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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1.10 [다즐링 주식회사] 우리들은 자란다



중학교 1,2학년 무렵으로 기억된다. 이제는 머리가 굵어져 부모님을 따라나서길 꺼리던 무렵, 부모님과 그저그런 여행을 다녀오던 기차안이었다. 아버지가 “잠깐 나와봐” 하시면서 기차 제일 뒷칸으로 나를 부르셨고, 의아해하며 문을 열고 따라 나갔더니 어슴푸레한 저녁 어둠 속으로 기차길이 곡선을 그리며 사라져가고 있었다. 기차 끝에서 바라보는 철도레일의 곡선과 풍경, 아버지는 내게 그 풍경을 보여주었다.


[로얄 테넨바움]으로 웨스 앤더슨을 알게 된지 5년쯤 되었다. 테넌바움 가의 사람들에게 반해 웨스 앤더슨의 전작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바틀 로켓]을 찾아보고 그 후 우리나라에 극장개봉 없이 바로 DVD로 직행한 [스티븐 지소와의 해저생활]도 보게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신작 [다즐링 주식회사]는 운좋게도 극장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론 적고 한편으론 적지않은 웨스 앤더슨의 필모그래피들은 내게, 사춘기의 문턱 무렵에 보았던 여행길의 철도레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도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무렵의 기차길 말이다. 무엇인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도 다 두 줄 기차길의 완만한 곡선처럼 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는 자갈길은 손에 잡힐 것 같지 않다.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무렵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지만, 이렇듯 짧거나 긴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때는 더욱 그렇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역시 그런 느낌을 선사한다.

언제나 남들보다는 한발짝 뒤지고, 남들과는 좀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사는 인물들. 몸은 다 자란 어른들이지만 하는 짓은 마냥 어린애같기만 한 주인공들. 그래도 정작 자신들은 한창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로 깊은 고민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들은 일련의 경험을 겪고 나서 한뼘 자라고 변화한다. 훌쩍 성장하는 것이다.

[다즐링 주식회사]도 앤더슨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이런 감성은 여전하다. 주인공 삼형제가 아웅다웅 하는 모습부터, 어머니,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까지 전작에서 나왔던 캐릭터들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삼형제가 어머니를 만나러 인도여행을 하는 내내 아버지의 부담스러운 여행가방 풀셋트를 끌고 다니는 모습이나, 아버지의 물건을 두고 유치한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이 그렇다. 우리 자신을 찾자며 인도여행에 나서지만 이들에게 결핍된 부분이 인도라는 땅에서 찾아질 리 없다.

급류에 빠진 인도 아이들을 구하고 이 마을에서 아이들의 장례까지 참여하고 다시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무언가 변화가 있음직도 하지만, 전작에 비하면 그 경험의 진실성이 조금은 덜 와닿는다. 인물들 사이의 적극적인 사건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인도’라는 공간에 너무 많이 의지하는 느낌도 든다. 인도의 향토적인 색채와 느낌은 화면가득히 향기롭지만 삼형제의 눈에 비친 인도의 모습이 너무 표면적이라서, 마치 19세기초에 동양에 발을 디뎠던 서양인들의 신기한 시선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피할 수 없다.

사실 [다즐링 주식회사]가 선사하는 웨스 앤더슨 만의 매력은 인도에서 수녀로 있다는 어머니를 방문했을 때다. 삼형제는 어머니를 애써 찾아가지만 어머니는 그날 밤 어디론가 떠난다. 다시말해 도망치는 것이다. 아니, 수녀가 되었다더니만, 아들들조차도 품에 안아줄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이기적이고 약하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다.

앤더슨의 영화에서 뚜렷한 점은 나이든 부모들의 허약한 존재감이다. [로얄 테넌바움]에서는 진 핵크먼이 그 역할을 했고,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스티븐 지소..]에서는 빌 머레이가 그랬다. 전작들에서는 주로 아버지들의 철없는 모습을 부각시켰는데, 여기서는 어머니다. 삼형제는 아직 여전히 불안해하고 누군가에게 끝없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하는 수다장이지만, 서로에게 충고를 해줄때면 또 가시돋친 반응을 보일만큼 예민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없다. 부모님의 존재는 허약하고 부실하다. 부모님 또한 그들만큼 어리광쟁이에 불과하다.

웨스 앤더슨은 늘 이렇게 홀로 완벽하지 못한 인물들의 불안감을 솔직하게 드러내도록 해주고, 신경쇠약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과잉의 수다를 떨어대고 또 한가지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그들의 마음 속에 아직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앤더슨 영화 속의 인물들이 엉뚱하고 이상한 행동, 때로는 밥맛없는 가식적인 행동을 보여줌에도 그들을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아마 그런 점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 말이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는 삼형제의 여행이라는 경험을 한 뒤, 어머니의 존재도 그들처럼 약하고 겁많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본 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거추장스러웠던 죽은 아버지의 여행가방셋트를 과감히 버리고 달리는 기차에 뛰어오른다. 특별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들의 마음은 한뼘 자랐다. 여행길에서 돌아올 때의 느낌이 그렇듯이 말이다. 돌아온 집은 떠날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무엇인가 마음 속에서 조금은 달라진 경험, 그것이 여행이라면 말이다. 아주 자세히 관찰하지 못하면 알아차릴 수 없을, 그런 마음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웨스 앤더슨의 감각이다.

특히 짧게 지나가지만 정말 인상적인 장면은, 기차 한 칸마다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공간 속에 들어가 있는 장면이다. 배경은 분명 달리는 기차 안이지만,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을 연출하고 칸에서 칸으로 이어지도록 연결되어 있다. 이 장면은 [스티븐 지소..]에서 나왔던 배의 모습과 비슷한데, 한사람 한사람이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독립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웨스 앤더슨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은 독특하다면 독특하고 이상하다면 이상하달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긴 기차처럼 어디론가 가고 있는 것, 그것이 삶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옆 칸을 소심하게 똑똑, 두드린 뒤, 그 사람과 인사를 해볼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삶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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