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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음악 다큐멘터리는 마틴 스콜세지의 <샤인 어 라이트>같이 간명하게 음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있는 반면에, 김태용 감독의 <온 더 로드 투>와 같이 음악인의 행보에 그 초점을 맞춘 영화도 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의 경우, 어느 한 쪽에 치우치기 보다는 양쪽에 모두에 각기 한발씩을 걸쳐 놓은 그런 음악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다. 홍대를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민홍’과 ‘은지’로 구성된 혼성 2인조 밴드이다. 다양한 음악 활동을 위하여 객원 멤버들을 충원하고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기에 이르며, 객원 멤버 중에서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통해 데뷔해 큰 인기를 얻은 여성 보컬 ‘요조’도 포함되어 있다. 장장 1년 6개월이란 시간동안 동거 동락하면서 정성스럽게 기록된 이 영상은 다큐멘터리의 기록성이란 측면에 일단 충실하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 좀 이상하다. 다큐멘터리치고는 드라마가 굉장히 세다. 물론 이를 통하여 극적인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지만, 이것이 원래의 자연스러운 진행인지, 아니면 연출에 의한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워낙에 구구절절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없는 진한 드라마가 풍겨 나온다는 것이 무언가 미심쩍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인간극장 유의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경우 내레이션이 첨가되면서 극에 깊숙이 개입하고 이를 통해 드라마를 파생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조차도 불가능하다.)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해보자면, 일전에 <워낭소리>가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에 대하여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온 적이 있었다. 물론 <워낭소리>가 290만 대단위 관중 동원의 대박을 터트리지 않았다면, 이런 논란도 크게 부각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이 단순한 일회적 이슈거리 차원에서 제기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것은 관객과 영화 매체간의 일종의 장르적인 약속을 주지시키기 위한 경고인 셈이었다. 그러니까, 다큐멘터리라 명명해 놓고, 극영화를 보여주면서 이를 다큐멘터리로 인지하라고 강요한 연출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구두 경고인 셈이다. (김충렬 감독은 따라서 정한석 기자가 지적했다시피 <워낭소리>를 차라리 다큐드라마로 표방하던지, 그렇지 않다면 다큐멘터리에 맞게끔 편집해야 했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에서 극적인 전개를 이끌어 내기 위해 사용된 장치를 살펴보는 일 또한, 이를 통하여 볼 때 한 번쯤은 고려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이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를 이에 이입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보도록 하겠다. 그러니까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가 과연 극적인 효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조작 -그것이 카메라에 의한 조작이든, 편집에 의한 조작이든, 어떤 식의 이야기 조작이던 간에- 이 있는가를 따지는 것은 지금 우리가 다큐멘터리의 장르성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영화는 앞서 얘기했다시피 드라마가 강하다.

 


이야기는 이렇다. 소규모아카시아 밴드가 음악적인 다양한 시도를 하기위하여 객원 멤버를 모집하고, 객원 보컬인 ‘요조’도 영입되면서 원래 팀 보컬이었던 ‘은지’의 입지는 계속 축소되어 간다. 결국 공연에서 객원보컬인 ‘요조’의 백킹(일종의 메인 보컬 보조)만 맡은 ‘은지’는 이를 참지 못하고, 팀의 리더인 ‘민홍’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민홍’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때마침 팀 내 파트별 음악적 방향에도 트러블이 생기며, 상황은 악화 일로로 치닫게 된다. ‘민홍’은 팀의 객원 드러머와 베이시스트에게 잠시 휴식기를 권유하고, 팀의 보컬인 ‘은지’와 진솔한 이야기를 통하여 이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결국 ‘은지’와 솔로로 데뷔한 ‘요조’는 한 번의 파열음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록 공연장이라고 불리는 펜타포트의 무대 위에서 같이 노래를 부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스토리 자체는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문제는 이 방식이 너무 드라마 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드라마적인 구성이 다큐에 차용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한 번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워낭소리>의 편집 조작이 다큐멘터리가 가지지 못하는 극적인 효과 욕심 때문에 파생되었던 것처럼,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 또한 이런 인물간의 대립을 드라마적인 장치로 치환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노리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확인 점검을 하는 일은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이 영화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하는 첫 번째 부분은 영화의 초반부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중심을 이끌어나가는 플롯은 뭐니 뭐니 해도 ‘은지’와 ‘요조’ 두 보컬간의 미묘한 대립과 갈등이며, 그것을 팀의 리더인 ‘민홍’이 조절해 나가는 것인데, 영화의 초반부에서 벌써부터 카메라는 ‘은지’와 ‘요조’사이의 불안한 공기를 포착한다. ‘은지’의 불만이 담긴 시선과 ‘요조’의 불안한 시선이 이어 붙는데, 여기서는 편집 조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선의 일치를 살펴볼 필요 없이 한 테이크로 간 화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은지의 시선이 요조 때문에 불만인 것인지. 요조의 시선이 은지 때문에 불안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드라마적인 작법에 해당하는 암시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차적인 의문점이 발생한다. 이 질문에 대한 자문자답을 해보자면, 이 다큐의 충실한 기록성이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 많은 기록들 가운데, ‘은지’와 ‘요조’ 사이가 나빠 보이는 장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물론 두 멤버간의 와해를 부추기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될 순 없지만, 일단 어떤 전조를 읽히도록 배치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편집에 의한 조작이 아니라 관객의 선택권의 문제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배치한 것에 분명 감독의 의도가 명확하지만, 그 의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다. 여기는 그래서 연출자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고 관객의 선택적인 문제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의문은 조금 다르다.


영화는 초반부의 이런 암시효과 이후에 ‘은지’와 ‘요조’ 사이의 불안한 관계를 점진적으로 밝히며, 종국에 가서는 둘 사이의 강렬한 파열음을 일으키며 발생하는 와해를 그대로 담는다. -‘요조’에 대하여 조금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알겠지만 이 장면이 바로 ‘요조’가 대중들에게 성공적으로 어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EBS SPACE 공감’ 단독 무대였다. 여기서 논외적인 부분이지만, 이 장면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특성인 숨겨진 뒷이야기에 대한 흥미로운 지점을 제공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두 번째 의문은 영화가 이런 작법을 시도하면서 ‘요조’라는 실제 인물에게 주인공과 대립되는 드라마적인 캐릭터를 입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는 시네마베리테의 형식에 가깝다. 간간히 화면 속으로 연출자가 개입을 시도한다. 직접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인터뷰를 다큐멘터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편집을 통하여 연출자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연출자의 의지란 무엇인가? 음악에 대한 열정이란 콘텍스트 적인 면모도 있지만, 방식 적으로 봤을 때, 이 다큐멘터리에서 연출자가 추구한 것은 드라마적인 구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아까 말 한 멤버들 간 의 불화가 최고조로 치달았을 때, 바로 인터뷰가 치고 들어오는데 이 인터뷰의 의도가 사뭇 의미심장하다. 팀 보컬인 ‘은지’의 인터뷰에 비중을 두고 기술하면서, 그 중간에 ‘요조’의 인터뷰가 인서트 된다. 이 인터뷰의 내용을 들어보면 불필요하게 ‘은지’의 편에 서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니까 ‘요조’가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배반하고 자신은 성공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만을 인서트 시킴으로서 완벽하게 ‘은지’라는 인물에 영화가 기운다. 그럼으로써 이 영상의 조합이 ‘은지’라는 인물에게 ‘요조’가 상당히 부당한 일을 저질렀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 부당함을 해소시키는 일은 ‘은지’와 ‘요조’ 간 의 직접적인 대화가 생략된 채 팀 리더 ‘민홍’에 의해서 ‘은지’가 위로를 얻어냄으로서 해소된다. 그러니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연출자가 장면을 선택적으로 취하여 인물간의 대립 구도를 구체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도 사실 이와 마찬가지 방식이 쓰인다. 그 역시 선택적인 장면을 취하여 프로파간다에 비견되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 직접적으로 대립 아니 그 이상의 대항적 대상을 직접 명시함으로서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는 마이클 무어의 지목한 대상이 명시적인 캐릭터가 아닌 주체가 불분명한 거대한 집단 혹은 현상이란 점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현실과 연결 고리를 갖는 것은 어떤 대상의 피상적인 비난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의지 발아(대표적인 것으로 투표)였던 것에 비해, <소규모아카시아 밴드>에서는 대립적 캐릭터로 다루어야 했던 대상이 실제 단일 인물로서 다루어진다는 것은 아예 얘기 자체가 틀려진다. 그것은 명백히 관객이 이 드라마를 즐기기 위해서 그 인물에 관해여 공격적인 행세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어쨌거나 현실과의 접점을 가지는 장르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자신이 다루는 인물에 대한 책임 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극영화는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인물에 책임을 지 닐 필요는 없다. 영화에 아무리 흉악범이 나온 들 그것을 사회 문제로 치환하지 않듯이, 극영화 즉 만들어진 이야기 구조 안에서는 캐릭터의 성질에 대한 책임 의식 부재를 탓 할 필요는 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같은 영화의 악인 캐릭터에서 풍겨져 나오는 이런 비인륜적 태도는 영화적 매력으로까지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다뤄야 할 인물은 다르다. 특히 그것이 생존 인물일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다. 다큐멘터리가 가진 일종의 약속. 그러니까 진실성에 기인하다 보면, 결국 다큐멘터리의 인물은 다큐멘터리 안의 인물의 표상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드라마를 위한 극적인 장치로 대립적인 캐릭터를 설정한다.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 멤버들 간의 이해관계가 형성된 것과는 별개로 적대적인 캐릭터로 묘사된 이미지를 요조라는 실제 인물이 그대로 현실에서도 떠 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지는 진정한 문제는 이것이 실질적인 내용상의 문제 말고도 드라마적인 구성에서 파생되는 형식상의 조작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멤버들 간의 요조가 이해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 다큐멘터리의 극적인 장치를 통해 관객에게 호소하는 요조라는 인물을 이해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 문제. 즉 드라마를 구현하기 위해 극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채택한 것은 이 다큐의 충실한 기록성을 통해 편집이란 작업으로 시도된 일종의 다큐멘터리 연출로 이해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인 극적 구성을 위해 실제 인물에 캐릭터 설정을 덧씌워 파생하는 이미지의 불결함에 대해서는 결코 쉽게 용서될 문제가 아니다. 물론 나 역시도 성공을 위해 감사의 말도 없이 밴드를 박차고 나가 버린 요조라는 인물에 전적으로 동의 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극적 구성이 부여하는 캐릭터로 사용되어진 그녀의 이미지가 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 인하여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영화적인 힘을 무시하지 말라. 영화도 일종의 미디어이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경우 그것은 명명백백하다. 맨 끝에 이를 어설프게 미봉하면서 은지와 요조를 같은 무대에 세워 그 이미지는 지워졌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인상은 남고 관객은 그 인상을 토대로 사유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실제를 전복 시킨 가짜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일종의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사실 다큐멘터리치고 매우 재밌다. 나 역시도 이 영화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다큐멘터리란 장르가 가지는 관객과의 약속 즉, 진실성이란 측면에 의해 사료해 본다면, 여기서 나온 ‘요조’라는 인물에 대한 배려가 약간 아쉽다는 것이다. 요조라는 실제 인물은 드라마적인 구조를 위해 너무 쉽게 사용되어지고 버려진 느낌이 있다. 이것이 극영화가 아닌 이상 인물에 대한 배려를 해주었던 것이 필요했다. 아무리 사전에 조율되고 합의가 된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런 제작 배려가 다큐멘터리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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