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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14 존 포드- 황야에서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
2007.09.14


서부극의 신화로 남은 존 포드는 영화감독을 작가나 예술가와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건축가와 비교하길 좋아했고, 자신은 구성과 안목이 뛰어났으며, 단지 그 일을 즐겼을 뿐이라 했다. 만약 그가 건축가라면 우리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시스템 안에서 무수히 만들어 놓은 건물의 세입자다. 얼마나 튼튼하고 안전한지 그 신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역사에서 19세기는 개척의 시대며 내전의 상처가 있는 시간이었다. 인디언과의 싸움, 노예제를 바탕으로 한 남과 북의 감정적 대립, 유럽과의 영토 쟁탈전, 멕시코와 영토 분쟁 등. 피가 마를 날이 없었으며 동부에 정착하지 못한 자들은 서부로 역마차를 몰아야 했다. 꿈이 있다고 믿었던 서부. 서부로 간 사람들은 누구일까?

<역마차>는 존 포드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후기 영화의 뼈대가 된 영화라고 일컫는다. 이 영화는 서부로 가는 역마차를 탄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마차 탄 사람들은 마을에서 쫓겨난 창녀와 알코올 중독자 의사, 주류 판매업자, 도박꾼 등... 마을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나 떠돌이들이다. <역마차>에는 야만으로 낙인찍힌 인디언과 문명의 백인 미국인이 대립한다.

빠른 속도감에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편집으로 유명한 인디언과의 결투 씬은 인디언을 사냥감이나 짐승처럼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홀경 그 자체다. 특히나 존 웨인이 여성을 감쌀 때 흘리는 로맨틱한 웃음과 말 위를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은 무법자인 존 웨인을 영웅으로 승격시킨다. 링고(존 웨인)가 등장하는 첫 장면은 존 포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줌인으로 촬영되었고, 이런 고전적인 카메라 워킹이 그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다.

존 포드의 영화에 등장하는 존 웨인의 캐릭터나 서부극 속 캐릭터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자생적으로 터득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법이 필요하지 않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랜섬은 변호사지만 리버티에게 대항할 방법은 ‘법’이 아니라 ‘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역마차>에서도 등장하듯이 혼자서는 거친 황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존 포드의 서부극 속 인물들은 자기 세계관이 뚜렷하며 고독한 인물들이지만 혼자인 법이 없다. 군대에서 일정한 계급을 가지고 있거나, 혼자 살아가더라도 이동을 할 때에는 무리 속에 끼거나 노예나 친구와 동행한다. 살기 위해서라면 뭉쳐라. 그것이 존 포드의 세계관이다.

존 포드의 영화에는 다양한 코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역마차와 기차의 등장은 시간상으로 미국의 역사를 대변한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노령이 된 랜섬 스타가 기차로 한 마을에 도착하여 탐 도니폰(존 웨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시작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철도가 놓인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마차로 대륙을 횡단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그만큼 존 포드의 영화는 역마차와 기차라는 두 기호를 분석해도 미국의 횡단 역사를 따라갈 수 있다. 특이하게 생각되는 영화 중 한 편은 <존 웨인의 기병대>다. 영화의 첫 장면은 열차의 도착으로 시작해 끝 장면은 열차의 출발로 마무리된다. 열차라고 하니 괜스레 영화의 탄생을 알린 뤼미에르의 <열차의 도착>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자주 등장하는 맥주병은 이야기의 리듬과 흐름을 이어주는 접속사 같은 역할을 한다. 맥주병을 던지는 행위를 통해서 하스미 시게히코는 존 포드의 영화를 분석해 왔다. <아파치 요새>에서 계곡에 맥주병을 던지는 행위나, <황야의 결투>에서 닥 할러데이가 분노한 상태에서 맥주병을 던지는 장면은 눈여겨 볼만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항상 씬의 마지막에 맥주병을 던진다. 맥주병이 깨지는 건 다음 씬을 위한 예비 역할을 담당하거나, 씬과 씬 사이의 이음새 역할을 한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처음으로 긴장이 조성되는 장면은 리버티가 식당에 들어오고 그걸 본 랜섬이 접시를 깨드릴 때다. 맥주병이나 술잔이 깨질 때 자기를 향한 분노와 상대를 향한 멸시가 있으며 긴장감이 조성된다. 때로 맥주병은 이유 없이 등장한다. <도노반의 산호초>는 서부극이 아닌 코미디물이지만 존 포드의 후기작 중 가장 많은 맥주병을 던진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맥주병의 잦은 깨짐과 뒤이은 싸움들은 격렬한 다툼이나 전쟁이라기보다는 태평한 시대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몸풀이나, 여가에 가까워 보인다.

깨지고 부서지는 건 맥주병이나 술잔만이 아니다. 존 포드의 영화에서 ‘파괴’의 미학은 자주 등장한다. 남북전쟁을 다룬 <존 웨인의 기병대>에서 북부군은 남부군의 이동수단을 파괴하기 위해 철로와 열차를 불태운다. 인디언들은 마을주민들을 습격하여 가택을 불태운다. 물론 백인들도 인디언들의 주거지를 초토화시킨다.

그만큼 미국의 근대사는 폐허의 땅을 손수 일군 개척의 역사며 억압과 피탈의 역사임을 말한다. 존 포드의 영화에서 부서지는 건 물건이나 몸뚱이만이 아니다. 미국의 역사는 상실의 역사며 횡단의 역사다. 그리고 충돌의 역사다. 충돌의 역사는 종과 횡의 격돌로 나타난다. 기병대가 등장하는 <존 웨인의 기병대>나 <아파치 요새>와 같은 영화에서 군대가 이동할 때 항상 세로로 길게 늘어서 이동한다. 이 때 인디언들은 가로로 길게 늘어선 대열로 몰려와 황야를 횡단하는 부대를 혼란스럽게 한다. <존 웨인의 기병대>의 후반부에서 남부군은 좌우로 길게 늘어서 대열을 갖추어 강을 건너려는 북부군을 차단한다.

이처럼 존 포드의 세계는 남과 북, 인디언과 미국인들이 자기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종과 횡으로 충돌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같은 사회 ․ 정치적인 영화에서도 줄을 지어 일터로 이동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처럼 이동에도 엄격하지만 자연스러워 보이는 질서가 있다. 마치 무리에서 이탈하는 자는 사회에서 이탈하는 자라고 말하는 듯하다.

존 포드가 신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야기 구조를 재해석하고 파괴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후기 작품들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수색자>와 앞에서 언급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다. <수색자>는 인디언에게 납치당한 한 소녀를 찾기 위한 수년간의 여정을 닮은 영화다.

인디언에게 잡혀간 많은 사람들은 정신이 이상해져 실어증에 걸리고, 생활 습관도 인디언을 닮아간다. 백인과 인디언의 구별이 모호해진 시기를 그린 <수색자>는 대륙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묻는 영화며, 인디언의 존재를 재고한다. 물론 이 영화에도 인디언은 다소 야만적이며, 보호구역에서나 살아줬음 싶은 대상이다. 하지만 존 포드 스스로 서부 개척신화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전설로 전해오는 랜섬이라는 정치인에 관한 비화를 들려준다. 랜섬은 전설적인 악당인 리버티와의 결투에서 이긴 전설적인 영웅이다. 1인칭 화자를 통해서 전달되는 이야기 방식은 존 포드 영화에서도 드문 경우다. 영화는 이런 간접적 이야기 제시를 통해서 전설과 사실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전설이 전설로 남아야만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존 포드는 ‘전설이 사실이 될 때까지는 전설로 묻어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끝맺음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존 포드의 영화를 보면서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영화는 무수히 많으며-존 포드는 영화를 150편이 넘게 남기고 갔다-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젊은 링컨> <마지막 함성> <진실한 사나이> <데이웨어 익스펜데이블> <분노의 포도> 같은 역사와 정치에 관한 영화들도 있다. 존 포드의 영화 속 서부의 무법자들이나 군인들은 황야에서도 커피를 마시며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안식을 취한다.

<황야의 결투>를 볼 때 난잡한 격투 씬 없이 OK목장에서의 전투, 단 한 시퀀스만 볼만하다고 투덜거리지 말라. 존 포드의 영화는 서두르지 않고 소란스럽지 아니하며 정적이다. 적에게 천천히 (될 수 있는 한 근거리에서) 접근하듯이 모든 예의와 절차를 거친 후, 단 한방의 총성으로 대사를 처리한다. 그것이 존 포드의 거칠지만 정갈한 세계관이다. 모든 건 한 방으로. 그의 작품수가 많은 만큼 천천히 여유를 즐기며 존 포드의 영화를 곱씹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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