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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7 씨네큐브 사태와 백두대간, 사실 혹은 추억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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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한 때 종사했던 일의 특성상 주가에 관심을 가진 시절이 있었다. 당시 주식시장에는 삼성전자나 포항제철, SK텔레콤, 현대자동차로 통칭되는 소위 블루칩종목이 부럽지 않던 알짜배기 회사들이 있었는데, 대표적 기업으로 농심과 남양유업, 대구백화점, 태광산업이 그것들이다. 특히 태광산업의 경우 부채비율 제로(0)라는 경이적인 재무구조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손바닥만 한 구멍가게라도 꾸려본 사람이라면 빚이 없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알 터인즉, 하물며 대기업임에랴. 웬 재무구조냐고 묻지 마시라. 그저 생각나서 주절거린 거니까.

태광산업을 모태로 하는 그룹 계열사 중 대표적인 것은 흥국생명이다. 보험업계 순위는 몰라도 이 회사의 여자배구단이 정상급이라는 사실과 사옥이 광화문 새문안교회 맞은편에 있다는 것과 그 건물 4층에 영국문화원이, 지하에는 ‘씨네큐브’가 있다는 정도야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알만한 얘기들일 터. 그렇지, 태광산업과 흥국생명은 씨네큐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회사였지.

‘씨네큐브’는 개관이래 9년을 변함없이 이어온 고품격 예술영화관의 다른 이름이다. 극장의 운영주체인 영화사 백두대간은 이미 지난 1996년 종로구 동숭동에 ‘예술영화전용관 동숭시네마텍’을 개관해 예술영화 불모지였던 우리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바 있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0년 12월 씨네큐브의 문을 열게 되니, 개관작은 프레드릭 폰테인 감독의 <포르노그래픽 어페어>였다. 이 영화를 필두로 수준 높은 예술영화들이 관객과 만나게 되는데, 연평균 19만 명 정도의 관객 수를 유지했고, 2006년에는 예술영화전용관 사상 처음으로 2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간 백두대간의 손을 거쳐 수입 개봉된 영화는 100편이 넘으니 거의 매월 1편의 영화가 수입 상영된 셈이다.

씨네큐브가 상당수 마니아를 확보하게 된 배경으로 극장을 둘러싼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단순히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예술영화를 상영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긴데, 사실이지 씨네큐브만큼 관람환경이 좋은 상영관도 드물 것이다. 혹자는 주부들의 ‘브런치 예술영화’ 바람을 주도하며 광화문벨트 중심에 섰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예술영화의 첨병역할을 했다고도 하는 이 영화관을, 나는 ‘한국에서 가장 조용한 영화관’이라고 부르곤 했다.

정말로 씨네큐브에는 큰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이곳에 오면 누구나 신사숙녀로 변신한다. 요란한 손짓몸짓으로 관객을 반기는 직원들과 흡사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소음으로 가득한 멀티플렉스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이곳에는 그 흔한 LCD TV 하나 걸려있지 않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영화를 기다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 불이 켜지면 비로소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관람구조. 적어도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본 후 상영관을 나오자마자 영화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 경우에도 도로 한 복판까지 나와 미로스페이스 쪽으로 길을 건넌 후에야 비로소 조금 전에 본 영화를 떠올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또한 씨네큐브가 굳건히 버텨주었기에 미로스페이스가 들어설 수 있었고, 스폰지하우스가 광화문에 움틀 용기를 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씨네큐브를, 아니 씨네큐브에서 보던 익숙한 명작을 앞으로 계속 볼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어졌다. 그러니까, 오는 9월 1일자로 씨네큐브의 운영주체가 영화사 백두대간에서 태광그룹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언론매체들은 ‘백두대간이 씨네큐브에서 손 뗀다’는 내용의 기사를 타전했는데, 문제는 마치 백두대간이 적자누적에 못 이겨 씨네큐브 운영을 포기한다는 식으로 제호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해도 이렇듯 오해소지가 농후한 기사를 버젓이 써대는 꼴이라니 (정정한다. 너무 점잖은 표현을 썼다. 꼬락서니로 바꾸겠다).


그동안 씨네큐브는 건물 임대료를 내지 않는 대신, 상영수익을 태광그룹과 절반씩 나눠 갖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물론 개관 초기에는 흥국생명 측의 지원금이 있었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수입 상영으로 발생되는 적자는 모두 백두대간이 감당했으며, 이에 따른 누적적자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쉽게 말하자면 태광그룹은 흥국생명빌딩 내 상영관 운영권을 백두대관에게 위탁했을 뿐이며, 이를 유지 진행하기 위한 모든 비용은 백두대간이 부담하였고, 수익은 절반씩 나눴다는 것이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적자에 따른 자구책으로 이미 작년부터 인원 감축 등의 구조조정이 실시되었는데, 이는 태광그룹의 직영체제발표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주지할 것은 태광그룹과 백두대간 사이에 체결된 씨네큐브 운영계약의 만료가 오는 2015년 까지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기간만료 이전에 태광그룹에서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는 얘기고, 백두대간 측도 불가피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급작스런 운영주체 이양 소식은 그동안 씨네큐브를 아껴온 많은 영화애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특히 예술영화전용관 관련 업계종사들에게는 더 없이 큰 근심거리를 안겨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을 받았다는 점에서 최소한 내년 3월까지 라인업의 큰 변화는 없을 걸로 예상되지만, 극장 운영주체가 바뀜에 따라 일련의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는 건 자명한 일일 터이다. 혹자는 그저 좋은 영화를 계속 볼 수만 있다면 누가 운영한들 뭐가 문제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이 모든 것이 여유롭고 안락한 공간적 환경을 유지하는 가운데 지속되리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나. 모름지기 주방장이 바뀌면 음식 맛이 변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업주가 ‘진짜 맛’보다 오로지 매출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그 아래 있는 종업원들에게서 고품격 서비스와 고객감동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새로운 운영주체는, 씨네큐브를 선호하고 아꼈던 관객의 기대와 바람을 깊이 인식함으로써 힘겹게 쌓아올린 이 공간을 유지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영화란 그것을 보는 장소 또한 매우 중요한 매체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특정영화를 추억할 때 관람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함께 보았던 사람과 공간과 사건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기 마련이다. 내 경우 월드컵이 열렸던 그해 여름, 심장이 터질세라 뜀박질로 계단을 내려가 <아귀레, 신의 분노>를 보았고 몇 년 전 여름의 끝자락에는 <세상의 모든 아침>을 본 후 어두워진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던 기억도 있다. 총성을 뒤로 하고 국경을 넘던 소년 아윱의 슬픔이 밴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만난 곳도, 우아한 유럽풍 불량배 장 폴 벨몽도의 찌푸린 얼굴이 아로새겨진 장소도 씨네큐브였다. 이러한 사적 이유 때문이라도 멋진 영화공간을 만들어주고 흔들림 없이 유지하면서 힘든 시간을 잘 버텨준 백두대간이 고맙다.

9월부터 영화사 백두대간은 이화여대 ECC내 ‘아트하우스모모’ 운영에만 집중하면서 이전과 다름없이 예술영화전용관 사업과 수입 배급을 진행하게 된다. ‘아트하우스모모’에서도 변함없이 좋은 영화의 향연을 펼침으로써 그곳을 예술영화의 새로운 메카로 일궈낼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절대로 여기서 주저앉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씨네큐브를 사랑해준 관객을 위한 유일한 보답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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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yeonmicho BlogIcon 연미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스크랩 할께요...마음이 아프네요...

    2009.08.07 12:14
  2. 광화문사랑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술영화전용관 '씨네큐브 광화문'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 운영됩니다. 이번 일은 백두대간과 흥국금융가족이 맺었던 운영에 관한 파트너쉽이 종료된 데에 따른 것으로, 폐관으로 오해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씨네큐브 광화문'을 향한 영화팬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 부탁 드립니다.

    2009.08.07 16:17
  3. 하나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화문사랑님, 오해는요...씨네큐브 폐관이라는 말은 글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없고만요. 뭘 그리 걱정하시는지. ㅎㅎ 흥국생명 관계자분이신가?

    2009.08.07 17:07
  4. aaaaa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화문 사랑..추악하다.

    2009.08.07 18:51
  5. moonworx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깝습니다. 광화문 씨네큐브가 부디 앞으로도 지금의 모습을 잃지 않길 바라봅니다.
    아울러, 백두대간이 아트하우스 모모를 더 좋은 모습으로 계속해서 발전시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즐겁게 해주길 역시 바라봅니다.

    2009.08.0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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