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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5 위기의 한국영화, 무엇으로부터의 위기인가? (8)
200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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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영화잡지의 기자인 후배로부터 “한국영화진단에 관한 기획을 하고 있으니 평소 생각을 얘기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생각해볼 것도 없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글을 써놓고 보니 누구나 아는 얘기였다. 어차피 내게서만 들을 것도 아닌 게 뻔한데 굳이 나까지 나서서 중언부언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고쳐 써야 했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2007년까지 필자 역시 어떤 상황에서건 한국영화를 지지했고, 판이 죽었다면 부활하리라 믿었으며 돈 가뭄이 들었다면 돈다발이 샘솟는 기쁨이 있기를 고대했다. 그리하여 좋은 영화가 눈 밝은 관객과 만날 기회가 거듭 주어지고 역량 있는 신진작가들이 저널과 관객과 평단의 축복 속에서 발굴되어 지속적인 창작활동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어쩌면 그럴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나보다. 작년 말, 한국영화 결산에 즈음한 몇 차례 방송인터뷰에서도 “한국영화계는 이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라고 뻔뻔한 소리를 해댔다. 나 자신조차 위기론에 대한 명확한 판정을 내리지 못하고서 말이다. 따라서 이 글은 자기반성의 성격도 포함된다. 다만 그다지 밝고 즐거운 내용이 아니므로 지루할 수도 있기에 2회에 나누어 게재할 생각이다. 우선 한국영화위기론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시작하여 실체규명으로 마무리 할 것이고, 두 번째 글은 첫 번째 글의 주장에 대한 보충설명과 그럼에도 희망가능성을 염두에 둔 해법을 찾는데 주력할 것이다. 그럼, 누구나 다 아는 얘기로 시작해보자.

≪한국영화 위기 진단, 한국영화 부활의 신호탄 쏘아 올리다. 한국영화 뒷심 발휘하다. 한국영화 총체적 난국, 한국영화 위기를 기회로 삼아라. 설(추석) 극장가 한국영화가 장악했다. 극장가 한국영화 전멸, 할리우드 공세에 한국영화 속수무책≫

최근까지 몇 년째 잊혀질 만하면 등장하던 기사의 제목들이다. 그간 언론에서 너무나도 친절하게 짚어준 덕에 외워버릴 지경이 된 원인분석들은 그만 집어치우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한국영화의 위기, 도대체 무엇의 위기라는 말인가. 관객점유율이 하락하고 한국영화 관객 수가 감소했으며 부가판권 시장이 몰락한 상황을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누구의 입장에서 위기냐는 것이다.

다시 물어보자. 한국영화의 위기는 무엇으로부터의 위기인가. 위기론의 본질은 무엇인가. 당초 당연시 여겨왔던 이 문제에 다시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너무 오랫동안 너무나 뻔한 이야기들이 공론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개선된 것이 없이 환자스스로가 병변(病變)을 통제하듯 한국영화계 역시 그치지 않을 숨을 내쉬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 온 한국영화의 위기론, 그것의 구성요소들이 과연 적정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시장)가 역학적으로 위기라는 판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표상되는 징표 외에도 이를 입증해내려는 마땅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테면, 수치화된 영화산업관련 통계자료들은 물론이고 평단과 관객의 체감정도와 일반적 유추과정의 반대증명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증명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판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화계가 근거자료로 내놓는 것은 언제나 관객점유율과 관객 수의 증감추이, 부가판권시장의 현황 등에 한정되곤 했었다. 즉, 모든 증거자료는 돈과 관련한 산업적 측면에서만 고려되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위기론자들에게 있어 영화는 그저 돈으로 환산 가능한 문화산업의 일부일 따름이었다. 영화와 영화산업의 동일시에서 비롯된 결과다. 대책이라고 내세우는 것 역시 돈과 관련된 것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케팅비 축소, 제작비의 현실화, 기획 투자 제작 배급 개봉 단계를 유기적으로 총괄하는 관리시스템의 정비, 등등. 모두 맞는 소리다. 하지만 틀린 소리이기도 하다. 영화를 고부가가치 산업의 관점에서 볼 때에 한하여 해당되기 때문이다. 영화판에 돈이 말랐는데 무슨 소리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개봉하는 영화들의 대부분이 기획 투자 시점으로 치자면 2007년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편적인 현상과 간단한 수치만으로도 전체를 가늠할 수 있다는 주장이 틀렸다고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런 숫자놀음은 투자자나 정부부처의 영화담당 관료를 설득할 때나 필요한 포트폴리오다. 관객을 설득하기에는 호소력이 턱 없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2008년 1월 8일자 세계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자.

「'2007 한국영화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전국 총 관객 수는 1억5752만 여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6년 1억6674만 여명보다 5.5% 감소한 수치다. 이와 함께 한국영화 점유율 역시 50.8%로 전년(64.7%) 대비 13.9%p 감소했다.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2년 48.3% 기록한 이후 최저치이다. 한국영화 총 관객은 8005만 명으로 전년(1억80만 여명)보다 25.7% 감소했다. 반면, 외국영화 총 관객은 7747만 여명으로 전년(6894만 여명)보다 31.4%가 증가하며 작년 국내시장에서 크게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2007년 한국영화 결산자료이다. 다른 매체의 기사내용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 여기서 숫자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한국영화결산자료가 아니라 한국영화시장결산자료다. 오로지 산업에 입각하여 산출해낸 계량화된 통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전년에 비해 불과 5.5% 밖에 총 관객 수가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 시장이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영화 점유율이 25.7% 감소했다는 것은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실망감이 전체 관객 수 감소를 견인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나마 시장이 붕괴되면 이런 숫자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한국영화 위기론이 마치 LP판의 긁혀진 부분의 튀는 소리처럼 일정 간격을 두고 부각되는 와중에도 극장주들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한국영화산업이 정말 위기에 빠져 회생불능상태에 이르렀다면 지방의 군소 개인 극장주부터 대책마련에 부심했을 것이다. 아직 이와 관련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하기에 품질 떨어지는 영화를 만들어도, 흥행코드에 편승한 영화들이 붕어빵처럼 나와도, 대작결핍증에서 헤어나지 못해 과도한 제작비를 쏟아 부어도, 적절한 타이밍에 얼굴 한 번 내비추고는 제작비 현실화 등의 자정결의를 만천하에 공표하여 반성의 낯을 보여주면 그걸로 면죄부가 주어졌다. 그런 후 언론이 마치 괄목할 만한 변화가 생길 것인 양 호들갑을 떨어대며 한국영화를 위해 다시 시작하자는 투의 격문을 날려주면 이 해프닝의 1막은 끝을 맺게 된다. 지겹도록 몇 년째 반복해온 이 상투적인 석고대죄 의식. 그러니 제작자와 투자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영화는 영원히 위기여야 한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경구에 걸맞게 한국영화의 위기는 오래 갈 수 록 좋다. 정말로 그들은 한국영화의 위기를 타개할 의지가 있는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게다가 일부 대형 제작사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상업 영화만 한국영화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한국영화가 곧 망하기라도 하는 양 호들갑 떨 수밖에. 한국영화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제작사의 반 이상이 문을 닫을지언정 한국영화는 그리 쉽게 몰락하지 않는다.

시간을 조금 되돌려 보자. 1996년 태동한 코리안 뉴 시네마와 영화전문지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진 영화담론의 확산과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은 영화를 산업화 할 수 있는 질적 토양을 제공했다. 할리우드 배우의 얼굴을 잡지의 간판으로 내걸던 시절, 과감하게 자국배우로 대문을 장식하던 KINO가 시작된 것도 이때 즈음의 일이다. 한국 사람이 한국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영화산업은 폭포수 같은 축복을 입게 되니, 문화콘텐츠 지원정책과 규제완화에 힘입어 이합집산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거대한 외형을 부풀리기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그러기를 10여 년, 지난 시간 동안 홍상수와 김기덕과 이창동과 박찬욱과 김지운과 봉준호를 비롯한 젊은 작가군단이 한국영화의 질적 발전을 견인해오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 진행된 영화산업의 기형적 팽창과 이를 지탱하기 위해 실탄 제공의 역할을 해온 질 낮은 (그러나 돈이 되는)영화의 양산은 차곡차곡 구조적 병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련의 산업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감독이 설 땅은 좁아져버렸고 빈틈은 제작시스템이라는 산업기제가 매워버렸다. 바야흐로 영화에서의 감독의 위상은 한낱 고용인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모 영화주간지가 매년 실시해온 한국영화 파워 100인의 상위 대다수를 제작,배급업자가 차지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들의 권한이 얼마나 비대해졌는지를 알 수 있다. 바야흐로 영화가 예술 문화시대를 넘어 산업으로 편입되기 이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누구보다 영화산업을 기형적으로 왜곡시켜온 장본인들이 한국영화발전을 도모하고 위기타개의 선봉이 되겠다는 것은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마치 보수기득권층인 친일파의 후손에게 친일파청산을 일임한 것과 진배없으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들이 영화산업화의 토대를 일구었고 영화시장의 양적성장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필자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영화시장발전의 공로자 발굴이 아닌 한국영화위기론의 실체이다.

결국 영화인들이 주장하는 한국영화의 위기란, 영화산업의 위기이고 영화자본으로부터의 위기다. 또 숫자로 밝혀진 것들의 위기일 따름이지만 그마저도 영화계 내부로부터 숙성시켜온 필연적 결과이다. 애초부터 ‘한국영화’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영화산업’의 위기라고 주장했어야 맞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위기는, 이러한 위기론의 끊임없는 재생산과 유포를 통해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영화인들이 한국영화산업의 중심에서 활개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위기에 봉착한 영화산업 관련 종사자들이 죄 없는 한국영화를 볼모로 삼으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앙리 르페브르 Henri Lefebvre에 따르면 후기자본주의사회는 ‘소비조작의 관료사회’이다. 소비욕망에서 소외되는 순간 구성원은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다. 때문에 결핍을 느껴 욕망하는 순간 이를 실행하기 원한다면 다른 욕망은 억제되어야 한다. 한국영화위기론자들의 주장 또한 같은 논리이다. 한국영화 위기론을 능가할 만한 안전판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원본 없는 원본에 불과하다. 그러하기에 제 아무리 현상을 진단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해결책을 내놓는다하더라도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진실에 다가갈 수 록 감당할 수 없는 세력과 맞서야 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한국영화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것까지는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익집단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암세포가 몸 전체로 전이되어 현대의학으로는 소생시키기 힘들 때가 있듯이 한국영화산업 역시 (위기론자들의 주장이 정직하다면.)마찬가지 상태로 보인다. 아예 잿더미 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빠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판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영화 위기론은 티베트의 라마승이 손으로 돌리는 기도통에 다름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힘 안들이고도 기도할 수 있고 자동으로 대속(代贖)해주며 그리하여 새날을 맞게 될 테니까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 한국영화의 위기를 논하는 이들은 오히려 그 ‘위기론’ 덕택에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현재의 영화계에 대하여 과도한 희망은 그만 접고, 정말로 잿더미 위에서 다시 시작하자. (계속)



(추신) 다음 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영화산업이 아니다)를 위한 희망의 제언을 하려고 한다. 저널의 무분별한 받아쓰기 보도전략을 질타할 것이고 극심한 냉소상태에 빠진 전문비평가 집단의 분발을 촉구할 생각이다. 돌아선 관객의 마음을 되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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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셸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영화'와 '한국영화산업'의 개념정의가 조금 불분명한듯한 느낌입니다. 덕분에 글이 난해해지는 듯하네요..'한국영화'라는 알을 '국산영화'정도의 용어로 바꿔주시는건 어떨까요? '한국영화산업'은 '한국영화시장'이 훨씬 부드럽고 대중적인 용어같네요..
    물론 글을 이해하는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습니다만 약간의 혼동이 생겨서 댓글을 써 봅니다.

    2008.02.15 12:04
    •  수정/삭제

      글쓰신 분은 질적 팽창과 양적 팽창의 차이를 한국영화와 한국영화산업으로 구분해서 쓰신듯 합니다. 한국영화시장이라고 한다면 소비자의 위치가 너무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그냥 산업이라고 하는 편이 적당할 듯 싶네요.
      지나친 이윤추구를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테구요.

      오히려 한국영화라는 단어를 설명할 좀 더 적절한 단어가 없는지...
      한국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포괄적이나 지식이 짧아서 딱히 질적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기가 어렵네요.

      2008.02.15 14:33
  2.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기업이 장학하고 있는 영화배급과제작이 제일 큰문제인데... 음악시장도 마찬가지.

    2008.02.15 13:45
  3. Favicon of http://blog.daum.net/jan4700 BlogIcon 터미네이터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영화는 언젠가는 세계적으로 뜰것입니다.. 화이팅 입니다..ㅎ
    제주도에서 잘 보고갑니다..
    http://blog.daum.net/jan4700
    제주칼,
    제주배우.

    2008.02.15 14:37
  4. Favicon of https://jkconnection.tistory.com BlogIcon 기여운돌고래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그래도 한국영화마니보던데^^

    2008.02.15 15:41 신고
  5. - -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한국영화가 위기는 위기인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존 안다싶은 기자들까지도 아직 뭐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못하고 결론없는 애매한 글을 쓰고 있으니까 말이예요. 예컨데 영화인들이 죽어라 스크린쿼터 유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 이른 바 기자, 언론, 저널들이 한 일은 뭐였죠? 심지어 지금까지도 한국영화안티(이 중 상당수는 한국드라마안티)들의 헐뜯기 댓글을 생성시키기 위해 포털들이 한국영화관계된 뉴스들 메인에 덜렁덜렁 거는 거 뭐라고 설명하실건지? 그 밑에 달린 댓글들 보면 섬찟섬찟하더만요. 세상의 모든 악담이 다 몰려 있어서.
    제가 보기에, 한국영화의 문제는 한국영화산업의 문제입니다. 예로든 부산영화제, 각종 보호정책- 이런 것들도 예술적 차원에서 지원된 것은 아니라- 영화가 한국산업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술-같은 한가한 단어에 신경써 줄 순진한 정치인은 없거등요. 실제로 산업적 분석으로 도달해 낸 결론인 스크린쿼터가 한국영화 중흥에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독립영화진영도 엄청난 폭으로 커져버렸구요....제 기억에 90년대 중반, 독립영화 진짜 손으로 꼽았습니다. 지금은 한 해 수백편 넘을걸요... 사실 눈에 안 보여서 그렇지 다양성은 엄청나게 증대 되었습니다.
    이 말은 한국영화의 질이 제작비에 비해 딱히 떨어진다는 결론을 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죠. 예컨데 "흥행코드에 편승, 품질 떨어지는"이란 식으로 특정영화(아무래도 조폭영화를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매도하는 것이야 말로 한국영화를 좀먹는 제일 큰 정신적 병폐라는 거죠. 아닌말로 억지로 조폭영화 보라고 시킨것도 아니고, 한해 50편 만들면서 그 중에 25편 조폭영화 만든 것도 아니잖아요. 몇 편 만들었을 뿐인데, 그게 엄청 성공한거죠.... 한국인들은 어쩐지 그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것 같지만, 어찌되었든 한국이 만들어낸 크리에이티비티한 장르영화입니다. 까내리지 마세요.
    결론은.... 그러니까 한국영화의 문제는 곧 한국영화산업의 문제이고, 한국영화산업의 문제는 곧 스크린쿼터의 문제입니다. 스크린쿼터가 해결되면, 아무래도 스크린쿼터는 GATT에 부속되어 있는 것이니까, 국내적으로 스크린독점문제를 해결해야 되겠죠. 그러나 이것은 현실가능한 동시에 또한 불가능합니다. 마치 조폭영화가 쓰레기가 아닌 동시에 한국인에게는 쓰레기라고 인식되어 있는 것처럼요. 제작자들이 읍소 전략(?)을 하는 것은 어쩌면 스크린쿼터가 망가져버린 현실에 대한 읍소일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그들의 읍소는 너무도 정당합니다. 스크린쿼터라는 한국영화와 산업의 핵심을 꿰똟고 있는 것이니까.

    2008.02.15 19:23
  6. - -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기사와 각종 한국영화까내리기 댓글들에는 공통적으로 "스크린쿼터는 빼고"라는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다고 봅니다. 예컨데 숭례문화재사건에서 이명박 이야기 빼고 원인분석 하라고 하면,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올까요? 문화재청 이야기 빼고, 혹은 중구청 이야기 빼고 하라고 하면 결론이 나옵니까? 솔직히 왜들 그렇게 스크린쿼터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일종에 정신병인지....후천적개방만만세증후군일환....?
    예컨데, 미학적으로 아무리 좋은 이론을 가지고 와 봐야 반짝하고 만다는 것이죠,스크린쿼터같은 보호막이 없으면. 한국영화의 전쟁상대인 헐리웃 영화와 한국영화의 제작비 차이는- 영화를 스펙타클한 경험의 일환이라고 여기는 세태와 맞물려 더더욱- 고스란히 영화의 질 차이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컨데 한국감독이 SF 싫어해서 안 만드는 게 아니라는거죠. 제작비에 치여서 꼭 어딘가 몸 한 쪽이 불구가 되어버린 영화를 탄생시킬 수 밖에 없으니 안 만드는거죠. 이건 제작비차이-즉 영화산업적 접근이 아니면,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가요.
    이 모든 것은 한국영화의 예술적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라,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스크린쿼터있다고 다 성공하는 거 아닙니다. 한국영화인들이 그만큼 지혜로웠으니까, 영화를 적어도 어느 수준 이상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그 간 관객이 어느정도 들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어느 수준이상이라고 하는 "예술인"들 사이에 그저그래 보이는 영화를 만들었던 어느 이름 없는 감독들도 포진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길. 봉준호니 김기덕이만 감독 아니고, 그들도 그 "친일파"같은 제작자 없으면서 아직도 바닥기면서 살고 있을껄요...

    2008.02.15 19:32
  7. 지나가는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신글 중간에 '마치 보수기득권층인 친일파의 후손에게 친일파청산을 일임한 것과 진배없으며' 라는 표현이 있는데, 보수기득권층은 모두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오해를 살만한 표현이네요 , 글쓰신분은 그런의도가 없다 믿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은 삼가하심이 ^^

    2008.02.1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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