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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중

영화 관람 환경에 대한 또 다른 생각


극장. 극장에서 우리는 연극을 보거나 혹은 연주를 듣거나 또는 영화를 본다. 극장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극장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극장의 경제적 물적 토대를 소유한 사람에게도 역시 그러하다. '극장주'라는 사람은 극장을 가졌으되, 그것을 끊임없이 극장을 찾는 이들에게 내놓아야만 하는 사람이다. 혹은 그런 척 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장사가 되지 않을 것이므로, 예를 들자면 멀티플렉스에서 관객이 받게 되는 살갑도록 따가운 '친절함‘같은 것들.

이야기를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제한시켜서. 영화가 관객을 최종적으로 만나는 곳은 극장이다. 관객이 영화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언제나 관객을 찾는다. 영화를 보고 '거기에 영화가 있다'고 말해 줄 수 있는, 기억할 수 있는 관객을 찾는다. 그렇게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극장이다. 관객은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극장은 그러니까 영화의 최전선이 된다. 그곳은 전장이며 애틋한 사랑이 맺어지는 곳이다. 악다구니를 치며 촬영한 현장에서, 편집기사와 끊임없는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편집실에서, 기획 단계에서의 투자자와 기획사와의 끝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들. 그런 지난한 과정들을 통해 영화는 만들어진다. - 서두르지 말자. 영화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 영화는,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합당한 관객을 만나야만 한다. 그 때 정말로 영화는 완성된다. 그런데 여기서. 최초의 감독의 혹은 기획자의 머릿속에서 상상되었던 영화와, 극장에 최종적으로 걸리는 영화는 같은 것일까.


영화는 위대한 타협과 우연의 산물이다. 그 타협이 행복한 것이 될 수도, 또 그 우연이 구차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흔히 감독들은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개봉한 극장에서 보면 참담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화면비와 음향 때문이다. 공들여 짜맞추어낸 화면이 개봉 극장에서는 자신의 의도대로 보여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조금 감안하고 이야기하자면, 일반적으로 관객석에 경사가 있는 극장은 그 만큼 화면의 외곡과 유실이 크다. 영사기와 화면의 높이가 차이 날수록, 관객이 볼 수 있는 화면의 손실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론적으로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은 영사막에 90도의 각도로 조사되어야 화면의 왜곡이 최소화된다. 또한 영사기는 화면정중앙에 위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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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부분의 멀티플렉스가 이런 기준을 준수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무엇보다 건물 설계 과정에서 영사기의 위치와 극장 내부 설계가 함께 진행되어야 하지만, 멀티플렉스는 안전한 입지 확보를 위해 상가건물에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극장 전용의 건물로 설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이 경우, 건물의 내구성 확보를 위한 기둥과 자잘한 설비 배선으로 인해 영사기가 화면 정중앙에 위치할 수 있는 확률은 적어진다. 기둥을 피하거나, 또는 배선 관계로 인해 영사기가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심하면 영사기의 치우침으로 인해 화면 왼쪽에 들어가는 자막의 포커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반대로 자막의 포커스를 맞추면 오른쪽으로 갈수록 화면의 포커스가 맞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예가 아닌, 실제로 영업중인 어떤 멀티플렉스의 경우이다.

신촌에 위치한 멀티플렉스 아트레온의 경우 심한 키스톤 현상으로 인해 농담처럼 '스타워즈 극장'이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심하게 좁아지는 화면은 마치 스타워즈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웃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말해, 최초 설계 단계부터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무리 만곡 스크린을 사용하고, 스크린 아래쪽을 조금 들어 올려서 영사각도를 맞춘다 해도, 근본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심하게 경사진 멀티플렉스 상영관은 이러한 왜곡 현상을 제어 할 수 없다. 결국 이것은 아트레온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에 예로 든 사운드의 문제도 있지만, 관객이 보는 것만으로 국한 시켜 이야기 하자면, 결국 관객은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화면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것 역시 처음에 이야기한 '위대한 타협과 우연'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극장 측에서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다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의 화면 사이즈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비스타 비전(1.85:1)과 시네마 스코프(2.35:1) 두 가지가 있다. 멀티플렉스는 이 두 개의 화면 사이즈를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영화에는 다양한 화면 사이즈가 있다. 4:3, 1.33:1, 1.37:1, 1.66:1, 1.75:1, 1.85:1 이렇게 다양한 사이즈의 화면 모두를 지원하는 극장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맞는 렌즈와 관련 부품이 구비되어야 하며, 영사막의 다양한 세팅이 가능해야 한다. 여기에 영사기사의 실무교육과 운용능력 배양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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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대중영화는 비스타 비전과 시네마 스코프 둘 중의 하나로 만들어진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대중영화의 시각은 위의 두 개의 사이즈로 ‘표준화’ 되어 있다. 물론 표준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표준화는 영화처럼 다양한 ‘공정’을 거쳐야만 하는 작업의 효율성을 더해준다. 그러나 만드는 이의 시야와 보는 이의 시야가 이렇게 단촐하게 표준화 되는 경우,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영화를 통해 보는 세계의 더 다양한 시각적 가능성들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이제부터 이 글의 핵심. 구스 반 산트는 몇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데뷔 이후 계속해서 4:3의 비율로 영화를 촬영했다. 그것은 자신의 영화가, 자신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세계가 관객에게 4:3의 비율로 보여지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그의 데뷔작 <말라노체>는 4:3의 비율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봉된 <말라노체>는 1.85:1, 비스타 비전 사이즈의 <말라노체>다. 결론적으로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다. 왜냐하면 화면의 아래위가 (거기에 더해 양 옆 까지) 잘려나간 그것에서 우리는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를 수입했으면서 또한 상영주체이기도 한. 그러니까 수입사이면서 극장 운영 주체이기도 한 스폰지 측에서 말 한 것처럼 이 영화의 해외 배급을 총괄하는 회사와, 영화를 만든 감독의 '상영권고방식'이 특별히 없는 경우 해당 극장의 사정에 맞추어 상영을 해도 문제는 되지 않는다. - '문제는 되지 않는다.' 라는 부분에 주의 - 그러나 상영권고방식을 예로 들어 해명 할 수 있는 것은 '영화사이자 수입사 스폰지'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극장으로서의 '스폰지 하우스'라면 좀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위에 장황하게 늘어놓았듯이, 극장은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최전선이다. 극장은 영화를 감독의 의도에 최대한 가깝도록 상영할 의무가 있다. 아무리 특별한 상영권고방식에 대한 부분이 없었다 하더라도, 극장에서 실제로 상영되는 화면을 검토해서 4:3 화면이 무리 없이 전체적으로 1.85:1의 화면 속에서 소화가 될 수 있는지의 범위를 결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말라노체>속의 세계는 아래위가 좁은 1.85:1의 화면에 들어가기엔 지나치게 가깝고, 가파르다. 이 영화는 인물들의 표정보다는 그 들의 몸이 가지는 세부의 흔적들을 스케치하듯 스쳐가는 것처럼 잡아내었지만, 그 모두를 보기에 우리가 만나고 있는 시야는 너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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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전의 <라스트 데이즈>가 그러했으며, 스폰지 하우스가 아닌,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열렸던 '팡테옹 드 시네마' 특별전에서 상영된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가 그러했다. 장 폴 벨몽도와 진 셰버그가 함께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가는 유명한 롱테이크 장면에서, 벨몽도의 춤추는 것처럼 주름진 멋들어진 이마는 영사막의 위쪽, 어둠속에서 넘실거렸으며, 도망자의 것 치고는 지나치게 여유작작한 발걸음은 자막 아래 어디쯤에서 사라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광화문 시네큐브는 아트플러스 라인에 등록되어 있는 극장이며, 흔히 말하는 ‘예술 영화’를 집중적으로 상영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상영 환경은 일반 멀티플렉스 극장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결국 광화문 시네큐브, 또는 스폰지 하우스 모두 일반적인 멀트플렉스 수준의 극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보여주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아니, 이 보여준다는 단어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있는가. 극장은 영화를 ‘제대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말라노체>는 1985년, 미국 포틀랜드의 어느 거리에서 촬영 되었다. 그 후로 이십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서울의 한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본다. 그 만큼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감독이 보고, 생각하고, 꿈꾸었던 것과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영화를 본다는 것. 그것은 영화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기쁨이면서 동시에 그 끝을 알 수 없는 신비이기도 하다. 하나의 영화를 통해 우리는 얼굴도 잘 알지 못하는 지구 건너편의 누군가와 동일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감독의 의도한 사이즈, 감독의 생각한 세부가 포함된 화면을 최대한 살려내는 것. 그것이 바로 극장이 '하는' 것이며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일이다.

- 이 글은 스폰지 하우스 카페 혹은 또 다른 관련 공간에 등록할 수도 있을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한 영화사 스폰지측에서는 더 이상의 의견 개진에 대해 난색을 표명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 이 건에 대한 회원들의 게시물은 아예 올라오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문제는 (적어도 스폰지하우스 카페라는 온라인 공간에서는)더 이상 이야기 되어서는 안되는 문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제이다.

이 글이 이러한 '정책'에 대한 우회 공격,혹은 뒤통수치기 같은 것이 될 수 있을까? 받아들이는 쪽에 따라서는 그렇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극장 스폰지 하우스뿐만 아니라, 이 땅위의 모든 '극장'이라면, 그것도 예술 영화 전용관을 표방한다면 더욱 더 짚고 넘어가야만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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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한 것들이 사라지는 시대에 시네마테크를 다시 생각한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이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일 년을 기다려온 시네필이 앞 다퉈 고전걸작의 향연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것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해온 이들의 온전한 노력 덕분이다. 이 풍성한 잔치를 만들어낸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를 네오이마주와 ‘프레시안무비’가 함께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1년간 시네마테크와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영화계 전반의 점검과 친구들 영화제와 미래 발전 방향 등 꽤나 묵직한 주제를 놓고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무겁다는 얘기는 아니니 지레 덮지 마시라.



백건영 네오이마주 편집장(이하 백):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때, 영화제의 모토가 "시네마테크의 영년" 이었다. 일 년이 지나서 그 때 주창했던 "시네마테크의 영년" 으로서의 2008년 한 해를 결산하고 소회하는 프로그래머의 생각을 듣고 싶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이하 김): 지난해 '영년'을 설정했던 것은 시네마테크의 역할과 공간을 새롭게 구상하는 거였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이 2007년에 본격화됐고, 2008년에는 좋은 말로 하면 첫 삽을 뜨지 않겠나, 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나간 것들을 다 지워버리자는 말은 아니라, 새롭게 다시 '시네마테크' 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되지 않겠나. 이런 걸 생각하는 게 가장 큰 의미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영년이 된 거 같다. (웃음) 2008년에 기존에 영화정책과 관련된 부분에서 상당한 변화들이 조금씩 이루어지더니만, 하반기쯤에는 전용관 사업이 거의 백지화됐다. 현상적으로 보자면 백지화가 된 셈이다. 그래서 원래 설정했던 취지와는 다른 의미의 ‘제로 이어’가 됐다.


김숙현 프레시안무비 기자(이하 숙): 나쁜 쪽으로 제로화가 되어버린 셈이다.

김: 그렇다. 나쁜 쪽으로 (웃음) 이게 오히려 제로 이하의 것이 돼버렸으니까. 2008년도가 끝나갈 때쯤 되니까 그전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 아니 더 나쁜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새롭게 정립하자고 했던 게, 아예 새로운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시 시작해야 하게 된 거다. 2007년 12월의 시점만 해도 가능성 있게 구상했던 것이 2008년의 상황에서 이렇게 되리라고는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대신 2008년도에는 새롭게 시네마테크의 컬렉션을 구비했고, 여름 시즌 ‘시네 바캉스’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했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도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을 소개한다. 이건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작년 하반기부턴 어쨌든 영화제의 재정적인 문제가 제일 부담으로 느껴졌다. 일단 공간이 좀 해결되면 재정적인 보완은 좀 늦어지더라도 공간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관객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했는데. 그런데 전용관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다 보니 재정적으로 문제 또한 해결하기 어렵게 됐다.


숙: 나도 기억난다. 작년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문제가 거의 백지가 되었었다. 처음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을 한 것도 전용관을 기대하고 시작을 했던 거라고 알고 있다. 올해 다시 이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슈화가 되겠구나, 했었는데 결국엔 기대만큼 안 되더라. 어쨌든 올해도 모토를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로 잡으셨는데, 이렇게 잡으신 데에는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하고 계신 게 가장 큰 이유인가.

김: 일단은 그 문제가 가장 컸고. 근데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거 같았다. 결국 두 가지다. 조건들이 주어지지 않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현재의 공간 안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반어법적으로 나온 거다.(웃음) 안에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자, 이런 생각이다. 미래가 더 불투명하니 지금이라도 우리 행복해지자, 이런 의미이기도 하다.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이게 궁극적인 건 당연히 아니고, 궁극적으로 보자면 전용관 세우기 문제가 남아있는 거고. 전용관 뿐 만 아니라, 지금 많은 상황들이 변화 중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낙원상가 재개발 문제도 있고. 시네마테크도 2002년도부터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8년째다. 십 년 안에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작년의 생각이었는데 십 년 안에 해결이 될지 모르겠다.


백: 낙원상가 재개발이 2009년에 한다고 발표난 걸 봤는데 그거 자체도 백지화가 된 거 같다.

김: 그 계획 자체가 아직 구체적이진 않은 거 같다. 얼마 전에 용산 철거 문제도 있었지만 재개발이라는 게 제대로 발표도 안 하고 그냥 진행되어 버리니까. 예상치 않은 순간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숙: 재밌는 게, 옛날 서울아트시네마가 둥지를 틀고 있었던 아트선재센터가, 금방 뭘 할 것처럼 시네마테크를 쫓아내고.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다시 영화를 틀기 시작했다는 거다. 씨네코드선재가 생겼는데, 그걸 보는 감정도 그리 좋진 않으실 거 같다.(웃음)

김: 기억이란 게 언제든 장소와 연동이 된다. 그 장소가 연결이 되어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리는데, 그래서 처음의 장소가 변경되면 기억의 거주할 곳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다시 그 공간이 활용되는 건 긍정적인 일일 수도 있다. 묘하게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이 백지화될 것 같은 시기에 예전 쫓겨났던 아트선재 공간이 다른 식으로 변모하더라. 생각해보면 아주 최근의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기억도 쉽게 사라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흔적도 없이... 사람들이 예전에 대한극장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곳이 대한시네마로 바뀐 걸 보면서 예전에 대한극장이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사례들이 서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시청광장의 재건축 문제도 있었지 않나. 기억은 어떤 구체적인 공간을 가질 때 보존되고 유지되어져 간다. 그런데 공간이 변경되고 사라지면 그 기억이 떠돌게 된다.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시네마테크는 계속 공간을 찾아다니고 있고 그 시작이 2002년인데, 이제 진정한 기억의 거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환경 안에서는 영화를 둘러싼 기억이라는 거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형성하고 있는 이야기와 역사 자체가 현 시점에선 부정될 수 있다. 영화 뿐 만 아니라 사회 다른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영화 자체가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네마테크의 문제임과 동시에 현실사회의 문제다. 문제해결이 공통적인 노력 아니면 어렵다. 역사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숙: 기억이 부정되는 현상을 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이 많이 보인다.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김: 이제는 기억과 역사를 둘러싼 싸움인거 같다. 그래도 변화의 조짐이 있기 때문에 어떤 과거를 보존하고 꺼내서 앞으로 나갈 것인가, 라는 전망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영화제를 하면서 카탈로그를 만드는 것부터 해서 내부적으로라도 그런 기억들을 남겨놓는 작업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올해가 더 영년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들기도 하더라.


숙: 참 정권이 바뀌자마자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 중 전용관 문제가 맨 처음 일어났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시작인거 같고. 더 심각해질 텐데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시네마테크도 영진위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클 텐데 그것도 줄어들 것 같고.

김: 영진위의 지원은 실질적으로는 시네마테크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근데, 그게 필수적인 거니까. 이를테면 공간이 없다면 영화를 당장 상영할 수 없으니. 없는 것과 있는 것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영진위의 지원은 현재로서는 큰 변경이 없지 않을까 싶은데, 이 또한 모를 일이다. 요즘엔 세상의 변화가 결코 예측이 안된다. 가장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이 문화나 예술과 관련한 정책이 예측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분야는 신종사업도, 투기사업도 아니고 과거의 역사가 있고 또 보존해야할 부분들이 있지 않나. 그런 점으로 사실 보수적conservative인 면이 있는데, 세상은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사고의 기준을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기준에 두고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비현실이 현실에 더 가깝다. 최근에 보면 ‘필름2.0’같은 잡지도 못 나오는 처지이다.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금방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너무 명백하게 보이고 있다. 시네마테크도 사실 자명한 거 같진 않다. 지금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위기의 국면이라고 생각한다.


백: 그렇다면 올해 친구들 영화제 모토를 생각해보자. 현재 공간을 긍정한다고 표현 되어 있는데,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서, 말씀하셨듯이 일단 현실에서 지금 있는 공간 자체를 지키고 가겠다,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공간의 긍정과 같은 것들이 나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모토라는 느낌을 받았다. 공간의 긍정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해 달라.

김: 시네마테크가 그간 해온 것들이 부정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미래의 공간이라 여긴 ‘시네마테크 전용관’ 또한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러니 현재의 공간을 긍정하는 것이다. 긍정이라는 표현 안에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 이런 공간들이 만들어져 왔고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영화정책과 관련한 가장 큰 불안은, 지금까지 왜 이렇게 되어왔는지를 따져보지 않고 그냥 현재시점에서 모든 걸 다 다시 재구성해서 문제해결을 하려는 시도들이다. 시간 안에서 영화가 지속되어 온 건데도 말이다. 그런 부분들을 다시 봐야 어떤 식으로 나갈지를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이런 일들이 문화의 영역 안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산업에선 몰라도 문화예술에선 너무 위험하다. 그런 현실이기 때문에 공간의 재인지, 재긍정이 필요하다.




 

‘행복의 시네마테크’라는 표현이 다소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사무국장이 이 슬로건을 떠올렸다. 처음엔 이 표현이 조금 껄끄럽기도 했는데, 몇 번 듣다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추구권 같은 걸 떠올려봤다. 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가? 왜 우리는 영화와 함께 이 공간에서 행복할 수 없는가? 아니, 이미 우리는 행복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누군가가 더 행복한 걸 만들어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헛된 기대가 언제나 지금의 시간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행복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일 수도 있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거나 상영하는 것, 이러한 것은 영화와 관련해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지 않겠나. '행복을 추구해나가자. 불행 안에서도.' 이런 마음가짐이다.


백: 잃어버린 10년이라고들 한다. 정권 바뀌면서 문화도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고. 기억의 거처라는 얘기처럼 기억에 담아둘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소멸되어 가고.. 없어지지 말아야 할 공간들도 정치적인, 외적인 이유로 없어지니까 답답하다. 그래도 기자회견 보면서, 긍정이라는 단어 들으면서 안도감을 가졌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이걸 받아들이면서 미래를 도모하고, 현실을 발판으로 삼으면서 준비하는 거 같았다. 굳은 다짐이 엿보인다. 자조적인 느낌도 있지만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또 질문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이건 누가 꼭 물어봐 달라 그래서..(웃음) 친구들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이 너무 좋아서, 감독들이나 영화배우들이 어떻게 영화를 뽑는지, 어떤 원칙이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선정되는지 궁금하다고들 한다.


김: 올해 2009년에는 어떤 콘셉트를 정해볼까 생각을 했었다. 아마 내년에는 공통적인 콘셉트를 정할 거 같다. 주제나 테마 같은 것 말이다. 근데 이 영화제가 ‘후원 영화제’라는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도 후원을 하면서 참여하는 거다. 참여해달라고 요청하면 거절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까지 끝까지 요청하진 않는다(웃음). 참여의사가 있으신 분들에게만 한다. 프로그래밍과 관련해서 가장 큰 건 후원의 의미다.

참여하는 분들 다들 영화를 대표하는 분들이기도 하다. 시네마테크를 대중적으로 좀 더 널리 알리는 게 이 영화제의 취지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자체의 콘셉트를 강요하는 자리가 아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로 후원의 취지로 참여해주시면 좋겠다. 영화라는 게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욕망의 자리로서의 영화제는 사실 아니다. 보고 싶은걸 보겠다, 보여 달라 이런 의미보다는 ‘나중에라도 우리가 영화를 보기 위해 후원을 하자’라는 그런 의미로 영화에 참여해주면 좋을 텐데.(웃음)




 

상영작품의 결정은 일단, 참여하는 분들에게 세 편 정도의 복수추천을 받는다. 그 가운데 가능한 작품들을 순차적으로 선택한다. 최종적으로 선택되는 건 아시다시피 한 편이다. 영화제 기간이 상영하기 어려운 작품이거나, 그 시기에 필름 프린트를 구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있다. 요즘은 워낙 다운로드로 영화를 보고 있으니, 영화가 쉽게 주문만 하면 필름으로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착각이다. 그러니 프로그램은 언제나 결핍을 품게 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결핍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필름이 오가고 상영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건 물리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다운로드 받아 보는 영화는 자기 맘대로 선별할 수 있지만 이건 다르다. 결핍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훨씬 더 영화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정가형제가 원래 처음 선택한 영화는 안토니오니의 영화였다. 현재로서는 좋은 프린트를 구할 수 없었다. 반면, 가장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 의외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변영주 감독도 여러 편의 역사극을 추천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을 하게 됐다.


숙: 현실적인 문제라고 하면 역시 프린트수급 문제인가?

김: 거의 그렇다. 작년에 이걸 수급하던 시기가 환율이 엄청나게 올랐을 때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를 얘기해 보면, 이번에 선택한 <탐욕>은 원래 할리우드 컬렉션으로 구비하려 했던 영화였다. 구매하는 과정에서 추진을 했는데 현재 가장 긴 버전은 TCM상영버전인데 그건 프린트로 없더라.


숙: TCM은 케이블 방송인가?

김: 그렇다. 외국에서도 비디오 판만 있다. 근데 그것도 완전한 버전은 아니었고, 그래서 결국엔 못 샀던 영화다. 그런데 이번에 추천을 받았고 역시 가능한건 140분 버전이었다. 그것도 괜찮겠나 했지만, 홍상수 감독도 이걸로 봤다 했고, 더 긴 버전은 과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하더라(웃음). 그래서 상영 결정했다. 안성기 선생님은 배우중심으로 세 편 정도를 추천했다. <디어헌터>, <미드나잇 카우보이>, <아마데우스>. 최종적으로는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선택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박찬욱 오승욱 감독의 ‘최선의 악인들’ 섹션의 영화들이었다. 원래대로 하면 열편에서 스무 편 가까이 된다. 오승욱 감독이 추천한 게 열두 편이었다. 작년도 기준으로 보면 두 분이서 열두 편정도 가능하겠다 싶었는데, 환율이 두 배로 올라서, 그리고 예산도 없고 해서 편수를 줄이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두 분이 세 편씩, 여섯 편을 상영하게 된 거다.


숙: 기자회견에서 감독들이 "이건 맛 뵈기에요" 했던 게 생각난다.

김: 맛 뵈기란 게 일차적으로 맞다. 진짜 좋은 조건이라면, 맡겨서 여러 편의 영화를 프로그래밍하게 하면 좋겠다. 그러니 프로그래머로선 언제나 아쉽다. 다들 참여할 때마다 상영 못한 추천작들을 다 얘기한다. 상상의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는 거다.


백: 내년에도 최선의 악인들 섹션 같은 이런 프로그램이 이어질 예정인가?

김: 자주 참여하는 분들이 게스트 프로그래머로 하면 어떨까. 주제를 잡아서. 3년 전 ‘김지운의 B 무비’, ‘류승완의 액션스쿨’이란 프로그램을 했었다. 영화감독 뿐 아니라 평론가, 배우들이 맡아 하는 것도 좋겠다. 원래 해외프로그래머들의 초청 프로그램도 기획했었는데 취소했다. 두기봉 감독의 초청전이나 유럽감독의 초청전도 기획했다가 취소했다. 올해가 심플한 느낌이 더 있다. 더 참여하고 싶은 분들도 있는데, 한계가 있다 보니 이렇게 됐다.


백: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꼭 이건 봤으면 좋겠다, 하는 영화 몇 편을 말해 달라.

김: 사실 선정작들을 놓고 보니 다 한 번씩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공통적으로 묶을 만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점들이 많다. <탐욕>이나 <선라이즈>는 시대 안에서 우리들의 감정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보게 해준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예술가라는 게 좋은 이유는 지금 이 시대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잘 살아가면서 꾸려가고 있는 걸까 생각하고 떠올리게 해주는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실물보다 큰>도 그런 영화다. <4월>에는 미디어와 영화의 결투의 흔적들이 있다. 예전에야 영화관에 가서 영상을 봤지만 이젠 텔레비전미디어로 인해 영상이 늘 주위에 있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영상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 난니 모레티는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 타종식 영상의 보도와 관련해 문제가 생겼고, 미디어 법 문제도 있고 하니 이 영화가 새롭게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분노의 포도>도 대공황기에 일어나는 이주민들의 이야기인데, 형상적으로 보면 존 포드 영화 중 가장 사회적 리얼리즘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물론 존 포드 감독 머릿속에는 19세기말에 아일랜드에서 이주했던 선조에 대한 얘기들도 어느 정도 녹아 있어서 같이 겹친다. 동시대적으로 우리 시대에서 재개발과 관련한 경제적 빈곤의 문제, 사회문제들을 떠올릴 수 있다. 영화제의 마지막 날에는 <캘리포니아 돌스>를 상영하는데, 알드리치의 유작이다. <선라이즈>에서 시작해서 <캘리포니아 돌스>로 끝난다. 이 영화의 라스트는 지극히 희망적이다. 곤경 안에서도 어떤 규칙 안에서 게임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최선의 악인들’ 섹션의 영화들에는 이렇게 악인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 안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그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했던 의리적인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장르적인 범죄영화를 묶기보다는 그 시대의 흔적- 그게 지금과 연결되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숙: 유명한 대표작들보단 낯선 상영작들이 많다. 그래서 이거 진짜 한 방이다, 이거 진짜 꼭 봐야지 하는 영화는 없더라, 는 의견이 있었다.

김: 음, 듣도 보도 못한 영화를 틀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표작들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숙: 그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결정적인 영화가 상영작 중 없다는 게 아닐까.

김: 결정적, 대표적 영화보다는 이런 시국에 어떤 영화를 틀면서 함께 얘기를 나눌까, 라는 생각이 많이 반영된 선택들이라 생각한다. 정윤철 감독의 경우에도 10년전의 이탈리아의 상황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똑같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난니 모레티의 <4월>을 선택한 거다.


숙: 역시 시대가 어지러운 것이 친구들 영화제 영화선택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김: <란>도 그렇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서 발생하는 허망한 일들이 겹친다. <미드나잇 카우보이> 같은 경우도 그렇고. 확실히 영화들을 다 보면 공통적인 멘탈리티가 있는 거 같다. 시대적인 곤경, 고통, 불행 안에서의 사람들의 일들을 다루는 영화가 많다. 영화란 게 현실적으로 한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보는 영화가 있고 10퍼센트의 사람들이 보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들은 10퍼센트의 사람들이 보는 영화 같다(웃음)


숙: 근데 박찬욱 감독은 기자회견 때, 흥행성을 고려해서 여러 사람들이 두루두루 좋아할만한 영화를 골랐다고 했는데. (웃음)

김: 물론 그 흥행성도 10퍼센트의 사람들에 해당되는 게 아닌가(웃음). 근데 과거적 시점에서 보면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따라왔던 영화도 있다. 현실적으로 10퍼센트의 영화지만, 90퍼센트까진 못 보겠지만, 그래도 10퍼센트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픈 마음에 골랐을 것이다. 영화를 갖고 어떤 부분을 주창해 나가느냐, 는 것은 전체적인 프로그래밍 안에서 고려될 수 있다. 1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그 영화는 금방 쉽게 없어져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백: 이제 아카이브가 아트시네마에 들어온다. 좀 더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게 사무실 밖으로 오픈시켜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겠지만.. 이런 걸 뒷받침하게 할 기술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있을까?

김: 공간이 제한적이라 하고 싶어도 어렵다. 전용관이 생기면 그런 점을 가장 많이 염두에 뒀다. 관객은 사실 묵묵히 앉아 영화를 지켜보는 역할이지 않았나. 하지만 조금 더 자유로운 관객을 설정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박물관이나 갤러리처럼 방문자 개념으로. 자유로운 방문자 관객들을 위해선 책이라든가 미디어자료들이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공간 안에선 좀 힘들긴 하지만, 현재 안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건가가 올해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지금도 테이블을 설치하는 공사 중인데, 친구들 영화제에 좀 이용할 수 있게 할 거다.


그리고 재 상영. 첫 상영. 이 두 가지 사이의 배분들을 잘 맞춰 나가야한다. 지금까지 재 상영을 가볍게 생각하는 태도가 현재의 영화 태도를 망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선라이즈>를 ‘무르나우 회고전’때 했다. 이번에 또 상영하게 됐다. 어떤 영화는 일 년 전에 틀었기 때문에 관객들이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게 시네마테크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만약 이상적인 시네필이라면 두 번째 볼 때에는 그 영화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두 배 이상 늘 수 있을 거다. 자기가 봤었던, 중요하다고 판단되어지는 영화들에 대해 글을 쓰거나 알릴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니까. 이게 이상적인 시네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줄짜리 프리뷰, 리뷰 쓰기에 너무 몰두한다. 저널도 그렇게 잘 안 쓰니까. 개인의 문제는 아니지만, 시네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작품에 대해 더 공격적인 이야기를 그들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다시 보는 영화에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서 보는 것과 새로운 영화를 보는 건 병행되어야 한다.





 

숙: 영화라는 게 한번 소비하고 끝나는 걸로 자꾸 인식되어 안타깝다. 아트시네마를 출입하는 관객들은 그걸 알고 있는데, 기본적인 관객들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걸 신기하게 생각한다. 영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의 느낌이 너무 강하다.

김: 근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시네필도 그런 경향이 많다.


백: 관객들의 선택 영화가 <열대병>이다. 개인적으로 좀 의외였다. 난 페드로 코스타 영화에 투표했다. 그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열대병>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아트시네마의 시네필들의 취향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관객들의 선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김: 참여라는 게 여러 가지 형태인데, 첫 번째는 보는 거고, 두 번째는 글로 참여할 수도 있다. 보는 것 이외의 참여도 아주 중요하다. 저널의 역할도 크다. 변화시켜 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나마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상영하면, 여기서 퍼져나가는 대중화의 흔적도 보인다. 미국영화들도 5,60년대 영화들을 많이 틀었는데, 알드리치 ,돈시겔, 풀러, 이런 걸 바탕으로 해서 다시 한 번 모아 튼다면 좀 더 깊어질 수 있을 거 같다.


백: 북적북적하던 영화제 기간이 끝나고 나면 아트시네마도 공허해진다. 쉬어가는 느낌의 프로그래밍들이 많더라. 올해는 베네수엘라 영화제다. 아 이때 쉬어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이 열기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왜 생소한 영화제를 넣었을까 궁금하다.

김: 영화제는 영화제니까. 근데 열기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뭔가. (웃음) 이후의 공백이나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아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필름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좀 더 다양해질 순 있을 거다. 어떤 사람들이 자기만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스무 명의 사람들이 참석해서 세 달 동안 웨스턴만 틀고, 필름누아르를 상영할 수도 있다. 물론 DVD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각자 열성적이라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을 거다.




숙: 천사들의 선택 영화 <무셰트>는 어떤 과정으로 상영하게 된 건가?

김: 처음 그게 시네마 엔젤의 이나영 씨 쪽을 통해 필름기증 형태로 하게 되었다. 이나영 씨가 원래 <무셰트>를 좋아해서 인터뷰에서도 그 영화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래서 그 영화로 진행이 되었다. 알고 보니 이나영 씨를 포함한 다른 배우들도 ‘시네마 엔젤’이라는 함께 참여했다. 매년 정기적으로 한 편씩 그렇게 진행될 수 있을 거 같다.


숙: 좀 놀랬던 게, 이나영 씨는 아트시네마에 자주 온다고 말은 들었지만 아트시네마랑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는 배우는 아니었다.

김: 알게 모르게 많이 왔었다. 아트선재시절부터(일동 놀람).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얘기는 안해 봤지만 영화를 많이 보더라. 사실 기증을 하고 그런 게 참 큰일인데...


숙: 이나영 씨가 적극적으로 먼저 제안한 건가?

김: ‘시네마엔젤’쪽에서 먼저 제안해 왔다. 그 곳은 우리 뿐 만 아니라 독립영화를 지원하기도 했다.


숙: 외국배우 들은 영화제 가서 먼저 감독을 알아보고 제안하고 그러는데, 한국배우들은 좀 그런 거랑 멀지 않나 막연하게 오해를 하는데, 이번 일을 보고 놀랐다. 모임을 결성하고 필름을 기증하고.. 멋지다.

김: 영화라는 건 늘 패배해 왔었다고 하는 말을 어디선가 보았다. 자본이건 권력이건, 국가이든 영화는 늘 그런 것들에 패배했다는 거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고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무력감이 있겠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숙: 그 역설이 오히려 희망적이다. 어차피 늘 패배해 왔으니까 지금 패배는 별 거 아니다...

백: ‘웹 데일리’를 맡아서하는 젊은 친구들이 눈에 띈다. 아트시네마에서 따로 오리엔테이션 같은 것을 했었나.


김: 간단하게 했었다. 프리뷰를 써보고. 함께 얘기하고, 하는 정도다.


백: 그 젊은 친구들도 자발적 참여인가. 그들의 글, 태도를 보는 느낌은 어떤지 궁금하다.

김: 참여를 해줘서 고마울 뿐이다.(웃음) 특별히 보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영화제에 대한 느낌 같은 글도 조금 더 쓰자, 이런 얘기도 하고. 또 보러 오는 사람들이 ‘웹데일리’로 인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촉발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백: 일반관객도 웹 데일리에 쓸 수 있나?

김: 일반 관객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카페에 글을 올린다. 데일리는 데일리니까, 그냥 내부에서 하려고 한다. 카페나 블로그로 퍼져나가면 좋겠다. 모든 분들이 다 참여할 수는 없는 일이고. 오히려 더 자유롭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극장상영엔 제한이 있지만 보고 이야기 하는 데에는 제한이 없으니까. 영화에 윤리가 있다면 쇼트에 있는 건지, 감독의 멘탈리티에 있는 건지,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이런 고민 속에서 관객 스스로 자기조절하면서도 자유롭게 쓰게 되면 좋겠다. 사실 현실 안에서 자유가 별로 없지 않나.(다들 웃음)


백: 끝으로 올해의 소망을 듣고 싶다.

김: 아무래도 시네마테크로서는 전용관의 설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언제나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에 상영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의 경우 구로사와 감독은 당시 일본에서 영화 제작의 자본을 구할 수 없었다. 그의 영화에 돈을 지원한 것은 프랑스였다. 당시 자크 랑 문화성 장관은 구로사와 감독에게 ‘일본에서 구로사와 같은 감독이 영화 자금의 조달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작품에서나 흥행에서 성공하고 있는데’라고 의문을 표했었고, 구로사와는 ‘일본 영화계의 수뇌부는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를 사랑하지도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뇌부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 일본의 뛰어난 감독들은 죽어, 나 혼자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은 시간이 오래 묵으면서 깊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영화와 관련해선 어찌된 일인지 언제나 이런 단순한 사실이 부정되곤 한다. 과거를 지워버리면서 산업은 승리한 것 같지만 문화와 예술에서는 언제나 후퇴가 있었다. 지난 8년간, 아니 1999년부터 작가들의 회고전 필름 상영회의 역사를 보자면 이미 십년이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부언하자면, 뉴욕이나 파리를 제외하자면 니콜라스 레이나 알드리치, 타르코프스키, 존 포드, 무르나우 등의 영화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일도 언제든 쉽게 부정될 수 있다. 거장들이 영화계에서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듯이 말이다. 시네마테크를 전위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반대로 이곳은 후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영화를 문화로, 예술로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게다가 이곳은 가장 뒤늦게 변하는 곳이다. 영화는 산업으로 무성을 버리고, 흑백을 버리고, 필름을 버렸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그런 영화의 유산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배창호 감독님이 ‘장 르누아르는 “영화가 산업과 예술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예술은 산업에 졌다’라고 말했던 것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시네마테크에 오면 아직 그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소망이라면, 그래, 이랬으면 한다. 모든 불행에도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그나마 잠깐이라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기 까지다. 시네마테크가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인지는 새삼 이야기하지 말자. 남은 20여 일 간의 영화제 기간 동안 눈 밝게 귀 기울여 고전영화들과 만나고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영화친구들을 만난다면, 먼발치서나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벅찬 희열을 맛볼 수 있다면 분명 시네마테크가 조금은 더 가슴 가까이 다가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끔찍할 정도의 열약한 인터뷰 환경으로 인해 소음과 잡음이 뒤섞인 녹취록을 불굴의 신념으로 깔끔하고 매끄럽게 풀어준 강연하 스태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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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09.02.06 20:55

무덤까지 가져갈 단 한 편의 영화

필진 칼럼 2008.07.14 14:47 Posted by woodyh98
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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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2008 시네바캉스’의 백미는 단연 스파게티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특별전’일 것이다. 돈만 있으면 우주여행도 가능해진 시대에 말 타고 총질이나 해대는 웬 구닥다리 영화냐고? 자고로 싸움의 백미는 총싸움인 법. 짤막한 권총에 유독 푸른 눈을 지녔던 프랑코 네로와 총구가 긴 권총을 소지했던 신경질적인 광대뼈의 리반 클립과 궐련을 질근질근 문 채 윈체스터를 폼 나게 돌려가며 쏘아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탄생시킨 것이, 세르지오 꼬르부치에서 시작되어 그의 후예 세르지오 레오네가 꽃을 피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면 어떤가!

이렇듯 수정주의 서부극에 B급 감성을 버무려 독특한 영화세계를 일궈온 세르지오 레오네였지만, 그가 필생의 작업으로 여겼던 영화는 전혀 다른 형식의 것이었다. 입버릇처럼 말해왔듯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위대함은 단순히 그의 영화세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즉, B급 서부극이라 불린 레오네 영화에서나 주연일 수밖에 없었던 2류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오늘날 거장으로 군림하기까지 레오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레오네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레오네의 영화, 그 중에서도 그의 유작(遺作)을 필름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시네바캉스는 절반의 만족을 안겨준 셈이라 하겠다. 이제, 물어보자. 당신을 미치게 만드는 단 한 편의 영화가 있는가? 제목만 들어도 뛰는 가슴을 주체하기 힘든 그런 영화가 있는가. 아님 당신의 가슴을 데워줄 영화가 있기는 한 것인가.

좋은 영화란 셀 수 없이 많다. 이 무수한 영화를 전부 이야기하자면 평생 걸려도 못할 일이기에 단 한편의 영화를 고르라면 누구라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테지만 내겐 그리 고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최고의 영화 한 편만 꼽아보라고 할 때 주저하지 않고 꼽을 영화가 있다는 것. 정말로, 그런 영화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이 영화에 대해서 긴 얘기가 필요 있을까? 어떤 수식어로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다 할 수 있을까. 70 년대에 <대부>가 있었다면, 80년대는 바로 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있다. 물론 90년대에 이르면 <좋은 친구들>로 그 계보가 이어진다.

「뉴욕 빈민가의 어느 식당, 한 소년이 화장실로 들어가 벽돌 하나를 조심스레 빼낸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채 그 구멍을 통해 옆방을 들여 다 본다. 벽 너머의 공간에서는 소녀가 발레 연습을 하고 있다. 소녀는 소년이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치 뽐내듯 발레를 계속하고, 소년이 소녀를 좋아하듯 소녀도 소년을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이 나쁜 길로 빠지려 하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소녀의 걱정대로 소년은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 옛날 옛적 미국에서...」

1920년대 경제 대공황과 금주법시대의 뉴욕 브룩클린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소년이 범죄자로 성장하는 과정과 이젠 도피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주인공 누들스의 과거회상을 통해 인생과 사랑, 범죄와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둘도 없는 친구였던 누들스와 맥스, 그리고 연인인 데보라를 통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신의 인생 이야기가 애절한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 팬플루티스트인 게오르그 장피르의 주옥같은 선율이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이 영화는 가히 영화도 영화음악도 모두 최고 걸작 반열에 오를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세르지오 레오네가 평생 간직해온 ‘드림 프로젝트’였다. 70년대 후반 연출보다는 제작에 더 힘을 쏟았던 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만들기 위해 <대부>의 연출제안을 거절했을 정도였다.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을 통해 상당히 기묘한 스타일을 지닌 감독쯤으로 인식됐던 레오네는 이 영화를 통해 거장다운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과거, 현재, 미래를 정교하게 오가면서 진행되는 사건은 미스터리하면서도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원작은 "HOODS"라는 소설로 당초 10시간짜리 러프 컷을 수정한 레오네의 1차 편집본은 6시간짜리이고 디렉터 컷(현존하는 완전한 감독 공인판)도 229분짜리 분량으로 만들어졌으나, 흥행을 고려한 제작사가 무려 89분을 잘라낸 2시간 19분짜리 필름으로 개봉시켰으니, 결과적으로 평론가들의 악평과 흥행 참패를 겪어야 했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감독 판이 재개봉되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명보극장 개봉 당시인데, 132분이라는 (지금으로서는)어처구니없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충격과 매혹은 여전히 기억을 지배할 뿐 아니라 광적 지지자로까지 바꿔놓을 정도였으니, 단언컨대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단 한 편의 영화가 있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일 것이다.

영화에는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꽤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어린 창녀의 환심을 사기위해 슈크림을 사들고 찾아간 ‘짝눈’이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야금야금 핥다가 기어이 다 먹어치우는 장면이라든지, 보석상을 턴 맥스 일당이 훗날 안주인과 재회하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그녀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장면 등은 가히 레오네 다운 발상으로 여겨진다. 사랑하는 여인보다 손 안의 슈크림이 더 간절한 소년의 심정은 얼마나 절절하던가! 또한 출옥한 누들스가 데보라와 만나 야연을 즐기던 시퀀스도 잊을 수 없으니, 이 장면에서의 대사는 이렇다. “미치지 않기 위해선 바깥세상은 다 잊어야 했어. 하지만 그래도 잊혀 지지 않는 건, 도미니크였어. 총 맞고서 ‘나 넘어졌어.’ 라고 말하던 아이 말이야. 그리고 데보라...너!”

숱한 밤, 나를 갈색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휘파람 불며 브룩클린 다리 밑을 걷던 다섯 명의 소년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제 필름으로, 그것도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판본으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어찌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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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크림을 사들고간 아이는 '짝눈'이 아니라 '펫시' 였던것 같은데요...^^
    파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던 아이...

    2008.07.1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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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여러 가지 진통을 겪은 후, ECC(EWHA Campus Center)는 올해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공개되었다. 이화여대의 ECC라는 건물의 착공을 둘러싸고 언제나 수많은 담론들이 쏟아졌다. ECC의 내부에 스타벅스와 교보문과와 같은 상업시설의 입점을 놓고 사람들은 찬 반 양론으로 나누어졌다. 이 담론의 뒤편에는 씨네 큐브(영화사 ‘백두대간’)에서 파생되어 개관을 기다리는 ‘아트하우스 모모’라는 극장도 있었다. 아트하우스란 이미지와 좋은 영화를 상영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모모 또한 ECC와 같은 흐름에 놓여있었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오는 8월 초, 막 발돋움을 기다리는 ‘신생’영화관이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이화여대의 ECC 설립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찬성하는 학생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끌어안고 우여곡절 끝에 정식 개관을 기다리고 있다. 아트 하우스 모모의개관은 광화문에서 신촌 지역으로 나누어지는 새로운 예술 영화 라인의 시작인 동시에 실 소비층이 처음으로 ‘대학생’으로 두드러지는 양식을 갖춘,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극장의 사이트가 오픈하고, 지난 달 개관에 앞서 다양한 행사들을 선보이고 있는 모모에 관심을 가지는 관객과 언론들은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7월 4일 저녁, 모모는 개관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나는 인어공주>의 관객과 배급시사를 동시에 진행했다. 한창 입점이 진행 중인 한적한 ECC 건물 속 작은 극장 아트하우스 모모, 그곳을 운영하는 영화사 백두대간의 손주연 부대표를 만났다.



강민영(이하 ‘강’): 일단 극장 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처음 백두대간에서 이화여대 ECC건물에 극장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 당시에 들었던 극장의 명칭이 ‘씨네 큐브 이화’라고 들었다. 때문에 계속 ‘씨네 큐브’와 연관 지어 씨네 큐브 ‘이화’라는 이름으로 운영이 될 줄 알았는데, 중간에 ‘아트하우스 모모’라고 변경이 되어있더라.

손주연(이하 ‘손’):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씨네 큐브라는 극장이 연 몇 만의 관객을 가지고 고정적,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씨네 큐브의 브랜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씨네 큐브라는 회사가 단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흥국생명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동의를 얻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급박하게 일이 진행 되고,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아 결국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씨네 큐브에 대한 장단점이 부각 되었다. 기존 씨네 큐브는 무겁고 진지한 이미지가 강해 대학 내 작은 영화관으로서 ‘씨네 큐브’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생겼고, 젊고 밝고 친근한 느낌으로 이름을 바꾸자고 생각했다.



강: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모모’라는 단어를 떼어놓고 보았을 때, 모모는 여성성이 짙은 단어로 생각된다. 이것은 여대라는 메타성과 이어진다고도 생각되는데, 특별히 ‘모모’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있는가.

손: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이 이미지로 형상화 되어있지는 않지만,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희망을 가져주는 차원에서 모모라는 소설을 차용했다. 또 모먼트 오브 무비(Moment of movie)라는 말을 붙여 모모라는 줄임말로 설정하기도 했다. 모두 각자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다르고, 인생에 영향을 끼친 영화 또한 다르다. 만약 한 영화를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면 그 순간은 개인에게 엄청나게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때문에 ‘모모’라는 단어는 약어 이긴 하지만, 들었을 때 두 가지의 ‘모모’를 떠올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강: 모모는 138석 2개관을 가지고 있다. 극장 시설 말고도 다채로운 행사를 많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로 전시나 음악 행사와 같은 것들을 토대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씨네21에 실린 기사에서 모모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문화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것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손: 예전에 어떤 영화를 보느냐보다 누구와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디 워>라는 작품도 어떤 상황에서 보여 지느냐에 따라서 담론들이 달라지는 것 같다. 영화라는 컨텐츠는 예전에는 절대적인 것이었지만 이제는 수용태도, 즉 ‘나’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다른 문화적인 것들과 함께 발 맞춰 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모모에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일반인들과 조금 다른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어떤 정치성을 띄거나 선언적 이거나의 차원이 아니라, 취향이 다른 것이고, ‘타인의 취향’들끼리 모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일 가까운 것이 책이었고, 크게 분류하자면 아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악을 듣는가에 대한 포괄적인 관심을 가졌다. 쉽게 이야기하면 크로스 오버인거다. 영화 자체만으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영화의 차원이 낮아지기도 하고 높아지기도 해서 다른 문화와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강: 모모가 책이라는 것을 모토로 발단을 쌓았기 때문에 지난번에 있었던 르 끌레지오의 ‘발라시네’출판 기념행사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모모는 씨네 큐브와 같은 영화사 백두대간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데, 혹시 운영팀을 분할해서 배치한 건가?

손: 그럴 만한 여력은 없었다. 운영을 하기 위한 경비차원에서 분리를 하면 경비는 더블이 되니까 그렇게는 못하고. 같은 머리에서 나오는 다른 생각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씨네 큐브는 고풍스럽고 문학적이고, 모모는 조금 더 트랜디 하고 시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큰 분류에서 보면 비슷한 색깔인 영화들이 될 거다. 기획 이런 것들이 모모는 액티브하게, 씨네 큐브는 보수적으로, 이런 차이 정도만 있다.



강: 그럼 프로그래머도 씨네 큐브와 동일한 프로그래머로 진행되는 건가?

손: 그렇다.



강: 씨네 큐브라는 극장을 알게 된 지 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백두대간에서 수입한 영화들을 보면 주로 유수의 영화제들을 기반으로 상영하는 것 같다. 국내에서는 부산영화제의 상영작이 좀 막강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항상 부산에서 관객 호응도가 높은 영화들을 보면 씨네 큐브에서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다(웃음). 모모에서는 특별히 2008년에 기획하는 영화제나 프로그램이 있는가?

손: 개관영화제로는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준비 중이다. 2008년 SICAFF를 중심으로 호응이 좋았던 작품이나, 해외 애니메이션 영화제 같은 곳에서 그랑프리를 탔던 작품들과 반응이 좋았던 애니메이션들을 모아서 영화제를 한다. 크게 기획된 것은 ‘라틴 아메리카를 통해서 본 유럽 배낭 여행’과 같은 주제인데, 라틴 아메리카가 상징하고 있는 여러 가지 주제를 모아 영화제를 진행 중이다. 상시로 하고 있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북 콘서트 식의 영화 상영이다. 책 읽어 주는 영화관. 저자와 만나 육성으로 자기 책을 읽는 것. 유럽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 나라 같은 경우는 보급화 되지 않았다. 그리고 EBS에서 몇 년 전부터 진행 중인 5분짜리 영사다큐 <지식 E>를 좋아하는데, 매주 다른 주제로 <지식 E>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이것을 보통 극장에서 광고나 예고편 시간에 상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EBS에 의뢰했다. <지식 E>에서도 주로 예술 지향적이고 소프트한 주제의 다큐를 상영하려고 한다.



강: <지식 E> 기획 같은 경우는 다른 극장들과 달리 모모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인 것 같다. 나도 <지식 E> 프로를 즐겨보지만 프로그램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매번 다른 소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놓치기가 십상이었다.

손: 앞서 말한 것들과 <지식 E> 이외에도 일곱 가지 정도 기획 행사를 기획 중이다. 이 행사들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상시적인 것으로 한 해에 네 번 정도 큰 행사를 통해 운영할 것이다. <지식 E> 같은 경우는 모모의 가장 큰 연중행사가 될 것이다.



강: ECC(EWHA Campus Center)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처음 ECC건물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 일부 언론에서 다루는 기사들을 보니 (이대생)들의 반발이 굉장히 심한 것 같더라. 학교 자체가 상업성을 띄어 간다는 우려를 낳았는데, 현재 ECC가 완공되고 난 후 ECC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입장은 조금 수그러진 상태다. 학생들의 반대 과정에서 아트하우스 모모의 입관이 확정되었는데, 혹시 그 과정에서 아트하우스 모모의 운영에 특별히 어려움을 겪은 것이 있나.

손: 아직도 어려움에 부딪혀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 자체가 50년대에 청소년 유해 기관, 유해 장소, 비리의 온상 등 부정적으로 규정되어 있던 것이 아직까지 법으로 규제되어 있다. 대학교는 18세 이상 성인들이기 때문에 풀렸지만, 중 고등학교는 여전히 ‘주변 50미터’ 철칙을 지키고 있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지고, 김대중 정권 이후 수출상품으로 전환되며 진흥 사업도 많이 하고 있지만, 통념상 극장을 규정하는 것이 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에서 바라보는 시선 자체도 스타벅스와 모모를 동급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극장을 규정하는 법적인 규제는 딱 두 가지인데, 상업영화관 아니면 18세 이상만 관람하는 전용 상영관이다. 예술영화 전용관이라는 엄밀한 용어도 있고 영진위에서 지원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일정 부분 학교의 상업화를 도모하는 데 있어서 학교 측의 고민과 그에 반대하는 학생 측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스타벅스와 모모를 동급으로 설정하는 건 너무 차이가 나는 두 개를 접합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 예술 영화 전용관이 기타 상업 시설과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지도가 적은 것 같다. 학생들은 대부분 영화관의 설립에 동조하는 것 같지만, 이대의 총학과 다양성 영화 상영관 사이에서 운영방식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같다.



강: 모모에서 처음에 입관 규정을 할 때, 쉽게 말해 ‘여대’라는 것이 1차적인 소비자가 될 것이라는 걸 숙지하고 계셨을 듯하다. 이것을 고려하고 ECC 입관을 결론 내리신 것인가.

손: 처음에는 이화여대 측에서 극장의 직영운영을 결정했었다. 하지만 상황들이 만만치 않고, 유통 상례 상 불가능한 지역이라 CGV나 메가박스 같은 큰 배급사에 의존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컨설팅 의뢰를 하면서 운영에 대한 위탁을 부탁 한 거다. 백두대간 측에서는 극장 운영의 제의를 두 번 정도 거절했다. 아시다시피 과거 90년대 초반에 시네마테크 운동이 일어나면서, 극장에서 필름으로 아트영화를 보는 게 가능해진 시대에 붐이 있었지 않나. 당시에 그런 운동을 즐기고 지지하는 층이 대학생층이었다. 그때의 대학생들이 이제 3~40대가 되었는데, 그들에 비해 지금 대학생들은 판이하게 다르다. 상업영화를 지지하고 한국영화 붐을 타 한국영화를 지향하고. 그래서 20대의 초반 관객은 아트영화 관객이 거의 없다고 보았다. 일본 인디 영화는 많이 찾지만 말이다. 때문에 ECC에 입관하는 게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다른 생각도 들었다. 예술 영화 시장이 40만 정도의 시장인데, 그 중 씨네 큐브가 20만 정도의 좌점율을 소유하고 있다. 이 기회에 학교 내에 아트하우스를 성공적으로 해내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게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오갔다. 여러 가지 한국 영화 문제점의 틈새를 좁히자는 취지에서 ECC를 선택하게 되었다.



강: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경우, 소격동에서 옮길 당시 낙원상가라는 공간의 특성이 최우선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극장의 경우, 극장 입관 이전에 지역적인 특성을 상당히 고려하는 추세인데 예를 들어 하이퍼텍 나다(동숭아트홀)와 상상마당(KT&G)은 대학로와 홍대에 위치해 지역적인 관객들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광화문의 경우에 안정적인 30대 직장인 관객을 대상으로 씨네 큐브, 미로 스페이스, 스폰지와 같은 라인을 세웠다. 이제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신촌 일대의 곧 재개관할 필름포럼과, 아트하우스 모모인데, 모모 또한 앞서 말한 나다와 상상마당과 함께 지역적인 부분ㅇ서 차별점을 두고 운영할 것인가.

손: 신기하게도 필름포럼의 경우 곳곳을 뒤지다가 우연히 신촌에 자리 잡았는데, 어쩌다보니 모모와 함께 이대 정문과 후문에 각각 위치하게 되었다(웃음). 모모의 전략은 씨네 큐브의 ‘제 살 깎기’는 지양해야 하고, 이른바 예술영화를 외면하는 20대 초반을 공략하는 적극적 마케팅과 다채로운 영화를 상영하여 관객층을 넓히는 것이 급선무다. 아마도 모모의 경쟁상대는 스폰지나 나다의 관객들의 일부가 될 거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객발굴에 있을 것이다. 보지 않은 사람들이 보는 것, 예를 들어 공강 시간이나 휴강시간에 어쩌다 어떤 영화를 봤는데, 그게 ‘모먼트 오브 무비(모모)’가 되어서 각자에게 중요한 사건으로 작용하는 것. 씨네 큐브의 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일부 관객층의 흡수가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본다.



강: 모모가 홍보 전략으로 내세운 모모의 ‘워너 비(Wanna be)’들을 검색해보니 정이현, 이상은과 같은 작가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요새 떠오르는 트랜드라고 해도 무방할 텐데, 완벽히 스타성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독립성과 대중성 중간에 위치해 있는 작가들이다. 워너 비들의 선정은 앞서 말한 씨네 큐브와 일반 관객의 소통을 고려하기 위한 예를 토대로 하게 된 것인지.

손: 소위 말해 ‘네가 그들을 옹호하면 너도 이 극장에 와봐라’라는 의미가 있는 30대들이다. 완전히 뜨지도 않고 아주 막 발돋움하는 사람도 아닌 전문 아티스트인데, 인디적인 느낌도 있는 분들이다. 지금 20대 초반들이 되고자 하는, 말 그대로 ‘워너 비’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엄선했다. 각개 적으로 설득을 하고 의미와 취지를 이야기를 했는데 다 긍정적으로 응해주시더라. 씨네 큐브도 대부분 좋아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워너 비들의 개인 작업을 통해 다양한 방면에서 대중과 소통하고자 할 때, 극장을 마음대로 이용하실 수 있는 ‘장’이 설정되면 서로 좋은 거니까. 관객 호응도 좋았고.





강: 요즘 블로그를 이용한 극장, 혹은 영화 홍보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예술영화극장 전용 홈페이지 ‘아트플러스’를 운영하다가 네이버에 따로 카페를 만들어서 작년부터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씨네 큐브도 모모와 함께 ‘씨네 아트’라는 블로그를 만들어 활동 중인데, 블로그를 생성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손: 백두대간이 또 하나 새롭게 발을 내딛는 분야가 있는데, 말씀하신 씨네 아트라는 이름으로 예술 영화 전문사이트를 착공 중이다. 시장상황도 그렇고 매체들도 사실상 블록버스터에 장악되어 있는 상황이라, 일반 아트영화에 대해 충분한 논의의 장이나 리뷰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것에 대해 담론을 제기할 방법이 부족하다. 어떤 평론가가 쓰고자 해도 데스크에서 잘리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백두대간 측에서 운영하는 극장이 늘어나는 마당에, ‘우리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보자’로 결론 내렸다. 그런데 자체 컨텐츠 개발은 비용문제도 생기기 때문에 어렵고, 자리만 마련해주면 자발적 생산자들이 와서 그것에 대해 논의하는 방식을 도모해보고자 해서 인터넷을 이용하게 되었다. 조금 있으면 사이트가 오픈을 하는데,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다. 우리는 기대가 크지만.



강: 씨네아트 블로그는 팀 블로그 형식으로 몇몇의 리뷰어들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들도 자체적으로 모인 것인가?

손: 블로거를 모집했는데, 자발적으로 지원한 분들도 있고 외부 블로그를 통해서 부탁을 드린 분도 있고. 총 10분 정도를 엄선해서 뽑았다. 다들 영화, 미술, 음악 등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으니까 리뷰어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블로거에 글을 올려주고, 그 중에서 선별해 사이트에 메인에 해당하는 글을 개시 해주는 식으로 연계를 한다. 사이트보다 블로그가 먼저 오픈을 했는데, 글도 활발히 올라오고 반응도 좋다. 사이트가 정식 오픈하면 그런 곳에 목마름이 있던 네티즌들이 찾아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더불어 영화 전문 기자들과 같은 분들도 씨네 아트 사이트에 들러 예술 영화 관련 정보들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욕심도 있다.



강: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다. 백두대간에서 수입하는 영화들 모두를 비용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상영하기는 무척 어렵다. 특정 영화를 언급하셔도 상관없고, 지금 현재 백두대간의 창고에 쌓여있는 영화들 중에 특별히 상영하고 싶은 영화가 있는지.

손: 93년부터 15~16년 정도 영화 일을 했는데, 초창기 백두대간 멤버였다가 상업영화 최전선에서 일을 했고, 다시 백두대간으로 돌아왔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문득, 예전 예술영화에 대한 향수가 일더라. 영화에 대한 열정이 예전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진지했었고, 옛날 같으면 충분히 개봉해도 좋을 영화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묻혀버리는 것 같다. 참 안타까운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품 중 루이 말 영화가 세 작품이 있다.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좋은 작품도 있었는데, 개봉타이밍을 놓치고 수익의 우려가 있어 배제되고 있는 실상이다. 극장 측은 관객을 고려하는 차원에서 일단 벽을 느낄 때가 많다. 일본 인디나 선댄스 등 요즘 기류에 부합하는 영화들도 좋지만, 고전들을 되짚어보는 것은 허리를 튼튼하게 하는 일인데, 이것들에 관심들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영화들을 중점적으로 틀고 싶은 소망도 있다.




강: 오늘 <나는 인어공주> 시사도 있고 많이 바쁘셨을 텐데, 오랜 시간 수고 많으셨다. 마지막으로 아트하우스 모모의 개관에 거는 기대, 혹은 포부와 같은 것들을 짧게 부탁드린다.

손: 우리가 성공적으로 모모의 자리를 잡으면, 대학 내의 예술영화 전용관의 설립에 관한 적극적인 추진이 있을 것이다. 실질적인 반향에 대한 기대는 어림잡기 힘들지만 일단 관심이 가고 구미가 당기는 일은 분명하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측에서도 지원을 통해 예술영화 전용관을 확대코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영화관들의 위치나 특성상 실효성을 발휘하기 힘들다. 이런 것들을 감안해서 대학 내에 세워지는 영화관인 만큼, 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관객의 기대에 맞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는 극장이 되고 싶다.



강: 내가 처음 영화 자체를 만났던 건 소격동 시절의 아트시네마였다. 그곳에서 낙원으로 옮겨지고 그 주변을 찾다보니 씨네 큐브와 비교적 최근에 생긴 미로, 스폰지(씨네코아)등이었다. 지속적으로 특정 극장들을 편식한 셈인데, 관객의 입장에서 예술 영화 전용관이라는 극장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조금씩 약진을 하고 있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기타 등등의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관객으로서 나에게는 그런 문제점을 비집고 ‘아트하우스 모모’라는 또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이 생기는 거다. 어떻게 보면 실험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신선한 가능성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다. 개관 후, 좋은 성과가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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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2


혹시 홍대의 ‘영화도서관 빛’을 아는가? 신촌의 ‘O.F.I.A’는? 만약 저 두 곳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저주받은(?) 영화광이다. DVD도 없었고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번듯한 시네마떼끄를 알지도 못하던 시절에 영화광들의 발걸음이 모아졌던 곳. 그러니까 영화탄생 100주년으로 한참 떠들썩했던 1995년 당시, 얼터너티브 영화잡지라는 멋진 캐치 프레이즈를 달고 세상에 나온 키노를 가방 한 귀퉁이에 챙겨 놓은 채 내가 찾아 다니던 곳 역시 영화도서관 빛과 O.F.I.A였던 것이다. 본격적인 예술영화 전용개봉관의 깃발을 올리게 될 동숭아트센터는 아직 오픈 전이었고 당시의 나에게 무슨 문화원이니 하는 곳은 영 익숙하질 못했다. 그리고 시네마떼끄라는 것도 우리나라에 있기나 한 건지,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지도 못하던 때였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를 통해서 소문으로만 접해온 유명 저패니메이션과 시대를 막론한 각종 예술영화를 구비해놓았다는 영화도서관 빛과 O.F.I.A를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로드쇼 같은 잡지를 통해서 희귀 비디오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구할 수 있긴 했었다. 비디오 체인점인 ‘으뜸과 버금’이나 ‘영화마을’에 가면 국내에 출시는 되었으되 좀처럼 찾기 힘든 희귀 비디오들을 구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 하지만 이래 저래 자주 나가게 되는 시내 번화가가 아닌 다음에야 주소만 가지고 저 체인점들을 직접 찾아 나선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고 출시가 되었다는 영화들의 보존 상태도 마냥 신뢰할 만한 수준은 되지 못했다.

단지 테이프 1개에 구겨 넣기 위해, 혹은 연소자 관람가로 등급을 맞추기 위해 비디오 출시 과정에서 영화를 도려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시절,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다는 영화들도 저 무지막지한 망나니의 칼질을 피하지 못했는데 아는 사람만 아는, 소위 예술영화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최소한 ‘빛’이나 ‘O.F.I.A’ 같은 곳에서만큼은 극단적인 자본의 논리와 검열의 감시망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퀴퀴한 골방 같은 곳에 자리를 마련한 저 두 곳을 좋아했다. 그 시절에 내가 말하는 시네마떼끄는 바로 ‘빛’과 ‘O.F.I.A’였다. 왠지 이름도 멋지지 않은가? 영화도서관 빛도 그렇거니와 Our Future In Angle, 해석하면 앵글 안에 담긴 우리의 미래라는 문장의 이니셜 약자인 O.F.I.A 또한 그러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일에만 상영회를 갖고 평상시에는 공 테이프에 영화를 복제해서 대여해주는, 시네마떼끄라기 보다는 비디오떼끄라는 명칭이 더 잘 어울릴 그런 장소들이긴 했지만 뭐가 되었든 상관 없었다. 힘들게 빌려온 영화에 시종일관 장마철 소낙비가 좍좍 쏟아지는 당혹감도, 과격한 노이즈 현상으로 몇몇 장면이 달아나버리는 황당함도, 현재 가능한 최대한의 자유를 확보했다는 그 뿌듯함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왕에 보는 거, 화질도 좋고 음향도 선명하면 더 좋기야 하겠지만 원하는 것들을 다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위질 안된 영화를 그대로 받아 보는 것이 더 중요할 터.

언제까지 소문과 다른 이의 글을 통해서만 갈증을 달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때마침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불어왔던 바람도 호기심을 부채질 했다. 그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거다! 힘겹게 곡괭이 질을 하고 삽으로 땅을 파낸 끝에 찾아낸 수맥에서 까짓거 물이 수도꼭지마냥 콸콸 쏟아지지 않으면 좀 어떻단 말인가? 거기에 진흙 좀 섞여서 나오면 또 어떻고? 어쨌든 지하에서 튀어나온 암반수면 만사 O.K인 거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화질 안 좋고 소리도 후진 복제 비디오 테이프라 하더라도 가위질 안된 원형 그대로의 영화였기에 좋았던 것이다. 우리가 원했던 건 누군가 화면 위에 살려놓은 창조물 그 자체로서의 영화였지 최상급의 화질과 음향이 갖춰진 영상 데이터가 아니었다. 게다가 더 좋은 내일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지금은 진흙이 뒤섞인 물이 감질나게 졸졸졸 새어 나오는 것에 불과할지 몰라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한 여름 소낙비처럼 시원하게 쏟아져 내려 모두의 갈증을 채워줄 것이라는 바람 말이다. 영화잡지들의 잇따른 출간, 예술영화 전용관의 오픈, 소문으로만 듣던 예술영화들의 정식 비디오 출시, 영화탄생 100주년을 위시해 벌어진 이 일련의 사건들이 약속하는 것이 무엇인진 너무도 명백했다. 말 그대로, 앵글 속의 우리들 미래가 마냥 희망차 보였던 순간. 물론 어느 정도는 그 희망대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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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 안 좋은 복제 테이프가 아닌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진짜 시네마떼끄가 지척간에 자리를 잡았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전설의 걸작들은 DVD 타이틀로도 상당수 출시되어 있는 상황이다. 거기다 독립영화들도 꾸준히 공개되는 중이다. 이 정도면 그 희망에 충분히 부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분명 세상 참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석연찮은 기분은 과연 뭐란 말인가? 예전에 그랬다 해서 아니, 예전에도 정말 그랬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를 반드시 근엄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는 거다. 제 아무리 숭고한 예술이면 뭐하나, 내가 재미 없다면 그건 그냥 재미 없는 영화일 뿐인 것이다. 예술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금의 아쉬움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 하나씩 문을 닫은 동네 비디오샵과 함께 부가시장은 몰락했다. 전설의 걸작들이 DVD 타이틀로 출시는 되었으되 격에 맞지 않게 형편 없는 가격으로 팔리는 중이다. 회사에 가면 술집에서 수십 만원 쓰는 것을 아까워 않는 사람들이 정작 극장 입장료는 아깝다며 공짜로 다운 받은 영화들을 인터넷으로 보고 있다.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야기들, “영화를 왜 돈 내고 봐?” 부탁하건대 공짜로 쳐봤으면 영화가 어떻느니 저떻느니 하지 말고 그냥 닥쳐줬으면 좋겠다. 문득 요즘 세상에 영화를 하나의 창조물로 대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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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의 사람들이 영화를 언제든지 삭제 가능한 데이터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쏟아져 나오는 최신 데이터에 대한 정보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심사 숙고한 비평은 불필요한 행위로 여기는 것이겠지. 사람들에게 비평을 읽어달라고 애원하진 않겠지만 요즘 누가 비평 따위를 읽느냐는 시선은 곤란하다. 최신 시류와 다른 길을 가는 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뭐라 해도 영화란 결국엔 문화의 일부이다. 그것도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는 문화. 어차피 이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고전이니 비평이니 시네마떼끄니 하는 것이 아니고 대박 영화 하나 튀어 나와서 자동차 연간 수출액에 맞먹는 거액의 돈을 뭉탱이로 벌어들이는 것일 테니까.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영화 따위 어찌되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 경제만 살리면 되지. 그들에게 영화란 문화도, 역사도, 전통도 아니다. 그저 돈이 될 수 있는 상품에 불과할 뿐. 저 높으신 곳에 있는 윗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니냐고? 천만에. 지난해 [로보트 태권V]의 복원판 필름이 극장 개봉되었을 때 일부 팬층이 보인 반응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로보트 태권 V]를 오리지널 필름으로 극장에서 다시 보게 되어 좋긴 한데, 복원작업에 들일 비용으로 새 시리즈를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았겠냐는 것이 그들의 응답이었다.

저들 중에는 나름대로 국산 애니메이션 애호가를 자청하는 이들도 있었을 터. 난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 남대문이 손상된다면 그냥 허물고 외국인 관광객 좀 끌어들일만한 오리엔탈 풍의 새 건물을 짓자고 할 것인가? 과연 그럴 것인가? 누군가 말했다. 역사와 전통이란 보존과 축적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라고.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을 보기 위해 외국 박물관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해외 여행도 가고 한국 미술의 고전도 볼 수 있으니 일거양득일세 얼씨구나 하며 좋아할 것인가?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 미술계의 걸작을 이제 백년남짓한 역사를 지닌 영화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김홍도나 신윤복의 예술활동도, 그 때 당시에는 돈 안 되는 딴따라짓으로 치부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영화계에는 이미 저런 만행이 수 차례 자행되었다. 돈 몇 푼에 원판 필름을 팔아먹거나 관리 소홀로 손상 및 분실되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경우. 그 덕택에 우린 한국 최초의 영화라는 [아리랑]을 지금도 볼 수 없다. 최초의 만화영화 [홍길동전]도 마찬가지다. 몇몇 고전들은 해외에서 역으로 공수해온 탓에 외국어 자막이 깔려 있기도 하다. 불과 삼십 년도 채 안된 영화인데 도통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네 비디오 가게 몇 군데 문 닫으니 예전엔 쉽게 볼 수 있던 영화도 이젠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건 과연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지난 2003년, 키노가 폐간되었을 때 사뭇 비장한 심정으로 키노의 최종호를 펼쳐 보았다가 분노에 가까운 심정으로 내동댕이 쳐버린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무지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평이란 게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영화를 예술로 받아들인다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때 차라리 잘 망했다 싶었던 키노가 지금은 참 그립다. 키노가 그립고 키노라는 잡지가 발간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최소한 그 때는 영화도 하나의 문화 유산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름 큰 소리 칠 수 있었다. 아, 물론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이 마냥 암담하단 소리는 아니다. ‘진짜’ 시네마떼끄도 있고, 그곳에서 영화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며 나 같은 사람이 부족한 솜씨나마 글을 써 올릴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영화탄생 100주년에 꿈꾸던 앵글 속의 미래는 나름 희망찬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을 다 설득할 수는 없는 법일 테니 지금의 자리에서 먹고 사는 일에도 틈틈이 신경 써가며 굳세게 버텨내는 것이 내가, 혹은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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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쟝 삐에르 멜빌 감독의 [암흑가의 세 사람]을 보았다. 1980년대 지역 유선방송의 단골 레파토리가 바로 알랑 들롱의 작품들이었는데 그때 얼렁뚱땅 보고 90년대 중반, 동네 비디오샵 한 구석에 쳐 박힌 바로 그 난도질 버전의 비디오테이프로 대여해서 본 뒤, 이번에 다시 제대로 된 필름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멜빌을 존경한 영화인들, 혹은 멜빌의 미학을 계승한 감독들과 같은 복잡한 영화사의 계보가 아니었다. 처음 알랑 들롱이란 배우를 보고 “저 아저씨 참 잘 생겼네”라며 감탄사를 내뱉던 어린 시절의 나와 분명히 출시되었다던 [암흑가의 세 사람] 비디오테이프를 찾아 동네 비디오샵 구석구석을 두리번대던 스물한 살 때의 내가 속해 있던 바로 그 시간들이었다. 여기에 재미있는 영화 한편 봤다는 만족감까지. 따지고 보면 영화란 결국 지나버린 시간들을 보존하는 매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시네마떼끄의 친구들’ 행사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두용 감독 특별전을 보게 되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오래된 영화 뭐 하러 힘들게 찾아서 보나?’라고 반문하겠지만 내가 그날 받은 느낌은 단지 오래된 영화 한편 봤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들의 한 묶음이, 그 끊어져 있던 연결고리가 다시 되살아난 듯한 감동이었다. 영화가 문화 유산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백 번 해봐야 소용없는 이야기, 그래도 난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고 싶다. 정말 폐쇄적인 쪽은 고전이니 예술이니 하는 어려운 말들을 주절대는 우리가 아니라 물질 가치로 환산되는 것 이외의 모든 내재적 가치들을 무시하려 드는 그들이라고 말이다. 물론 “뭐가 어찌 되든 간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인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 눈에는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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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돈에 뒤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8.03.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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