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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03 [우린 액션배우다] 세상의 모든 액션배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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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지난 8월 31일은 독일이 낳은 전설적 클라이머 볼프강 귈리히 Wolfgang Gullich 가 아우토반에서 사망한지 16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우린 액션배우다>를 관람한 것 역시 이 날이었다.

볼프강 귈리히란 이름이 금시초문인 사람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당시로는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5.41d라는 최고등급의 암벽등반을 최초로 이룬 인물이었고, 벽 등반에 관한한 기존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불세출의 등반가였다. 귈리히는 1960년에 태어나 열네 살부터 암벽등반을 시작해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고는 불과 3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전설로 남겨졌다. 난데없이 웬 암벽등반가냐고? <클리프 행어>에서 터질 듯한 근육으로 멋지게 등반하던 실버스타 스탤론을 기억하는가? 스탤론 정도의 인물이라면 약간의 훈련을 거쳐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겠지만, 천만에! 영화 속 등반은 그냥 저냥 연습으로 해낼 수준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대역을 써야 할 밖에. 이 영화의 암벽등반 장면 대역을 한 인물이 바로 볼프강 귈리히이다. 영화촬영을 성공적으로 끝낸 귈리히는 1992년 8월 31일 뮌헨의 한 라디오방송국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뉘른베르크의 집으로 귀가하던 중 아우토반에서 사망하고 만다. 당시의 이야기를 기억해보면, 여느 암벽등반보다 어려웠던 여러 가지 주문에도 귈리히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해치웠다고 한다. 귈리히가 있었기에 등반장면의 사실감이 배가 되었고 극적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으니,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명장면들이 사실은 귈리히의 손과 발을 통해 탄생한 셈이다. 유사한 예로 <미션 임파서블2>의 오프닝에도 아찔한 암벽등반장면이 나오는데, 당시 이 장면을 톰 크루즈가 실제로 연기했다는 식의 보도 자료를 옮겨 실은 홍보성 기사가 쏟아진 일이 있으나, 암벽등반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실제 등반장면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술상 오류가 수두룩하다. 한 마디로 CG라는 것이다.

다시 <클리프 행어>로 돌아가서, 그렇다고 귈리히의 대역이 회자되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귈리히가 죽고 나서야 산악인들의 입을 통해 이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월드프리미어 이후 <클리프 행어>의 해외 개봉판에는 귈리히를 추모하는 크레딧이 올려 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시 국내에서 영화를 본 내 기억으로는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등반계의 월드스타인 귈리히도 영화에서는 대역에 불과했고 그 죽음조차 영화역사 위에 기록되지 못했을 진대, 하물며 우리나라 액션 전문(대역)배우들의 삶이야 오죽할라고. 그런 점에서 정병길 감독이 연출한 <우린 액션배우다>는 액션배우들 스스로가 써내려간 치열한 삶의 보고서이자 소중한 기록물이다.

서울액션스쿨 8기의 액션배우에의 열정과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영화에서 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주연배우가 되어 스크린을 맘껏 활보한다. 비록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렸다고는 하나 영화적 구성 또한 만만치가 않다. 유머와 감동을 뒤섞어가면서 영화의 한 장면이 개인의 역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속도감 넘치게 보여주는 까닭이다. 가족들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영화 속 귀퉁이에 자리한 얼굴 없는 배우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코미디와 감동이 조화롭게 배합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승자와 성공한 자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는 동시대 사회상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 The Winner Takes It All’는 지금의 세상. 계량화된 실적과 숫자와 자산 가치가 한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버린 지독한 실용의 시대이기에, 무대의 주역이 아닌 위험한 대역을 자청한 이들의 삶 자체는 <우린 액션배우다>가 심금을 울리는 까닭이 되고도 남는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2008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당시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관객의 박수가 이어졌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엇이 열광적 환호를 이끌어냈을까 의아해 하던 중, 한 장면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중국 로케이션 현장에서 날아온 무술배우들의 귀국과 지중현 무술감독의 사망소식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로케이션 현장에서 사망한 선배의 장례식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때론 우스꽝스럽고 또 때론 감동적으로 영화적 스토리텔링에 치중하던 이 영화가 비로소 현실로 돌아와 영화의 외부에서 관객에게 자신들의 진심을 드러내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 같은 삶을 불꽃처럼 살다간 선배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이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액션배우들의 뒷모습이 이토록 쓸쓸하고 절절하게 보여 진 적이 또 있었을까? 그러므로 엄숙하고 처연한 운구과정에 이어지는 짤막한 회고장면은 이름 없이 살았으되 무수한 톱스타의 몸 위에 자신의 모습을 아로새겼던 세상의 모든 액션배우에 바치는 헌사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것은 세상을 향한 <우린 액션배우다>의 외침이자 인정투쟁이기도 하다.

영화의 끝에 이르러 인천의 모 정보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을 상대로 펼친 특강을 통해 그들은 무대의 주인공이 되지만 다시 이런 날이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36명으로 시작된 서울액션스쿨 8기가 이제는 권기덕 단 한명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열정이 크다 한 들 현실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분명 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나머지 액션배우들의 결단에도 박수를 보내야 한다. 요컨대 <우린 액션배우다>는 액션에 미친 젊은이들의 신명나는 현장보고서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에게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잠언에 가깝다.

(추신) 故 지중현 무술감독의 정보를 확인하던 중 발견한 전자신문의 8월 29일자 인터넷 포털제공 판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제작사인 바른손엔터테인먼트의 최재원 대표와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하지만 중국 현지 촬영 일정 지연으로 제작비가 증가하고 촬영 중간에 지중현 무술감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영화의 성공 여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는 상식 이하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논란을 우려한 탓인지 본판에서는 이 부분을 삭제하고 재편집해버렸다. 무술감독의 사망을 영화의 악재로 바라본 것이 최재원 대표의 시각인지 기자의 자의적 해석인지 몰라도, (맥락을 짚어보면 누구의 생각인지 단박에 드러난다마는) 이러한 자들이 버젓이 한국영화계의 중심인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점은 한심스럽다. 어쩌면 그래서 <우린 액션배우다>가 더욱 빛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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