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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광


김태곤 감독님 혹은 그의 영화 <독>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겠다거나,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거나, 공포영화니까 내가 적임자라던가 등의 어떤 거창한 이유 없이, 단지 감독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독자 인터뷰를 신청했다. 인터뷰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전혀 없는지라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다소 겁이 나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정신으로 겁 없이 질러보았다. 이렇게 막무가내 식의 결정을 내린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늘 생각처럼 만만치는 않은지라, 기일이 닥쳐와도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뭘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모르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야 모르는 거니까 그냥 영화나 보고 가자라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영화 얘기 할 거니까 영화 보고 가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 두 번 딱 감상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인터뷰는 인디스토리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는데, 김태곤 감독님과 편집장님 그리고 나, 세 명의 인원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인디스토리 직원께서 찍어주었다. 인터뷰에 앞서 네오이마주는 인터뷰 내용을 중간에 커트하거나, 분량을 줄이는 일이 없으니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대로 모두 말하라고 당부했고, 그에 대해 감독님은 그럼 더 위험한데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김시광(이하 ‘인’) :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김태곤(이하 ‘독’) : 사실 영화 마니아가 아니었다. 영화를 무슨 영화관에 찾아가서 보거나, 영화제를 찾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 다들 그랬듯 비디오 빌려보고, 우뢰매나 애들 다 보는 그런 영화만 극장에 가서 보고는 했다. 영화가 너무 좋다, 영화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기 전에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글짓기를 좋아하게 된건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잘 쓰면 상을 주니까.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런 기회가 별로... 칭찬 받으니까 좋더라. (웃음) 아, 내가 글을 잘 쓰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갔다. 그 때도 딱히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는 건 없었다. 근데 그 때 당시 [나]라는 드라마가 유행했다.


인 : 본 적이 없다.

독 : 방송반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아이들의. 그걸 보고나니 방송반이 가고 싶어졌다. 오디션을 통해 방송반에 가입했다. 거기서 처음 카메라를 접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무슨 과를 가야하고, 앞으로 뭐를 해서 먹고 살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글도 잘 쓰는 것 같은데 영화감독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 : 그 때가 정확히 언제쯤?

독 : 고등학교 1학년 말이었다. 원래는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다. 과외 선생님이 그 때 한양대에 다녔었는데 한양대에 영화과가 있다 이런 말을 전해 듣고 하면서, 애니메이터보다는 영화감독이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술 전공한 애들보다는 그림을 훨씬 못 그릴 테니까. 그 때부터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인 : 그러면 글쓰기를 좋아했었다는 것 하고, 영화를 하기 전에 소설을 쓴다는 스타일은 같은 연장선에 있는 것인가.

독 : 그렇다.


인 : 그럼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영화를 만든다는 것과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

독 : 내가 소설가로서의 꿈을 가졌다고 하면 글쓰기에만 전념하겠지만, 내 경우의 소설은 영화를 만들기 전 단계 정도로 생각을 한다. 시나리오 쓰는 것은 솔직히 재미없지 않나. 계산적으로 플롯을 짜야 되고, 처음과 끝에 대한 아귀라든지 그런 강박이 있어서 그런지 시나리오는 재미가 없다. 그런데 그 전에 소설을 쓰는 단계에서는 끝을 생각하지 않고 쓸 수가 있다. 내 소설 쓰기 방법은 내가 소재를 잡고 쓰기 시작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디테일을 묘사할 수도 있고, 또 그 날의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는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전단계로 쓰다 보니 내 소설을 읽어보았던 측근들은 네 소설이 약간 영화 보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소설 자체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차이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


인 : 예를 들어 [독]의 경우에도 영화를 만들기 전에 중편소설 하나 썼다고 들었다. 혹시 볼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독 : 사실은 출판을 컷이랑 묶어서 필름-북처럼 하기로 했었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 그 전의 소설을 읽어보니까 손발이 오그라들더라. 두려움에 다시 들춰내서 보고는 했었는데. 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직접 주는 방법 외에는 없다.


인 : 직접 받는 방법 외에는 못 보는 것?

독 : 그렇다.


인 :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영화 <독>하고 소설 [독 안의 노인]하고는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감독의 스타일대로라면 영화라는 것은 약간 짜여 진거고, 소설 같은 경우는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뻗쳐나가는 그러니까 자유도가 높다고 해야 할 텐데. 결정적으로 달라진 부분은 없는가.

독 : 나는 인간의 심리라든지 그 디테일이 너무 좋다.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이 소설 쓰면서는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들 자체가 상당히 디테일하게 많이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의 사건들이라든지, 영애의 심리라든지 그런 것들도 좀 더 디테일하게 많이 들어가 있다.


인 : 앞으로도 계속 시나리오 작업은 소설쓰기로 대체할 생각인가.

독 : 그렇다.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데, 조금씩 쓰는 거라서. 어쨌거나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항상 김태곤의 소설을 쓰고 있다.


인 : 첫 작품을 공포영화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독 : 공모전이 있었다. 원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대학원에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게 학부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 공모전에 이게 될까 안될까를 반신반의하면서 써놓았던 소설 중 하나를 시나리오화해서 제출했다.


인 : 그러니까 BK 지원 말인가.

독 : 그렇다. 이 작품을 위해서 몇 년간 준비하고 이랬던 것이 아니라,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무조건 찍어야 했던 것이다. 첫 작품을 공포영화로 해야겠다 이런 건 없었고, 써놓았던 소설 중에 이 정도 예산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는 이거겠다, 라고 해서 만들게 된 거다.


인 : 예산은 어느 정도 들었는가.

독 : 대략 1억 원 정도 들었다.





인 : 이제 영화로 들어가 보자. 실은 내가 인터뷰를 해본 경험이 없어 조금 앞뒤가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독 :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고. (웃음)


인 : <독>은 반전이 있는 영화다. 그런데 이 반전이라는 게 결말에 가서 앞에 했던 얘기들을 완전히 뒤엎는 영화는 아니고, 아 그랬구나, 라고 설명해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그래서 반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독 : 반전의 미학이 있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나 그런 것. 그러나 <독>은 그런 충격적인 반전을 노리고 만들지는 않았다.


인 : 그렇다면 너무 약한 영화니까. (웃음)

독 : 장르적인 재미나 영화 보는 재미에 있어서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는 하지만. 예를 들어 처음부터 드러내고 시작하는 것과 그것을 숨기고 시작하는 것 사이에서 굉장히 고민을 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기대감이 떨어질 거라는 걱정이 있었다. 이미 다 알고 있고. 저래서 저랬구나, 라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아떨어지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안으로 페이크성 장치들을 조금 집어넣었다. 아이의 행동이라든지, 남자의 불편한 심리상태라든지. 이런 것들이 왜 이렇게 될까, 무엇 때문에 그렇지,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간 다음에 아 이래서 그랬구나, 그리고 그 반전 후에는 더 극악스러운 상황까지 몰아가는 식의 구조를 잡고 영화를 만들었다.


인 : 회상을 제외하고서는 시간상으로 순서대로 흘러가는 구조임에도, 혼란스럽다거나 시간이 조금 뒤틀리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처음에 이 남자가 손에 밴드를 감고 있는데, 그 밴드를 왜 감았는지에 대해서는 그 이유가 나오지 않은 채 후에 어항 장면에서 딸 때문에 손을 다치게 된다거나. 부인이 욕실에 들어가는 장면은 없는데 욕실 안에 있다가는, 다른 이야기로 잠시 넘어갔다가 여자가 욕실에서 나오는 장면부터 시작한다거나.

독 : 그런 시간의 뒤틀림까지 계산을 하고 가지는 않았다. 다만 불편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게, 편집하는 지점들이 갑작스럽게 끝나는 장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런 장면들은 아마도 내가 인서트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니까 씬과 씬이 부딪히는 장면들에서는 사운드라든지 이런 걸로 대체하고 싶었고, 인서트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느낌보다는 충격, 충격, 충격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삐거덕 거리는 느낌의 톤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촬영할 때도 그렇고, 편집할 때도 그렇고, 조금 씬과 씬이 부딪히면서 좀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게 나중에 결말로 봤을 때 좀 더 그런 것들이 파편처럼 기억에 다시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 : 영화의 초입부터 확실히 중간까지는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 느낌이 많이 난다. 새로운 집에 이사를 갔는데 이웃들이 필요 이상 다가오는 것 같고, 거기에 뭐가 모를 불안함과 비밀이 있는 것 같고. 결정적으로 장권사라는 사람이 몸에 좋은 거라고 음료를 줄 때, <악마의 씨>의 한 장면을 생각했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 것 같다. 혹시 영화를 만들기 전 참조했던 공포영화가 있는가.

독 : <악마의 씨>도 많이 봤었고, 기요시 감독 영화도 많이 봤었다. 의식적으로 참고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 두 영화들은 내가 많이 좋아하는 공포영화들이다. 이를테면 <회로>같은 영화.


인 :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 그 때 준 음료가 이상한 것이었나. 후에 장권사가 미애에게 쿠키를 줄 때, 미애 엄마가 이상한 거 버리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던데.

독 : 중요한건 장권사가 이 집에 오는 구실이었지, 음료가 중요한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계속 장권사가 미애 엄마를 계속 불편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보통 친한 교회 사람들끼리는 김치도 나눠먹고, 반찬도 주고 가고 그러지 않는가. 편집된 장면에는 그 음료를 먹으려다가 버리는 장면이 있었다. 양은용 씨의 당시 감정 상태가 상당히 중요했다. 남자는 친하게 지내려 하는 거고, 여자는 너무 싫고. 그런 반대편에 있는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의 경우에는 원래 미애의 설정 자체가 아토피가 있는 아이였다. 나중에 막 긁기도 하고. 사실 아토피에 대한 설명들을 해야 할까, 좀 숨겨둬도 되지 않겠나, 등등을 고민했다. 시나리오를 15고까지 쓰면서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들어갔었는데, 그 중에 아이의 음식에 엄마의 강박관념도 있었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 드러났듯 아이의 할머니가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고 하는 것이 발로가 된 것일 수도 있고, 아토피의 원인이 할머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단 음식을 아이에게 준 것에 대해 화가 나는 그런 거랄까.


인 : 회상 장면에서도 양은용 씨가 어머니에게 밥을 줄 때 뭔가를 타는데, 제목 때문인지 그게 자꾸 독처럼 보이더라. 그 때 할머니가 아이에게 음식을 주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할머니 음식에 약을 탔기 때문 아닌가.

독 : 이것도 어떻게 보면 숨겨진 이야기인데, 치매가 걸린 노인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깨어 있으면 괴로우니까 일정량의 수면제를 먹이는 거다. 자면 편하니까. 이 여자 역시도 쭉 그렇게 해왔던 거고, 남편도 묵과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아이에게 먹이면 안 좋을 테고.


인 : 이런 것들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음으로써 좀 혼동되는, 재미있는 구석들이 많은 것 같다. 만약 양은용 씨가 할머니 음식에 독을 탄 것이었다면 남자에게 모두 당신 잘못이라며 몰아붙이는 것은 회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불공평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의 죄가 없지 않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영화를 보면서 헛다리를 짚고 상상을 너무 뻗쳐나간 것 같다.

독 : 그게 좋지 않나.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웃음)


인 : 독, 그러니까 또 생각이 나는 건데. 집들이 장면에서 독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에피소드가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할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가.

독 : 사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경비실 아저씨가 “사실은 말이야,” 이런 식으로 괴담처럼 얘기하기보다는 그냥 툭 던지는 느낌으로 정보를 던지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조금 껄렁한 형의 입으로 얘기를 펼치도록 했다. 주인공은 아파트라는 그 희망하는 공간에 왔음에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사실 그 발로가 독에 빠졌던 기억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파트는 자신이 원하는 욕망이 아니라, 남이 원하는 욕망에 투영을 한 거다. 자기의 욕망 자체가 자기가 정말로 바랐던 게 아니면 뒤틀릴 수밖에 없다. 모 아파트에 살고 싶고, 8학군에서 편입되고 싶고. 사실은 그런 것들은 모두 남이 만들어놓은 욕망이다. 우리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욕망에 의해 가고 있는데, 그 결과는 역시 굉장히... 그 욕망을 이루었을 때 굉장히 허탈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 : 독과 아파트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니까. 그리고 다른 소재, 종교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본인이 생각하는 종교를 표현한다면.

독 : 사실 다른 종교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기독교, 개신교를 다녔었다. 부모님도 그렇고, 집안 자체가 다 기독교 집안이다. 종교는 굉장히 숨기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 때문에 가족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어머니를 보면, 그렇게 나이가 든 중년 여자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생각해보면, 교회를 다니면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를 만난다는 순기능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종교 자체는 정말 좋은 것 같은데, 그것을 믿는 자들이 잘못 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은 굉장히 극단적으로 나와 버린다. 이것은 공권력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사람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나를 반대하는 자는 다 사탄이 된다. 그런 식으로 나오는 얘기들을 많이 봤다. 사람들 때문에, 종교 때문이 아니라.


인 : 영화에서 그려낸 종교에 대한 이미지들은 주위에서 한 번씩 봤음직한 그런 것들이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에서 장권사라는 인물은 주인공의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의 본질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짚고 접근하는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독 : 사실 나는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100% 아니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분명히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있더라. 마치 내 뒤통수 너머의 뭔가를 보는 것처럼.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 어머니의 친구들도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서 장권사의 캐릭터를 따왔다. 물론 그들의 말이 모두 다 맞지는 않는다. 그런데 10번 중에 다섯 번은 맞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그 사람들을 맹신하게 만드는 거다. 사실 장권사가 미애 뒤통수 너머의 무언가를 봤다기보다는, 나는 미애 역시 공범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 한 집에 살지만 남편과 아내가 할머니에 대해 한 마디도 얘기를 안 한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이고. 서울로 함께 상경하면서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역시 묵과하고 있는 거다. 나중에 나오지만 이 아이가 나오면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고민이 있는 거다.


인 : 처음부터 설명되는 영화가 아니라 뒤에서 설명되는 것이 많다보니까, 애가 둘째를 시기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나도 그렇게 버릴 거라고 말하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솔직히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나서 그게 모두 이해가 된다기보다는, 기억을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때문인지 두 번째 볼 때 영화가 더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이사 온 날 남자가 “형 나 오늘 힘든 날이었어요.”라고 얘기를 한 이유를 알고 보면 그 장면이 더 괴롭기도 하고.

독 : 나는 다 안다. 왜 이러는지에 대해서. 하지만 관객은 그렇지 않다. 그걸 복기하는 시간이라는 게 너무 기니까. 정보의 양이 너무 많으니까. 그런 것들이 그러니까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첫 영화인 탓이겠지.


인 : 그래도 그런 게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사실이다. 템포도 그렇고. <독>이라는 영화가 어려운 영화는 절대로 아니지만 분명히 놓치는 부분은 좀 있을 것 같다. 알고 보니 디테일이 엄청나게 풍부하더라.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영화의 반도 못 본 것 같다. 사실 두 번 봐도 재미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인건 분명하니까, 내 입장에서는 최고의 칭찬이다.


독 : 감사하게 생각한다. (웃음)


인 : 영화 전체를 두고 감독의 입장에서 내가 이 장면은 정말 공들여 찍었다, 그러니까 본인이 특히 아끼는 장면이 있다면.

독 : 작정하고 사람들이 좀 무서웠으면 좋겠다는 장면들은 다 어려웠다. 사실 현장은 전혀 안 무섭고, 난리가 아니니까. 좀 더 무섭게, 이상한 표정, 이런 장면들이 사실 참 어려웠다. 내가 28살 때 찍었던 건데 내가 봐도 어설픈 점들이 보이는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장면보다는 식탁 씬에서 영애와 형국이 대화하는 장면들이 대체적으로 좋다. 기도하고 나서 툭 치고 일상적인 대사를 나누는 것, 그 때 대사의 톤이라든지 대화의 템포라든지. 사실 그 장면을 찍을 때 두 배우들이 안 좋았다. 감정이 안 좋다기보다는 상황들이 조금 힘들어가지고.


인 : 좀 예민해진 상태였나.

독 : 그렇다. 워낙 빡빡한 일정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 장면들과 그 때의 긴장감들이 연기로 잘 나온 것 같아서 정말 좋았다. 놀이터 씬도 애착이 간다.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밤에 놀이터에 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 놀이터에 들어가기 전 풀숲을 걷는 느낌들이나 그런 것들은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거라서.


인 : 주연배우가 굉장히 영화하고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독 : 내가 인맥이 많지는 않았다. 영화 자체가 학교에 다닐 때 시작되다보니 인맥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 오디션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몇몇 영화나 이런데서 봤던 분들을 생각도 했었는데 워낙 규모가 작고, 감독 역시도 필모그래피가 뛰어난 게 아니다보니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임형국 씨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시나리오를 누굴 통해서 봤는데, 대한민국에서 이 남자 주인공의 역할을 가장 잘 할 사람이 나”라는 자신감이 차있는 내용의.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다. 한 번 오라고 했고, 단편영화들을 봤는데 너무 너무 좋았다. 너무 전형적이지도 않고, 약간 못하는 듯한 연기인데 그게 계산되어 있는 거고. 그런 연기들이 너무 좋았다. 시나리오 얘기하면서 술도 많이 먹었는데, 그 때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다.

양은용 씨의 경우는 독립영화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시더라. 나는 잘 몰랐다. 사실 영애 캐릭터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몰랐다. 일단 여자이기도 하고, 애 엄마이기도 하고, 임신 중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이 캐릭터 만큼은 여자배우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 하면서 오디션을 봤는데, 그 때 양은용 씨가 나타났다. 우리 스탭들이 다 좋아하더라.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기존에 연기하신 것도 찾아보고, 주위 분들에게 들어보고, 만나서 보니까 정말 정확하게 연기를 잘 하시는 분이더라. 이 분이라면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잘하셨고. 아역의 경우 너무 전형적인 연기들을 한다. CF에서 나오는 그런 “더 주세요.” 같은 자기가 아이가 아닌 것 같은.


인 : 그런 아이의 판에 박힌 연기를 보면 솔직히 가증스럽다.

독 : 아이 자신도 가증스럽게 느끼는데, 그렇게 가르치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는 그런 아이니까. 그런 연기들만 하는 것 같다. 또 기존에 영화에 많이 나온 아역들은 개런티가 안 맞고. 그랬었는데 미애를 맡은 류현빈이라는 아이는 연기경험이 없었다. 그런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들이 훨씬 자연스럽더라. 생긴 것부터가 포스가 느껴지기도 하고. 잘 못하지만 상황들을 던져주면 되게 흡수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50명 정도, 아니 그 이상 오디션을 봤었는데, 결국 현빈이를 택하게 되었다.


인 : 주연들도 그렇지만 배우들을 잘 쓴 것 같다. 장로님이나 권사님. 장로님 죽기 전에 상당히 위엄 있는 그 목소리 같은 것이나, 웃으실 때 가끔씩 공포스러운 느낌을 보여주는 권사님이나.

독 : 하하하.





 

인 : 영화의 큰 줄기는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가 두고 온 것에 대한 이야기고, 거기에 들어맞는 예로 고려장을 든 것 같았다. 그래서 상당히 사회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영화는 사회적인 영화라고 한다면?

독 : 근대화 과정은 아닌 것 같다. 고려장이라는 게 워낙 오래 된 거라서. (웃음) 사실 그렇게 큰 담론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었다. 사실 얘기가 나의 집안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이든 노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폭탄 같다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94살에 돌아가셨는데, 2개월밖에 못 산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도 2년을 더 사셨다. 그 때 할아버지와 모시고 사는 부모님 사이에 굉장히 미묘한 기류가 느껴지더라. 내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할아버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죠?”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그냥 천수까지 사시다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 영화는 그 다큐멘터리를 극단적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부모가 있는 모든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만약 내 부모가 나이가 들어서 아프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무의식이나 의식에 있어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아닐까? 근대화의 과정에서 두고 온 부분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지 않았다.


인 : 훨씬 더 작고 개인적인 그런 영화였구나.

독 : 좀 더 사회적으로 본다면 아까도 욕망에 대해서 말했지만, 그게 현대화되는 과정에서라기보다는 좀 더 잘 살은 욕망이라든지, 그 욕망 자체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게 뭔지에 대해서 깊이 고찰하지 않고 보여 진... 내가 보고 부러웠던 것에 대한 욕망에 대해 꿈을 꾸면 잃어가는 모습이 많이 보일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렇고.


인 : 영화가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아파트는 결국 욕망의 산물인데. <독>의 아파트는 건물 상태도 그렇고, 엘리베이터도 그렇고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서울에 있으니까 상당히 비싼 집이기는 할 텐데. 그런 아파트로 결정한 이유가 있을까? 굉장히 근사한 아파트가 아닌 이유가.

독 : 사실 그게... 그런 집을 섭외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인 : 섭외라고 하면, 그 집은 어디서 찍은 건가.

독 : 누나 집에서 찍었다. 사실 굉장히 화려하고 좋은 아파트를 제가 본 적이 별로 없다. 타워팰리스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아파트라는 공간 자체가 너무 집집마다 다르고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다. 타워팰리스도 사실 그 이름을 사고 싶은 거지, 그 공간을 사고 싶은 생각은 아닐 것 같다. 너 어디 살아? 나 아파트 살아. 이런 것.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렇게 단체적으로 살고 있는, 그렇게 낡은 아파트라는 자체에서 할 이야기도 많다고 느꼈다. 개발이라던가, 아파트라는 이미지라던가.


인 : 그러니까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참된 행복을 찾는 법인가.

독 :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다. 누가 자꾸 물어보더라. 이 영화의 주제는 뭐냐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고. 그건 내가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인터뷰에서 나온 것처럼 그냥 부모님에게 잘하자 그런 정도.


인 : 영화의 주제만큼이나 디테일에 많이 신경을 쓴 것 같다.

독 : 영화를 찍으면서 절대로 놓치고 가지말자고 했던 게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OK 컷을 안 내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빠듯한 일정으로 영화를 찍었었는데 편집 할 때 보면 내가 그냥 넘어가자고 했던 부분들이 항상 후회가 되더라. 후회 없이 찍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특히 배우 연기에 대해서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대사라 던지, 표정이라 던지,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독>이 미장센이 훌륭한 영화는 아니지만, 배우 연기까지 놓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인 : 꽤 좋게 나온 것 같다. 그런 디테일에 대해 스스로 만족을 하는가. (웃음)

독 : 그러니까 어떤 기자분이 질문을 했던 건데, 어떤 칭찬이 가장 기쁘냐, 칭찬을 조금 들었을 텐데 그 중 어떤 칭찬이 가장 좋았냐고 한다면 나는 배우연기가 좋았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았다. 나도 거기에 가장 공을 많이 들였고, 배우들도 너무 잘 해주어서.


인 : 공포의 세공사라는 별명이 있던데.

독 : 완전 쑥스럽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놀리고. 얘 별명이 뭔지 알아, 공포의 세공사야 그러면서 깔깔깔깔거리고.





인 : 인터넷을 보니까 ET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런 말을 했더라.

독 :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 그렇게 물어서. 내 최종의 꿈은 ET 같은 영화를 만드는 거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왔나? 그 기사.


인 : 사실은 나도 제목만 봤다. 나오면서 클릭하다보니까 재미있는 제목이 있길래. (웃음) 다음 작품 준비하고 있나.

독 : ‘지금 빨리 데뷔해서 어떻게 결과물을 내야겠다.’ 이렇지는 않다. 그냥 내 친한 형들이 입봉을 준비하고 있어서, 조감독 생활을 몇 년 정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


인 : 욕심이 없는 건가.

독 : 아니다. 평생 영화한다고 치면. (웃음)


인 : 이 영화에 대해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독 : 단편영화를 몇 편 찍었다. 그 중 학교 과제로 만든 <태곤아, 영화가 뭐야>라는 실험영화가 있었다. 상영 후 GV 시간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태곤아 영화가 뭐냐 그러시더라. 나는 영화로 다 얘기했는데. 그렇게 말했더니 됐고 그래서 영화가 뭐냐고 묻더라. 쫄아서 꾸역꾸역 말씀드렸던 것 같다. <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별로 없다, 사실. 그냥 열심히 찍었고요, 이런 말은 관객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 아닌가. 열심히 찍었든 안 찍었든. 귀엽게 봐주세요. 아... 뭐.


백건영(이하 백) : 영화를 보면 독립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공포장르를 선택했지만, 별로 무섭지 않은 영화였다. 코미디 영화가 일단 웃겨야 하고, 공포영화가 일단은 무서워야 된다는 맥락에서 무서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대체적으로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카메라가 클로즈업이 그렇게 많지가 않고, 근거리 샷을 많이 찍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어찌 보면 아파트에 이사 와서 윗집과 벌어지는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퍼즐이 풀리는 것을 보면 이곳의 얘기라기보다는 형국의 시골에서 있었던 일, 그러니까 원죄에 해당되는 그것에 가서야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다. 그렇다면 저 영화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이전에 나왔던 모든 장면들이나 사람들의 관계에서 공포적인 어떤 느낌은 주었을지언정, 실질적으로 이 영화를 과연 공포영화의 범주로 봐야 하는 걸까 라는 의구심이 하나 들었다. 이것은 차라리 추리, 서스펜스 쪽에 가깝지 않을까.

독 : 사실 공포장르에 대해 찾아보거나 즐겨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르에 대한 법칙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좀 거부감이 있었다. 특히나 한국 공포영화들을 보면 영화에서 이렇게 강요하는 듯한 느낌의 샷들과 그런 분위기 조성 자체 그걸 원치 않았었고. 사실 이게 원래 공포영화가 아니라고 봤을 때에 공포에 대해 느끼는 것과 공포영화라고 했을 때 느끼는 거와는 다르다. 실제로 부산영화제에서 보고 나온 사람들은, "야 이거 공포영화잖아 뭐야 나 공포영화 못 보는데" 이런 반응이라서, 아, 이거 공포영화 아니에요 이러고 다녔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생각하고 본 사람들의 충격은 더 크더라. 반면 로테르담 영화제 갔을 때는 '헝그리 고스트'라는 공포섹션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그 나라 사람들은 공포라는 장르를 굉장히 재미거리로 보더라.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나오면 낄낄낄낄 웃고, 이런 식으로 보다보니 내 영화를 보니까 그게 아닌 거다. 솔직히 상당히 분위기가 안 좋았다. 애초에 만들었던 방식 역시도 내가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어떤 사회적 드라마의 어떤 입장을 다루었고, 또 인간의 관계라든지 심리라든지 이런데 더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공포요소들을 빼기가 그랬던 것은 외압도 좀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 효과적으로 관객들을 더 많이 보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의 문제였다. 사실 공포장면들이 많지가 않았다. 그렇게 완성하다보니까 너무 밋밋한 영화가 되어버리더라. 그래, 그럼 무서운 장면에서는 무섭게 하자. 못한다는 얘기 듣지 말고, 해버리고 욕먹자. 피해가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흐름상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면들을 다시 찍었다. 또 영화를 마케팅을 하고 홍보하는 차원에서 미묘한 지점들이 있었다. 이건 덜 무서운 공포영화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 부분들은 내가 잘 모르는 거니까, 맡기고 가자라고 생각했다. 크게 무서운 거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관객 분들은 실망을 많이 하는 것 같고. 의외로 드라마 쪽에 대해서 기대를 안했다가 보신 분들은 좀 좋은 말씀을 하시는 것 같고. 그렇다.


백 : 포스터를 보면서 왜색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신지옥>이랑 비교하는 보도 자료가 떴던데. <불신지옥>도 똑같이 고립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고,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기독교 그보다 더 심한 광신도가 나오고 그런 점에서 묶이는 데가 있는 것 같다. <불신지옥>이 전형적인 한국영화라는 느낌이 있었던 반면에, <독>은 아파트 같은 경우의 디테일에서 일본 냄새를 맡았다.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으면 느낌이 좀 정리가 될 것 같은데. 독립영화에서 저런 포스터가 정말. 오랜 만이다.

인 : 왜색이 조금 나기는 했다. 특히 도입부의 매미소리는 전형적인 일본영화랄까. 쓰르르르르르 하는 매미소리를 처음 들었던 게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매미가 쓰르르르르르 이렇게 우나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독 : 그 매미소리 하나까지, 그렇게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다. (웃음) 나도 일본영화를 중국영화보다 더 좋아한다. 섬세해서, 영화 자체가. 그게 사운드의 영향도 참 큰 것 같고, <에반게리온>을 보면 어딘가에 저 공장 소리가 들린다. 그런 것들은 영화에 전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분위기들은 조성에 기여한다. 그런 면들이 사실은 너무 좋았었고. 사운드 믹싱에는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썼다.


인 : 사람들이 기대하고 온 것과는 다른 영화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영화는 기요시에 가까운데, 포스터는 시미즈 다카시 풍이니까. 그래도 처음 볼 때보다는 확실히 두 번째 볼 때가 더 좋은 영화다. 관객이 관람을 한다면 오히려 그게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놀이터 씬 같은 건 잘 빠졌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백 : 부엌 장면을 보면 상당한 시골에 속한 정도인데, 그들이 상경하자마자 도시화되는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 시골 사람들이 딱히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시골이라는 공간 속에서 꿈틀대는 욕망, 이런 게 좋았다.


인 :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독 : 고맙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족함을 느꼈다. 경험 미숙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느끼기에 나는 감독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기 보다는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했던 것 같다. 두서도 없었고. 반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오이마주의 독자가 인터뷰어라는 기회를 좀 더 많은 독자들이 활용해보기를 감히 추천해본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뷰어에게 독자라는 절대적 면죄부가 주어진다. 물론 내게 기자라는 명함이 주어졌다면 상당한 자괴감에 빠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가 원숙한 인터뷰어와 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주로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감독이라는 점도 안심이 된다. 둘째, 인터뷰 분위기는 정말 화기애애하고 즐겁다. 직접 감독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돈을 주고서도 쉽게 얻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경험임을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애정의 대상이 생겼다는 것이, 이 인터뷰의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 영화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개인적 경험이 추가될 때, 훨씬 큰 애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거니까. 나는 김태곤이라는 감독이 향후 좋은 필모그래피를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그러니 겁 없이들 질러보시라.






진행.정리: 김시광(독자회원)
사진: 서상덕(인디스토리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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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제 생각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독을 품는 사람과 뱉는 사람......”

참, 섬뜩한 말이다. 그런데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딱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서 사랑의 상처를 입어 독을 품은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 독을 내뿜게 되어 있다는 얘기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인디스페이스에서 (2월 22일)개봉한 독립장편 영화 [내부순환선_Inner Circle Line]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진흥위원회지원작에 선정된 지 무려 4년, 로테르담 영화제를 시작으로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를 돌고 돌아 드디어 개봉하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 편집을 도맡은 조은희 감독을 만났다.

(편집자 주: 인터뷰 내용 중 캐릭터에 관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설명한다. [내부순환선]의 주요인물은, 여자영주(양은용) 남자영주(배용근) 진(정유미) 현(장소연) 이렇게 4명이다.)




백건영(이하 백): 개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조은희(이하 조): 사실 한달 전에는 굉장히 떨렸거든요. 완성한지도 오래됐고, 영화 개시한지 3년이나 되고. 마침내 이런 기회가 와서요. 무엇보다 떨린 건, 사실 한국에선 전주영화제 외에 공개된 적이 없어서 반응이 궁금했어요. 어떤 얘기를 들을까 좀 무섭기도 했고. (웃음) 한 달 동안 홍보팀이랑 준비하고 쇼-케이스도 하면서 긴장이 많이 풀려서..지금은 좀 담담해요.


백: 쇼-케이스가 있었는데, 반응이 어땠는지요.

조: 기대 외로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쇼-케이스 하기 전에 어느 기자분이 “동성애와 이성애를 아우르는 사랑 얘기다.” 이런 기사를 써주셨더라고요. 개인적 바람으로는 동성애자 분들이 많이 참석해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이 있었는데 그런 동호회나 사이트에서 이 기사를 많이 퍼 가셔서 광고도 되고, 예상보다 많이 오셨더라고요. 끝나고 질의응답 할 때 남/녀 관객 차이가 있는 거 같았어요. 굳이 나눌 필요는 없지만...질문하는 방식이나 그런 게 약간 차이가 있더라고요.


백: 예를 들면 어떤 거죠?

조: 남자관객들이 감정이입을 잘 못하시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몇몇 분이 남자 캐릭터에 대해 질문하시더라고요. 2년간 영화제 돌면서 남자캐릭터에 관한 이런 얘기를 들은 게 처음이어서요. 기관사 영주를 소외시킨 느낌이 든다. 거세된 남자 혹은 기운이 없고 힘이 없는 남자 같다. 고 말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볼 수 있겠구나. 굳이 의도된 게 아닌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그게 맞을 수도 있고. 한국 남자 관객들이 이런 질문 해온 게 신선했어요. 스스로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백: 실질적인 데뷔인 셈이데. 1년간 한국에서 촬영하시고, 1년간 미국에서 후반작업. 그리고 해외영화제 순회. 졸업 작품이 글로벌프로젝트가 되어 버렸어요(웃음). 오래 걸린 가장 큰 이유가 뭐죠?

조: 후반작업비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영진위에서 제작지원을 했는데 그게 벌써 2004년이에요. 마지막 자막 올라갈 때 2004년 영진위 제작 지원작. 이렇게 나오는데 이게 무슨 대작도 아니고.(웃음) 2004년 연말에 펀딩이 돼서 개시를 2005년 연초에 했어요. 사실 이게 2005년 프로젝트라고 보시는 게 맞는데요. 아직 학생신분이니까 어떻게든 학교에 있는 기재로 후반작업을 하자. 몇 년이 걸리든 하겠거니. 하고 의지를 가지고 돌아갔는데...그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제가 단편만 생각했지, 장편영화의 방대한 분량 등은 상상을 못했어요. 일단 후반작업 예산이 없었고. 학교기재를 쓰면 되지만, 기재가 아무리 훌륭해도, 장편영화 퀄리티를 끌어올리려면, 기재보다는 누가 하느냐 문제거든요. 사운드 믹싱이나 색 보정을 누가하느냐가 중요한건데... 저 혼자 작업을 2005년 여름까지 하다가 거기서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사용한 음악이 많으니 음악도 다 사야하고...전문적이고 비즈니스적인 부분을 제가 할 능력이 안 되더라고요. 좀 애매하던 차에 뉴욕에 있던 어느 단체의 워크숍에 제가 참석하면서 후반작업 도와주는 프로듀서를 만나 투자받고 필요한 일들 다 지원받았죠. 2005년 연말까지는 영화 마무리를 했고 영화제는 2006, 2007년 돌기 시작했죠.


백: 개봉을 거의 포기할 수 도 있는 긴 시간인데...

조: 아니요. 전주영화제가 2006년 5월초였는데요. 그때 처음 생긴 게 한국영화의 흐름 부분에 틀었던 영화 중에 CGV개봉영화 지원상을 주기로 했거든요. 막 기대를 했죠. 그때 이창재 감독님의 [사이에서]가 수상했거든요. 그분이 또 시카고대학 선배세요. 한국이 미국보다 시장도 작고 독립영화 규모도 작고해서 좀 만만하게 봤었죠. 그러다가 2006년 말, 곽용수대표님 뵙고, 2007년 영진위에서 아트플러스 개봉작지원도 있었고. 지원받은 시점은 2007년 여름이었는데,,,여기서도 개봉하는 작품들도 계속 있고 해서 스케줄이 미뤄지다 보니 이제 서야 개봉하게 된 거죠.


백: 월드프리미어가 노트르담 영화제였는데...2005년에 개봉했던 거보다 지금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동성애코드 때문인데, 그동안에 [후회하지 않아] 등 다양한 동성애 영화들이 꽤 나왔고. 사회도 많이 변했고요, 3년간이 문화, 정서적으로 다가가는데 숙성의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백: 기자시사회 때 장소연씨 제외하고 모든 배우가 참석했고 2006년 전주에서도 양은용 씨 빼고는 다 온 걸로 기억하는데, 배우들과 친목이 돈독하신 거 같아요. 비법이 있나요?


조: 제가 영화 찍고 나서요. 촬영을 하고 나서도 완성이 1년 걸린 데다 첫 상영은 전주에서 2006년 4월에 했고요. 그런 점에서 배우들에게 미안했어요. 전주에서 틀고 한국에서 아무데서도 튼 적이 없거든요. 그게 마음에 걸리고 죄송스러웠죠. 기회만 생기면 항상 모시죠. 배우들도 고생했으니. 왜 한국에서 기회가 없지?(웃음) 이런 질문도 스스로들 하고. 쇼-케이스 때도 다들 반가워하면서 오셨고요. 배우들도 계속 관심이 있으시고. 특별히 친목을 도모했다기보다...그런 죄송스런 마음에 기회만 생기면 오셨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드리곤 했는데, 다행히 기쁜 마음으로 오시네요.


차상윤(이하 차): 연령대가 비슷하신 거 같아요. 배우들과 감독님이 (웃음)

조: 사실은 저보다 오빠예요 (웃음) 남자 영주(배용근) 여자 영주(양은용)는 모두 오빠 언니고, 유미씨랑 소연씨는 동생이고...나이 대는 또래죠. 비슷하죠. 제가 딱 중간이네요 (웃음)


백: 그 사이 양은용씨는 독립영화계에서는 스타급 배우로 올라섰어요. 당시 캐스팅 과정을 간단하게 얘기해주세요.

조: 영진위 지원을 받을 당시, 일단 광고를 냈어요. <씨네 21>이랑 <필름메이커>에..그 당시에 캐스팅 디렉터를 소개받았고요. 최철웅씨라고...인디스토리나 다른 상업영화도 하시는 분인데요. 주연배우 두 명 은용씨랑 용근씨는 그분이 소개해주셨고. 소연씨랑 유미씨는 오디션 오셔서 제가 뽑았어요.




 

백: 본격적으로 [내부순환선] 얘기를 시작해보죠. 자전적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셨는데...살짝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조: 물론 영화가 픽션이지만 저의 심리상태나 그 영화를 기획하게 된 그 시기 몇 년 동안.....저만의 러브스토리. 그때 겪었던 인간관계가 조금씩 드러나 있죠. 영주라는 사람이 한명이라면 그걸 두 명으로 쪼개는 거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되었고요. 학교 주변에 게이친구들이 많았어요. 시카고 예술학교가 교수, 학생들, 특히 영화과 학생들 중 게이 학생들이 많았어요. 공부하고 영화작업하고 그러면서 그들의 사랑방식이 헤테로섹슈얼이랑 굉장히 다르더라는 걸 느꼈죠.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특히 레즈비언은 남자 게이에 비해 인구가 생물학적으로 굉장히 적어요. 그래서인지 그들이 사랑에 빠지면 집착이 굉장하더라고요. 그런 것을 결합시켜 ‘진’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는데, 주변에 있는 친구가 모델이 된 경우예요. 지나고 보니까 더 열정적으로 묘사했어야 하지 않았나. 굉장히 부드럽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레즈비언 캐릭터를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생겨요.


백: 세 번을 봤는데...스토리가 비선형적일 뿐만 아니라 의도적이라 할 만큼 불균질적인데, 왜 이렇게 만드셨어요?

조: 학풍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은 게...시카고 예술학교가 미술학교이기도 하고 영화, 이쪽 전공이 굉장히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영화를 많이 선호해요. 내러티브 영화를 타도하는 과의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근데 저는 한국에서 영화를 공부했다보니 그 내러티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을 접목하고 싶었어요. 다만 제가 일반 스토리, 내러티브. 그런 것에서 잘 매력을 못 느끼는 거 같아요. 극영화적인 것과 회화적이고 실험적인 걸 접목시키자. 어떻게 보면 일부러 쉽게 할 수 있는 얘기를 어렵게 하거나, 이미지를 불연속적으로 삽입하는 시도 같은 거요. 장편데뷔작을 찍으며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고, 일종의 시도이기도 했고요. 디지털 매체라는 게 필름보다는 자유롭잖아요. 촬영을 카메라 두 대로 오픈 되게 좀 즉흥적으로 찍고 편집할 때 붙여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편집할 때 좀 고생을 했죠. 많이 찍어놓은 영상들을 편집하면서 처음에 의도치 않았던 그런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게 다 들어가다 보니까 의욕이 앞서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백: 여자 영주의 대사 중에서 “상처 받아 독을 품게 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독을 내 뱉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하필 왜 독인가요? 왜 그렇게 센 대사를 쓰게 되었는지.

조: 글쎄요. 사랑은 동전의 양면처럼... 사랑에 빠지면...아시잖아요.(웃음) 굉장히 부드러운데 한번 돌아서면 증오의 힘이 강하잖아요. 애증. 극단적인 상처. 거부당한 경험. 그런 증오가 독이 될 수 있겠구나. 저는 증오의 다른 말이 독인 거 같아요. 증오 = 독 =상처 이렇게 할 수도 있고요. 내가 누구한테 상처를 받으면 꼭 나중에 의도치 않더라도 나중에 나도 모르게 주고 쏘고 발사하는, 그런 악순환이 되는 거 같아요, 경험을 해보고 주위를 보니까요.(웃음) 가령 영화 속 여자 영주의 경우도, 그런 것에 시니컬한 상태다 보니 “세상에는 독을 먹는 사람과 주는 사람 둘이 있는 거 같아요.” 라고 말하잖아요.


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독을 마시고 나면, 해독작용이란 걸 필요로 하고, 상처받을 것을 감수하고 다시 사랑을 하게 되잖아요. 처음에는 영화를 보면서는 감독이 사랑에 대해 굉장히 안 좋은 기억이 있나보다. 그러다가 몇 번 더 보니 사랑예찬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생뚱맞은 얘기인데,,,영화를 세 번 보다보니까 극중 소품인 베개가 짝이 안 맞아요. (일동 웃음) 현이 방의 베개도 그렇고, 여자 영주 방의 베개도 무늬와 색이 서로 달라요.


조: 설마 제가 의도했다고요? (크게 웃음)


백: 그래서 만나보면 묻고 싶었어요. 관계가 어긋날 것임을 암시한 것인지...자꾸 강박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홍보용 DVD를 다시 보게 된 이유는 순전히 베개 때문이었을지도 몰라요.

조: 일단 미술감독님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웃음)


백: 남자 영주와 현, 여자영주와 바의 남자 시퀀스는 시점 쇼트가 분명한 반면, 여자 영주와 진, 남자 영주와 진, 여자영주와 남자 영주 시퀀스는 3자 시점 숏이 많은데, 어떤 의미죠?

조: 제 영화에 클로즈업이 많고. 인물 하나하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많이 보이셨을 거예요. 근데 영화가 좀 시끄러워요. 음악도 많고 지하철도 나오고. 그런데, 몇 군데는 좀 빠져서 조용하게 보여주고 싶은 포인트가 있었어요. 그 부분 때문에 지적해주신 거 같은데요. 일단은 처음에 진하고 남자 영주가 커피숍 가서 대화하는 장면을 (클로즈업 하지 않고) 쭉 가고. 술 취해서 진을 업고 갔다가 성적요구를 거부당한 다음에 담배피면서 원하는 거 줄 거 없다 하면서 “영주, 영주, 영주” 할 때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해서. 별 변화 없이 소리 없이 던져주었던 부분 같아요.


백: 말씀 들으면서 의문이 풀리는데 영화를 보면서 제가 제일 좋았던 장면이, 남자영주와 여자 영주 그리고 바텐더까지 데킬라를 부딪치는 장면이 좋았어요. 음악도 청명한 테크노 음악이 삽입되었고요.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고나 할까요.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지만 영주가 칼로 남자를 찌르는 것, 유치하다고 하긴 그렇고...

조: 좀 생뚱맞죠?


백: 예, 약간 그랬는데...이 시퀀스는 어떤 의미로 넣은 건지.

조: 쇼-케이스 때도 이 질문을 받았는데, 왜 생뚱맞게 칼로 난자하는 장면이 있느냐. 하시더라고요. 영화상에서 사실 다른 캐릭터들은 심리상태가 어떻고, 원하는 게 어떤지 분명한 편이에요. 남자영주, 진, 현 모두 그렇게 설명이 가능한데요. 여자 영주는 시나리오 상이나, 영화를 볼 때나 별 설명이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우울해보이고 기운이 없고 룸메이트가 있는데 받아주지 못하고. 환상, 판타지로 보실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찌르기 직전에 환상으로 넘어갈 때 카페에서 여자영주가 헤어스타일도 다르고, 여자영주라는 애는 과거에 저런 일이 있었고, 그런 증오심이 있는 애구나. 완전히 그 순간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거죠. 여자영주라는 애의 머릿속에. 사전 설명 없이 넣었다 빼서 당황하는 분들이 꽤 되셨는데 여자 영주라는 애가 어떻구나. 심리가 어떤 상태다. 그런 걸 설명하려는 장면이랄까요. 그런 걸 함축한 거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백: 배우들 입장에서 내면의 아픔을 연기해야 하는데.. 어떤 감독들은 배우에게 연기하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한다고 얘기를 해요.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주문하는 그런 게 있나요?

조: 리허설 때. 본 촬영 들어가기 전에... 집에서 며칠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개인의 과거. 상처받은 경험. 연애경험. 그런 것들을 얘기했어요. 어떤 장면의 연기연습 보다 자기가 생각하는 캐릭터 구축하기. 실제 경험. 놀란 게 여자 영주 역의 양은용씨 같은 경우는 유사한 아픔이 있는 얘기도 나눴고. 그런 것들이 나중에 캐릭터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었죠. 막상 현장에 가서는 다 아는 상태로 오니까 제가 집중한거는...디테일한거죠. 손은 어떻게 놀리고 표정은 어떻게 하고. 그런 것들. 특히 현이 마지막에 남자친구한테 차일 때, 긴 롱테이크. 거기서 배우가 힘들어했어요. 거기서는 구체적으로 주문했어요. “만약 당신이 남자친구가 이런 상황에서 헤어지자고 했다면, 나 같으면 과거에 싫고 좋았고 이 무수한 기억들이 플래시백같이 막 스쳐지나갈 것 같다.” 그걸 한번 생각해봐라. 그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 줬어요.


백: 현이 남자영주에게 절교를 통보받는 장면...이 딱 3분짜리 클로즈업 롱 테이크 더라고요.

조: 재보셨어요?(웃음)


백: 네. 그랬는데...전반적으로 지상에서 조금 떠 있는, 환상성으로 가득 찬 영화가 이 시퀀스에서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어요. 남자영주가 그 동안에 저 얘기가하고 싶었을 텐데 진짜로 남자 영주가 그리워하고 있던 대상은 진이었는데, 다른 세계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죠. 그걸 3분 동안이나 그것도 데뷔작에서! 찍을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죠. 이 영화를 누구에게 추천을 한다고 했을 때, 단 하나의 장면을 꼽는다면 이 장면이거든요. 그것이 촬영기법이나 고생 뭐 그런 게 아니라. 그 환상에서 현실로 넘어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남자영주, 여자영주가 모두 폐쇄된 공간에 있잖아요. 한 사람은 기관사고, 한 사람은 클럽 디제이고요. 그리고 둘 다 그 공간에서 나오면 현실적인 압박에 시달리는 거 같아요. 남자는 현의 애정공세 육체공세에...


조: 육체공세? (큰 웃음) 잘 보신 거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런 거 같아요.


백: 여자영주 같은 경우는 진의 애정공세가 두드러지고요. 처음 잠자리를 요구하기 전에도 집착하는 장면들이 보이잖아요. 이 사람들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잖아요. 두 영주 모두 대답은 똑같거든요. 남자 영주는 현에게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얘기했고요. 여자 영주도 진에게 "넌 소중한 친구야." 라고 관계를 분명하게 하거든요. 그게 따지고 보면 과거에 상처받은 사람들이어서, 그런 강박적인 얘기가 나온 거 아닌가. 그래서 감독님이 지독한 상처를 받았나 보다..이렇게까지 뱅글뱅글 돌아서 끌어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구나.

조: 정신분석. 심리상담 받는다는 느낌이 갑자기드네요 (웃음)


백: 한편으로는 희망을 찾아 가려는 욕구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조: 저도 막 정리가 되는 거 같아요. 편집장님 말씀 들으면서, 간단히 말하면 이 영화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딱 두 장면에 담겨있어요. 그것도 사실이죠. 헤어날 수 없는 사랑의 지긋지긋함. 아까 언급하신 현의 그 3분간의 롱테이크와 새가 부활하는 장면. 두 장면이요. 이렇게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어떻게든 그렇게 살아가요. 살아가지만 현의 표정을 오래 보여주는 이유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잖아요. 내가 현일 수도 있었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영주의 뒷모습인 순간일수도 있고. 현의 저 애처로운 표정을 보면서 관객들이 느끼기를. 그건 단순하게 하나에요. 우리가 꼭 상처를 줘야 하나. 나를 사랑한 사람에게. 그런 게 영화를 구성하는 커다란 주제였던 거 같아요. 현의 모습. 그 모습이 과거의 여자 영주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관객들이 보면서 맞아 여자 영주도 앞에서 그렇지. 여자영주 모습이 현의 모습과 겹치는구나. 새의 부활은 그런 많은 아픔들... 새가 가지고 있는 단순한 상징들. 모든 아픔,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상처, 집착들이 담겨 있어요. 사실 이 영화는 굉장히 희망적인 영화에요(웃음) 사람들이 답답하고 비관적으로 보시지만. 그 두 장면에 다 들어있는 거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요. 사랑, 상처, 희망. 얘기들인 거죠.


백: 독립장편디지털 지원 작품인데, 총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죠?

조: 5천만 원에서 6천만 원 정도 들었던 거 같아요.


백: 예산 때문에 안타까웠던 게 있다면요?

조: 이거 공개하면 기분 나빠할 스탭들도 있을 텐데(민망 웃음)..근데 사실 감독의 잘못이라 말해도 돼요.(웃음) 그때 굉장히 스케줄에 쫓겼어요. 미술, 의상 그 부분을 제대로 제가 컨트롤하지 못했어요. 사실 제가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안 쫓겼을 텐데. 무조건 1월에 찍어야 한다. 저는 이걸 갖고 학교에 갔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강박이 있었죠. 무조건 거기에 맞춘다. 하고 들어갔는데. 사실 디테일 측면에서 미술, 의상 부분도 디테일한 부분이잖아요. 디제이고 레즈비언 기타리스트다보니 스탭들이 의욕을 많이 부렸죠. 화려하고 개성 넘치고 알록달록하고 그런 쪽으로 컨셉을 잡아가는데, 사실은 실제 여자 디제이들이 화려하고 연예인 같고 그러지 않거든요. 힙합바지입고 되게 수수하고. 근데 그런 부분에서 선입관이나 의욕이 넘쳤는데, 제가 조율을 하지 못했어요. 프리작업의 타이트한 스케줄 때문에, 체크 시간이 부족했고요. 미술 같은 것도 이를테면 집 내부 벽지며 바닥이며 식탁...사실 이런 게 리얼리티나 디테일 부분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미술감독에게 맡겼죠. 현장에 가서 침대 시트 색깔도 알고. 암튼 스케줄이 빡빡해서 좀 버거웠죠. 나중에 붙여놓고 보니까 튀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배경이 클럽이고 집도 클럽 같고, 의상도 굉장히 화려하고. 그런 부분들이 좀 아쉽죠. 나쁘진 않지만...리얼리즘이 강한 영화도 아니고, 그걸 중요하게 본다면 중요한 부분인데 좀 아쉬워요.


백: 지하철 찍을 때 ...협조가 잘 됐어요?

조: 협조가 순조로웠어요. 제가 대학원생 신분이기도 하고,,,프로듀서가 영상원 학생이기도 하고...무조건 학생영화라고 해서 무료로 장소협조 받고 무난히 촬영했죠. (웃음)


백: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학생은...

조: 왕입니다.(웃음)





백: 200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얘기하신 내용 중에 “영화는 회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면서 “ 프랑스, 폴란드 등 답답하지만 아름다운 유럽영화들처럼 시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부분이 있는데요. 회화적이라는 게 어떤 건지, 예를 들어 [내부순환선]에서는 어떻게 표현됐는지 궁금해요.

조: 영화의 기본적인 순수한 요소들 있잖아요. 예를 들면 빛, 색, 리듬, 소리,...소리가 침묵도 소리가 될 수 있고. 그런 순수한 영화적 요소들을 갖고 놀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첫 장편을 찍는 영화학도의 의욕과 열정으로 말이죠.(웃음) 사실 두 영주가 만나서 춤추는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데. 그게 스토리로서의 클라이맥스는 아니고요. 테크노 음악도 여러 장르가 있는데요. 멜랑콜리 트랜스가 굉장히 꽂혔어요. 처음에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나 이미지 구상을 할 때나. 굉장히 슬픈 음악인데 그걸 들으며 춤을 추는 게 굉장히 아이러니한거죠. 나름대로 카타르시스가 굉장히 부족한 영화지만 음악으로서 카타르시스를 주고 싶었던 거죠. 영화의 순수한 요소로, 영화적 언어로 잘 풀어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있었죠. 일반적인 영화들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10가지라면 보통 기승전결, 스토리, 캐릭터. 천편일률적인 이런 걸로 가잖아요. 그런 거에서 살짝 벗어나고 싶었어요.

회화적이라 하면 저는 김기덕 감독 영화를 보면 그 분이 스토리구축이나, 캐릭터도 탄탄해요. 물론 감독님 영화를 보면 모든 영화가 훌륭하진 않지만, 저를 소름끼치게 하는 건 영화적인 것을 가지고 노는 능력? 이 부분이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도 절 공간에서의 붓글씨 같은 거. [활]에서도 음악이 조금 어색하게 들어갔지만 스토리에 맞물리는 사운드의 힘이랄까요. 소름끼치는 그런 조합. 그렇게 하는 방식. 단순히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예로 들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영화만의 요소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 학교 다닐 때 레오 까락스를 굉장히 좋아해서 신 바이 신으로 분석하고 그랬어요. 감독들이 많은 스타일이 있지만.. 그런 리듬, 충돌에서 가장 많이 흥분하는 거 같아요. [나쁜피], [퐁네프의 연인들]. 키에슬롭스키의 [블루]도 좋고요. 제가 어설픈 흉내를 냈지만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어요. 연출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자 했다면, 최소한의 말과 영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되게 단순화하려고 노력을 했던 거 같아요. 시각적인 것들.


백: 방금 얘기도 했지만 필름메이커스매거진의 소개된 글을 보니 “ 나는 강렬한 영화를 만들길 원한다”고 하셨더라고요. 제가 본 바로는 [삼색시리즈]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보다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쪽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감독마다 촬영방식이 제각각이잖아요. 가령 빔 벤더스의 경우에는 줌을 쓰지 않는 원칙이 있고요. 물론 안토니오니의 [구름저편에] 참여하면서 생각을 고쳤다지만. 조 감독님만의 원칙이 있을 텐데요?


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굉장히 핵심적인 거. 그런 거를 많이 고민했던 거 같아요. 아직 초짜여서 제 스타일이 어떻고 이런 거 말씀드리는 건 외람된 것 같고요. 신경 쓴 부분은 되게 단순하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는 앵글, 샷, 느낌들. 또 하나 영화는 어차피 환상이다. 펀타지이고 픽션이다. 배우가 밉게 나오는 걸 못 견뎌 해요.(웃음)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이왕이면 예쁜 앵글. 배용근이라는 배우가 그렇게 잘생긴 배우는 아닌데. 개인적인 선호도는 배우는 아름답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찍으면서 그런 걸 염두에 둔거 같아요.(웃음) 그래야 우리가 배우들과 사랑에 빠질 수 있지 않나. 앞으로 리얼리티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는 감독이 된다면 변할 수는 있겠지요.


백: 배용근씨 얘기를 해서 생각이 나는데, 요즘 화제인 나홍진 감독의 [완벽한 도미요리] 에서도 나오는데 그때하고는 느낌이 좀 다르더라고요. 현하고 일식집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 있잖아요. 숟가락을 안 바꿔준다고 투덜거리며 푸념하는 애인을 토닥거리는 장면을 보면서 아름답게 찍혔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배우가 밉게 나오는 걸 못 견딘다. 예쁘게 나오는 게 좋다. 라고 하시니 왕가위 생각이 나는데요.

조: 왕가위가 그런 말을 했나요? (웃음)


백: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장만옥이라는 배우가 미스홍콩 출신이지만 광대뼈도 많이 나오고 (제가 보기엔) 전형적인 미인은 아닌데요. 왕가위 영화에서만큼은 더 할 나위 없이 매혹적으로 나오지요. 전남편인 올리비에 아사야시가 연출한 [클린]만 보더라도 연기를 떠나,,,왕가위 영화와 비교해보면 여배우를 다루는 비주얼 부분에서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감독이 배우를 다루는 방식이란 게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차: 저는 영화를 아직 못 봤는데요. 포스터나 시놉 보고 난 느낌이.. 왕가위 생각도 잠시 스쳤거든요. 왕가위 감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 아시아는 잘 모르겠는데,,미국에서는 왕가위 영화 같다. 라는 사람이 간혹 있었어요. 글쎄요. 사실 왕가위 감독이 프랑스 영화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 말하시던데요. 사실 저는 레오 까락스 영화를 좋아하고 프랑스 영화, 유럽영화를 좋아하긴 하는데요. 그게 동양으로 넘어오면서 어떤 유사성이 생겼을 수도 있겠죠. 근데 미국 사람들은 많이 아는 사람이 왕가위니까 저랑 그렇게 비교하기도 하고 하는데, 왕가위 영화 좋죠. 좋은데. 존경한다. 그렇기보다는 굉장히 스타일리스트인데...저도 그렇게 되고 싶고, 그런 면에서 비슷할 수도 있겠죠.


백: 궁극적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으세요? 레오 까락스 얘기를 하셨는데, 모델로 삼고 싶은 영화나 감독이 있는지요.

차: 덧붙여서 저도 하나 질문하자면, 영화감독들은 좋아하는 영화와 찍고 싶은 영화 사이에서 충돌을 많이 할 거 같은데요. 감독님은 어떠신지?


조: 워낙 좋은 영화가 많으니까....(웃음) 저는 그게 일치하는 거 같아요. 최근에 본 최고의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숨]이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좀 평가절하 되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여자를 다루는 방법에서 초기작 몇몇 작품이 불쾌했던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 감독님이 좀 천천히 심사숙고해서 만드셨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요. 굳이 한국에서 한분을 꼽자면 그런 스타일을 닮고 싶어요. 인간의 감정이나 욕구를 극단까지 밀고 가는 힘은 아무도 못 따라가는 거 같아요. [숨]이라는 영화도 굉장히 뜬금없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핵심적인 하나의 주제를 갖고 영화를 구성하는 방식이 굉장히 파워풀 하잖아요. 굉장히 좋고, 전율을 느꼈죠. 이제 막 시작한 감독으로서 그런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가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죠. 저만을 위한 영화를 해도 상관이 없다면 김기덕 감독님보다 더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것으로 갈 수 있겠지만. 영화는 관객을 위한 것이잖아요. 저만을 위한 것이라면 회화, 음악 이런 거를 하겠죠. 영화라는 매체는 관객과의 소통을 간과해서는 안 되니까요. 제가 다음에 할 영화들은 더 많이 관객과 소통하고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갈 수 있는 지점들 을 고민해야겠죠. 이제 막 시작한 초짜 감독이라...아직 잘 모르겠어요.


백: 부산영화제 아시아펀드영화펀드 지원작 [꽈리]를 준비 중 인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 진척되었나요?

조: 시나리오 완성됐고요. 프로듀서 하고 펀딩, 파이낸싱 기다리고 찾고 있죠. 배경이 여름이에요. 계절이 여름이라 그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사실 올해 6~7월에 꼭 찍어야 하거든요. 굉장히 맘은 급하고 조급하고 그런 상황이에요.


백: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데요. [내부순환선]은 어떤 영화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조: 첫 번째 바람은, 보신 관객 분들이 경험한 사랑이 기쁨일수도 아픔일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을 되돌아 볼 기회가 되고, 이 부족한 영화를 보고 치유까지 가능하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죠. 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같이 힘차게 다시 사랑을 합시다. 했음 하는 그런 바람이 첫째 있고요. 어려운 영화는 아니지만 친절하지 않아서, 실망도 하실 수 있고, 황당해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신선한 영화를 봤구나. 이런 느낌. 이제껏 봐오지 못한 새로운 느낌. 그런 느낌을 받고 극장을 나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내부순환선]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순환의 관계망 속에서 사랑을 아파하고 갈구하며 견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현란한 음악과 화려한 조명이 있고 절절한 욕망이 있으며 지리멸렬한 일상도 있다. 사랑을 얘기하되 속살거리는 것 하나 없이 현실적이지만, 환상으로의 탈주선은 언제라도 열려있다. 물론 희망도 준비되어 있다. 멜랑콜리 테크노와 어우러진 이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 사랑의 쓴맛을 보여줄 것이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지는 마시라. 내러티브가 비선형적이라고 해서 횡설수설하는 영화는 절대 아니니까. 오히려 긴 터널을 빠져나온 뒤의 여운과 트임이 동시에 남는 영화다.



진행: 백건영(편집장)
사진.정리: 차상윤(편집스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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