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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한결 경쾌해졌다. 이제 갓 세 편의 장편을 통과한 신동일 감독이지만,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보자면 유머 코드는 한층 강화되었다. 보고 있노라면 영화 상영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물론 그 웃음은 전적으로 현 정부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일종의 비웃음에서 시작한다. <반두비>는 은유보다 직접적인 상징으로 대담하게 관객을 유혹한다. 남대문, mb, 촛불소녀, 쥐새끼, 수입소고기, 조. 중. 동, 이건희, (강)만수, 심지어 직접적으로 이명박을 ‘쥐새끼’라고 부르기 까지 한다. 실컷 웃기야 했지만, 시국이 하 수상하다보니 이거이래도 되는 건가 슬쩍 걱정스럽긴 하다. (이 걱정은 기우에 그치지 않고, 등급 심사에서 15세 관람가로 제출한 영화를 청소년 관람불가의 차원을 달리하는 영등위의 멋진 심사로 대응해주셨다.)

그렇다고, 그가 천착했던 영화의 사회적인 주제까지 가벼워지진 않았다. 여전히 신동일은 그 방면의 논점을 영화화 할 수 있는 한국에 몇 안 되는 소중한 사회파 감독이다. <반두비>는 한국의 당찬 여고생과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 노동자 간의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여기서 한국의 여고생은 영화 곳곳에서 상징하는 것처럼 ‘촛불 소녀’로 읽힌다. 영화의 외피는 이 촛불 소녀 여고생과 이주노동자간의 친목이 애정과 우정사이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과의 관계에 어떤 욕망이 스며들고 있는지 서슴없이 까발린다. 하지만 영화의 실질적인 주제는 세대론에 가깝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촛불 소녀 세대가 이주 노동자라는 소외 계층과의 연대를 통하여 어떻게 우리 사회에 대응하고 있는가를 직접적으로 조명하고, 그곳에서 희망을 찾기에 이른다.

영화는 곧잘 인물들이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을 비추곤 한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이주노동자인 카림(마붑 알엄 분)이 진입 금지가 새겨져 있는 일방통행 도로를 거꾸로 걸어가고 있는 장면이나 원어민 영어 강사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사지업소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여고생 민서(백진희 분)가 휘항 찬란한 네온사인이 밝혀진 도시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과 이제 막 서로가 친해지기 시작한 두 사람이 서먹하게, “이제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둘 다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하는 모습 그리고 미국인 영어 강사와 만난 후, 카림과 민서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각 자의 길을 걸어간다. 이러한 길을 걸어가는 장면들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아주 함축적으로 잘 담고 있는 상징적인 장면들이다. <반두비>는 한국 사회에서 여고생과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가를 살펴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너무, 분통 터뜨리지 말자

필진 칼럼 2009.06.05 12:30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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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2007년 늦가을, <반두비>의 시나리오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던진 말은 이랬다. “와우, 이거 센걸. 다 좋은 데 청소년관람불가 나올 거 같아 걱정이야” 그때 신동일 감독의 답, “설마요...힘겹기도 하지만 꿋꿋하게 나아가는 한 소녀의 성장드라마인데.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은 조심스럽게 연출할겁니다” 그러나 그게 감독의 연출만으로 될 일인가.

2009년 6월, 아니나 다를까. 여고생이 마사지 숍에서 일하는데다가 그곳에서 담임선생님과 마주치기까지 하는 영화, 육두문자와 “졸라”가 스크린에 흩날리는 이 영화, 청소년에게 유해할까? 당근, 유해하지! 내 생각이 아니라, 그러니까 현직 대통령을 설치류 동물에 비유하여 묻거나 한국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이 위대한 미국원어민강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불철주야 불침번을 서고 있을 영상물등급위원회 나리들이 15세 관람가 등급을 주겠느냐 말이다.


지난 6월 3일 영등위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등급논란에 대한 영등위의 입장을 밝혔는데, 예상대로 황당한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례적이고 즉각적으로 단행된 이 인터뷰가 시사하는 점은, 재심을 통한 등급번복의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것과 현 정부에 배치되는 영상표현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영등위의 결연한 의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터뷰에서 밝힌 등급사유에 한국인비하와 현 정권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관한 얘기가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이 양반, 성격이 소심한 거야? 아니면 현직 대통령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죄에 해당한다고 지레 겁먹은 거야. 게다가 정작 인터뷰 당사자는 영화도 제대로 안 본 듯하다. 영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대고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일고의 논의할 가치도 없는 영등위의 주장은 교회에다 헌금이나 해버리고 흥분을 가라앉힌 후 생각해보자. 본시 훌륭한 영화란, 관객으로 하여금 감독의 세계관에 동화되어 작품을 경험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개인의 신념 체계마저 흔들리게 만든다. 때문에 어떤 영화를 본 첫 관람자가 불편함을 느꼈고 영화에 묘사된 모든 불온한 것들이 현실로 이어지리라는 우매한 확신이 들 때, 그리하여 그 관람자가 무언가를 희생양 삼아 분노와 비판을 표출하고자 한 결과에 대한 것이라면 굳이 애석해야만할 이유는 없다. 달리 보면 그만큼 훌륭한 작품이라는 반증일 수 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반두비>의 개봉이 20일 밖에 남지 않았다. 배급홍보사의 바쁜 행보가 시작될 시점이고 감독은 노심초사 개봉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청소년관람불가가 확실시 되는 영화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홍보하고 많은 이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느냐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소규모 개봉에 등급까지 발목을 잡으니 불리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볼 일만도 아니다. 영등위 관계자의 억측대로 등급논란을 마케팅 재료로 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개봉 전까지는 등급에 대한 논쟁을 극대화하고 개봉 후에는 작품에 대한 평가를 통해 관객층을 확보하자는 말이다. 또 민서 역의 백진희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주노>의 엘렌 페이지를 찜 쪄 먹고도 남을 <반두비>의 백진희” 이런 것 말이다. 사실이지 신동일의 영화 속 여배우들은 얼마나 매력적이었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누이의 모습으로 뭇 사내들의 애간장을 태운 홍소희의 고혹적인 자태하며, 기성세대에게 거침없는 하이 킥을 날릴 때의 씰룩거리던 백진희의 통통한 볼 살과 입술이라니. 전주국제영화제 상영당시 혈기 방자한 청년들이 백진희의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탄성을 질렀다는 소문도 있고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테다.

나 역시 누구보다 개봉에 맞춰 많은 청소년이 <반두비>를 관람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일이지만 아직 재심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결과가 어떻든 신동일이 영화 만들기를 그치지 않고 개별 작품마다 품질을 인정받는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관객과 만나는 작품들 속에 <반두비>도 있을 것이고 그중에는 2009년 6월에 보지 못한 것을 애통해했던 청소년도 있을 터이니 이 정도면 행복한 상상이지 않나? 그러니 비록 청소년관람불가의 족쇄가 풀리지 못할지라도 너무 분통 터뜨리지 말자. 결국 영화와 그 속에 담긴 감독의 마음은 변함없을 테니까. 애초에 내가 그리고 우리가 흥행감독 신동일을 지지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추신) 한 동안 잠잠하더니 저자가 또 신동일 타령이라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게다. 그런데 미안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이건 편집장 칼럼일 뿐이고 본격적인 것은 개봉 전후로 폭포수 같은 은총을 쏟아 부을 터이니 기대하시라.

내가 영화 기념파티에 가는 이유

그리고... 2009.04.16 10:47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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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요즘 들어 부쩍 내 자신이 평론가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모름지기 영화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스크린 속 영화이야기는 기본이고 스크린 밖 이야기, 즉 영화를 둘러싼 환경과 그것들이 영화와 사회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까지를 두루 꿰뚫고 있어야 하는데, 영화 밖은 고사하고 개봉작을 찾아보는 것조차 신통치 않으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때문인지 영화행사와 관련하여 초대가 오면 별일 없는 한 참석하는 편이고 독립영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곤 했더랬다. 생각해보면 영화인들을 만나는 자리처럼 자기성찰을 추동하는 강력한 기폭제는 없었다. 영화인들과의 담소를 통해 영화판의 생생한 소식과 경향까지 두루 알 수 있거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나태해진 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난 금요일 저녁 모임도 그런 자리였다. 다름 아닌 ‘<낮술> 3만 기원파티’였는데, 2만 5천명 돌파를 축하고 3만 관객을 기원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조촐한 모임이었다.


당초 감독과 독립영화인과 관객이 함께하는 자축연 수준으로 알고 있었고 행사장인 대학로 하이퍼텍나다 건너편 주점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노영석 감독을 비롯한 <낮술> 스태프와 국내배급을 담당한 영화사 진진의 홍보팀, 조영각 씨를 비롯한 독립영화협회 식구들과 <포도나무를 베어라>를 비롯해 이른바 ‘두려움에 관한 삼부작’을 만든 민병훈 감독까지 10여명에 불과한 인원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난 2007년 가을, 인터뷰 스케줄까지 잡아놓고는 도무지 자신이 없어 포기해야했던 그래서 마음의 빚을 진 민병훈 감독을 만나게 된 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뒤늦게 변명하자면 당시는 그의 삼부작 중 <포도나무를 베어라>를 보지 못한 상태였고 전편을 안 본 채로 강행한다면 반쪽짜리 인터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는 무려 3년 만에 공식석상에서 그때의 실수를 사과했다. 민 감독 역시 환한 웃음으로 받아주었으니 이런 맛에 참석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더니 홀의 한쪽을 가득 채워버렸다. <우린 액션배우다>의 배우 신성일과 곽진석이 오더니 뒤이어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프로그래머와 김영진 평론가가 등장했고, 신동일 감독이 <반두비>의 촬영감독과 함께 도착했다. 마침 이날 <반두비>의 프린트가 나왔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장편경쟁 부문에 포함된 터라 신 감독에게도 의미 있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술기운이 오르자 좌중은 좀 더 시끄러워졌다. 더러는 <낮술>에 대한 뒷얘기로 또 다른 이들은 MB시대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 이를테면 현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문화정책의 오류와 오판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성토하기도 하였다. <낮술>의 엽기녀 란희와 트럭운전사를 연기한 두 배우가 부부라는 사실도 이런 자리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고, 4월 말 개봉예정인 <박쥐>의 천적이 <똥파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흘러나왔다. 어떤 이는 <똥파리>가 <낮술> 관객을 먹어치우는 날엔 그야말로 ‘낮술 먹은 <똥파리>’가 될 터인즉 막강파워를 과시할 것이라고도 하였다. 전 같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숫자들이 독립영화인들의 입에서 농담처럼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워낭소리>의 힘이 크긴 컸나보다. 모인 사람들조차 이런 유의 대화가 익숙해진 자신들의 모습이 낯선 눈치였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오래전부터 독립영화가 1만 명이 넘으면 파티를 하곤 했는데, 사실 1만 명 넘은 영화가 별로 없었다. 작년의 경우 <우린 액션배우다>가 유일했다. 그런데 요즘 독립영화 예상스코어를 말하면서 ‘0’ 하나가 더 붙는 것을 보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맞다”면서, 실로 처음 찾아온 꿈같은 현실이 마냥 싫지 만은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좋아할 수 만 도 없는 작금의 상황을 토로했다. 하기야 요즘 독립영화인들의 속사정이 편치 않다는 것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아니던가.

그저 <낮술>의 성공을 축하하고 더 많은 성과를 기원하는 마음일 따름이었건만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일인가보다. 어쩌면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한 이유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무심하게 영화를 보고 간접정보에 의존해온 지난 몇 주 간의 나태함을 떨쳐낼 심산이었다는 것. 설사 시시콜콜한 농담과 진담이 뒤엉킨 언어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좌중일지라도 그것이 불투명 유리창 너머에서 일정한 상상력을 발휘해가며 바라보는 것보다는 훨씬 명쾌하고 시원한 일임에 분명할 테니까 말이다. 비록 <낮술> 속 혁진이처럼 두주불사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파티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내 깊은 곳 한 켠에 똬리를 틀었던 매너리즘을 날려버리는 계기가 되었고, 지지부진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자기성찰의 빛나는 순간들이 분기탱천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영화파티에 참석하는 진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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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장원



실망의 감정은 단지 실수였을뿐

적당히 흥미롭고, 조금은 따분했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은 멍한 기분었다. <방문자>를 본 후에 경험했던 활화산처럼 피어오르던 감정의 폭발이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는 없었다. 난 신동일의 2번째 작품이 데뷔작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단정지었다. 이내 내 자신을 쓰다듬었다. 이건 <방문자>와는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 영화가 완전히 다르잖아. 그러니까 그다지 실망할 필요는 없는거야. 그리고 슬며시 꿈틀거리지만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었던 실망의 감정이 다른 영화에서 느꼈던 실망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품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아서 느끼는 실망의 감정이 아니라 뭔가 나의 기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아쉬움이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전혀 아닌데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난 이 작품을 다시 한번 봐야했다. 정확히 10여달이 지난 후, 난 처음 본 후에 느꼈던 내 실망의 감정이 실망이 아니라 실수였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지닌 감독에게 난 속아 넘어갔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내가 그렇게 감동적으로 보았던 <방문자>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난 이내 생각을 180도 돌려 이 작품을 논해야 했다. 이 작품이 가지는 다중적인 플롯에 대해서, 그리고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사회의 계급과 관계를 보여준 작가의 의도에 대해서 난 힘든 고뇌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종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난 이토록 자아를 이데올로기적 무형체의 흐름으로 이입시키는 작품이 또 있었나 찾아보았다. 그런 다음에야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가지는 비상하리만치 아름다운 매혹에 정신없이 빠져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묘한 관계와 이동할 수 없는 계급

신성한 결혼식이 끝나고 부부 재문과 지숙은 친구들과 단체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재문은 지숙보다 그의 오른쪽에 서있는 친구 예준에 더 붙어 서 있다. 좀 의심이 된다 싶더니, 화면은 지숙을 가려 놓은채 재문과 예준의 행복한 얼굴을 비춘다. 아내보다도 더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는 없는것처럼 재문 역시 예준을 지숙보다도 더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재문은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의 태어난 것을 예준에게 알릴 때, 지숙이 파리에 가 있을 때 잡에 방문한 그를 바라볼 때 재문의 표정은 어딘 가 모르게 예준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영화는 그 이상 선을 넘지 않는다. 모든걸 예측하고 상상해야 하며, 절대로 결론짓지 않아야 한다. 그것만이 이 영화를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숙은 그런 관객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들의 관계를 질투하지만 과하게 표현하지 않으며 뭐라고 자기 스스로 결론 짓지도 않는다. 그냥 바라볼 뿐이다. 이 묘한 관계는 몇 번이나 엎어지고 회복되지만 끝내 파탄의 국면을 맞이하고 만다. 아기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 재문은 기꺼이 예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이것은 좀 급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죄까지 뒤덮은 재문은 심하게 떨고 있지만 난 그 초점에서 예준을 향한 눈빛이 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멍하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물론 사건 전후를 따져봤을 때 그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전에 예준을 향한 재문의 눈빛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였다. 뭔가 그(예준)를 위함이라기 보다는, 그(예준)에게 받은 것들을 보상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행한 것처럼 보여졌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재문이 사랑한 사람은 지숙이 맞다. 그리고 또 다시 난 지숙을 만나기 전부터 예준과 재문 사이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심해 보았다. 도통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복잡한 지점들이 산재되어 있다. 이런 지점들이 이 영화를 더 신비롭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닐까?

관계성과 함께 이 영화를 종단하는 또 하나의 흐름은 계급성이다. 정치적인 성향이 다분한 감독의 특징이 이번 작품에도 때론 노골적으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재문과 지숙은 서민층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동네 미용실을 하는 지숙과, 공항 레스토랑의 요리사로 일하는 재문은 우리가 볼 때 지극히 평범하다. 그들이 서로 혹은 따로 자신의 계급에서 한단계 도약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 'chef'가 되려고 하는 'cook' 재문은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려 한다. 그것은 정말로 'chef'가 되려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이민을 도우려하는 예준은 재문에게 넌 'chef'가 아니라 'cook'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애초부터 재문에게는 계급 상승 도약의 희망이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당연히 그것은 실패하고 만다. 지숙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이민계획이 실패하고 아이까지 잃자, 지숙은 또한번 예준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간다. 유학 후 다시 돌아와 강남에 큰 테라스가 있는 미용실을 오픈하며 상류 사회의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니 재문과 지숙은 허상의 욕망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소비하고 점점 더 본질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재문'이라는 인물로 인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재문은 '허상의 욕망'을 대표한다. 그가 가지는 부와 명예, 지식과 능력은 보기에 좋지만, 허울뿐이고 주변 사람을 괴롭힌다. 그 욕망을 맛보는 순간, 혼란스러운 굴에 빠지게 되며 그 곳에서 다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달아도 삼킬 수는 없는 것, 영화는 그것이 무엇인지 은유한다.



대립적인 인물의 지속적인 등장

<방문자>의 호준과 계상은 이 작품의 예준과 재문으로 변주된다. 그들의 관계나 특징은 정확히 이 작품으로 지속되는데, 그것은 몇 가지로 알 수 있다. 타락한 지식인을 대표하는 호준은 감정에 휩싸이는 법이 없다. 자신의 말을 분명히 하고 지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적잖이 퇴폐적이다. 순수 영혼을 대표하는 계상은 재문으로 이어진다. 그는 순전히 착한 마음을 지녔으며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관한 마음도 일관적이다. 그것이 무엇을 바라건 그렇지 않건. 전작에서 인물들이 티격태격 대립되고 갈등한 것에 비해서 이번 작품에서는 갈등이 별로 보여지지 않는다. 인물 속의 대립 속에서 감화되었던 호준과 계상과 달리, 예준과 계상은 이미 그런 사이로 시작되며 오히려 역으로 관계가 악화된다. 이런 지속되고 변주된 인물을 보는 것은 이 영화의 또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친구 이상의 관계는 여전하며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사건의 발전 양식은 반대이기에 흥미롭다. 그러므로 신동일 감독은 인물과 인물의 관계에서 자유롭게 그들을 서로 맺고 흔들며 돌이켜 보이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것은 앞으로 계속될 그의 영화에서 확장되고 또다시 변주될 것이다.



타고도 용서할 수 없는 욕망

다시 되돌아 온 재문과 지숙은 그들의 옷에 맞는 한적한 미용실에서 다시 삶을 살아간다. 허황된 욕망을 불로 태워버린 지숙은 선택은 현명했던 것일까? 하지만 모든 것이 재로 타 날아가 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그렇게도 그들을 흔들어 놓았던 허상의 욕망 '예준'은 어디로 갔을까? 영화는 예준의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들에게 편지가 배달됨을 끝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편지는 누구에게 온 것일까? '나의 친구, 그의 아내'라는 제목이 문뜩, 그리고 불현듯 생각나게 하는 결말이다. 그들의 욕망은 타고 없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그 누구에게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 난 확실했다. 타고도 용서할 수 없는 욕망. 다시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와 평범한 본래의 옷을 입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욕망은 끝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용서할 수, 용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난 이 위대한 감독의 연출 앞에서 이렇게 깊이 영화에 대해 고민하고 흔적을 남기려는 감독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감독의 그러한 치밀한 고민의 흔적이 온전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시대의 놓여진 깊은 사회 문제와 온전치 못한 기운들을 모든 사람이 방관한 채 다른 기류들로 편승할 때, 감독은 뚝심있게 자신의 할 말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범하게 건드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내가 깨달았던 실수는 이런 연유인 듯 하다. <방문자>가 겨울을 배경으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의 기온'을 가지는 작품이라면, 이번 작품은 대부분 여름을 배경으로 찍었는데도 '영하의 기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느꼈던 두 영화의 이질감은 곧, 기온의 차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물, 관계, 이야기의 흐름과 감독의 성향을 미루어 봤을 때 내가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속았다고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적어도 2번 이상은 봐야하며, 3번 이상은 생각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론 이 영화에는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스산한 감정의 동요가 조용히 스며드는 느낌이다. 좀 더 오래 이 느낌이 전해질 것 같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라는 기묘한 영화제목처럼 규정할 수 없는 감정들이 천천히 스며들어 그것들이 내 안에서 잠전되는 데에는 아마도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난 감독의 3번째 작품 <반두비>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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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의 변

어느 때 보다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고 지낸 한 해였습니다. 관객은 줄어들었고 한국영화 점유율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천만 영화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1000만 영화’가 한국영화계에 재앙을 불러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2008년에 개봉된 영화가 다른 해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초대형 흥행작은 없었을지라도, 비록 할리우드에 자리를 많이 내어주었을지라도, 한국영화는 끊임없이 관객과 만나면서 그 성가와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고 또 더러는 새로운 영화문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했으며, 또 어떤 영화는 실망스러운 만듦새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제 2008년을 보내면서 한국영화 베스트5를 선정합니다. 네오이마주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영화평론가와 영화기자 그리고 편집스태프와 독자 두 분까지 총 열 두 분이 질문에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공간을 빌려 감사를 전합니다.





네오이마주가 선정한 2008년 최고의 한국영화는, 신동일 감독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입니다. 2위인 <밤과 낮>과 박빙의 접전 끝에 1위를 차지했습니다. 1순위에서는 <밤과 낮>이 앞섰지만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전 참여자의 고른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막판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이용철 평론가의 말처럼 “이 영화는 최고의 만듦새라고는 볼 수 없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아쉽게도 2위에 머물렀지만 <밤과 낮>은 홍상수의 문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인 동시에 연초에 개봉되었음에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겨질 정도의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또한 데뷔작으로 베스트5에 이름을 올린 나홍진, 이경미 감독은 올해의 성취 또는 발견이라는 단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멋진 하루>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어김없이 순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비록 정식 순위에는 빠졌지만,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날 그 길에서> <경축! 우리사랑> <연인들> <마지막 밥상> <나의 노래는>이 그것들입니다. 실망스런 많은 영화들과 영화계를 둘러싼 많은 사건 속에서 건진 이처럼 보석 같은 한국영화들이 있었기에 한국영화는 내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년에도 한국영화는 그리고 네오이마주의 한국영화사랑은 계속됩니다. (편집장)




- 참여한 분들(무순)
백건영(편집장) / 이영(편집스태프) / 하성태(편집스태프) / 강민영(편집스태프) / 서유경(편집스태프) / 신태균(스태프평론가) / 박부식(영화평론가) / 서대원(무비스트편집장) / 이용철(영화평론가) / 민용준(무비스트기자) / 정희승(독자) / 빈장원(독자)








1위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신동일


(백건영) 세대론 위에 쌓아올린 계급과 자본의 바벨탑,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영) 통속 드라마가 사회와 인간과 세상에 촘촘히 자리 잡을 때, 한낱 영화가 얼마만큼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
(하성태) 올 한국 상업영화에서 이 만큼도 정치성을 띤 영화가 없다는 것이 개탄할 노릇.
(강민영) 2 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에 들어맞는 건,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서대원) 이런 영화가 이제 서야 나오다니 ㅜㅜ 오뉴월에 헛방귀 나오듯 허망하고 씁쓸하다
(이용철)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영화를 선택했다.
(신태균) 인생사 GIVE & TAKE, 그 지리멸렬한 관계의 층위를 해부하다.
(민용준)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이 영화는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연옥을 실감하게 한다.
(빈장원) 계급성과 관계성 모두를 아우르는 뚝심 있는 연출의 힘이 넘치도록 느껴지는 소외작.



2위 [밤과 낮] 홍상수


(백건영) 일상성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욕망의 구체화, 홍상수 영화 중 단연, 최고!
(하성태) 목욕탕 창 한 켠에 똬리를 틀고 앉은 돼지의 얼굴만으로도! 그러니까 이제 홍상수의 남자들은 집에 돌아와도 불안을 면치 못하는 게다.
(강민영) 홍상수의 영화는 '2년'을 견디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용철) 예술적 완성도로 보면 올해 작품 중 단연 최고다.
(민용준) 현실에서 곧잘 보지 못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들이 영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3위 [멋진 하루] 이윤기


(백건영) 우리도 꽤나 근사하고 실감나는 도시영화를 가지게 되었구나.
(서유경) 멋질 수 없는 하루, 그 사이에서 바라본 윤기 있는 관계.
(이용철) 감독의 주제의식이 계속 확장되고 심도 깊어지는 데 주목했다.
(민용준) 두 배우의 연기만큼이나 깊고 투명한 울림이 인상적이다.
(빈장원) 메마른 도시를 가로지르는 여정에서 생의 향기의 그윽함을 깨닫게 되는 그녀의 하루.



4위 [추격자] 나홍진


(백건영) 장르영화에의 성취와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우뚝 선 문제작
(서유경) 숨을 참았다. 그 시간도 아까워서. 몸이 오그라들게, 숨이 가쁘게, 그렇게 영화는 나를 추격해왔다.
(박부식) 이 영화 자체 그리고 이 영화를 둘러싼 모든 것이 '한국의 현실'을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영화.
(서대원) 관람 후 강장제 한 병 피로회복제 두알 복용할 만큼 심신이 고단한 영화! 그러기에 인상적인 작품!
(이용철) 그간 한국의 장르영화는 대중적 성취라는 측면에서 부족했다. 그런 점을 극본한 중요한 사례다.
(신태균) 언-해피엔딩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충격적 우화.
(민용준)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잘 만든 영화에 속한다.
(정희승) 지독한 감독 지독한 배우 지독한 마무리 그러나 빼어나다.



5위 [미쓰 홍당무] 이경미


(이영) 기괴하고 놀라운 캐릭터의 영화. 화해, 화합, 이해하는 척하는 마음 따위는 걸러낸 까칠한 일방통행. 특이하다.
(서유경) 삽질은 마음을 키우지 않고 팔 근육만 키웁니다. 삽질한 여자들만의 오덕스런 공유지점.
(박부식)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올 때 한국영화의 미래가 있다.
(서대원) 여드름 땀시 불타는 미스터 고구마 불렸던 내 유년시절을 한방에 환기시킨 이경미 감독의 근사한 입봉작!
(민용준) 여성 감독이 빈곤한 한국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스토리가 먹혔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5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백건영) 소재보다 사람에 집중한 임순례의 힘, 신파는 감동이 되고 추억은 눈물을 부른다.
(이영)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무난함에 진심을 전달하는 핵심을 가진 영화
(하성태) 스포츠드라마의 전형적인 플롯과 내러티브에 여성과 핸드볼이란 타자성을 절묘하게 매치시킨 임순례 감독의 뚝심.
(강민영) 기대했던 그녀의 작품에 2%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는 영화
(정희승) 빤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눈물의 도돌이표, 역시! 임순례



<6위 ~ 10위>










<순위권 밖 그러나 기억해야할 영화들>




- 참여자별 선정작 및 20자평

백건영(편집장/영화평론가)
[밤과 낮] 일상성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욕망의 구체화, 홍상수 영화 중 단연, 최고!
[멋진 하루] 우리도 꽤나 근사하고 실감나는 도시영화를 가지게 되었구나.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세대론 위에 쌓아올린 계급과 자본의 바벨탑,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추격자] 장르영화의 성취와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우뚝 선 문제작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소재보다 사람에 집중한 임순례의 힘, 신파는 감동이 되고 추억은 눈물을 부른다.


이 영(편집스태프)
[이리]와 [중경] 절망을 응시하게 하고, 희망을 귀담아 듣게 하는 이방인 감독의 메시지. 괴롭거나, 외롭거나, 그렇지 않거나...세상을 떠도는 절망과 희망의 기운에 대해 말하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무난함에 진심을 전달하는 핵심을 가진 영화
[고고70] 여전히 유효한 '닥치고 놀자!' 그들의 음악은 건물을 넘고, 그 때 그 시절의 억압된 열기는 시대를 넘는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통속 드라마가 사회와 인간과 세상에 촘촘히 자리 잡을 때, 한낱 영화가 얼마만큼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
[미쓰 홍당무] 기괴하고 놀라운 캐릭터의 영화. 화해, 화합, 이해하는 척하는 마음 따위는 걸러낸 까칠한 일방통행. 특이하다.


하성태(편집스태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스포츠드라마의 전형적인 플롯과 내러티브에 여성과 핸드볼이란 타자성을 절묘하게 매치시킨 임순례 감독의 뚝심.
[밤과 낮] 목욕탕 창 한 켠에 똬리를 틀고 앉은 돼지의 얼굴만으로도! 그러니까 이제 홍상수의 남자들은 집에 돌아와도 불안을 면치 못하는 게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올 한국 상업영화에서 이 만큼도 정치성을 띤 영화가 없다는 것이 개탄할 노릇.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한 영화 안에서 60-70년대 한국 액션영화들과 장철(서극)의 외팔이 시리즈와 성룡의 활극을 한 꺼 번에 만나는 흥겨움. 류승완이여, 한국의 드 팔마가 되어주시라.
[고고70] 부족한 구석이 차고 넘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큼의 완성도를 지닌 음악영화가 드디어 나왔다는 점에 한 표!


강민영(편집스태프)
[밤과 낮] 홍상수의 영화는 '2년'을 견디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기대했던 그녀의 작품에 2%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는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 2 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에 들어맞는 건,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고고70] 누가 뭐라 하든, 여기서는 한 판 크게 벌리고 놀 자유가 있다!
[영화는 영화다] 저예산 상업영화의 재미. 제법 잘 짜여 진 연출의 재미. 이만하면 충분히 즐기고 놀 수 있는 영화의 '기능성' 풍족함.


서유경(편집스태프)
[비몽] 몸이 쓰라렸다. 정신도 욱신거렸다. 마음은 흐릿해졌다.
[미쓰 홍당무] 삽질은 마음을 키우지 않고 팔 근육만 키웁니다. 삽질한 여자들만의 오덕스런 공유지점.
[연인들] 알고도 손을 놓았고, 손을 놓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연인들]은 다가왔다.
[멋진 하루] 멋질 수 없는 하루, 그 사이에서 바라본 윤기 있는 관계.
[추격자] 숨을 참았다. 그 시간도 아까워서. 몸이 오그라들게, 숨이 가쁘게, 그렇게 영화는 나를 추격해왔다.


신태균(네오이마주 스태프평론가)
[고고 70] 놀이판의 신명으로 답답한 세상에 맞장 뜨다. 데블스는 최루탄 가스 속에서 연주하며 노래했을 뿐이고, 난 박수 치며 환호할 뿐이고.
[추격자] 언-해피엔딩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충격적 우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인생사 GIVE & TAKE, 그 지리멸렬한 관계의 층위를 해부하다
[사과] 농담 아니라 이 영화 보고 난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결혼이란 걸 꼭 해야 되는 건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평원을 달리는 사내들에 대한 집착으로 만들어낸 가장 비싼 마니아, 혹은 오마주 영화


박부식(영화평론가)
[미스 홍당무]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올 때 한국영화의 미래가 있다.
[사과] 결혼은 연애의 죽음, 그러나 삶의 새로운 시작임을 말해주는 영화
[영화는 영화다] 올해 한국영화가 거둔 가장 값진 수확
[마지막 밥상] 영화적 실험이 서사를 거스르지 않는 매우 독창적인 영화
[추격자] 이 영화 자체 그리고 이 영화를 둘러싼 모든 것이 '한국의 현실'을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영화


서대원(무비스트편집장)
[영화는 영화다] 노회한 충무로에 일침을 가한 애송이 장훈 감독의 멋진 데뷔작!
[다찌마와 리] 이런저런 눈치 안 보고 지 꼴리는 대로 찍은 류승완의 대 첩보어드벤처액션로망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이런 영화가 이제 서야 나오다니 ㅜㅜ 오뉴월에 헛방귀 나오듯 허망하고 씁쓸하다
[추격자] 관람 후 강장제 한 병 피로회복제 두알 복용할 만큼 심신이 고단한 영화! 그러기에 인상적인 작품!
[미쓰 홍당무] 여드름 땀시 불타는 미스터 고구마 불렸던 내 유년시절을 한방에 환기시킨 이경미 감독의 근사한 입봉작!


이용철(영화평론가)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영화를 선택했다.
[멋진 하루] 감독의 주제의식이 계속 확장되고 심도 깊어지는 데 주목했다.
[밤과 낮] 예술적 완성도로 보면 올해 작품 중 단연 최고다.
[사과] 한국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전범.
[추격자] 그간 한국의 장르영화는 대중적 성취라는 측면에서 부족했다. 그런 점을 극본한 중요한 사례다.


민용준(무비스트기자)
편집장인 백건영평론가의 부탁으로 리스트를 작성하긴 했으나 순위를 뽑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여하간 올해 개봉했던 한국영화 리스트를 쫙 펼쳐놓고 작품을 걸러냈다. 인상적이라 생각했던 한국영화의 목록은 이렇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추격자> <밤과 낮> <님은 먼 곳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멋진 하루> <비몽> <영화는 영화다> <미쓰 홍당무>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과속 스캔들>까지, 순서는 대략 개봉 순이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보지 못했고, 장률 감독의 <경계> <중경> <이리>도 못 본 관계로 리스트에서 누락됐다. 여하간 올해 내가 본 한국영화 중에 5편을 선정했다. 지극히 사적이고 순간적인 선택으로 좌우된 리스트일지도 모르니 지나친 간섭은 자제를 요망한다. 이런 개인적인 리스트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영화는 영화니까, 누가 최고라고 부추겨주지 않아도 고유의 가치는 보존되는 법이다. 순위는 그저 사족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여하간 내년에도 좋은 한국영화를 여러 편 만나길 고대한다.

[밤과 낮] 홍상수의 남자들은 언제나 비루하게 흔들리고 홍상수의 여자들은 그 흔들리는 남자에게 마음을 잘도 열었다 닫곤 한다. 밤과 낮이라는 차별적 서사 안에서 파리와 서울이라는 이질적 공간이 반대편에서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동시간에 놓인 반대의 영역적 공간이 물리적 시간을 반대편으로 밀어내며 서로의 차이를 동일하게 보존하고 있음이 체감될 때 이 영화는 온전히 신비롭다. 무덤덤하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되풀이 되는 순간들이 경이롭게 발견된다. 여성의 음부를 세상의 기원이라 말하는 쿠르베의 그림처럼 일상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영화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밤과 낮>은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실로 경이로운 영화적 체험이 아닐까. 현실에서 곧잘 보지 못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들이 영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미쓰 홍당무] <미쓰 홍당무>는 올해의 발견이다. 물론 <추격자>도 발견이라 말해야겠지만 <추격자>는 그보단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 <추격자>가 문법적 응용이라면 <미쓰 홍당무>는 문법의 창작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자 박찬욱 감독의 영향력이 종종 엿보이긴 했지만 <미쓰 홍당무>는 분명 이경미감독의신선한재능이앙칼지게드러난수작이다. 전혀 가늠할 수 없는 태도로 보편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동시에 생경한 드라마로 호응을 이끌어내고 종래엔 동감하게 만든다.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이경미감독만큼이나공효진과서우도발견이라할만한재능을드러냈다. 여성 감독이 빈곤한 한국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스토리가 먹혔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이한 창의력으로 말이다.

[멋진 하루] 오래 전 헤어졌던 전처가 찾아왔다. 350만원을 받기 위해서. 이상한 만남에 이어 이상한 동행이 시작된다. <멋진 하루>는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이상한 로맨스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동선과 감정의 궁극적 종착지는 낭만을 통한 치유에 있다. 서울 곳곳의 풍경이 생경하면서도 드넓다. 카메라의 탁월한 구도 감각 덕분이기도 하지만 동행하는 두 사람의 심리 변화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에 적용되는 인상이다. 단 하루 동안 지속되는 동행엔 지난 로맨스의 낭만이 깃들기도 하고, 삭막한 현실의 암담함이 그늘지기도 한다. 그 만남은 결국 도피적 일탈이 아닌 치유적 여행이 된다. 350만원이라는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액수의 금액은 희수의 태도를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지나치게 넘치는 병운의 낙관적 태도는 그 예측불가능한 동선을 그린다. 삭막해서 무료한 삶에 생기가 돈다. 지난 로맨스에서 비롯된 채무관계가 추억을 복원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따뜻하다. 해프닝 같은 사연으로 깊은 드라마를 만들었다. 두 배우의 연기만큼이나 깊고 투명한 울림이 인상적이다. 지극히 사소한 방식으로 특별한 감수성을 선사한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골목을 빽빽하게 메운 차량들로 가득한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퇴근하고 나서도 상사의 복귀 명령에 다시 회사로 달려가야 할지 모를 불안감에 떨어야 하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이 영화는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연옥을 실감하게 한다. 물론 그런 비극 같은 상황을 엮어내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극적인 재미가 충분하다. 관계가 뒤엉키는 찰나가 파국으로 빚어지는 여정들이 흥미롭게 이어지고 펼쳐진다. 정치적인 메타포들이 하나같이 극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때때로 시치미 뚝 떼고 제 얘기를 한다. 가볍게 유희적이지만 한편으로 진지하게 엄숙하다. 소심한 척은 다하면서 극단적인 세기를 보여준다. 2년 만에 개봉했다는 게, 그리고 고작 4개관에서 개봉됐다는 게 아이러니할 정도의 수작이다.

[추격자]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건 지루한 일이 됐다. 하지만 <추격자>는 분명 중요한 영화다. 날것의 기운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 기운이 장르적으로 밀착해서 완전한 몰입을 발생시킨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단순히 영화적인 영역을 넘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비범한 재능을 지닌 신인 감독의 성공이, 탄탄한 내공을 지닌 연기파 배우들의 성공이, 그리고 그런 영화를 지지한 관객들의 움직임이, <추격자>의 진면목이다. 정서적으로 암울하고 지독하게 잔인한 이 영화의 악랄함이 끌어낸 호응의 수치야말로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솔직한 정서에 가깝다. 수많은 시상식이 이미 이 영화의 가치를 지겹게 설명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영화에서 부족한 어떤 요소가 분명 <추격자>에 존재한다. 물론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잘 만든 영화에 속한다. 우린 그것을 구별해야 한다. 이 영화가 이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배경에 대해서 유념할 필요가 있다. <추격자>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정희승(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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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지독한 감독 지독한 배우 지독한 마무리 그러나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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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빤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눈물의 도돌이표, 역시! 임순례


빈장원(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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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아내] 계급성과 관계성 모두를 아우르는 뚝심 있는 연출의 힘이 넘치도록 느껴지는 소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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