 및 보존을 위한 해당 시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에서 기원한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문화예술, 좁혀서 영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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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내놓은 2010년 시정 중점 과제 중 하나는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 구현’이다. 참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운 구호다. 연중 시청 앞 광장에서 음악회를 열고 청계천의 밤빛을 배경 삼아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놈의 서울특별시 문화행정을 총괄하는 문화국의 콘텐츠에는 ‘영화’가 쏙 빠져있다. 아니 영화‘만’ 빠져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편중된 예산편성이다. 즉,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지향하겠다는 서울의 1년 예산 가운데, ‘문화’ 분야 예산이 (일반회계를 기준으로)1.8%에 불과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러니까 2010년 서울특별시 총예산 21조 2853억 중 문화부문 예산은 3,769억 원이고, 이 가운데 ‘문화시설 건립운영 지원’에 242억 원을 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외적으로 수도서울의 위상을 과시하기 급급한 공공프로젝트와 일회성 행사에 치중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계절스포츠 행사를 치르느라 시설물을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예산을 쏟아 부을지언정, 시네마테크 하나 건립하는 데는 시가 발 벗고 나서는 법이 없으면서, 무슨 재주로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만들겠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화만큼 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문화예술분야가 또 어디 있다고.

앞서 말했듯이 파리와 뉴욕의 시네마테크가 너무나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과 단순 수치로 비교할 마음은 없다. 그래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다. 서울의 일 년 예산 중 문화부문에 배정된 것이 1.8%(3,769억 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떨까? 부산광역시의 2010년 총예산은 7조 2,136억 원으로 서울의 1/3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이중 문화관련 예산은 3.040억 원이고, 영화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영상센터 건립에 565억 원이, 영상중심도시 지속사업에 650억 원이 배정되어 있는 등, 그야말로 ‘영상산업도시 부산’의 면모가 예산편성에 드러나 있다(서울특별시 공식홈페이지 문화국 콘텐츠에는 ‘영화’만! 빠져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006년 4월의 어느 밤, 종로타워 바에서 ‘앱솔루트 트리오’의 리더인 피아니스트 페터 폰 빈하르트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 직업을 알아차린 그는 자신도 영화광 못지않은 애호가임을 밝히면서 대뜸 “기회가 되면 서울의 시네마테크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순간 뜨끔한 마음에서 임기응변으로 “유럽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아니지만, 서울에도 시네필의 기운이 살아있는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호기 있게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서울아트시네마 쪽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더라면, 무엇을 보았을 것이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수집, 보존, 복원, 연구, 상영의 공간인 우리들의 시네마테크의 뒷모습은, 오랜 벗처럼 겹으로 똬리를 튼 낡은 영사기와 만성적 재정문제라는 검은 그림자가 아닐까.

만성적자와 노후 된 설비와 제대로 된 교육 공간 하나 없이, 이 남루한 하드웨어를 몸에 가난처럼 짊어지고도 우리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8년 세월을 시네필의 성소로 버텨왔다. 그렇다고 서울아트시네마의 활동이 외국의 시네마테크에 비해 모자랄까? 천만의 말씀이다. 프로그래밍만 놓고 본다면 뉴욕의 필름포럼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필름아카이브 구축과 현대식 영사시설의 구비가 급선무이긴 하나, 이처럼 기획전과 대관전을 비롯해 교육상영과 포럼, 출판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이뤄온 서울아트시네마의 성과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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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산업이면서 예술이고 문화인 동시에 유산이다. 서구의 국가들은 이미 70여 년 전 이를 인식하고는 찬란한 유산을 후대에 남겨줄 공간으로 ‘영화의 집’을 기획하여 실천에 옮겼으며, 이 노력은 각 도시와 구역을 중심으로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구 1,200만 명의 거대도시 서울특별시는, 이곳에 ‘시네마테크전용관’ 하나 없다는 사실을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서울시장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문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양동작전으로 생사여탈권을 휘두르는 야만적 작태를, 자발적으로 시작하여 문화운동을 거쳐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서울아트시네마’의 외롭고 고단한 싸움을 언제까지 외면하고 방치할 것인지를.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관한 공모제가 공표될 날도 머지않았다. 어차피 이치에 맞지 않은 제도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입 아픈 일일 테니 이제는 무시하기로 하자. 설사 그렇더라도 ‘1000만 영화 관객 시대’를 질주하는 한국에서 전용관 하나 구할 수 없어 떠도는 한국 시네마테크의 현실이 여기에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알려야 한다. 2005년 4월 3일 <안녕, 용문객잔>을 끝으로 낙원동으로 이사 온 이래, 시네마테크는 다양한 경로와 방법을 통해 ‘시네마테크전용관’의 필요성을 호소해왔다. 그러나 영진위나 문화부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용관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고사하고 기본 계획조차 전무한 집단에 더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셋방살이가 고달픈 게 아니라 삶 자체를 부정하고 폄하하려는 냉소적 시선을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과 유지 발전을 위해 서울시가 나서야 할 때이다. 지금 발 벗고 나선다 해도 부산보다 10년이나 늦었다. 무엇이 두려운가.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구현’하겠다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에 걸 맞는 사업으로 ‘시네마테크전용관’ 만큼 확실한 보증수표가 또 있을라고. 시네마테크전용관이야말로 600년 고도(古都)의 문화유산 남대문과 근대화의 상징인 남산타워에 이은,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확신한다. 서울시가 앞장서서 그 일을 맡는다면, 박수치면서 애써 도울 사람은 천지에 널려있다. 왕조는 무너져도 왕조의 기록은 역사로 남듯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성취가 훗날까지 남겨질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만한 것도 없을 터. 정치적 논리를 떠나 문화예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인식을 가진 기관장의 용기와 실천이 보태진다면, 서울시민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영화의 집’이 필요하다. 그러니 서울시가 나서라!



(추신)
하나. 시장을 시민의 손으로 뽑게 된 이래로 ‘시네마테크’를 공약으로 내세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이들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처한 건 아닌지 되물어 봐야 한다. 단합된 힘을 보여주면서 압박도 하고, 새로운 시장선거의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공약이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이면서 서울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것인지를 각인시키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둘.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일이지만) 정말로 시네마테크를 사랑한다면, ‘관객회원’들은 4,000원의 할인금액이 아닌 오히려 일반 관객보다 단돈 1,000원이라도 더 내고 영화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건 수혜자부담 원칙을 떠나 애정표현의 실질적 방법의 문제이다.ㅡ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추가요금의 부담만큼 다른 혜택으로 보상해주는 방법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ㅡ나는 시네마테크 측이 과감하게 이 문제를 공론화 하고 다양한 경로로 의견수렴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신이 진정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이고 서울아트시네마의 열혈관객이라면, 회원에 가입하고 더 많이 자주 찾는 것만큼이나 기꺼이 (특히나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지갑을 열어야 한다. 가끔씩 어디선가, 이명처럼 들려오거나 매체의 지면으로 접하던 “이 좋은 영화들을 너무 싼 값에 봐서 미안하다”는 말들은 괜한 소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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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를 향한 연애편지

올해로 4회를 맞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에 분주해 질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고 그 어느 때보다 활력 넘치는 한달여의 시간은 또다시 내년을 기약한다. 그리고 동시에 ‘친구들 영화제’의 일원으로 속해있던 나 또한 내년에 돌아올 ‘친구들 영화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3월의 첫날, 나는 ‘친구들 영화제’의 폐막과 동시에 개강을 준비해야 한다. 서른 편 남짓의 영화들에 둘러싸여 정신없는 방학을 보냈던 나는 이제 온전히 영화로만 이루어진 달콤한 꿈을 잠시 접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렸던 2009년의 겨울은 어느새 봄을 준비하라는 다그침으로 바뀌어 있다.


한국에서 겨울을 맞이하는 건 2년, 정확히 횟수로 따지면 3년 만이다. 3년에 걸친 시간 동안 나는 인도에 잠시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인도와 한국, 두 나라는 모두 뚜렷한 사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의 기후는 조금 차이가 난다. 한국에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인도는 하루 종일 비가 퍼붓는 우기를 준비한다. 인도의 최북단 지방은 겨울이 되면 영하 2,30도 안팎으로 떨어지곤 한다. 한국의 30배에 달하는 인도의 거대한 땅덩어리는 북부와 중부, 그리고 남부에 걸친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인도를 여행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비교적 날씨가 안정적인 겨울을 택한다. 나도 좀 더 쾌적한 여행을 위해 겨울이라는 계절을 선택했고, 그렇게 매년 겨울마다 인도에 머무는 ‘못된’ 습관을 들였다. 인도에서 생활했던 시간들은 더없이 값진 것들이었지만,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기회비용은 바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였다.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마테크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며 평소 보고 싶었던 감독들과 배우들을 만나는 행복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6년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의 북적거림에 맛 들린 나는 이후 두해의 겨울을 인도에서 보내며 늘 아쉬움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작년 겨울, 네팔의 안나푸르나 등반 중에 지인들에게 부쳤던 엽서는 온통 ‘시네마테크’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정글소녀’의 몰골로 3월이 시작될 즈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것 역시 지난 ‘친구들 영화제’의 프로그램이다. 지난 몇 년 간 나에게 겨울이라는 단어는 곧 시네마테크를 의미했다.

그렇게 기대하고 기대하던 ‘친구들 영화제로의 귀환’을 무사히 마친 후, 문득 떠오르는 것은 처음 시네마테크를 만났던 순간의 기억이다.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던 겨울, 시네마테크라는 난생 처음 보는 공간 안에서 만났던 영화는 아마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저런 전시회를 둘러보던 나는 우연히 아트선재 밑에 극장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고, 그 길로 내려가 영화를 관람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인사동에서 살다시피 했으므로 그때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시네마테크를 찾곤 했다. 그렇게 혼자만 다니던 시네마테크에 친구 손을 붙잡고 온 것은 그 다음해, 그러니까 대학교 입시가 끝난 해의 겨울이다. 프랑소와 오종의 자극적인 단편들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던 나는 그때 만해도 시네마테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공간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예중, 예고를 거쳐 자연스레 미대에 진학했기 때문에 영화에 관련된 과나 학원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때문에 좋은 영화나 좋은 비평을 발견해도,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영화에 관한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있어도 영화가 던져주는 텍스트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할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은 학교 내에서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었지만 영화를 나누고 싶다는 꿈은 어디에서도 해소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네마테크에 더욱 안착했고 뜻 맞는 동창들 몇 명이 모여 시네마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줄기차게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시네마테크는 나에게 결국 ‘방과 후 수업’과 같은 존재다. 그 곳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영화 보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영화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지금의 공간으로 이사하기 직전, 그러니까 소격동 시절에 마지막으로 상영했던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은 평생에 걸쳐 잊을 수 없는 아련함을 안겨주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로 이사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극장이 아예 사라진다고 착각했던 나는 아주 차분히 아트선재의 계단을 쓸며 올라왔었던 것 같다.

극장이 없어지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 낙원상가 4층에 새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영문 모르는 친구의 팔을 붙잡고 종로 한 복판을 길길이 뛰어다니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때의 철없던 애정이 결국 지금까지 종로 어귀를 전전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한 감독의 영화를 극장을 통해 다시 만났을 때의 희열,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최근에는 시네마테크를 향한 개인적인 욕심도 하나 생겼다. 2년 전, 시네마테크에서 한 러시아 감독의 특별전을 상영했는데 그때 이후 지금까지 그 감독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다. 그 러시아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찾아보았지만, 역시 극장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의 모든 작품을 시네마테크에서 관람하고 싶다. 더불어 ‘관객’으로서가 아닌 ‘감독’으로서 그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당돌한 소망도 가져본다. 매우 뜬금없는 소망이지만, 그 어느 곳에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조심스러운 고백이자, 시네마테크와 함께 자라온 철부지 꼬마의 ‘장래희망’이다. 나에게 좋아하는 영화, 사랑하는 영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시네마테크뿐이다. 영화를 보기 위한 단 하나의 공간만을 허락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시네마테크를 선택할 것이다. 나의 ‘당돌한’ 소망이 이뤄지는 그날 그리고 그 이후로도, 시네마테크가 영원히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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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칼을 갈 차례

필진 칼럼 2009.03.05 06:56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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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의 관심사였던 시네마테크 위탁사업의 공모제 전환이 1년 뒤로 연기되었다. 천만다행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표면에 내세운 시행 연기의 이유가 ‘시기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영진위 임의로 시네마테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음을 의미하고, 공모제로의 전환을 기정사실화하겠다는 방침을 명문화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애초부터 공포탄을 쏘겠다는 심산이었는지 모른다. 원래 첫발은 공포탄이고 실탄 사격은 두 번째부터 아니던가. 언제라도 지원을 끊을 수 있으니 딴 맘 품지 말고 알아서 기라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공모제라는 단어 하나만 던져놓았을 뿐인데, 서울아트시네마와 친구들 영화제를 뒤흔들어놓을 만큼 파급력이 컸다는 점만 놓고 보면 문화체육관광부나 영진위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평할 수 도 있겠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이 땅의 행정가들이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와 소양의 천박함을 확인할 수 있었고, 문화예술마저 자본의 발아래 둘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의 결과물을 목도했다. 또한 다수의 언론 매체가 보여준 무신경한 반응은 철저하게 네티즌의 기호에 의존하고 있는 영화 담론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물론 애초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서울아트시네마와 관객들은 침착하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시네마테크를 지켜내는 힘은 관객으로부터 나올 수 있음을 입증하였고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집된 힘을 저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한편 이번 사태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재정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전체 예산의 30%에 불과하지만 영진위의 위탁사업지원금이 없으면 시네마테크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 재정자립의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는 (약으로 말하자면) 비타민과 당위정이 골고루 들어있는 처방전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의 힘이 비타민이라면 재정자립을 위한 안정적 재원확보는 당위정에 해당할 것이다. 제 아무리 애정 가득한 관객의 지원이 차고 넘친다 해도 그것만으로 버틸 수는 없는 법. 누구보다 극장 측이 더 많이 고민하고 지혜를 짜내고 있을 터이지만, 시네마테크 공모제전환 반대 서명운동과는 별개로 후원회원을 배가시키는 데 힘써야 할 것이고, 언론과의 유기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우호적 지원군을 확보하는 일에도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선량한 후원자를 찾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각계각층을 망라한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이 절실한 때라는 얘기다.

어느 정치인의 말대로, 기나긴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따름이다. 지난 몇 주간이 목검으로 상대와 합을 맞춰보며 서로의 내공을 시험해본 시간이었다면 바야흐로 진검승부의 시간이 도래하였다. 진검승부를 앞둔 무사에게 녹슨 칼은 무용지물일 터. 칼은 무사만 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몇몇 언론과 매체만이 시네마테크문제를 공론화하며 칼끝을 세웠다면, 이제야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 나서서 칼을 갈 차례다.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합심하여 갈아 놓은 칼을 든 장수가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그런 점에서 이번 주말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인 ‘필름라이브러리 무료상영회’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니 이번 주말, 서울아트시네마로 달려가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관객회원에도 가입하자.
Now, Were going to Seoul Art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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