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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비행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 상영 현장을 가다

(영화비평 전문웹진 네오이마주(http://neoimages.co.kr)와 객원필자인 윤성호 감독의 수상한 통정이 시작되었다. 매월 인디포럼 상영회와 대담을 취재하여 기사화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인데, 그 첫 번째로 지난 2월 24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월례비행을 올린다.)

이젠 더이상 어울리는 단어가 없는 세상이다. 하수상하다는 말, 이상하고 기이한 시절이라는 말은 당연하고 진부하게만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그런 단어'들을 되뇌이지 않을 수 없는 건, 아마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상황 덕분일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그리고 갈수록 영화같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진다. 텔레비젼 앞에만 앉으면 속속들이 터지는 사건사고들덕분에, 창작자들은 참 살맛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반사적으로 우려되었던건 2009년차 비행을 시작하는 인디포럼 월례 상영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독립영화를 모르는 사람마저도 그 제목과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이하 뻑큐멘터리)>. 수도세 절약 운동을 벌이면서 길거리에 엄청난 물대포를 쏴대고,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철창행이 될지도 모르는 이 공포스런 사회, 그것도 저들이 '사건의 근원지'라 부르는 종로 한 복판에서 <뻑큐멘터리>를 상영한다니, 엄청난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창작의 자유마저 앗아가고 문화산업마저 시장경제의 힘으로 제압하려는 저들의 눈에 이건 일종의 '모의공모'인 셈이니까. 아니, 어쩌면 이건 '인디포럼의 역습'일지도 모르겠다.

<뻑큐멘터리>에 관한 나의 기억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 실패한 대학교 진학에 재도전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어느 날 문득 조선일보와 한겨레, 두 종류의 신문이 집에 배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한 신문이었고 한겨레는 엄마를 위한 신문이었다. 나는 두 종류의 신문 중 조금 더 색상이 화려하고 문장들이 유했던 한겨레를 택했다. 할아버지는 집에 잘 계시지 않아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 특정 당원들의 얼굴이나 한겨레 신문을 볼 때마다 '빨갱이'라는 단어를 쓰시곤 했다. 어쩐지 반감이 들었던 할머니의 '빨갱이'라는 단어는 내가 지지하고 관심가지는 정치색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이후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나 어머니와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갔을 때, 집에는 더이상 조선일보가 날아들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좌파를 지지하는 어머니의 충돌이 빚어지면 나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곤 했다. 유난히 박정희 이야기를 많이 하던 할아버지는 다행스레 어린 나에게까지 특정 정치집단을 옹호하기를 강요하진 않으셨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을 거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거쳐오는 과정 동안 그 어떤 교과서도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던건 박정희와 전두환에 관해 단 두 줄로만 묘사되어있던 국사 교과서였다. 전두환의 손녀와 3년 내내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들었던 이유인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국사 선생님은 그 부분만 나오면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문 투성이인 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처음 만난 (비교적)정치적인 다큐멘터리가 <뻑큐멘터리>였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던, 그리고 할아버지가 보셨던 신문인 조선일보가 한 달에 한 번 간격으로 찬양 기사를 싣곤 했던 '대한민국의 영웅' 박정희가, 그 영화 속에서는 철저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 접하고 배웠던 말이 바로 이거다. 대한민국 꼰대 1세대.

때문에 <뻑큐멘터리>를 떠올리면 담배를 피지 않는 나도 괜스레 담배를 입에 물고 싶어진다.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해서야 그동안 배워왔던 국사가 어느 정도 잘못되었고 어느 부분이 미약했는지에 대해 깨닫게 된다. 학교가 그런 것들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줄 의무는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인디포럼 <뻑큐멘터리>의 상영이 걱정스러운 동시에 반가운 이유는 아마 어린 시절 우파와 박정희, 그리고 조선일보에 대한 사적인 기억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 저녁, 조바심이 앞섰던 <뻑큐멘터리>의 상영은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며칠 전 모 마트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대량 구입하던 검정 잠바를 입은 아저씨들이 들이닥치는건 아닐까 무서운 감정이 앞섰지만, 많은 관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상영은 '안전히' 막을 내리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뻑큐멘터리>의 연출자 최진성 감독과, 윤성호 감독, 그리고 이택광 경희대 교수의 대담이 이어졌다.





윤성호 감독 (이하 '윤'): 8년 전에 최진성 감독에게 <뻑큐멘터리> 비디오테잎을 선물 받았는데 다 보진 못했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랜만에 다시 극장에서 보니 소감이 어떤가.

최진성 감독 (이하 '최'): 나도 아직 <은하해방전선> 안봤다(웃음). <뻑큐멘터리>는 2001년도 제작된 작품이고 나의 첫 작품이다. 그 이후로 단편 극영화나 뮤직비디오 등 여러 가지를 만들고 있는데, 어쨌거나 이게 내 처음 영화다. 영화를 보면 양가적인 감정이 생긴다. 27세에 만든, 27세의 최진성이 보여서 흐뭇하기도 하고,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요즘도 활동하시는걸보면 참 감정이 묘하다.

이택광 교수 (이하 '이'):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뻑큐멘터리>가 나왔을 때 나는 한국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 출범기에 유학을 갔고, 2004년도에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다큐멘터리에 관해 토론한다는 걸 듣고 얼마 전에 DVD를 받아서 처음 봤다. 유학하면서 딴지일보를 종종 보긴 했지만, 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빈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윤: 이번에는 최진성 감독의 연출의도를 새로 받기도 했는데, 박정희기념관은 이제 어떻게 된건가.

최: 그 이후는 모른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현재 박정희기념관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간간히 반발성기사로 여전히 한 두번씩은 나오는 것 같다. 물론 mb 시대니까, 잘은 모르지(웃음).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사건도 있다. 7년 전과는 달리 좋은 소식들이 간간히 들려오고 있다. 특히 허경영선생. 저 분이 이렇게 뜰줄은 당시에는 정말 몰랐다(웃음). 당시만해도 '듣보잡'이었는데. 그래서 작년에 되게 반가웠다. 감회가 새롭더라(웃음).

이: 박정희 기념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명박 정부가 과연 박정희기념관을 건립할까? 이명박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본다. MB는 노무현의 2세다. 제 2의 노무현, MB 반대로 하면 다 성공하는 세상이다. <워낭소리>도 그렇지 않은가. 상황이 바뀌었다. 다큐를 보며 뭔가 지금과는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것이다. <뻑큐멘터리>의 장점은 박정희 시대의 피해를 진상규명하기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박정희가 우리에게 뭘 해주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자본주의의 실체들이 명확하게 보인다. 재밌는건 영화 속에서 박정희를 극 옹호하던 사람들이 이제 MB정부에서 소외받고 있는 것이다. 진짜 주인들은 따로 있다. 그들이 바로 한국의 중산층이다. 한국 사회의 합리성을 박정희에서 찾는, 한국의 중간계급. <뻑큐멘터레>에사 희화되는 존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생존해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진짜 무서운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박근혜와 같은, 강남 조기유학파들의 우상과 같은 사람들. <뻑큐멘터리>는 파시즘을 보여주는 영화다. 박정희는 파시즘의 상징적인 이름이다. 우리 나라는 유일하게 삼성의 광고도 그걸 여실히 보여주지 않나. 김연아 같은 사람들의 성공사례들을 들먹이며 성공했다는 것 자체 때문에 모든걸 긍정화시킬수있다는 게 무서운거다. 독재를 거쳤지만 지금은 어쨌든 민주화를 이루지 않았느냐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된 것이고 가장 무서운 논리다. 지만원같은 선동가가 무서운게 아니라 조갑제같은 이데올로그들이 무서운거다. 프롤레타리아들이 끊임없이 소급하는 합리성이 박정희다. 그들이 보는건 인간 박정희가 아니라 영웅 박정희다. 이명박도 마찬가지다. 왜 MB를 찍었냐고 물어보는 물음에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답하더라. "이명박이 되면 나도 돈을 많이 벌 것 같아서." 그때부터 이명박의 실패는 내정된 거다. 노무현이 해놓은 일을 완성만 하면 될텐데 그걸 아예 청산해버렸다. 황당한 이야기지. 지금 우리 사회의 꼰대, 꼴통 박정희는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군림하고 있는거다.

최: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바뀌며 컨텍스트도 많이 바뀌었다. 안티조선도 없어졌고 이런 움직임들이 다른 식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겉으로는 개혁적이고 진보지만 내부로는 한국의 적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이게 MB로 넘어오면서 교활해지고 있다.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만든다면... 뭐, 지금은 무서워서 만들 수나 있을까(웃음). 농담이다. <뻑큐멘터리>를 상영하자고 했을 때 살짝 주저했다.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나.


윤: 우리도 선정할 때, 박정희 모자가 너무 크게 나와서 조금 주저했다, 우리도 나라의 지원금을 받아야하니까(웃음). 요즘 깊어진 인식과 함께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깐느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라가 깐느 갈 소재를 제공하는 것 같다(웃음).

최: 소재가 풍성하다는데 적극 동의한다. 노무현 때도 풍성했고. <뻑큐멘터리>때 같이 작업했던 분들 중 2002년에 노무현이 당선되며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다른 노선을 걷기 시작한 분들이 많다. 나름대로 고민 끝에 만든 게 <그들만의 월드컵>이다. 노무현을 적극 지지하는 개혁적 민족주의자들이 우리 사회를 망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같은 경우는 정말 소재가 많다. 영화인 입장에서 좋은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하는게 참 감사하다(웃음). 이런건 지금은 못 만들지 싶다. 27세의 최진성이 삐딱하게 만들었던 것이니, 지금과는 좀 다르다.


관객1: 박정희라는 인물은 분명히 악의에 충실한 면도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낸 사람이 아닌가. 그 시대를 겪지않아서 어느 편에 서야할지 잘 모르겠다. <뻑큐멘터리>의 지만원, 조갑제, 허경영 이런 사람들은 비판 받을 만 한데, 영화 속에서 일반 시민들을 비꼬는 태도는 조금 불쾌했다. 당시를 겪은 사람들 중 박정희가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박정희는 나쁘다고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근본적으로는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 인터뷰 자체도 너무 편향적이고, 인물소개도 되게 편파적이더라.

최: 일단 명백한 나의 입장이 <뻑큐멘터리>에 있다. 박정희에 대한 이데올로기나 담론이 이미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상황이었고 박정희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80%는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를 균형있게 만드는 건 의미없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살아있는 김대중, 김종필, 박근혜, 조갑제, 그리고 그 분들을 위시로 한, 박정희의 맥락 속에서 주워먹고 살고 있는 이회창같은 사람들. 이런 영향력이 30년이 넘게까지도 진행되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단순히 20년전에 죽은 박정희를 말하고자 한 건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뻑큐멘터리>가 토론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조그만한 가능성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제작한 것이다.

이: 질문하신 것 자체가 이미 바뀐 맥락이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는 냉전체제가 무너질 시절이다. 그들이 무너진다는 공포와 불안감은 영화 맨 마지막의 퍼포먼스에서 모두 드러난다. 민중에겐 이념이 필요없다. 좌파이념이든 우파이념이든 내가 잘먹고 잘사면 되는거다. 자본주의가 탈가치화시키는 것이다. 박정희를 제거한다고 열망이 사라지진 않는다. 풍자는 약자가 강자와 싸울 때 쓰는 가장 고전적인 수법이다.


관객2: 영화를 나쁘게 보진 않았다. 단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생각하는 부분은, 이 영화 이전에 필터링을 거치지 않았을 때, 반대입장을 가진사람에게는 비판의 여지를 줄 수있다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해 반하는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볼 수 있는 기능을 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문제에 대한 환기와 동시에 다수로 하여금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기능이라 생각한다. 의식이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설득 할 수 있는 다큐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들을 설득하기위해서는 실제로 공정하고 교묘하게 접근해야하지 않나.

최: <뻑큐멘터리>는 1960년대 중반부터 2001년도까지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상황들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억울함, 그리고 나의 의견이 담겨진 아카이브 같은 영화다.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불편하든 통쾌하든 모두 각자의 감정이다. 공정성이라는 부분은 어려운 문제인데, 실은 다큐가 그런 부분이 좀 어렵긴하다. 윤리나 도덕 교과서도 공정하지 않은데 공정하게 보고 있다. 신문과 언론도 마찬가지다. 공정한듯 말하는것. 시민단체나 유니세프 같은 곳에 만원, 이만원 기부하고, 지나가는 거지에게 천원 적선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조기유학보내고 서울대 보내는그런 착한 분들이 사회의 공정성을 흐리지 않나.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하겠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장면은 유치원 꼬마들이 박정희 묘에서 묵념을 하는 장면이다. 유아교육학과를 나온 똑똑한 분들의 인솔 하에 아이들은, 카메라방송의 지시에 따라 세 번을 반복해 묵념한다. 내려가면서 아이들이 용그림, 용그림 하지않나. 실제로 아이들은 용그림을 보고 싶는데, 선생들은 박정희에만 관심있다. 우왕좌왕 내려가면서도 꼬마들은 '한줄로'를 외치며 억지로 줄을 서고 있다. 이런게 중산층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윤: 중간계급을 쉽게 말해 '꼬실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에서는 중간층을 설득하는 것보다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최: <뻑큐멘터리>가 내 입장에서는 귀엽게 보인다. 들이대기도 하고(웃음). 지금의 나는 이러저러한 고민이 많다. 영화 만드는 게 주저스럽기도 하고, 다큐는 더욱 어렵다.
다른 독립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달라. 나는 이런 스타일로 영화로 만드는 한국 인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윤성호 감독같은 사람도 그런 부분을 굉장히 잘 건드린다. 다른 많은 영화들을 보면 좋겠다. 김동원감독님 영화들은 절실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나. 그런 건 정말 좋은 다큐멘터리다.


관객3: 박정희로 대표되는 근대와 현대사의 과정을 보면 이분법적사고만 전개되어왔다고 생각한다. 우파니 좌파니 하는 건 말장난같은 느낌이다. 근대사는 왜곡이 대부분이 아닐까. 젊은 세대들은 취업이 우선이지, 인문학이나 역사등은 관심 대상이 아니다. 그런 부분에서 자기만의 역사에 관한 입체적 사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부재된 상황에서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방법론이나 회화를 제시해주신다면.

이: 무조건 하면 된다. 이것저것 잴 것이 뭐 있나. 이론을 가지고 있으면 적용을 하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한국 사회는 궁극적으로 보수주의 국가다. 한국의 윗대가리에는 좌파, 우파가 없다. 다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 된다. 그래서 다들 미친듯이 좋은 학교를 보내려하는 것이다. 중간 계급들은 부동산박사, 교육학 박사, 모든 방면에 박사들이다. 그들에겐 비판적사고가 실종되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지금은 예술적 감수성, 인문학적 비판의식이 필요한 세대다. 이런 것들을 키워야 정말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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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5

이 글은 “두 번 반복하면 운동이다”는 윤성호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막 이래! 그리고 이건 나의 감상문이다. 뭐 그렇지 머...

[은하해방전선]의 시작은 인용문으로 시작하여 괴성을 지르는 스탭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뒤이어 영재(임지규 분)라는 영화감독이 장편 데뷔작을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시나리오는 제대로 나오지 않고, 헤어진 옛 애인 은하는 백일몽처럼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그리움에 사무치기도 힘든데, 기무라 레이를 캐스팅하기 위해서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거기에다 영재는 실어증에 걸리고, 입에서는 피리 소리가 난다.

윤성호는 그렇게도 만들고 싶어하던 장편 데뷔작을 만들었고, 그렇게도 하고 싶어하던 연애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놓았다. “연애(사랑)는 무엇입니까?” 윤성호는 자문자답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영화는 무엇입니까?” 라는 말이 끼어든다. 말과 말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한 공간을 차지할 때 교집합이 생겨난다. 그 교집합은 자신의 영토를 개척하면서 일종의 광합성 작용을 한다. 광합성 작용이 이산화탄소를 받아 산소로 내뱉어 주듯이 윤성호 영화는 나쁜 것을 받아들이고 좋은 것을 내뱉는다. [은하해방전선]은 일종의 반복하는 운동이며 순환작용이며 정화작용이자 확성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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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해방전선]에는 윤성호가 싫어하는 것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조선일보, 삼성, 스타벅스와 같은 상품화된 브랜드 기호들은 조롱당하고 비판당한다. 영재가 실어증에 걸린 원인이 조선일보에 있을지도 모르며, 영재가 시나리오를 쓰지 못하는 건 삼성이 만든 아파트에서 글을 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해석은 자유니까, 막 이래!) 사실 [은하해방전선]은 스타벅스 불매 운동을 하자는 것도, 조선일보 구독반대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거국적으로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영화도 아니며,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영화도 아니다. 물론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을 읽어야 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 모든 기호들은 일종의 정화작용을 위한 소도구다. 영화에 산만하게 배치된 기호들은 윤성호의 진심을 대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윤성호의 진심은 ‘인간은 얼마나 음악적인가!’라는 그의 말로 대변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전위적이지만 반복되는 멜로디가 있기 때문에 일종의 놀이나 유희에 가깝다. 두 번 반복하면 운동이라는 영화 속 그의 말처럼 영재의 입에서 나오던 불협화음은 어느 새 리듬을 찾아가고 주변에 있던 소음들마저 영재의 입에 맞추어서 화음을 이룬다. 이 때 윤성호는 조심스럽게 진심을 내지르려고 한다. 그 모습은 저 멀리 JAZZ를 연주하며 연애와 섹스로 수다를 떨던 우디 앨런을 떠올리게 한다. 윤성호는 막스 브라더스 처럼 음악과 언어를 가지고 유희를 벌이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디 앨런을 닮아간다.

윤성호가 심금을 울리는 부분은 이 영화가 윤성호의 성장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들은 스스로 세포분열을 일으키듯이 성호 1호, 성호 2호, 성호 3호...를 만들어왔으며, [은하해방전선]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은하해방전선은]은 윤성호의 스타일을 따르되 과도한 욕심은 버린다. 수많은 인용문으로 넘쳐나던 지난 영화와는 달리, 윤성호는 자기 영화를 패러디한다. 웅변장면을 찍은 씬은 <우익청년 윤성호>, 애타는 마음을 노래로 풀어놓는 장면과 김선 감독과 샴쌍둥이로 나오는 모습은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어요>, 섹스 후 애인과 다투는 장면과 이명박의 이야기는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을 연상하게 한다. 화면비율의 변화와 나래이션의 사용, 립싱크와 복화술은 여전하다. 단 이 영화에는 전작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연애 스토리가 극적 내러티브를 통해서 전달된다. 잦은 플래시백의 사용은 윤성호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방식이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서 자기를 투영하던 모습은 아쉽게도 볼 수 없다.

윤성호가 바라는 진심은 ‘사랑’을 알고 싶은 20대 후반의 감독이 충무로 입봉을 앞둔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영재는 헤어진 은하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첫 경험 당시 함께 잤던 ‘은하장여관’을 떠올린다. 은하와 주고받던 대화들 속에서 그가 함부로 내뱉었던 일시적인 말들을 후회해보기도 한다. 이미 시간은 지나갔고 은하는 떠나고 없다. 영재가 좌절하는 이유는 영화나 사랑이나 진심을 전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소통’!! 그것은 어렵다. 하물며 ‘인간’!!은 더 어렵다.

극중 모든 캐릭터들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 청춘의 푸르른 꿈이 자본과 현실에 부딪쳤을 때 겪게 되는 좌절감. 결국, 성공과 실패-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게 이 영화 속 인물들이다. 서로간의 진심은 없고, 상대를 호명할 때는 지시대명사를 쓰는 이들에게 따끈따끈한 사랑과 정 이란 게 있을 까? 오늘날은 디지털 시대며 아날로그는 죽어가고 있다. 윤성호는 아쉬운 마음에 ‘디지털이 진심을 배반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되묻는다. (이건 내 생각) 우리들은 자본과 디지털 시대에 아웅다웅 살아가고 있다. 윤성호는 그 세계에서 최선을 택하지 못한다. 비정한 현실이 자꾸만 앞길을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절망마라. 최선이 없다면 차선이 있다는 게 이 영화가 전하는 진심이다. 그래서 극 중 인물들은 누구하나 꿈을 포기 하지 않으며, 차선을 통해서 꿈을 실현시키려고 한다. 과거의 잔인하고 비정한 악몽일랑 잊어버리자.

그래서, 윤성호는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디지털이기 때문에, 일종의 이메일이고 윤성호는 고심 끝에 편지를 쓴 후 클릭 버튼을 눌렀다. 내일이면 당신 메일함에 한 편의 편지가 도착해있을 것이다. 그 편지는 [은하해방전선]이다. 윤성호의 진심이 심금을 울릴테니, 당신은 그 편지를 열어보길 바란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린 우리 시대의 수다스러운 음악가 윤성호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 당신을 향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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