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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해야 재미있다. 복잡하면 어렵다. 개그 콘서트에서 박지선은 남자를 유혹한답시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참 쉽죠잉~!”라고 끝맺는 그녀의 말에는 뼈가 있다. 박지선이 연애를 한다는 게 웃기다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유혹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라는 그녀의 말이 우습다. 박지선이라는 실재가 미인에 대한, 연애에 대한 환상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예술가들은 고정관념과 기존의 미학을 비틀어 전복의 미를 제시하기도 한다. 얼마 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던 페르난도 보테로 전을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보테로의 작품 중에는 명화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그림들이 많다. 그의 손을 거치면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여인도,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 부부의 결혼’ 속 피골이 상접한 부부도 모두 고도비만자로 변한다. 이처럼, 종종 희극과 예술은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 소재들을 활용한다.


황철민 감독의 2002년 작 <팔등신으로 고치라 굽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비웃는 영화다. 동시에 세상을 어지럽히는 모리배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저항의 예술이다.

영화는 2001년 세종대에 재직 중이던 회화과 김동우 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김동우 교수는 학교 측에 대항해 1인 시위를 벌이게 된다. 세종대는 재임용 탈락 대해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학재단이 교수 한 명을 자르는 건 참 쉽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우리는 영화 제목에 비추어 이 사건이 웃지 못 할 촌극이자, 부조리극이자, 희대의 재앙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로, 1999년 김동우 교수는 교정에 설치할 조각품을 제작한다. 교정에 설치하기 직전, 세종대 주명건 교수가 작품을 훑어보고는 “팔등신으로 고치라”고 말한다. 그 조각품은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동양적인 미학에 가까우며, 푸근함, 인자함, 복과 덕을 풍기는 어머니 상이었다. 그러나 이사장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나 보다. 이사장은 한복보다는 비키니가 빛나는 여인상을 원했나보다. 페르난도 보테로도 웃고 갈 일이다. 팔등신으로 고치라니!

여기까지, 영화는 희극이다. 그러나 그 이후는 재난, 재앙, 인재라고 부르는 게 맞을 법하다. 청천벽력 같은 재임용 탈락통보에 깅동우 교수의 행동은 변한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예술계 전체와 학계전체에 닥친 불행으로 받아들인다. 과거 부르주아적 예술관을 가지고 있던 한 예술인이 정치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 과정에는 서글픔이 뚝뚝 떨어진다. 김동우 교수에게 찾아온 재임용 탈락은, 우리 사회가 순수함과 그 가치를 고수하려는 강직한 학자를 아니꼽게 바라본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김동우 교수의 침묵과 시위는 서글프다.

영화 속에서 다루어지는 상식의 위반은 유머가 아니라 공포로 변한다. 예컨대 새우깡에 새우가 없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꼭 1년 전 새우깡에서 쥐머리가 나왔을 때, 대중은 웃기보다는 벌벌 떨었다. 불신지옥이라고 했나? 이제는 그 말이 바뀌어야 한다. 맹신지옥이다. 중앙대에서 진중권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 홍익대에서 진중권의 강의를 들을 수 없다는 오늘의 사실, 황지우 총장이 외압에 밀려 한예종을 떠났던 엊그제의 사실. 과거의 고통은 과거로 끝나지 않고 암세포처럼 증식해서 현재의 재앙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팔등신으로 고치라 굽쇼?>는 타임머신처럼 봉인된 과거를 풀어 놓는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 영화는 현 사립대학의 과거이면서도, 다가올 대학들의 묵시록적인 비전이기도 하다. 전국 대학 곳곳에서는 시장경쟁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학생들과 교수들은 흡사 어깨에 단두대를 짊어진 양 위태롭게 생활하고 있다. 여차하면 적법한 절차도 없이 서슬퍼런 칼날을 떨어뜨릴 기세다. 진중권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하고, 이에 반발한 30여명의 학생들이 총장실에 빨간 딱지를 붙였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더 끔찍한 일도 있었다. 8월 말, 부산대에서 70명의 비정규교수들이 무더기로 해촉했던 가히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은, 비정규교수노조의 반발이 거세지자 부산대에서는 해촉 된 70명 모두에게 이번 학기에 5시간미만의 수업을 배정하는 걸로 일단락 지었다. 부산대 사건의 결과를 제쳐두고서 보더라도, 학문의 전당에서 신자유주의식 경쟁법칙과 그리고 정치적 놀음이 벌어진다는 일은 아이러니에 가깝다. 학문의 길은 멀기만 한데, 정치와 돈은 왜 이리 가까이 온 걸까.

상식을 비웃는 작태들은 가진 자들의 유머로 전락하고 있다. 그들은 학문의 장을 정치의 장으로, 또 경제의 장으로, 끝내는 사교의 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들의 마법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에 의기양양해 한다. 가진 자들은 늘 가진 자들끼리 웃는다. 신자유주의식 유머란 권력을 마법처럼 휘두르는 자들이 만들어 내는 그들만의 개그 콘서트다.

교수가 강단에 서는 것은 일반상식이다. 학교라는 울타리는 사제지간의 상호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어제의 스승은 내일의 스승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건 공포다. 우리의 믿음을 배신하는 공포. 다른 말로 신자유주의식 공포.



윤성호 : 지금 원래 저희가 많이 와요. 그런데 오늘 조금 조촐하게 됐는데 그건 영화랑 상관 없는거구요. 좋은 소식이 있다면 충무로 영화제가 한창인데 거기보다 관객이 많고, 화면상태도 양호한 편이고(웃음). 일단 세 분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박찬경 : 안녕하세요, 박찬경입니다.
황철민 : 영화 만든 황철민입니다.
김동우 : 김동우입니다.

윤성호 : 제가 추가로 소개드리자면 황철민 감독님은 방금 보신 <팔등신으로 고치라굽쇼?> 다큐를 만드셨고, 전에 <프락치>라든지 다른 극영화도 만드셨고, 이전에 조중동 프레임이 없을 때도 <옥천전투>같은 안티조선 다큐를 만드셨어요. 독립영화의 선배시기도 하고. 김동우 교수님은 소개 안 해도 충분히 영화에서 보셨을테고. 박찬경 선생님은 설치미술가시고 한예종에서 강의하고 계시는데요, 요새 문화예술에 대해 권력이나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많이 개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언도 많이 하고 계시고 한예종 친구들을 응원하고 계셔서 특별히 초대했습니다. 영화에 대해서 일단 저희가 충분히 얘기를 나누고 관객에게 마이크를 돌릴께요. 감독님 오랜만에 영화를 보셨을텐데 소회나 그간의 경과를 얘기해주세요.

황철민 : 0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했구요. 몇 년 동안 전교조 선생님들, 해직된 많은 교수님들을 위해서도 상영됐었고 여기저기서 상영이 많이 됐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상영이 안됐다가 오늘 다시 보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고요. 이 영화를 만든 다음에 2편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면 희망 없이 끝이 났거든요. 막연한 희망만 있고 끝이 났는데 사실 저희가 승리를 했었어요. 했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여기 나오는 굉장히 이상한 이사장님은 교육부에서 해고를 시켰고, 너무 많은 비리가 드러나서. 학교를 떠나셨고. 여기에서 엄청나게 상처를 안고 투쟁을 하셨던 김동우 선생님은 복직을 하셨고, 저도 그 덕에 같이 복직을 했었어요. 이야기는 해피엔드로 끝나는 거 같았었는데요. 한국사회에서 이런 투쟁이 해피엔드가 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걸 담은 영화로 2편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했는데,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MB정부 들어서고 1년이 지나니까 임시이사가 파견됐는데, 주명건 이사의 하수인으로 임시이사가 들어와서 총장님도 그 분의 하수인, 교무위원도 그쪽으로 배치되고. 1년 만에 다시 원상복귀 했습니다. 이제 2편을 찍으면 승리의 편이 아니라 고난의 편 2편이 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김동우 : 이 영화에 본의 아니게 주인공 역을 하게 됐는데 4년을 싸웠죠. 2002년도에 시작해서 4년 만에 학교에 교육부 감사가 나오고 이사장이 쫓겨나고 민주적인 임시이사들이 들어오면서 저희가 복직이 됐습니다. 저와 더불어 과거에 더 옛날에 부당하게 해직 당했던 분들까지 6명이 복직을 했어요. 황철민 선생님은 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말하자면 학교에서 해고나 쫓겨난 게 아니고 본인 스스로가 이 학교에서 교수를 한다는 것에 대한 지식인으로 양심의 고백으로 스스로 떠났기 때문에 해직교수는 아니죠. 자발적으로 사표를 냈기 때문에. 이분이 돌아올 수 있는 길은 우리는 억울하게 쫓겨났기 때문에 원상복귀지만 이 분은 사표를 내서 다시 돌아온다는 방식이나 절차가 그랬는데 그 당시에는 총장님이나 학교 교무위원 임시이사에 계신 분들이 특별채용으로 다시 모시자. 다시 재임용되는 절차를 해서 황철민 선생님도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참 작은 승리감을 가졌던 게 4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에 완전히 다시 거꾸로 가는 세상이 돼서 황 선생님 말씀대로, 과거의 주명건 이사장이 얼굴은 안보이지만 그 사람의 하수인이 다시 학교를 장악하고 총장이나 교무위원을 바꾸고. 이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상태로 갔습니다. 어쩌면 제가 또 쫓겨날지 몰라요. 2편을 만들면 더 고난의 영화가 되겠죠. 한국의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어떻게 이렇게 옳고 그름이 바뀌는지 어리둥절하고, 교육부에서 2년 전부터 세종대는 정상화하겠다고 해서 굉장히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바뀌니 정책이 바뀌고 비리로 쫓겨났던 재단 이사장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 우리 세종대 뿐 아니라 상지대, 조선대 등 기타 많은 대학이 또 이러한 반복을 하게 됐어요. 솔직히 아마 1년 전에 이 영화를 했으면 우리는 신나게 이야기를 할텐데. 아주 옛날처럼 고압적으로 교수들의 사상까지 통제하고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우리같이 비판적인 사람들을 위협적으로 대하고. 하여간 더 큰 발전을 위해 역사가 잠시 거꾸로 갈 수 있겠구나, 거꾸로 간 것의 몇 배 더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2편을 만든다면 주인공이 아니고 조연정도 하고 싶습니다.

윤성호 : 말씀 들으니까 생각나는데 저희가 월례포럼 기획하면서 2월에 튼 작품이 <박통진리교 뻑큐멘터리>라고 박정희를 숭배하는 이야기였는데, 그것도 8년 전 얘기였어요. 그것도 몇 년 전에 틀었으면 재밌었을텐데. 그분들이 지금 다 주역이어서요. 그래도 그렇게 보는 재미도 있더라구요. 이 영화가 어쩌면 사학재단 비리 얘기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권력이 개입하는 얘기기도 해서 싱크로율이 이만큼 높을 때가 없을 것 같아요. 박찬경 선생님이 관련 포럼도 참여하고 계셔서 관련된 소감을 여쭤볼께요.

박찬경 : 영화 재밌게 봤습니다. 다들 아실 거 같은데요, 영화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야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것 같고 영화 뿐 아니라 한예종으로 대표됩니다만, 한예종 이외에도 미술, 출판 등 전방위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띄게는 ‘인디’자 붙는 것은 다 감사를 한다던가, 예산지원을 중단한다던가, 이런 식으로 활동을 차단하거나 주요 인물을 교체하거나. 인디음악 하는 사람들 인디레이블 지원 사업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것도 다 없어지고, 미술 쪽에서는 공간들이 없어지구요. 미술은 독립공간이라고 안하고 대안공간이라고 보통 써요. 만약 미술에서도 독립이라는 말을 썼으면 벌써 없어졌을텐데, 대안이라는 말을 써서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런 일들이 정권 바뀌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가장 큰 문제는 한국 문화의 변화라는 것이 그냥 진보에서 보수로 변하는 게 아니라 10여 년간 축적된 현장의 역량을 고갈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아까 영화에서 봤을 때 김동우 선생님이 조각계 공헌한 일이 없어서 그런 사유로 얘기했다는 장면을 봤는데, 그런것처럼 행패에 가까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문화행정이라고 하는 게 실종됐죠. 잘못된 것도 물론이지만 행정 자체가 실종되는 걸 매일같이 새로운 사건을 통해 겪고 있습니다.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고 권력을 행사하는데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는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대학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재등장하고 있는 것이 굉장히 우려스럽고. 저는 가끔 문화전쟁이라는 말을 쓰지만 문화전쟁의 시기가 온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성호 : 이 자리에는 한예종 비상대책위원회 학생들이 초청 돼 있는데요 다큐를 보면서 사실은 저희가 왜 이렇게 반복될까 개탄할 것만이 아니라 타산지석으로 삼아 예․복습해야 할 거 같아요. 어떻게 싸움을 할 지. 그래서 아까 나온 말씀 중에 작은 승리를 사실 했었는데, 학교에서 문화예술에서 얻은 작은 승리들이 왜 긴 승리로 이어지지 않을까를 짚어봐야 할 거 같은데요.

황철민 : 안타까운 일인데 충분히 긴 승리가 될 수 있었어요. 예를 든다면 세종대가 굉장히 좋은 조건이었거든요. 다시 얘기하면 한국 사학의 대부분의 문제는 설립자들이 학교를 자기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이를 통해서 사업을 하겠다는 의식이 많고 이걸 놓지 않으려는 게 심했는데, 세종대의 경우는 설립자가 나중에 진짜 악덕 설립자가 얼마나 사회악이고 패륜인가 하는 걸 몸으로 절실히 느꼈어요. 주명건 이사장이 학교에서만 패륜 짓을 한 게 아니라 설립자, 형제들에게도 했어요. 세종대를 사회에 환원한다, 저런 자식에게 학교를 주느니 환원하겠다고 생각도 했다고 했어요. 굉장히 조건이 좋았죠. 그때가 참여정부 시절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참여정부는 그런 뜻을 실현시킬 준비가 안돼있었어요. 좀 삼천포인데, 설명드리자면 평택 대추리 땅 십분의 1이 세종대 땅이에요. 참여정부 때 미군기지를 평택에 짓기 위해서 그 땅을 국유화해야 했는데 그 때 세종대 이사장이 비리를 저질러서 짤리는 상황이었죠. 다시 돌아올 구멍을 열어줄테니 땅 파는데 싸인해라, 이래서 싸인을 하죠. 그리고 그 당시에 이사장 이하 이사들이 그 당시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는 학교를 떠나야 하는데 자유이사라는 명목으로 몇 명이 남았어요.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세종대학교가 다시 과거 비리 이사장의 수중으로 떨어지죠. 정책적인 부분이니까 정확히 짚고 넘어가면 참여정부에서 그렇게 하게끔 했던거죠. 제가 보기에는 참여정부에 있었던 분들이 나쁜 분은 아니었겠죠. 저는 한국의 대학이 갖고 있는 가치와 의미를 그분들이 잘 모르지 않았나. 한국에 있어서 정치적 민주주의의 중요성만큼 사학, 대학이 가진 중요성을 그분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지 않았나 해요.


최근에 한예종 사태와 함께 진중권 교수가 중대에서 쫓겨났어요. 너무 안타까워요. 우리나라 몇 안 되는 훌륭한 지성인이고 지식인이고, 교수가 되도 진짜 당연한 분인데도 저는 오랫동안 교수가 못 되는 게 희안하다고 생각하고. 박노자 같은 분은 왜 한국에서 교수가 못되고 노르웨이 가 있나. 멋진 사람인데 저 분은 왜 강사일까, 이런 생각 많이 하게 되는데. 여러분들이 잘 모르실꺼에요. 우리나라에서 대학 교수가 되려면 사상검증을 통과해야 하거든요. 그분들은 사상검증에 통과 못해서 교수 못되는거에요. 우리나라 대학교의 99%가 소위 얘기하는 보수 우익 대학교들이에요. 여러분들 한 번 생각해보세요. 다니는 대학들이 사상적으로 볼 때 어디에 서 있는가. 우익이 나쁘고 좌익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 의미가 있습니다. 한 사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99%가 치우쳐져 있어요. 그러다보니 유감스럽게도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이 생기는 게 우연히 생길 수밖에 없어요. 보수 우익 이런데는 조직적으로 재생산되는데 비해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람들은 우연히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이게 한국사회 문제점이고. 정말 괜찮은 교수들은 교수가 될 수 없어요. 제가 임용시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사실 20대 초반에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30대 후반에 돌아왔어요. 유학을 오래 한 편인데, 행운이라고 얘기 할 만큼 쉽게 임용이 됐어요. 아마 그 분들이 절 잘 몰라서 그랬을 거 같은데. 그 때 면접 하면서 설립자분이 그러더라구요. 생긴 게 착하게 생겨서 뽑는다(웃음). 자세히 보면 착합니다. 착하게 생겼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말 잘 듣게 생겼고 절대 학교에 반항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사상검증을 한거에요. 저나 김동우 선생님은 그분들이 눈이 어두워서 잘못 해서 뽑힌 교수들이에요. 이렇게 해서 교수가 되는 사람들이 5~10% 아닌가 싶어요. 그나마 상아탑에서의 양심을 대변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주변에 그런 교수님 있으면 굉장히 귀하게 생각해야 해요. 진중권 교수처럼 아주 분명한 이런 분들은 우리나라에서 절대 교수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교수가 될 수 없는 분들을 교수로 만들 수 있는 대학이 세종대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 정책하는 분들이 잘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성을 다 놓치지 않았나 싶어요.

윤성호 : 감히 거칠게 요약하면 저희가 민주화 정부라고 생각하는 시절부터 이런 문제가 잉태돼 있었고, 확실히 뿌리 못 뽑은 게 아쉬운 거 같고. 말씀하신 것 중에 와 닿았던 게 대부분이 보수우익 대학교잖아요. 저도 한예종 전문사 나왔는데, 여기는 보수우익 학교라고 생각했어요. 플랭카드에 각고의 노력으로 글로벌 리더가 되자(웃음) 이런 것도 있고. 이 정권이 되게 좋아할만한 학굔데. 우연히 진보지식인이 되버린 박찬경 교수님도 왜 우리가 어떤 기회를 놓치고 왔을까, 대안 같은 거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릴께요.

박찬경 :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잘 찾아서 해야 할 거 같습니다. 힘들어요, 지치고. 한 20년 싸웠으면 됐지 또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다른 방법이 없는 거 같아요. 새로운 대안과 방법은 다 나온 거 같구요. 일종의 제로그라운드라고 해야 하나. 개개인에게 묻는 거 같아요. 뭐할래, 뭐 할 수 있을까.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고 거기서 연대하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문화예술은 한 10년 동안 각자 작업하느라고 바빴잖아요. 그간 좋은 환경에서 작업한거죠. 각자 바빴던 것이 있는데 이젠 좀 자기 예술만 하지 말고 주변의 다른 것들과 손잡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윤성호 : 아까 잠시 진중권 교수 얘기가 나왔는데, 그분이 한예종에서 외래교수 했는데 지금 나온 조치로는 마땅히 받아야 할 강사료를 다 환수하라고 판정이 나왔을거에요. 한예종에서, 많은 예술의 기관장, 단체에 대해 눈에 보이고 혹은 보이지 않는 탄압이 있는데, 제가 자꾸 예를 한예종으로 드는 건 한예종이 후안무치하고 첨예해서 그런가봐요. 한예종이 장기화되면서 약간 잠잠해진 느낌이 있어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김동우 교수님도 투쟁하셨는데 본인한테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임에도 싸움들이 조금씩 지칠 때가 있었을 거 같아요. 화면에서는 학생들이 도움이 됐는데, 그런 노하우, 경험을 들려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김동우 : 글쎄 저는 부끄럽게도 세종대학에 오기 전에는 지금 생각하면 예술은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너무 강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순수한 예술지상주의적 사고를 오랫동안 가졌던 거 같은데 예술이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이용이 된다던지, 오랫동안 서양의 역사에서 보면 종교의 도구가 되는 예술을 많이 봐왔고, 그러면서도 예술은 발전해 왔지만. 저는 사회의식, 정치의식이 없다시피 한 그런 무색무취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진보·보수 ·좌·우 등등의 논리에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고, 사실 지금도 저는 그 말을 별로 적극적으로 사용안합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는데 굳이 그런 프레임으로 대는가. 무엇이 민주적이냐,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얘기하는데 경우에 따라 좌다 진보다 이런 식으로 정치적 색을 입히는 게 우리 한국사회가 아닌가. 제가 재임용에 부당하게 탈락했다는 것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 엄청 상한거죠. 어쨌든 돌을 갖고 애를 써서 내 나름대로 만들었고, 그것을 평가하는 건 보는 사람의 자유죠. 좋게 보는 사람도 있고, 여자가 뚱뚱하고 정말 그렇게 보는 건 그 사람의 자윤데. 그걸 만든 사람에게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강압적으로 고치라고 할 때, 참 정말 난감했어요.


그리고 사실 교수가 뒤늦게 됐죠. 저는 외국생활 오래 하다가 40대 후반에 엉겁결에 그 당시 IMF오고 하니까. 그 전에는 전업 작가로 작품이 그런대로 판매가 돼서 생활을 했는데, 97년도에 작품이 팔리지도 않고. 유학을 했지만 대학교수는 생각 안 하고 유학을 했어요. 저는 대학만 두 번 다녔지 대학원 다닌 적도 없습니다. 예술가의 길과 교육자의 길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늦은 나이에 경제적 상황에 의해 대학에 와서 오자마자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분노를 느꼈고. 아주 단순한 얘기에요. 어떻게 예술가에게 이런 부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선택을 했죠. 이 작품을 고쳐서 ‘이사장님 아닌 게 아니라 짜리몽땅하고 답답하네요, 제가 실력이 모자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말하고, 좀 더 날씬하게 고쳐서 그분의 기분을 좋게 해드리고, 학교에 편안하게 있는 길과, 내가 예술가의 자존심을 갖고 이걸 끝가지 주장해서 불이익을 감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몇날 몇일 했습니다. 불현듯 내 자신에 대해서 내가 왜 이런 걸 갖고 고민하나, 내가 언제 교수였다고, 교수 자리에 연연하면서 내 작품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가 그런 생각에 크레인 불러서 손 하나 안대고 작품을 갖다 놨죠. 그 다음날 불려가고 시련이 오고, 결국 쫓겨나는 상황이 됐을 때 제 나름대로 두 가지 길이죠. 조용히 작업하면서 산속에 파묻혀서 작가로 살아가느냐. 근데 황 선생님 옆에 계셔서 싸울 수 있는 용기도 주시고 했지만 어쨌든 제 자신이 좌우, 진보 보수 떠나서 이건 말이 안되는거다 한 번 붙자. 속된 얘기로 한 번 붙여서 머리가 깨지도록 붙자. 아주 점잖은 방법으로 1인 시위를 택했고, 1인 시위가 제가 3년 반을 했는데 매일 그 자리에 서서 저는 무슨 생각을 했겠어요. 제가 예술가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됐고 많은 학생들이 큰 힘이 됐고. 그래서 지금은 이 영화를 보고 즐거운 마음이 아니라고 했지만, 저는 믿습니다. 역사의 진행이 결코 거꾸로만 가지 않는다. 제 인생에서 이 영화를 찍었던 몇 달은 굉장히 행복했던 시간이고. 그리고 황철민 선생이 스승의 날 학생들 앞에서 해주시는 얘기, 우리 둘이 희망을 만들 수 없지만 방향은 우리가 보여줄 수 있다고 한 훌륭한 말씀. 그건 아직도 저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윤성호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학생들과의 연대를 여쭤봤는데 학생들이 큰 힘은 안됐던 거 같습니다(웃음). 농담이구요. 질문을 마이크를 관객에서 넘길께요. 질문, 지지, 의문점을 물어도 좋으니까요 손 들면 마이크가 갈겁니다.

황철민 : 제가 덧붙여 추가로 말씀드릴게요. 이 싸움하면서 느꼈던 건, 싸움하면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공부하면 떠오르는 게 손자병법 시작해서 쭉 있는데 적을 알아야 싸움을 이긴다는 게 있는데 우리가 적을 알기 어렵죠, 사실. 학교에서 촬영금지 가처분 신청도 내고, 출입금지도 내고 어떤 분들은 이 영화 보면서 너무 일방적이다, 한쪽편만 나온다 이사장, 교무처장 인터뷰 따서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야 다큐 아니냐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이런 영화를 찍는데 인터뷰를 해줄 이사장이, 그렇게 상식적인 이사장이면 이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겠죠. 한국사회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얘기하는 상식이 있고, 옳은 것이 뭔지 다 아는데 그런 방법이 주어지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 믿는 방법대로 가야 하거든요. 제 생각에는 결국 여러분들이 싸워서 이기려고 한다면 의지가 무진장 중요해요. 김동우 선생님은 의지가 있으셨고, 그 전에 투쟁하진 않으셨지만, 한번 붙으면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가 있으셨어요. 어느 날 저에게 전화를 하셨어요. 내가 이렇게 됐다, 사정을 얘기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만나서 까페에서 선생님하고 얘기를 해봤어요. 제가 얘기 하면서 파악하려고 했던 건 이분이 의지가 있으신가, 몇 일 싸우다가 쪽팔려서 못하겠다, 교수가 이런 거 해도 되냐, 김동우 선생님 1인 시위 할 때 총장이 불러서 교수가 노동자같이 이게 뭡니까, 이래서 김 선생님이 내가 석공이지 무슨 교수였냐 하셨다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투쟁에서 좌절하는 건 그런 사소한 거 같아요. 근데 이 분은 성질이 있으시더라구요. 한번 붙으면 포기할 분이 아니더라구요. 선생님 하신다면 제가 영화 찍는 사람이니까 다큐 만들어서 다큐로 투쟁의 종자돈 만들어봅시다, 라고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막연했어요. 그냥 붙어보자, 더럽고 치사하니까 우리도 자존심 있는데 그렇게 한 번 붙은거에요. 근데 싸우다 보니까 그 적이 무진장 크고 무섭고 강했는데 붙어보니까 서서히 적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아주 강고해 보이는 적이지만 서서히 적 내부의 균열이 보여요. 여러분들이 차돌을 보면 안 깨질 거 같잖아요. 그것도 아마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거기도 균열이 있을거예요. 결국에는 그 균열을 찾아내는 힘은 의지고, 여러분들이 한 번 붙어보겠다고 훅하고 달려드는 자세가 필요하다는거죠. 결국에는 세종대 싸움은 김동우 선생님 혼자 이긴 것도 아니고 도와주신 분들의 힘만으로 된 것도 아니에요. 적의 내부 균열에 의해 무너진거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이 누굴 상대로 싸우던지 그 적에도 균열이, 약점이 있어요. 그 약점은 그냥 드러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정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덤빌때 드러납니다. 여기도 나오지만 설립자 내부의 균열에 의해 세종대 싸움을 이기기 된거에요. 이사장을 고발할 수 있는 그런 자료를 어디서 얻겠어요. 비리의 자료는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거지 외부사람이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죠. 근데 내부에 균열이 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거죠. 경우에 따라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거죠.

윤성호 : 이 부분은 잘라서 편집해서 UCC로 회자가 돼야 할 거 같아요. 한예종 처음 시위할 때 학생들이 유인촌이 오니까 자기도 모르게 깍듯하게 인사하게 되잖아요. 근데 학생들도 점점 더 단단해지는 거 같더라구요. 그런 게 희망의 증거인거 같구요. 마이크 넘기겠습니다. 여담으로 한예종 만큼 인연있는 학교가 세종대거든요. 학교에 있는 예수님 상 보면서 신해철 닮았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오늘 봐도 닮은 거 같아요.

관객 1 : 작업에 관한 감독님의 연출의도를 좀 더 여쭤보고 싶은데요. 우선 사학재단이 자본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해서 한예종이 적당한 비유는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여담이지만 제 친구가 건설회사 사장인데 이번에 4대강 수주를 받았어요. 1200억을 벌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는 그 돈을 벌어서 지방대 만 명 정도 되는 데를 인수해서 이사장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왜 그러냐 했더니 이사장을 해서 만 명 정도 인수하면 6개월마다 400억이 자기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그걸 갖고 다른 사업을 할꺼다, 하던데 결국 그런 사학재단이 자본의 문제와 밀접할 수밖에 없는데. 제가 보면서 작품을 보면서 궁금했던 건 결국 재단의 비리를 밝히는 데 있어서 김동우 교수님 같은 경우도 학자이자 예술가이지만 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나 계급의식도 많이 생겼을 거 같더라구요. 전반적이고 구조적인 얘기를 작업에서 확장시킬 수 있었는데 결말에서 이렇게 훌륭하신 분, 양심적인 분으로 얘기를 축소시켰던 점에 대해서 의아했던 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연출자의 의지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작품 전반에 대한 연출도 그런 갈등이 있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황철민 : 프로파간다를 하려면 교활해야 해요. 저는 이 작품을 하면서 관객에서 전달해야 하는 정보가 뭔가 생각했어요. 그 정보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떤 정보는 의식의 차원에서 전달해야 하고 어떤 정보는 무의식 차원에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관객과의 만남이라는 것은 두 가지의 전달방법이 조화롭게 됐을 때, 이게 결국 음식을 한다면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관객에게 충분히 정보를 전달했어요. 이성적으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했구요, 제가 관객들이 구체적으로 주제라는 측면에서 전달받게 하는 부분들은 축소를 시켰죠. 지금 얘기하신데로. 감성적인 부분으로 축소를 시킨거에요. 근데 이 안에서 자세히 본 관객이라면 한국사회, 한국사학의 문제가 뭔가에 대해서 이론적인 부분들은 접수를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끝까지 갔을 경우에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지만, 흥행에 더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요. 메시지가 강한 영화일수록 저는 감성적인 부분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실 관객들이 영화관에 오는 건 뭔가 보기 위해 오는거라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데 볼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지죠. 가장 쉽게 만드는 방법은 돈인거죠. 우리가 헐리웃 영화를 보면 기분 좋은 게 무진장 많은 돈이 투자가 됐고, 돈이 만드는 게 관객을 즐겁게 하는데 이런 영화는 그런걸 만들 수 없는 상황이고 담을 수 있는 내용이 제한 돼 있기 때문에 결국 다른 방법, 딱딱한 이야기만 전달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제가 할 수 있는 사소한 부분들을 통해서 관객을 통해 서비스 하는, 서비스 정신이 저는 좀 많아요. 독립영화하기엔 좀 아까운데(웃음). 이 영화를 보시면 음악이 죽여준다고 생각하실텐데. 이 음악은 김동우 선생님이 음악을 하셨습니다. 저는 굉장히 좋았구요. 그동안 음악을 담당해주는 분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김동우 선생님이 음악을 해주셨어요. 굉장히 감성적인 음악을 골라주셨고. 전체적으로 딱딱함과 물렁물렁함이 잘 조화를 이룬 작품이 아닌가 하는 자화자찬을 하곤 합니다(웃음). 죄송합니다.

윤성호 : 저도 독립영화 진행하기엔 좀 아깝죠(웃음). 제가 이 영화를 2002년에 봤습니다. 이때 제가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는데 저는 완벽한 작품 이런 건 아니겠지만. 이 작품을 경로로 해서 맑스의 저작을 읽어본 적 없다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걸 처음 느꼈던 거 같아요. 싸워야 할 처지가 돼 보니 노동자를 이해한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저에겐 그런 정도의 경로가 됐던 거 같습니다. 다른 질문.

관객 2 : 저 역시 예술대학을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학교에 존경할만한 교수님이 안 계셔서 실망을 많이 한 학생이었어요. 김동우 교수님께 질문하고 싶은데, 영화 초반에 소위 브루주아 예술가라고 감독님이 말씀하시는데 이런 과정을 겪으시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시간동안 쌓아 오신 게 쉽게 바뀔 거 같지 않거든요. 어떤 생각의 변화 과정, 이런 걸 겪으셨는지.


김동우 : 아침 9시에 학생들 등교할 때 점심시간 까지 기본 두 시간, 서비스로 한 시간 더 서있기도 하고(웃음). 저는 많은 타자들의 시선에 노출돼 있죠. 그들이 나를 보고 내가 그들을 바라보죠. 그러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죠. 가장 서글픈 건 동료교수였던 사람들조차도 나를 정문에서 피하기 위해서 다른 데를 보고 지나간다던지, 정문 앞에 영화 속에 나오지만 자동차 진입하는데 바로 그 앞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후문으로 다닌 사람도 있다고 하더만, 그래도 그 사람은 양심적이죠. 후문으로 다니면서 내 앞을 도저히 지날 수 없었다, 옆에 서줄 용기가 없었다는 분도 있었는데. 저는 잠시 차단기가 올라가면서 차가 서 있는 몇 초 사이에 다양한 인간 군상을 감상하게 돼요. 그 사람들과 나 사이에 차라는 공간적 차이는 있지만, 억지로 외면하려고 애쓰고, 열 명 중 한 명 정도가 눈인사를 고개를 살짝. 제가 이런 얘기를 드리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전 주명건씨가 고마워요. 이 세상을 보는 바른 시야를 갖게 해 준 거 같기도 하고, 잠시나마 세종대의 민주화를 4년 동안 좋은 선생님들 다시 모시고 민주적인 운영을 한 달 전까지 할 수 있었던 거. 질문의 답변이 빗나간 거 같지만. 그래요. 많은 철학책을 봐서가 아니라, 그런 당장 뜨거운 걸 만졌을 때 그야말로 ‘앗, 뜨거’ 하고 손을 놓는 동물적 반사작용에 의해서 저는 싸웠을 뿐이에요. 그 얘긴 봉변을 당하면 아까 맑스 얘기 나왔지만 그 얘기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해요.


무슨 얘기냐면 고난이 왔을 때 의식이 생기고, 그 의식이 행동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있겠죠. 누가 때리면 ‘아파요’ 혹은 ‘왜 때려’ 둘 증의 하나죠. 저항이냐 복종이냐. 저는 맑스처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쫓겨나고 보니 뒤늦게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해서 맞다고 생각했는데 한참있다 보니까 그건 반대의 경우도 되는거거든요.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거에요. 맑스가 살아있다면 당신 얘기도 맞지만 그 논리를 거꾸로 내가 무슨 생각하느냐가 내 존재를 규정하는거지, 교수 혹은 노동자라는 사회적 신분을 갖고 사람을 규정할 수 없다. 결국 존재가 아니라 의식이다라는 생각이 드는거죠. 많은 교수들이 해직 당했지만 저처럼 싸우진 않거든요. 다 아픔을 느끼지만 덤비지 않았거든요. 제가 1년 동안 안식년으로 나가있다가 들어 온지 10일 정도 됐는데. 한예종을 얼핏 알고 있는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 무식한 장관이 와서 횡포를 부리고 그런 정도 아는데. 훌륭한 교수님 많으시죠. 학생들이 필요하다면 따로 만나서 제 나름대로의 투쟁에 대해 필요한 말씀을 드리겠지만. 제가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나와의 싸움인거거든요. 물론 적과 싸우지만 그 적이 사실은 보이지도 않고 세종대와 싸우지만 세종대가 어디 보입니까. 세종대가 어딨어요. 건물이 있죠. 저와 세종대 싸움은 사실 저와 대한민국과의 싸움이에요. 조중동, 사법부,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게 가처분 신청해서 재판하고 명예훼손으로 대법원까지 가고 그런 일을 당하면서 저는 투사가 됐고. 솔직히 저는 이 싸움이 길었으면 분신 했을겁니다. 머릿속으로 와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는 내 마지막 저항의 모습은 무엇이냐. 극단적인 게 아니라 나의 미래의 모습을 그렸었는데. 예를 들어 싸우다가 국회의원이 만나주겠다고 하면 9시부터 오전에 서는 걸 국회의원 약속 때문에 못하고 일보고 밤 9시에도 와서 섰어요. 자랑 같지만 누가 보든 안보든 나는 선다. 밤에 와서 서면 누가 봐요. 수위 밖에 없어요. 깜깜한 밤이에요. 그 때 내가 와서 섰을 때 난 이긴다. 여러분들이 싸울 때 물론 도와주는 분도 있죠. 도와주는 분들 믿고 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열정이 있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는거죠.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이간질을 하고 김 교수 문제 있어 쫓겨난다고 할 때 너희들 가라 그랬어요. 나는 혼자 거꾸로 서서라도 돌아온다, 너희들 가라. 하여간 투쟁을 할 때는 나와의 싸움이고 하다보면 여러 연대 단체에서 도움을 줄 때는 눈물겹게 고맙죠. 그러나 내 스스로가 얼마나 이 싸움에 주역이 되느냐가 이게 가장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성호 : 저희가 2월에 월례비행 처음 시작했을 때 경희대 이택광 교수가 왔는데, 그 이후로 한 번에 교수 3명 모셔놓고 하니까 3교대 강의 하는 거 같네요(웃음). 저희가 시간도 됐고, 광고 드릴께요. 주최한 인디포럼도 독립영화의 가장 오래된 커뮤니틴데 저희도 비슷한 고난을 겪고 있어요. 매년 1000만원을 지원받았었는데 그걸 이번에 당연히 짜르더라구요. 저희 뿐만 아니라 이런 데가 많아서 저희가 사실은 분노 보다는 실소가 나오는, 웃긴 거 거든요. 저희가 9월 12일 토요일에 인디포럼 채무파티를 할거에요. 올해 인디포럼 행사를 하고 채무가 있는데 영진위에서 지원금 들어오면 갚는건데 그게 없어져서 천만원이 빚이 됐거든요. ‘그렇다면 십시일반’ 할건데(웃음). 그런 식으로 즐거운 액션을 하려고 하구요. 작은 승리들이 큰 승리가 되도록 땅을 다졌으면 좋았을텐데, 충무로 활력연구소 같은 소중한 미디어센터가 관료주의에 밀려날 때 그 때 확실히 버르장머리를 고쳐놨으면 좋았을텐데, 미리미리 연대하지 않은 것들이 아쉬운 시절같고. 교수님이 주명건에게 고맙다고 했는데, 월례포럼이 매번 MB 요정론으로 끝나요(웃음) 예술이 정치에 관심 안 가지면 정치가 얼마나 예술에 많은 간섭을 하는지 깨닫게 되는 요즘인데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듣겠습니다.

황철민 : 좀 늦었지만 이 자리에 우리 투쟁의 동지들이 와 계시는데요. 우리 투쟁의 리더역을 하셨던 분이세요. 우리가 승리한 다음에 사실은 재단 사무국장이 되셨어요. 그래서 지난 4년동안 민주적인 학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본때를 보이신 분인데 정권이 바뀌자마자 대기발령을 받으셨거든요. 지금 다시 야인이 되신 분인데 우리 사무국장님 잠깐 인사해주시죠. 앞으로 우리 투쟁의 중심이 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은아라구요, 학생과의 연대를 얘기했는데 김동우 선생님 투쟁하는 내내 같이 투쟁했던 제자입니다. 이런 분들이 없었으면 어쨌든 지금 완전 끝난 승리는 아지니만 이런 승리도 이뤄내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고맙게 생각합니다.

김동우 : 제가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배경음악을 편안하게 아무 때나 듣고 싶은 음악을 듣다가, 영화에 음악이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처음 느끼면서 영화가 하나의 언어라는 걸 느꼈어요. 장면 장면에 음악이라는 게 사전이 없는 언어인거죠. 왜 이 장면에 이 음악이 들어가야 하는가. 그리고 기조적으로 전체적으로 처량하잖아요. 교수가 쫓겨나서 서 있고, 너무 신파적으로 흐르기도 그렇고. 나름대로 제 의도가 있습니다. 음악이 가진 문학적 요소가 있는데 제일 마지막 곡 에디트 삐아프가 부르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라는 게 엔딩에 이 영화가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들 즈음에느 복직 꿈에도 못꿨어요. 솔직히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말이 안되니까 싸우는거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거대한 조직을 이기겠어요. 마지막에 어떤 음악을 할까 고민하다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에디트 삐아프 이 노래 가사가 과거의 내가 행복했던 슬펐던 다 잊고 제로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거거든요. 활기참, 미래에 대한 꿈의 느낌도 있지만 좋다, 난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겠다 하는 희망으로 이 음악을 썼거든요. 한예종 학생들이 민주적 투쟁을 하고 계신 거 같은데 우리 제로에서 다시 시작합시다.


글: 이도훈
녹취: 장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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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비행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 상영 현장을 가다

(영화비평 전문웹진 네오이마주(http://neoimages.co.kr)와 객원필자인 윤성호 감독의 수상한 통정이 시작되었다. 매월 인디포럼 상영회와 대담을 취재하여 기사화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인데, 그 첫 번째로 지난 2월 24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월례비행을 올린다.)

이젠 더이상 어울리는 단어가 없는 세상이다. 하수상하다는 말, 이상하고 기이한 시절이라는 말은 당연하고 진부하게만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그런 단어'들을 되뇌이지 않을 수 없는 건, 아마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상황 덕분일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그리고 갈수록 영화같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진다. 텔레비젼 앞에만 앉으면 속속들이 터지는 사건사고들덕분에, 창작자들은 참 살맛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반사적으로 우려되었던건 2009년차 비행을 시작하는 인디포럼 월례 상영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독립영화를 모르는 사람마저도 그 제목과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이하 뻑큐멘터리)>. 수도세 절약 운동을 벌이면서 길거리에 엄청난 물대포를 쏴대고,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철창행이 될지도 모르는 이 공포스런 사회, 그것도 저들이 '사건의 근원지'라 부르는 종로 한 복판에서 <뻑큐멘터리>를 상영한다니, 엄청난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창작의 자유마저 앗아가고 문화산업마저 시장경제의 힘으로 제압하려는 저들의 눈에 이건 일종의 '모의공모'인 셈이니까. 아니, 어쩌면 이건 '인디포럼의 역습'일지도 모르겠다.

<뻑큐멘터리>에 관한 나의 기억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 실패한 대학교 진학에 재도전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어느 날 문득 조선일보와 한겨레, 두 종류의 신문이 집에 배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한 신문이었고 한겨레는 엄마를 위한 신문이었다. 나는 두 종류의 신문 중 조금 더 색상이 화려하고 문장들이 유했던 한겨레를 택했다. 할아버지는 집에 잘 계시지 않아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 특정 당원들의 얼굴이나 한겨레 신문을 볼 때마다 '빨갱이'라는 단어를 쓰시곤 했다. 어쩐지 반감이 들었던 할머니의 '빨갱이'라는 단어는 내가 지지하고 관심가지는 정치색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이후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나 어머니와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갔을 때, 집에는 더이상 조선일보가 날아들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좌파를 지지하는 어머니의 충돌이 빚어지면 나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곤 했다. 유난히 박정희 이야기를 많이 하던 할아버지는 다행스레 어린 나에게까지 특정 정치집단을 옹호하기를 강요하진 않으셨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을 거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거쳐오는 과정 동안 그 어떤 교과서도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던건 박정희와 전두환에 관해 단 두 줄로만 묘사되어있던 국사 교과서였다. 전두환의 손녀와 3년 내내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들었던 이유인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국사 선생님은 그 부분만 나오면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문 투성이인 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처음 만난 (비교적)정치적인 다큐멘터리가 <뻑큐멘터리>였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던, 그리고 할아버지가 보셨던 신문인 조선일보가 한 달에 한 번 간격으로 찬양 기사를 싣곤 했던 '대한민국의 영웅' 박정희가, 그 영화 속에서는 철저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 접하고 배웠던 말이 바로 이거다. 대한민국 꼰대 1세대.

때문에 <뻑큐멘터리>를 떠올리면 담배를 피지 않는 나도 괜스레 담배를 입에 물고 싶어진다.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해서야 그동안 배워왔던 국사가 어느 정도 잘못되었고 어느 부분이 미약했는지에 대해 깨닫게 된다. 학교가 그런 것들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줄 의무는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인디포럼 <뻑큐멘터리>의 상영이 걱정스러운 동시에 반가운 이유는 아마 어린 시절 우파와 박정희, 그리고 조선일보에 대한 사적인 기억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 저녁, 조바심이 앞섰던 <뻑큐멘터리>의 상영은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며칠 전 모 마트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대량 구입하던 검정 잠바를 입은 아저씨들이 들이닥치는건 아닐까 무서운 감정이 앞섰지만, 많은 관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상영은 '안전히' 막을 내리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뻑큐멘터리>의 연출자 최진성 감독과, 윤성호 감독, 그리고 이택광 경희대 교수의 대담이 이어졌다.





윤성호 감독 (이하 '윤'): 8년 전에 최진성 감독에게 <뻑큐멘터리> 비디오테잎을 선물 받았는데 다 보진 못했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랜만에 다시 극장에서 보니 소감이 어떤가.

최진성 감독 (이하 '최'): 나도 아직 <은하해방전선> 안봤다(웃음). <뻑큐멘터리>는 2001년도 제작된 작품이고 나의 첫 작품이다. 그 이후로 단편 극영화나 뮤직비디오 등 여러 가지를 만들고 있는데, 어쨌거나 이게 내 처음 영화다. 영화를 보면 양가적인 감정이 생긴다. 27세에 만든, 27세의 최진성이 보여서 흐뭇하기도 하고,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요즘도 활동하시는걸보면 참 감정이 묘하다.

이택광 교수 (이하 '이'):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뻑큐멘터리>가 나왔을 때 나는 한국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 출범기에 유학을 갔고, 2004년도에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다큐멘터리에 관해 토론한다는 걸 듣고 얼마 전에 DVD를 받아서 처음 봤다. 유학하면서 딴지일보를 종종 보긴 했지만, 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빈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윤: 이번에는 최진성 감독의 연출의도를 새로 받기도 했는데, 박정희기념관은 이제 어떻게 된건가.

최: 그 이후는 모른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현재 박정희기념관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간간히 반발성기사로 여전히 한 두번씩은 나오는 것 같다. 물론 mb 시대니까, 잘은 모르지(웃음).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사건도 있다. 7년 전과는 달리 좋은 소식들이 간간히 들려오고 있다. 특히 허경영선생. 저 분이 이렇게 뜰줄은 당시에는 정말 몰랐다(웃음). 당시만해도 '듣보잡'이었는데. 그래서 작년에 되게 반가웠다. 감회가 새롭더라(웃음).

이: 박정희 기념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명박 정부가 과연 박정희기념관을 건립할까? 이명박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본다. MB는 노무현의 2세다. 제 2의 노무현, MB 반대로 하면 다 성공하는 세상이다. <워낭소리>도 그렇지 않은가. 상황이 바뀌었다. 다큐를 보며 뭔가 지금과는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것이다. <뻑큐멘터리>의 장점은 박정희 시대의 피해를 진상규명하기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박정희가 우리에게 뭘 해주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자본주의의 실체들이 명확하게 보인다. 재밌는건 영화 속에서 박정희를 극 옹호하던 사람들이 이제 MB정부에서 소외받고 있는 것이다. 진짜 주인들은 따로 있다. 그들이 바로 한국의 중산층이다. 한국 사회의 합리성을 박정희에서 찾는, 한국의 중간계급. <뻑큐멘터레>에사 희화되는 존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생존해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진짜 무서운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박근혜와 같은, 강남 조기유학파들의 우상과 같은 사람들. <뻑큐멘터리>는 파시즘을 보여주는 영화다. 박정희는 파시즘의 상징적인 이름이다. 우리 나라는 유일하게 삼성의 광고도 그걸 여실히 보여주지 않나. 김연아 같은 사람들의 성공사례들을 들먹이며 성공했다는 것 자체 때문에 모든걸 긍정화시킬수있다는 게 무서운거다. 독재를 거쳤지만 지금은 어쨌든 민주화를 이루지 않았느냐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된 것이고 가장 무서운 논리다. 지만원같은 선동가가 무서운게 아니라 조갑제같은 이데올로그들이 무서운거다. 프롤레타리아들이 끊임없이 소급하는 합리성이 박정희다. 그들이 보는건 인간 박정희가 아니라 영웅 박정희다. 이명박도 마찬가지다. 왜 MB를 찍었냐고 물어보는 물음에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답하더라. "이명박이 되면 나도 돈을 많이 벌 것 같아서." 그때부터 이명박의 실패는 내정된 거다. 노무현이 해놓은 일을 완성만 하면 될텐데 그걸 아예 청산해버렸다. 황당한 이야기지. 지금 우리 사회의 꼰대, 꼴통 박정희는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군림하고 있는거다.

최: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바뀌며 컨텍스트도 많이 바뀌었다. 안티조선도 없어졌고 이런 움직임들이 다른 식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겉으로는 개혁적이고 진보지만 내부로는 한국의 적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이게 MB로 넘어오면서 교활해지고 있다.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만든다면... 뭐, 지금은 무서워서 만들 수나 있을까(웃음). 농담이다. <뻑큐멘터리>를 상영하자고 했을 때 살짝 주저했다.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나.


윤: 우리도 선정할 때, 박정희 모자가 너무 크게 나와서 조금 주저했다, 우리도 나라의 지원금을 받아야하니까(웃음). 요즘 깊어진 인식과 함께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깐느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라가 깐느 갈 소재를 제공하는 것 같다(웃음).

최: 소재가 풍성하다는데 적극 동의한다. 노무현 때도 풍성했고. <뻑큐멘터리>때 같이 작업했던 분들 중 2002년에 노무현이 당선되며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다른 노선을 걷기 시작한 분들이 많다. 나름대로 고민 끝에 만든 게 <그들만의 월드컵>이다. 노무현을 적극 지지하는 개혁적 민족주의자들이 우리 사회를 망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같은 경우는 정말 소재가 많다. 영화인 입장에서 좋은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하는게 참 감사하다(웃음). 이런건 지금은 못 만들지 싶다. 27세의 최진성이 삐딱하게 만들었던 것이니, 지금과는 좀 다르다.


관객1: 박정희라는 인물은 분명히 악의에 충실한 면도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낸 사람이 아닌가. 그 시대를 겪지않아서 어느 편에 서야할지 잘 모르겠다. <뻑큐멘터리>의 지만원, 조갑제, 허경영 이런 사람들은 비판 받을 만 한데, 영화 속에서 일반 시민들을 비꼬는 태도는 조금 불쾌했다. 당시를 겪은 사람들 중 박정희가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박정희는 나쁘다고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근본적으로는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 인터뷰 자체도 너무 편향적이고, 인물소개도 되게 편파적이더라.

최: 일단 명백한 나의 입장이 <뻑큐멘터리>에 있다. 박정희에 대한 이데올로기나 담론이 이미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상황이었고 박정희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80%는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를 균형있게 만드는 건 의미없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살아있는 김대중, 김종필, 박근혜, 조갑제, 그리고 그 분들을 위시로 한, 박정희의 맥락 속에서 주워먹고 살고 있는 이회창같은 사람들. 이런 영향력이 30년이 넘게까지도 진행되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단순히 20년전에 죽은 박정희를 말하고자 한 건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뻑큐멘터리>가 토론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조그만한 가능성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제작한 것이다.

이: 질문하신 것 자체가 이미 바뀐 맥락이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는 냉전체제가 무너질 시절이다. 그들이 무너진다는 공포와 불안감은 영화 맨 마지막의 퍼포먼스에서 모두 드러난다. 민중에겐 이념이 필요없다. 좌파이념이든 우파이념이든 내가 잘먹고 잘사면 되는거다. 자본주의가 탈가치화시키는 것이다. 박정희를 제거한다고 열망이 사라지진 않는다. 풍자는 약자가 강자와 싸울 때 쓰는 가장 고전적인 수법이다.


관객2: 영화를 나쁘게 보진 않았다. 단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생각하는 부분은, 이 영화 이전에 필터링을 거치지 않았을 때, 반대입장을 가진사람에게는 비판의 여지를 줄 수있다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해 반하는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볼 수 있는 기능을 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문제에 대한 환기와 동시에 다수로 하여금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기능이라 생각한다. 의식이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설득 할 수 있는 다큐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들을 설득하기위해서는 실제로 공정하고 교묘하게 접근해야하지 않나.

최: <뻑큐멘터리>는 1960년대 중반부터 2001년도까지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상황들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억울함, 그리고 나의 의견이 담겨진 아카이브 같은 영화다.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불편하든 통쾌하든 모두 각자의 감정이다. 공정성이라는 부분은 어려운 문제인데, 실은 다큐가 그런 부분이 좀 어렵긴하다. 윤리나 도덕 교과서도 공정하지 않은데 공정하게 보고 있다. 신문과 언론도 마찬가지다. 공정한듯 말하는것. 시민단체나 유니세프 같은 곳에 만원, 이만원 기부하고, 지나가는 거지에게 천원 적선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조기유학보내고 서울대 보내는그런 착한 분들이 사회의 공정성을 흐리지 않나.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하겠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장면은 유치원 꼬마들이 박정희 묘에서 묵념을 하는 장면이다. 유아교육학과를 나온 똑똑한 분들의 인솔 하에 아이들은, 카메라방송의 지시에 따라 세 번을 반복해 묵념한다. 내려가면서 아이들이 용그림, 용그림 하지않나. 실제로 아이들은 용그림을 보고 싶는데, 선생들은 박정희에만 관심있다. 우왕좌왕 내려가면서도 꼬마들은 '한줄로'를 외치며 억지로 줄을 서고 있다. 이런게 중산층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윤: 중간계급을 쉽게 말해 '꼬실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에서는 중간층을 설득하는 것보다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최: <뻑큐멘터리>가 내 입장에서는 귀엽게 보인다. 들이대기도 하고(웃음). 지금의 나는 이러저러한 고민이 많다. 영화 만드는 게 주저스럽기도 하고, 다큐는 더욱 어렵다.
다른 독립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달라. 나는 이런 스타일로 영화로 만드는 한국 인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윤성호 감독같은 사람도 그런 부분을 굉장히 잘 건드린다. 다른 많은 영화들을 보면 좋겠다. 김동원감독님 영화들은 절실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나. 그런 건 정말 좋은 다큐멘터리다.


관객3: 박정희로 대표되는 근대와 현대사의 과정을 보면 이분법적사고만 전개되어왔다고 생각한다. 우파니 좌파니 하는 건 말장난같은 느낌이다. 근대사는 왜곡이 대부분이 아닐까. 젊은 세대들은 취업이 우선이지, 인문학이나 역사등은 관심 대상이 아니다. 그런 부분에서 자기만의 역사에 관한 입체적 사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부재된 상황에서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방법론이나 회화를 제시해주신다면.

이: 무조건 하면 된다. 이것저것 잴 것이 뭐 있나. 이론을 가지고 있으면 적용을 하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한국 사회는 궁극적으로 보수주의 국가다. 한국의 윗대가리에는 좌파, 우파가 없다. 다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 된다. 그래서 다들 미친듯이 좋은 학교를 보내려하는 것이다. 중간 계급들은 부동산박사, 교육학 박사, 모든 방면에 박사들이다. 그들에겐 비판적사고가 실종되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지금은 예술적 감수성, 인문학적 비판의식이 필요한 세대다. 이런 것들을 키워야 정말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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