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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5 2009 서독제 장편경쟁작 <외박>과 <호수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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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원

1. 김미례 <외박>(2009)

김미례 감독의 <외박>은 510일간 이랜드 총파업을 이끈 비정규직과 정규직 여성노동자들간의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당연히, 그들에게 돌아가야할 영화일 것이다. 이 공동체 의식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정규직과의 차별철폐를 외치는 비정규직 편에 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나서 장기 투쟁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은 낯설고도 감동적인 것이었다. 결국 정규직 지도부들의 일괄 총사표를 전제로 이들을 전원 복귀조치하게된 결말에 이르면 더욱 그러한 것이다. 영화는 초반, 막 투쟁을 위한 그녀들의 외박이 시작되는 시점의 막연한 흥분감들을 유쾌하게 스케치하며 곳곳 쉬어가는 틈을 이용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정규직 180일 일수를 넘는 자들과 넘지 못하는 자 등 각각 다른 입장에 있는 그녀들의 사적인 속내들을 질문하는 인터뷰를 인서트하며 즐거움과 그 이면의 미세한 갈등들을 긴장감있게 교차시켜 나간다. 영화는 특별히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었을 때, 이들이 투쟁(외박)을 결심하는데 있어 매일같이 결단을 해야하는 지점의 풍경을 인상깊게 보여준다. 마트에서 외박을 할 것인가,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가정으로 들어갈 것인가. 낮동안 지속되었던 공동 집회와는 또 다른 개인적 선택이 요구된다. 영화는 거의 대부분을 마트의 시멘트 바닥에 버티고 있는 여성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고, 지금이 아니면 안될 일이라는 서슬퍼런 결단임에도 겉핧기로 보면 그녀들의 활기찬 모습 때문에 마치 그녀들이 집안을 내팽개치고 될대로 되라,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다는 오기식으로 비취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부터 이런 모습은 점점 사라진다. 투쟁이 장기화될 기조가 보이자 민주노총 지도부의 공식적 지원선언과 대선 당시 권영길 후보를 앞세운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연대를 위한 개입이 본격화되고, 예상대로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영화엔 불가피한 폭력적 요소들이 연출된다. 팔과 팔로 짜여서 누운 채 버티고 있는 여성들의 몸 위로 경찰들의 뜯어내기(?)가 시행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성 경찰들을 동원한 모습은 웃지못할 풍경을 연출한다. 그녀들은 끌려가며 '니들은 엄마도 없냐'는 말을 반복한다. 이 지점은 혼란스럽다. 후에 면목 홈에버 매장을 점거했을 때에도 한 전경과 대화하는 신을 통해 '엄마 보고 싶어?'란 말이 얼핏 들려온다. 그녀들은 지도부가 자신들을 '아줌마'라 부르는 것이 격노하지만 집회에서는 스스로 '아줌마'들이 이렇게 나섰다라고 말한다. 나는 영화가 이 점을 지목해서 보여주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그녀들은 분명 공적 노동자로서 집회에 나왔다. 하지만 그녀들은 여전히 가정주부라는 역할에 매여있다. 이 투쟁은 민주노총 지도부들의 싸움과는 달리, 그녀들에겐 완전히 공적인 싸움이 아닌 것이다. 그녀들은 마치 이 두가지의 역할론에 대해 함께 투쟁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그녀들은 공적으로 노동자이면서 사적으로는 엄마일텐데, 이들이 결국 사회에서 불리는 말은 '아줌마'로 통일된다. 이 단어는 공적이지도 사적이지도 않은, 그 성격이 불분명한 특정 집단을 표현하는 익명성의 단어이다.


영화는 이 '아줌마'란 단어가 불편한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사회에 설득시켜야할 불가피한 때에 스스로 사용하는(인정하는) 모순을 보여줌으로 그녀들이 사회에 처한 모순적인 위치를 그대로 드러낸다. 영화의 후반부 물대포를 맞고 농성 천막이 부숴지고 지도부가 체포되는 모습들은 앞서 보여주었던 활기찬 풍경에 담긴 이상들을 조금씩 지워나간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생계유지에 지쳐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몇몇은 떠밀리듯이 돌아가지만,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정규직,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끈질긴 투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생계비 마련을 위해 물품 판매에 나서기도하면서 사측과의 협상의 시점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마침내 타결이 이뤄진다. 올림픽 매장을 점거한 지 정확히 510일만의 일이다. 정규직 지도부들의 결단을 요한 처사였다. 이 결말은 일반 관객에게 직접적인 감동을 준다기보다는, 끝까지 남아 싸운 사람들과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지도부들의 희비 교차를 보여주며 어찌 보면 차가운 현실의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치중하지 않고 보다 공공적으로 중요한 것의 가치를 믿고 선택한 자들에게만은 다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외박>은 여러 불리한 변수들 가운데서도 결국 불합리한 사측과의 투쟁을 결단했고 감당해냈던 그녀들, 공적, 사적 위치 어디에서도 온전히 자신만의 자리와 합당한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던 그녀들의 소중한 일기이며, 결국 그녀들의 공동체를 위한 영화일 것이다. 활동하는 집단에 활동적으로 참여한, 연대하는 풍경에 동일하게 연대하여 들어간 카메라는 현실의 투쟁을 지속시키는 일에 기여한다. 여기에서 영화와 현실의 구분은 무해하다. 그녀들은 이 영화를 기뻐하고, 이 영화도 그런 그녀들을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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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재훈 <호수길>(2009)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전체가 완전한 공포(현실)영화이다. 초반부, 철거가 진행되기 이전의 마을의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운 풍경을 보여주다 후반에 이르러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후 철거가 진행되면서부터의 황폐한 풍경을 보여 주지만, 내 느낌으로 이것은 대비적인 풍경이 결코 아니다. 초반부는 너무나 일상적이면서도 한적한 풍경 속에서 오히려 은밀한 암시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느리게 걸으며 이따금씩 먼산을 올려다보는, 근심을 다 헤아릴 수 없을 듯한 노인의 무표정과 골목을 밟고 뛰어다니며 서로 쫓고 쫓는 놀이에 치중하는, 근심이라고는 헤아릴 수조차 없는 어린아이들의 무동기적 흥분의 표정을 대비시킨다. 초반의 이러한 방식은 우리를 이상한 느낌으로 몰아간다. 노인의 기우뚱한 근심어린 뒷걸음과 카메라를 향해 돌진하는 어린아이들의 대단스런 앞걸음질, 완전한 정적을 연출하는 롱 테이크의 불길한 카메라와 귀를 째는듯한 비명과 이보다 더 의도가 없을 수 없는 날것의 표정에 거의 참여하는듯 이들과 마치 함께 뛰노는 듯한 정신없는 컷을 이어가는 카메라의 대비는 우리에게 지속적이고 자연적인 관찰에서 얻은 섬뜩한 지점들을 그대로 노출시킴으로 후반부 기계소리로 인한 공포감보다 외려 더 섬찟한 지점을 선사한다. 가히 일상(현실)의 스펙터클이라 불릴만한 것이다. 영화엔 낮과 밤의 이미지와 그 각각의 소리들이 대비적으로 연출된다. 낮의 빛과 밤의 어둠, 낮의 아이들의 소리와 밤의 개짓는 소리. 이것은 개발 이전과 이후 즉, 전반부와 후반부를 기이하게 연결짓는다. 전반부에서 동네의 건물을 쏘아대는 듯한 강렬한 낮의 빛은 후반부 포크레인이 철거를 위해 뿌려대는 강렬한 물줄기와 연결되고, 동네 전체를 깨어내듯 날카롭게 질러대는 아이들의 (즐겁고도 무서운)비명소리는 후반부 귀를 쨀듯한 포크레인 소리로 연결된다. 단순히 아름다움이 철거의 비극적 풍경으로 파괴되었다고 말하기에 이 두가지 이미지와 소리들은 현상적으로 사실 유사해서 약간 섬찟하다. 밤의 완전한 시각적 어둠 상태에선 저 멀리 작은 네모난 유리창문으로 비쳐 보이는 불빛이 존재한다. 이 불빛은 밤이 깊어가면서 점점 작아지거나 점차 어두워진다. 철거가 시작되면서 이 동네 주택들의 유리창은 완전히 사라진다. 빛을 반사시키던 유리가 없고, 완전히 뚫린 시멘트 창들이 그보다 더욱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며 완전한 시각적 눈멀음의 상태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기가 주택의 안인지 바깥인지 우리는 감지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 카메라가 꽝꽝 닫히는 문의 소리들을 들려주며 이곳이 사람이 사라진 집의 내부임을 드러낸다. 순간적으로 우리는 완전한 공포에 노출된다. 언제부터 카메라가 이 안에 들어와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지금까지 느낀 어둠과 정적이란 어떤 현상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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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빛과 사람이 소멸한 밤에 자연발생적인 소리에 집중한다. 바람소리, 그리고 개짖는 소리. 개들은 한 곳에서 누군가 짖으면 여기저기서 따라 짖는다. 그들은 마치 교신하면서 서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소리로서 연대한다. 이 집단적인 짖음은 영화 전반부의 낮, 어린아이들이 놀이를 하며 질러대던 중첩된 소리들의 연결시킨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개들의 함성. 영화엔 사람들이 나오지만 그들의 행동력은 등장하지 않는다(오히려 행동력은 개들로 인해 실천된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람은 마을의 풍경의 하나로서 등장할 뿐 동네가 철거될 것을 알고는 있는지, 이들은 반대 투쟁을 했었는지조차 전혀 알길이 없다. 카메라는 '경축, 재개발'같은 플래카드만 무심하게 보여줄 뿐이다.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마을 안에 혼로 남아 마치 레지스탕스처럼 동네의 최후 풍경을 날것으로 담아내는 카메라는 완전한 매체 그대로의 느낌, 즉 사람이 없이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는 카메라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감독은 카메라를 세워둔 것이 아니라 늘 이 카메라와 함께 다녔다고 말했다. 즉 직접 체험한 풍경만 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조차도 물질적인 느낌이 압도적이다. 여기엔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고도 참여하려는, 기록하면서도 연출하려는 카메라의 이중적 욕망의 경계가 그대로 노출되어있다. 시네마베리떼와 다이렉트시네마의 경계가 무너진, 아찔하면서도 통쾌한 미학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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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0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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