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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서관 빛'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1.22 영화광시대,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1)
2008.01.22


혹시 홍대의 ‘영화도서관 빛’을 아는가? 신촌의 ‘O.F.I.A’는? 만약 저 두 곳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저주받은(?) 영화광이다. DVD도 없었고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번듯한 시네마떼끄를 알지도 못하던 시절에 영화광들의 발걸음이 모아졌던 곳. 그러니까 영화탄생 100주년으로 한참 떠들썩했던 1995년 당시, 얼터너티브 영화잡지라는 멋진 캐치 프레이즈를 달고 세상에 나온 키노를 가방 한 귀퉁이에 챙겨 놓은 채 내가 찾아 다니던 곳 역시 영화도서관 빛과 O.F.I.A였던 것이다. 본격적인 예술영화 전용개봉관의 깃발을 올리게 될 동숭아트센터는 아직 오픈 전이었고 당시의 나에게 무슨 문화원이니 하는 곳은 영 익숙하질 못했다. 그리고 시네마떼끄라는 것도 우리나라에 있기나 한 건지,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지도 못하던 때였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를 통해서 소문으로만 접해온 유명 저패니메이션과 시대를 막론한 각종 예술영화를 구비해놓았다는 영화도서관 빛과 O.F.I.A를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로드쇼 같은 잡지를 통해서 희귀 비디오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구할 수 있긴 했었다. 비디오 체인점인 ‘으뜸과 버금’이나 ‘영화마을’에 가면 국내에 출시는 되었으되 좀처럼 찾기 힘든 희귀 비디오들을 구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 하지만 이래 저래 자주 나가게 되는 시내 번화가가 아닌 다음에야 주소만 가지고 저 체인점들을 직접 찾아 나선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고 출시가 되었다는 영화들의 보존 상태도 마냥 신뢰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다.

단지 테이프 1개에 구겨 넣기 위해, 혹은 연소자 관람가로 등급을 맞추기 위해 비디오 출시 과정에서 영화를 도려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시절,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다는 영화들도 저 무지막지한 망나니의 칼질을 피하지 못했는데 아는 사람만 아는, 소위 예술영화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최소한 ‘빛’이나 ‘O.F.I.A’ 같은 곳에서만큼은 극단적인 자본의 논리와 검열의 감시망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퀴퀴한 골방 같은 곳에 자리를 마련한 저 두 곳을 좋아했다. 그 시절에 내가 말하는 시네마떼끄는 바로 ‘빛’과 ‘O.F.I.A’였다. 왠지 이름도 멋지지 않은가? 영화도서관 빛도 그렇거니와 Our Future In Angle, 해석하면 앵글 안에 담긴 우리의 미래라는 문장의 이니셜 약자인 O.F.I.A 또한 그러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일에만 상영회를 갖고 평상시에는 공 테이프에 영화를 복제해서 대여해주는, 시네마떼끄라기 보다는 비디오떼끄라는 명칭이 더 잘 어울릴 그런 장소들이긴 했지만 뭐가 되었든 상관 없었다. 힘들게 빌려온 영화에 시종일관 장마철 소낙비가 좍좍 쏟아지는 당혹감도, 과격한 노이즈 현상으로 몇몇 장면이 달아나버리는 황당함도, 현재 가능한 최대한의 자유를 확보했다는 그 뿌듯함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왕에 보는 거, 화질도 좋고 음향도 선명하면 더 좋기야 하겠지만 원하는 것들을 다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위질 안된 영화를 그대로 받아 보는 것이 더 중요할 터.

언제까지 소문과 다른 이의 글을 통해서만 갈증을 달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때마침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불어왔던 바람도 호기심을 부채질 했다. 그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거다! 힘겹게 곡괭이 질을 하고 삽으로 땅을 파낸 끝에 찾아낸 수맥에서 까짓거 물이 수도꼭지마냥 콸콸 쏟아지지 않으면 좀 어떻단 말인가? 거기에 진흙 좀 섞여서 나오면 또 어떻고? 어쨌든 지하에서 튀어나온 암반수면 만사 O.K인 거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화질 안 좋고 소리도 후진 복제 비디오 테이프라 하더라도 가위질 안된 원형 그대로의 영화였기에 좋았던 것이다. 우리가 원했던 건 누군가 화면 위에 살려놓은 창조물 그 자체로서의 영화였지 최상급의 화질과 음향이 갖춰진 영상 데이터가 아니었다. 게다가 더 좋은 내일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지금은 진흙이 뒤섞인 물이 감질나게 졸졸졸 새어 나오는 것에 불과할지 몰라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한 여름 소낙비처럼 시원하게 쏟아져 내려 모두의 갈증을 채워줄 것이라는 바람 말이다. 영화잡지들의 잇따른 출간, 예술영화 전용관의 오픈, 소문으로만 듣던 예술영화들의 정식 비디오 출시, 영화탄생 100주년을 위시해 벌어진 이 일련의 사건들이 약속하는 것이 무엇인진 너무도 명백했다. 말 그대로, 앵글 속의 우리들 미래가 마냥 희망차 보였던 순간. 물론 어느 정도는 그 희망대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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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 안 좋은 복제 테이프가 아닌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진짜 시네마떼끄가 지척간에 자리를 잡았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전설의 걸작들은 DVD 타이틀로도 상당수 출시되어 있는 상황이다. 거기다 독립영화들도 꾸준히 공개되는 중이다. 이 정도면 그 희망에 충분히 부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석연찮은 기분은 과연 뭐란 말인가? 예전에 그랬다 해서 아니, 예전에도 정말 그랬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를 반드시 근엄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는 거다. 제 아무리 숭고한 예술이면 뭐하나, 내가 재미 없다면 그건 그냥 재미 없는 영화일 뿐인 것이다. 예술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금의 아쉬움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 하나씩 문을 닫은 동네 비디오샵과 함께 부가시장은 몰락했다. 전설의 걸작들이 DVD 타이틀로 출시는 되었으되 격에 맞지 않게 형편 없는 가격으로 팔리는 중이다. 회사에 가면 술집에서 수십 만원 쓰는 것을 아까워 않는 사람들이 정작 극장 입장료는 아깝다며 공짜로 다운 받은 영화들을 인터넷으로 보고 있다.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야기들, “영화를 왜 돈 내고 봐?” 부탁하건대 공짜로 쳐봤으면 영화가 어떻느니 저떻느니 하지 말고 그냥 닥쳐줬으면 좋겠다. 문득 요즘 세상에 영화를 하나의 창조물로 대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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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의 사람들이 영화를 언제든지 삭제 가능한 데이터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쏟아져 나오는 최신 데이터에 대한 정보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심사 숙고한 비평은 불필요한 행위로 여기는 것이겠지. 사람들에게 비평을 읽어달라고 애원하진 않겠지만 요즘 누가 비평 따위를 읽느냐는 시선은 곤란하다. 최신 시류와 다른 길을 가는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뭐라 해도 영화란 결국엔 문화의 일부이다. 그것도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는 문화. 어차피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고전이니 비평이니 시네마떼끄니 하는 것이 아니고 대박 영화 하나 튀어 나와서 자동차 연간 수출액에 맞먹는 거액의 돈을 뭉탱이로 벌어들이는 것일 테니까.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영화 따위 어찌되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 경제만 살리면 되지. 그들에게 영화란 문화도, 역사도, 전통도 아니다. 그저 돈이 될 수 있는 상품에 불과할 뿐. 저 높으신 곳에 있는 윗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니냐고? 천만에. 지난해 [로보트 태권V]의 복원판 필름이 극장 개봉되었을 때 일부 팬층이 보인 반응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로보트 태권 V]를 오리지널 필름으로 극장에서 다시 보게 되어 좋긴 한데, 복원작업에 들일 비용으로 새 시리즈를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았겠냐는 것이 그들의 응답이었다.

저들 중에는 나름대로 국산 애니메이션 애호가를 자청하는 이들도 있었을 터. 난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 남대문이 손상된다면 그냥 허물고 외국인 관광객 좀 끌어들일만한 오리엔탈 풍의 새 건물을 짓자고 할 것인가? 과연 그럴 것인가? 누군가 말했다. 역사와 전통이란 보존과 축적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라고.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을 보기 위해 외국 박물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해외 여행도 가고 한국 미술의 고전도 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일세 얼씨구나 하며 좋아할 것인가?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 미술계의 걸작을 이제 백년남짓한 역사를 지닌 영화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김홍도나 신윤복의 예술활동도, 그 때 당시에는 돈 안 되는 딴따라짓으로 치부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영화계에는 이미 저런 만행이 수 차례 자행되었다. 돈 몇 푼에 원판 필름을 팔아먹거나 관리 소홀로 손상 및 분실되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경우. 그 덕택에 우린 한국 최초의 영화라는 [아리랑]을 지금도 볼 수 없다. 최초의 만화영화 [홍길동전]도 마찬가지다. 몇몇 고전들은 해외에서 역으로 공수해온 탓에 외국어 자막이 깔려 있기도 하다. 불과 삼십 년도 채 안된 영화인데 도통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네 비디오 가게 몇 군데 문 닫으니 예전엔 쉽게 볼 수 있던 영화도 이젠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건 과연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지난 2003년, 키노가 폐간되었을 때 사뭇 비장한 심정으로 키노의 최종호를 펼쳐 보았다가 분노에 가까운 심정으로 내동댕이 쳐버린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무지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평이란 게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영화를 예술로 받아들인다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때 차라리 잘 망했다 싶었던 키노가 지금은 참 그립다. 키노가 그립고 키노라는 잡지가 발간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최소한 그 때는 영화도 하나의 문화 유산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름 큰 소리 칠 수 있었다. 아, 물론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이 마냥 암담하단 소리는 아니다. ‘진짜’ 시네마떼끄도 있고, 그곳에서 영화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며 나 같은 사람이 부족한 솜씨나마 글을 써 올릴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영화탄생 100주년에 꿈꾸던 앵글 속의 미래는 나름 희망찬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을 다 설득할 수는 없는 법일 테니 지금의 자리에서 먹고 사는 일에도 틈틈이 신경 써가며 굳세게 버텨내는 것이 내가, 혹은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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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쟝 삐에르 멜빌 감독의 [암흑가의 세 사람]을 보았다. 1980년대 지역 유선방송의 단골 레파토리가 바로 알랑 들롱의 작품들이었는데 그때 얼렁뚱땅 보고 90년대 중반, 동네 비디오샵 한 구석에 쳐 박힌 바로 그 난도질 버전의 비디오테이프로 대여해서 본 뒤, 이번에 다시 제대로 된 필름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멜빌을 존경한 영화인들, 혹은 멜빌의 미학을 계승한 감독들과 같은 복잡한 영화사의 계보가 아니었다. 처음 알랑 들롱이란 배우를 보고 “저 아저씨 참 잘 생겼네”라며 감탄사를 내뱉던 어린 시절의 나와 분명히 출시되었다던 [암흑가의 세 사람] 비디오테이프를 찾아 동네 비디오샵 구석구석을 두리번대던 스물한 살 때의 내가 속해 있던 바로 그 시간들이었다. 여기에 재미있는 영화 한편 봤다는 만족감까지. 따지고 보면 영화란 결국 지나버린 시간들을 보존하는 매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시네마떼끄의 친구들’ 행사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두용 감독 특별전을 보게 되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오래된 영화 뭐 하러 힘들게 찾아서 보나?’라고 반문하겠지만 내가 그날 받은 느낌은 단지 오래된 영화 한편 봤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들의 한 묶음이, 그 끊어져 있던 연결고리가 다시 되살아난 듯한 감동이었다. 영화가 문화 유산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백 번 해봐야 소용없는 이야기, 그래도 난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고 싶다. 정말 폐쇄적인 쪽은 고전이니 예술이니 하는 어려운 말들을 주절대는 우리가 아니라 물질 가치로 환산되는 것 이외의 모든 내재적 가치들을 무시하려 드는 그들이라고 말이다. 물론 “뭐가 어찌 되든 간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인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 눈에는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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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oonworx.egloos.com/ BlogIcon moonworx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가 돈에 뒤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8.03.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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