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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편영화의 촬영감독을 만나다' 특집의 첫 번째 주자는 <청계천의 개>를 촬영한 유일승 촬영감독이다. <청계천의 개>는 김경묵 감독(<나와 인형놀이> <얼굴 없는 것들) 연출)의 연출작이며, 지난 시네마디지털서울 2008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작품이다. 유일승 촬영감독은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촬영하였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재학 중인 학생인 동시에 상업영화 촬영부로도 활동하고 있다. <청계천의 개>는 '촬영감독 유일승'이라는 크레딧을 올린 그의 생애 첫 장편영화이다.

무엇이든 처음, 이라는 것은 떨리는 법이다. 첫 장편영화, 첫 번째 인터뷰...나 또한 인터뷰이로 촬영감독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각종 '처음'들이 함께했던 인터뷰를 네오이마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강연하(이하 '연'): 이 특집의 첫 번째 인터뷰이다.

유일승(이하 '승'): 안 그래도 인터뷰는 처음인데 많이 떨린다.(웃음)


연: 영화를 처음 시작한 계기와 함께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승: 시골에서 컸고, 거기서 열심히 극장 다니면서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때는 연출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영화과에 입학했고, 일 년 정도 공부를 하다가 카메라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촬영을 맡아 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엔 상업영화 촬영부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고, 홍경표 촬영감독님의 촬영부로 지금까지 네 작품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한예종 영상원 전문사에 들어갔다.


연: 연출에서 촬영으로 바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승: 특별한 계기가... 있다. 집이 지방이라 서울에 있는 학교를 혼자 다니기 힘들었다. 그 때 나는 군대 면제를 받았었는데 친구들도 다 군대 가고.. 그러다 집으로 내려가서 무슨 일을 할까 찾아보다가, 방송국에서 뉴스를 촬영하는 촬영팀 보조로 일하게 됐다. 굉장히 재미있어 보였고, 나중에 영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해보니, 항상 사건사고가 나면 발 빠르게 뛰어가 카메라에 담고 테잎을 전달해 뉴스를 전하는 일이더라. 그 때부터 촬영의 매력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영화 촬영보다는 다큐멘터리 촬영에 가까운 일인데, 정신없이 돌아가는 중에 선배들이 중요한 샷들을 선배들이 캐치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번 수입으로 카메라를 구입해서 나름의 나홀로 촬영감독으로(웃음) 이것저것 많이 찍어 보았다. 근데 나는 그림이 안 나오는 거다. 내가 문제가 있는 건가, 카메라가 문제가 있는 건가 고민이 되고. 제대로 나올 때까지 끝까지 찍어봐야겠다 하다가, 결국 이렇게까지 되었다.(웃음)

연: 영화를 하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늘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상대방의 취향이다. 어떤 영화, 어떤 영화감독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승: 정말 다양한 영화들, 감독들을 좋아해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힘들다.(웃음) 음..... 최근에 좋아하게 된 감독은 폴 토마스 앤더슨이다. 아, 그리고 스티븐 달드리 감독을 너무 좋아한다.


연: 아, 나도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들을 참 좋아한다. 그의 새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던데.


승: 맞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빨리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남성적이고 강한 느낌의 거대한 영화보다는,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영화들을 좋아한다.


연: 음. 그런 영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일까.(웃음)


승: 음... 아, 내가 영화를 하게 한 영화가 있다. 이와이 슌지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그 영화를 중학교 때 봤었는데 너무....


연: 이와이 슌지 영화는, 현재 영화공부를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첫사랑 영화목록에 자주 오르내리는 영화인 것 같다.


승: 그 당시에 되게 어렸었고,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해봐야 주류 할리우드영화가 다였다. 그랬던 때에 아는 누나가 제목도 안 써져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줘서 보는데, 아 세상엔 이런 영화도 있구나... 하며 충격을 받았었다.


연: 사실 나에게도 그 영화는 나름의 첫사랑 같은 영화다.(웃음) 좋아하는 촬영감독은 누구인가.

승: 여기서 만약 내가 홍경표 촬영감독님을 언급하지 않으면...(웃음) 국내 촬영감독 중에선 김우형 촬영감독님을 좋아한다. 특히 <오래된 정원>... <그 때 그 사람들>의 촬영도 좋았다. 외국 촬영감독 중에선... 디온 비비(<콜래트럴><마이애미 바이스>등 촬영)가 떠오른다. 빛을 다루는 능력이 현존하는 촬영감독 중에 최고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연: 추상적인 질문인데, 그렇다면 좋은 촬영이란 뭘까.

승: 요즘 하고 있는 생각은, 카메라가 크게 드러나지 않은 채 그 드라마에 집중을 제대로 하게 해주는 것만 해도 좋은 촬영이 아닐까, 하는 거다. 예전에 촬영할 때는 드라마가 빈약한 부분을 촬영이 채워줄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불가능한 것 같다. 두 가지가 서로 다르다고 해야 하나... 다양한 촬영기법들이 많이 생겼지만, 요새는 픽스 촬영이 가장 좋더라.



 
연: 이제 <청계천의 개> 이야기로 넘어가려 했는데, 방금 한 답변들과 <청계천의 개>는 정말 상반된다.(승:(웃으며) 맞다.) 사실 <청계천의 개> 같은 영화는 드라마가 중시되는 영화는 아니다. 극영화의 형식 안에 있지만, 기승전결의 드라마가 크게 드러나는 영화는 아니니까.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읽었을 때 이 영화는 어떤 영화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승: 처음엔... 이게 영화가 될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상업영화 촬영 감독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근데 <청계천의 개>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늘 전형적인 플롯구조의 영화를 전형적인 촬영방식으로 촬영하는 내가 어딘가에 갇혀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실험적이고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는 영화를 해 보고 싶었다. 아 근데 질문이? (웃음)


연: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떤 영화라고 생각했는지.

승: 아, 이걸 대체 어떻게 이미지로 풀어내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되었다. 고민을 정말 너무 많이 했다. 특별히 내러티브가 강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공간이 디테일하게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 같은 느낌도 강했고...


연: 원래 김경묵 감독과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

승: 아니다.


연: 처음에 어떻게 만나서 함께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승: 영화 구인 커뮤니티에 촬영감독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었다. 그걸 보고 지원했는데, 감독이 내가 좋았는지(웃음) 연락 와서 함께하게 되었다.


연: 만나기 전에, 김경묵 감독의 전작들을 본 적이 있었는지.

승: 없었다. 몇 번 만나서 얘기한 후, 자기가 찍은 영화라고 디브이디 줘서 그 때 보았다.


연: 충격적이었겠다.(웃음)

승: 충격적이었다.(웃음) <나와 인형놀이>, <얼굴없는 것들>.... 보여지는 이미지도 상당히 강렬하지만, 이 친구가 품고 있는 그 무언가가 너무 강렬해서, 이 영화를 내가 할 수 있을까하고 부담도 많이 됐다.


연: 콘티 작업 같은 프리 프로덕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승: 콘티는 사전에 상의한 것이 별로 없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전형적인 작업방식을 좀 탈피하고 싶었다. 대사가 있는 부분들의 경우 대강의 연결 느낌을 갖고는 갔지만, 촬영 당일현장에서 많이 고민을 해가며 찍었다.


연: (폭포가 방의 사진으로 이어지는) 첫 장면 같은 경우는 확실한 콘티뉴이티와 계획을 짜고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승: 맞다. 그런 부분들은, 감독의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있었던 부분이다. CG,세트 같은 것들까지 다 생각하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그 경우는 확실한 콘티가 있었다. 지하철 시퀀스들이나, 마로니에 공원 시퀀스 같은 경우가 콘티 없이 간 부분이다. 로케 부분은 현장상황이 계속 바뀌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 많아서(웃음) 사전에 했던 생각들과 많이 다르게 나왔다.


연: 청계천, 종로 낙원상가 앞, 거기서 퀵 줌으로 빠져 보여지는 압구정 거리, 허름한 뒷골목들 등 서울 안 공간의 느낌이 강한 영화다. 로케지들은 둘이 함께 헌팅을 다니며 결정한 건가.

승: 처음부터 공간의 느낌이 굉장히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타이틀부터 서울을 걸고 있지 않나.(웃음) 영화에 어울리는 공간들을 찾느라 둘이 많이 돌아다녔다.


연: 디지털이 독립영화의 대세를 이루게 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고, HD카메라의 보급이 최근의 독립장편영화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청계천의 개>도 HD카메라로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승: 맞다. 파나소닉의 HVX-200이라고 하는, 소위 P2카메라라고 부르는 카메라로 촬영했다. 당시 그 카메라가 가격대비 좋은 화질이었고, 파나소닉 카메라들이 채도가 강하게 나와서 후반작업 때 컬러/흑백 전환과 색보정에도 좋을 것 같았다.


연: 경묵씨는 촬영 도중 단편에서 장편으로 바뀌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스탭들이 다 같이 하자 끝까지 하자고 해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촬영감독으로서 장편영화로 방향을 바꿨을 때 어땠나.

승: 이 작품을 하면서 돈을 받고 계약한 것도 아니었고, 딱 기간을 정해둔 것도 아니어서 사실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이 영화의 촬영감독으로서 시작해서 일한 거니까, 끝까지 책임지는게 당연하다. 장편으로 바뀌는 것이든 아니든, 맡은 거니까 당연히 끝내야지. 이 영화의 감독을 위한 것보다 나 자신을 위해 그게 맞지 않나. 물론 나를 도와주는 촬영, 조명팀들은 많이 힘들었을 거다. (웃음)



연: 영화의 구체적인 장면들 몇 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영화는 흑백화면과 컬러화면을 몇 번씩 전환하며 진행된다. 개인적으로 맨 처음, 방 안에서 거울을 볼 때 흑백으로 바뀌는 타이밍이 좋았다. 흑백/컬러 변환은 처음부터 약속되었던 건가. 아니면 후반작업 때 주로 결정한건가.

승: 컨셉만 있었다. 바뀌는 포인트는 처음에 잡아놓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편집을 하면서 바뀐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런 걸 대비해서 찍을 땐 다 컬러로 찍었다.


연: 처음에 이 영화가 흑백/컬러를 오가는 것이 왜 필요하다고 확신했는지 궁금하다.

승: 이 영화의 구조 자체가 나는 대비라고 생각했다. 공간의 대비, 컬러의 대비, 남녀의 대비..... 그렇게 컨셉을 잡아나가며 이야기하다 보니까 화면 자체의 컬러 대비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영화에서 남자의 욕구가 억눌려 있다 분출될 때, 관객이 가장 쉬우면서도 강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효과가 컬러의 대비라고 생각했다.


연: 성남 판교에서 찍은, 개와 대화하는 시퀀스는 무성영화의 형식을 띠고 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계획했었나.

승: 그런 컨셉으로 찍기로 계획은 했었다. 찰리 채플린 영화처럼, 픽스샷에 연극적인 화면들.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개가 너무 말을 안 듣더라.(웃음) 카메라 안에서 인물이 놀아야 하는데 개가 노는 걸 카메라가 따라가니까.(웃음) 원하는 대로 뽑아내지 못한 장면이다. 개가 훈련 잘 받았다고 했는데, 휴......


연: 아이와 동물은 정말 촬영의 적이 될 때가 많은 것 같다.(웃음) 영화에 등장하는 옷가게는 우연히도 내가 가끔 들르는 옷가게더라. 홍대에 있는... 거길 가봐서 아는데, 나름 특색 있는 구조의 가게 안을 카메라가 최대한으로 활용한 느낌이었다. 핸드헬드도 길고 강하게 쓰였고. 특별히 그 옷가게 씬 찍을 때 잡은 컨셉은 무엇인가.

승: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씬이니만큼 아주 중요했다. 최대한 인물을 따라가면서, 남자가 여자로 변하기까지 움직임이 하나였으면 했다. 인물의 감정을 끊지 않고 한 테이크로 표현하고 싶었다.


연: 녹사평역(지하철 6호선)이 등장한다. 거긴 원래 공간 자체도 초현실적이고 기묘한 느낌인데, 영화에선 데칼코마니처럼 그려져서 혼란을 더한다. 애초에 찍을 때부터 그런 효과를 생각하고 찍었나.

승: 아, 이런 것까지 말하면 김 감독이 곤란해지지 않을까. 영화의 비밀들이 탄로 나서..(웃음) 일단 지하철역 장면 전에 쫓고 쫓기는 인물들을 통해서 추격 장면의 빠르고 긴박한 컷들을 잘 살렸기 때문에, 이번엔 뭐 좀 다른 게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공간에 갔는데 공간이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생긴 거다.(웃음) 이런 구조에 맞춰서 그림도 좀 혼란스럽고 혼돈스럽게 살려보자고 김 감독과 얘기했다. 그 때 실제 연리목씨(여주인공 역할의 여배우)랑 다른 여자 분이 똑같이 분장해서, 처음엔 이 쪽에서 튀어나왔다가 또 갑자기 밑에서 튀어나왔다가 하는 장면을 한 테이크로 촬영했다. 데칼코마니처럼 한 효과는 원래 계획엔 없었던 거고, 후반작업에서 해보니까 실제보다 박진감 넘치는 느낌이 들어 감독이 선택했다.


연: 나는 영화를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때 봤는데, 그 때 GV에서 김경묵 감독이 지하철안 시퀀스가 많이 아쉽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획대로 안 되서 준비한 대로 잘 못 찍었다고.

승: 지하철 안은 여자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증폭시키면서 방에 갇혀지기 전 순간을 표현하는 공간인데, 지금처럼 노이즈 효과 같은 걸 많이 쓰려고 애초에 생각은 안했다. 지하철 행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여자를 감싸고 영화 속에 배치되어 있던 사람들이 등장하며 압박하고.. 이런 계획이었다. 사실 다 찍긴 했는데 시간에 엄청 쫓겨 가며 찍어서 그런지 원하던 효과가 잘 나지 않았다. 그러면 디지털적인 측면을 살려서 이렇게 해보자 해서 지금과 같은 장면으로 나온 거고. 아마 감독은 편집하면서 그 시퀀스에 가장 많은 공을 쏟았을 거다. 고민이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안다. 찍으면서도 그 부분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측을 못했다.


연: 지하철 다음 장면이, 경찰 남자한테 잡혀가서 방에 갇히는 장면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새카만 방안데, 영화에서 가장 인위적인 공간이라고 느꼈다. 촬영감독으로서 방의 의미를 처음에 어떻게 설정했는지 궁금하다.

승: 방은 일단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주인공 남자의 머릿속 공간일거라 생각했다. 그런 공간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건가에 대해 얘기하다, 구멍이 숭숭 뚫려서 빛이 쏟아지는 어두운 방이었으면 좋겠다고 감독에게 먼저 제안했다. 경묵이도 좋아하길래...(웃음) 관음증적인 공간, 그런 관음적인 욕구가 가득한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마주하는 곳이기도 하고. 결국 남자주인공이 도달하는 가장 깊숙한, 심연의 공간이랄까...


연: 에필로그처럼 보이는 장면을 빼면, 마지막 장면이 청계천 씬이다. 원래 거기서 찍기로 청계천 측과도 다 얘기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당일날 틀어져서 제작부는 막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막고, 한 쪽에서 촬영부는 막 크레인 설치하고 진짜 힘들게 찍었다고 들었다. 근데,그런 뒷얘기를 모르고 봐도 그 장면은 정말 힘을 주고 사활을 걸고 찍은 장면 같다.

승: 처음엔 그렇게 힘들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처음 등장하는 폭포와 마지막의 청계천은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힘들었고 압박이 심했다. 사람들 컨트롤 하는 게 제일 힘들더라. 어차피 그 장면은 지미짚 오퍼레이터 기사님한테 사전에 다 설명 드린 장면이었고, 통제가 너무 안돼서 촬영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나는 오히려 촬영보다 사람들 통제에 더 힘썼던 것 같다.(웃음)

말한 것처럼 아쉬운 점도 많지만 예상하지 못한 요인들 때문에 더 잘 나온 부분도 있다. 여자로 바뀐 다음에, 카메라가 크레인을 타고 여자의 옆얼굴을 슥 스쳐 지나갈 때 저 뒤쪽에서 강한 햇살이 여자의 머리 뒤편에 잘 묻어줘서 하이라이트가 살고 명암도 강하게 진다. 그런 부분은 촬영적으로 마음에 든다.


연: 영화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촬영적으로 들었던 느낌이, 카메라가 숨어서 혹은 자연스럽게 있지 않고 존재감을 확실히 가지고 간다는 거였다. 이걸 독립영화의 현장상황과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예산이나 현실적인 통제의 어려움에 타협하지 않고 촬영감독의 고집을 어느 정도 가지고 갔다는 얘기로도 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원래 단편으로 계획된 저예산 영화치고는 사용한 장비들도 꽤 화려하다. 크레인에, 몸에 부착하는 카메라까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 감독과 그런 장비들 사용에 대해 어떻게 의논하고 결정했을지 궁금하다.

승: 감독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라고 했다. 딱 하나, 방금 말했던 몸에 장착하는 카메라는 도기캠이라 하는데, 이거를 꼭 써야 하냐고 계속 말하더라. 예산의 압박 때문에. 계속 서로 눈치를 보면서 이걸 꼭 써야하나... 피디도 와서 이거 꼭 써야하나...(웃음) 고작 한 커트 찍는 건데.(웃음) 근데 그건 내가 막 밀어붙였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건 꼭 해야 된다고. 찍고 나선 경묵이가 되게 좋아했다.(웃음)


연: (웃음) 다들 반대하는데 꼭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승: 도기캠을 사용해서 그 장면을 표현하면, 주인공의 심리가 정말 나락으로, 갈 데까지 다 떨어졌구나 하는 느낌을 줄 거 같았다. 또, 큰 골목에 여러 작은 골목을 인물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동선과 공간이 재밌어서 그걸 한 테이크로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만약 예산이나 여러 문제로 그 장면을 단순하게 숏을 나누어 찍거나 했다면 시간문제도 그렇고 배우 감정 연결에도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 장비를 써서 좀 더 시간을 아낄 수 있고, 한 테이크로 가는 게 더 영화에 좋을 것이라 믿었다.



 
연: 상황의 제약 때문에 둘이 꼭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들이 있나.

승: 첫 장면을 찍은 폭포가 허가가 안 나서 도둑촬영을 했다. 도둑촬영이라 여러 가지 준비를 잘해갈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크레인이 있었으면 조금 더 시각적으로 힘 있는 느낌을 표현했을 것 같다. 그 때는 줌과 간단한 붐 아웃/붐 업 하는 장비만 사용했다. 카메라도 원하는 위치에 놓을 수 없었고... 맘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갔다.


연: 사실 <청계천의 개>가 다루는 감정이나 세계가 보편적인 세계는 아니다. 여자가 되고 싶은 그 남자의 감정을 우리가 백 프로 이해하며 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촬영감독으로서 영화 속 남자주인공의 내면을 얼마나, 어떻게 이해하면서 작업했는지 궁금하다.

승: 아 나는...찍을 때도 그랬지만 아직까지도 이해를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한다. 내가 그 남자에 대해 더 충분히 이해를 많이 했다면 결과적으로 훨씬 더 잘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그래서 감독한테 많이 미안한 마음도 있다. 이전에 작업할 땐 배우의 동선과 사이즈, 앵글이 다 정해져 있었는데 이번 작품 땐 정말 모든 걸 열어놨었다. 배우에게 난 아무 간섭도 하지 않았다. 배우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고... 어떻게 보면 인물을 정말 잘 이해하고 더 다가가야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인물에 대한 어떤 벽이 있었던 거 같다. 찍고 나서 영화를 봤을 때 뭐랄까.. 다시 찍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이런 생각도 들고.


연: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뭔가.

승: 여자가 공원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여러 남자들이랑 눈빛 주고받는 장면들이 가장 맘에 든다. 그 장면도 시간에 쫓겼지만, 재밌게 잘 나온 것 같다. 거기 나오는 노래 부르는 사람들 동선도 다 현장에서 짠 거고, 텅텅 비어 있을 줄 알았던 공원이 무슨 수학여행을 온 애들로 가득 차 있고...(웃음) 그래서 사전에 생각했던 것과 다 다르게 찍었다.



연: (웃음) 이제 연출자와의 관계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연출자와 촬영감독은 촬영장에서 부딪힐 일이 많다. 예를 들어 둘이 사전에 같이 지금 장면은 클로즈업, 이라고 정해놔도 현장에 가서 촬영감독이 앵글 잡아놓으면 연출자가 와서 "내가 생각한 클로즈업은 이게 아닌데, 이것보다 더 얼굴로 크게 들어가는 거다." 한다던지, 풀 샷이면 또 서로가 생각한 풀샷 사이즈가 앵글이 달라서 "왼쪽으로 조금만 더" 한다던지 하는 사소해 보이는 일들부터 시작해서 꽤 많을 텐데.


승: 감독한테 처음에 얘기했다.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꼭 말해달라고. 물론 카메라 오른쪽으로, 이런 건 촬영감독 입장에서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선 좀 더 인물에게 집중했으면, 이런 느낌이 났으면, 하는 말들은 꼭 필요한 거다. 그래서 꼭 촬영 중간 중간에 말해 달라고 했다. 그래도 내가 그 느낌을 못 잡으면 더 직접적으로 말해 달라고 했다. 나도 이런 식으로 다 열어놓고 작업하는 건 처음이라 내가 놓치고 가는 게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작을 봤을 때, 감독이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촬영 때는 우리 둘 사이의 충돌보다는 감독의 요구를 내 스스로 못 찾는 거 같아서 내 스스로에 대한 좌절을 많이 했다. 지하철 씬 찍을 때 특히 그랬다. 이전까지는 그런 생각은 한 적 없었는데. 플랫폼에서 건너편으로 넘어가려고, 카메라 장비들을 촬영부 친구들이랑 같이 들고 가는데 나 정말 힘들다고, 이거 어떻게 찍어야 될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그런 얘기하고 그랬다.


연: 현장에서 크게 싸운 적은 한 번도 없나.

승: 크게 싸운 적은 없고 음... 아무래도 독립영화에서 진행을 조감독보다는 촬영감독이 나서서 주도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잖나. 조감독한 친구가 이렇게 나름 규모 있는, 긴 길이의 영화를 처음 해보는 거라 좀 서툰 점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조감독한 친구를 좀 꾸짖었었다. 일 좀 똑바로 하라고. 감독 입장에서는 그런 게 많이 불편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촬영중간에 진지하게 한번 얘길 하더라. 나 때문에 스탭들이 되게 힘들어한다고. 아니 그러면 영화는 어떻게 찍을 거냐, 제정신으로 그런 말하는 거냐고 내가 오히려 막 화를 냈다. 내가 그렇게 안하면 우리 지금 15회차가 아니라 30회차 찍을지도 모른다고, 감당할 자신 있냐고. 그런 얘기를 둘이 따로 했었다.


연: 조금 규모 있는 독립영화의 현장에선 아무래도 촬영감독이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욕심을 내게 되더라. 시간에 쫓기지만 여기서는 조명을 얼마만큼 써야 되니 시간이 얼만큼 필요하다, 라는 요구도 하게 되고. 반면에 연출 쪽이나 제작 쪽에서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지금그런 것보단 연출적인 것이나, 배우 연기나 현실 상황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이렇게 나올 때 서로 간에 충돌이 일어난다. 이럴 때, 영화의 완성도나 기술적인 퀄리티를 위해 고집을 세우고 가는 편인가, 아니면 일단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보는 편인가.

승: 그 부분에 있어서 지금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대학교 다닐 땐 정해져 있는 분량을 못 맞추고 찍은 적도 있고 그래서 보충촬영한 적도 꽤 있다. 요즘에는, 꼭, 절대로 정해진 분량은 무조건 맞춰야 한다. 어떤 촬영감독이 그랬다더라. 현장에서 노출계는 없어도 찍을 수있지만 시계 없이는 찍을 수 없다고. 이 말이 너무 가슴에 다가왔다. 만약 내가 부족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내가 원하는 lighting을 못 만들면 그건 내 탓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럴 땐 다음 분량을 빨리 찍어야 한다.

나는 지금 단편이나 독립영화를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후에 상업장편영화를 하기 위해 나를 발전시켜 가는 과정의 하나다. 내가 여기서 단편작업을 하면서 그런 걸 못 지켰는데, 상업영화 데뷔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더 예산도 커지고 하는데 말이다. 내가 원하는 걸 일부 포기하더라도 정해진 분량은 지켜 내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그리고, 촬영은 막 드러내려 노력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빛만 딱 나와도 이제는 찍을 수 있겠다.(웃음)


연: 학교 작업을 하면서나 상업영화 촬영부를 하면서 많은 연출자들을 보고 겪었을 것 같다. 좋은 연출자와 촬영자간의 관계란 어떤 걸까.

승: 그건 개개인마다 각자 다른 것 같다. 난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감독한테 많이 의지를 하는 편이고, 아니면 이건 내가 진짜 잘할 수 있겠다 라고 믿는 부분에선 연출자한테 내 생각에 대해 요구를 많이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많은 친구들은,,. 그래도 다 다음 작품을 나랑 하고 싶어 하더라.(웃음) 그래서 나한텐 문제가 없나? 생각도 하고.(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물론 그들과 싸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들 작품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고. 너무 이끌려 가는 것도, 너무 버티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 싸우면 생각보다 작품이 잘 안 나오더라. 특히 단편영화는 서로 공부하는 의미에서 하는 것도 있으니까 서로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연: 독립영화현장에서 특별히 더 요구 되는 촬영감독의 자세는 무엇일까.

승: 이건 정말 <청계천의 개> 하면서 느낀 건데, 상황판단이 일단 되게 빨라야 한다. 항상 어떤 문제가 생길 때 늘 대비책을 갖고 있어야 할 거 같다. 정말 어떤 문제는 누가 생각해도 뻔히 생길법한 문젠데, 현장에서 대책 없이 당하니까 정말 당황스럽고, 거기에 대한 준비는 하나도 안되어 있고... 아니 내가 왜 이 정도도 예상 못했을까 자책도 많이 하고...


연: 아까도 말했지만 상업영화 촬영감독이 최종목표라고 했다. 만약 입봉하게 되더라도 독립영화 작업을 할 생각이 있나.

승: 지금도 그나마 유일한 숨통이 상업영화 일 없을 때 독립영화 촬영하는 거다. 그동안 쌓였던 어떤 힘든 것들을 창의적으로 푸는... 상업영화 데뷔하더라도 독립영화는 꾸준히 하고 싶다. 현장에 있으면서 느꼈던 건데, 상업영화 현장과 독립영화 현장의 감독, 촬영감독 간의 관계는 정말 다르다.


연: 어떻게 다르던가.

승: 아무래도 상업영화에선 감독님이 왕이시고, 촬영감독은 중요한 스탭이 되기 쉽다. 독립영화하다 상업현장에서 감독과 촬영감독 관계를 봤을 때 아주 쇼크였다.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감독한테 끌려 다니거나 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닌데도, 내가 생각했던 관계랑은 많이 달라 보였다.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 좀 상하관계 같은. 내가 잘해서 수평적으로 만들었음 좋겠지만 그렇게 안될 가능성이 더 많은 것 같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건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일하는 거다.


연: 그런 관계를 알고, 불만족스럽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목표를 확고히 상업영화 촬영감독으로 생각하고 있다.

승: 왜냐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내가 찍은 영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또, 돈을 많이 벌진 못할지언정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이미지로 영화의 메시지나 분위기나 감정을 표현하는 촬영감독의 기본적인 일은 같기 때문에, 어딜 가서도 내가 맡은 일을 잘해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연: <청계천의 개>는 자신에게 어떤 작품인가.

승: 그 동안 나는 굉장히 계산적으로 영화작업을 해왔던 거 같다. 프리 프로덕션 때 거의 모든 가능성들을 콘티 짜면서 다 해보고, 현장 가서는 콘티대로 찍고. 새로운 걸 뽑아내기보다는, 우리가 하려고 계획 했던 걸 얼마만큼 뽑았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닌데 이 영화가 그런 나를 깨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준 것 같다. 또 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처음 촬영을 맡아 한 작품이기도 하다.


연: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다.(웃음) 앞으로의 계획과 독립장편영화에 대한 특별한 꿈 같은 것이 있는지 듣고 싶다.

승: 잡혀 있는 계획으로는, 단편을 두 편 정도 더 할 것 같다. 단편작업을 조금 더 해서 내공을 많이 쌓고 싶다. 다음에 장편영화를 할 땐 좀 더 준비 열심히 해서, 정말 잘하고 싶다. 상업영화 현장과 독립영화 현장을 오가면서 일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이제는 내 능력을 좀 더 닦고 표현해 가면서, 내 개인적인 작업을 좀 더 하고 싶다.

[숏버스] 놀라운 '그' 순간들

필진 리뷰 2009.03.09 10:19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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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에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뜻의 숏버스와 같은 인간군상이 여러 등장한다. 서로 사랑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게이커플,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 섹스 치료사 부부, 그리고 SM플레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예술가, 옆집 게이커플을 2년이 넘도록 관찰하는 남자. 이 모든 사람들이 클럽 숏버스로 몰려든다. 그곳에서 그들은 섹스를 하기도 하고,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하고, 춤과 노래를 즐기기도 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불안한 관계와 섹스와 사랑, 그밖의 여러가지 것들이 영화속에 흘러 넘친다. 귀를 감아도는 음악과 함께 말이다.

'저런 체위도 가능하구나' 란 생각을 들게끔 하는 과도한 섹스묘사와 오르가즘에 대해 연신 늘어놓는 수다. 이런 것들 속에서 영화는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면서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나누는 사랑과 그 사랑이 지속되는 관계의 방식을 말하고 있다. 분명 사랑하지만,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는 여자, 아내에게 진정한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남편, 사랑하는 남자가 있고, 그와의 관계가 만족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충동을 느끼는 게이.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까지 쉽사리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여자. 과연, 우리들의 일상에서 섹스와 오르가즘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어째서, 우리들은 그토록 섹스와 오르가즘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걸까?

처음 영화를 봤을때, 이 영화가 드러내는 섹스에 대한 태도가 실은 불편했다. '그래, 섹스와 오르가즘이 상당한 즐거움인 것까지는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영구적이지 않다. 순간적은 즐거움일 뿐이다.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은 인정하겠지만, 그것을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란 생각 때문이었다. 홍상수의 영화속 인물들처럼, 잠깐 만나 노는것이 즐겁기는 하지만, 그것을 위해 모든 기력을 쏟아 부을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은 어디에서 유지되는 거지? 란 생각들. 그래서 영화 '숏버스'의 섹스에 대한 태도는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꽤 오랜 시간 곱씹어보면서, 중요한 것은 섹스 자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섹스와 오르가즘이 불러일으키는 연결점에 있었구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혼자가 아닌, 둘 이란 느낌을 갖게 하는 그 연결되는 지점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마음을 열고 사람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이가 들면서 깨달아가고 있다. 있는 척도, 아는 척도, 예쁜 척도,하지 않고, 그저 담백하게 사람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을 같은 눈높이로 바라 본다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일어나기 힘든 일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너무 순간적이라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찰라적이라 할지라도, 진짜 내 앞의 사람을 마주 대할수 있는 순간이 소중한 거란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욕심 많은 나는 그 소중한 순간들이 지속적이지 않다면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 라는 의문을 두고 투덜거렸지만, 숏버스는 우리가 가진 욕심마저도 뒷전으로 밀어둔다. 적어도 그런 순간이 왔다면, 최선을 다해 즐기라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영화 '숏버스'가 말하는 이 솔직한 조언을 이젠 좀 받아들여 볼까?

누군가, 영화에서 어린 모델 남자가 과거 시장이었던 할아버지에게 키스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열려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라고 말했었다. 당시엔, 어떤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젠 좀 감이 잡힌다. 그래, 적어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비록 영구적이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우리가 칼을 갈 차례

필진 칼럼 2009.03.05 06:56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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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의 관심사였던 시네마테크 위탁사업의 공모제 전환이 1년 뒤로 연기되었다. 천만다행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표면에 내세운 시행 연기의 이유가 ‘시기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영진위 임의로 시네마테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음을 의미하고, 공모제로의 전환을 기정사실화하겠다는 방침을 명문화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애초부터 공포탄을 쏘겠다는 심산이었는지 모른다. 원래 첫발은 공포탄이고 실탄 사격은 두 번째부터 아니던가. 언제라도 지원을 끊을 수 있으니 딴 맘 품지 말고 알아서 기라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공모제라는 단어 하나만 던져놓았을 뿐인데, 서울아트시네마와 친구들 영화제를 뒤흔들어놓을 만큼 파급력이 컸다는 점만 놓고 보면 문화체육관광부나 영진위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평할 수 도 있겠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이 땅의 행정가들이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와 소양의 천박함을 확인할 수 있었고, 문화예술마저 자본의 발아래 둘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의 결과물을 목도했다. 또한 다수의 언론 매체가 보여준 무신경한 반응은 철저하게 네티즌의 기호에 의존하고 있는 영화 담론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물론 애초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서울아트시네마와 관객들은 침착하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시네마테크를 지켜내는 힘은 관객으로부터 나올 수 있음을 입증하였고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집된 힘을 저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한편 이번 사태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재정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전체 예산의 30%에 불과하지만 영진위의 위탁사업지원금이 없으면 시네마테크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 재정자립의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는 (약으로 말하자면) 비타민과 당위정이 골고루 들어있는 처방전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의 힘이 비타민이라면 재정자립을 위한 안정적 재원확보는 당위정에 해당할 것이다. 제 아무리 애정 가득한 관객의 지원이 차고 넘친다 해도 그것만으로 버틸 수는 없는 법. 누구보다 극장 측이 더 많이 고민하고 지혜를 짜내고 있을 터이지만, 시네마테크 공모제전환 반대 서명운동과는 별개로 후원회원을 배가시키는 데 힘써야 할 것이고, 언론과의 유기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우호적 지원군을 확보하는 일에도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선량한 후원자를 찾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각계각층을 망라한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이 절실한 때라는 얘기다.

어느 정치인의 말대로, 기나긴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따름이다. 지난 몇 주간이 목검으로 상대와 합을 맞춰보며 서로의 내공을 시험해본 시간이었다면 바야흐로 진검승부의 시간이 도래하였다. 진검승부를 앞둔 무사에게 녹슨 칼은 무용지물일 터. 칼은 무사만 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몇몇 언론과 매체만이 시네마테크문제를 공론화하며 칼끝을 세웠다면, 이제야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 나서서 칼을 갈 차례다.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합심하여 갈아 놓은 칼을 든 장수가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그런 점에서 이번 주말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인 ‘필름라이브러리 무료상영회’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니 이번 주말, 서울아트시네마로 달려가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관객회원에도 가입하자.
Now, Were going to Seoul Art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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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셔너리 로드] 포스터가 '대유적'인 사례라고 생각하는 1인

영화포스터들에 대한 관심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오늘 관람한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영문판과 한국판의 포스터 비교를 하고 싶었다. 가장 눈에 띄는 비교 지점은 한국판의 경우가 포스터에서 문구(文句)가 더 눈에 띈다는 것이다. 포스터가 보다 더 직설적이라는 얘기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붉은 색채로 표현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알아주는 배우의 이름과 '2009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라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미국판보다 굵은(bold) 글자체로, 보다 블랙으로 진하게 해서 강조점을 두드려주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제목이다. 그리고 포스터에서 미국판에는 없는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사랑일까?'라는 문구까지 달려있다.

반면 미국판에서는 영화의 두 주인공들의 이미지를 최대한으로 살려준다. 주연배우와 영화의 제목을 비롯하여 영화에 관한 제작 정보들을 무채색 계열로 하여 제시를 해주었다. 포스터 자체가 균형감이 있는 셈인데, 그것은 포스터 자체에서 정보를 얻는다는 목적보다는 포스터로 하여금 영화를 보다 생각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으로 고안됐음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색상정보로 보자면, 영화에 관한 모든 텍스트적인 정보는 무채색계열로 되어있고, 보다 덜 중요한 제작정보는 그레이 계열로 처리가 되어있다. 영화 자체도 굉장히 담담하게 흘러가는 편인데, 그것의 감각을 담는양 휠러 부부의 일상이 하얀 캔버스에 담기듯 있다. 아마도 시선의 출발점은 바로 휠러 부부의 이미지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그리고 여백이 생기는 아쉬움은 그레이 톤의 제작정보가 채워주고 있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대개 수입되는 국가에 따라 다르게 디자인되기도 한다만은,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포스터의 경우에는 미국에서 출시된 디자인을 그대로 갖고 오되, 보다 직설적인 양식으로 놓아두었고, 영화의 홍보적인 측면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텍스트 정보를 시각적으로 더 부각을 시켰다. 이것은 어떤 작품이냐는 뉘앙스보다는 배우의 이름과 수상 후보에 올랐고, 여우주연상을 탔으니 좋은 작품이라는 배경적인 요인으로 관객을 보다 끌고자 하는 마케팅사의 노력때문이리라. 그런데 씁쓸하다. 이것을 보다 사회적인 면모와 엮어버리면, '어떤 작품'이라기보다는 '누가' 했고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등에 관해서 더 민감하고, 차근한 감상보다는 직설적으로 이끄는 마케팅이 먹힌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수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지만, 그 영화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구들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편향된 시각일 수 있으므로, 사회적인 면모로 '이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 열어두고 논담을 보류하기로 하자.

아쉬움을 이야기하자면 시각적인 면모에서 텍스트 지배적이지 않던 포스터가 한국판으로 와서는 텍스트가 이미지를 역전한 식으로 고안됐다는 점이다. 물론 색채도 완전 빨강이 아니라 채도가 떨어져 붉은 기가 완화된 선홍빛이라 색채적인 면에서는 맞지만, 원래 고안된 디자인적인 맥락에서는 그 일관성과 통일성 혹은 (비록 추측한 형태에서 언급하는 것이긴 하나) 본래적인 의도에 손상을 입힌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도 효과만 좋으면 장땡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포스터에서는 원본에 대한 존중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감을 표하고 싶다. 물론 나의 말은 한국판 포스터 개별이 가지는 미적 맥락이 어울리느냐의 여부를 두고 하는 차원은 아니다. 그리고 더 유감인 것은 지금껏 이런 양식으로 전래된 포스터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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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가 되면, 인문대 과목이 늘상 그러하듯 '자기소개서'를 써오라고 한다. 굳이 인문대 과목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전공들을 테크놀로지 위주로 듣는 것은 심심하여 <프랑스 문학과 예술의 흐름>이라는 과목을 신청했다. 자기소개를 하기 보다는 차라리 원탁에 앉아 수업하는 것이 더욱 소통의 의미에서는 더 클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소개는 상향식이다. 나는 앞 자리에 앉은 학생을 모르며, 그 학생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교수는 우리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나는 교수의 소개서를 못 받아보았다. 72년도 불어불문학과 입학을 하여 거의 34년 선배인 것을 제외하고, 앞으로 수업을 토대로 하여 교수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것을 통해 면밀하다면 면밀하게, 편린으로서라면 지엽적으로 알아가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니 나의 '제언'을 약간 섞어서 자기소개서를 써볼까 생각도 든다.

불어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프랑스 영화를 봤다고 해도 그건 자막을 본 거나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첫 시간에 이야기가 오갈 시는 한국어번역본으로 나왔는데 사실 아쉽다. 언어가 달라서 소통의 맥락이 제한적인 것은 정말로 아쉬운 일이다. 그것이 한국어와 불어의 격차만큼이나, 물론 그것은 통역과 번역과 어학이라는 습득의 장치로 해결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다른 상태'로 규명되기도 어려운 상태로 인식이 시작되면 가슴아픈 상태가 시작되는 것이다. 소통의 불가능성은 소통수단 혹은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통로가 있고, 서로가 원하는 것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충돌을 일으킬 때다. 그럴 때 해결을 보기 위해 몇 가지 타협점이 필요한데, 의견의 타협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개념들에 있어서 함께 인식이 가능한 상태로의 개념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학문의 영역에서는 '개념의 조작적 정의'라고 표현한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회·문화] 교과서에서는 초반부 2단원부터 나오는 걸로 기억한다. 굳이 왜 고교시절의 학습가이드를 들먹이냐면, 소통에 관해서는 일찍 저학년에서부터 (개별 개념지식 자체보다)개념을 상정하는 합의과정을 먼저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면 우리의 갈등은 조금씩 줄어들까. 우리의 상황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까. 배우는 과정에서 그럴 수 있겠느냐는 말에는 나의 오늘의 상황에 대한 한탄이 약간 섞여있음을 밝힌다. 3월 2일과 3일에는 가슴아픈 일들이 있었다. 정작 나는 행복했는데, 주변인들에게는 힘든 일이 다소 있었다. 나로 인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if not, 의 상황이 될 지라도 내 마음대로의 소통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다가 오늘 새벽의 일을 추가하면 그 소통을 보다 '배려'있게 해야한다는 점까지 추가를 하면서 말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봤다. 새학기와 자기소개서, 불어와 한국어, 3월 초반의 개인사와 관련짓기는 자의적이지만, 그러나 나는 나의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있다. 꿈꾸는 상황, 예를 들면 '더 나은 내일을 위해'라든가 '너의 좀 더 다른 모습에 영향을 주기 위해'라는 욕망에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깃들여 있다.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의 욕망, '파리로 떠나는 것'이 좌절된 다음 솀에게 "꼭 파리가 아니어도 됐어요"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투영된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고 한 것이리라. 그러나 프랭크에게는 '파리로 떠나는 것'의 원형은 투영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신경질적으로까지 '변화'를 외쳤고, 그것을 악다구니 쓰는 단계까지 갔으나 '변화'의 개념적 정리는 공유되지 못했던 것 같다. 프랭크는 그녀와의 극적인 다툼으로 서늘한 밤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지낸 다음 날 아침, 오렌지 즙을 짜내 주스를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안도한다. 그녀가 묻는 '달걀을 어떻게 요리할까요'에 그는 다시 일상의 느낌을 얻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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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미국의 상황, 그 안에서의 에이프릴의 휠러 부인으로서의 삶에 공감한 것은 그녀의 삶이 드러내는 원형이 나의 삶의 원형으로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3명의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디 아워스]를 떠올렸는데, 에이프릴의 추후 극적인 선택은 강물에 몸을 떠내려가게 하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의 것,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의 것과도 농후하게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단 여성 (이 글을 쓰는 나는 여성이다.)에 관한 근본적인 원형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보다 보편적인 형태로 승화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보편적인 형태란 아주 근원적인 형태로 존재할 것인데, 그것을 지금 어설프게 '소통의 부재', '이상과 좌절'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개념의 조작적 정의'에 대한 소망과는 배치되는 발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의 해결법이 모호한 것, 그리하여 휠러 부부는 '참 좋은 부부였으나' 이혼을 하고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하는 형태로 그 누구에게도 해결방법을 상식적인 선에서 '긍정적인' 양태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개념의 조작적 정의'에 의해 연구되는 예각화된 사회문제의 논점은 비교적 분명한 해결점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 인생을 대변하는 문학과 예술과 같은 것들은 고민의 원형을 계승하고 담론화를 시키는데, 갈등의 해결에서는 최우선이 있다는 식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죽는 사람들도 있다. 프랭크라는 인격 개체를 존재시키는 것과 에이프릴이라는 개체로 하여금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은 많은 해결짓기 모호한 과정의 인생들이 반영된 논담들이다. 그렇게 해서 기록되고 귀납적으로 재현되는 다층적인 면모들이 나로 하여금, 이런 고민을 낳게 한다.

그러면 나는 여기까지 고민하고, 내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하러 가야겠다. 고민이 공기 중으로 증발하지 않도록 '내가 비록 불어는 못하지만, 선생님으로 하여금 이런 정도의 고민은 해봤습니다'와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쓰려고 하니까 이걸로 통한 소통은 학생들의 편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이 말은 쓸지 말지 고민)'라든가 '필요가 있다면 스피치보다는 차라리 원탁이 더 낫지 않을까요? 다만 학교에는 원탁에서 수업하는 형태는 없겠지만 말입니다'라는 등의 말은 좀 섞어볼 수 있지 않을까? 당황해하시면, 수강변경 기간이니까 다른 전공과목으로 대체해서 들어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다만, 그나저나 내가 하는 방식이 일방통행적인 의사소통방식은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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