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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4 악동 마이클 무어, <식코>로 진중해지다 (2)
하성태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그러니까 마이클 무어가 닉슨을 소환하지 않았으면 ‘국가와 나와의 관계’를 의미심장하게 정의해 준 이 경구가 생각날 일도 없었을 거다. 초등학생들도 들어봤을 이 케네디의 명언(?)을 <식코 Sicko>에 출연한 이들이 되새김질 한다면 분노할까, 허탈할까.

뻔한 얘기 하나 더 해 보자. 역시 인간은 누구에게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물론 헌법 소원을 제기하는 이들에게나 피부로 와 닿는 말일지 모르겠으나 어쨌건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명시된 명문법이다. 또 여유 있는 이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와주는 건 예로부터 ‘인지상정’이라 했다. 고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굳이 ‘평등’의 개념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충분하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5천명을 공평히 먹였던 예수의 기적. 대한민국의 수많은 교회가 무용지물이 아니라면 ‘오병이어’의 현재적 가르침은 바로 저 ‘행복 추구권’과 ‘평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모든 잔소리들을 늘어놓은 건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 때문이다. ‘환자, 앓는 이’란 뜻의 <식코>는 좌파 선동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 선보인 작품이다. 미국에서의 흥행 성적이야 일각에서 선동이라 욕먹었던 <화씨 9/11>에 터무니없이 못 미쳤는데 다 그럴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번에도 총기사건이나 부시 행정부, 9/11 테러 이야기냐고? 그럴 리가,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반대파를 끌어들일 정도로 영악한 감독이다. 그건 <식코> 의 말미, 자신의 최대 안티사이트 ‘Moore Watch.com’의 운영자 아내가 병에 걸렸고, 보험료가 없어 사이트가 폐쇄될 지경에 이르자 보험료를 대신 내줬다고 밝힌 대목에서도 알 수 있다. 안티팬의 보험료를 대신 내주는 이 아이러니, <식코>는 이렇게 미국의 기형적인 건강보험 체계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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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힐러리의 대결이 연일 재미를 더해 가는 올 미국 대선에서도 의료보험체계는 최대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다. 경제와 이라크 문제와 더불어 오랫동안 대기업 중심으로 민영화되어 있는 의료보험 시스템에 미국 국민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이클 무어는 확실히 좋게 말하면 선견지명을, 나쁘게 말하면 약삭빠른 감독이라 볼 수 있다. <식코>에서 마이클 무어는 ‘섹시한’ 힐러리가 클린턴 시절 ‘건강보험계획’의 입안을 추진하다 공화당과 제약, 보험 업계의 반대와 로비에 밀려 좌초한 과거를 여지없이 들춰내고 있으니까. 제약회사와 보험업계, 그리고 이들의 로비를 받은 정치인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미 의료보험제도의 역사는 사실 닉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년 2월 17일, “그딴 의료 정책에 관심도 없던” 부통령 닉슨은 카이저 종신 보험의 “적은 돈의 지출로 더 많은 돈의 수입”을 모토로 하는 기업화 정책 제안을 받아들인다. 물론 그 다음날 공식 발표에서는 “세계 최상의 보건 정책”으로 둔갑해 버리지만. ‘악동’ 무어는 이를 놓치지 않고 녹취 테잎과 흑백의 뉴스릴을 통해 생생하게 까발린다.

단도직입적으로 미 건강보험 제도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무어는 <식코>가 대략 3억의 인구 중 보험에 들었기에 안전하다고 느끼는 2억 5천만 미 국민들을 위한 영화라 주장한다. 국가가 개입하는 정책은 ‘사회주의적’이라고 교육받고, 공교육은 당연하지만 생명과 직결된 의료 행위는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어온, 민주주의 국가 미국이 자신들을 버릴리 없다고 자부해 온 바로 그들 말이다.

‘이 죽일 놈의 보험’이 국민들을 진짜 죽인다!

마이클 무어의 화법은 여전하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고, 종국에 가서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편집의 제왕 말이다. 어찌 보면 그가 매달려온 화두였던 국가와 나, 사회와 개인의 문제 또한 그대로다. 이번 <식코>가 두들겨 패는 미국의 이면은 전국민 대상 의료보험제도의 부재다.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두 손가락이 잘린 릭이란 사내는 6만 달러짜리 중지와 만 2천만 달러짜리 약지 중 ‘더 값싼’ 약지를 선택해야 한다. 보험회사에 신체와 목숨을 담보로 잡고, 값비싼 로비 앞에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는 이 모든 것이 ‘이 죽일 놈의 보험’ 때문이다. 노모를 들먹이며 보험업계를 대변하던 상원의원이 보험회사 CEO로 발 빠르게 변신하는 현실. 이를 조롱하는 무어의 화법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 지나치게 무력한 패배주의가 아닐까.

돈과 보험이 있어도 하이에나와 같은 보험회사의 승인 거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more money’를 부르는 보험 회사는 수술 지연작전을 펼쳐 환자를 송장으로 만들고, 보험이 지정하지 않은 신약 사용은 엄금하는 행태. “이 환자로 돈을 벌 수 있을 까가 아니라 어떻게 환자를 낫게 해주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응급실에 들어갔을 때 ‘잠깐, 누가 이 돈을 내지’를 먼저 생각하고, ‘보험카드는요? 누가 데려왔죠?’를 첫 질문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도와드릴까요?’가 되어야한다”는 마이클 무어 말은 <식코>를 지배하는 세계관이다. 똑같은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사는 세계인으로서의 미국인이 지금, 여기서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평등’하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미국에서 소원한 일인가?

물론 영민한 무어는 피해자들의 눈물나는 사연을 구구절절이 늘어놓을 생각이 없다. 눈물을 머금고 보험이 승인되지 않았단 사실을 전해야하는 보험회사 직원, 막다른 순간에 보험 계약서의 허점과 피보험자의 과거 병력을 들춰내는 청부업자, 휴매나 생명의 의학전문 고문 일을 하다 양심선언을 한 의학 박사의 이야기는 비인간적인 보험 업계의 폐단을 다각적으로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이런 업계의 이윤추구와 함께 국가의 개입이 사회주의 정책과 등가라고 국민들을 길들여온 공포 정치가 90%의 미국인들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료보험제도를 지탱해 온 힘이었다는 사실도 곁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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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마이클 무어는 130일의 촬영 기간 중 캐나다와 영국, 프랑스를 둘러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보다 평균수명이 3년이나 긴 캐나다는 미국인들이 의료보험을 위해 결혼할 사람을 찾는 사이트가 운영중일 정도다(우리의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와 비교해 보라. 그리고 친절하게도(?) 무어는 이 사이트의 주소를 엔딩 크레딧 중간에 실어 놓았다.) 더불어 사민주의=사회주의라는 의식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히 언감생심인 영국과 프랑스의 전국민 무료 의료보험보장 제도와 복지시스템. 미국인 마이클 무어 또한 이를 극심하게 질투한다니,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과 미국이 혈맹이라는 반증이지 아니한가.

좀 더 진중해진 마이클 무어의 직설화법

다시한번, 마이클 무어가 매달려온 화두는 언제나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였다. 그를 스타로 만들어 준 <로저와 나>가 GM의 로저 스미스 회장과 고향 플린트, 그리고 자신을 반영한 작품이었다면, 미시적인 사회고발 프로그램 방송 <TV 네이션>, 대기업의 인원 감축과 정리 해고를 고발한 <빅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볼링 포 콜럼바인>의 콜럼바인 총기사건을 군수산업에 연결시키는 작업과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신랄하게 비판한 <화씨 9/11>은 그런 문제의식의 국가로의 확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그의 의도가 모두에게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고 또한 그럴 수도 없다. <마이클 무어 뒤집어보기>라는 다큐멘터리가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직설화법을 내기 위한 과도한 편집행위와 의도적인 왜곡은 <화씨 9/11>에 이르러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란 프리미엄과 과도한 정치성과 결합되어 적지 않은 안티를 불러왔었다.

하지만 <식코>는 <마이클 무어 뒤짚어보기>라는 안티 다큐멘터리가 나올 정도였던 그가 변화하고 있음을,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도 믿어 의심치 않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독설과 비아냥은 줄었고, 뉴스릴의 사용 또한 현저히 줄었으며, 무엇보다 좀 더 적확하고 폭넓은 인터뷰 등을 통해 대상에 진실하게 접근하자고 하는 노력이 도드라진다. 그럼에도 왜 여전히 부시가 등장해야 하느냐고?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을 때, 폭압적인 의료보험 정책을 변화시킬 지금의 수장이 부시이며, 또 그가 로비의 가장 큰 수혜자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의료보험은 좀 더 큰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우린 인간으로서 도대체 누구인가. 왜 서구사회에서 우리만 무료 의료보장제도가 없는가. 이건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거 아니라 자신과 우리 아이들을 위한 거다.”

이러한 목소리는 영화의 말미, 그가 취재했던 환자들을 데리고 쿠바로 향할 때 극에 달한다. 사실 시작은 전례가 없는 최고의 무상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는, 빈 라덴의 수하 등 테러리스트들을 수용하는 관타나모 만 해군기지로 향할 생각이었다. “악당들과 똑같이만 해 달라”는 외침, 이건 지극히 ‘쇼’를 의식하는 무어다운 발상이다.

하지만 당연하게 쇼는 거절당하고 무어는 일행을 데리고 쿠바로 향한다. 혹시나 찾아간 약국에서 미국에서는 120달러인 흡입기를 5센트에 살 수 있는 아이러니. 악마 ‘카스트로’가 살고 있다고 교육받은 쿠바에서 일행은 고향에서는 꿈도 못 꿨을 친절한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눈물을 흘린다. (쿠바로 넘어간 행위가 즉흥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이 무어의 영화를 위한 계산일지라도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릴 때, <식코>의 주제의식은 그 어떤 형식과 수단을 이겨낼 힘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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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다큐는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대상과 자신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 시간 동안 발생하는 변화를 담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만들어진 세 작품은 모두 이슈 혹은 거대담론이라는 무형질의 것을 대상으로 삼았다. 게다가 그의 화법과 형식은 그를 스타로 만들어 준 것은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쳐낼 일종의 권력을 부여하기도 했다. 화법과 형식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 각자의 몫이다. 또한 여러 인터뷰이들의 발언은 ‘여전히’ 편집했을 것이지만 언제나 다큐멘터리는 수많은 촬영 분 중 취사선택해야 하는 편집 행위가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잊지 말도록 하자. 그럼에도 <식코>가 미국의 한 국민으로서 비이성적인 제도를 돌아보는 성찰이 좀 더 무거워졌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 영화로 작은 불씨를 태워서 실제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실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인터뷰가 ‘구라’가 아님을 납득시킬 만큼.

그리고 <식코>의 한국 개봉에 부쳐

<식코>의 국내 시사 직후, 진단검사의학 전문의 출신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영화주간지 ‘씨네21’에 이례적으로 긴 단평을 실었다. “하지만 <식코>가 그저 미국 국내용 영화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적의료보험이 실시된 지 30년(전국민의료보험으로 확대된 지 20년)이 한국에서도 '의료 사회주의' Vs. '의료 자본주의'의 논쟁은 여전히 유효하며, 새정부의 의료제도가 '당연지정제 폐지+민간의료보험 확대+영리법인화 추진' 으로 갈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라며 관객들에게 “의료소비자이자 유권자인 관객의 눈이 밝아져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영화 전문지의 단평 치고는 미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또 한번 마이클 무어의 선동에 넘어간 평 아니냐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클 무어의 모든 다큐멘터리는 항상 한국 사회를 떠올리게 했다. 좋은 다큐멘터리가 미시사와 비정치적인 것을 통해 역사와 정치를 이끌어낸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식코>는 우리에게 더더욱 필요하다. 더욱이 이라크 파병이 국민 개개인과 상관없다고,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이들이라면 <식코>는 거의 공포영화 수준일 게다.

개인적으로야 더 많은 관객들이 이 다큐를 보고 우리의 현실과 연결시켰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것을 넘어 <식코>는 점점 더 동시대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 영화들에 대한 소중한 만면교사다. 그건 꼭 마이클 무어가 극영화 같은 다큐를 만들어서가 아니며 무어의 작업이 고매한 예술이라고 말하기도 조금은 머쓱하다. 그럼에도 <식코>는 자신의 땅에 굳건히 발을 디디고 세상의 공기를 느끼게 해줄 때야 말로 영화라는 예술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한다는, 오래 묵었지만 변치 않는 진리를 환기시켜준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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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duckbae2.tistory.com BlogIcon Malick™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참 좋네요. 잘 읽고 갑니다.

    2008.04.04 18:30 신고
  2. 극장가서 볼래요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링, 화씨는 비디오로 봤는데 이건 극장에서 보고 싶네요

    2008.04.0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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