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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4

문학이 80년의 광주를 다뤄온 어떤 방식
<봄날>과 [화려한 휴가]의 차이


 ‘아아, 끝내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이 나라의 국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서울은, 부산은, 대구 ․ 인천 ․ 대전 사람들은 이 순간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토록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왔는데도, 끝끝내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고 마는구나. 아아, 결국 우리들만, 우리들의 도시만 이토록 홀로 처참하게 버림 받고 말아야 한단 말인가……’
(임철우, 『봄날5』, 문학과 지성사, 336p)



80년 5월 항쟁의 막바지, 광주 시민들은 외로움과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27일 새벽, 이 고립된 도시로 그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길 바라마지 않았다. 마침내 공수부대가 도청을 밀고 들어왔을 때, 자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으리라. [화려한 휴가]에서 신애(이요원)가 27일 새벽, 가두방송으로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라고 절규하던 그 목소리야 말로 광주 시민들이 그토록 원하던 투쟁의 요체였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인간 최고의 의무를 타인을 기억하는 데 있다고 했던가. 광주를 기억하는 건 결국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역동의 시대를 살아내 온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 거기에서 바로 광주를 되돌아보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의 문제는 중요하다. 추억으로 고착화 시킬 것이냐, 여기, 오늘, 현재와 맞닿아 인식하느냐는 큰 차이를 지닌다. 물론 장르의 차이를 인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에 바로 2007년의 [화려한 휴가]가 지니는 시간차와 우리 문학이, 우리 소설이 견지해 왔던 온도차를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살아남의 자의 슬픔과 참여의식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밀양]의 모티브를 제공해 준 이청준의 단편 소설 「벌레 이야기」는 광주 항쟁의 책임자 처벌을 둘러싼 당혹함을 은유한다. 아들을 잃은 어미가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다는 살인자. 이청준은 광주 청문회가 한창이던 1988년, 한 유괴범이 사형 직전 종교로 구원을 받았으니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사건을 화두로 삼았다. 이제는 노작가가 된 이청준은 20년 전, 기가 막힐 정치적 화해 제스추어를 보고 인간 심리의 본질적 문제로 심화 확장시킨 작품을 내놓은 셈이다.

관점을 달리 할 수 있겠지만 「벌레이야기」처럼 80년대 광주를 다룬 소설들은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탄압 앞에서 암울한 은유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정권은 지성계를 대표하던 두 계간지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 강제 폐간하는 것은 물론 고은, 송기숙, 황석영 등 광주와 관련됐거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한수산, 현기영 등을 보안사로 끌고 가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 문학은 공히 1980년대 초, 중반까지 오월, 남쪽 등으로 은유적인 형상화 작업을 거쳐야 했었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다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중에서

강냉이 풋고추/ 눈 속의 겨울 애벌레와도 같은/ 죽지 않는 이 땅의 서러운 힘들이/ 저 숨죽인 그리움의 밀물 소리로/ 우리 쓰러진 가슴 위에 피어나고 있음을./
-곽재구, 「그리운 남쪽」중에서

우리 시에 있어 광주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아도르노의 테제와 비견될 만하다. 본래 자아와 세계가 일치하는 속성을 지니는 서정시는 물론 80년 이후 우리 시 중 일부는 좀 더 직접적인 운동성을 뛰어왔다. 80년대 초반 발행된 계간지 ‘오월시’를 본거지 삼아 지속적으로 광주를 알레고리로 녹여내던 시인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시대 분위기를 외재화하며 광주를 직설적으로 끌어오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고은, 황지우, 김준태, 김용택, 백무산, 조태일 등이 오월을 노래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까지 김남주의 「학살」과 같은 연작시나 광주항쟁 관련 시선집인 『누가 그대 큰 이름 지우랴』나 『하늘이여 땅이여, 아아 광주여』가 묶여져 나온다.

한편 광주와 문학과 관련 빼놓을 수 없는 텍스트가 1985년 소설가 황석영이 전남사회운동협의회와 함께 발간한 광주 민중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다. ‘5.18’을 몸소 체험한 200명 이상의 광주 시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이 기록은 80년 5월 광주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첫 번째 성과물이다. 이전까지의 소극성과 달리 광주와 관련한 단편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것이 이 시기며, 이후 6월 항쟁과 맞물려 광주를 노동자 계급의 시각에서 재조명한 홍희담의 「깃발」이 발표된 해도 바로 1987년이다.

80년대 후반 광주는 리얼리즘과 노동문학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쳐버린 소녀의 독백체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진술한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장선우의 [꽃잎]을 낳았고, [박하사탕]에서 공수 부대원을 시작으로 참호하게 망가져갔던 영호(설경구)는 정도상의 「십오방 이야기」에서 시민군인 동생을 사살한 소대장을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가 대학생들과 마주하게 되는 공수 부대 출신 만복의 형제와도 같다. 이밖에 지식인의 부채의식에 초점을 맞춘 「밤길」, 광주출신 소설가로 유명한 공선옥의 「목마른 계절」, 이순원의 「얼굴」, 문순태의 「일어서는 땅」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성과 신진 작가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시각에서 광주를 형상화해 낸 것이다.

물론 그 전까지 광주의 아픔을 꾸준히 다뤄 온 작가는 단연 임철우다. 80년 5월, 전남대 영문과 출신이던 그는 자기 체험의 참혹함을 작품세계에 꾸준히 녹여냈다. 아이들을 낳지 못하는 마을(「불임기」)로 광주를 형상화하거나 수배로 열다섯 곳이나 거처를 옮기거나(「동행」) 마지막 밤 친구의 외침을 묵살하고 미쳐버린 친구(「봄날」)로 천형과도 같은 부채의식을 소설 속에 그려왔다.

하지만 미시사와 개인주의 열풍이 휩쓸고 간 90년대 이후 문학은 더 이상 광주를 기억하는 것에 게을러 진 것도 사실이다. 광주에 관련된 소설이 거의 90년대 초반까지 집중됐으며 2000년 이후 관련된 작품이 홍희담의 소설집 『깃발』, 송기숙의 『오월의 미소』, 황지우의 희곡 『오월의 신부』정도라는 점은 27년이란 세월을 감안해도 아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들이 광주를 놓아 주고 동시대로 시선을 옮긴 것은 무엇보다 1998년 5부작으로 발간된 임철우의 『봄날』이 이루어 놓은 성과 때문이기도 하다.



총체성을 담보로 한 고통의 성과물

“한때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흐린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시간들. 그 시간 속의 목소리, 웃음, 빛깔, 체취, 움직임들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을 거침없이 거슬러 올라, 오래 전 지상에 머물렀다 떠난 무수한 인간의 꿈과 절망, 사랑과 고통에 생명을 불어넣어 우리들의 눈앞에 되살아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그들과 다시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를, 나는 꿈꾼다. 그 가당찮은 망상이, 혹은 끝내 버릴 수 없는 소망이 내게 소설을 쓰게 한다.”
(임철우,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2002.10.09, 『한국일보』 인터뷰 중에서)



5부작 『봄날』은 공간적으로는 광주, 시간적으로 5월 17일에서 27일 새벽, 그 열흘간에 집중한다. 극중 영남대 대학생인 명기의 30일자 에필로그는 다시금 시작해야 한다는 작가의 다짐이며 서울은 공수부대가 광주로 입성하기 직전 필연적으로 등장시키는 동국대가 전부다. 임철우는 그간 단편적으로, 은유적으로, 후일담 형식으로 파편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광주를 정면으로 돌파해내기 위해 10년을 쏟아 부었다. 귀신들의 원혼을 달래어 온 고통의 그 10년.

임철우는 소설적 리얼리티는 물론 총체성을 담보해내기 르포 형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드’ [24시]의 시간 단위는 아니더라도 마치 황석영의 항쟁 기록에 기초한 듯 날짜와 시간을 명기해 시시각각 급박하게 돌아갔던 당시 광주의 상황을 복원해낸다. 여기에 격렬한 시위의 복판이던 금남로와 도청을 중심으로 광주 시내 지도와 철저히 봉쇄된 언론을 대신했던 ‘투사회보’의 내용, 계엄군의 경고문, 그리고 사망자들의 실명과 정확한 일시, 사망 경위까지. 이 같은 실제 기록은 5권의 막바지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5.18’ 일지와 함께 픽션을 넘어 광주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특히 소설 속 생생하고 세세하게 재현된 참살의 현장을 목도한 뒤, 97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석방될 때까지의 일지를 읽고 있노라면 학살자에 대한 분노는 배가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은 6.25의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아버지 한원구의 세 아들, 무석, 명치, 명기다. 초반과 말미에 등장하는 한원구가 광주의 비극이 바로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맞닿아 있음을 명시하는 인물이라면 집을 나온 일용 노동자 무석, 강원도에서 근무하다 고향인 광주로 차출된 공수부대 하사 명치, 전남대 연극반 단원이자 투사회보 선전 작업에 뛰어드는 명기는 광주 항쟁을 구성하는 세 축을 대변한다. 여기에 계엄군의 비인간적인 폭력에 맞서 항쟁의 한 복판으로 뛰어드는 무석의 노동자 친구들, 실존인물인 윤상원에서 따온 민주재야 세력을 대표하는 들불야학의 윤상현, 무력했던 언론과 지식인을 대표하는 기자 김상식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또한 참혹하게 죽어갔던 사망자들의 다성적 목소리도 주변인물과 엮어내 소설적 구성에 무리 없이 담아내고 있다.

『봄날』이 담보해낸 총체성은 열흘간의 대하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다층적인 인물들과 생생한 재현이 전부는 아니다. 명치와 그 동료들의 갈등을 통해 신군부에 꼭두각시였던 계엄군 개인의 혼란은 물론 당시 무능했던 언론이나 민주 재야 세력의 현실을 직시함으로서 균형 잡힌 시선을 견지한다. 또 윤상현과 김상섭의 대화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민주 항쟁과 학살을 묵과한 미국의 자국 중심의 이기적 행태도 자연스레 고발된다. 이러한 현실 인식과 함께 ‘5.18’의 시작과 최후까지 저항했던 원동력이 풀뿌리 같은 생명력을 지니고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이었을 분명히 한다.

‘폭동이 아니야, 이 자식아. 이건 항쟁이야. 저 수많은 시민들은 지금 저마다 목숨을 내걸고 싸우고 있는 거야. 네 눈엔 저게 폭동으로 밖엔 보이지 않아? 폭동이라니,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폭동이라는 게냐’
(임철우, 『봄날 3』, 문학과 지성사, 221p.)

‘인간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니 군중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김상섭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임철우, 같은 책, 229p.)

하지만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봄날』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계엄군을 몰아낸 뒤 시민들이 맛 본 해방구의 짜릿함도, 아버지와의 화해의 순간도, 달콤하지만 짧게 끝나버린 첫사랑 때문만도 아니다. 학살의 끔찍한 현장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은 소설을 읽는 동안 어쩌면 찰라 일지 모른다. 임철우가 복원해 낸 10년간의 기억은 우리에게 심상한 정서와 뚜렷한 분노, 이 두 감정을 나란히 전달해 준다. 도청에서 사그라져든 목숨들, 그리고 숱한 부상자들. 왜 그들이 자국 군대에게 처참하게 학살당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물음이 결국은 우리 현대사에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분노와 더불어 또 다른 현실 인식을 체험하게 된다. 역사에 결코 단절이란 있을 수 없다는 진실을 믿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2007년의 블록버스터 영화 [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에서 김지훈 감독이 작가적 인장을 찍은 단 한 장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라스트 신애의 상상신이다. 죽은 자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고 홀로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살아남은 자 신애. 임을 위한 행진곡이 깔리는 이 라스트 신은 상업적인 엔딩에서 약간은 비껴나 있지만 광주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민주주의란 정의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신념대로 의롭게 앞서 간 이들과 반면 따르지 못하고 폭도로 내몰려야 했던 산자 신애. 하지만 그 간의 역사적 궤적을 놓고 봤을 때 그들이 하늘에서 웃고 있을까 하는 문제는 곰곰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27년이 지난 지금, ‘5.18’을 100억짜리로 재현된 상업영화 한 편으로 소비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 말이다. 어쩌면 망각하고 있었지 모를 우리들을 위한 면죄부의 증거로 이 블록버스터를 소환해 낸 것은 아닐까.

바꿔 말하면 너무 늦었거나 너무 타협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서울 그리고 지식인들인 어디에 있었느냐를 자기 성찰한 [꽃잎]이 나온 것이 1996년이다. 10년 전에도 발포 순간의 아픔은 소녀(이정현)가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지든 흑백 플래쉬 백으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민우(이준기)가 준우(김상경)의 품안에서 죽어가고, 나주댁(나문희)이 아들의 관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신애가 준우와 작별하던 그 눈물의 스펙터클을 위해 100억 들였다는 점에서 [화려한 휴가]는 너무 타협했다. 대중들의 감성에 맞게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유사한 구조로 만들었다지만 영화를 본 고등학생이 왜 사건의 인과관계 빠져있느냐는 불평이 나올 정도라면(김귀현, “10대들이 말하는 영화 <화려한 휴가>, 그리고 '전 장군'”, 『오마이뉴스』, 2007.08.12.) 이건 영화적인 타협이자 불성실한 계산으로 봐도 무방하다. 곱씹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의 정점에 광주가 그 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명시했던 [박하사탕]과 비교해도 너무 늦었다. 한 논객이 왜 하필 지금이냐며, 주인공들이 호남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며 대선용 영화라고 헛소리를 해대는 건 전적으로 감독과 제작진의 탓이다.

[봄날]로부터 10년 뒤, 80년 5월로부터 27년 만에 도착한 [화려한 휴가]는 절반의 공과는 가져갈 것이 분명하다. 2시간 동안의 감정의 소비를 통해 공적 기억의 자명종을 울리는 일.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신애의 절규는 아프게 다가온다. 망각은 과거 중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망각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망각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라는 야스퍼스의 전언이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 유의미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봄날]이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과 같은 필독서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것이 유감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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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침묵하게 하는 영화

필진 칼럼 2007.08.07 13:19 Posted by woodyh98
2007.08.05

해가 뉘엇해지자 사자산 기슭에 있는 고추밭에 농약을 하고 나서 우리 가족은 극장에 '화려한 휴가'를 보러 갔다. 노인정에 계시는 할머니를 모셔다가 저녁식사를 급하게 마치고 목포까지 새로 뚫린 길을 따라 내내 달렸다. 영암을 지나 목포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그 길이 막히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한여름밤은 여전히 더웠다.

엄마와 아빠에게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화려한 휴가'와 같다. 살풋이 긴장된 부모님들의 들뜬 마음을 알 것 같았지만,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을 정도로 영화에 집중하셨고, 언니와 나는 옆에서 키득거렸다. 평소에 말이 많기로 유명한 아빠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내내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80년 오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 가족은 서울에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앞에서 둥그렇게 서있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너무 가슴이 아리고 아파서 눈물이 안나오더라. 그 때가 생각이 나서..." 광주,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희생의 역사. 나는 영화를 보고 울지 않았다. 극장안의 관객들은 이준기와 안성기가 죽을 때, 안타까움의 탄성을 질렀고 김상경의 마지막 총알세례를 마음을 쥐어뜯으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영화안에서 광주와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저렇게 다죽고 끝난거야?"

"응, 그랬나보지."

"그래서 어떻게 된거지?"

"뭐가?"

"공개사과를 한다던지, 보상을 한다던지..."

"몇 차례 보상을 받고 그러지 않았나?"

...중략(전모씨에 대한 욕설이 오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무섭다야."

"응... 무서워. 불공평해."

내가 고등학생일 때 매년 5월이면 광주에서 5.18관련 행사가 있었다. 전라도 각지에서 학생들과 사람들이 모였고 금남로는 80년 그 때처럼 시민들로 가득했다. 잔뜩 흐린 회색빛 오후,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 그 음울한 분위기에 나는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었다. 이발사였던 사람, 택시 기사였던 사람, 집에 가던 학생, 시내에 나온 사내, 길 가던 아주머니, 광주에 있던 누구라도 희생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어떤 아저씨는 광주가 고립되고 시민군으로 싸우던 그 몇일 동안, 태어나서 처음 누렸던 자유와 연대의 분위기를 꿈꾸듯 말했었다. 모든 시민이 친구요, 동지였다고. 광주에는 도둑도 없고 사람에 대한 의심도 없고 슬픔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이상 공동체였다고. 그 힘, 그 에너지는 결국 짓밟히고 끝나버린 걸까.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나는 총알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생각만큼 괴롭지 않았다.(영화니까) 내가 생각하던 광주와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에 80년 5월의 광주가 장식이나 배경처럼 놓여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더 뜨거웠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다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으로 침묵해야 한다면, 그건 옳지 않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나 자신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감정의 정도를 넘어서버렸다. 그래서 이제 영화와 역사가 관계를 맺는 것과 영화와 사회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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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를 향한 어떤 시선

필진 칼럼 2007.07.30 16:11 Posted by woodyh98
2007.07.28

 <화려한 휴가>를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실 영화를 보기 훨씬 전부터 <화려한 휴가>의 존재가 내심 불편하고 언짢았다. 5.18 민주화운동을 신파 코드로 접근하는 상업 대중영화. 이런 종류의 영화는 대개 타자화의 오류를 겪기 마련이다. 과거에 이런 저런 슬픈 일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는 얼마나 안락하고 평안한가, 라는 안일한 이데올로기. 그 질퍽한 상업화술과 짜게 식은 눈물 한 방울의 신파 속에서, 과거의 비극은 흑백사진 속에 영원히 봉인된 박제가 된다. 하지만 2007년 한국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5.18 민주화운동은 조금도 치유된 과거가 아니다. 차라리 현재진행형이다.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있는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없는, 그래서 용서를 하고 싶어도 용서를 할 수가 없는데 엉뚱한 사람들이 이제 모두 다 용서하고 치유와 화해의 시대를 열자며 문학을 하고 시를 쓰고 대리석을 세우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려 정치적 면죄부를 팔아 챙기는, 요컨대 그런 상황인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그 이름만 폭동, 내란, 사태, 항쟁, 민주화운동으로 고루 바뀌어왔다. 도대체 치유된 건 뭐고 해결된 건 뭔데 어떻게 추억이 가능하단 말인가. 게다가 <화려한 휴가>를 보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인양 포장하는 광고는 진심으로 수준 이하다. “아직 치유되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상업영화의 위험성”에 대해 언성을 높여가며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영화를 도마 위에 올려 욕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화려한 휴가>는 최소한 이 피비린내 나는 상흔을 ‘그 옛날 아문 딱지‘ 즈음으로 느슨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우리를 기억해주라”고 절규하는 여주인공의 목소리와, 결코 이뤄질 수 없었던 결혼식 장면으로 채워진다. 기념사진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장면 속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은 모두 미소 짓고 있는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 혼자만 더 없이 절망적으로 비극을 곱씹는 표정이다. 여태까지 당신들 앞에 재현한 역사의 비극이 결코 끝나지 않았고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그 슬픔이 이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위로 우리 앞까지 주욱 그어진 연장선을 떠올렸다. 여기에 방점 따윈 없다.

그 상업적인 구술방식에 있어서도 생각을 달리 해볼 가치를 느꼈다.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선데이>같이 누수 없고 무미건조한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의 일차적 목적이 돈벌이, 이차적 목적도 돈벌이, 아무튼 무조건 많은 돈벌이에 사활을 다 바친 영화라 할지언정(사실이 그렇다), 그래서 그 속의 얄팍하나마 존재하는 진정성이 모조리 7000원과 등가로 매겨지는 가치라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건 궁극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누구나 5.18을 이야기하지만 놀랍게도 그 날 정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아는 사람은, 혹은 부러 알아볼 의지를 가진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심지어 북한 개입설을 여전히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바라볼 때 <화려한 휴가>가 보다 더 대중적인 화법으로 스스로를 구축한 건 영리한 선택이라 할만하다. 그간 한발을 걸치던 두발을 걸치던 애매하게 기대던 5.18을 소재로 가져갔던 영화들을 떠올려보라. 하나같이 지식인의 제 잘난 회의와 단절의 한숨에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그 전부를 싸잡아 합쳐도 <화려한 휴가>가 광주의 진실에 접근하는 얇고 얕은 울림에 미치지 못한다.

이 영화의 진짜 위험성은 그 안에 재현된 상황들을 ‘극적으로 과장되거나 축소된 이야기’라고 여기는 게 가능하다는데서 발생한다. 이건 역사를 극화하고 각색한 상업영화가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양날의 폭력성일 것이다. <화려한 휴가>는 실제 광주에서 벌어진 도륙의 현장을 삼분의 일밖에 투영해내지 못했다. 이를테면 발포 전의 단계에서 사용된 총검과 이를 둘러싼 살풍경 따위는 12세 관람가 대중영화의 속성상 아예 증발해버렸다. 분노의 이데올로기, 즉 지역감정을 조장한 정권과 그에 편승한 사회가 이후 어떻게 교미하고 프로스포츠 같은 오락거리로 광주를 희석시켰는지에 대해선 아예 다룰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폭력의 강도나 흘러내린 피의 절대적 양, 무엇을 얼마나 더 깊고 너르게 보여주느냐가 아니다. <화려한 휴가>는 당신의 지갑 가까이 가 닿은 지극히 속물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구축했지만, 무게 잡은 지식인의 담론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 영화는 가장 직접적이고 상업적인 방식으로나마 광주와 관객을 소통시킨다. 누군가의 실패한 과거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현실로 기억을 연장시킨다. 이 얄팍한 상업대중영화에는 치유되긴 커녕 고름이 질질 흐르고 있는 상흔을 좀 더 공격적으로, 정밀하게 다루는 작품이 나올 수 있는 시장적 토대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 광주의 진실을 혼자만의 문제의식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 따윈 추호도 없다. (니들이 뭘 알아, 식의 비평은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공유되야 할 이야기고 울림이다. 금새 짜게 식을 울림이라고, 뜨겁게 80년대를 논하다가 냄비바닥에 그을림으로 남은 듯한 386 세대를 보라고 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화려한 휴가>는 기대 이상의 제 몫을 했고, 그 이후는 어찌됐든 관객들의 책임인 것이다. 이 영화의 상업성에 찬성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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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더 뜨거웠다면...

필진 리뷰 2007.07.27 15:30 Posted by woodyh98
2007.07.27

5-18 광주 민중 항쟁에 대해 조금만 정보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화려한 휴가>의 시민군들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즉 <화려한 휴가>의 귀결은 장엄한 죽음으로의 행진에 다름 아니다.

<화려한 휴가>를 가족들과 함께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내는 펑펑 울음을 터뜨렸고 70대이신 아버지(참고로 나의 아버지께서는 늘 정치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선택을 하셨던 분이다)께서는 ‘전두환’에 대해 분노하셨다. <화려한 휴가>는 어느 정도 영화 자신이 의도하고 있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일으키도록 한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는 보고 나서 100% 동의하기에는 영화의 힘이 부족하다. 필자가 느끼기에 이 영화의 비판 지점은 ‘너무 감정적’이라서가 아니라 좀 더 ‘감정적’이고 뜨거웠어야 한다는 데 있다.

지식인은 없다.

이 영화의 연출자가 장선우(<꽃잎>)나 박광수(<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또는 이창동(<박하 사탕>)이나 봉준호(<살인의 추억>)나 박찬욱(<공동 경비 구역 JSA>)이 아니라 김지훈(<목포는 항구다>)인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으며 실은 많은 사람들이 ‘광주’라는 무게 때문에 애초부터 많은 우려를 낳았었다. 앞서 말한 장선우와 박광수 그리고 이창동은 이미 한국 근현대사의 무게를 담아냈던 영화들을 연출한 바 있고 봉준호와 박찬욱은 그들의 출세작들을 통해 시대의 공기를 오롯이 담아내는 능력을 선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제까지 가장 광주 항쟁을 가장 극적으로 담아낸 영화는 <박하사탕>이다.)

이유가 어쨌든 김지훈 감독의 전작은 뚜렷한 관객층을 대상으로 한 영화였고 그 영화의 정서는 매우 표피적이고 감정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김지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상업 영화인 <화려한 휴가> 역시 매우 표피적이고 감정적인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지식인’이 거세되어 있다. 박광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장선우의 <꽃잎>에는 지식인의 시선이 포함되어 있으며 영화 전반에 그런 지식인들의 무력감과 안타까움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이 영화들의 제작을 추진했던 ‘먹물’들을 위한 장치지만 다수의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영화적 안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의 제작진은 처음부터 이 영화가 좀 더 대중적인 호흡의 영화가 되기를 바랬다. <화려한 휴가>의 등장 인물 중 지도층 인사는 신부(송재호) 정도가 유일하며 주요 등장 인물은 광주 항쟁에서 최대의 희생자를 낳았던 전남도청의 시민군들이며 그들은 모두가 평범한 시민들이었으며 결코 지식인의 범주에 포함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광주의 에이리언, 공수부대

<화려한 휴가>는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최소화한다. 이 영화에서 ‘공수’들은 일종의 ‘외계인’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민우(김상경)은 녹색이 흐드러지는 시골 길에서 택시를 몰며 찬란한 태양광을 즐긴다. 이 안온함이 영화의 도입부를 장악한다. 천애고아인 민우와 진우(이준기)의 일상, 진우와 친구들, 코믹한 용대(박원상)와 인봉(박철민)의 에피소드, 부녀간인 신애(이요원)와 흥수(안성기)의 식사 장면, 성당의 야유회 등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이 영화의 전반부를 장악한다. 실은 이 영화의 전반부는 민우의 신애에 대한 연정(戀情)을 묘사하는데 할애되며 그들을 둘러싼 평화로운 공동체 ‘광주’를 포괄하여 설명한다.

그 공동체의 안온함을 위협하는 것은 위장복을 입고 곤봉과 M16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에이리언’ 공수 부대이며 그 뒤에는 자신들의 부하마저 ‘군사용’으로 여기는 정치군인 최장군이 있다. 이 영화에서 ‘공수부대원’들은 단 하나의 이미지로 표상된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끊임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에이리언들이며 킬링 머신이다.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그들은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괴물들이다. 이 영화에서 역사의 진짜 괴물인 ‘전 장군’은 대사로 두어 번 언급될 뿐이다. <화려한 휴가>는 1980년 당대의 복잡한 정치적 음모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양심적인 퇴역 군인으로 묘사된 흥수가 그런 상황들을 간략히 전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며 ‘애국가’와 함께 자행되는 학살 장면이 그 괴물의 실체가 ‘국가’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영화의 ‘악’의 실체를 뭉뚱그려 설명해 놓은 후 <화려한 휴가>는 광주의 영웅들의 어쩔 수 없는 싸움을 보여주는데 관심을 쏟는다. 그들의 사연들은 가족의 결핍으로 귀결된다. 앞서 말했듯 민우와 진우 형제에게는 부모가 없다. 또 흥수와 신애에게는 아내와 어머니가 없다. 또 남문희가 연기한 장님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고 누군가는 자식을 잃었으며 교사(손병호)는 제자들을 잃는다. 이 영화의 감정적 고양은 바로 이런 ‘가족의 결핍’으로부터 온다. 민우와 신애의 결합은 온전한 가족의 완성을 의미하지만 그것 역시 공수부대라는 ‘에이리언’에게 위협받는다.

결핍의 공포

물론 <화려한 휴가>의 장르적 장치는 민우와 신애의 관계에서 비롯된 멜러 영화적 구성이다. 둘은 서로를 구하며 광주 항쟁의 한복판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죽고 사는 광주항쟁의 역사적 사실들이 극적으로 배치된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앰블런스를 몰고 사지에 뛰어든 용감한 의사는 사살되고 친구를 잃은 동생은 계엄군의 총알에 목숨을 잃고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은 주검이 되어 거리에 늘어져 있게 된다. 이 영화에서 민우와 신애는 언젠가 서로를 잃는다는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그것은 ‘결핍의 공포’이며 또한 1980년 5월 광주의 현실이기도 했다.

필자가 <화려한 휴가>에 느끼는 아쉬움은 바로 그런 점이다. 이 영화는 좀 더 절절하게 다가왔어야 했다. 아쉽게도 <화려한 휴가>에는 주요 플롯이라고 할 수 있는 민우와 신애의 조금은 미지근한 멜러적 설정 때문에 관객의 호응을 끌어낼만한 조역 캐릭터들의 상실감과 공포가 잘 살아있지 못하다. 그건 이 영화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조역 캐릭터들의 사연이 차곡 차곡 쌓여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영화의 코믹한 파트를 책임지고 있는 인봉의 가족사나 양아치에서 투사가 되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용대의 에피소드가 좀 더 강화되었다면 이 영화의 대중성은 좀 더 큰 감정적 고양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화려한 휴가>가 의도하는 바는 영화의 말미에서 신애의 방송에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외침. 그래서 쉽사리 <화려한 휴가>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영화의 마무리의 스틸 컷 시퀀스에서 혼자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신애의 얼굴은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적으로 <화려한 휴가>는 완벽한 영화는 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형식적 완성 모델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바로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다. 하지만 그 영화의 형식적 스타일을 광주 항쟁에 도입했을 때 과연 관객의 호응을 잘 끌어낼 수 있었을까 ?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화려한 휴가>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그것이 이 영화에 무조건 엄지 손가락을 올려 세울 수 없으면서도 또한 무조건 비판만 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라 영화평자의 고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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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영화는 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형식적 완성 모델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바로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다'

    동감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블러디선데이류를 택하는 것보다
    실미도류를 택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던 것도 같고..
    이 영화도 그렇게 한 것 같네요..

    그리고 포스팅 전체적으로도 공감합니다만..
    충분히 봐 줄 만한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엄지 손가락을 올려 세울 순 없지만 충분히 권할 만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2007.07.27 16:26 신고

2007.07.22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우리가 최선의 도덕적 확신에 따라 행동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행동에 의해 좋은 결과가 증명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확신이 최선의 것이었음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는가? 
- 김우창


1980년 5월, 그러니까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그 해 어느 봄날, 광주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에 살던 나를 비롯한 이들이 접할 수 있는 소식이라고는 오로지 신군부의 통제와 검열을 거친 지극히 제한적인 보도형태의 뉴스뿐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광주에서 폭도들이 무기를 탈취하여 국가전복을 꾀하고 있다. 그들 뒤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내란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국가위기 사태이다. 조속히 진압되지 않을 경우 북괴의 도발이 우려된다. 시민들은 정부와 우리 군을 믿고 이에 동요하지 말것이며 각자 생업에 열중해주기 바란다.’ 등등. 그렇게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96년 ‘5.18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사태’로 격하되었고 광주시민들은 ‘폭도’로 둔갑되었으며, 그 결과 김대중은 내란음모 및 국가전복기도 죄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것이 적어도 1996년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공적역사이다. 이렇듯 광주에서 벌어진 슬픈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복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또한 미국의 암묵적 동의를 얻으면서 신군부의 수장이던 전두환을 대통령 직으로 밀어 올리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그 해 그 곳에 있던 광주사람들의 사적기억 또한 그러할까? 다행히도 세상이 바뀌고 역사가 새로 쓰여 지면서 더렵혀진 기록과 공적역사가 하나 둘 제 모습을 찾기에 이르렀다.


김지훈 감독이 연출한 [화려한 휴가]는 바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비탄과 슬픔의 기록을 시민군의 시각에서 담아낸 작품이다. 앞서 공적역사와 사적기억의 이야기를 꺼냈듯이, 만약에 1996년 이전에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그 치열했던 야만과 광기의 10일 간을 시민군의 눈으로 그려냈다면, 그것은 사적기억의 산물이자 영화의 사회적 기능수호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했을 터이다. 그러나 2007년 오늘 만들어진 영화 속에 담긴 것은 공적역사도 아니요 사적기억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철저하게 기획되어 쉬이 대중의 가슴을 데우고 또 식혀버리고 마는 통속소설에 다름 아니다. 그것도 마지막으로 갈 수 록 신파로맨스로 둔갑해버리고 마는, 게다가 100억원이 소요된!


이전 영화들이 그려낸 광주는 주인공의 오늘을 구성하는 기억 속의 한 때로 혹은 그날의 사건이 인물의 현재에 미치는 영향력 정도로 또는 연대기 속에 스며든 현대사의 비중 있는 사건에 머무르곤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80년 광주를 재조명한 시도와 노력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며 광주의 아픔을 본격적으로 거론했다는 점만으로도 의의를 가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화려한 휴가]가 통속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 80년 5월의 광주는 어느 순간에 너무 쉽게 보통명사가 되어버렸다. 갈기갈기 찢겨진 주검과 아비규환의 생지옥은 곱게 꽃단장한 망월동 성역으로 너무 쉽게 옮겨져 버렸다. 2007년의 광주는 처절했던 역사를 품은 민주화의 성지도 아니요, 신군부의 군화 발밑으로 잦아든 민초들의 비탄어린 탄식과 몸부림의 기억을 품은 곳은 더 이상 아니다. 이제 광주는 진부해져버렸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거론하고 입에 올리는 일조차, 80년으로부터 87년에 이르는 일련의 민주화투쟁의 역사를 언급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아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변화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거의 최초의 영화 [화려한 휴가]를 삼류신파소설로 둔갑시키기에 이르렀다. 과연 광주는 종결된 역사인가? 그날의 기억은 그들이 지지해마지 않던 이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열었던 화해의 손길 속에 다 녹아 없어져 버렸다는 말인가. 그래도 된다는 것인가?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이뤄졌다는 것인가. 따라서 필자는 영화의 완성도나 그 속에 담긴 의의를 칭찬하기에 앞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업영화로 만들었다”는 제작자나 감독의 말대로 왜 광주이야기가 이토록 축소지향적일 뿐 아니라 안락한 내러티브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영화는 광주시민과 진압군 사이에서 벌어진 피와 살육의 전쟁을 씨줄로 하고, 동생 뒷바라지에 여념 없는 택시기사와 그가 연모하는 간호사 사이에서 싹트는 연정을 날줄로 하면서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고 있다. 오랜 시간 철저한 고증과 역사기록을 근거로 작업했음을 말해줄 정도로 당시 광주시가지를 재현해낸 세트와 소품은 사실감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기록사진과 똑같은 장면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사실적 재현을 위한 노력과 세밀한 연출력 덕에 우리는 그날 광주 금남로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정도다. 그리고 발포명령과 시민군의 무장과 결사항전에 이은 비장한 최후가 연이어지면서 5월의 광주는 그렇게 한 떨기 꽃잎처럼 떨어지고 짓밟혀져 버린다. 영화는 딱 여기까지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러 광주의 피를 수혈 받고 호남의 정신을 이어간다던 이가 대통령이 되더니, 광주를 향해, 제 동포의 심장을 겨누어 총 쏘라고 명령한 자를 옥에서 풀어줘 버렸다. 사적으로는 자신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사지로 몰아넣은 자를 용서하고는 대화합의 장이 열렸음을 온 천하에 공표했다. 가히 이것만으로도 노벨평화상을 타고도 남을 일이다. 그렇게 도살자는 죄 사함을 받았고 여전히 전 재산 29만원으로 잘도 살고 있다.


[화려한 휴가]는 이렇듯 모든 것이 용서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화해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믿)는 위험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그날 광주의 이야기는 더 이상 캐비닛 속에 보관된 극비문서가 아니다. 누구나 찾아보면 알 수 있고 사진과 기록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공적인 역사로 탈바꿈해버렸다. 그럼에도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부분, 이를테면 발포명령자에 대한 명확한 암시 내지는 진압군의 심리상태와 서울의 신군부의 움직임과 정치권의 무기력한 침묵 등에 대하여 좀더 분명하게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남들이 다 아는 사실을 한 번 더 언급하고 생생한 이미지로 재현해낸 공간으로써의 광주는, 공식화된 역사로 또한 법적으로 마감된 사건으로 너무 쉽게 종결지어졌기 때문이다.

요컨대 [화려한 휴가]는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영화도 아니요 당시 권력욕에 눈이 먼 자들에게 날리는 재심청구서는 더욱 아니다. 차라리 이것은 억울하게 누명쓴 힘없는 자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적어 내려간 항소이유서에 가깝다. 왜, 80년의 광주가 항소이유서가 되어야 하는가. 끝나지 않은 역사를, 마르지 않은 눈물을 억지로 훔치고 닦아내버린 김대중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가해자들이 야합한 잇속놀음의 결과다.

영화는 공포와 슬픔의 전장을 그려내고 있지만 역사의 한 줄기를 훑어 내려가 시대적 배경과 조우하기보다는 한 편의 매끈한 스펙터클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먹먹할지언정 그날 그 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혹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관하며 침묵으로 광주를 타자화시켜버린 자신의 과거를 채찍질하고 후벼 파는 가슴앓이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 드민 시선, 즉 소녀를 통해 광주를 이야기하고 광주를 통해 소녀를 바라본 그 도저한 시선이, 이 소녀에게 벌어진 일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알기는 하느냐 라는 날선 눈초리가 [화려한 휴가]에는 남아 있지 않다. 카메라는 무고한 시민이 어떻게 총을 들고 시민군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명분을 제공하려 애쓰며, 그들의 눈에 비친 진압군이 살육기계로 둔갑하는 동안 장엄하게 그러나 값싼 상업주의에 담보 잡힌 이미지들이 스크린을 뒤덮을 따름이다. 때문에 영화는 지나치게 잔인하지도 않고 쓸데없이 처절하지도 않은 대신 오히려 관객을 안심시키고도 남을 정도다.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었으되 이미지의 과잉이 뒤바꿔버린 판타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안도감은 과거의 기록이자 박제된 역사라는 광주를 둘러싼 정치적 현실에 기인한다. ‘광주는 과거일 뿐이고 지금은 대화합의 시대가 아니냐고’ 종결지어진 역사, 투쟁의 기록은 화해와 용서로 그렇게 서둘러 봉인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영화 속 광주는 더 이상 민주화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그곳은 꽃미남 이준기와 여전히 하늘하늘한 유부녀 이요원이 아카시아 향 머금고 걷던 한적한 숲길이고, 그녀를 흠모하던 김상경의 핸들이 춤추던 마을이며, 마음 뜨거워질라치면 반드시 나타나 웃음으로 분위기를 뒤집던 두 배우, 박철민과 박원상이 공존할 만 한 순진한 날라리들의 거처일 뿐이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재판에 선 아돌프 아이히만 Adolf Eichmann을 관찰한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는 자신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을 통해 그가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가 유태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에게 악마의 성품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 없이 명령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 ‘사유하지 않음’때문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유하지 않음’ 이것은 60년대 월남파병 한국군에게도 적용되고 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공수부대원에게도 적용되며, 그 야만과 광기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 모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김지훈 감독 역시 사유부재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편의 영화를 만듦에 있어 그 소재와 형식의 자율성이 감독의 전권으로 보장되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적어도 유족과 광주시민들 가슴 속에서)끝나지 않은 역사를 너무 수월하게 값싼 스펙터클로 상업화시켜 종결지어버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바로 27년 전 우리가, 광주를 외면한 채 신군부의 만행에 침묵으로 일관했듯이 말이다. 이것이 쿠데타로 규정된 정권이 벌인 살육의 현장을 시민군의 입장에서 그려낸 [화려한 휴가]가 마뜩치 않은 까닭이다. 덧붙여 전두환과 당시 신군부세력은 물론이요 김대중 역시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연 80년 5월의 광주는 역사의 무대 속으로 사라져야 할 추억담에 불과한 것인가? 당신은 광주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화려한 휴가]가 그려낸 광주의 5월은, 진정 검붉은 꽃잎이 금남로를 수놓은 민주화의 물결로 넘실대는가? 영화를 보고 여러분이 판단할 일이다.

(추신) 한국영화가 무척이나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작금에 현실을 놓고 볼 때, 올 여름 한국영화의 구원투수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화려한 휴가]와 관련하여 개봉 전에 이렇듯 비판의 날을 세운 것이 못내 꺼림직 한 것은 사실이다. 울고 싶은 놈 뺨 때린 격일지는 몰라도 필자는 이 영화의 완성도와 작품성을 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가, 그것도 2007년에 만들어진 영화가 하필 이런 모습으로 튀어나온 것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토로한 것이며, 그 책임을 일차적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권에게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는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화려한 휴가]에 관한 인상비평은 영화가 개봉하면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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