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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탐방 네 번째이자 마지막 인터뷰는 연세대학교 영화 동아리 '프로메테우스‘이다. 지금 프로메테우스는 제 2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동아리 위기론‘이라는 말을 프로메테우스 앞에서 꺼내기에는 민망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침체기를 겪었던 프로메테우스는 06학번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한 학번 당 10명 내외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4평 남짓한 동아리방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이들은 매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주말에도 함께 극장을 서성이며 영화로 수다를 떤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선배들이 끌어주고 후배들이 선배들을 따르는 가운데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얼핏 듣기에는 여느 동아리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전통적인 동아리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고 있다. 동아리와 학내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선후배간 위계구조를 무너뜨린 일은 혁신적이다. 수직구조는 수평구조로 바뀌었다. 선후배간 터울이 없어져가고 있으며, 동시에 이들은 선배들이 영화에 갑옷처럼 씌워 놓은 무거운 지식을 벗겨내고 있다. 과거 선배들은 구조주의 기호학이나 심리학에 근거해서만 영화를 분석했고 지나치게 영화 문법을 강조했다. 하지만 영화는 문법이나 제반 지식이 없어도 접근 할 수 있는 예술이다. 즉 누구나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예술이 바로 영화라는 게 프로메테우스의 생각이다. 이처럼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영화를 해석하는 획일화된 시선을 거부하고 다양한 시선을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영화가 나누어주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지금 프로메테우스는 영화에게 다가가는 중이다. 동시에 자신들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영화를 두 손 들고 환영하고 있다. 기획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 아직, 영화 동아리가 건재함을 확인한다. 역시, 절망이 있기에 희망을 찾을 수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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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훈 : 각자 소개를 부탁한다.

이정은 :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06학번이다. 프로메테우스는 1학년 때부터 활동했고 2007년에 회장을 역임 했다.

김지현 : 중어중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지난 해 부터 활동했다.

안성용 : 철학과 03학번이다. 1학년 때부터 프로메테우스에서 활동했고, 전역하고 동아리에 다시 나온 지 3개월 정도 됐다.


이도훈 : 동아리 활동은 어떤 게 있나.

이정은 : 방학 때마다 동아리 회원들이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단편 영화를 만든다. 방학 때 만든 단편 영화로 1학기 초에는 상영회를 한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상영회로, 동아리 회원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직접 만든 영화를 함께 본다. 그리고 축제 때가 되면 주점을 하는데, 주점에서 영화퀴즈를 해서 동아리를 소개하고 동아리의 특색을 학교 친구들에게 알리는데 주력한다. 1학기에 큰 행사 하나로 전주국제영화제 참여가 있다. 또 학기가 끝날 때 즈음해서 다 같이 모여서 밤을 새서 영화를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방학 때는 스터디를 하는데, 주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간사를 맡아서 스터디를 한다. 예를 들어서 작년에는 감독론을 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세계를 스터디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식이다. 2학기 사업 중 가장 큰 행사는 상영회다. 이때는 동아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부 사람들도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작년에는 상영회가 실패했다. 상영회의 목적이 불투명했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홈커밍 비슷하게 동아리 회원의 친구나 지인을 초청해서 상영회를 했는데, 영화제 성격이 명확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홍보가 부족했던 것도 실패의 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게 많은 영화제였다. 후회가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올해는 영화제를 크게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도훈 : 매주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은 따로 없나.

이정은 : 매주 목요일 마다 감상상회를 한다. 학기 초에 매주 하게 될 감상회의 간사를 미리 정해놓는다. 간사가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하면, 감상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미리 그 영화를 보고 와서 감상회 다 함께 토론을 한다.


이도훈 : 정은 씨가 06학번인데, 지금 활동하는 동기들은 몇 명 정도인가?

이정은 : 아홉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이도훈 : 지현씨는 07학번이다. 동아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몇 명의 동기가 있었고 지금까지 남아서 활동하는 사람은 몇 명인가?

김지현 : 원래 동아리 신입생 모집 때는 엄청 많이 들어오지 않나. 내가 동아리에 가입했던 학기 초에는 대략 30명 넘게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1학기 때 들어온 신입생 중에 남은 사람은 4~5명이었다. 2학기 때 신입생이 많이 들어왔고, 지금까지 활동하는 사람은 모두 19명 정도다.


이도훈 : 와! 놀랍다.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는 건가? 지현 씨와 정은 씨가 동아리에 들어오게 된 사연을 듣고 싶다.

이정은 :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에 장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영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했었다. 그 때부터 대학에 가면 영화 동아리에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연세대 입학하고 나서 영화동아리를 직접 찾아 나섰고, 동아리 소개지를 보고 가입했었다.


이도훈 :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나.

이정은 : 연출이나 제작은 아니지만 영화 산업에 종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도훈 : 그럼 왜 영화과를 가지 않고, 영문과를 지원 했나.

이정은 : 영화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영화를 연출할 정도의 재능이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솔직히 영화감독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어야 되지 않나.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영화과에 지원하는 건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모험을 하기보다는 우선 대학에서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고, 그 이후에 내 갈 길을 찾아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도훈 : 지현씨도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영화를 좋아 했나?

김지현 : 고등학교 이전에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영화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누구나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 않나. 공부가 하기 싫을 때면 극장으로 갔다. 내게 영화와 영화가 있는 극장은 일종의 도피처였던 거다. 마침 학교 근처에 씨네큐브나 미로스페이스처럼 예술영화를 틀어주는 곳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대학입학 전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대학에 들어오면 영화 동아리에 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도훈 : 프로메테우스의 첫인상은 어땠나?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영화동아리였을 텐데.

김지현 : 영화동아리라고 하면 영화를 많이 찍을 줄 알았다. 막상 들어와서 보니, 학기 중에는 영화를 찍지 않고 방학 때만 찍더라. 왜 좀 더 많이 찍지 않을까? 하면서 조금 아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학교생활을 해보니 동아리 생활과 학업 병행이 힘든 걸 알게 되었고, 지금처럼 방학 때 한 번 찍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도훈 : 안성용 씨는 1학년 때부터 영화동아리를 했고, 2학년 때는 영화를 하기 위해서 컴퓨터 공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했다던데.

안성용 : 영화가 좋아서 영화 동아리에 가입한 건, 두 친구와 같다. 동아리 활동하면서 내가 얻은 건 ‘나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내 스스로 영화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고, 처음에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과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최후의 비겁한 마음이 내 발목을 잡더라.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온 학교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던 거다. 학벌에 대한 미련이라고 할까. 내 나름의 고민의 결과이자 핑계라고 한다면, 영화를 하기 위해서도 인문학적인 베이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4년 동안 철학을 공부하고, 나머지 2년 동안은 연출 공부를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도훈 : 지금까지 세 분께 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다. 한 학번에 19명이 활동한다거나, 신입생 모집 때 30명이 넘게 온다는 건 90년대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즈음 영화동아리뿐만 아리나 대부분의 동아리가 신입생을 받지 못할 정도로 침체기라고 하던데.

이정은 : 동아리가 침체기라는 이야기는 조금 들은 것 같다. 다른 동아리 중 일부는 벌써 대가 끊겼다는 소리도 들리고. 전반적으로 동아리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친구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굳이 동아리 모임을 통해서 사람을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동아리 활동보다는 편한 친구를 만나서 어울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도훈 : 지현씨가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도 프로메테우스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나.

김지현 : 내가 동아리에 처음 들어왔던 2007년 1학기 때만해도 동아리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2007년 2학기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인 원인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동아리 내 분위기가 편안해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든 것 같다. 보통 영화동아리라고 하면 주위에서 부담을 많이 느낀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친구들도 영화동아리라고 하면 지레 겁먹으며, 자기는 영화에 아는 게 없다며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겁내더라. 하지만 영화에 대해서 잘 몰라도 동아리에 들어와서 같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거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도훈 : 안성용 씨는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요즈음 신입생들을 바라보면 성용씨가 활동하던 때와 차이점이 보이는지.

안성용 : 일단 잘 논다. 그게 진짜 큰 변화인 것 같다. 나 때만 해도 정말 못 놀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학구적인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아리 활동 할 때는 영화이야기도 잘 안하지, 영화도 안 봐. 술자리에서는 영화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영화이야기 할 때도 다들 재미있어 하는 것 같고, 술 마실 때는 굳이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놀더라. 개인 성향이 바뀐 건지 학교 분위기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지만, 후배들이 매우 활발하더라. 그리고 예전보다 영화에 대한 관심도 증가한 것 같다.


이도훈 : 프로메테우스 사업 중에서 영화제 관람이 있더라. 언제 생겼고, 몇 명 정도 참석하는지 궁금하다.

안성용 : 공식적인 활동은 아니지만, 영화제에 단체로 관람을 하러 가는 건 내 기수 전부터 있었다. 다른 동아리에서도 부산영화제에 때가 되면 단체로 부산에 내려가지 않나? 프로메테우스에서는 매년 부산영화제에 참석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부산영화제에 갔던 것도 선배들 덕분이었다. 요즘도 부산영화제에 내려가면 99학번 선배가 와서 단체로 콘도를 잡아주곤 한다.

김지현 :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통제가 힘들 정도로 많은 인원이 내려갔다. 마침 어린이날이 월요일이라,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나흘간이나 연휴기간이었다. 정확한 인원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30명이상의 내려갔던 것 같다. 너무 많아서 팀을 짜서 내려갈 정도였다.


이도훈 : 이야기를 듣다보니, 프로메테우스에서는 다른 영화동아리에서 볼 수 없는 극장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다.

이정은 : 영화 번개라고 해서 한 달에 한 두 번은 다 같이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

안성용 : 지현이는 친구에게 수업대출을 부탁하고 영화를 보러 간적도 있다더라. 동아리 애들끼리 수업대출 품앗이를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김지현 : 그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너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수업이랑 겹쳐서 어쩔 수 없었다.(웃음) 원래는 착실하게 수업을 듣는다. 동아리에서 영화 보러 극장에 가는 날도 수업이 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간다.


이도훈 : 영화는 혼자서도 볼 수 있는 건데, 굳이 주말에까지 시간을 내서 다 같이 영화를 보러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정은 : 영화 번개를 해서 동아리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갈 때는 외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같이 영화보고 나서도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목도 다진다.


이도훈 : 지현씨는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 싫어서 극장에 갔다고 했었는데, 극장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겠다.

김지현 :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한동안 공부가 하기가 싫었다. 당시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제쳐두고 극장에 영화 보러 갈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친구들은 틀어박혀서 공부나 하고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영화가 있는 극장에 가는 일은 내게 일탈이었다. 당시 자주 갔던 극장이 씨네큐브인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씨네큐브에 가면 늘 포근한 기운을 느낀다.


이도훈 : 안성용 씨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들었다. 서울에는 씨네큐브나 스폰지 하우스,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예술 극장이 있어 영화적으로 풍성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학에 들어와서 지방에 있으면서 보지 못했던 예술영화들을 보러 다녔을 것 같은데.

안성용 : 나는 고 3때 영화를 주말에 몰아서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다운로드로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던 것도 아니었고, 평일에는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영화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주말에 극장에 가서 영화 3~4편을 보는 건 일탈이 아니라, 생명의 희망 같은 거였다. 그 시간이 내게는 오아시스 같은 거였지. 대학에 들어와서 지방에서 접할 수 없었던 예술극장들이 낯설고 새롭기는 해도 자주 가지는 않았다. 극장을 가도 친구들과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게 고작이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주로 흥행작 위주였던 것 같다. 가끔씩 예술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내 습관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주로 다운받아서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방을 자주 이용했다.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 비디오방에 혼자 가서 영화를 봤다.


이도훈 : 서울에 올라와서 그 전에는 받지 못했던 못했던 영화적 혜택을 누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지는 않았나.

안성용 :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대부분의 영화 제목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작품 이름뿐만 아니라, 감독 이름까지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늘 생각했던 게, 세상에 볼 영화는 많고 내가 안 본 영화는 너무 많다는 거다. 하지만 보지 않았다고 자책하기 보다는, 단지 아직 안 본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예술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새로움과 낯설음이 있었지만 극장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나 동경은 생기지 않았다. 물론 평소 보기 힘든 영화를 틀어주는 곳이긴 하지만, 이미 내가 뽑아놓은 봐야할 영화 목록도 많았다. 극장 말고 찾아볼 영화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영화는 비디오나 DVD나 다운 받아서도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도훈 : 극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최근 씨네필들의 영화 보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일부는 극장에서 영화를 필름이라는 원본의 상태로 봐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또 다른 씨네필들은 영화는 다운 받아서 보는 게 더 수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성용 : 서로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다운받아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워낙 단점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많으니, 나는 장점을 말하고 싶다. 극장이란 공간은 권위적인 구조를 띈다고 생각한다. 영화관 안에서 관객의 시선은 스크린의 크기에 압도된다. 관객은 정면만 봐야하고, 미장센 안에서의 취사선택의 권리를 박탈당한다. 또한 관객은 영화의 시간에 종속되기를 강요받는데, 두 시간 동안 상상력이 각자 삶의 시간 속에서 발동되지 못한다. 반면에 집에서 다운받아서 영화를 보면 극장이 만들어내는 영화의 권위적인 면들이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영화를 볼 때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을 잠시 정지 시킨 후, 그 화면의 구석구석을 분석 해 볼 수도 있고, 가끔은 중간을 건너뛰어 결말로 비약할 수도 있다. 지루한 무성영화를 볼 때는 두 배로 빨리 재생하여 영화를 정복하기도 한다. 그 순간 영화적 공간과 시간은 관객의 공간, 시간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그때 영화는 극장이란 공간의 권위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영화는 보는 방식에 따라서 감상이 달라진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거랑, 집에서 볼 때의 가장 큰 차이는 공간이다. 즉 영화를 둘러싼 공간에 따라서 관객의 감상이 달라 질 수도 있다는 거다. 또 영화가 디지털로 계속 복제되다보면 순수하게 영화 그 자체만 남지 않을까. 영화를 영화의 가능성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작가고, 그 다음이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관객에게 한쪽으로만 감상 방법을 몰아가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영화 보는 방법이 다양해지면 다양해질수록 영화 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 거고, 디지털로 복제되는 영화 미학에 대해서도 논의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 그럼 UCC 보듯이 영화를 본다는 말인가. 걱정이 되는 건, 시간이 지나면 영화도 싸이월드나 네이버, 유투브에 올라오는 UCC처럼 쉽게 보고 잊어버리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거다. 이미 일부 영화 사이트에서는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고, 웹상에서 바로 영화를 재생해서 볼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있다.

안성용 :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영화 산업이 돌아가는 기반만 마련된다면, 인터넷으로 영화를 즐기는 수용층이 많아질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터넷이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극장이 채워 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명화를 책으로 본다고 해서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명화가 책으로 인쇄되어 나온다고, 루브르 박물관이 없어져야 된다는 건 아닌 것과 같다. 오히려 책으로 볼 때 박물관에서 실제로 그림을 감상했을 때 보지 못했던 부분도 볼 수 있다. 단지 명화의 원본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깨어야 한다는 거다. 원본에 권위를 주는 게 결국 전시형태인데,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도 박물관적인 공간이다. 오히려 UCC가 더 보편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모나리자의 권위를 희석시킬 때 모나리자라는 그림 자체의 미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영화도 원본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벗겨내면 영화 매체라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영화의 미를 가로 막는 안개가 많이 끼어있는 것 같다.


이도훈 : 전통적인 영화 감상과는 반대되는 재미난 의견이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지현 : 나도 찾기 힘들고 극장에 걸리지 않는 영화에 한해서 다운받아서 영화를 본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 안에는 극장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왕가위의 <화양연화>를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 본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나서 후회 막심했다. 극장에서 <아비정전>을 봤을 때 느꼈던 왕가위 감독 영화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는 단순 영상물이 아니라, 극장과 합쳐질 때 완성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 나 역시 영화는 주변적인 요소들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날 나의 컨디션과 극장안의 관객들의 상태 등의 외부요인들이 한 데 어우러져서 한편의 영화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가끔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앞 사람의 머리도 스크린에 포함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정은씨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정은 : 다운 받아서 영화를 보면 간편하고 편리하긴 한데, 영화를 제대로 보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집에서 영화를 볼 때면 일시정지를 눌러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2시간 동안 영화에 모든 걸 쏟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볼 환경도 극장과 비교해서 그리 좋지 않다. 극장은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오로지 스크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도훈 : 극장이라는 공간은 영화를 함께 보는 곳이다. 프로메테우스의 감상회역시 영화를 함께 보는데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타 영화동아리의 세미나와 달리 학구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들었다.

이정은 : 프로메테우스는 타 학교 영화동아리와 비교했을 때 감상회나 세미나 활동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영화에 대해서 토론을 하거나 가볍게 이야기하는 정도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감상회를 단순히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감상회를 통해서 저마다 다른 영화에 대한 태도나, 한 편에 영화를 보고 느끼는 서로 다른 감정을 교환 한다. 옛날 같았으면 한 편의 영화를 두고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만 해서 소외당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감상회가 무게감을 빼버리면서 다양한 친구들이 쉽게 영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회 이슈나 논쟁거리를 가지고 토론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한편의 영화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듣고, 문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감상회의 장점인 것 같다.

김지현 : 프로메테우스 감상회의 장점은 아는 게 많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영화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고, 철학과 인문학에 관련된 소양이 부족하지만 감상회 때는 편안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감상회가 가볍고 명랑한 분위기로 진행되어서 신입생들이 감상회에 대한 중압감을 느끼지 않고,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감상회가 가벼운 쪽으로만 흐르는 건 아니다. 때로는 선배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영화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들을 배우기도 한다.



 

이도훈 : 선배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이정은 :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줬던 것 같다. 05학번 같은 경우는 소수의 인원인데도 열정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특히 04학번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05학번 선배들을 보면서 “아 우리도 저렇게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특히 선배들이 감상회를 하는 방법을 보면서 우리가 감상회를 운영할 때 선배들이 하던 방식과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또 프로메테우스는 늦깎이 신입생이 많았다. 뒤늦게 동아리에 가입한 고학번들은 동아리 내에서 선후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처럼 선후배간에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같이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저절로 생겼던 것 같다.


이도훈 : 성용씨는 복학하면서 영화 세미나를 부활시켰다고 하던데.

안성용 : 세미나를 부활시켰다기보다는 늘 방학 때 하던 세미나를 학기 중으로 앞당긴 거다.


이도훈 : 원래 학기 중에는 세미나가 없었나?

이정은 : 대가 끊겼던 것 같다. 세미나가 2005년도 까지는 있었다고 하던데, 내가 들어왔을 때는 선배들끼리만 했던 것 같다. 나는 세미나가 있는지 몰랐다.

안성용 : 사실, 우리 때는 아예 없었거든. 내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세미나를 했던 것 같다.


이도훈 : 성용씨가 복학하면서 세미나를 부활시킨 이유가 궁금하다.

안성용 : 내가 1학년일 때 동아리에서 최고 학번은 98학번과 99학번이었다. 당시 군대를 가지 않으면 최고 학번은 01학번이었는데, 군대를 갔다 온 선배들이 동아리에 다시 나오면서 연령대의 폭이 넓어지더라. 동아리 문화에서 남자들이 군대를 가는 건, 연령대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다. 특히 감상회 할 때 고학번들이 후배들이 알지 못하는 걸 이것저것 가르쳐줘서 좋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선배들이 권위적인 것도 있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걸 후배들에게 가르쳐주려 하고, 선배들 스스로 자기가 선배라는 걸 드러내놓고 티를 내는 것 같았다. 내가 복학생이 되고, 고학번의 위치가 되었지만 정작 내 위치는 과거 선배들과는 다른 것 같다. 과거와 현재 동아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더 이상 선배들이 권위적이지 않다는 거다. 학교나 동아리의분위기가 바뀐 건지, 내가 바뀐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 자신이 권위적이고 꼰대 같은 선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미나는 내가 후배들과 어울릴 방법을 찾다가 동아리에 제안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복학해서 동아리에 처음 왔을 때, 후배들과 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나도 학업 때문에 바쁘고, 후배들 입장에서 생각하니 나랑 놀기에는 그들 스스로 아쉬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노는 것 보다 영화에 대해서 같이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스터디를 하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열정 있는 후배들이 많아서 무리 없이 스터디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도훈 : 나 역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선배들과 충돌하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어서 내가 한국 영화에 대한 세미나를 하면서 김기덕을 발표하는데, 선배들은 김기덕을 모르거나 싫어하는 거다. 특히 98, 99학번은 장선우 이야기만 하더라. 90년대에 장선우는 잘나가는 감독이었지만, 당시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잊혀져가던 존재였다. 김기덕을 지지하는 나와 장선우를 여전히! 지지하는 선배들 사이의 충돌은 선후배간의 단절로 느껴지더라. 선배들이 뒤에서 팔짱끼고 앉아서는 꼰대처럼 후배들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데, 동아리의 고질적인 문제는 선후배간의 수직적인 위계서열인 것 같다. 반면에 요즘의 프로메테우스는 타 동아리와 달리 선후배간의 위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좋은 쪽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성용 : 확실히 그렇다. 나와 07학번의 사이를 나랑 99학번 사이와 비교해보면 선배들에게서 권위적인 모습이 사라진 걸 느낄 수 있다. 단순히 나랑 내 동기들이 변한 것 같지는 않고, 문화 자체가 바뀐 것 같다.

김지현 : 그 문제는 동아리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친구들 중에도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애들이 많다. 그 친구들이 모여서 ‘어떤 선배가 재수 없다, 걔는 너무 권위적이다, 너무 가르치려든다’며 뒷담화 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런데 우리 영화 동아리에서는 선후배 사이가 멘토 같아 보일 때가 있다. 후배들이 선배들을 따라 하고 싶어 하고, 선배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흠모하기도 하고, 본받고 싶어 할 때도 있다.

이정은 : 나 같은 경우는 동아리의 전통을 몰라서 황당할 때가 있었다.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 주변에서 동아리에서는 후배들이 선배를 챙기는 거라는 소리를 하더라. 그 말이 정말 이해가 안 되더라. 선배라면 후배들보다 동아리 분위기도 잘 알 테고, 익숙한 사람들도 많을 테니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고 동아리에 금방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선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 끝나면 선배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더라. 이건 대부분의 동아리들이 고쳐야 할 고질적인 병인 것 같다. 나는 그냥 다 같이 모여서 편하게 생활하는 동아리 문화가 되었으면 한다.

안성용 : 지금 프로메테우스에서 활동하는 03학번은 나를 제외하고 세 명이 더 있다. 이 세 명은 군대를 갔다 와서 동아리에 새로 가입한 사람들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이다. 재미있는 건, 형들이 자기보다 어린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더라. 그걸 보면서 권위적인 동아리 문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이나 학번 같이 수직적인 질서를 조장하는 요소들이 없어지면 동아리 인원도 늘어나고, 기대 이상으로 얻는 게 많을 거라고 본다. 그러다보면 동아리 침체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 지현 씨가 세 분 중 가장 어린데, 올해 신입생을 처음으로 맞이한 느낌이 어떤가.

김지현 : 무지 뿌듯하다.(웃음) 솔직히 말하면 07학번 대부분이 영화에 대해서 잘 몰라서 1학년 때 2학년이 될 생각만 하면 불안했다. 선배가 되면 후배들을 이끌어줘야 하는데, 정작 영화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거다. 그래서 친구들과 영화 공부도 해보려고 애써봤지만 영화라는 게 순식간에 쌓을 수 있는 교양은 아니지 않나. 올해 신입생들이 들어왔을 때 기뻤던 건, 08학번 중에 영화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여러 분야로 박식한 친구들이 많았다. 정말 똘똘한 친구들이 많더라. (웃음) 되려 07학번이 08학번에게 배우는 게 있을 정도다. 선배라고 해서 무작정 후배들에게 가르쳐줄 필요는 없지 않나. 그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다가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다. 그냥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 모르는 걸 일깨워 주는 소통구조가 생길 때 권위라는 게 사그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도훈 : 사실 가벼운 세미나도 좋고, 재미있는 세미나도 좋다. 하지만 가벼운 게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깊이 있는 세미나를 해보고 싶을 때는 없었나?

안성용 : 아쉬운 건 많지. 요즘은 1, 2학년 때부터 너무 바빠 보이더라. 이제 영화에 대해서 머리 싸매고 공부할 시기는 지난 것 같다. 영화 공부하기에는 너무 바쁜 시대지 않나. 사실 나는 별로 바쁘지 않은데(웃음), 다른 사람들은 바쁘게 살더라. 나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고, 평소에 공부하는 인문학이 영화와 연계되는 부분이 많더라. 특히 인문학 공부는 영화 보는 시선과 연결되는 게 참 많다. 평소 영화 비평이나 영화 이론서를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어떤 책을 봐도 영화 책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문학만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사회학 지식으로 영화를 분석할 수 있고, 최근 <아이언 맨>은 공대생들이 좋아할 영화지 않나.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만 있다면 자기 전공을 살려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인문학적인 지식으로 읽어내는 방법이 관습처럼 굳은 것 같은데, 영화라는 게 인문학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기술적인 면도 있고 산업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리에서도 영화 문법이나 영화사만 가르쳐주기보다는 다양한 방법이나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방법을 향상해 나가야 한다. 동아리가 영화에 대해서 한 가지 시선만 강요하기 보다는 각자의 관심사에서 영화가 어떻게 읽혀질 수 있는지를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이론만 공부하는 건 좁은 공부일지도 모른다.

이정은 : 나 역시 동아리에 가입할 때 깊이 있는 세미나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기 위해서는 시간도 맞춰야하고, 또 아무리 스터디를 한다고 해도 동아리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 깊게 공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감상회는 깊이가 있다기보다는 수박 겉핥기식이다.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토론했으면 하는 욕심은 분명히 있다.

김지현 : 워낙 바닥에 깔린 게 없어서 지금으로도 만족한다.(웃음) 그래도 가끔은 아쉬운 게 있다. 감상회가 끝나고 나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조금 더 깊이 있게 파고들었으면 하는 미련이 남더라. 이 문제는 프로메테우스가 차차 극복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이도훈 : 민감한 질문을 하나 하려고 한다.(머뭇) 프로메테우스는 축제 때 주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영화동아리 정체성이 주점과는 별개지 않나. 왜 상영회나 공개 세미나 같은 사업을 하지 않고 주점을 했는지.

김지현 : 올해 회장과 축제를 함께 기획하면서 상영회를 해보자고 제안을 했었다. 주점을 하되 스크린을 설치해서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하지만 축제를 준비할 시간도 촉박했고, 가장 큰 문제는 상영회를 하려고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내년에는 08학번들이 상영회를 해줬으면 한다. 사실 주점에서 영화 퀴즈를 한다고 동아리 정체성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주점을 하고, 거기서 영화 퀴즈를 한다는 것이 구색 맞추고 생색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이정은 : 축제 때 주점을 한다고 해서 동아리의 정체성이 훼손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점을 하면 동아리 회원들끼리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축제 때 대부분의 동아리가 하는 일인데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우리가 게으르고 노력을 덜 해서 동아리 특색을 살리지 못했다는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영화 동아리라고 해서 축제 때 꼭 상영회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축제 때가 아니라도 상영회를 하고 있다. 다른 동아리처럼 프로메테우스도 축제 때만큼은 회원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MT나 야유회를 가는 것처럼 축제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활용하면 되지 않나.

안성용 : 도훈 씨의 지적은 영화 동아리에 대한 오해인 것 같다. 동아리 외부 사람들이 보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일들인데, 내부에서 바라보면 항상 문제가 되더라. 예를 들어서 복싱 동아리가 축제 때 복싱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영화 동아리도 피차일반이다. 축제라고 해서 영화 동아리만의 정체성을 찾아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실 다른 동아리는 아주 독특한 취미활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경우지만, 오늘날 영화 보는 일은 아주 일상적인 게 되었다. 유독 영화 동아리만 정체성 문제에 시달리는 건, 동아리 내부에서 영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다른 동아리는 저마다의 특색이 있지만 영화는 딱히 정체성이라고 할 게 없는데도 말이다.


이도훈 : 이야기가 조금 무거워졌나?(웃음)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개인 취향을 물어보고 싶다. 다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인데, 자기만의 클래식이라고 할 영화가 있나? 특별히 좋아하는 고전영화나 선호하는 작가가 있다면?

안성용 : 좋아하는 영화는 많다. 타란티노에서부터 다르덴 형제까지.


이도훈 : 그 영화들도 이제는 영화애호가들 사이에는 교양으로 취급받고 있지 않나? 아니면 일종의 고유명사로 통하고 있는 영화인데. 그 외에 성용씨가 선호하는 영화는 어떤 부류인지

안성용 : 영화를 볼 때 속아 넘어갈 수 있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간혹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내가 스크린에 푹 빠져서 감독의 의도에 속아 넘어갈 때가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속아 넘어가도 영화가 끝나면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들도 영화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동아리에서 영화사 스터디를 하면서 고전을 보고 있는데, 고전을 보는 이유는 영화에 속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다. 고전을 보고 있으면 영화가 어떻게 사람들을 속여 왔고, 관객들이 어떤 영화에 속아왔는지가 보인다. 고전을 보다보면 거짓말을 하는 영화, 나를 속이는 영화를 판별할 힘이 길러지는 것 같다. 고전의 가치는 그런 게 아닐까.


이도훈 : 정은씨와 지현씨의 영화 계보를 듣고 싶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푹 빠졌던 영화나 감독이 있었을 텐데.

이정은 : 가족들 모두 영화를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를 빌려서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고는 했다. 가족들 취미가 영화였다.(웃음) 그래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었고, 나만의 취향이 생겼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게 특별한 영향을 준 영화는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였다. 그 영화를 보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매료되었다. <아멜리에>는 내게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에서부터 영화라는 예술에 호기심을 불어 넣어 준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아멜리에>를 보고나서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나, 감독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그 때 이후로 더 다양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EBS 시네마 천국을 자주 봤고, 시네큐브 같은 예술극장에서 여러 영화를 봤다. 내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고, 영화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침체기가 찾아오더라. 선배들이 추천해주는 영화나 책이나 인터넷에서 알려주는 고전을 꼭 봐야한다는 강박이 생기면서부터 힘들었다. 굳이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영화를 억지로 챙겨봐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영화를 볼 때 강박관념이 생겼고, 영화 보는 일에 회의감이 몰려오더라. 특히 의무감으로 영화를 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요즘에는 내 취향대로 영화를 보는 게 더 즐겁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영화 문법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거나, 영화사를 쫓아가면서 보기 보다는 내 취향과 기호를 따라가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사실 지금은 약간 혼란기 같다. 그래서 내 길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할까.

김지현: 우리 집은 어찌 된 게, 영화를 되게 싫어한다. (웃음) 부모님은 내가 영화 동아리 활동하는 것도 이해를 못한다. 집에서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집에서 내가 영화를 보려고 하면 부모님은 방에 들어가서 공부나 하라는 식으로 나온다. 또 내 영화 폭은 매우 좁다.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지만 고전은 거의 보지 못했고, 본 영화라고는 현대 영화가 대부분이다. 한 마디로 못 본 게 허다하다. 하지만 고전을 보고 싶어도 막상 생각처럼 안 되더라. 봐야할 영화가 많아서 그런지 어떤 영화를 봐야한다는 초조함이나 부담감도 있다.


이도훈 : 특별히 매료되었던 영화가 있다면.

김지현 :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가 예쁘고 아름답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영화에 스타일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내가 왕가위 영화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그의 작품에 출연하기 때문이다. 왕가위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도 좋아하는 감독이다.


이도훈 : 정은 씨의 말을 들어보니 타인을 의식해서 영화를 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네이버 평점이나 잡지의 영화 리뷰, 별점이 관객의 영화 보기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홍수가 나면 먹을 물이 없다는 말이 있지 않나. 볼 영화가 너무 많으면 좋은 영화, 자기 취향의 영화를 골라내기가 힘들 텐데.

이정은 : 인터넷으로 영화를 검색하다가 어떤 영화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찾아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본 영화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막상 왜 그 영화가 좋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괜스레 다른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말하는 영화들을 반 의무적으로 챙겨본 것 같다. 최근에는 잡지 리뷰를 읽으면서 구미가 당기는 영화를 찾아서 보고 있다. 잡지 외에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내 취향이라고 생각이 드는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랬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나 선호하는 감독이 있는 건 아니다. 아직 내 기호가 명확하지 않아서 이 영화 저 영화에 손대보고 있는 중이다.

김지현 : 나 역시 남들이 추천하는 영화를 꼭 봐야한다는 압박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볼 때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봐버린다.(웃음) 주로 영화 스틸 컷이나 포스터를 보고, 딱 이 영화다! 싶은 작품을 본다. 잡지에 실린 기사들도 내 영화 보기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남들의 생각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내 몸이 끌리는 영화를 선택한다.


이도훈 : 지현 씨의 말을 들어보면 영화를 선택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도 있는 것 같다.

이정은 : 영화를 볼 때 심리적인 게 작용해서 영화안 내용이나 인물에 동화되는 경우가 있다. 그날 자기의 상태나 의식이 작용하면 영화를 보면서 자기와 관련된 요소들을 찾아서 연결 짓는 것 같다. 왜 어떤 영화를 보면 딱 내 마음을 표현한 영화야, 라고 생각 할 때가 있지 않나.

안성용 : 분명 영화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도 있는 것 같다. 영화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참 신기할 때가 있다. 어제 밤에는 <율리시즈의 시선>을 봤는데, 오늘 인터뷰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그 영화 안에 담겨 있더라. 너무 놀랐다. <율리시즈의 시선>은 숨겨져 있는 최초의 영화를 찾는 이야기다. 어떤 시네마테크의 관장이 최초의 영화를 현상하지 않은 상태로 들고 있었다. 내전이 일어나서 최초의 영화를 현상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여하튼 관장은 최초의 영화를 극장에 가둬두고 있었던 거다. 주인공은 관장을 찾아가 당신은 영화를 가둬둘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오늘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리시즈의 시선>을 볼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화가 대신 해주는 것 같더라. 나는 영화를 널리 퍼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라고 해서 극장이나 박물관에 가둬 둘 필요는 없는 거다. 사실 저마다 역할이 있으니, 영화를 보존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여간 <율리시즈의 시선>은 마침 지금 이 인터뷰 전날 보게 되었고, 그 영화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더라. 참 신기했다.


이도훈 : 고다르 말처럼 우리가 영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우리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웃음) 그럼 다시 원래 화제로 돌아가자.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화는 어떤 게 있나.

김지현 : 나는 요즘에 빔 벤더스의 영화가 좋더라. 심지어 얼마 전에는 <돈 컴 노킹>이 너무 보고 싶어서 수업도 제치고 영화를 보러갔다.(웃음) 그 영화를 보고나서 빔 벤더스의 다른 영화도 찾아보고 싶어지더라.

이정은 : 내게 이렇다 할 영화 취향이 있는 건 아니어서 상업영화니 예술영화니 하는 식으로 영화를 가려가면서 보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선댄스영화제에서 각광을 받은 영화들을 재미나게 봤다. 하지만 요즘 침체기라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영화를 통 못 보고 있다.

안성용 : 나는 예전부터 내가 봐야할 영화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특별히 어떤 영화에 흥미를 가지기보다는, 차근차근 리스트에 뽑아 놓은 영화들을 찾아본다. 물론 개봉작도 따로 챙겨본다.



 

이도훈 :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다보니 시간 너무 많이 지나갔다.(웃음) 슬슬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각자 짧다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을 영화동아리에서 보냈는데, 동아리 생활을 통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정은 : 영화가 내 일상이 되고, 영화에 대한 내 애정을 확실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동아리를 하면서 영화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예전에 혼자서 영화를 볼 때는 딱히 영화 이야기를 공유할 만한 친구가 없었다. 누구나 영화를 좋아하지만 단순히 주말에 영화를 보러가는 사람과 영화를 좀 더 배우고 싶어 하고, 영화 일을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나. 나는 후자 쪽의 친구를 원했었고 동아리 친구들이 딱 그랬다. 그리고 동아리 사람들과 생활하는 중에 영화 정보를 교환하다가 보면 영화를 좀 더 봐야겠다는 경각심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경쟁심도 생기더라.(웃음) 프로메테우스는 여러 가지로 내 영화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곳이다.

김지현 : 동아리에 들어오기 전만해도 주변에 딱히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다. 평소 친구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이야기하면 다들 시큰둥하게 반응하더라. 그런데 동아리에 들어와서는 영화에 대해서 막힘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어떤 영화가 좋았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맞장구 쳐주고, 자기가 좋게 본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동아리도 하나의 사회집단이지 않나. 각자 역할이 주어져 있고,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되는 곳이 동아리다. 원래 나란 아이는 해야 할 일이 있어도 뒤로 제쳐두고, 다 함께 일을 할 때도 적극적이지 못해서 혼자만 뒤로 빠지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동아리는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보니 나 혼자만 뒤로 빠질 수 없었다. 재미있는 건, 내가 참여하는 만큼 일에 빠져 들었다는 거다. 평소 같으면 하지도 않았을 일을 혼자 나서서 해보기도 하고, 어설프지만 영화 찍는 일에도 참여해볼 수 있었다.

안성용 : 예전에는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정도였다. 반면에 지금은 온통 영화생각 뿐이다. 하루 24시간 중 10시간은 영화 생각만 하는 것 같다. 이런 나를 보고 있으면, 정말 영화에 낚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모님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걱정을 많이 하신다.(웃음)


이도훈 : 친구들이나 부모님들은 영화에 푹 빠진 우리를 늘 안쓰럽게 바라본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세상 모두가 실용주의를 내세우는데, 영화처럼 쓸모없고 비생산적인 일도 드물다. 가끔 주변에서 영화에 인생을 걸겠다는 친구들의 말이 무모하게 들리더라. 특히 밥벌이로서는 최악의 직업 중 하나가 영화인이지 않나. 지금 학교 친구들은 모두 토익공부하고 도서관 가는 시간에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가는데. 그럴 때 괴리감이 발생하지 않나. 앞으로도 영화를 볼 건지?

안성용 : 나는 이제 명료하다. 돈을 벌자. 영화로 돈을 벌어보자! 대부분이 사람들이 대학에 들어오면 모범답안이 있다고 말하지 않나. 대학생활 착실히 해서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거. 하지만 어떤 교수님이 한 말한 것처럼 모범답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성공이란 게, 마스터플랜이 있어서 모두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길을 무작정 따라 가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각자 자기가 하는 방식이 있고, 그 방식에 따라서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면 그것도 정답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일도 다른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서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내 주관을 믿고 영화를 보려고 한다. 내 스스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영화보기를 터득해야 될 것 같다. 그것도 실용주의니까.

김지현 : 엄마, 아빠가 모든 일을 이명박 식으로 사고하신다. 부모님이 극단적인 실용주의자라서 내가 영화 동아리에 들었다고 했을 때 무지 싫어하셨다. 영화라는 게 보고 즐긴 다음에 뭐가 남느냐는 식이셨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과 다르게 생각한다. 공부만 잘하는 학점 퀸, 학점 킹이라는 애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파고 있지만, 나는 그 시간에 영화를 보면서 세상을 본다. 나는 그 친구들이 절대로 볼 수 없는 세상을, 영화를 통해서 보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 보는 일이 수동적이고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라지만, 나는 영화 보는 일은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회 없습니다!’

이정은 : 나는 예전부터 영화 산업에 종사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내 진로를 확고하게 결정한 것은 아니다. 동아리 신입생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학년이 되었지만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혼란스러운 상태다. 영화 동아리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여기서 영화에 대한 내 애정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것처럼 지금은 내 진로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앞으로도 영화 일을 해보고 싶다면 좀 더 전문화된 공부를 하거나, 영상제작소 같은 곳에서 다양한 영상을 만들어봐야 할 것 같다.

안성용 : 영화가 우리네 삶과 가까운 이상, 영화 보는 것도 삶을 갈고 닦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만 영화를 즐긴다면, 그 사람이 영화에서 얻는 효율성은 2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2시간 동안 영화를 즐기고 나서도 영화를 생각하면서 즐거워하지 않나. 쉽게 말해서 우리가 한 편의 영화에서 얻어내는 효율성은 보통 사람의 2배에 가깝다는 거다. 우리가 영화를 좋아하니까, 영화를 좀 더 실용적으로 즐긴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도 실용주의니까 환영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이도훈 : 나는 영화로 실용주의를 했으면 좋겠다.(웃음) 그래서 모두가 재미있게 잘 살았으면 한다.





 

-연재를 끝내며

영화 커뮤니티, 영화 공동체는 외로운 영화 애호가들을 위로하는 기능을 합니다. 사실, 실용주의시대에 외로움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실에 대처해야하기에 이성이 감성을 억누릅니다. 우리는 사막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살아남기 위해서 각개전투, 약육강식의 생존방법이 삶의 방식이 된 이상, 영화의 존재가치는 흐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비 만능주의의 시대에 더 이상 영화에 예술적인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으며, 기계 복제되는 영화라는 예술을 너무 쉽게 소비해버리고 있으니까요. 영화가 소비의 대상이 되어가면서 영화로 낭만을 즐기거나 영화로 세상을 독해하려는 노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영화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이 되었지만 우리는 영화를 유령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는 영화가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요? 공기가 있는 걸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영화가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학 영화동아리는 구시대 유물처럼 남아서 영화를 공유하고, 영화가 우리에게 준 사랑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친구들과 함께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화의 존재를 되새김질하는 진정한 영화 애호가들일 겁니다. 또한 이 친구들은 천대받는 영화에 애정을 불어넣어, 바닥으로 떨어진 영화의 권위를 조금이나마 격상시키려고 합니다. 아마도 영화 동아리 친구들은 우리 시대에 마지막으로 남은 전사들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어리석을 정도로 열정만 앞서서, 그들의 열정보다 앞서가는 시대의 변화 앞에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것이 곧 청춘의 미덕이며, 그 청승 같은 어리석음이 언젠가는 낭만이었다고 자화자찬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날 누구도 성공적으로 영화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학 영화동아리는 어떤 자들도 이루지 못한 영화 공동체의 원형이기에 오늘날에도 존재 의의가 있습니다.

대학영화동아리 탐방기사는 오늘날 20대들이 영화 보기에 관한 질문들로 진행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분석하는 고전적인 일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보고, 좁은 스크린을 통해서 다운받은 영화를 받는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습니다. 또한, 고전영화와 한국 독립영화에 같은 동시대 영화들에 관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으며, 나 홀로족 일색인 요즈음 시대에 한 공간에 모여 영화를 보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영화보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저는 이 기사가 정답을 찍어야하는 OMR카드가 아니라, 정답이 없는 논술형 답안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래봅니다. 이 기사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모호한 답은 영화 보기는 행복한 일이라는 겁니다. 저는 아직 영화가 볼 만한 예술이라고 믿습니다.



진행: 이도훈
참석: 안성용, 이정은, 김지현
정리: 강민영,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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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mk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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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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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25 16:30

영화 동아리 탐방 세 번째. 이화여대 내 학생문화회관 3층에 위치한 ‘이화시네마떼끄’는 이화인들을 위한 시네마테크이다. 100석 규모의 자체 상영관과 1000여 편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는 이화씨네마떼끄는 타 대학에서 보기 힘든 명실공이 학생자치 영화공동체. 여기서는 매일 두 번의 상영회가 열린다. 하루 두 번의 상영을 위해서 한 해 12번의 세미나가 진행되고, 이 세미나에서 흘린 땀방울이 하루 두 번의 영화 상영으로 직결된다. 매일 영화가 상영되는 곳. 흔히들 극장은 365일 영화를 상영하고, 매일 영사기가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는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영화가 관객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필요한 법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라는 순간은 영화 창작자의 손길을 스크린 뒤에서 발견할 때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기에 우리가 영화를 볼 수 있겠지. 그래서 감독은 관객으로부터 경외와 찬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곧장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영화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고, 영화와 관객이 만날 수 있게 주선해주고 영화와 관객을 이어주는 끈이 필요한 법이다. 이화시네마떼끄 사람들은 영화가 관객을 기다리듯이, 자신들의 공간에 방문할 영화 친구들을 매일 같이 기다린다. 이화시네마떼끄 사람들은 극장 문 밖에서 관객을 기다리면서, 자신들이 열광하고 좋아했던 영화의 신비한 체험으로 관객을 안내하는 중이다. 스스로 관객이자, 스스로 극장 프로그래머를 자처하며 험난한 일을 병행하는 이화시네마떼끄의 친구들. 그 중 두 친구를 이 작은 지면에서 만날 볼 수 있다. 이 인터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이러니다. “잃고 부터가 시작”이라는 두 친구의 말처럼 영화는 지긋지긋하지만, 지긋지긋한 걸 다 겪고 난 후에야 즐거움을 주는 녀석이 아니던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도훈 : 이화시네마떼끄 소개를 부탁한다.

송혜민(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 06학번, 現 이화시네마떼끄 관장) : ‘이화시네마떼끄’(이하 ‘시떼’)는 현재까지는 이화여대 내 유일한 상영관이다. 현재까지는 유일한 상영관이지만, 5월 달에 학내에 씨네큐브가 개관을 한다더라. 씨네큐브가 개관을 하더라도 시떼는 자치단체라는 의미가 커서 둘 사이에는 개념자체가 다른 게 있다. 시떼는 학생들끼리 직접 세미나를 해서 영화를 선정하고 그 영화들을 학우들과 공유한다. 목적 자체가 다르다고 본다. 동아리와도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이도훈 : 자치단위라고 했는데, 정확히 동아리 연합은 아닌 것 같고.

송혜민 : 학생회소속기구이다. 동아리 연합회는 그야말로 진짜 동인들의 모임이라는 느낌이라면, 시떼는 자치단위끼리의 회의를 하기도 하고, 자치단위 규약 같은 것들이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또 자치단위 내 구성원들 간에 소속감이나 의무감도 강조되는 편이다.


이도훈 : 시떼는 운영비가 지원되는가.

송혜민 : 학생회에서 지원을 받는다.

박유미(이화여대 광고홍보학과 06학번 現 이화시네마떼끄 부관장) : 정확히는 자치단위라고 할 수 있다.


이도훈 : 두 분 모두 활동하신지 3년차인데. 각자 시떼에 가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너무 옛날이야기인가.(웃음)

송혜민 :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하하) 물론, 처음에는 영화가 좋아서 가입했다.

박유미 : 대부분의 시떼 사람들이 가입할 때는 영화가 좋아서 들어왔다. 나름대로 가입할 때 심사를 거쳐서 선정된 사람들이다.(웃음) 선정하는 절차가 따로 있다.


이도훈 : 가입할 때 면접도 보는가?

송혜민 : 나름 엄격하다.


이도훈 : 그렇다면 지원해도 면접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데, 이번학기에 몇 명 정도 지원했는지 궁금하다.

송혜민 : 한 학번 당 5명 내외로 신입회원을 받는다. 보통 한 학번 당 2배수 이상은 제출서가 들어온다. 현재 활동 중인 사람은 06학번이 4명, 07학번이 4명 정도 남아있다.


이도훈 : 올해 신입생은 몇 명 정도 되는가.

송혜민 : 처음에는 6명 정도를 신입회원으로 받았다. 물론 지원서를 낸 사람은 더 많았다. 최종으로 선발된 사람은 5명이었다. 그 후에 두 명이 자기 발로 시떼를 나갔다.


이도훈 : 동아리 같은 경우에는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이 자유롭다. 하지만 이곳은 자치단위의 특성상 조금 엄격할 것 같다.

송혜민 : 시떼에서는 매주 영화상영회를 한다. 영화상영회를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일도 있고, 상영당번도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그 외에도 시떼를 운영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다보면 상영이 중단되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예산이다. 시떼가 예산을 받아서 운영되는 곳이다 보니, 자체적인 편의에 따라서 활동할 수 없는 제약이 있다.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유대감이 중요하다. 그래서 신입들을 뽑을 때 꾸준히 할 수 있는지, 개개인의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떼의 일을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본다. 올해 08학번을 뽑으면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신입생 환영회를 마치고, 새로 들어온 08학번이 우리의 구성원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을 즈음에 일이 터졌다. 한 친구가 시떼의 활동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탈퇴를 했다. 그 친구가 탈퇴를 하니, 그와 친한 친구 한 명도 함께 탈퇴를 한 거다. 자기에게는 과 동아리 활동이 더 맞는 것 같다고 하더라. 시떼 활동을 하면 과에서 소외당할 것 같다고 하던데, 조금 이해가 안가더라.

박유미 : 시떼가 매일 상영을 해야 하는 곳이어서, 3학년 1학기까지는 의무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어있다. 탈퇴했던 친구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서 시떼가 자기가 생각한 곳과는 다르다고 판단을 하더라.

송혜민 : 면접당시에는 책임감 있게 활동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할 때가 되니 생각이 달라졌나보다. 요즘 학생들 워낙 바쁘다보니..(웃음)

박유미 : 학원도 다니셔야 되고, 1학년일수록 더 바쁘더라.


이도훈 : 시떼 자료실에는 굉장히 많은 양의 아카이브를 구축되어 있더라. 저 많은 자료들이 다 선배들이 발품 팔아서 구하고, 여기저기서 복사해서 온 것이라고 들었다. 선배들이 문화학교서울에도 출입하면서 어렵게 구한 자료들이라고 하던데. 선배들에게 과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나. 예를 들어서 “너네, 우리가 이 자료들을 어떻게 구했냐하면..” 라는 식으로 말이다.

박유미 : 딱 그거다!

송혜민 : 굉장히 아련한 이야기들.(웃음) 처음에는 열악한 상영조건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빈 강의실에서 불법으로 구한 자료들을 상영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하고 있다.(웃음) 여러 거처를 통해서 구한 영화들을 틀다가, 학교에서 자치단위로 인정받으면서 예산도 받게 되었고, 사정이 나아졌다고 들었다. 그리고 예전 선배님들이 가끔 시떼에 오면 안타까운 목소리로 하는 소리가, 관객 수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는 거다. 물론 운영위원회의 수도 줄었지만, 관객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선배들이 학교에서 지원을 받기 전에는 상영료를 받으면서 상영회를 했다. 상영료를 받았는데도 관객이 200-300명 왔다고 하더라. 지금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수치다.

박유미 : 지금은 30명이 왔다고 해도, 정말? 하면서 반신반의 할 텐데. 조금 의아한건, 한국에서 영화에 대한 관심은 계속해서 진화하는 것 같은데 시떼는 사정이 정 반대라는 거다. 왜 시떼의 관객들만 쑥쑥 빠져 나가는지 모르겠다. 역시 돈을 받아야 하고,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하는 거다.(웃음)

송혜민 : 그래, ‘장사’를 해야 하는 것 같다.

박유미 : 어! 공짜로 상영을 하니까, 소중한 걸 모르는 것 같다.(웃음)


이도훈 : 지금도 아카이브를 유용하게 쓰는지.

박유미 : 물론이다! 아주 소중한 자료들이다.

송혜민 : 일단 기획회의를 하면 상영목록을 정할 때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세미나를 진행할 때 필요한 영화들이 아카이브에 있으면 아주 환영한다.


이도훈 : 자료들이 오래된 것도 있을 텐데, 상태가 어떤지.

박유미 : 양호하지 않은 것도 많다. 세계 영화사 세미나를 매 학기 진행하고 있는데, 세미나 때 영화를 함께 봐야 되고,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개별적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상영 때도 아카이브에 있는 자료를 사용한다. 이렇게 한 영화를 여러 번 돌려보게 되면서 화질이 조악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물론 화질상태가 떨어진 자료는 다시 구입한다. 상영회 목적에 맞추어서 DVD를 따로 구입하기도 한다.

송혜민 : 천차만별이다. 아카이브 중에는 선배들이 EBS에서 방영된 영화를 녹화한 것도 있다. 반면 화질이 아주 좋은 것도 있다. <동경 이야기>도 화질이 좋은 편에 속한다.

박유미 : 허우샤오시엔의 <샌드위치 맨>도 상태가 고른 편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보지 않거든.

송혜민 : 맞아! 어떻게든 안 보려고 하니까(웃음)


이도훈 : 아카이브가 굉장히 유용하고 소중한 자료인데. 신입생들이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인식하는지 궁금하다.

박유미 : 확실히, 학번이 내려갈수록 아카이브를 대하는 첫 인상이 다르다. 자료실을 처음 봤을 때 07학번이 악! 소리를 지르던 거에 비하면 08학번은 덜 한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입을 뜨악하면서, 이걸 다 보고 말겠다. 난 밤마다 이걸 보고 말겠다는 소리를 했다.(웃음) 시떼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에 대해서 신입생들은 우리학번보다 덜 신기해하는 것 같다. 스스로 자료들을 뒤적여보면서 어! 이러는 게 아니라.

송혜민 : 물론 두어 달 지나면 사라지는 욕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카이브를 보고, 영화에 대해서 격앙된 감정을 보이는 모습이 요즘 신입생들에게는 선배들에 비해서 덜 한 것 같다. 아카이브뿐만 아니라 폐간된 잡지들이 창간호부터 있는데도, 그런 자료를 보고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나보다. 거의 가구 같은 느낌이랄까. 그냥 자료가 놓여 있는 상태다. 사실 아카이브나 잡지, 책들이 쌓여서 시떼의 전통을 만들어가고, 그러는 가운데 정서적으로도 쌓이는 게 있을 텐데.

박유미 : 정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세대 간의 차이일 수도 있다. 우리 학번 같은 경우는 <키노>가 발간되고 폐간될 때 시떼에 있었다. 지금 들어오는 신입생들 중에는 <키노>를 직접 접하지 못한 아이들도 많은 거다. 외부문화의 단절이 학번간의 차이로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도훈 : 시떼에 있는 잡지나 선배들이 기증한 책들이 모두 세미나 자료로 활용되는가?

송혜민 : 세계 영화사 세미나는 절대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한다.


이도훈 : 세미나 이야기를 해보자. 싸이월드에 있는 이화시네마떼끄 클럽에서 시떼 소개글을 읽어보니 한 해 12번의 세미나가 진행된다고 하더라.

송혜민 : 세미나는 한 학기당 6개정도를 진행한다. 시떼에 들어온 사람은 3학년 1학기까지 활동해야 한다. 그래서 활동기간이 끝날 때 까지 총 2번의 세계 영화사 세미나를 하게 된다. 한 번은 자기 바로 위 학번이랑 하고, 두 번째는 바로 아래 후배들과 세미나를 한다.

박유미 : 두 번은 배우고, 두 번은 가르치는 격이다.

송혜민 : 세계 영화사 세미나 외에도 학기별로 주제를 정해서 상영회를 하거나, 감독전 같은 기획 상영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네 개 정도의 세미나가 학기별로 진행된다.


이도훈 : 세미나가 상영으로 직결되는가.

박유미 : 그렇다. 2학기 예로 들자면, 여름방학 전에 기획회의를 한다. 회의에서 세미나 주제들을 선정하고, 세미나 팀을 나눈다. 그리고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세미나를 해서 상영할 영화 목록을 추려낸다.


이도훈 : 설마 12개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세미나에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하는 건가? 그러면 너무 벅차지 않나.

송혜민 : 아니다. 세계 영화사는 모두가 참여하지만, 그 외 기획 상영회를 위한 세미나는 한 사람당 두 개씩 참여한다. 자기가 참여하지 않는 세미나인데, 영화 목록이 마음에 들 경우에는 그냥 관객의 입장으로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한다.

박유미 : 서로 남의 세미나를 탐내기도 하고, 자기 세미나를 싫어할 때도 있다.(웃음)


이도훈 : 세미나 참여주제는 자발적인 것 아닌가. 근데 왜 남의 세미나를 탐내는 건지.(갸우뚱)

송혜민 : 아니...(웃음) 자기가 참여했던 세미나라고 해서, 꼭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다. 어디로 나갈지 모르는 거다. 영화목록이랑 세미나 타이틀만 보면 재미있겠다 싶었던 것도, 개관을 쓰고 리플렛을 쓰려고 하면 암울해지기 시작한다.

박유미 : 대략 98%는 처음 방향과 어긋난다. 세미나 제목만 들어서는 재미있어 보이기 짝이 없는 ‘사랑속의 권력구조’ 같은 거.(웃음) 제목만 보고 쌈박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세미나라는 게 결론이 나오고 답을 찾아야 하는데, 종종 길을 잃기도 하고 미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싸우고.


이도훈 : 다른 팀이 잘 되면 배가 아플 때도 있나?

송혜민 : 아니, 다른 팀이라고 해서 썩 잘된 경우를 본 적이 없다.(웃음)

박유미 : 사실은 다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서로 앓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냥 같이 술이나 마시고 말지.


이도훈 : 올해 1학기에 계획했던 세미나는 모두 끝났겠다.

송혜민 : 1학기 상영은 다음 주로 끝이 나고, 세미나는 한참 전에 끝났다. 이제 방학시작하자마자 기획회의를 해서 2학기 세미나의 계획을 잡아야 한다.


이도훈 : 방학 때 모든 세미나를 다 끝마치는가?

송혜민 : 팀 별로 구성원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지방에 사는 학생들이나 개인사정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학 때 열심히 한 팀은 학기초반이면 세미나가 완료된다. 그러면 먼저 끝난 세니마를 중심으로 상영을 한다.


이도훈 :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세미나가 있다면?

송혜민 : 나에게는 모든 세미나가 애증의 대상이었다. 1학년 때는 세미나라는 문화 자체에 충격을 받았다. 그 때는 선배들이 좋은 말을 해주면 듣는 식이었지. 1학년 때 한 세미나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메타 영화’ 세미나였다. 세미나가 주제별로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감독전 같은 걸 하는 경우는 결론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감독전을 준비할 경우에는 공부하는 느낌으로 영화를 보고 세미나를 하지만, 메타 영화라는 주제로 세니마를 할 때는 그 전에 했던 세미나와는 조금 달랐다. 특히 다른 세미나에 비해서 다양한 영화 이론을 공부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2학년이 되어서는 06학번들끼리만 세미나를 해야 됐다. 학번 세미나라는 게 있는데, 해마다 2학년이 되는 학번들로만 진행되는 세미나를 말한다. 1학년 때까지는 선배들이랑 세미나를 하지만, 2학년 때는 선배들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세미나를 해보는 거다.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1학년 때는 선배들이랑 세미나를 하기 때문에 내가 잘 몰라도 결국 답은 나오더라. 그 때는 영화 이론에 대해서 잘 몰라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입장이었다. 학번 세미나를 하면서 그 때서야 처음으로 스스로 세미나 개관을 쓰고 영화제 리플렛을 만든다. 동기들끼리 모든 걸 해서 그런지 몰라도, 학번 세미나가 기억에 남는다.

박유미 : 모든 세미나에 애절한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학번 세미나는 제일 처음으로 모든 걸 다 떠맡아서 하는 거라서 의미가 다르다. 선배들이 끄는 방향으로 갔었다면 학번 세미나 때는 앞에서 끄는 사람이나 줄이 없었다. 동기들이 병렬로 나란히 걸어가는 것 같았다. 학번 세미나가 진짜 힘들었던 게, 책임감이 생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도훈 : 그 때 어떤 세미나를 했나

박유미 : ‘그리고 여자’라는 제목의 세미나였다.

송혜민 : 인간의 성을 떠나서,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여성적’으로 어떻게 푸는가를 함께 고민해보았다. ‘여성적’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그 오해를 해명하는 세미나였다고 할까?


이도훈 : 세미나 결정된 상영목록에 어떤 영화들이 있었나.

송혜민 : <고양이를 부탁해>, 장만옥이 출연한 <클린>, 그리고 <파니 핑크>, <디아워즈> 같은 영화를 틀었다.


이도훈 : 유미 씨는 어떤 세미나가 기억에 남는지

박유미 : 제일 힘들었을 때는 혜민이와 나, 그리고 후배 한 명이서 ‘사랑속의 권력 구조’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할 때다. 그 세미나가 참, 영화 목록도 안 나오고 되게 좌절을 많이 했던 세미나다. 모든 세미나가 어렵긴 매 한가지지만. 사실, 지금까지 해왔던 세미나 중에 답이 나오지 않았던 적은 딱히 없었다. 그런데 이 세미나는 답이 보이지 않는 거다. 영화도 많이 보면서 갖은 애를 썼다. 마지막에 정리를 할 때는 다섯 시간 동안 회의를 해도 정리가 안 되더라.

송혜민 : 목록도 맘에 들지 않는다.


이도훈 : ‘사랑 속의 권력 구조’라는 세미나는 자치문화제때 했던 거라고 알고 있다. 다른 상영회는 기획 상영회라고 분류되던데 자치문화제는 어떤 것인가

송혜민 : 이화여대 내 다섯 개의 자치단위가 모여서 같은 주제로 문화제를 연다. 자치단위에는 이화시네마떼끄, 생활도서관, 여성위원회, ‘틀린 그림 찾기’라고 하는 인권단체,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라는 레즈비언 인권단체가 있다. 평소 자치단위들이 개별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단위별로 폐쇄성이 짙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걸 해소할 방법을 찾던 중에 나온 기획이 자치 문화제다.


이도훈 : 연대가 목적인가? 작년 자치문화제때 시떼는 켄 로치 감독전을 한 걸로 기억한다.

박유미 : 작년 같은 경우에는 주제가 ‘노동’이었는데, 켄 로치 감독전을 기획하기 전에 자치문화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우리가 기획회의를 하고 켄 로치를 준비했었는데, 자치문화제가 생기고 주제가 ‘노동’으로 결정되더라. 묻어간다는 생각으로, 그렇다면 켄 로치! 했던거지.


이도훈 : 그럼, 올해 자치문화제는 주제가 권력이었나?

송혜민 : 엄청 모호하고 뜬금없게 들리겠지만 ‘연애’였다. 우리도 엄청 당혹스러웠다. 연석회의에서 ‘연애’라는 주제가 결정되고, 시떼는 주제에 맞추어서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도훈 : 나는 자치문화제가 정치적인 발언을 위한 기획인 줄 알았다.(웃음)

송혜민 : 물론 그럴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정치적인 발언이라는 건, 각자 단위에서 판단할 일이다. 자치문화제의 성격자체가 연대의 목적이 더 강하다고 봐야한다.

박유미 : 사실, 연애자체도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 자치문화제 안에서도 사회적이면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이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은 있다.


이도훈 : 자치문화제로 다 같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보자는 건가.

박유미 : 하나의 목소리는 아니고, 하나의 주제로 각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에 가깝다. 나는 지금 상태처럼 한 가지 주제를 공유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자치단위별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시선도 다르다고 본다.

송혜민 : 하나의 목소리를 모으자는 느낌이다. 이 문화제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체성 확립이 미흡한 상태다. 그리고 자치단위의 성격상 이미 사회적인 이슈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훈 씨는 연애라는 주제가 사회적인 이야기랑 조금 분리된다고 보는 듯한데, 연애라는 주제를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다룰 경우 장애인의 사랑과 인권이라는 이야기로 접근할 수 있다. 레즈비언 인권단체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섣부르게 판단해서 연애라는 소재만으로 사회적이냐 아니냐를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도훈 : ‘사랑 속의 권력’이라는 주제는 섹시하다. 연애라는 소재 때문에 대중적인 공감도 얻었을 것 같고. 그래도 준비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송혜민 : 섹시하다니, 조금 독특하군.(웃음) 보통 시떼에서 하는 세미나는 소재만 던지고 시작하지 않는다. 최초 기획자가 어느 정도의 아웃라인을 그려오고, 그걸 들어보고 주제를 결정해서 세미나가 진행된다. 자치문화제에서 연애라는 주제가 나왔고, 시떼에서는 그 막연한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주제를 뽑아내야했다. 일종의 이중 작업을 한 거다.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별히 우리가 연애 속에서 권력이라 소주제를 뽑아낸 이유는, 오늘날 연애라는 걸 떠올렸을 때 섹시한 이미지로만 굳어지는데 영화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애 속의 권력구조가 작동하는 것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영화들을 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할 말 있을 줄 알았는데, 할 말이 없었다는 거.

박유미 : 진짜 할 말 없었다는 거. 열심히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영화 상영작을 결정할 때는 거수였다. 하지만 연애 안에서 권력 구조를 이야기해 보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연애라는 게 결국 개인사고, 개인별로 연애에 대해서 느끼는 것도 다르지 않나. 하나의 답을 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어떤 영화를 볼 때는 ‘왜 이런 연애 이야기를 굳이 영화로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글로써도 될 이야기들을 영화로 볼 때는 영화자체의 특성을 발견하는 게 더 힘들었다. 텍스트를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큰 소득은 없더라.


이도훈 : 보통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몇 편의 영화를 보는가?

송혜민 : 보통 15편 정도고, 많으면 20편정도.


이도훈 : 그 중에서 상영작을 추리는 건가

박유미 : 8-9편 정도를 상영한다.

송혜민 : 영화를 선정하는 방식도 팀별로 다르다. 세미나 주제에 맞추어서 영화를 고르는 팀이 있다면, 좀 더 자유롭게 개인적인 취향과 기호에 따라서 틀고 싶은 영화들을 선정할 때도 있다.


이도훈 : 팀원들끼리 의견충돌이 일어나면, 결국은 다수결로 하지 않나.

송혜민 : 그럴 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웃음)

박유미 : 이기고 볼 일이다. 그럴 때는 고학번의 목소리가 크다.


이도훈 : 다른 세미나 이야기를 좀 해보자. 올해 했던 세계영화사 상영회를 보면 각 사조별로 대표작을 한 편씩 상영하더라. 누벨바그에서 <쥴 앤 짐>, 프랑스 시적리얼리즘으로 <위대한 환상>, 이탈리아 모더니즘으로 <블로우 업>, 대만 뉴웨이브로 <비정성시>를 포함하여 8편을 상영했던데, 그 목록들을 보면서 한 우물만 팠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예를 들어 누벨바그 영화들만 상영하거나, 뉴 저먼 시네마 영화들만 상영하는 방식으로.

송혜민 : 우리가 들어왔을 때 세계영화사 세미나가 세계 영화사를 개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도훈 씨가 말한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기획 상영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세계영화사 세미나는 개괄적으로 영화사에 접근한다. 보통 상영회를 할 대 배제되는 영화들이 발생한다. 사실, 우리가 모르는 영화들이 너무 많지 않나. 이점을 고려해본다면 개괄적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우리중에 누군가가 누벨바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기획 상영회로 제안한다면 하나의 세미나 주제가 되고 상영할 수 있을 거다.


이도훈 : 세미나를 하면 스터디를 하고, 그러면 그 결과물을 공개할 생각은 없나. 예를 들어서 공개 세미나를 여는 것은 어떨까?

송혜민 : 그런데, 관객조차 많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일을 더 크게 벌일 필요가 있을까.

박유미 : 만약 관객의 요청이 들어온다면 하겠지만.

송혜민 : 굳이 요청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시떼에 관객들이 많이 오고, 시떼라는 공간자체가 관객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면 새로운 방법이나 시떼의 활성화를 모색해 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시떼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이도훈 : 민감한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평소 관객은 어느 정도로 오는가.

박유미 : 한 주 평균 30~40명. 하루에 두 번 상영을 해서 일주일에 총 8번의 상영이 있다.


이도훈 : 관객 수가 적을 때는 기분이 착잡하겠다.

송혜민 : 지금은 어느 정도 초월한 것 같다.

박유미 : 나는 중립적인가?


이도훈 : 상영회를 하면서 희열을 느낄 때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한 명의 관객 때문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2004년 한양대 영화 동아리 회장을 할 때,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프랑수와 오종 특별전을 동시에 했다. 두 개 강의실을 잡아서 매일 상영회를 했는데, 한 관객이 매일같이 와서는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보는 거다. 그 분 때문에 상영회의 맛을 알았다.

송혜민 : 그 말에 공감을 하지만 나는 도리어 안타깝다. 상영회를 자주 찾아주는 관객에게는 고맙다. 하지만 그처럼 한 두 명의 관객을 위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여건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오는 사람만 오는 상황에서 상영회의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게 가능한 일인가. 왜 이렇게 올 사람만 오는 걸까.

박유미 : 사실 시떼가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않은 탓도 있다.

송혜민 :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않아도 이미 시떼의 상영 목록은 지극히 대중적이다. 어쩔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인가.


이도훈 : 상영목록이 약간 대중적이라는 말을 했는데.

박유미 : 작년 11월경에 <원스>를 틀었을 때 대박이 났었다. 음악 하는 친구들 불러서 ‘음악과 함께 하는 밤’이라는 타이틀로 <원스>를 같이 상영했다. 관객은 60명 정도 왔다. 물론 우리가 시떼의 활성화를 위해서 일부러 대중적인 영화를 고른 것은 아니었다.

송혜민 : 우리 머릿속에 있는 영화목록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웃음) 세미나를 준비할 때 고민을 특히 많이 한다. 고전영화나 예술영화를 상영해야한다면 내가 보지 못했던 영화를 발견해서 관객에게 소개할 것인지, 관객들도 익히 알고 있는 대중적인 영화를 상영할 것인지가 늘 고민이다. 상영회에 찾아오지 않는 관객을 탓할 수는 없다. 시떼 내부에서도 늘 고민을 한다. 나는 영화라는 게 유희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뭐 대단한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다가, 나는 관객에게 영화를 보여주는 사람인 동시에 대중적인 영화를 즐기는 관객이다. 내 스스로 어떤 영화가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판단할 능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에게 대뜸, “왜 영화 안 보세요?”라고 묻고 성토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 같다. 지금은 영화를 보여주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반성이 필요한 것 같다. 시떼를 하면서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에 대해서 많이 고민한다. 상영회를 하고, 세미나를 하면서 내가 무엇을 얻고 잃는가, 내 자신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은 지금 내게 너무 벅차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스스로 뭔가 정립되지 않은 사춘기적인 상태인 것 같다.

박유미 : 영화는 혼자 껴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들면 세상에 내놓게 되는 거고, 세상에 나온 영화는 관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하자는 거다. 그래서 나는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대중적이든 아니든 관객과의 소통을 원하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다른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싶기 마련이다. 소통이 잘되고 안되고, 매끄럽고 거칠지의 여부는 차후의 문제다. 관객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세미나에서도 영화를 선정할 때 개개인의 주관이 개입하게 된다. 사실 별거 있나 그냥 고민할 것 없이 좋은 영화 트는 거다.


이도훈 : 시떼가 영화와 관개사이의 매개자로서 기능했으면 한다. 여기서 잠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특별히 고전 영화중에서 좋아하는 작품이나 사조, 감독이 있는가.

송혜민 : 나는 뉴 저먼 시네마?

박유미 : 나같은 경우는 대만 뉴웨이브라고 말해야겠다. 내가 리플렛을 썼으니까. (웃음) 사실 이렇게 말하면 교양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대만 뉴웨이브 영화가 느리고, 따분하지 않나. 그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딱히 재미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말초신경을 자극할 정도로 재미있는 영화들이 아니다. 그래도 지겹게 봤음에도, 어? 잘하네, 이거! 하는 게 있더라. 그럴 때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

송혜민 : 세계 영화사나 감독전을 준비하면 늘 느끼는 것이 있다. 영화들이 재미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음에도 그 영화들을 보면 거장다운 면모를 느낄 수가 있다. 포스가 작렬하는 거지.


이도훈 :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나

송혜민: 나도 내가 리플렛을 쓴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를 말해야겠다. 그리고 트뤼포의 영화는 전부 재미있는 것 같다. 특히 <아메리카의 밤>을 좋아한다. 단어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고전적인 낭만이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서 트뤼포나 에릭 로메르의 영화, 그리고 빌리 와일더의 영화들 말이다.

박유미 : 트뤼포는 약간 산만하지만, 그래도 매력적이다. 나는 고전은 아닌데 짐 자무쉬의 영화를 좋아한다. 깔깔깔 웃기진 않지만, 그의 영화에는 사람을 묘하게 즐겁게 만드는 위트들이 있어서 좋다. 대만 뉴웨이브에서는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를 좋아한다. 감독의 확고한 자기세계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건 취향의 문제인데, 나는 한국영화들 중 역사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을 조금 꺼린다. 최근에 나온 영화중에 <화려한 휴가>가 같은 영화들. <화려한 휴가>와 비슷한 부류의 영화들은 역사를 강요한다. 그런 비강제적인 강요가 있는 영화들이 싫다. 관객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관객에게 역사적 사명감이 부족하지 않은지 채근하는 것 태도가 있다. 그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반성하라는 메시지를 받는 것 같다. 반대로 대만 뉴웨이브 영화들은 역사를 보여줄 뿐이지 평가를 내리고,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다. 제 삼자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지켜보는데, 그런 태도를 볼 때마다 이들은 진짜 역사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송혜민 :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에는 독립영화가 심하게 가벼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판타스틱 자살 대소동>처럼.


이도훈 : 현대 영화들은 어떤 걸 좋아하나. 최근 영화 블로거들의 글을 읽다가 든 생각인데, 주로 여성들이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같은 말랑말랑한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

송혜민 : <수면의 과학>이나 <원스>같은 영화들이 한 때 붐을 이루었던 것 같다.

박유미 : 미셸 공드리의 작품이 사회현상과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수면의 과학>은 ‘나 홀로 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쿨 한척 할 수 있는 영화다. 또, 세상일이나 개인의 문제를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영화다. <수면의 과학>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실례지만, 영화가 사회적인 현상과 잘 맞아떨어져서 붐이 일었던 것 같다.


이도훈 : 최근 관심가지고 있는 영화가 있다면?

송혜민 : 먼저 듣고 싶다.


이도훈 : 최근에는 헐리우드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아이언 맨>이나 <스피드 레이서>는 오락적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약간의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영화라면, 한국독립영화가 있다.

송혜민 : 독립영화 중에서는 어떤 감독을 좋아하나.


이도훈 : 질문의 방향이 바뀐 거 아닌가?(웃음) 윤성호, 양해훈 감독을 좋아한다. 두 사람은 계급을 말하는 대신, 세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전주국제 영화제 폐막작 <시선 1318>을 보면서 느낀 게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언어를 구사하려고 하는 순간 영화가 망한다는 거. 방은진과 이현승의 영화는 최악이었던 것 같다. 방은진은 ‘뽀뽀뽀’나 ‘하나 둘 셋’ 같은 어린이프로에 적합한 수준의 영화, 이현승은 그냥 영화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두 어른이 자신의 시선으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한 것 같다. 두 영화가 정말 10대들의 생각을 고려했는지 의문스럽다. 반면 윤성호 감독의 <청소년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는 30명의 청소년을 인터뷰해서 대사를 썼다는 것부터가 맘에 들었다. 최근 독립영화의 성장영화라고 하는 틀의 고만고만한 영화들이 타자화 된 시선으로 10대 20대를 이해하려고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를 너무 많다. <나의 노래는>의 안슬기 감독도 선생님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지그시 바라보는데, 그 걱정하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10대 나 20대 때는 자기가 주인공이고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10대나 20내는 자기 판단으로 자신들은 이미 다 컸다고 생각한다. 요즘 성장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바라보는 ‘아이’로만 그리고 있어서 조금 아쉽다. 반면 <도다리>라는 영화는 26살의 고민을 풀어내고 그들이 쓰는 언어를 잘 살렸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최근에는 노영석 감독이나 정병길 감독의 영화처럼 희극적인 요소가 있는 독립영화도 좋더라.

송혜민 : 물론 말씀하신 그런 요소들이 독립영화에 많다. 하지만 확장될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독립영화가 너무 폐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를 말한다고 했는데, 관객이 감독이 세대를 말한다는 걸 간파하고, 독립영화가 그 세대를 말할 수 있는 걸 뛰어넘어 계속 지속될 수 있을지.


이도훈 : 대부분의 감독은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트뤼포나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봐도 그들의 관심이 연애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다르의 영화를 봐도 그의 관심사가 영화 속에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고다르는 관심사가 너무 복잡하고, 또 깊어서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지(웃음) 최근 만들어지는 독립영화 대부분이 성장영화인데, 그건 20대 감독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 그 감독들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 감독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영화로 옮겨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창작자 중심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 아닐까.

박유미 :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송혜민 : 창작자 입장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주제의 영화들이 일색인 독립영화 시장 내에서 한 편의 영화가 얼마나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그건 내가 관객의 입장에서 말하는 거다. 나는 관객 그 이상도 아니다. 아주 훌륭하고 재미있게 본 영화가 나온다고 해도 잘 만들었네, 이거지.


이도훈 : 기대심리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후회하지 않아>를 보고 좋으면 다른 사람도 많이 보길 기대해 보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다른 사람도 같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 같은 거.

송혜민 : 같은 주제로 비슷한 영화들이 많으면 영화 한편을 보기 전에도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편의 영화가 있다고 치자. 두 영화가 조금 더 잘 만들고, 조금 더 못 만든 차이가 있을 뿐이라면, 이 상황에서 관객이 독립영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래서 조금 전에 지속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 거다.


이도훈 : 나는 독립영화를 지역성의 문제로 풀어보려고 한다. 이를테면 지아장커가 중국에서 산샤 댐을 찍은 것은 지아장커를 둘러싼 환경이 끼친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핏차풍 위라세타쿤의 영화나 가와세 나오미, 차이밍량의 영화도 그 감독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찍힌 영화며, 그 영화들에는 감독이 생각하는 현실의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동시에 지역적인 정서가 담겨 있다. 이처럼 한 편의 영화는 지역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한사회를 고민하는 영화, 우리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영화가 기대해 볼 수 있는 곳이 독립영화라는 곳이다. 아니, 지금 우리 이야기가 왜 독립영화로 빠졌을까?

박유미 : 결국은 독립영화에 관심이 많으시다는 건가? 이야기 잘 들었다.(웃음)



이도훈 : ECC(Ewha Campus Complex:이화캠퍼스 복합단지)에 영화관이 들어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CC에 스타벅스가 들어서서 한동안 진통을 겪었는데, 최근 영화인들의 관심은 이화여대 내 씨네큐브 분점이 들어선다는 거다. 씨네큐브 분점이 이화여대내로 들어온다면 시떼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송혜민 : 아직 영화관이 들어오지 않아서 말하기 힘들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지만, 별 상관없다. 두 영화관 자체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본다. 씨네큐브가 아무리 예술영화관, 예술영화를 배급하는 곳이라고 해도 극장은 극장이다. 씨네큐브 때문에 시떼의 정체성인 자치단위의 의미가 더 부각될지도 모른다. 물론 관객이 전혀 안 올수도 있다. 그 문제는 나중에 대처해야할 일이다. 시떼는 모든 부분에서 씨네큐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협소한 곳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떼의 관객들이 예술영화가 보고 싶어서, 예술영화가 볼 곳이 없어서 시떼로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로만 나가도 예술영화관은 많지 않은가.

박유미 : 결과적으로 자치단위의 특성이 더 부각될 것 같다. 극장은 영리단체고, 상업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다. 시떼와 같은 자치단위에는 이화인을 위한 정신이 기본바탕으로 깔려 있다.




 

이도훈 : 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학 안에 극장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 내 극장들은 운영 목적이 영리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시네마테크를 운영하고, 학교가 이를 지원하는 식이라고 들었다. 학내 시네마테크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개방된다고 한다. CGV같은 멀티플렉스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학교에 상업영화관이 들어오는 것은 스타벅스가 학교에 들어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송혜민 : ECC 내부의 상업화를 반대하는 움직임에 동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떼의 공간이 침해당한다는 이유만으로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부에서도 걱정을 많이 했지만, 씨네큐브가 제공해주는 영화를 동시간대에 시떼에서 제공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우스개 소리지만 씨네큐브 들어오면 관객은 시떼 운영진과 시떼 관객들이 아닐까.(웃음)


이도훈 : 시간이 많이 지나서, 슬슬 정리를 해볼까 한다. 두 분 모두 시떼에서 만은 시간을 보냈는데, 각자에게 시떼는 어떤 의미로 자리 잡았는지 궁금하다

송혜민 : 영화를 떠나서, 시떼는 대학생활에서 얻은 내 모든 감정 형성에 80%정도 영향을 준 곳이다. 물론 모든 감정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아주 작은 감정에서부터 큰 감정에 이르기까지 내 감정의 과잉상태를 자주 야기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도훈 : 애증의 관계라는 말인가?

송혜민 : 그렇다. 증이 많은 애증이다. 시떼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에 대한 애증도 엄청 증폭이 되었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애증은 말한 것도 없다. 특이한 건, 시떼는 사람을 폐쇄시키지만 결속력과 유대가 강해서 사회생활에서나 경험할 많은 것들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박유민 : 시떼는 폐쇄적면이 있다. 이곳에는 우리가 원하는 결속력보다 시떼가 요구하는 결속력이 더 강하다. 그래서 시떼에서 생활하다보면 남는 건 사람이다.


이도훈 : 이제 곧 임기가 끝날 텐데,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송혜민 : 우리 두 사람의 임기는 이번학기 까지다. 심지어 다음 주에 관장 선거를 한다. 앞으로도 시떼가 잘 살았으면 한다. 내가 시떼에서 얻고 잃은 만큼, 후배들도 시떼에서 많이 잃고 얻어갔으면 한다. 후배들이 나보다 조금 잃으면 억울할 것 같다.(웃음) 잃는 것만큼 얻어가는 것도 많았으면 한다.

박유미 : 시떼는 무언가를 잃을 때 잃고부터가 시작이다. 당하는 게 있어야 얻는 것도 있을 거다.(웃음)





 

진행: 이도훈
참석: 송혜민, 박유미
정리: 강민영,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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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대졸업생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01학번인데, 이 글 읽으니 학교 다니던 때가 생각나네요. 저 다닐 때에는 1천원인가 2천원 내고 봤었는데. 어린신부도 보고, 아이다호도 보고... 관객이 많은 편이 시떼입장으로선 좋겠지만, 관객이었던 저로서는 극장 내에 사람이 적어서 참 좋았어요. 앞으로도 계속 발전이 있는 시떼가 되길 바랍니다. 블로그쥔장님께는 인터뷰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2008.05.27 16:21
  2. 저도 졸업생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97학번이에요. 학교 시절 혼자서 시네마떼끄에서 영화를 봤었죠. 그때도 사람 참 없었는데 지금도 그렇겠죠?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끝까지 남아주세요. 화이팅.

    2008.05.28 01:06
  3. Favicon of http://www.codistory.net BlogIcon 사춘기 소년  수정/삭제  댓글쓰기

    훗. 언제나 좋은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저도 이대 시네마떼끄엔 지인들이 있어서 감회가 새롭네요. 예전엔 정말 영화를 구할 수 있는 통로가 떼끄밖에 없었지만, 요즘은 그런 메리트가 사라졌지요. 시네마클럽에서 p2p 영화클럽로 이양 됐다고 할까요.. 추억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사실 아쉽기도 하지만, 또 전혀 나쁘게는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2008.05.28 01:26 신고
  4. 저두 졸업생이에요.^^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네마떼끄에서 인도영화 상영해주고 그랬던 거 기억나네요.
    거기서 영화 한번인가 봤던 기억이 나요.
    전 99학번인데 학교가 참 많이 변했더라구요.
    그냥 반가워서 함 놀러와봤어요.^^

    2008.05.28 04:33
  5. 음..역시...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위 분들 말씀 들어보면 항상 한산한 씨떼였던것 같은데....
    관객이 200-300이었다는 전 선배의 말은, 역시 기억의 재구성인듯 ;;^^

    2008.07.25 09:31
  6. 前 운영위원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객이 2-3백 들었다는 얘기는 적어도, 90년대 중후반 시절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매번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요..)

    2009.11.1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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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굶어도 영화는 본다.


씨네꼼의 모토에는 어딘가 절박한 구석이 있다. 황야의 이리처럼 학교를 배회하다가 3년 만에 정착한 곳이 씨네꼼이라는 안경배씨(서울대 법학과 04학번)의 말 속에는 절박함이 구구절절 묻어 있다. 그에게 씨네꼼은 안식처였던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영문판으로 읽고 있던 홍지로씨(서울대 영문학과 03학번)는 겉은 지적인 이미지로 똘똘 뭉쳐 있어도, 속은 명랑한 영화청년이었다. 장르 영화의 즐거움과 플롯의 무의미를 체득해 나가고 있다는 홍지로씨. 그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이야기하는 영화들을 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사실, 이 사람도 영화에 안달난 사람 중에 한 명인 것 같다. 현 씨네꼼 회장인 강산씨(서울대 인문학과 06학번)는 기무라 타쿠야를 닮은 외모 때문에 일단 첫 눈에 빠져드는 남자다. 영화가 그를 유혹한 걸까, 그가 영화를 꼬신걸까? 그는 영화가 자기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영화가 아니며 안 된다. 그래서 씨네꼼에서는 하루라도 영화를 보지 않고, 틀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첫 눈에 씨네꼼에는 영화가 있고, 씨네꼼 사람들은 영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는 ‘영화’라는 우주로구나! 지금 씨네꼼인들은 영화와 열렬한 연애중이고, 영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씨네꼼에는 소 상영실과 함께 30명 정도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상영실이 하나 더 있었다. 대한민국을 뒤져봐도 이런 공간을 가진 대학은 없으리라. 같은 학생의 입장으로서 마냥 부러울 따름이었다. 인터뷰를 주선해 준 안경배씨는 씨네꼼의 자료실 문을 조심스레 열어주면서 수줍은 듯, 그러나 은근 자랑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운영비로 구입한 DVD와 씨네꼼 회원들의 개인소장 자료들이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고, 자료들만 봐도 영화를 본 것 마냥 뿌듯했다. 700여 편의 VHS와 1000편에 육박하는 DVD 자료는 씨네꼼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앞으로 타 학교 학생들도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란다. 인터뷰 하는 중에도 소상영실을 예약한 학생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영화를 보러 오는 학생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씨네꼼 회원들을 보고 있으니, 극장 프로그래머와 관객의 관계가 연상된다. 실제로 씨네꼼 회원들은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알았다고 한다. 이들은 씨네꼼에서 영화의 맛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도 다다익선多多益善 이 아닐까? 좋은 영화자료는 많이 모을수록 좋고, 그것을 공유할수록 더 좋고, 함께 보면 더더욱 좋다. 여기에 큰 스크린과 좋은 영사시설이 갖추어지면 금상첨화. 이 인터뷰에는 영화에 인생을 걸어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명랑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도훈 : 우선, ‘씨네꼼’을 소개해 달라.

강 산(서울대 인문학과 06학번, 現 ‘씨네꼼’ 회장) : ‘씨네꼼’은 엄밀히 말하자면 동아리는 아니다. 보통 동아리들이 동아리 연합회 소속인데, 씨네꼼은 복지과 소속이다. 복지과에서는 학생들의 문화적인 복지혜택에 관한 일을 한다. 복지과에서 하는 일을 예로 들자면 학생회관에 음악 감상실 만들어서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고, 우리 동아리가 있는 건물인 두레문화회관에는 씨네꼼이라는 영화 감상실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영화를 볼 수 있게 한다. 씨네꼼은 학생들을 위한 복지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 씨네꼼이 생긴 건 1993년도다. 당시 언론정보학과 학생들이 이 공동체를 만들면서 학교 측에 재정적인 지원과 공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학교에서는 명목 없이 지원을 해줄 수는 없으니까, 봉사장학생 두 명에게 장학금을 주는 식으로 한 거다. 봉사장학생은 장학금을 받고 감상실에 오는 학생들에게 영화를 틀어주고, 자료들을 관리한다. 한 명당 20만원이 지급되는데, 그걸 개인이 갖지 않고 동아리 통장에 입금해서 씨네꼼 운영비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좋은 관행이 오래전부터 굳어져 왔다. 씨네꼼은 학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프로젝트에 있는 렌즈가 고장 났다고 하면 갈아주기도 하고, 엠프를 사주기도 한다. 때로는 한 학기 DVD구입비로 일정금액이 지원된다.


이도훈 : 씨네꼼에 가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누구먼저 할까? 학번 순으로 할까?

홍지로(서울대 영어영문학과 03학번) : 내 이야기는 영화와 별 상관없고, 또 울적하다. 1학년 때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과방에도 안 나갔고, 수업 듣고 나서 공강 시간에는 다음시간 공부하고, 수업 끝나면 사는 곳으로 돌아가는 아이였다. 따분한 일상을 보내는 아이. 물론 친구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고등학교 때부터 인터넷 채팅으로 알던 친구하나가 아는 척을 하더니 나랑 친했다는 것처럼 굴더라. 한 날은, 그 아이가 씨네꼼이란 곳에 가입했다고 말을 했다. 물론 처음부터 내게 들이대지는 않았고.(웃음) 그러던 그 녀석이 다음 시간에는 자기가 무슨 영화를 봤는지 이야기하고, 또 다음 수업시간에는 비디오를 하나가지고 와서는 씨네꼼에서 빌려왔다고 말을 하는 거다. 그게 <이지 라이더>이었다. 나는 그 영화가 뭔지도 모르던 때였지. 그러더니 기어코 이 친구가 날 보고 씨네꼼에 가입을 하라면서 넌지시 말하더라.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라는 사람은 정말 비사교적이었다. 나를 잘 알던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오히려 내 이런 성격과 분위기가 씨네꼼과 잘 어울릴 거라고 했다. 그래서 씨네꼼에 와봤더니 진짜 침울한 게, 쇼킹했지. 내가 제일 말이 많더라. 그래도 공간이 넓고, 아늑한 분위기라서 씨네꼼이 마음에 들었다. 그 당시만 해도 씨네꼼이 망해가던 때였다. 한 학번에 한 명밖에 없었고, 내 바로 한 학번 윗선배는 탈퇴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유지만 되는 상태였다. 그래도 망해가는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이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도는 상당히 높았다. 특히 01학번이 대단했다. 마침 03년도에 새내기가 5명 정도 가입하고, 그 친구들이 오랫동안 남아있어서 세미나가 가능해졌다. 제일 처음 배운 게 토마스 샤츠가 쓴 <헐리우드 장르구조>였다. 물론, 세미나에 참석해도 하나도 이해를 못했다.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DVD가 덜 보급되었던 때라, 프레디어 아스테어의 뮤지컬을 한 편도 보지 않고서 책에 있는 글만 읽고는 백 스테이지 뮤지컬이 뭔가를 추측해가면서 공부했었다. 이렇게 여차저차해서 동아리에 남게 된 거다. 나란 녀석은 씨네꼼에 가입하기 전에는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인생이 꼬이고, 영화에 낚인 거다. 혹시 또, 궁금하신 거 있나?

안경배(서울대 법학과 04학번) : 나는 학교에서 아웃사이더였다. 학교 다니면서 수업은 거의 듣지 않고, 그러다보니 학점은 1점대 2점대로 기어 다녔다. 당시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내가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뭘까”라는 생각만 하고 다녔다. 학생운동도 한 번 기웃거려보다가, 그렇게 방황하기만 3년. 어느 날엔가 길을 지나가다가 정우성이랑 김태희가 메인으로 나온 잡지를 봤다. 올 컬러로 된 잡지면서도 1000원인 게 너무 놀라웠다. 그게 필름 2.0이었다. 당시 정우성이랑 김태희가 <중천> 촬영을 들어갈 즈음이었고, 아마 <브로크백 마운틴>이 서서히 입에 오르기 시작하고, 개봉작으로는 <왕의 남자>랑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이 있었다. 어 이 영화 되게 재미있겠는데! 하는 생각에 하이퍼텍 나다를 처음 가서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을 봤다. 그 영화를 두 번씩 보고. 그 즈음해서 극장에 걸렸던 빔 벤더스의 영화나 짐 자무시 영화를 봤다. 그렇게 감독의 이름을 하나 둘 알아가던 중에, 빔 벤더스 영화 중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는데 엔딩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이름이 언급되더라. 오즈 야스지로! 그 사람이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에 학교에서 ‘오즈의 칼라 영화’라는 영화제 포스터를 봤다. 그 영화제가 여기 씨네꼼에서 하고 있었다. 사실 그 때는 내가 3학년이라서,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는 것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영화제가 3월 달에 했는데, 6개월 정도를 가슴에만 담아두다가 어렵게 연락을 해서 찾아왔다. 연락해보니 3학년이라도 대환영이라고 하더라. 근데 막상 와보니, 환영은 무슨. 처음에 왔을 때 왕가위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신경도 안 쓰고 끝나고 뒤풀이에 가도 찬밥 신세더라.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왠지 모르게 남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 그래서 꿋꿋이 버텼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곳의 특성상 한 번 발을 들였다가 쉽게 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 경계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이도훈 : 아니, 두 분 이야기만 들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여기가 너무 우울해 보인다.(웃음)

홍지로 : 아니다. 경배 씨가 들어올 때만 해도 신입회원도 많을 때고, 나름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을 때다. 원래 씨네꼼의 전통대로라면 처음 오는 신입회원에게는 6개월 동안 말을 걸지 않는다. 원래 그랬었다. 04년도부터 조금 부드럽게 신입을 맞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게 실패한 거 같다. 오는 사람들마다 따뜻하게 했더니, 사람들이 여기를 사교장으로 영화는 안 보고 사람만 만나고 가고는 하더라. 그 전통을 이어갔어야 했다.(웃음)

강 산 : 나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과 생활보다는 동아리활동을 더 하고 싶었었다. 그래서 1학년 1학기 때는 동아리를 두 개 하고, 2학기 시작하기 직전에 여기 가입했다. 1학기 때 영화가 아닌 다른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영화동아리에 들지 않은 게 내 스스로 조금 서운했던 것 같다. 학교에 ‘얄라셩’이라는 동아리가 있기는 하지만 제작중심이었고, 또 나는 편하게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여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동아리 가입하는 곳마다, 내가 가입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늘 06학번은 나 혼자더라. 나 때문에 동아리가 망해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죄스럽더라.(웃음) 앞의 두 사람의 말을 들서 알겠지만, 씨네꼼 특성이 무관심이다. 내가 처음여기 왔던 때가, 8월 말이었는데 11월말이 되어서야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는 와서 인사 나누고, 선배들은 나는 안중에도 없이 책만 보고, 그러면 나는 굴러다니는 DVD 하나보고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리고 또 다음날 와서 혼자 영화 한편 보고 집으로 가는 식이었다. 본격적으로 세미나에 참여하게된 건 왕가위 세미나 때다. 나 역시 이 무뚝뚝한 분위기에 끌려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왕가위 세미나 참석했을 때는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더라. 그런데 사람들이 정말 재미있게 세미나를 해서 그 모습에 약간의 동경심이 생겼던 것 같다.


이도훈 : 씨네꼼에서 진행하는 세미나가 어떤 것이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해온 세미나를 간략하게 들어보고 싶다.

홍지로 : 이런 소리를 하면 또 고학번이나 꼰대 취급을 받을 것 같은데. 먼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씨네꼼이 제 2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선배들이 주도하는 세미나에는 기본적으로 텍스트가 있었다. 당시 우리는 토마스 샤츠의 <헐리우드 장르의 구조>를 같이 읽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새내기들이 모두 영화에 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일단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자체가 힘들었다. 세미나에서 다룰 책을 읽어오고 누군가 발제를 하고 혹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같이 토론을 했다. 이런 작업만으로도 시간이 잘 가더라. 물론 항상 영화보기를 늘 병행했다. 2003년에는 웨스턴, 트뤼포, 필름 누아르, 그리고 나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주제로 세미나를 했고, 히치콕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약간은 치열하게 2003년에서 2004년 여름을 보냈던 것 같다. 당시 세미나는 텍스트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당연히 그 사이에 <필름아트>라는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기도 했다. 내가 군대를 간 건 2005년인데, 군대를 갔다 온 사이에 많이 바뀐 것 같다.

강 산 : 동아리에 들어온 게 2006년이다. 나는 이곳이 작가위주론 위주의 세미나를 하는 곳인 줄 알았다.

홍지로 : 그 부분에 관해서 첨언을 하자면, 2005년 전까지의 세미나는 작가주의를 한 번하고 나면 다음에는 특정 영화사조에 관해서 논의를 했다. 두 가지를 병행한 거다. 그래서 한 학기에 두 번의 세미나를 하고 상영회를 개최했다.

강 산 : 내가 동아리에 가입했을 때는 타르코프스키, 왕가위, 자끄 따티에 관해서 세미나를 했다. 씨네꼼에 들어와서 타르코프스키나 자끄 따티의 이름을 처음 들은 셈이다. 감독중심으로 진행되는 세미나에만 참여하다보니 “작가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곳이구나”란 편견을 가진 것 같다. 그런 오해가 있어서 “이런 방식으로만 영화를 보는 구나”란 착각도 했었다. 조금 다른 경우는 2006년 겨울에 홍콩무협 영화를 가지고 상영회를 한 적이 있다.

홍지로 : 강산 씨가 지금 말한 부분에서 씨네꼼에 약간의 단절이 일어났다. 예전에 씨네꼼 사람들은 군대를 늦게 가는 편이었다. 회장을 하더라도 4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었다. 2005년 여름 즈음해서 기존에 사람들이 군대를 가고, 회장도 임기가 끝나고서는 동아리에 나오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또 2004년에는 열심히 세미나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2005년이 되어서 탈퇴를 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세미나를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진 거다. 그 이후의 세미나는 선배들이 세미나를 진행한 걸 본 약간의 깜냥이 있는 사람들이 세미나를 진행했다. 예전처럼 텍스트를 스스로 선정하고, 영화를 면밀히 분석하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새로 가입한 사람이 영화를 아주 잘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이때부터 세미나라는 것이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정착한 듯하다. 씨네꼼 세미나에서 텍스트의 힘이 사리지기 시작했다. 아, 물론 영화를 보기 위해서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 관련된 텍스트를 읽는 훈련이 없어지면서 연쇄작용처럼 영화를 보고 영화평을 쓰는 습관도 사라진 거다. 글을 쓰지 않음으로써 체계적으로 사유하는 모습도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영화를 보고 감상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강 산 : 지금까지 이야기가 2006년까지의 씨네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말을 잇자면, 2007년이 되어서 2005년에 군대 갔던 선배들이 전역을 하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세미나에 간접적으로 개입을 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다 같이 모여서 영화를 보는 것에 그쳤지만, 선배 한 분이 와서는 체계적으로 텍스트를 골라주기 시작했다. 그제야 한 권의 책을 선택해서 세미나를 하기 했었다. 처음으로 시작한 건 루이스 자네티 <영화의 이해>였다. 그리고 나서 작가론으로 기타노 다케시 세미나를 했다. 텍스트로 세미나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세미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보드웰의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 책을 찾아보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사관리 엄정화’라는 게 우리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사실, 학생들이 희귀한 상황은 다른 동아리도 마찬가지다. ‘학사관리 엄정화’가 학생들에게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동아리 생활에도 타격을 준 것 같다.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입회원이 와도, 영화는 정말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하는 데, 오랫동안 세미나를 할 분위기는 조성이 안 되는 거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이 겹치면서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오고 갔다. 회장이 되고 나서는 기존에 남아있던 멤버랑 새로 들어올 사람들 간에 기본 전제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은 영화를 보고 진지하게 사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 다른 한쪽은 그것보다도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거다. 신입회원들에게 영화를 보고 나서 이론을 공부한다거나, 형식적인 분석을 한다고 하면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는 분들이 있었다. 동아리에는 자료가 계륵(鷄肋)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료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정회원을 받으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어떤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 모임이 계속되어야하고, 동아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모임에 참여할 동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될까? 만약 이 상태에서 더 진지한 세미나를 고수한다면 뒤로는 새로 들어올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고 해서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기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한 개인의 것도 아닌데. 이런 고민 끝에 올해는 꼭 세미나를 하지 않더라도,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다른 방안을 내세웠다.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한 편씩 뽑아서 그걸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걸로 바꾸게 되었다.

(이 때 어디선가 투덜투덜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재 세미나에 대한 불만인가보다.)




이도훈 : 이 상황에서 좀 더 홍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모임의 정체성을 어필해야 할 것 같은데?

홍지로 : 특별히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동아리에서 하고 있는 세미나가, 영화 한편을 소개하고 방식인데, 지난겨울에 있었던 운영회의에서 나온 대안적인 세미나 방법이다. 지난겨울에 보드웰의 <영화의 내fp이션1>을 가지고 세미나를 했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다음 학기 세미나 운영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 중 한명이 기존의 세미나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모두가 영화 평론을 할 사람들도 아니고, 영화를 업으로 할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깊게 파고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회의에서는 그런 의견을 백분 받아들여서 지금의 세미나 방식으로 바꾸게 되었다. 각자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하고 감상평을 나누는 방식으로. 그런데 세미나를 바꾸어도 어차피 나오지 않던 사람은 계속 나오지 않고, 꾸준히 나오던 사람은 세미나가 어떻게 바뀌어도 나오더라.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 우리가 <영화의 내레이션 2권>으로 이번학기 세미나를 했어도 결과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같다는 거다. 타 학우들을 생각해서 친화적으로 바꾸어도 변화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강 산 : 나 역시 보드웰의 <영화의 내래이션 2권>을 주장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를 보니 대다수가 그걸 꺼려하더라. 당시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가입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냉정하게 주장을 펼 수 없었다. 동아리에서는 사람들간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니까. 평소 세미나에 부담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종의 대안이었다. 가볍게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그러다보면 진지한 사유들이 오고 갈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잘 안되었다고 본다.


이도훈 : 씨네꼼은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와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씨네꼼 자체적으로 상영회를 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에 어떤 의의를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여기서 고전 영화나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홍지로 : 내 입장은 03~04년도와는 조금 달라졌다. 자꾸 꼰대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웃음) 2003~04년에는 저런 상영회를 해도 관객이 많이 왔다. 그래서 당시에는 상영회 자체에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트뤼포의 영화를 틀었을 때 관객이 많았는데, ‘필름 느와르'라는 주제로 상영회를 하니 관객이 더 많이 오고, ’뉴 아메리칸 시네마‘때는 살벌한 영화를 트는데도 사람이 많이 오더라. 히치콕의 영화를 틀 때는 그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왔었다. 당시 씨네꼼은 우리가 어렵게 세미나를 하고 나서 그 결과물로 영화를 틀어줬을 때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관객 맛을 알았던 거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영화를 틀어주는 우리는 어떤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더라. 이제는 상영회를 해도 한두 명 오는가 하면, 한 명도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관객 친화적인 영화를 틀어도 사람들이 잘 안 오는 건 마찬가지더라. 관객 친화적인 영화라면 뭘 틀어줘야 되는 건가?

안경배 : (불쑥) <반지의 제왕> 같은 거!

홍지로 : 관객에게 더 가깝게 다가기 위해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이랑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타인의 삶>을 묶어서 튼 적이 있다. 그래도 사람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강 산 : 지로 씨가 관객의 맛을 알았다면, 제가 동아리에 왔을 때는 상영회 때 관객이 2~3명오는 수준이었다.


이도훈 : 강산 씨는 정말 침체기 때 들어오셨군요. 역시 앞에서 말한 저주가..(웃음)

홍지로 : 이제는 상영회 자체에 의의를 둘 뿐이지 관객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안경배 : 관객의 발길이 뜸해진 건 앞에서 ‘학사관리 엄정화’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하는 것 같다. 학사엄정화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영화관이 늘어났다는 거다. 90년대 때만해도 영화를 좋아하는 여러 학생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문화학교서울’이라는 공간에 모일 필요가 있었다. 그곳에 가야만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영화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은 서울아트시네마. 스폰지하우스, 하이퍼텍 나다같은 예술 영화관들이 많다. 오늘날 희귀한 자료를 구해서 상영회를 열고, 한 공간에서 둘러앉아서 영화를 볼 필요가 없어진 거다. 영화관이 다양해지고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다 보니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강 산 :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좀 더 생각한다면 상영회를 하는 것보다, 감상실의 기능을 좀 더 강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감상실의 기능에 집중하다 보면 동아리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 정말 그렇게 되면 봉사장학생이 운영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다. 내가 군대를 가고, 전역 후에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누구랑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한다.


이도훈 :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아리에 대한 애착을 듣고 싶다. 세미나를 끝나고 나서 얻는 성취감이나 상영회 때 가지는 관객과의 교감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나로서는 이 공간이 대학 내에서는 흔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홍지로 : 타이밍을 잘못 맞추셨네. 난 점점 재미가 없어지는 중인데. 나는 여기서 처음 영화를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어마어마하다. 영화가 무엇인지를 씨네꼼에서 처음 배웠고, 그걸 강화시켜 나갈 수 있게 도와준 것도 이 모임이다. 굉장한 경험이었다. 우리의 결속력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가 있다. 졸업한 사람이 갑자기 뜬금없이 문자가 와서 “이 영화 죽이더라!” 라고 하면 그 영화에 대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는 조용한 것 같지만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결속력이 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교에서 달리 갈 곳이 없어서 남아 있는 거다. 나는 씨네꼼의 ‘제2의 전성기’를 함께 한 사람이라서 그 때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거다. 내가 이곳에서 영화를 체험하고 배웠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화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한 20명 오게 되면, 그 중에 나같은 녀석도 한 명쯤 나올 거라고 믿고 있다. 덧붙여서 나는 영화를 보여주는데 주목하고 싶다. 혼자서 보는 것보다 내가 본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고, 씨네꼼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으면 한다. 참고로 이번학기 중에 내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다. 씨네꼼에서 얻는 즐거움은 영화를 공유하는 데 있다.


이도훈 : 보여주는 재미를 위해서라도 세미나를 강화해야한다?

홍지로 : 물론 그렇다.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세미나와 상영회를 하고 싶다. 저는 아직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웃음)


이도훈 : 인터뷰하면서 느끼는 건데, 여기는 다른 동아리처럼 위계질서가 있는 곳은 아닌 듯하다. 내가 재학 중인 학교 동아리만 해도 알게 모르게 군대식의 군기가 있었는데. 전통 이 있다고 하는 동아리는 대다수 선후배간의 질서가 있는데, 여기는 “저사람” “이사람”하는게 평등하다고 해야 되나.

홍지로 : 나 가입할 때도 사람들 사이가 유연했다. 03학번인 내가 08학번과 반말하고 그런다. 나는 강산이 06학번이란 걸 오늘 알았다.(웃음)
강 산 : 나는 00학번까지 말 놓고 있다.


이도훈 : 다시 인터뷰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안경배 씨의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 씨네꼼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안경배 : 2007년을 보내면서 주변에서 제일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씨네꼼 사람들이다. 요즈음 한국 학생사회에서 “나는 영화를 좋아해”라고 말하면 영화 친구들 사이에서는 멋있어 보여도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거다. 사실 학교에서 아웃사이더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수성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기다. 자기의 감수성을 드러낼 때 그 감수성을 곧이곧대로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반면에 씨네꼼은 내게 아주 관대했다. 씨네꼼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나의 사소한 일상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학교에서 낙오자처럼 살다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에 씨네꼼에 들어와서 안락함을 얻었다. 동아리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있는 것 같다.


홍지로 : 여기에 이상한 디테일이 있다. 내가 새로 가입한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정기 모임에만 나와서는 절대 씨네꼼에서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거다. 이상한 감정들이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웃음) 또, 여기서 하는 일들은 항상 시간을 탕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아리에서는 항상 시간이 늦게 흘러간다. 요즘 같은 효율적인 시대와는 맞지 않는 거지.


이도훈 : 하긴, 요즘은 실용주의 시대다.(웃음)

강 산 : 나야말로 씨네꼼에 들어와서 인생이 낚인 거 같다. (하하) 씨네꼼에 들어와서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영화 뒤에 감독이나, 영화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전에는 극장에서 영화 보고나면 “재미있다” 한마디 하고 끝나는 정도였다. 여기서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뒤에 영화 만든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서 너무 뿌듯하다. 덩달아 나도 영화 일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요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중 하나가, 학교가 학원처럼 느껴진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 프로젝트식으로 사람들이 모였다가 끝나면 헤어지지 않나, 참 이상하다. 반면에 씨네꼼 사람들은 2~3년째 얼굴을 보고 있다. 가장 좋을 때는 여기 사람들과 같은 영화에 열광할 때다. 저마다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가 다를 수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리스트에 있는 영화가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와 겹칠 때가 있다. 그럴때 굉장히 기쁘다. “이거 정말 좋다”, "이거 다시 보고 싶다“ 하면서 같은 영화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신기하다. 당연히 밖에 나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아이 취급받을 거다. 나 역시 아웃사이더인가 보다.(웃음) 시대가 시대인지라, 사람들이 되게 바쁘게 산다. 학교에서는 저 학번 일수록 바쁘다고 하던데. 반대로 여기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곳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동아리에 자료가 많은 것도 좋고, 서로 영화를 추천해주는 문화가 있어 마음에 든다. 사실, 내게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사는거랑 똑같다고 말한다. 영화가 점점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서 다른 일은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참에 이 정도까지 왔으니 영화에 인생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있다. 덧붙여서 영화로 씨네꼼이 좋은 이유는 영화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이도훈 : 경배 씨는 고시를 본다고 하던데, 그럼 영화는 ?

안경배 : 주변에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영화계에도 법조 인력이 필요하다고 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 나름의 타협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시에 합격해서 돈을 벌고 영화일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이것도 참! 돈을 벌고 나서라는 전제를 두고 한다는 게, 단순히 내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쪽에서 일을 한다면 제작이나 배급에 관계된 해보고 싶다. 특히 한국영화에서 배급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이도훈 : 예전에 서울대 법대 교수 안경환 씨가 쓴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을 향해 날다>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법정 영화와 관계된 리뷰를 모은 책이더라. 법 정신에 기반 해서 영화를 소개하는 건 어떨까?(웃음) 이제 시선을 돌려서 다른 이야기를 좀 하자, 극장에서도 영화를 볼 텐데. 요즘 뜨거운 감자인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안경배 : 정치적으로 불법 다운로드를 반대하기 보다는, 단순히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게 싫다. 씨네꼼 생활을 하다보면 다운받는 영화 수 보다 더 많은 영화가 여기 자료실에 있어서 굳이 다운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느낀다.

홍지로 : 항상 강조하는 건데, 여기가 괜히 영화 공동체가 아니다. 혼자서 영화를 보는 것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은 다르다. 지난번 세미나 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논리적인 고찰의 결과가 아니라 체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씨네꼼에는 상영실이 있고, 매주 이 상영실에 모여서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안경배 : 씨네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많이 모여서 다 같이 보면 좋고, 스크린이 크면 클수록 더 좋다는 거다.

강 산 : 여기 가입하기 전에는 불법다운로드 받아 디빅스로 영화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동아리에 들어와서 영화를 같이 보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배웠다. 덩달아 영화에 대한 사랑이 생기고, 영화를 만든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저절로 영화를 다운받아서 보지 않게 되더라.


홍지로 : 최근 본부 학생처에서 씨네꼼의 공간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거기서 내세우는 논리는 “이제는 손바닥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라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참 난감하더라.

강 산 : 휴~(한숨) 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많이 늙었던 것 같다. 본부 학생처에서 한 분이 하는 말이 요즘 같은 퍼스널시대에 왜 영화를 상영실에서 보냐는 거다. 학생처에서 씨네꼼 공간을 축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우리들은 자보를 써가면서 이 공간을 지켜냈다. 씨네꼼의 논지는 많은 문화를 지켜내는 것 중에 영화 문화를 지키는 것도 하나라는 거였다. 영화가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말하면서, 사실은 우리도 사정도 좀 봐 달라는 식이었고, 씨네꼼 같은 공간도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있어야 되지 않겠니?” (웃음) 라는 주장이었다. 학생처랑 충돌하면서 정말, ‘말이 안 통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도훈 : 요즘은 PMP나 핸드폰으로도 영화를 보는 시대다. 최근 영화 보는 사이즈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스크린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그리고 다시 PMP 액정과 같이 더 작은 사이즈로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런 세태가 영화 미학을 망친다는 생각이 든다.

홍지로 : 우리 스스로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로 치열한 논쟁을 한 적은 없다.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정말 영화를 본 걸까? 우리로서는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게 너무 당연하다. 가끔씩 새내기들이 TV 드라마랑 영화랑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묻는다. 가장 간단하게 대조를 하자면 일단 볼륨을 끄고 영화나 TV 드라마를 볼 수 있느냐? 영화는 볼륨을 끄고서 봐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반면 TV 드라마는 볼륨을 끄면 볼 수가 없다. 영화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굉장한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를 씨네꼼 상영실에서 보다가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면 내가 다른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젝트나 와이드 TV는 시네마스코프를 틀면 위아래로 좁아진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면 스탠다드 사이즈가 와이드 스크린이랑 어떻게 다른 건지, 시네마스코프가 왜 시네마스코프인지 이해를 할 수 있다.


이도훈 : 최근 영화 저널이 죽어가고 있다는 쓴 소리가 많다. 씨네꼼 사람들도 각자 영화 글을 쓰고, 영화저널을 읽을 텐데. 특별히 좋아하는 평론가가 있다면?

안경배 : 최근 <씨네21>을 보면서 이 잡지도 광고에 지배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씨네21>은 전영객잔도 있고, 한국에서 비평이 온전히 실릴 수 있는 잡지라서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잡지를 보는 데 광고가 너무 많아서 눈에 거슬리더라. 특별히 좋아하는 글이라면 장병원 편집장의 글을 좋아한다. 예전의 밀양에 관해서 쓴 글을 보고 감명 받은 적이 있다.

강 산 : 특별히 좋아하는 비평가가 있는 건 아닌데, 정한석 기자의 글을 좋아하고 김영진, 허문영 평론가를 좋아한다. 정성일 평론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그닥...

안경배 : 정성일 평론가는 되게 빨리 쓰는 것 같다. 읽어나가다 보면 이 사람은 자기가 쓰면서 비문이 나와도 퇴고를 잘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성일은 예전에 정윤철 감독이 인터뷰한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를 시작하면서 꼭 거치게 되는 평론가인 것 같다.

홍지로 : 정성일은 자기 글에서 오류가 발생을 해도, 그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 같다. 예를 들어 <괴물> 리뷰를 보면 분명 영화를 잘 못 본 부분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가 잘못 본 것에서 조차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왜 잘 못 본 것일까?”하는 식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성일이나 어떤 평론가에게도 존경심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성일 글 중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어도, 좋은 글도 많다. 그가 쓴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는 정말 좋은 책인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임권택의 그 많은 영화 중 달랑 1편 보고서 그 책을 봤는데, 보면서 울었다.(웃음)


이도훈 : 영화 비평을 읽어야 하는 이유, 혹은 영화를 보고 나서 글을 써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묻고 싶다. 사실 영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네이버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는 게 더 빠르지 않나. 그리고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영화 정보를 얻고 있다.

강 산 : 나 같은 경우에는 영화를 보고 나서 평론을 읽는 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거나, 같은 영화를 다르게 해석한 시선을 보고 싶을 때, 혹은 영화 외에 다른 정보를 얻고 싶을 때 평론을 읽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에도 영화로 생산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기능적으로 소비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의 태도가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평론을 읽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이도훈 : 홍지로 씨에게 영화 비평은 참고서 같은 것인가?

홍지로 : 아니다. 영화에 관해서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영화 비평이 필요한 이유를 뼈저리게 느낀 것은 히치콕 세미나를 할 때다. 히치콕 세미나를 할 때 로빈 우드가 쓴 글을 읽었다. 당시 원서를 번역해서 세미나를 했는데, 그 사람 문장이 번역하기 힘들어서 무진 애를 써가면서 세미나를 준비를 했었다. 내가 번역했던 부분은 로빈 우드가 <이창>에 관해서 쓴 글이었다. 로빈 우드는 아무런 이론도 내세우지 않고, 영화에 나온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나는 똑같은 영화를 보고도 그가 글에서 지적한 장면을 보지 못했던 거다. 그런 부분이 나를 감동시켰다. 비평의 기능 중 하나가 영화에서 못 본 장면들을 다시 보게 해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시에 영화는 한 번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란 것도 깨달았다. 사실,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흘려보내기 쉬운 예술이라서 오늘날 천대받는 예술이 된 것 같다. 영화는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예술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비평은 그 소비흐름을 붙잡는 기능을 하는 것 같다.

안경배 : 아주 어마어마한 단어로 말하면 우리에게 영화라는 건, ‘소통’이다. 예를 들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같이 사람들 중 누군가가 글을 쓰고, 그걸 다른 사람이 읽는 거다. 그러면 글을 읽는 사람은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그걸 통해서 영화 이야기를 나눌 때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홍지로 : 빙 둘러 앉아서 영화 이야기를 할 때는 할 수 없는 말들을 글로 쓸 때가 있다. 영화 글은 한편으로는 더 낳은 소통의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이도훈 : 개별적인 영화 선호도가 궁금하다. 현재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홍지로 : 재미있겠다. 리스트를 뽑는 건가?


이도훈 : 하하, 너무 식상한가?

강 산 : 내가 이 부분에서는 말이 제일 적을 것 같으니, 먼저 말하겠다.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그 중에서도<쓰바키 산주로>나. 마이클 만의 <콜래트럴>. 그리고 셈 페킨파의 영화를 좋아한다.

안경배 : 예전에 키노를 뒤적이다가 본 기사 중에 이와 유사한 게 있던데, 단서를 달더라. 내가! 지금! 좋아하는 영화. 최근 씨네 21에서도 10편을 꼽을 때 몇 년도에서 몇 년도 까지 나온 영화에서만 꼽으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중에서 한정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우디 앨런을 거의 교주처럼 받든 적이 있었고, 버스터 키튼이나 막스 브라더스를 좋아한다. 요즘 관심가지는 영화들 중에는 한국 독립영화도 있다. 한국 독립영화는 우리가 남한 사회에서 가장 잘 아는 언어를 쓰고,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들은 적은 자본으로 만들어지는데, 그런 영화와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예전과는 달리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홍지로 :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크게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장르고 다른 하나는 플롯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영화다. 장르는 신중하고 엄밀하게 말해야한다. 예를 들어 저널들이 <올드보이>를 스릴러라고 갖다 붙이는 식으로 장르의 개념을 쓰는 걸 정말 싫어한다. 내가 의미하는, 그리고 바라는 장르의 개념은 지극히 지역적이고, 산업적이고, 시대적인 개념이다. 1930-50년대 만들어진 할리우드 웨스턴, 갱스터, 멜로드라마, 뮤지컬, 그리고 1960-70년 홍콩 무협영화들, 일본의 찬바라 영화들, 프랑스 범죄영화, 홍콩의 범죄 영화들을 장르 영화라고 말한다. 장르를 처음 볼 때에는 단순히 보는 즐거움만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더라. 그 이유는 영화라는 예술의 본질에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이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장르영화들은 산업적인 토대가 없으면 절대 만들어 질수 없는 작품들이다. 정말!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를 수백 편을 찍어내면서도, 항상! 비슷한 배우들이 나오고, 비슷한 영화를 찍어봐서 너무 익숙해진! 기술자들이 뚝딱뚝딱 거리면서 짧은 시간 안에 영화를 만들어내는 장르 시스템. 나는 이 장르 시스템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다. 장르에 관한 생각을 하다보면 한국의 영화광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는 적고, 영화로 채우지 못한 것을 책으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특정 장르에 속하는 영화 몇 편을 보고나서 그 장르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버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장르 영화들은 보면 볼수록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동시에 장르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예전에는 특정 장르가 궁금하면 그에 속하는 영화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장르라는 말은 비슷한 영화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때 그 영화들을 묶어서 부르기 위해서 편의상 나온 개념이다. 영화가 먼저 있고 개념이 나중에 따라 온 셈이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해서 요즈음 나는 비슷한 유형의 영화들을 모아서 보고 있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함께 나오는 영화가 10편 있는데, 그 10편을 한꺼번에 보는 거다. 두 사람이 나오는 영화는 항상 똑같다. 심지어 단 한 편을 봐도 이 영화들의 스토리나 컨벤션을 꿰뚫을 수 있다. 영화가 매번 똑같기 때문에 1편 보고도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출연하는 영화의 중심은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이 1933부터 1949년까지 만든 10편의 영화를 보면 거기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 10편이 영화 속에서 계속 유지되는 컨벤션과 변화하는 컨벤션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렇게 10편의 영화를 묶어서 시간 순서대로 보게 되면 그 영화가 나왔을 당시 관객들이 이 두 배우와 함께 늙어가면서 느꼈을 감흥이 재현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내 스스로 영화 보는 기쁨을 찾기도 한다. 또, 요즘에는 21세기 홍콩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연히 두기봉의 영화를 본 순간 홍콩 영화계는 여전히 내가 말한 장르시스템으로 영화를 찍고 있는 것 같더라. 장르영화 말고는 플롯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영화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건이 별로 없는 영화들, 요즘 영화 리뷰를 보면 줄거리 요약을 하고 스포일러도 말하고 있지 않나. 줄거리를 통해 영화의 맥락을 소개하는데, 과연 그 방법으로 영화의 정서가 온전히 담겨서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줄거리로 수렴이 되지 않는 영화, 플롯이 있으면서도 플롯은 핑계일 뿐인 영화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최근에 <와호장룡>을 보았다. 이 영화가 정말 경악스러웠던 것은 정말 뻔한 무협 영화 플롯을 가지고 있다가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척하다가 액션이나 회상구조가 들어가면 영화가 맛이 가버리더라. 등장인물들이 회상하기 시작하면 20분 동안 옛날 일을 생각하는 거다. 20분 동안 회상이 나오다가도 다시 돌아오면 아무렇지도 않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다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정말, <와호장룡>은 플롯에 관심이 없는 영화구나! 이 영화의 액션도 무협영화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눈요기가 아니라, 영화의 주제가 날아다니는 것 자체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제는 씨네꼼 사람들과 스즈키 세이준의 <문신일대>를 봤다. <문신일대>는 신파 야쿠자 멜로드라마 뿐 인데, 그 틀을 완전히 깨부수는 시네마틱한 박력이 있더라. 이처럼 관습을 깨고, 장르의 틀을 깨부수는 영화들을 보는 체험이 즐겁다. 그래서 장 피에르 멜빌이나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보면 놀랍고, 즐겁다.


이도훈 : 취향을 물었던 이유는, 우리가 관심 가지고 있는 영화들 속에서 동시성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요즘 88만원 세대라고 해서 지금 20대를 실패한 세대인 것처럼 불쌍하게 보는 게 좀 싫다. 나는 요즘 우리 세대를 대변해줄 영화와 동시대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영화들에 목말라 있다.

안경배 : 윤성호, 양해훈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잠깐 했었다. 아, 새로운 언어가 등장하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10대들이 갑작스럽게 출현하면서 아직 20대는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은하해방전선>을 봤을 때 흥분했었던 이유는 물론 구성이나 편집도 특이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영화 언어가 출현하고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윤성호를 한국의 고다르라고도 하지 않나. 나는 <은하해방전선>이나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를 봤을 때 어떤 가능성을 본 것 같다. 앞으로 이 두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궁금하다.


이도훈 : 독립영화에 가능성이 있다면 충무로는 말 그대로 참담하다. 지금 한국영화를 보면 90년 후반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제자리걸음이다. 한쪽에는 코리안 뉴웨이브라고 하는 층이 있고, 다른 쪽에는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이 형성하는 지층이 있다. 문제는 전자에만 피가 수혈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동훈과 나홍진의 출현이 반가우면서도 약간 씁쓸했던 건, 이 두 사람의 등장이 코리안 뉴웨이브가 만들어놓은 지층 안으로 흡수된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 이후로 포스트 뉴웨이브라고 하던 감독층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매끈하게 장르 영화 잘 만드는 사람들의 층만 두터워지고, 반대로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이 만들었던 영화의 지층은 그대로 인 것 같다. 두 층만으로는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태용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해볼 만하지만, 아직까지 확신은 생기지 않는다. 물론 내 스스로 박찬욱, 봉준호, 허진호, 김지운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참, 김지운은 싫어하는 쪽이다.(웃음) 그들은 여전히 영화를 잘 만들고 있으며, 한국영화에서는 있어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90년대가 아니라 21세기인 만큼 새로운 감각과 센스를 가진 감독이 나와야 한다. 벌써부터 우리가 감독과 같이 늙어가면서 영화를 볼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홍지로 :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기존에 있는 감독들이 잘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최고의 정점에 올랐던 시기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9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에 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안경배 : 1970-80년대 소설이나 시가 젊은이들에게 끼친 영향이나 80년대 한국 포크 음악이 당대 정서를 대변해준 것처럼 우리세대를 대변해줄 새로운 언어가 있었으면 한다. 시대와 세대를 엮어줄 매개체를 찾으려고 했을 때 소설이나 시는 선뜻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우리세대에게는 영상언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영상언어가 새로운 화법으로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물론 현재로서는 아쉬운 점도 있다. 약간 종교적인 믿음 같기도 한데,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홍지로 : 영화관이자 세계관의 차이인 것 같은데. 나는 영화가 나를 대변해주길 바라는 기대를 가져 본 적은 없다. 심지어 나는 우리 세대가 어떤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세대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을 반영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만드는 사람보다 관객의 입장을 생각하는 편인데, 설령 그 세대를 대변할 영화가 나왔다고 해도 관객들이 찾아서 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도훈 : 누벨바그 세대가 가장 부러운 점은 그들의 작품보다는 시대의 분위기다. 고다르, 로메르, 샤브롤, 트뤼포는 각자 자기를 위한, 세대를 위한, 계급을 위한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더 부러운 건, 그들이 만든 영화에 열광했던 친구들이 많았다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한국영화를 생각하면 우울하기만 하다. 플롯과 내러티브는 있어도 언어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니 우울해진다. 최근에 일본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우리도 저런 영화를 만들어야만 세상과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우울한 세상이 오기 전에라도 통쾌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너무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마침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회장님 말씀 한 번 듣고 마치기로 하자.

강산 : 앞으로 씨네꼼이 리모델링을 해서 상영실이 두 개 만들어지게 되면 감상실 기능이 더 활발히 돌아갈 것 같다. 거기에 기대를 하고 있다. 씨네꼼의 고유기능인 영화 감상의 기능을 잘 유지하고 살려서, 영화의 매력에 빠질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홍지로 : 우리가 영화를 보여주는 입장인 프로그래머처럼 느껴진다. 다들 영화를 보여주는 사람 같다.


이도훈 : 이러다가 다들 10년 쯤 후에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거 아닌가? (웃음) 그럼 10년 후를 기대해보겠다.



진행 : 이도훈
참석자 : 홍지로, 안경배, 강 산
정리 : 이도훈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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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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