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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영화평론가)
서울토박이라서가 아니라 내 취향에 꼭 맞는 도시는 서울 밖에 없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공기가 나쁘고 인심 사나운 교통지옥일지언정,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사는 일을 없을 것이라 다짐하곤 했다. 얼마간의 여행지라면 몰라도 서울 외에 다른 지방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었으니, 문화예술 인프라에 관한한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딱 한 곳, 서울에 없는 것을 가진 부산이 부러워졌다. 서울에 없는 것이라면, 부산국제영화제? 그야 때맞춰 내려가면 그만이지. 아니면 세계최대의 백화점 신세계 센텀시티? 패리스 힐튼도 아닌 마당에 나와 무슨 상관인가. 도처에 펼쳐진 바다와 지천에 널린 횟감? 회도 바다도 모두 좋아하지만, 어디 그런 곳이 부산뿐일라고. 파리에도 있고 로마와 뉴욕에도, 서구의 웬만한 도시 마다 하나쯤은 있으며 하물며 부산에도 있는데, 서울에는 없는 것. 다름 아닌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그래서 나는 부산이 부럽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상문화도시로의 발돋움을 기획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실행시켜가고 있는 부산광역시 공무원을 가진 부산 사람이 부럽다. 역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살림을 맡고 있는 문화행정가들이 부끄럽다. 아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시네마테크가 뭐 그리 중요하기에 이렇듯 부산과 서울을 단순비교 하면서 호들갑이냐고 말할 런지 모르겠다. 시네마테크는 한 마디로 ‘영화의 집’이다. 영화를 발굴하여 보존, 복원하고 상영하는 공간으로서의 시네마테크의 시작은, 1930년대 초 유성영화 시대의 도래와 맞물린다. 즉 토키시대에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를 보존하고 이후 세대를 위한 영화 역사의 전달 임무를 지닌 시네마테크가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 알다시피 서구에서 영화는 산업에서 예술의 대상으로 종국에는 문화유산의 대상으로 변해왔다. 이때 시네마테크를 이루는 추동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시네필의 고유한 노력과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국가의 제도적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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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상징처럼 알려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ematheque Francaise)'를 보유한 프랑스의 경우, 일찌감치 영화를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고유한 지위를 부여했다. 프랑스가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에 대하여 제도적 지원을 적극 실시했다면, 미국의 경우는 시장에서 비상업적인 방식의 영화 상영을 통해 시네마테크 문화를 활성화시켰다. 예컨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재정의 90%가 문화부와 CNC(국립영화센터-우리의 영화진흥위원회 격)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미국의 대표적 시네마테크인 ‘필름포럼(Film Forum)’의 경우 이사회를 비롯해 개인, 단체, 기업 후원회원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도 서구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5월 10일 소격동 선재센터에서 개관해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정위탁’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현재까지, 영진위의 재정지원(임대료)과 극장활용수익을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시네마테크를 가진 도시답게 파리에는 약 150개의 독립영화관과 89개의 실험영화관이 있다. 게다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필두로 ‘제오드’, ‘포럼 데 이마지’, ‘퐁피두센터’ 등에서는 고전향취 물씬 풍기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네필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파리시의 영화산업 지원정책이다. 이를테면 상업 활동이자 예술로서,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여가활동으로서 영화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영화산업을 행정측면에서 지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위해 파리시에서는 프랑스 국립영화연맹 등과 협력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관람 권장 행사를 벌이는 한편, 영화관 현대화 정책을 병행함으로써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분투 중이다.

파리시는 독립영화관들, 오래된 유명 영화관들, 동네 영화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프랑스 예술 및 실험영화단체와 협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 모임인 ARP가 프랑스 및 유럽영화를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직접 '영화인들의 영화관(Le Cinema des cineastes)'을 경영하는 것도, 이러한 파리시의 적극적인 영화예술에의 지원정책에 힘입은 결과다. 정책방향과 정책적 지원주체와 형태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 ‘필름 소사이어티’나 ‘시네마테크 온타리오’ 같은 북미의 시네마테크들 역시, 영화산업의 육성 및 보존을 위한 해당 시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에서 기원한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문화예술, 좁혀서 영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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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내놓은 2010년 시정 중점 과제 중 하나는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 구현’이다. 참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운 구호다. 연중 시청 앞 광장에서 음악회를 열고 청계천의 밤빛을 배경 삼아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놈의 서울특별시 문화행정을 총괄하는 문화국의 콘텐츠에는 ‘영화’가 쏙 빠져있다. 아니 영화‘만’ 빠져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편중된 예산편성이다. 즉,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지향하겠다는 서울의 1년 예산 가운데, ‘문화’ 분야 예산이 (일반회계를 기준으로)1.8%에 불과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러니까 2010년 서울특별시 총예산 21조 2853억 중 문화부문 예산은 3,769억 원이고, 이 가운데 ‘문화시설 건립운영 지원’에 242억 원을 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외적으로 수도서울의 위상을 과시하기 급급한 공공프로젝트와 일회성 행사에 치중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계절스포츠 행사를 치르느라 시설물을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예산을 쏟아 부을지언정, 시네마테크 하나 건립하는 데는 시가 발 벗고 나서는 법이 없으면서, 무슨 재주로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만들겠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화만큼 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문화예술분야가 또 어디 있다고.

앞서 말했듯이 파리와 뉴욕의 시네마테크가 너무나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과 단순 수치로 비교할 마음은 없다. 그래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다. 서울의 일 년 예산 중 문화부문에 배정된 것이 1.8%(3,769억 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떨까? 부산광역시의 2010년 총예산은 7조 2,136억 원으로 서울의 1/3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이중 문화관련 예산은 3.040억 원이고, 영화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영상센터 건립에 565억 원이, 영상중심도시 지속사업에 650억 원이 배정되어 있는 등, 그야말로 ‘영상산업도시 부산’의 면모가 예산편성에 드러나 있다(서울특별시 공식홈페이지 문화국 콘텐츠에는 ‘영화’만! 빠져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006년 4월의 어느 밤, 종로타워 바에서 ‘앱솔루트 트리오’의 리더인 피아니스트 페터 폰 빈하르트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 직업을 알아차린 그는 자신도 영화광 못지않은 애호가임을 밝히면서 대뜸 “기회가 되면 서울의 시네마테크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순간 뜨끔한 마음에서 임기응변으로 “유럽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아니지만, 서울에도 시네필의 기운이 살아있는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호기 있게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서울아트시네마 쪽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더라면, 무엇을 보았을 것이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수집, 보존, 복원, 연구, 상영의 공간인 우리들의 시네마테크의 뒷모습은, 오랜 벗처럼 겹으로 똬리를 튼 낡은 영사기와 만성적 재정문제라는 검은 그림자가 아닐까.

만성적자와 노후 된 설비와 제대로 된 교육 공간 하나 없이, 이 남루한 하드웨어를 몸에 가난처럼 짊어지고도 우리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8년 세월을 시네필의 성소로 버텨왔다. 그렇다고 서울아트시네마의 활동이 외국의 시네마테크에 비해 모자랄까? 천만의 말씀이다. 프로그래밍만 놓고 본다면 뉴욕의 필름포럼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필름아카이브 구축과 현대식 영사시설의 구비가 급선무이긴 하나, 이처럼 기획전과 대관전을 비롯해 교육상영과 포럼, 출판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이뤄온 서울아트시네마의 성과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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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산업이면서 예술이고 문화인 동시에 유산이다. 서구의 국가들은 이미 70여 년 전 이를 인식하고는 찬란한 유산을 후대에 남겨줄 공간으로 ‘영화의 집’을 기획하여 실천에 옮겼으며, 이 노력은 각 도시와 구역을 중심으로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구 1,200만 명의 거대도시 서울특별시는, 이곳에 ‘시네마테크전용관’ 하나 없다는 사실을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서울시장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문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양동작전으로 생사여탈권을 휘두르는 야만적 작태를, 자발적으로 시작하여 문화운동을 거쳐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서울아트시네마’의 외롭고 고단한 싸움을 언제까지 외면하고 방치할 것인지를.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관한 공모제가 공표될 날도 머지않았다. 어차피 이치에 맞지 않은 제도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입 아픈 일일 테니 이제는 무시하기로 하자. 설사 그렇더라도 ‘1000만 영화 관객 시대’를 질주하는 한국에서 전용관 하나 구할 수 없어 떠도는 한국 시네마테크의 현실이 여기에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알려야 한다. 2005년 4월 3일 <안녕, 용문객잔>을 끝으로 낙원동으로 이사 온 이래, 시네마테크는 다양한 경로와 방법을 통해 ‘시네마테크전용관’의 필요성을 호소해왔다. 그러나 영진위나 문화부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용관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고사하고 기본 계획조차 전무한 집단에 더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셋방살이가 고달픈 게 아니라 삶 자체를 부정하고 폄하하려는 냉소적 시선을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과 유지 발전을 위해 서울시가 나서야 할 때이다. 지금 발 벗고 나선다 해도 부산보다 10년이나 늦었다. 무엇이 두려운가.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구현’하겠다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에 걸 맞는 사업으로 ‘시네마테크전용관’ 만큼 확실한 보증수표가 또 있을라고. 시네마테크전용관이야말로 600년 고도(古都)의 문화유산 남대문과 근대화의 상징인 남산타워에 이은,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확신한다. 서울시가 앞장서서 그 일을 맡는다면, 박수치면서 애써 도울 사람은 천지에 널려있다. 왕조는 무너져도 왕조의 기록은 역사로 남듯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성취가 훗날까지 남겨질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만한 것도 없을 터. 정치적 논리를 떠나 문화예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인식을 가진 기관장의 용기와 실천이 보태진다면, 서울시민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영화의 집’이 필요하다. 그러니 서울시가 나서라!



(추신)
하나. 시장을 시민의 손으로 뽑게 된 이래로 ‘시네마테크’를 공약으로 내세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이들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처한 건 아닌지 되물어 봐야 한다. 단합된 힘을 보여주면서 압박도 하고, 새로운 시장선거의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공약이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이면서 서울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것인지를 각인시키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둘.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일이지만) 정말로 시네마테크를 사랑한다면, ‘관객회원’들은 4,000원의 할인금액이 아닌 오히려 일반 관객보다 단돈 1,000원이라도 더 내고 영화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건 수혜자부담 원칙을 떠나 애정표현의 실질적 방법의 문제이다.ㅡ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추가요금의 부담만큼 다른 혜택으로 보상해주는 방법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ㅡ나는 시네마테크 측이 과감하게 이 문제를 공론화 하고 다양한 경로로 의견수렴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신이 진정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이고 서울아트시네마의 열혈관객이라면, 회원에 가입하고 더 많이 자주 찾는 것만큼이나 기꺼이 (특히나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지갑을 열어야 한다. 가끔씩 어디선가, 이명처럼 들려오거나 매체의 지면으로 접하던 “이 좋은 영화들을 너무 싼 값에 봐서 미안하다”는 말들은 괜한 소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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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저녁, 명동의 ‘시네마 호프’에서는 2009서울독립영화제 사전 감독모임이 열렸다. 한 해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독립영화 최대의 축제의 서막을 알리고자 만들어진 이날 행사에 출품 감독과 독립영화인들이 총집합한 것. 다만 한국독립영화협회 인근에서 열렸던 예년 모임과는 달리 장소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술과 출품작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던 이전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했다고나 할까.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 선정 공모’가 공시되었다. 그러니까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지정위탁 형태로 3년 째 맡아 운영하던 전용관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것인데, 2008년부터 국정감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지적받아 온 특정단체 지원 방식의 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사업수행 성과를 1년 단위로 평가한 후 매 1년 계약기간의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서울아트시네마 공모제 논란 때도 언급했듯이,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즉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은, 영진위의 정책입안을 통해 지원을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립영화인들의 꾸준한 노력과 활발한 활동의 결실로 얻어낸 것이었고 그래서 ‘지정위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는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번 공모제의 (독립영화진영을 배제하려는 불을 보듯 빤한) 의도는,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지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례가 있어 정부, 감사원 및 지원기관으로부터 주위, 경고 또는 제재를 받은 단체(법인 등)」 이라고 명시된 ‘지원신청의 제한’ 항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1년간 독립영화진영은 숱한 감사와 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한 독립영화인은 감사원에 11차례나 불려갔을 정도로 독립영화협회와 산하단체를 향한 십자포화는 그칠 줄 몰랐다. 이렇게 볼 때 감사 과정에서 티끌이라도 드러난 단체는 전용관사업자로 선정되기 쉽지 않을 것이므로 오랫동안 독립영화계에 떠돌던 이야기가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여 가슴 답답하다.

2009년은 <워낭소리>가 사상초유의 관객을 동원했고 <똥파리>와 <낮술>이 소기의 흥행을 거두는 등, 그 어느 해보다 많은 독립영화가 관객과 만난 한 해였다. 그러나 독립영화계가 거둔 놀라운 성과 이면의 그림자 또한 짙고 어두웠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인가 보다. 예년에 비해 담담한 표정의ㅡ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ㅡ집행위원들과 조영각 집행위원장의 거뭇한 수염에서, 올 한해 지친 발걸음을 힘겹게 떼며 걸어온 독립영화계의 진짜배기 모습이 보인다. 2009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이 아직 보름가량 남았지만 이미 시작된 거나 진배없다. 참으로 힘든 한 해였겠지만 그래도 부탁한다. 힘내서 꿋꿋하게 ‘치고 달리자’ 독립영화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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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감독, 영화로 말하시라

필진 칼럼 2009.08.21 09:09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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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이 주최한 ‘영화진흥위원회의 미래를 논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현장 분위기는 예상했던 대로 갑론을박에 그친 걸로 알려진 가운데, 특히 평정심을 잃은 정진우 감독은 <아벤고 공수 군단>(1982)으로 대종상 안보부문 작품상을 받은 제작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걸로 전해진다.


이날 토론에서 정진우 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은 예의 영진위 무용론과 폐지론을 주장했는데, 심지어 그는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 같은 영화제에서 왜 영진위 직원들이 거들먹거리며 다니느냐”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또 “영진위 없던 시절에도 영화인들은 영화만 잘 만들었다. 나 역시 연출은 물론 무수한 영화들을 제작하고 성공시켰다”고 말하면서 “지난 10년간 영진위가 합의제를 하면서 자기들끼리 다 해쳐먹었다” 고 말했다는 것. 하긴 2001년 6월 22일 영화 <친구>를 주제로 벌인 ‘TV 토론 공방’에서 안하무인격으로 상대방을 비난해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그의 무례함은 정평이 자자했던 터이니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최근의 행보만 놓고 보아도, ‘영화기관 부산 이전반대 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칠순 나이가 무색하게 영화 외적인 일에 매진하고 있는 인물이니 말이다. 요컨대 영진위 문제라는 시급한 불을 끄자고 소방수를 불렀더니 난데없이 나팔수가 나타난 격이다.

그의 주장이 하나 같이 근거 없고 분풀이로 가득 차있는지라 반박할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영화계 선배' 예우차원에서 한 마디 첨언하자면, 나는 도무지 그가 성공시켰다고 주장하는 무수한 영화들이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모르겠다.

소위 그의 전성기라 불리던 1960년대 중반에는 나이가 어린 탓에 볼 기회가 없었으니, 그렇다면 속칭 ‘한국 에로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며 무수한 여배우를 옷 벗겼던 80년대에 만든 영화들을 말하는 건가. 내 경우 80년대 나온 웬만한 한국영화는 모조리 보았고, 에로영화들 또한 동시상영관에서 빠짐없이 보았지만 ‘조류에로’ 삼부작인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의 감독이 정진우라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겨우 기억해냈을 정도다. 아, 그러고 보니 <가시를 삼킨 장미>라는 걸출한 에로영화도 있었다. 결국 정진우가 말하는 ‘영진위가 없던 시절에 제작해 성공시킨 영화’ 들이란 시류에 편승하여 오직 관객동원에 재미 본 작품을 말하는 것일 터.

과거 한국영화의 한 축을 담당했고 이제는 선배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내는 이 노감독을 보면서 측은지심이 드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자기들끼리 다 해쳐먹었다”는 식의, 공식석상에서 입에 담았다고는 믿기 어려운 천박한 표현을 쓴 그 자신은, 2000년 당시 ‘표현의 자유 공청회장’에 반바지를 입고 패널로 참석한 조영각(현 서울독립영화제집행위원장)에게 “이런 자리에 반스봉을 입고 오다니 영화계 선배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무례한 처사라”고 호통 쳤던 사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시카고학파의 거두인, 밀튼 프리드먼 M. Friedman은 후배교수 로버트 루카스 R. Lucas 를 위해 시카고 대학을 떠나 MIT로 자리를 옮긴다. 정점에서 홀연히 내려와 후배에게 길을 열어준 프리드먼의 용단이, 로버트 루카스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해 오욕의 말년을 보낸 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정진우의 좌충우돌은 그런 점에서 반면교사로 충분히 활용할 가치를 지닌다.

나이가 들었으니 아랫목으로 물러나라고 권하는 것도 아니요, 선배영화인의 노력과 업적을 무시하겠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영화를 위해 청춘을 바쳤고 한국영화의 오늘을 일궈낸 선배영화인의 한 사람에게 보내는 바람이란 다른 게 아니다. 진정으로 한국영화의 발전과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념과 색깔의 망령에서 벗어나 경륜과 지혜를 겸비한 선배로서의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설사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눈 먼 후배들이 날뛸지라도 모름지기 어른이란 큰 산 같은 존재감으로 경거망동을 경계하고 훈도(薰陶)해주어야 마땅한 일일 터. 그럼에도 선배영화인이라는 자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막말을 퍼부어대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 라고 한다. 목적이 불순하니 과정이 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릇 감독이란 영화로 말해야 하는 법. 팔순의 고다르와 이스트우드와 백수를 목전에 둔 올리베이라가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마당에 왜 우리의 노장은 나팔수를 자청하거나 어른대접 받는 것에만 골몰하는지 안타까울 노릇이다. 이것도 10년 좌파정권 탓으로 돌릴 것인가? 정진우는 선배의 덕목이 무엇인지, 진정한 보수의 길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군사독재 시절, 반공영화로 정권에 화답했듯이) 차라리, 영화로 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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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listasha.wordpress.com BlogIcon alistasha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ㅋㅋ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현장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눈에 훤~합니다.. 그리 크지 않은 지방 시골에서 자랐던 저는 오히려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부족합니다...
    제가 도덕적으로 교육을 덜 받았거나 가정교육을 못받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시골에 살면서 어른이지만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분들을 너무나 많이 접하며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갑을논박으로 끝났으며.. 선배라고 불리는 자칭 성공했던 감독이라는 분의 거친 말언 등... 에휴.. 답답하셨겠습니다..

    2009.08.26 02:04
  2. 조국의 미래  수정/삭제  댓글쓰기

    늙어서 추태를 부리는 인간들이 설치는 세상이 지금정권입니다

    2009.10.11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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