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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의 초심 혹은 진심

필진 리뷰 2008.01.28 15:27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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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김소영 교수는 어느 페미니즘 좌담에서 임순례 감독은 자신의 미스터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짐작컨대 그 말은 페미니즘 영화와 여성감독을 이야기할 때 임순례 감독을 언급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임순례 감독이 여성감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여성’을 소재로 영화를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가 여자핸드볼을 소재로 아줌마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그래서 기대했었다. 결과는? 좋았고 좋지 않았다. 아줌마는 있는데 핸드볼은 보이지 않았다.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했을 때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영화의 인천의 공기는 낯익고 익숙했지만(임순례 감독은 인천출신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낯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 영화가 [세친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그 영화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세친구]는 성장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성(性)을 넘어 인간에 관해

여자들은 절대 모르는(모른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여자들은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군대’이다. 군대에 관한 그 많은 이야기들, 술자리가 깊어지고 남자가 둘만 있어도 절대 빠지지 않는 소재가 ‘군대’이다.(남자가 한명이어도 군대얘기는 가능하다. 사용 가능한 최상급 표현들이 모두 들어간 모험담도 들을 수 있다.) [세친구]가 나왔을 때, 그 리얼함에 많은 남성들이 탄성을 토해냈고,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계보에 임순례 감독은 인장을 찍었다. 그 작품을 여자가 찍었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미스터리였다.

10년이 지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을 본 후 다시 본 [세친구]는 생경했다. [세친구]가 성장영화가 아니라는 감독의 말에 동감했고 그녀가 영화로 전달하고자 하는 초심이 최근작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줌마를 소재로 한 [우생순] 이후에도 임순례 감독은 페미니즘 영화감독의 카테고리 안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성(性) 넘어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냉정한 것이 아니라 ‘삶’이 그렇다

“어떤 성이건 연령이건 내가 스크린에 올리고 싶은 인물은 외형적으로 그다지 매력도 없고, 행복해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은 초라해 보이지만 세속적 기준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보다 구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세편의 장편 중 직접 각본을 쓰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자, 유일하게 여자들이 주인공인 영화 [우생순]은 그렇게 [세친구]와 닿아있다. [세친구]에서 전혀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우울함에 젖어든 많은 관객들(누군가 올려놓은 네이버 지식 중 우울한 영화의 목록에 [세친구]가 포함되어 있다.) 혹은 평자들이 흔히 하는 잘못된 생각은 감독의 시선이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우생순]을 보고 임순례 감독의 영화가 밝아졌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잘못이다.


임순례 감독은 “영화는 대리만족이라는 판타지 기능과 함께 현실을 일깨워주는 기능도 갖고 있다. 나는 판타지보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해보자는 것뿐이다. 그건 내 취향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세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임순례 감독이 인식한 현실에 다름아니고, 많은이들은 그녀의 시선에 공감을 표했다.


영화는 세상을 보는 창

임순례 감독에게 영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과 같다. 단편 [우중산책]의 배경인 낡고 허름한 극장과 [세친구]에서 비디오 앞에 나란히 앉은 세 친구는 임순례 감독의 초심을 보여준다. 여고생 때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 떠는 것 말고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다는 임순례 감독에게 영화는 세상을 보는 창이지 않았을까.


[우중산책]에서 다룬 온갖 자잘한 일들이 일어나는 무료한 일상과 한낮의 소나기는 [세친구]에서의 주변에 위치하고 있지만 겪을 수 있는 풍파는 하나도 거르지 않는 듯한 주인공들과도 닮아있다. 한국사회의 폭력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감독은 부득이하게 학교와 군대와 상관관계에 있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택해 [세친구]를 만들었다. 그 후 좌절된 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감독은 나이트클럽의 밴드와 꿈을 잃어버리고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된 중년 남성들을 주인공 삼아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든다. 두 편의 장편이 나오는 동안, 감독은 예상한 만큼의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보았다고 말했다.

개봉 10여일 만에 100만을 돌파했다고 떠들썩한 [우생순]이 아쉬운 이유는 아줌마를 통한 세상은 보이는데 우리가 모르는 핸드볼의 세계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쪽은 임순례 감독이 관심이 없었거나 모르는 세계인 것 같다.(“너는 세계 최고의 선수”라던가 “너는 핸드볼을 위해 태어났다”라는 대사가 나올 때는 어찌나 간지럽던지.) 그렇다해도 앞선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세상을 맛본 관객들에게도 [우생순]은 실망스럽지 않다. 그녀의 초심이 여전히 보이기 때문이고 무난하게 많은 관객들의 취향에 맞추면서도 진심을 잃지 않는 균형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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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daumlove BlogIcon Neofox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세친구를 참 인상깊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우생순을 못 봤지만, 뭐, 사람의 본질이 변하겠어요? 꼭 챙겨보려구요. 나름 대중적으로도 성공하는 것을 보면, 제 일이 아님에도 훈훈해지는것 같습니다.
    좋은 평 잘 읽고 갑니다.

    2008.01.28 17:13
  2. ...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매한의견과 에매한글 에매한결론 .....

    2008.01.28 17:33
  3. 멋진당신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 핸드볼과 운동선수들의 일상적 고민이 잘 보이던데... 님은 핸드볼을 너무 잘 아시거나, 아주 모르시거나 둘 중의 하나인 듯합니다. 적어도 이 영화는 1992~2004년 핸드볼이라는 우리에겐 인기없는 스포츠가 이룬 세계적인 성과를 안쓰럽고 고맙게 기억하는 다수의 일반관객들에게 코드가 맞춰졌기 때문에, 아줌마도 보이고 핸드볼도 보이고 운동선수들의 지리멸렬한 삶도 보이는 중층적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웬지 님께만 안보이는 핸드볼도 우리들의 기억을 자극하면 아주 잘 보이고 있습니다.

    2008.01.29 08:18
  4. Favicon of http://click.interich.com/?pf_code=100116108701103441 BlogIcon 인터리치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생순글 공감갑니다.
    글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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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9 12:20



실어증의 극복, 대중성의 획득


그동안 임순례 감독의 두 편의 장편 영화의 주인공들은 '실어증'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말 수가 적은 인물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두 편의 영화의 주인공들 즉 <세친구, 1996>의 무소속(김현성)이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의 성우(이얼)는 분명히 서사의 중심에 서 있기는 했지만 동시에 일종의 관찰자이기도 했다. 무소속과 성우는 자신의 친구들의 몰락 과정을 지켜 보면서 동시에 자신의 몰락을 접하게 된다. 일단은 서사적 관점에서 이 점이 임순례의 최신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미숙(문소리)과는 확연히 다르다.

따지고 보면 임순례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친구 집단들은 일종의 도플갱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중심 인물들은 '아줌마'라는 사회적 정의의 범주에 들어가거나 그 주변부의 인물들이다. 그건 변두리 동네에서 별볼일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하류층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았던 <세친구>나 쇠락해가는 온천 지역을 전전하는 뜨내기 밴드의 모습을 담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결코 '주류'가 아니며 늘 떠밀려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미 우리는 임순례의 두번째 장편 영화에서 그의 영화적 주제를 경험한 바 있다.



'꿈을 이룬다면 행복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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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친구>는 도무지 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였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어린 시절 꿈을 이루었지만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 꿈을 조금은 이루고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임순례는 쉽사리 '우리가 행복해진다'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모 평론가가 이야기했듯 임순례의 영화들 속에서 점점 '희망'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세친구>는 암울한 영화였다. 인생에서 가장 재기발랄한 시기를 보내야 할 세 아이들은 막 들어선 사회에 이리저리 떠밀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보낸다. 아이들의 삶을 결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이기는 하지만, 영화내내 주인공이 경험하는 C급 뮤지션의 세계는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은 언뜻 희망을 보여준다. 이 두 편의 영화들에 비하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주인공들은 적어도 혼자가 아니며 어떤 거대한 감동을 맞이한다. 이 세 편의 영화들을 통해 임순례는 여전히 희망 따위는 오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스포츠 영화의 규칙과 리얼리즘 영화의 감성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잘 알려진 것처럼 세계 최초의 핸드볼 영화이며 한국 영화에서는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영화다. 하지만 <우생순>은 전통적인 의미의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대개의 스포츠 영화는 궁극적으로 승리의 게임(경기의 결과와는 상관 없이 주인공의 성장이라는..)을 다룬다. 주인공들은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고 마침내 어떤 승리의 순간을 맞이하고 그것이 성장을 낳는다. 그래서 대개의 스포츠 영화는 암담한 첫 경기와 마침내 승리하는 마지막 경기의 모습이 늘 잡혀 있게 된다. <우생순> 역시 외형적으로 그런 형태로 시작되고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첫 시작은 미순의 소속팀인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해체된) 효명건설의 핸드볼 대잔치에서의 승리에서 시작되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런 영화적 설정과는 달리 이런 구성이 앞서 말한 데로 경기력 향상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스포츠 영화인 <록키>는 3류 지하 경기나 하던 필라델피아의 퇴물 복서 록키 발보아(실베스타 스탤론)가 인내와 원시적인 훈련 방법으로 (무하무드 알리 급의) 헤비급 세계 챔피언 아폴로(칼 위더스)와 명승부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록키는 놀라운 경기력 향상을 하게 된다. 팀 스포츠를 다룬 올리버 스톤의 <애니 기븐 선데이> 역시 그러하다. 이 영화의 첫 부분에서 샤크스는 허술한 팀이다. 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감독 토니(알 파치노)의 부임과 더불어 팀은 변화하고 마침내 승리한다. 하지만 <우생순>이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다른 의미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썰렁한 관중석의 핸드볼 경기장은 철저히 마이너리티에 속해 있는 핸드볼의 현실을 반영한다. <우생순> 역시 핸드볼 팀의 성장을 다루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부분이다. 더구나 <우생순>의 마지막 경기 장면의 박진감은 할리우드산 스포츠 영화들 또는 <슈퍼스타 감사용>같은 영화와 비교해 보아도 2% 정도는 부족해 보인다. 그런 차이는 감독이 말했듯 '기초 자료'의 부재에서도 발견될 수 있을 것이기는 하다. 즉 무수히 많은 야구 영화 위에 세워진 <슈퍼스타 감사용>과 달리 최초로 만들어진 핸드볼 영화인 <우생순>은 경기 장면을 영화적으로 구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우생순>의 본편이 끝난 후 보여지는 실제 핸드볼 경기 장면 속의 선수들의 리얼한 표정의 스틸 사진들이 영화 속 경기 장면보다는 더 감동적이며 박진감 있게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생순>의 결말이 감동적인 것은 이 영화가 임순례 감독의 장점이라고 할 '리얼리즘' 또는 '시대 정서'에 철저히 기반한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 속에서 선수들은 '여성'이라는 이유 더 나아가서는 '나이 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한국 사회가 맞이한 '경쟁 논리'라는 체계 속에서 처절히 깨어져 나가는 개인들의 모습을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지금의 20대는 이미 현실적인 배틀 로열(Battle Royale) 게임에 들어서 있고, 10대는 대학교 입시를 둘러싼 배틀 로열 게임에 들어서 있다. 문제는 이 무자비한 게임이 국민경제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데 에 있다. 이미 한국 경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포디즘(Fordism) 시대를 훌쩍 넘어서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모적인 게임, 그저 살아남기 위한 '획일성'의 경쟁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이 야릇한 사디즘적인 게임은 즉각 중지되거나 최소한 완화되어야 할 것이다. 」

- 우석훈, 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p.18.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급속히 경쟁 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과정 속에서 이른바 '승자독식게임'이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당연히 그 속에서 주류와 비주류, 메이저와 마이너의 구분은 좀 더 뚜렷해진다. 임순례의 <우생순>은 날카롭게 포스트 외환위기의 한국 사회의 고통을 담아내고 있는 영화다. '아줌마'는 생활 경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이며 <우생순>의 주인공 미숙(문소리)이 처한 현실 역시 평범한 아줌마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은근히 철저히 엘리트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스포츠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는데(운동 밖에 모르다가 사업해 패가망신한 미숙의 남편 규철의 에피소드) 빚더미를 떠 안은 미숙의 경제적 고통은 우리 기억에서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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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여성 묘사


이 영화 속의 중심 인물 여성 네 명은 모두 차별을 받고 있는데 현실적인 삶의 영역에서 고통 받는 미숙, 커리어우먼의 면모 속에서도 이혼녀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혜경(김정은), 운동을 위해 복용한 약 때문에 불임 판정을 받은 정란(김지영), 외모적인 차별을 받는 수희(조은지)가 모두 그러하며 또한 이들은 나이 많은 여성 즉 '아줌마'라는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 나아가 남성 코칭 스태프들에게 여성성을 인정 받지 못하는 핸드볼 팀 전체가 차별을 받는 장면도 등장한다. <우생순>이 자아내는 강력한 여성 연대는 이런 현실적 고난 속에서 비롯되며 바로 이것이 <우생순>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타자화되지 않으며 타자화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맞서는 인물들로 묘사된다.

필자는 <우생순>이 진보하는 한국 상업 영화의 긍정적인 모습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 영화의 균형 감각은 탁월하다. 스포츠 영화의 장르적 구성틀에다가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정서가 잘 결합되어 있으며 이 것이 이 영화를 감동적으로 만들어나가는 탁월한 힘이다. 또한 임순례라는 감독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깊은 애정은 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관객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세친구> 정도를 제외하면 임순례의 두 편의 영화는 모두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귀엽기까지 하다. 그것은 임순례라는 감독이 캐릭터를 연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우생순>은 오래간만에 심금을 울린 영화였다. <우생순> 속의 핸드볼 선수들은 저 멀리 신전에 위치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인물들처럼 느껴진다. <우생순>은 또한 IMF 이후의 '배틀 로얄'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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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과 에필로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 은 (영화 속) 핸드볼 큰잔치로 시작해서 (실제의) 아테네 올림픽으로 끝맺는다. 이 두 공간에는 세 명의 감독이 있다. 실업팀 송감독, 당시 대표팀 임영철 감독, 그리고 이 영화의 연출자 임순례 감독. 나는 이 영화에서 영화의 시작과 끝을 보는 것이, 그리고 거기에 있는 세 명의 감독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생순]은 임순례 감독의 전작과는 판이하게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아니 이 영화에서 임 감독의 스타일은 많은 부분 휘발되었다. 그래서 위의 두 장면은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 두 감독의 표정과 이 두 감독을 바라보는 한 감독의 시선.

핸드볼 큰잔치가 벌어지는 국내 어느 체육관. 듬성듬성 관중을 비춰주던 카메라는 벤치로 시선을 향한다. 후보선수들은 달아오른 표정과 목소리로 코트 위 선수들을 향해 기운을 내뿜는다. 그 사이에서 무표정한, 얼핏 보기에 어떤 상념에 잠긴 듯한 송 감독의 모습이 눈에 띤다. 송감독은 우승이라는 짜릿한 ‘순간’ 만큼은 선수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지만, 그 순간 너머 찾아오는 해체라는 명약관화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에필로그. 결승전이 끝난 후 당시 대표팀 임영철 감독의 인터뷰. 선수들과 국민들께 감사하고, 하지만 임 감독은 준우승의 짜릿한 순간 너머, 저 멀리 한국땅에서 이미 벌어졌고, 앞으로도 벌어질 명명백백한 현실에 말을 잇지 못한다. 그리고 크래딧이 올라간다.

이 두 감독의 '체념' 혹은 '말 줄임표'가 그 동안의 임순례 영화였다. [세친구] 는 세 청춘의 암흑같은 미래에 대해 체념에 가까운 목소리를 전달한다. 과연 그들이 앞으로 나갈 수 있기나 한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폭행으로 의가사 제대를 한 후 쓸쓸히 거리를 걷는 무소속을 비추는 부감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 지난 해 보았던 [행복]의 영수와 [세친구]의 무소속. 이 두 영화의 마지막은 비슷한 장면으로 끝맺는데, 과연 누가 더 절망적일까. 그러니까 영화가 끝나고 앤딩 크래딧이 오를 때 새로 만드는 이야기, 혹은 시나리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반복이다. 그들은 밤무대에서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한다. 다른 대안이 어디 있겠느냐... 라며 와이키키밴드의 무대를 역시 부감으로 잡으며 영화는 끝맺는다. 그렇게 그동안의 임순례 영화는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생애 최악의 순간이라 할만한 장면을 처절하게 보여주는데 공을 들였다.




순간 혹은 순간 너머

그랬기에, 7년만에 돌아온 임순례 영화의 제목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처음 접했을 때 이질적인 느낌을 받은 건 당연했다. 흔히들 쓰는 반어의 수사인가. 임순례가 어떤 방식으로 최고의 순간을 그렸을지 궁금했다. 다소 위험한 대중관객 반응에 대한 가정. 관객들은 가공된 판타지로써의 상황. 장르적으로 말하자면 공포나 스릴러의 최악의 상황은 맘을 열어 즐기는 것 같다. 왜냐하면 2시간동안 그러한 최악의 대리경험으로 쾌락을 누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관 바깥에서 늘 존재하는 어떤 불편한 순간을 영화관에서조차 보려하는 관객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임순례 감독은 [우생순]의 전략으로 이전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최악의 순간들을- 이 영화에서 말하자면, 이혼, 불임, 소녀가장, 자살기도 등 - 단지 말로만 전달하거나 간단한 설명 혹은 장면으로 대체한다. 이전 영화들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야하지 않겠느냐. 의 과정은 대폭 간소화하고, 그 결과도 영화 바깥으로 지연시킨다.

우리가 정란과 수희 때문에 웃고, 올림픽 은메달의 환희와 안타까움을 함께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온전히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아테네를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를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그런 상상을 떠올리는 건 관객의 자유다. 선택이란 말이다. 이전의 임순례 영화에서는 이건 선택이 아니었다. 어떤 불가피함이 있었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며 그들이 직면해야 할 현실을 상상해야만 했다.

하지만 [우생순]의 무게는 태릉과 아테네 라는 두 공간 속 ‘순간’ 을 생애 최고로 만들기 위한 여정에 실렸다. [세친구] 는 지독한 영화였다. 이 영화에는 이런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쩌면 그들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는 학창시절을 졸업하고 스무살 성인이 된다. (영화는 졸업 이후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들 셋은 끝도 없이 방황하고, 상처받고, 하여튼 그렇게 남겨진다. 관객은 이 처절한 경험을 함께해야만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에는 그래도 그런 '순간'이 회상 혹은 환타지로 보여진다. 하지만 그건 희망이 아니라 현실의 남루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쓰인다. 이미 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낭만주의자의 꿈) 에 관한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 부분을 옮겨보자.

장면 하나. 충고보이스 시절, 그들은 동해바다를 저 멀리 와이키키 해변으로 대신 바라볼 거침없는 권리를 갖고 있다. 드넓은 와이키키 해변에, 하얀색 보트가 지나가고, 야자수 나무 아래로 금발의 비키니 미녀들이 보이고... 그렇게 ‘충고 보이스’ 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개명한다. 대여섯 위의 대학생들과 맞장 뜰 정도로 함께 있으면 두려울 것 없었던 그들은 거리낌 없이 벌거벗고 바다로 뛰어간다. 다시 카메라는 시선을 돌려 노래방 기기 화면에는 비키니를 입은 금발의 여인을 비춰준다. 10년도 한참 지나 해후상봉한 친구들, 금발의 여인 위로 지나는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른다. 장면 둘. 밴드 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의 죽음으로 심각한 쇼크를 받은 성우, 그는 노래주점에서 성고문에 가까운 일을 겪는다. 나체쇼를 즐기던 사장님들은 성우에게도 옷을 벗을 것을 요구하고 성우는 결국 나체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방 기기 속의 비키니 차림의 금발의 미녀는 해변에서 달리고 있다. 이때, 바로 위에서 언급한 충고보이스 시절, 그 때 그 장면이 디졸브된다. 플레시백 효과를 쓴 이 대비되는 두 장면은 단연 이 영화의 백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플레시백’ 을 단순한 과거 사실의 나열, 혹은 그들의 회상이 아니라 그들의 ‘환상’이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산이 한번 바뀐 후에 겨우 만나게 된 옛 친구들은 , 으레 학창시절 모임이 그렇듯이 옛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현실에서 일탈하여 과거로의 행복했다고 믿는 그 순간들을 지속하려 한다. 자, 여기서 다시 두 번째 장면으로 넘어갈 때, 우리는 환상을 바라보는 주체가 어떻게 변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환상의 공간에 쉽게 동화되어 주체적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던 성우는 영화 종반부의 대비되는 장면 속에서 환상 속 그들과 동화될 수 없는 타자로 거리를 유지한 채 그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장면에서 ‘비키니 아가씨’와 ‘청년 브라더스들’ 과 그것을 바라보는 ‘장년 브라더스들’ 은 추억을 매개삼아 삼중 인화로 ‘심리적 디졸브’로 엮어질 수 있다. 하지만 두번째 장면에서 ‘비키니 아가씨’ 와 ‘청년 브라더스들’ 과 그것을 바라보는 성우는 ‘심리적 디졸브’ 로 엮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브라더스 중 한명이 죽었기 때문이다. 성우는 지금 이곳, 발개벗은 사장님 옆에 있다. 그가 서있는 곳은 여기지(수안보) 거기가(환상 속 학창시절) 아니다.

이처럼 [세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아예 ‘거기’ 라는 공간을 없애버리거나, '거기'보다 '여기'에 주목한다. 하지만 [우생순]의 전략은 여기보다 ‘거기’에 방점을 찍는데 있다. 이런 식으로 어떤 영화의 상업적 전략에 대해 논하는 건 매우 재미없는 일이다. 다만 혹자가 말하는 임순례의 영화가 점점 희망적으로 변한다. 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세친구]에서 [우생순]까지 영화는 점점 희망 혹은 꿈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의 영화에는 일관되게 어찌할 수 없는 체념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 한 가지 무모한 가정. 당신이 지금의 현실에서 어느 실업팀의 핸드볼 감독, 혹은 대표팀 감독이 된다고 해보자. 희망을 쉽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 영화에서 그들의 연대, 화합, 우애 등을 통해 희망의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그들이 아테네를 떠나, 태릉을 떠나 이미 영화관 밖으로 나와 버린 우리를 뒤로 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임순례 감독의 최종 질문은 결국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오프닝과 에필로그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다.



승부 던지기, 대면의 순간

우리가 이 영화에서 그녀들의 움직임, 그 역동적인 몸짓에 반했다고 하는 건 어떤 스펙타클 차원의 스포츠로써 느끼는 감상이 아니다. [우생순]보다 더 역동적인고 실제에 가까운 몸짓을 보여준 스포츠 영화는 무수히 많다. 그런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액션의 쾌감이 이 영화에는 부족하다. 다만 우리가 그들의 코트 바깥에서의 모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몸짓이 우리의 가슴에 맺힌 것이다. 그래서 [우생순]의 승부던지기는 - 비록 실제를 바탕으로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찍어야만 했겠지만, 그보다는 - 필연적인 선택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축구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승부차기에서 오는 그 압박감이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고독한 실존. 혹은 실존의 위기. 존재 대 존재의 맞섬. 이것은 어느 낭떠러지에 서 있는 인간 실존의 위태로움과 닮아있다.(실제로 초등학교 축구대회 결승에서는 선수보호 차원에서 승부차기가 아닌 추첨의 방식으로 승부 방식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나는 한미숙의 마지막 승부던지기가 실패로 끝났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릎을 치고 알았다. 승부던지기가 실패로 끝나고, '아, 금메달은 날아갔다.' 이건 당시 티비를 지켜보았던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느낀 공통된 사실,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실패를 전제로 한 영화다. 즉 우리가 이 장면을 통해 느끼는 정서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 중계의 반복이 될 수 없다. 미숙에게 승부던지기의 실패는, (가상의) 승부의 끝. 다시 코트 밖의 진짜 승부와 대면해야 한다는 그런 끔찍한 자각을 가장 먼저 불러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 영화를 아줌마들의 영화라고 많이 얘기한다. 그들의 힘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영화라고 한다. 물론 백프로 동의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이 빌어먹을 대한민국 사회는, 아줌마들의 악착같은 생명력으로만 돌파가능한 것인가. 그렇게 항상 정신 바짝 차리고 기합 들어간 삶을 살아야만 하여튼 버틸 수 있는 것인가. 아, 나같이 비리비리한 남자에겐 그들이 위대해보이고, 한편으론 든든하지만, 그 사실이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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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돌아왔다. 한겨울 혹한속에 눈과 바람을 뚫고 누나가 돌아왔다.


"누나! 역시 누나는 멋있어! 이 겨울을 이겨내다니 말이야."
"넌 틀렸어. 내가 이겨낸 건 이까짓 겨울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이야."
몇 년만에 돌아온 누나는, '지긋지긋한 외로움'을 이기고 돌아온 누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형들은 다 어디간거야? "
누나는 내 말에 잠깐, 하지만 골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형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졌어.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지독히 외로웠어."
"그래도 난 상관없어. 어짜피 보고싶었던 건 누나였으니까..."
그리곤 내게 아줌마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지난 여름동안 난 행복했었고, 지금 여기에 올 수 있었던거야."
"하여튼 누나가 다시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 정말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임순례 감독이 돌아왔다.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그 긴 시간의 기다림만큼의 대가를 충분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으로 보답했다. 데뷔작 <세친구>부터 <와이키키 브라더스>,<여섯개의 시선>과 프로듀서로 활약했던 <미소>까지 한번도 흥행의 맛을 보지 못했던 그녀는 이번에는 대중에게도 반드시 통할만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제 그녀의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못봐서 입소문을 내고 재상영을 요청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씁쓸하다. 나만 좋아해야 하는 사람을 꼭 누군가에게도 허락해야 하는 것처럼.

실업계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취업도 하지 못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세친구>(1996)는 김기덕, 홍상수의 데뷔작만큼 특별하고도 주목해야할 작품이다. 적어도 내게는. 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기껏해야 1년에 한두편의 영화를 보는 아직 영화에 눈을 뜨지 못했던 소년이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이 된 난 우연한 기회가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채 막막한 인생을 살아가는 세명의 소년의 이야기였는데, 난 그들의 연대를 보며 무수히도 많이 울었던것 같다. 특히 선임병의 폭력으로 고질적으로 문제가 있던 귀를 다쳐 의가제대를 하고 다시 돌아온 무소속, 그를 반갑게 마주하고 큰소리치며 달려가는 삼겹과 섬세.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무소속의 표정을 보며 미용사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정체성으로 인한 마음의 병을 앓고 고민하던 섬세의 방에 나타나 '나 머리 자를때 되지 않았냐?"하며 그를 위로하는 무소속. 그 두 장면뿐 아니라 이 영화에는 신파도 아닌데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많다. 아무것도 잘하지 못했던 스무살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볼때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특히나 군 입대를 앞두고 이 영화를 보았는데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

그리고 5년이 지난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를 서울 시내의 한 극장에서 보았다. 역시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였고, 전작처럼 남자들이 주인공이었다. <세친구>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작품또한 굉장히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을것처럼 보였던 임순례의 복귀작인데다, 현실은 너무나도 힘들지만 그 힘든 현실 속에서 가끔은 배신하고 떠나가기도 하지만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다. 노래 또한 울림이 컸다. 엔딩에서 인희가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보면 '마리아'를 부르는 한나보다 더 사랑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단편 <그녀의 무게>(2003)을 거처 <우생순>(2007)으로 자신의 주특기인 소중한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 놓았다. 그녀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이지만 솔직히 전적으로 이번 새작품에 대해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해 영화를 풀어놓기 전에 집고 넘어가고 싶다. <우생순>은 충무로 상업작가인 나현이 시나리오를 썼다. 그 시나리오를 보고 마치 내가 쓴 것과같은 느낌을 감독은 받았다고 했지만 이상하게 영화는 상업적 냄새가 짙게 난다. 전개는 드라마틱하며 중간중간 재치있는 유머와 맛깔스러운 대사가 빛을 발하지만 이 작품이 임순례의 손에서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왠지 어색한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예전 작품보다 임순례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큰 맹점이다.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뿐 아니라 신예 민지까지 모든 연기자들의 캐릭터가 분명하고 황기석의 촬영 또한 좋지만 임순례 특유의 뭔가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아쉬웠던 점. 하지만 그래도 난 이 영화를 옹호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아쉬워하는 점보다 훨씬 많지만 몇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비주류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

우선 그녀가 항시 이야기했던 '비주류'애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다. 이것은 일반 상업영화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소재이고 인물이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궁상떠는 영화를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순례는 데뷔작부터 계속 그들의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실업계를 졸업한 아이들(<세친구>,<그녀의 무게>), 밤무대를 전전하는 무명 밴드<와이키키 브라더스>과 올림픽에서는 환영받지만 평소 실업팀 경기에는 관중조차 구경하기 힘든 여자 핸드볼 선수들<우생순>의 이야기까지 한결같았다. 꾸준히 이야기 면에서 한우물을 팔 수 있다는 것은 감독 자신에게 자신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를 계속해서 신뢰할 수 있는 이유이다. 단편이나 독립영화에서 보았던 인물들이 실제적으로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될 수 있음을 임순례는 알고 있는듯하다.



여성에 의한 여성에 관한 영화

더불어 여성감독이 버티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는 한국영화계에서 임순례는 벌써 세번째 장편을 만들어냈다. 이정향, 정재은, 방은진, 박찬옥 등 인상적인 데뷔작을 만들어낸 감독이 어려명 되지만 세편을 만든 감독은 드물다. 물론 이 문제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임순례는 현재 이 시점에서 여성감독의 대모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무게>에서부터 여주인공을 전적으로 내세워 여성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갑작스럽긴 했지만 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엔딩을 보며 임순례가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햇었다. 인희의 노래하는 모습은 그녀가 주인공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녀를 주인공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우생순>에선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더 진실되고 솔직한 모습들이 영화 곳곳에 나타나 있다. 남자감독이 생각하지 못하는 여선수의 생리부분이라든지, 아이키우기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생생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세 여주인공들의 심리를 잘 표현한 감독의 연출력이 인상적이었고, 그만큼 감독의 기대에 부흥한 말이 필요없는 배우들의 연기도 발군이다. 그래서인지 감독이나 그외 다른 남성연기자들의 캐릭터가 전형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동안 영화속에서 잘 볼수 없었던 여성들의 진솔한 모습, 특히 비주류 핸드볼 선수들, 거기다 아줌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최고의 순간을 담은 카메라


결론적으로 최고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카메라는 그녀들의 생생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담아낸다. 은메달을 따고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면 관심에서 벗어날 그들이지만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흘리는 땀한방울과 외치는 화이팅 소리는 심금을 우리게 한다. 이때 카메라는 다른 스포츠영화처럼 역동적으로 다가서려하지 않는다. 그 점이 영화를 더 돋보이게 하는 부분인데 오히려 카메라는 인물들을 가까이 접근해서 잠깐 멈추어 버린다. 이것은 결과야 어떻게 되었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얼마나 그들에게 있어서나, 보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생순>에서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 촬영부분인지도 모른다.



네가 기다린 사람은 나였잖아

이제 나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내 놓아야 할 임순례에 대한 사랑은 괴롭지만 그래도 슬프지 않다. 대중의 사랑을 안고 얼마뒤면 다시 우리 곁을 떠나겠지만 그를 보내고 난 후의 다시 올때까지의 또다른 긴기다림이 때로는 즐거울 수도 있다느 것을 알게 해줄 것이다. 더불어 이제는 당당히 자신이 왔다고 말하기를 기다릴 것이다.

"네가 기다린 사람은 형들도, 누나들도 아닌 나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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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ㅎㅎ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글씨체가?? 이쁜 글씨체네요 :)

    2008.01.10 22:00
  2. Favicon of http://blog.daum.net/truewriter BlogIcon 말씀하시면.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이 리뷰 임순례감독이 보시면 매우 기분좋아하실것 같아요 ㅎㅎ
    네오이마쥬는 항상 눈팅을 했는데 앞으로 자주오겠습니다..ㅎㅎ (홈페이지는 neoimage.com인가요??)

    2008.01.16 01:18
    • Favicon of https://neoimages.tistory.com BlogIcon woodyh98  수정/삭제

      저희 홈페이지는 neoimages.co.kr 입니다. 이 공식블로그 보다 더 많은 글이 있으니 종종 뵙도록 해요. 좋은 글 있으면 올려주시고요...^^

      2008.01.16 11:54 신고

눈물의 카타르시스

필진 칼럼 2007.08.27 18:20 Posted by woodyh98

전 카타르스시의 효용성을 믿습니다. 그걸 조정으로 보든 효용이든 배설이든 어쨌든 감정적인 정화를 거치고 난 후 어떤 정서를 전달해 주거든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아저씨 하면 '시학'과 더불어 요 카타르시스가 자연적으로 떠오르곤 하죠.

네, 현대에 있어 단순화 시킬 수 없겠지만 희극이 줄 수 없는 비극에서겠지요(그러고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시 위대합니다. 그의 개념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뿐만이 아니죠).

네, 전 스무 살까지 울어 볼 일이 없었습니다. 코흘리개 시절 다녔던 교회 부흥회는 물론이요,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본 일도 없었고, 성격인지 분석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는지 영화를 보고서도 그랬어요. 뭐 단순화 시키면 대개 남자 고딩 들의 눈물은 흔치 않죠.

어쨌건 극장에서 어떤 텍스트를 접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느냐를 떠올려 보면 몇몇 순간이 떠올라요. 극장 보다는 소설이 조금 먼저였죠. 대학 1학년이던 98년 '봄철'의 작가 임철우 씨가 학교에서 강연회를 했더랍니다. 선배들의 등쌀에 떠밀려 출판사도 다녀오고 포스터도 붙이고 한 기억이 있는데요.

선배들과의 세미나 때문에 읽게 됐지만 <꽃잎>의 다소 은유적인 언급이나 '모래시계'외에 처음으로 광주의 진실을 알려준 것이 '봄날' 이었죠. 좌석에 앉은 이들만 있던 봄날의 지하철 1호선 안에서 소설책을 읽으며 눈물을 주룩주룩 읽던 절 의아하게 처다 보던 아주머니의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 합니다. 네, '봄날'은 그렇게 저에게 첫 번째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그리고 광주의 진실과 학살자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한국현대사에 대한 궁금증을 안겨준 첫 텍스트라고 할 만하네요.


ⓒ명 필름극장에서 처음으로 눈문을 흘린 건 마지막 휴가 때 보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 였습니다. 휴가 나와서 만날 사람들 만나고 다니고 술에 취해 들어오던 아들에게 역시 술 한 잔 하신 다음 훈계를 하시는 아버지께 대든 다음날이었던 것 같아요.

역시 약속을 핑계로 집을 일찍 나와서 막 3개관으로 바뀌었던 허리우드 극장에 2회 차 상영이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사람은 별로 없었고 뒷 자석에 홀로 조용히 앉아서 눈물을 훌쩍였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스타가 된 황정민이 바람둥이 박원상과 마을버스를 몰며 꺼이꺼이 울었던 그 장면, 그리고 오지혜 씨가 '사랑밖엔 난 몰라'를 참 구성지게, 그리고 맛깔스럽고도 희망차게 불렀던 마지막 장면. 소주가 마시고 싶은 영화답게 전 또 학교로 직행해서 소주잔을 기울였죠.

화룡정점이자 제 인생의 반전은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였습니다. 세상에 TV 드라마를 보면서 펑펑 울게 된 거죠. 원래 어머니가 드라마를 보며 눈물 흘릴 때면 언제나 꿋꿋했던 저 였는데 놓친 날이면 일요일 아침에 제 방에 처 박혀 다시보기를 틀어 놓고 혼자 수도꼭지 튼 마냥 울어 제 꼈었어요.

복수와 복수 엄마, 아빠와의 에피소드, 미래의 그 눈물들. 제 인생의 드라마였던 것은 분명하고 그 이후에도 드라마를 꼼꼼하게 챙겨보고 가끔 리뷰도 쓰게 됐지만 여하튼 ‘네멋’은 그 이상이었죠. 아마 15,16부 정도는 10번 정도는 보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때가 제대한 첫 해였는데 그 때부터 가족과 관련된 혹은 의도된 눈물 신에도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게 되더군요. 예전 같았으면 퉤퉤 했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정말 잠시 글썽 했으니 말 다했죠. 나이를 먹으면서 약해졌던 탓일까요.

아, <아이 엠 샘>도 빠뜨릴 수 없겠네요. 한창 방황하던 시기였는데요, 학교에서 맡은 일이 꽤 됐었거든요. 근데 무지 좋아하는 후배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의 밀고 당기기도 힘들었던 때였죠. 아마도 영화 소모임에서 시험이 끝난 바로 그날, 너 댓 명쯤 단체 관람을 갔었어요.

같은 모임이라 그 친구도 저편에 앉아 있었어요. 숀 팬이야 원래 한 연기 하지만 그리고 어찌 보면 그런 유형의 연기가 틀에 박혔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날은 정말 맹목적인 눈물이었던 것 같아요. 다코타 패닝의 씩씩함과 앙상블을 이루는 그 부성애라니. 비틀즈의 리메이크 곡 들도 귀에 착착 달라붙었죠. 왜 그거 있잖아요. 몇 백 원 짜리 작은 휴지. 가지고 갔던 그걸 혼자 다 쓰고 나왔으니, 그리고 그 때 저만 복학생이었는데 말이죠.

그 여자 친구와 나중에 사귀게 됐지만 그 때의 저를 같이 회상하며 무슨 아줌마냐며 놀림을 받기 까지 했답니다. 하긴 그때 그렇고 훌쩍이며 울었던 관객은 저와 우리 앞줄의 40대 초반 여성분 밖에 없었거든요.

요 위에에 그 친구와 <죽어도 좋아>를 보러 갔었을 때 코아아트홀을 찾은 몇 십 명의 관객 중 최연소 관객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 박진표 감독의 팬이 됐는데요. <너는 내 운명>도 네 번을 볼 때까지 계속 눈물을 짜냈던 영화였네요.

첫 번째 남자 선배와 보러 갔을 때 은하가 말없이 떠나던 날 대문 앞에 흐르던 참외를 보며 글썽하기 시작해서 내내 눈물을 짜냈던 기억이 나네요. 박진표 감독의 연출력이랄지 사회적이 시선이 담보되었다고 느껴서 더 그랬는지, 여하튼 지독한 신파 잖습니까.

뭐, 2005년 이던 그때는 눈물 흘리는 것에 대한 창피함 같은 건 ‘바이바이’ 한지 오래였으니까요. 아마도 글을 쓰기 위해 혼자 봐야 했던 <송환>과 함께 가장 많이 극장에서 울었던 영화가 아닐 런지.

하지만 분명 값싼 눈물은 물론 경계해야겠죠. 한 달 전 <화려한 휴가>를 보며 광주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눈물을 흘리는 절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면서를 눈물의 의미를 한 번 더 곱씹게 됐습니다. 극장에서 흘린 눈물들.

개인적으로 힘들 때 그런 종류의 영화를 보는 것이 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개인차가 있겠네요. 여러 분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영화들은 어떤 작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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