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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바캉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7.25 시네마테크에 관한 단상(2) 낙원동 모던 보이(걸)의 실종
나이가 들 수 록 새로 생겨나는 것들보다는 사라지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되고, 그것이 사적 추억과 맞닿은 것이라면 안타까움은 더해지기 마련이다. 모름지기 추억이란, 공간과 어우러져 그 틀을 완성시키기에 공간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은 참이다. 그래서인지 멀티플렉스가 생기는 소식에는 관심이 없어도 스카라 극장 철거소식은 안타깝고, 젊은 댄스가수의 콘서트보다 30.40대 가수의 컴백 소식이 더 반갑다. 인사동 한복판에 떡하니 버티고 선 흉물스러운 프레이져 스위트 Fraser suites가 생긴 사실도, 그 건물 1층에 커피 전문점이 생긴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던 내가 어느 유흥업소의 폐업에 유독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없다. 언젠가도 얘기했던 낙원상가 꼭대기에 자리 잡은 무도장 말이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1.2.3카바레였고, 또 얼마 전까지는 콜라텍이었던 그곳이 이젠 사라지고 없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볼링장도 있었다. 볼링장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얘기고, 이번에는 전갈 못지않은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던 콜라텍이 문을 닫은 것이다. 간판마저 떼어버린 걸 보면 어디선가 같은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니, 그렇게 해서라도 그 이름을 고수하면서 명맥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

서울아트시네마 얘기를 할 때 마다 ‘예술가는 4층으로 모인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바 있지만, 이젠 반쪽짜리 예술무대가 되어버렸다. 진한 분 냄새와 유치찬란한 패션에 보내는 따가운 눈살을 감내했던 그들이, 대중교통에서라면 대접받아 마땅하지만 이곳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큼은 숨죽이고 목소리 낮추던 그들이, 아들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의 의미심장한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예술을 즐겼던 그들이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악할지언정 대낮에도 불 밝히던 네온간판이 사라진 그 작은 입구는 더 없이 초라하다. 마치 한 편의 영화만 걸려있는 동시상영관의 반쪽짜리 간판처럼 1.2.3 콜라텍이 사라진 서울아트시네마는 정말로 허전하다. 넓은 옥상 공터를 젊은 영화친구들에게 다 내어주고, 오솔길 같은 벽 모서리로만 다니던 낙원동의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이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라면, 나와 당신이 서울아트시네마와 만났던 매 순간마다, 그 지긋지긋하게 느려터진 엘리베이터에서 황급히 빠져나올 때 마다, 그들도 같은 공간의 추억을 쌓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상영시간 임박한 이들보다 더 조급한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던 그들이 어느 날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도저한 시류가 낙원동으로 밀려오고 있음을 의미하고 시네마테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상징하는 사건에 다름 아닌 것이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영화축제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씨네 바캉스가 그것인데, 빌리 와일더의 1961년 작 [하나 둘 셋]도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 둘 셋,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1.2.3카바레와 콜라텍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필시 나란 사람이 새로운 것보다 오래된 것, 생겨나는 것보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주시할 만큼 나이를 먹었고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더 가까운 인생인 때문일 터이다. 화려한 인생을 꿈꾸던 <서울의 달>의 홍식도, 하늘거리는 꽃무늬 블라우스 입고 “누님, 예술 한 번”하자고 속삭이던 쿠웨이트 박도, 변두리 다방에 죽치고 앉아 사모님의 호출을 기다리던 어설픈 제비의 헛된 꿈도 세월과 함께 다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추억은 저물어간다.

(다른 이야기)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아트시네마의 낙원동시대도 얼마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 ‘남산 조망권 살리기’ 계획에 따라 2009년이면 낙원상가가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추억이 쌓일 만하면 이사를 가야하는 전셋집 아이의 설움이 이러할까? 사당동에서 시작하여 소격동과 낙원동을 거쳐 다음은 어느 곳에서 추억을 만들어갈지 모를 일이다. 만약 일찌감치 전용관이 있었더라면 지금 보다는 훨씬 많은 이들이 시네마테크의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잦은 이사는 친구와의 물리적 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때문에 먼 곳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서는 안 된다. 오랜만에 멀리서 찾아와주었기에 반가움이 배가될지는 몰라도 그렇게 좋은 친구의 집이 한 곳에 있었더라면 또한 얼마나 좋았을 일인가. 그래서 정주할 수 있는 자기 집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절실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비록 한달 가깝게 남은 씨네 바캉스일지언정 부지런히 달려가 영화를 만나고 추억을 채우는 데 힘써보자. 그리하여 시네마테크의 힘을 보태주는 것, 이러한 발걸음에서부터 낙원동시대를 시네마테크의 마지막 전셋집으로 기억하도록 만드는 노력이 시작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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