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백건영


아시는 분도 있겠으나, 모 라디오에서 매주 토요일 생방송을 하고 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 주의 주요한 이슈를 나름 자세하게 다루는 것을 포함해 한주의 영화계 소식을 묶어 소개하는 시간인데, 첫 방송을 시작한 작년 7월 이후 어떤 경우에서도 심형래와 관련한 소식을 방송에서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럴 가치도 못 느끼거니와 뭘 하던 나와 무관한 인물이라 생각해서이기도 하고, 별 시덥지않은 성과를 마치 조국광복이라도 이뤄낸 양 호들갑 떠는 언론의 죽 장단에 나까지 끼어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방송에서 심형래 이야기를 하고야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떡밥에 걸리고 만 것인가. 발단은 이렇다.




3월 11일 한국수출보험공사는 문화수출보험의 1호 수혜자로 심형래 감독의 차기작 [라스트 갓파더]를 선정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문화수출보험이란 수출계약이 체결된 영화의 투자와 대출거래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수출보험공사가 보전해주는 제도이다. 요컨대 수출된 영화가 국내흥행과 부가판권시장까지 포함해 손실을 입었을 경우 계약범위 내에서 이를 보상해준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각에서는 [라스트 갓파더]의 흥행과 수출가능성은 물론이고 완성 자체를 의심하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필자는 심형래가 감독과 주연을 맡게 될 차기작의 스토리와 흥행가능성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투자와 제작은커녕 초상권 합의도 얻지 못한 단계의 영화에 대한 논점으로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이번 협약이 보편타당한 절차에 의해 적법하게 이루어졌느냐는 것이다.

작년 12월 6일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이에 체결된 문화수출보험의 내부규정을 살펴보자. 문화수출보험에는 영화-투자형, 대출형과 영화펀드형의 2가지 구분이 있다. [라스트 갓파더]의 경우는 영화-투자형에 해당되며 투자형 보험의 지원대상은 ‘총 제작비 예산액 80억 원 이내 3년 이내 극장상영용 영화로 수출이 계획된 영화를 대상’으로 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또 펀드형의 경우도 출자금 총액이 100억원 이내의 펀드에 한하여 지원대상이 될 수 있다. 이때 손실보전 한도는 투자형은 제작비의 70%이고 대출형은 90% 이내이다. 그런데, 심형래 측이 밝힌 대로라면 [라스트 갓파더]의 총제작비 예정액인 200억 원은 자격요건을 초과하는 금액이다. 때문에 80억원 이내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로 한정시킨 보험의 수혜자로 200억원(물론 제작이 완료되지도 않았으므로 얼마가 들어갈지 알 수 없다)짜리 영화를 선정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번 수출보험 수혜자 선정과 협약은 영화계 역시 실용주의, 실적주의의 자장 안에 편입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이 영화가 시나리오조차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어쨌든 그런 사람(대부를) 컨택해서 한국 코미디를 접목 한다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고, 한국 코미디가 먹힐 수 있다고 확인이 됐고, 그런 것 자체가 한국수출보험공사가 하기엔 상당히 타당하지 않나 했다”며 수출보험공사 직원이 밝힌 선정사유가 반증해주고 있다. 추상적인데다가 설득력이 없는 선정근거가 아닌가? 대부와 한국코미디의 결합이 가지는 의미가 대체 무얼 말하는지, 한국코미디가 먹힐 수 있다고 확인이 됐다니, 무엇에 근거했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시나리오 없이 투자를 받는 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는 한 번이라도 제작자나 투자자를 만나본 적이 있는 영화인이라면 너무나 잘 알 것이다. 게다가 투자위축으로 인해 시나리오뿐 아니라 배우캐스팅 단계까지 가도 투자가 쉽지 않은 게 요즘 한국영화계 현실이다. 설사 투자가 성사되더라도 필요시점에 맞춰 자금수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컨대 [우리 생의 최고의 순간]은 언론시사회 전날에야 제작비 투자가 끝났고 이런 자금부족으로 인해 해외로케이션의 대부분을 포기하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문화수출보험은 이처럼 얼어붙은 투자환경에 활력을 주고자 만들어진 상품이다. 일부 언론에서 “영화업계는 이 같은 문화수출보험이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영화에 활력을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는 괜찮은 시나리오가 있더라도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에서다.”라고 언급하는 것도 문화수출보험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수출보험공사는 시나리오조차 없는 영화와 손을 잡을 태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결과적으로 이번 계약은 한국영화발전과 수출촉진을 위한 공공재의 성격보다는 투자 받기 어려운 특정영화에 물꼬를 터주는 보증서의 역할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필자가 앞서간다고 난리칠 집단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번 협약은 말 그대로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 양해각서)이다. 본 계약 이전단계의 절차일 뿐 아직 확정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앞서 이번 협약과 관련해 [라스트 갓파더]의 완성도나 흥행여부는 관심이 없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그러니까 이번 협약의 경우 부실한 시나리오가 나오거나 여타의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 한 계약으로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1호 수혜자와 관련한 선정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보험공사의 공신력 실추를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본 계약으로 이어지도록 누구보다 수출보험공사가 팔 걷어붙이고 나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화수출보험의 첫 수혜자라는 1호 계약이 가지는 상징성에 밀려 설립취지가 훼손되고 왜곡될까 걱정스럽다.

모름지기 제도란 합목적성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오로지 미국시장이 갖는 의미와 수출가능성이라는 불확정성에 의존하여 통상적인 영화제작관행에 배치되고 내부규정에도 어긋나는 대상을 1호로 선정했다는 것은, 그 시작부터 파행을 예감케 한다. 한국영화 발전과 수출촉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공상품이 투자자를 불러 모으는 미끼에 그친다면 없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말 그대로 좋은 시나리오로도 자금을 구하기 힘든 영화, 국제경쟁력이 충분한 80억~100억 내외 영화의 지원책으로 만들어진 공적 보험 상품을 시나리오도 없는 영화와 덥석 손잡았다는 것에 대해 수출보험공사는 납득할 만한 심사과정과 기준을 공개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말이다.

(덧붙임)  영화-투자형  보험약관에 기재된 바에 의하면 문화수출보험 지원대상 영화의 "총제작비"라 함은, 영화의 기획, 제작, 상영, 배급, 유통, 판매 등을 위해 소요되는 자금의 총합계로, 본 예고편, 광고홍보물 제작비용, 매체광고비용, 홍보비 등과 프린트비, 입회비, 배급진행비, 발송비, 번역료, 자막비 등의 국내외 배급비용이 포함된다.

하성태


먼저 고백하자면 이 글은 불필요하고도 꽤 긴 댓글일지도 모른다. 그 만큼 개인적으로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죽일 놈의 인터넷이 문제다. 민족의 명절 설날, 최대 효도인 ‘가족과 함께’를 몸소 실천하다 아주 웃기지도 않은 글을 ‘발견’ 했다. 이름하야 “‘디워’ 매출 1억불, 구지식인에 파산선고” 부제는 더 가관이다. “‘디워’ 팬카페 수준의 정보도 없는 지식인들”

이런, 최근 본 ‘떡밥’중에 이만한 떡밥이 없었다. 물론 대운하를 파기위해 영어몰입교육 정책을 내세웠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인수위원회와는 격이 다르지만. 어찌됐건 흥미를 가지고 글을 읽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빅뉴스’ 변희재 대표의 글이었다. <디워>와 심형래 감독에 줄곧 ‘물타기’를 하며, 진중권의 이름을 계속 걸고넘어지는 기사를 네이버에 뿌리는 언론플레이를 일삼아왔던 바로 그가 아니던가.

기억을 더듬어봤다. <디워>는 분명 미국 수익 1천만 달러 정도에 그쳤으며, 러시아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했으나 200만 달러 수익에 그쳤고, DVD 시장에서도 심형래가 호언장담하던 ‘대박’이 아닌 선전을 펼친 것이 전부가 아니던가. 역시 나이를 먹으니 기억력이 감퇴되거나 내 눈을 의심해 봐야 하는 건가.

그래서 지식인을 싸잡아 욕한 변희재가 추천하는 <디워> 팬카페에 가입했다. 먼저 뒤적였던 믿을만한 미 영화정보사이트 ‘IMDB’와 ‘박스오피스모조’와 비교해 보기 위해. 총수익이 1억 달러를 넘겼다고? 총매출과 순매출로 하는 ‘눈가리고 아웅’은 반칙이다. 이런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글을 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말이다.

먼저 박스오피스모조 렌탈 순위를 보자. <디워>의 미국 내 수익은 1,097만 달러로 마감됐고, 4주간 DVD/비디오 수익은 1,611만 달러다. <디워>의 첫 주 박스오피스 성적보다 약간 앞선 535만 달러. 11위로 출발, 약 17~18%의 드롭율을 보이다 4주차는 전주 대비 24.4%까지 떨어지며 22위에 랭크됐다. 지금까지 극장 수익과 비교해서는 1.5배에 가까운 수익이니 개인적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나 할까. IMDB나 버라이어티도 마찬가지다.

DVD 판매 수익은 영화 박스오피스 전문사이트인 www.the-numbers.com’에 따르면 1월 마지막 주까지 600만 달러를 넘겼다. 그러나 첫 주 400만 달러, 3위로 시작해 둘째 주 70%의 드롭율을 기록하고, 셋째 주 수익이 90만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앞으로 1~200만 달러 선에서 그칠 것으로 보인다. 어쨌건 팬카패가 집계한 비디오 수익은 약 2,200만 달러.

전세계에서 영화산업이 최고로 계량화된 미국의 드롭율을 봤을 때, <디워>의 미국 내 DVD 매출은 심형래가 예상한 극장 수익의 3배, 그러니까 3,000만 달러는 요원해 보인다. 국내 기자회견에서 심형래는 “소니픽쳐스와 8:2로 수익을 배분하고 마케팅 비용도 그쪽이 부담했다”고 자랑스레 밝힌 바 있다. 어쨌건 그가 부가판권 시장에서 극장 수익의 2~3배를 거둬들일 것이란 호언장담은 일정부분 지켜질 것이다. 어차피 미국의 아동용 DVD 렌탈시장과 SF층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니까. 물론 “다음 주 정도면 총매출 1억불을 돌파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변희재의 바람은 언젠가 지켜지겠지만, “DVD 만큼의 시장이 보장된 유료 케이블 TV 방영도 예정되어 있어, '디워'의 미국내 총수익은 최소 5천만 달러 이상이 될 듯하다”는 예상까지 맞아 떨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여기까지는 미국 내 2차 부가판권 시장에 대한 팩트라고 치자. 그런데 이건 뭔가. “<디워>는 러시아,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필리핀에서 개봉되어 모든 지역에서 톱 5 안에 들었다. 이중 시장이 가장 큰 러시아에서 2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미국 이외 지역에서의 흥행력도 검증받았다.” 왜 이러서나. <본 얼티메이텀>과 같은 블록버스터와 비교해 몇 분의 1 수준으로 선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4개 지역에서 개봉한 걸 가지고 흥행성을 검증받았다고 하기엔 쑥스럽다 못해 천박하지 않은가?

게다가 태국과 일본, 유럽, 캐나다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디워>의 국내외 총매출을 2억불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는 건 왜곡에 가깝다. 각 국가별로 대박이 났다고 치자. 천차만별인 영화 판권인데도 불구하고 각 국가별 수익과 직결된다고 생각하면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총 3천만불 투자에, 2억불의 매출, 해외배급사의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국내 영화 최대 매출, 최대 수익은 확정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그야말로 과언이다.

그러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디워>의 예산을 보자.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IMDB는 7,540만 달러로, 순제작비만 따진 박스오피스모조는 3,200만 달러로 표기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제작비 7,500만 달러를 포함하면 국내 수익을 제외하고 아직도 한 참이나 마이너스며, 1억불 달러 돌파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단 말씀이다. 물론 대한민국도 세계인이고 내가 내 돈 내서 자발적으로 <디워>의 1억불 돌파를 위해 기꺼이 한 장의 티켓을 끊었다고 한다면 할말 없지만.

어찌됐건 <디워>의 지금까지 현재까지 해외 수익은 미국 내 극장 수익 1,000만 달러, DVD 판매와 대여 수익 중간집계 약 2,200만 달러, 그리고 해외 극장 수익 약 300만 달러를 모두 합쳐 3,500만 달러가 전부다. 결국 아직까지 국내 관객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미국 내 마케팅 비용을 댄 것이고, 또 그걸 발판으로 유럽이나 일본 진출을 이뤄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마케팅비를 지탱할 수 있는 건 국내 수익 5,500만 달러가 종자돈이 되어준 셈이다.

결론적으로 국내 수익을 제외한 <디워>의 진정한 손익분기점 도달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내 수익을 제외하고 수익을 내려면, 일본과 유럽, 그리고 다른 지역의 극장 수익과 2차 부가판권 모두까지 제작비인 7,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과연 그게 호락호락 할까? 그렇게 큰 시장이라는 러시아에서 200만 달러인데? 우리보다 10배 가깝다는 일본에 기대를 걸자고? 솔직히 말해 관건은 유럽보다 일본인데 <고질라>의 나라이자 요즘 한국영화라면 손 사레를 치는 일본 시장에서의 흥행은 그야말로 신밖에 모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영화의 승리니, 발전이란 건 허상이란 뜻이다.

이건 전적으로 산업적인 측면이다. 이 글에서 진중권처럼 무덤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불러 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제 해외에서 5,500만 달러 정도 벌어들인 것으로 1억불 돌파니, 2억불 곧 달성이니 하는 선동은 말아 달라는 거다. 그러니까 여기까지는 순전히 “'디워' 팬까페 수준의 정보도 없는 지식인들”이라는 서슬 퍼런 헤드라인에 대한 답일 뿐이다.

하지만 변희재의 글에서 더 가관인 것은 이런 팩트를 왜곡, 선동하는 부분이 아니다. “필자 뿐 아니라, '디워'의 세계흥행을 추적한 디워팬들은 한눈에 세계영화 시장의 지형도를 대충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디워'의 팬까페를 1주일에 한번씩이라도 방문한 사람이라면, 웬만한 국내 영화 전문가들 이상의 세계 흥행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면 곤란하다. 그들의 자발적인 팬심이야 존경스럽지만 ‘세계 흥행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쌓을 수 있다니’, 너무 그 팬들의 뒷심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 아닌가. 지금도 ‘디워 미국 흥행’이나 ‘디워 dvd’로 검색하는데 3분만 투자해 보시라. 실질적인 평가와 미국 시장에서의 반응들이 나오고 있으니. (대표적으로 하나만 링크해 보자. http://kyrhee.tistory.com/198)

더욱 큰 문제는 여전히 변희재가 빤히 보이는 글쓰기를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진중권을 걸고 넘어져 인지도를 올리려는 이 전략, 실로 가련해 보일 지경이다. 아마도 변희재는 <디워>가 일본에서, 유럽 각지에서 개봉하고 DVD가 출시되면, 팬들이 공수해준 ‘팩트’를 기반으로 진중권을 걸고 넘어 지는 글을 쓸 것이 분명하다. 왜냐. 어쨌든 ‘빅뉴스’를 통해 포털에 전성되고 팬들은 그 글을 퍼다 나를 테니(그럼으로 이런 글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변희재의 글을 좀 더 들여다보자. “이에 대해 진중권이 지금 답해야할 점은, 미국에서의 총 5천만 달러 흥행, 그리고 러시아와 리투아니아, 필리핀의 흥행성공의 요인이다. 설마 러시아 영화 팬 들도 심형래의 애국심 마케팅이 넘어갔다는 주장은 하지 않을 줄 안다.” 그러니까 진중권에게 반성을 하라는 거다. 미국에서의 흥행 성적이 얼마만큼 됐으니, 러시아에서도 200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니, “애국심 없이도 세계 영화팬들”도 즐길 수 있는 영화에 사과를 하란다.

미국에서 5천만 달러 흥행? 거듭 말하지만 미국 내 극장 수익과 DVD 수익은 잘 해봐야3,500만 달러가 고작이다. 극장 수익의 30%를 약간 상회하는 방송 판권이 남아있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요, 예상보다 저조한 DVD 매출과 입소문을 염두에 둔다면 어림도 없어 보인다. “정확한 팩트”를 취하지 못한 것이 누구인지, 미국과 고작 4개국의 흥행 성적을 들어 사과를 들먹이다니. 도대체 무슨 심보인가?

두 번째, 영화평론가들이 입을 열지 못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중권이 나찌로 몰은( <디워>의 팬들이 온갖 인터넷 세상을 들쑤셔 놓은 것을 몰라서 한 말인가? 흥행을 들어 진중권에게 사과를 요하는 그 행위 자체는 이해가 가지만 “상당수의 영화 기자들은 디워 팬 까페에서 디워의 해외 흥행성적의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라는 건 또 무슨 말인가. 사실도 아니거니와 이 천박한 ‘흥행지상주의’로의 귀결에 대한 결과는 분명 필자 자신에게 돌아올 날이 올 것이다. 빅뉴스의 모든 <디워> 관련 글이 이미 그 ‘흥행지상주의’는 물론 천박한 물타기 전략을 입증하는 증거들이지만.

마지막으로 “프랑스와 독일도 하지 않는 일을 약소국 한국이 왜 하느냐”고 묻느냐면서 “3천만불 투자하여 2억불의 총매출을 올릴 '디워'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하는가, 더 보강해서 지속해야 하는가”라고 재차 확인한다. 우선 이 장밋빛 해석은 "못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해서 못하는 것이다"라는 심형래의 명언(?)의 동어반복일 뿐이다. 예술영화 지상주의에 빠졌거나 통일 이후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온 것도 가당치않지만 돈만 벌면 할리우드의 무시무시한 산업화 전략도 오케이란 뜻이라 무시무시할 따름이다. 할리우드가 수십년 걸린 걸 심형래 감독이 십 년 만에 이뤘다고 춤이라도 춰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는 이제 지겹다.

결정타는 결론이다. “'디워'는 낡은 구지식인들에 지적 파산 선고”라는 명제 안에는 “새로운 현상와 평론 영역”, 다시 말해 대중의 편에서 글을 쓰는 자신은 ‘신지식’인이고, 아리스토텔레스를 거론한 진중권은 “이미 유럽에서조차 폐기처분 된 낡은 이론을 베껴와, 그대로 한국에서 팔아먹는 사대주의적 지식 잡상인들의 기득권”이라는 해괴한 이분법이 숨쉬고 있다.

여기서 한 술 더 떠 “낡은 지식인의 기득권 투쟁에 공범자로 활약한,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등의 매체 등은 아마도 '디워'의 세계 흥행 성적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소위 진보 담론의 언론들을 싸잡아 비판하고 나선다. “새로운 현상과 영역이 발생하면,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 이러한 순리를 거부한다면, 낡은 지식인들은 물론 이에 공모한 매체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아무리 좌, 우가 불분명한 신자유주의 체제라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라고? 그럼 조, 중, 동과 새천년을 ‘신지식’으로 열어 나갈 건가?

변희재가 흑, 백 논리는 무시무시하지만 꽤나 새롭다. 대중과 영합하지 않는 세력과 자신의 시각에서 노무현 정권과 최소한의 ‘코드’가 맞았으면 모두 구시대 권력이 되는 셈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킹왕짱’이요 ‘흠좀무’한 정의다.

“'디워'는 이러한 구시대 권력의 교체를 위한 시발점에 불과하다. 앞으로 수많은 '디워' 현상이 벌어지면서, 영화권력은 물론 지식권력과 언론권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는 심형래 감독이나 디워팬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다. 그들은 단지 '디워'를 더 많은 세계인들에 알리기 위해 뛰었을 뿐이며, 이는 시장논리나 팬덤 현상으로 볼 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세대 지식인들 때문에 권력 변화 현상이 따라올 뿐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시장논리나 팬덤 현상. 이에 영합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영화평론가가 아님에도 지속적으로 <디워>를 찬양하고, <화려한 휴가>와 노무현 정부를 엮어 온 변희재. 문화 현상을 균형 있게 해석하고 비판적 시각을 갖지 못하고 영합하는 것. “자신들의 앞길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자들은 평론을 하고 기사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는 변희재 자신이 참으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아무리 빅뉴스를 띄우기위한 언론플레이고,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활약할 2008년이라도 말이다. 진정 자신의 글을 보고도 부끄럽지 않은가?

이제 좀 그만하시라. 월드컵과 황우석을 지나 <디워>에 까지 다다른 이 광기의 연쇄극. ‘국가’와 ‘국익’에 열광하는 대중에 기댄 매체들과 변희재 같은 글쟁이들. 영화를 예술로 취급해달라고 읍소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가증스러운 물타기로 여론을 호도하지나 말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이제 그만 심형래를 우려 먹으시라.

미국 개봉 D-2, <디워> 성공할까?

필진 칼럼 2007.09.12 18:56 Posted by woodyh98
2007.09.12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즈>는 오는 14일 미국 개봉을 앞두고 있는 <디 워>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게재했다. 브룩스 반스 기자가 쓴 <디 워>의 미국 상륙과 관련한 기사는 이례적으로 문화면이 아닌 경제면에 실렸고, 영화에 대한 리뷰가 아닌 한국 문화 산업의 미국 진출에 대한 전반을 다루고 있다.





국내 언론들은 발 빠르게 이 기사를 받아쓰면서 "NYT, <디워> 소개... 현대·삼성식 성공전략"(연합뉴스), "디워, 영화산업의 현대·삼성 꿈 꾼다"(문화일보), "세계 네티즌 "'디워'가 뭐냐?"... 美개봉 앞두고 관심폭발"(머니투데이 스타뉴스), "NYT 대서특필 '디워'는 한국영화계의 삼성 같은 존재"(일간 스포츠) 같은 '섹시한' 제목을 뽑아 낸 바 있다.


'리미티드'(제한 개봉)다 '와이드 릴리즈'(대규모 개봉)다 말도 말고 탈도 많았던 <디 워>의 미국 개봉. 최근 심형래 감독과 미국 배급사 프리스타일의 발표대로 2000개 이상 와이드 릴리즈 개봉이 확정되면서 영화 팬들과 관계자들, 전 언론이 <디 워>의 흥행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일간지로는 최초로 <디 워>를 상세히 다룬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어떤 맥락으로 읽어야 하고, 또 미국 영화사이트의 반응 등을 통해서 본 <디 워>의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뉴욕 타임즈>의 완곡한 <디 워> 때리기


먼저 뉴욕타임스는 <디 워>가 미국에서의 히트를 위한 새로운 방법론을 취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인 배우 캐스팅과 영어 대사, 한국 영화로는 이례적인 3000만 달러의 예산, 2000개 이상 상영관을 잡은 대규모 개봉 전략, 마니아들이 존재하는 특수효과를 동원한 SF 장르라는 것이 주요 골자다.


또 심형래 감독의 말을 빌려 자신은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와 달리 SF물을 만들었으며,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자신이 있다면서 할리우드의 상징물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동시에 게재했다. 그리고 최고의 코미디언 출신임을 상기시키듯 한국의 찰리 채플린이란 수식어도 달아줬다.


이에 그치지 않고 민족주의를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았음을 명시하면서 일례로 심형래 감독이 삼성의 임원에게 미국에 진출한 삼성의 TV 매장에서 <디 워>의 예고편을 상영해 달라고 요구했음을 밝히고 있다. 현대나 삼성이 미국 진출 초기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을 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디 워>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이 기사가 문화면이 아닌 경제면에 실린 이유였으리라.


하지만 <뉴욕타임스>의 이 기사는 후반부로 갈수록 부정적 뉘앙스를 감추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영화 산업은 자동차나 반도체, 휴대폰과 다르며 <디 워>의 경쟁력이 그다지 파괴력이 없다는 것이 그 취지로 보인다.


그 예로 '비' 정지훈의 미국 공연 사례가 보여준 공과 똑같이 한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11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였지만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23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데 그친 <괴물>의 전례,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를 비롯한 리뷰들의 혹평들을 들고 있다.


특히 <괴물>을 배급한 배급사 매그놀리아 픽쳐스 대표의 "(괴물처럼) 아무리 리뷰들이 최고였다고 해도 마켓이 이미 포화상태기 때문에 이러한 영화들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라는 말을 빌려 완곡하게 <디 워>의 성공이 쉽지 않을 것임을 전망하고 있다.




또 "Z등급의 시나리오"라는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의 혹평과 영화비평 웹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 게재된 "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바위 아래로 엉금엉금 기어다니도록 탄원을 할 것이다"라는 난도질에 가까운 리뷰를 언급하고 있다.


또 다른 결정타는 홍보를 맡은 레이크쇼어 엔터테인먼트 그룹과 배급사 프리스타일 측의 행보다. 이 기사는 홍보사와 배급사가 <디 워>에 관한 언급과 수차례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 만큼 미국측 관계자들이 영화 자체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걸 자백하고 있는 꼴이다. 결국 <디 워>는 뉴욕타임즈와 버라이어티 등 몇몇 언론의 리뷰와 예고편으로 승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상 2-3주 전부터 대규모 홍보에 들어가는 미국에서 <디 워>와 관련된 광고를 볼 수 없다는 네티즌들의 하소연이 들려왔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애국심 넘치는 한국 관객들이 많이 살고 있는 LA와 같은 도시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전망과 함께 "<디 워>와 나는 세계 시장에서 절대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것이다"라는 심형래 감독의 호언장담을 기사 끝에 싣고 있다. 하지만 기사 전체적인 맥락에서 놓고 봤을 때 이는 비아냥에 가까운 논평으로 보인다.


와이드 릴리즈 개봉 전략, 성공 할까?


<디 워>의 국내 흥행 성공의 근저에는 대규모로 미국에서 개봉할 것이라는, 대한민국 대표 선수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와이드 릴리즈 개봉하는 자부심이 어느 정도 깔려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미 흥행해 성공했던 개봉 첫 주말 이후 발 빠른 네티즌들은 미국 개봉관 수에 촉각을 곤두세웠으며, 'Limeted'로 표기되어있던 미국 영화사이트들의 게으름과 무지를 호되게 성토하고 나선 바 있다.


일단 개봉을 1∼2주 남겨둔 시점에서는 대부분의 영화 사이트들과 미국 내 언론들이 <디 워>가 2000개 이상 대규모로 개봉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문제는 우선 <디 워>에 관한 미국 언론의 평가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이는 <디 워>가 미국 내 공식 시사회를 개봉 전날인 13일로 잡았기 때문으로 유추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언론 시사나 일반 시사를 하지 않을 경우 흉흉한 소문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봉 하루 전에 공식 시사를 가진다는 것은 의혹을 살만 한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가 먼저 기사화된 혹평을 실을 이유를 스스로 제공한 꼴인 셈이다.


로튼토마토만 놓고 봐도 같은 주 개봉작인 <Great World of Sound>나  <디 워>의 경쟁작이 될 조디 포스터의 <브레이브 원> 같은 작품이 리뷰가 속속 올라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의 영화 시장이 워낙 자국 영화 위주로 돌아가는 것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디 워>와 관련된 뉴스가 터무니없이 적은 것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최초 리뷰를 내보냈던 <버라이어티> 데릭 엘리의 리뷰가 반복해서 언급하고 또 <뉴욕타임스>가 이를 언급한 것은 다 이런 속사정이 있어서다.


심지어 <올드보이>를 세계에 알리는데 선봉장 역할을 하고 한국영화 통으로 알려진 운영자 해리 놀즈의 'Ain't It Cool News' 또한 <디 워>와 관련한 혹평만을 싣고 있는 것만 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다.


최대 영화사이트인 'IMDB'에서 < 디 워>와 관련한 독자 리뷰가 유난히 많고 평점도 높은 점수인 7점을 유지하고 있는 건 다 한국 네티즌들이 몰려갔다고 해도 무방하다. 볼만 한 영화라는 리뷰의 국적이 대부분 'From Korea'라는 것을 확인할 때의 난감함이라니.


<디 워>의 개봉관 수도 냉정히 따지면 그리 많은 수가 아니다. 소위 국내 네티즌들이 비교했던 <트랜스포머> 같은 '대박'을 칠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는 뜻이다. <트랜스포머>가 4000여개 극장에서 첫 주 7천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그건 분명 미국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여름 시즌에 특A급 감독인 마이클 베이와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값, 그리고 가장 흥행이 잘되는 SF 장르, 그리고 이미 80년대 히트를 친 원작 팬들의 응원이 결합된 결과였다.


미국 시장처럼 개봉관 수와 와이드 릴리즈, 물량 공세 마케팅으로 흥행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시장은 없다. 한 주 전 개봉한 러셀 크로우 주연의 서부극 <3:10 to Yuma>가 비교적 중간 규모 배급사인 라이온스게이트필름 배급으로 2652개 극장에서 1400만 달러의 오프닝 성적을 감안한다면 <디 워>의 첫 주 흥행 성적은 천만 달러 이하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 흥행은 신도 모르는 법. 경쟁 작품들 중 대규모 예산의 블록버스터나 SF물이 없다는 점, 3000개 이상의 물량 공세를 펼치는 영화 또한 없다는 점, 지난주 1위 <3:10 to Yuma>의 후폭풍이 그리 거세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디 워>의 흥행 결과는 역시 뚜껑을 열어 봐야 할 것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심형래 감독이 영리하게도 극장 수익보다 규모가 큰 DVD 시장을 목표로 잡았다는 점이다. 전 세계 10억 달러의 수익을 염원하는 심 감독의 애당초 목표는 달성하지 힘들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수요가 충분한 렌털 시장과 유럽 마니아 시장을 노리겠다는 전략은 어느 정도 들어맞을 공산이 커보인다.


<디워>의 흥행 결과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앞으로 완성도 있는 한국 영화의 북미 진출을 위한 초석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안 보고 쓴 디워 이야기

필진 리뷰 2007.09.10 07:59 Posted by woodyh98

2007.09.09


* 보지 않고 쓴 글이므로 당연히 스포일러 없음.
* 주(註)가 많으므로 참을성이 없는 분은 읽지 않아도 무방함.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의 개연성 부재를 들어 ‘디 워’를 낮게 평가하지만 사실 스토리는 영화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스토리가 극적 긴장을 유발하지 않음에도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는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유리 놀슈타인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그 제목이 주는 기대와 달리 거의 요약이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할 만큼 스토리가 분절되어있지만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걸작으로 꼽히며1) 고다르와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가치는 결코 스토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평론가들이 선호하는 예술 영화일수록 스토리가 느슨한 경우가 많은 점을 볼 때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디워’의 혹평은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물론, 느슨한 스토리가 바로 예술 영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프레임 안에 담긴 풍부한 상징과 표현이, 그리고 고다르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에겐 다른 형태의 정교한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묘한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그건 관객의 감정 이입을 목표로 하는 대중영화에선 스토리가 중요한 반면 작가의 스타일이 우선시되는 예술 영화에선 스토리보다 이미지나 대안적인 내러티브 구조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이분법이다.2)

그렇지만 대중영화를 스토리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은 1914년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이 등장한 이후 형성된 하나의 관습일 뿐이다. 그 이전의 영화와 관람 형태를 보면 전혀 다른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디워’와 둘러싼 현상을 이해하는데 어떤 시사점을 준다.

가령 1895년 그랑 카페에서 영화 상영을 기다리던 관객들이 기대했던 것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첨단 테크놀로지가 보여줄 충격이었다. 사실 뤼미에르의 영화 뿐만 아니라 초기 영화의 스토리를 현대 영화와 같은 맥락에서 논할 수 있는 지조차 의심스럽다. 우리는 특정 시간대에 상영되는 단일한 프로그램의 영화(가령 ‘디워’)에 익숙하지만 초기 영화에선 전혀 사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랑 카페에서 상영된 영화는 ‘뤼미에르 영화 묶음’이었지 개별 영화의 연속 상영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억지로 스토리를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기차가 도착했다 떠난다-공장문이 열리고 노동자들이 퇴근한다-기마대가 파리를 행진한다-뤼미에르가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기차의 도착’과 ‘뤼미에르 공장 노동자의 퇴근’등을 개별적인 영화로 이해하는건 현대의 관습을 따른 것일 뿐이다.

이후 영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호기심은 사라졌지만 초기 영화의 위와 같은 특징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영사기사들은 창고에 쌓여있는 개별 필름들을 편집해서 새로운 영화를 창조(?)했고 극장주는 그렇게 창조된 영화뿐만 아니라 만담, 짧은 연극 공연등이 한 세트로 묶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곤 했다.3)

그러므로 이 당시 관객들이 영화에 기대한 것은 스토리보다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이었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쾌락은 오케스트라의 연주거나 변사의 유머섞인 설명이기도 했고(유성영화가 도입된 후 이 둘은 빠르게 사라졌다) 멜리에스가 선보인 마술적 효과거나 뤼미에르의 조수들이 오지에서 찍어온 이국적 풍경이기도 했다. 때론 애국심도 한 몫을 차지했다. 미국-스페인 전쟁은 당시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미국 영화계를 되살린 일등공신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극장은 전쟁 뉴스를 보려는 애국적인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4)

물론, ‘디 워’는 스토리를 갖고 있는 장편 영화라는 점에서 ‘초기 영화’와 구별된다. 그러면 관객의 쾌락이 아니라 영화의 미학적 구성을 놓고 ‘디 워’를 평가하면 어떨까? 앞에서 밝혔듯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뭐라 이야기하기 어렵다. 다만, 심형래 감독이 초기 영화처럼 종종 영화 외적인 텍스트를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거나 디에제시스의 환상을 깨곤 했다는 점만큼은 흥미롭다.5)

가령 ‘영구와 땡칠이’는 ‘어린이 여러분, 영구를 불러보세요.’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하고 어린 관객들이 영구를 부르자마자 ‘영구, 없다’고 외치는 심형래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이는 ‘영구’에 대한 영화외적인 지식 없이는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관객에 대한 직접적 호명이 영화적 쾌락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대개의 대중영화와는 다른 독법을 필요로 한다. 보진 않았지만 ‘디 워’ 후반부의 심형래 내레이션 또한 이러한 심형래 영화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듯 하다.

물론, ‘다름’이 바로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관객에 대한 직접적 호명이나 다큐멘터리적 요소의 삽입이 기왕의 예술 영화, 특히 고다르 영화에서 이미 풍부하게 나타났으며 문제는 그 의미와 일관성이라는 반론 또한 충분히 가능하다.6) 다만 심형래 영화에 대한 평가와 분석, 이해가 그 ‘다름’을 무시하고 이뤄질 수 없다는 점만큼은 분명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 워’의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은 있을 수 있지만 영화도 아니라는 식의 평가는 과도하다. 아울러 그 ‘다름’이 호불호를 떠나 거의 언급되지 조차 않고 있다는 사실 또한 유감스럽다.7)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질문 앞에 이러한 유감도 초라해진다는 점을 고백해야겠다. 그 ‘다름’이 지금 얼마나 중요하냐는 것이다. 디 워의 형식이 다른 대중 영화와 얼마나 다른지를 아무리 밝혀낸들 과연 디 워를 둘러싼 수많은 소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영화는 영화만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수론자들이 있지만 사실 이는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과 실천은 끊임없이 개별 영화에 대한 우리의 기억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영화에 대해 정보를 얻은 뒤 표를 구매하거나 시사회에 참석하고 극장 안을 구경한 뒤 영화를 보고 나와 누군가와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각각의 행위는 영화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구성하고 재창조한다. 우리는 자신이 본 영화에 대해 ‘순수하게 판단’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 판단은 ‘시사회’에서 보았는지(이 경우 대개는 더 너그러워진다. 공짜니까.) 제 값 다 내고 극장에서 보았는지(이땐 반대로 스크린 구석구석 값을 하는지 따지기 십상이다) 또, 에어컨이 빵빵했는지, 다리 밑에서 쥐가 돌아다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 뿐인가. 흔히 이야기하듯 영화 보기 전의 기대치에 따라 달라지고(생각보다 괜찮네, 또는 후지네) 본 이후엔 같이 본 사람과 이야기하며 다시 기억을 재구성한다.(아, 그 장면이 그런 거였어? 몰랐네.) 심지어 영화를 분석하는 이들조차 이는 예외가 아니다. 고다르와 베르히만의 여성 편력이 이들 영화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평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난 믿지 않는다.

결국, ‘디 워’에 대한 논란은 가장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영화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디 워는 영화인가(혹은 아닌가). 당신의 머릿 속에 있는 영화는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는 ‘영화는 너무 이해하기 쉬워서 영화만으론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8) 가령 ‘디 워 현상’은 파시즘의 징조인가.(그렇다면 한국의 지식인이여, 총 궐기하라!) 영국의 훌리건처럼 양극화 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들의 일탈인가.(한국의 지식인이여. 궐기하지 말고 디워 팬들을 따스하게 감싸 안자.) 우리 민족에게 유전적으로 각인된 민족주의적 요소의 발현인가.(시간이 지나길 기다리자) 그냥 일부 네티즌의 놀이와 소동에 불과한가?(난 지금까지 헛고생했네.)

註:
1) 개인적으로 국한된 경험에 따르면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디 워’처럼 정규 교육을 마친 사람들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과연 스토리 위주의 이해는 교육의 산물일까?

말 나온 김에 한마디 더. 난 ‘이야기 속의 이야기’같은 걸작 애니메이션을 상설 상영하는 아동 전용 극장 하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2) 이러한 이분법은 종종 시나리오와 감독의 관계로도 표현된다. 대중영화에선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중요하지만 작가 영화에선 ‘감독’의 독창성을 중시한다.

3) 초기 영화의 형태에 대한 설명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현대 영화의 맹아적 형태로 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현대와는 다른 종류의 영화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초기’를 뜻하는 용어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전자의 사람들은 종종 primitive를, 후자는 early를 선호한다. 후자의 학자 중에선 초기 영화의 상영 형태에 대해 오늘날의 멀티미디어와 흡사하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면 알아서 공부하시라.

4) 초기 영화가 구현했던 ‘직접적인 감각적 쾌감’은 대중영화가 스토리 중심의 장편영화로 재편된 이후에도 슬랩스틱, S.F.의 현란한 특수 효과, 뮤지컬 영화의 안무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다.

5) 디에제시스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 배우가 자신을 쳐다보는 관객이 없다고 가정한 채 연기해야 한다는 절대 법칙은 (그래서 배우는 절대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는다) 초기 영화에서 종종 무시되곤 했다. 배우들은 직접 관객에게 웃거나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또, 초기 영화는 영화외적인 텍스트를 전제한 채 제작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같은 고전을 극화할 경우 초기 영화는 ‘이미 관객들이 이 고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 스토리가 구성되곤 했다.

6) 내가 아는 어느 대학 영화과 교수는 심형래 영화의 이런 특징을 놓고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칭하기도 했다. 누군지는 안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 말이 농담인지, 진지한 학문적 결론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7) 심지어 ‘디 워’의 열혈 옹호자들 조차 이 점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누가 내게 돈을 준다면 해보겠다. 진담이다.

8) 따옴표 안의 말을 누구로부터 훔쳤는지는 가르쳐주겠다. ‘영화는 너무 이해하기 쉬워서 오히려 분석하기 어렵다’ 프랑스의 영화 기호학자 메츠의 말이다.

심슨과 심형래 그리고 한단지보

필진 칼럼 2007.08.28 17:19 Posted by woodyh98
2007.08.27


평단의 편견으로 인한 피해자인 양 읍소하는 자의 콤플렉스가 극에 치달았음을 확인시켜주는 불편하고 왜곡된 진실을, 저잣거리에서 만나는 것은 정말 불쾌하다. 인터넷 공간도 모자라 극장에서까지 이런 이야기를 쏟아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얘기인 즉은 이렇다. 지난 주말, 오랜 만에 극장을 찾았다. 멀티플렉스의 상영순서가 의례 그렇듯이, 영화 시작 전에는 몇 편의 현란하고 감각적인 CF가 이어진 다음, 예고편과 재난 시 대피요령을 알려주는 리더필름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필자가 찾았던 메가박스 신촌점에서는 흥미롭게도 영화 상영 전, 심형래 감독의 (마치 모 스포츠용품 업체의 연속 기획물인 "내 얘기 좀 들어볼래?"와 흡사한) UCC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용인 즉은, [영구와 공룡 쭈쭈]가 [주라기 공원]에 패하면서부터 할리우드 정복의 꿈을 꾸었고, [용가리]이후 6년을 기다려 [디 워]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편견은 변하지 않았다. 라는 것이다.

이 동영상은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달성하는 날,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거두는 날을 위해 한 면을 비워 두겠다는 식의 다짐으로 끝맺고 있다. 대놓고 밀어주기 혐의가 짙은 발상이지만 메가박스가 쇼 박스와 한 몸이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이 홍보영상 속에 한국영화계와 영화를 바라보는 심형래의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된다는 점은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아직도 비평가들의 혹평이 전작실패나 코미디언이라는 감독의 전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식으로 (순진한 관객을 대상으로) 본질을 호도하는데 몰두한다는 것이고, 천만 관객을 달성하면 즉, 관객만 많이 들면 성공한 영화이며 그때 평단의 평가도 달라질 것이라는 흥행만능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더욱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것은, 할리우드를 정복하겠다는 일념으로 6년 세월을 보낸 사람의 UCC를,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의 효능과 환상을 일거에 부숴버린 평면 애니메이션 [심슨가족, 더 무비]의 상영 전에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심슨가족, 더 무비]의 내용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주인공 호머 심슨이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복원하고 마을 스프링필드도 구하는 메시아적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낸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다고 첨단 그래픽이나 신무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요, 애절한 로맨스와 감동적인 인간애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심슨의 임무가 종료되고 가족간 화해가 이뤄졌다고 해서 이전과 달라진 것도 없다. 여전히 아들과 말 안 되는 장난에 소일하는 냉소적이고 무정부주의자인 삐딱한 가장의 모습 그대로다. 그럼에도 몰입도와 오락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재미가 있다.

덧붙여 생각할 점은, 3D와 4D가 점령한 시대에 도대체 평면적 캐릭터들이 관객들에게 어필할 것이라는 믿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과학은 이성의 실천과 생활의 편리를 위해 존재하기에, 삶의 실용적 지혜는 과학과 이성을 앞선다는 선험성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을 터이다. 달리 말하면, 기술의 발전이 영화에 미치는 영향이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실감나는 장면을 통해 드라마적 이해를 돕기 위함이거나, 테크놀로지의 성과를 전적으로 과시하려는 명백한 의도가 있을 경우에 국한된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 첨단 컴퓨터 그래픽으로 무장한 영화들을 보라. 그것은 '영화가 무엇까지 보여 줄 수 있는가'라는 명제에서 멈춰 서 있지 않던가.

요컨대 장수 TV시리즈를 영화로 만든 [심슨 가족, 더 무비]는 이야기가 영화에서 자리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입체와 평면의 우위 비교자체가 모순임을, 형식이 소재를 누를 때 볼 만 한 작품이 탄생하고 있음, 무엇보다 첨단 기술이라도 인간의 정서까지 지배할 수는 없음을 여실히 일깨워주고 있다. 이렇듯 86분간을 실컷 웃고 난 후 느끼는 감정이 유쾌 상쾌 통쾌 그 자체라면, 돈 아깝지 않은 영화 한 편 보았음 말고 더 필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

세상은 첨단 디지털 시대인데 여전히 아날로그적 사고로 사는 이들이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들은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세인의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영화만 봐도 그렇다. 화면가득 채워진 첨단 그래픽과 판타지로 덧칠한 블록버스터에 익숙한 관객에게 평범한 영상이나 예상을 깨버린 현실적 스토리텔링이 외면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때로는 좀 더 깊게 성찰하고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법도 배워야 한다.

서부개척 시대가 끝났음에도 목가적 낭만을 꿈꿨던 개츠비와 사회와 인간의 기본 규칙을 중요시 여기며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레보스키 앞에 '위대한' 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이유로 호머 심슨 역시 위대한 이란 수식어를 얻을 만 하다. 80년 대 말 태어나 TV에서는 미국적 가치로 상징되는 가족주의를 한껏 조롱했고 한 발 더 나가 정치 사회를 패러디함으로써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으며, [트랜스포머]류의 영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배짱하나로 스크린 데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심형래와 관련한 기사를 접할 때 마다, 조나라 사람의 씩씩한 걸음걸이를 배우려고 한단 땅으로 가서 열심히 배웠으나 익히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니, 이번에는 본래의 제 걸음걸이를 잊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연나라 소년의 이야기인, 이른바 한단지보(邯鄲之步)의 고사가 자꾸 생각나는 요즘이다.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157,901
  • 19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