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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미약한 시작

네오이마주가 세상에 나온 것이 2005년 10월 31일의 일이니 3년 8개월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해 여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와 박광현 감독의 눈부신 데뷔작 <웰컴 투 동막골>이 숱한 화제를 불러왔고, 뒤이어 서극 감독의 <칠검>과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에 실망한 이들의 비판이 십자포화처럼 난무하던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2005년 가을의 일이었다.


이미 그때도 영화의 유효기간은 한 달을 넘기는 법이 드물었다. 1년은 고사하고 몇 달만 지나도 개별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평자들의 끝없는 담화와 재평가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는 것, 그리하여 오래도록 회자되고 언젠가는 다시 관객과 만나게 되는 것이 개별 영화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라면, 그 작업에 기꺼이 뛰어들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결국 이런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난 영화를 다시 꺼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마당과 기꺼이 이 작업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문가집단의 힘을 빌리기에는 바탕이 취약했고 붐을 일으키는 형태를 취하자니 글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었다. 결국 생각해낸 것은, 영화광들의 소환이었다. 그렇다! 영화광들이어야만 했다. 네오이마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단순히 영화를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관객이 아닌, 소비해버린 영화를 다시 집어 들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집요하게 재평가하고 고함치고 싶은 이들을 중심으로, 영화광들이 모여 영화를 이야기하고 비평하는 웹-진 네오이마주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와일드 번치>의 한 장면을 보면 훔친 자루에서 은이 아닌 쇠뭉치가 나오자 윌리엄 홀덴이 연기하는 ‘파이크’가 실망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는다. "우리도 앞으론 머리를 써야 할 것 같아." 때는 서부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미 자동차와 비행기가 다니는데, 그들은 시대에 낙오된 퇴물 총잡이가 아니던가. 같은 맥락으로 영화가 개봉하고 1년이 지나기도 전에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을 정도로 관객들은 너무 많은 영화와 정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지금이야 말로, 영화광들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네오이마주가 21세기의 영화광과 90년대의 영화광의 평온한 조우와 겸허한 자존심을 소환코자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90년대의 추억의 한 자락이나 붙잡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의 역량과 열정이 지금 영화광보다 월등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 손에 《키노》나 《로드쇼》 《스크린》 유의 잡지를 들고 다니던 그때의 영화광들은 무언가 하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그 무언가는 반드시 영화적이었으며 영화로 세상을 배우고 영화를 매개로 소통했다는 것이다.




다시 영화광을 위하여!

60년대로부터 80년대를 관통하는 리얼리즘의 탐색과 90년대 코리안 뉴시네마를 재평가하는 것이 평론가나 영화학자들의 몫이라면, 적어도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주석은, 그 중심에 있었던 영화광들의 손으로 쓰여 져야 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영화의 조로현상은 비단 충무로의 감독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광들의 세대교체 역시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 90년대에 학교를 다녔거나 갓 사회에 발을 디뎠던 영화광들이라면 현재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 일터인데, 이제야말로 영화가 보여준 세상을 몸소 체험하였고, 세상의 이치를 알 만한 나이니 영화에 대한 안목과 시각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좋은 영화 한 편이라도 더 보겠다던 순수한 꿈틀거림과 오랜 흑백필름 앞에서 눈물 적시며 영화의 선각자를 만나는 가슴 뜨거운 느낌이 사라졌을지라도, 거창한 고민과 열정의 시대에서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을지언정, 선뜻 앞서지 못하는 불안감과 평온함을 추구하는 게으름의 찌꺼기들을 벗어나야 할 때이다. 이 대열에 누구인들 끼지 못할까. 문화학교서울의 사당동 시절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시절을 거쳐 지금의 낙원동까지, 시네필의 성지와도 같은 서울아트시네마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관객들이어도 좋고, 작은 영화와 독립영화에 매료된 관객이라도 좋다. 혹은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관객이어도 무방하다. 검색 포탈보다 정보량이 적다고 영화 전문사이트를 외면하고, 상업영화보다 지루하다고 독립영화를 외면하고, 할리우드 영화보다 스펙터클이 약하다고 한국영화를 외면하다 보면, 한국 영화와 영화담론이 실종 될 런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광은 어떤 영화가 언제 어느 극장에서 개봉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름지기 영화광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혹여 놓칠세라, 한달음에 달려가 구매한 표를 소중하게 쥐고 영화 상영 직전까지 요동치던 그 설레던 마음을 기억하고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진실로 진실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비아 크리스텔이 <마타하리>에서 무슨 옷을 입고 나왔는지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접속>의 수현과 동현이 만나는 피카디리 극장 앞 장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 긴 줄도 마다 않던 열정과, 열화같이 피어오르던 뜨거운 가슴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열정이 다시금 하나 될 때, 한국영화를 위한 또 다른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이제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고마운 이들을 기억하며

네오이마주가 4년을 달려오면서 세상에 펼친 많은 영화이야기들을 자양분삼아 『네오이마주 오프라인 판』 을 펴낸다. 16면 국배판에 격월간 발행이다. 모두들 이미지와 비주얼에 집착하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지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타이포그래피로 채워놓았다. 더러는 생소하고 낯설지도 모른다. 때문에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도록 미려한 타이포그래피를 더하고 여백의 미를 살려 편집했다. 시간이 흐를 수 록 편집과 글의 완성도가 더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창간호의 특성상, 독자의 글을 싣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다음 호부터는 온라인 웹진에서 선택된 독자의 글도 실리게 될 것이다. 네오이마주 오프라인 판은 25일 오늘!, 영화관(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씨네큐브, 아트하우스모모, 미로스페이스, 시네마상상마당)에서 만나실 수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 동안 많은 필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모두 열정적으로 글을 써주었고 나름의 위치에서 기여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오프라인 판 출간을 계기로 그들을 다시 소환코자 한다. 또한 수고로움을 마다 않고 글을 보내준 객원필자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특별히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추천사를 내어준 김영진 평론가와 민병훈 감독의 후의에 각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무엇보다 네오이마주가 오늘까지 달려올 수 있도록 산파는 물론이고 인큐베이터를 자처하여 물심양면 지원과 애정을 아끼지 않은 (주)렉시테크의 장주식 선배와, 힘든 시절임에도 발행비용 고민을 해소시켜준 (주)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독자의 성원이 없었다면 오늘을 맞이하기 힘들었을 터이니 어찌 잊을 것인가.

이제, 창간호를 지난 시간 변함없이 네오이마주를 기억하고 응원을 보내준 독자에게 바친다. 네오이마주는 변함없이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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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sagwacinema.com/ BlogIcon 애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내일 모모에 갑니다.
    제일 먼저 손에 넣어야 겠어요.

    궁금하네요. 어떻게 나왔을지.
    무엇보다..손으로 쓱쓱 넘기고
    기억하고 싶은 곳은 따로 접어놓고
    밑줄도 긋고 하며 아껴 읽고 또 읽을 게 없는 요즘에
    네오이마주의 오프라인판이 무척이나 반갑네요.

    앞으로도 계속 쭉..
    열독할게요.

    2009.06.2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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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균

박찬욱, 그렇다.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 비디오드롬』 (이하 『비디오 드롬』)의 저자 박찬욱이 바로 그 박찬욱이다. [올드보이]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대상을 수상한 직후 촬영한TV 광고에서 "나는 나를 뛰어넘었다"라고 말하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이던 영화 감독 박찬욱. 지금은 흥행과 작품,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빠른 속도로 거장이 되어가고 있는 영화 감독이지만 그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의 참패 이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는 <스크린>, <티비 저널>등의 잡지에 영화평을 게재하였었고 그렇게 써냈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편찬해내게 되니 그것이 바로 『비디오 드롬』인 것이다. 그러니까, 『박찬욱의 오마주』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개정증보판 대신, 굳이 시중에서 찾아 볼 수도 없는 『비디오 드롬』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은 미래를 점칠 수 없었고 흥행에 실패한 데뷔작 한 편이 전부인, 초라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던 어느 영화광 출신 연출자의 초짜 시절을 보다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다는 것. 훗날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게 될 영화감독으로서의 위용은 아직 싹을 틔우기 전이지만 미래의 명감독을 꿈꾸던 어느 열혈 영화광의 무한한 애정과 자양분, 그리고 그 출발점을 확인하기엔 더 없이 좋은 자료가 될 만한 책이다.


때는 1994년. 두 번째 작품의 연출 기회를 잡기 위해 애쓰던 어느 영화 감독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만약 박찬욱이 계속 필봉을 휘두르며 평론 작업만 했었더라도 그는 제법 유명한 평론가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야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게 될 시기는 한참 늦춰졌을 터. 박찬욱이 펜 대신 카메라를 잡게 된 것은 분명 대한민국 영화계의 대단한 축복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평론집 또한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우선 자신이 만든 영화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박찬욱의 글들은 대단히 재미있다. 그는 현학적인 문구들을 마구 남발해가며 자신의 지적 우월함을 뽐내는 짓 따윈 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광다운 애정과 열정으로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글들을 뽑아내며 그 속에서 거의 문화탐식증이라 할만한 다양한 식성의 취향들을 풀어놓는다. 한마디로 오만하지 않되 충분한 깊이를 지녔고 그 속은 풍부한 감수성으로 넘쳐나는 글이었다. 그는 영화평이 지식인의 난해한 말장난이 아니라 애호가의 감성으로 충만한 지적 유희임을 자신의 글로 입증해냈었다. 리뷰의 대상으로 선정된 영화들이 영화사의 고전걸작뿐 아니라 당시에 모두 비디오로 출시된 작품들이고 아직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던 홍콩제 액션영화에도 당당히 비평의 한 자리를 마련해주려는 시도를 했던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첩혈쌍웅] 뿐만 아니라 개봉 당시 처절한 실패를 겪어야 했던 [영웅본색3]에까지 예의 그 풍부한 문장력을 할애한 것으로 보면 그의 필력은 이미 너비와 깊이를 두루 겸비한 수준이었다. 킬링타임용으로 치부되곤 하는 할리우드 오락영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샘 레이미 감독의 [다크맨]에서 그는 허구의 아이덴티티가 견뎌낼 수 있는 한계시간을 이야기 했었고 [빽 투 더 퓨쳐2]를 통해서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논했다. [첩혈쌍웅]의 그 과장된 총격전을 심한 건망증에 비유해서 이야기 할 때는 다소 건조한 다른 평론가의 글들과는 확실히 차별화 되는 문학적 감수성까지 맛볼 수 있다. 별 넷 걸작, 별 둘 졸작, 하는 식의 단편적인 평가를 벗어나 박찬욱의 평론은 영화를 보는 다양한 시선과 영화관람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데 더 주력했다고 할 수 있겠다.


쓰여진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아도 박찬욱의 문체는 여전히 신선하다. 이 책과 [달은 해가 꾸는 꿈], 그리고 [삼인조]. 박찬욱이라는 영화 감독이 어떻게 단련되어 왔는지 알 수 있는 자료들이다. 그가 겪은 실패들, 그가 선배들의 영화로부터 배운 것들. [공동경비구역 JSA]와 복수 3부작, 그리고 개봉을 앞둔 [박쥐]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세계를 구성하는 근간에 대한 것들이 이 책에 실린 그의 평론과 앞선 두 편의 영화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단순히 국제영화제에서의 환호성만을 기억하기 보다 이렇게 지금까지의 행보를 찬찬히 되 집어 보는 일 또한 영화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일 아닐까. 지금도 DVD를 돌려보고 인터넷에 영화평을 쓰고 있을 수많은 대한민국의 영화광들을 위하여,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90년대 영화광의 발명자로 떠오른 타란티노의 이야기만 읊어대지 말고 우리에게도 그 못지않은 영화광이 있었음을 알려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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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bcd68.tistory.com BlogIcon hee68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의 책에 나왔던 여러 영화를 애써 찾아봤었습니다. 제 입맛에 맞는 영화들이였죠. ㅋㅋ

    2009.04.22 09:43 신고

2008.01.22


혹시 홍대의 ‘영화도서관 빛’을 아는가? 신촌의 ‘O.F.I.A’는? 만약 저 두 곳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저주받은(?) 영화광이다. DVD도 없었고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번듯한 시네마떼끄를 알지도 못하던 시절에 영화광들의 발걸음이 모아졌던 곳. 그러니까 영화탄생 100주년으로 한참 떠들썩했던 1995년 당시, 얼터너티브 영화잡지라는 멋진 캐치 프레이즈를 달고 세상에 나온 키노를 가방 한 귀퉁이에 챙겨 놓은 채 내가 찾아 다니던 곳 역시 영화도서관 빛과 O.F.I.A였던 것이다. 본격적인 예술영화 전용개봉관의 깃발을 올리게 될 동숭아트센터는 아직 오픈 전이었고 당시의 나에게 무슨 문화원이니 하는 곳은 영 익숙하질 못했다. 그리고 시네마떼끄라는 것도 우리나라에 있기나 한 건지,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지도 못하던 때였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를 통해서 소문으로만 접해온 유명 저패니메이션과 시대를 막론한 각종 예술영화를 구비해놓았다는 영화도서관 빛과 O.F.I.A를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로드쇼 같은 잡지를 통해서 희귀 비디오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구할 수 있긴 했었다. 비디오 체인점인 ‘으뜸과 버금’이나 ‘영화마을’에 가면 국내에 출시는 되었으되 좀처럼 찾기 힘든 희귀 비디오들을 구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 하지만 이래 저래 자주 나가게 되는 시내 번화가가 아닌 다음에야 주소만 가지고 저 체인점들을 직접 찾아 나선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고 출시가 되었다는 영화들의 보존 상태도 마냥 신뢰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다.

단지 테이프 1개에 구겨 넣기 위해, 혹은 연소자 관람가로 등급을 맞추기 위해 비디오 출시 과정에서 영화를 도려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시절,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다는 영화들도 저 무지막지한 망나니의 칼질을 피하지 못했는데 아는 사람만 아는, 소위 예술영화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최소한 ‘빛’이나 ‘O.F.I.A’ 같은 곳에서만큼은 극단적인 자본의 논리와 검열의 감시망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퀴퀴한 골방 같은 곳에 자리를 마련한 저 두 곳을 좋아했다. 그 시절에 내가 말하는 시네마떼끄는 바로 ‘빛’과 ‘O.F.I.A’였다. 왠지 이름도 멋지지 않은가? 영화도서관 빛도 그렇거니와 Our Future In Angle, 해석하면 앵글 안에 담긴 우리의 미래라는 문장의 이니셜 약자인 O.F.I.A 또한 그러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일에만 상영회를 갖고 평상시에는 공 테이프에 영화를 복제해서 대여해주는, 시네마떼끄라기 보다는 비디오떼끄라는 명칭이 더 잘 어울릴 그런 장소들이긴 했지만 뭐가 되었든 상관 없었다. 힘들게 빌려온 영화에 시종일관 장마철 소낙비가 좍좍 쏟아지는 당혹감도, 과격한 노이즈 현상으로 몇몇 장면이 달아나버리는 황당함도, 현재 가능한 최대한의 자유를 확보했다는 그 뿌듯함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왕에 보는 거, 화질도 좋고 음향도 선명하면 더 좋기야 하겠지만 원하는 것들을 다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위질 안된 영화를 그대로 받아 보는 것이 더 중요할 터.

언제까지 소문과 다른 이의 글을 통해서만 갈증을 달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때마침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불어왔던 바람도 호기심을 부채질 했다. 그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거다! 힘겹게 곡괭이 질을 하고 삽으로 땅을 파낸 끝에 찾아낸 수맥에서 까짓거 물이 수도꼭지마냥 콸콸 쏟아지지 않으면 좀 어떻단 말인가? 거기에 진흙 좀 섞여서 나오면 또 어떻고? 어쨌든 지하에서 튀어나온 암반수면 만사 O.K인 거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화질 안 좋고 소리도 후진 복제 비디오 테이프라 하더라도 가위질 안된 원형 그대로의 영화였기에 좋았던 것이다. 우리가 원했던 건 누군가 화면 위에 살려놓은 창조물 그 자체로서의 영화였지 최상급의 화질과 음향이 갖춰진 영상 데이터가 아니었다. 게다가 더 좋은 내일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지금은 진흙이 뒤섞인 물이 감질나게 졸졸졸 새어 나오는 것에 불과할지 몰라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한 여름 소낙비처럼 시원하게 쏟아져 내려 모두의 갈증을 채워줄 것이라는 바람 말이다. 영화잡지들의 잇따른 출간, 예술영화 전용관의 오픈, 소문으로만 듣던 예술영화들의 정식 비디오 출시, 영화탄생 100주년을 위시해 벌어진 이 일련의 사건들이 약속하는 것이 무엇인진 너무도 명백했다. 말 그대로, 앵글 속의 우리들 미래가 마냥 희망차 보였던 순간. 물론 어느 정도는 그 희망대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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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 안 좋은 복제 테이프가 아닌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진짜 시네마떼끄가 지척간에 자리를 잡았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전설의 걸작들은 DVD 타이틀로도 상당수 출시되어 있는 상황이다. 거기다 독립영화들도 꾸준히 공개되는 중이다. 이 정도면 그 희망에 충분히 부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석연찮은 기분은 과연 뭐란 말인가? 예전에 그랬다 해서 아니, 예전에도 정말 그랬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를 반드시 근엄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는 거다. 제 아무리 숭고한 예술이면 뭐하나, 내가 재미 없다면 그건 그냥 재미 없는 영화일 뿐인 것이다. 예술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금의 아쉬움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 하나씩 문을 닫은 동네 비디오샵과 함께 부가시장은 몰락했다. 전설의 걸작들이 DVD 타이틀로 출시는 되었으되 격에 맞지 않게 형편 없는 가격으로 팔리는 중이다. 회사에 가면 술집에서 수십 만원 쓰는 것을 아까워 않는 사람들이 정작 극장 입장료는 아깝다며 공짜로 다운 받은 영화들을 인터넷으로 보고 있다.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야기들, “영화를 왜 돈 내고 봐?” 부탁하건대 공짜로 쳐봤으면 영화가 어떻느니 저떻느니 하지 말고 그냥 닥쳐줬으면 좋겠다. 문득 요즘 세상에 영화를 하나의 창조물로 대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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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의 사람들이 영화를 언제든지 삭제 가능한 데이터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쏟아져 나오는 최신 데이터에 대한 정보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심사 숙고한 비평은 불필요한 행위로 여기는 것이겠지. 사람들에게 비평을 읽어달라고 애원하진 않겠지만 요즘 누가 비평 따위를 읽느냐는 시선은 곤란하다. 최신 시류와 다른 길을 가는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뭐라 해도 영화란 결국엔 문화의 일부이다. 그것도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는 문화. 어차피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고전이니 비평이니 시네마떼끄니 하는 것이 아니고 대박 영화 하나 튀어 나와서 자동차 연간 수출액에 맞먹는 거액의 돈을 뭉탱이로 벌어들이는 것일 테니까.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영화 따위 어찌되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 경제만 살리면 되지. 그들에게 영화란 문화도, 역사도, 전통도 아니다. 그저 돈이 될 수 있는 상품에 불과할 뿐. 저 높으신 곳에 있는 윗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니냐고? 천만에. 지난해 [로보트 태권V]의 복원판 필름이 극장 개봉되었을 때 일부 팬층이 보인 반응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로보트 태권 V]를 오리지널 필름으로 극장에서 다시 보게 되어 좋긴 한데, 복원작업에 들일 비용으로 새 시리즈를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았겠냐는 것이 그들의 응답이었다.

저들 중에는 나름대로 국산 애니메이션 애호가를 자청하는 이들도 있었을 터. 난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 남대문이 손상된다면 그냥 허물고 외국인 관광객 좀 끌어들일만한 오리엔탈 풍의 새 건물을 짓자고 할 것인가? 과연 그럴 것인가? 누군가 말했다. 역사와 전통이란 보존과 축적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라고.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을 보기 위해 외국 박물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해외 여행도 가고 한국 미술의 고전도 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일세 얼씨구나 하며 좋아할 것인가?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 미술계의 걸작을 이제 백년남짓한 역사를 지닌 영화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김홍도나 신윤복의 예술활동도, 그 때 당시에는 돈 안 되는 딴따라짓으로 치부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영화계에는 이미 저런 만행이 수 차례 자행되었다. 돈 몇 푼에 원판 필름을 팔아먹거나 관리 소홀로 손상 및 분실되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경우. 그 덕택에 우린 한국 최초의 영화라는 [아리랑]을 지금도 볼 수 없다. 최초의 만화영화 [홍길동전]도 마찬가지다. 몇몇 고전들은 해외에서 역으로 공수해온 탓에 외국어 자막이 깔려 있기도 하다. 불과 삼십 년도 채 안된 영화인데 도통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네 비디오 가게 몇 군데 문 닫으니 예전엔 쉽게 볼 수 있던 영화도 이젠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건 과연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지난 2003년, 키노가 폐간되었을 때 사뭇 비장한 심정으로 키노의 최종호를 펼쳐 보았다가 분노에 가까운 심정으로 내동댕이 쳐버린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무지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평이란 게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영화를 예술로 받아들인다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때 차라리 잘 망했다 싶었던 키노가 지금은 참 그립다. 키노가 그립고 키노라는 잡지가 발간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최소한 그 때는 영화도 하나의 문화 유산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름 큰 소리 칠 수 있었다. 아, 물론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이 마냥 암담하단 소리는 아니다. ‘진짜’ 시네마떼끄도 있고, 그곳에서 영화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며 나 같은 사람이 부족한 솜씨나마 글을 써 올릴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영화탄생 100주년에 꿈꾸던 앵글 속의 미래는 나름 희망찬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을 다 설득할 수는 없는 법일 테니 지금의 자리에서 먹고 사는 일에도 틈틈이 신경 써가며 굳세게 버텨내는 것이 내가, 혹은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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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쟝 삐에르 멜빌 감독의 [암흑가의 세 사람]을 보았다. 1980년대 지역 유선방송의 단골 레파토리가 바로 알랑 들롱의 작품들이었는데 그때 얼렁뚱땅 보고 90년대 중반, 동네 비디오샵 한 구석에 쳐 박힌 바로 그 난도질 버전의 비디오테이프로 대여해서 본 뒤, 이번에 다시 제대로 된 필름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멜빌을 존경한 영화인들, 혹은 멜빌의 미학을 계승한 감독들과 같은 복잡한 영화사의 계보가 아니었다. 처음 알랑 들롱이란 배우를 보고 “저 아저씨 참 잘 생겼네”라며 감탄사를 내뱉던 어린 시절의 나와 분명히 출시되었다던 [암흑가의 세 사람] 비디오테이프를 찾아 동네 비디오샵 구석구석을 두리번대던 스물한 살 때의 내가 속해 있던 바로 그 시간들이었다. 여기에 재미있는 영화 한편 봤다는 만족감까지. 따지고 보면 영화란 결국 지나버린 시간들을 보존하는 매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시네마떼끄의 친구들’ 행사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두용 감독 특별전을 보게 되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오래된 영화 뭐 하러 힘들게 찾아서 보나?’라고 반문하겠지만 내가 그날 받은 느낌은 단지 오래된 영화 한편 봤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들의 한 묶음이, 그 끊어져 있던 연결고리가 다시 되살아난 듯한 감동이었다. 영화가 문화 유산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백 번 해봐야 소용없는 이야기, 그래도 난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고 싶다. 정말 폐쇄적인 쪽은 고전이니 예술이니 하는 어려운 말들을 주절대는 우리가 아니라 물질 가치로 환산되는 것 이외의 모든 내재적 가치들을 무시하려 드는 그들이라고 말이다. 물론 “뭐가 어찌 되든 간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인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 눈에는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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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oonworx.egloos.com/ BlogIcon moonworx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가 돈에 뒤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8.03.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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