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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2.26 네오이마주 선정 2008 한국영화 베스트5
  2. 2008.12.01 [중경]과 [이리]의 장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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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의 변

어느 때 보다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고 지낸 한 해였습니다. 관객은 줄어들었고 한국영화 점유율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천만 영화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1000만 영화’가 한국영화계에 재앙을 불러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2008년에 개봉된 영화가 다른 해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초대형 흥행작은 없었을지라도, 비록 할리우드에 자리를 많이 내어주었을지라도, 한국영화는 끊임없이 관객과 만나면서 그 성가와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고 또 더러는 새로운 영화문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했으며, 또 어떤 영화는 실망스러운 만듦새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제 2008년을 보내면서 한국영화 베스트5를 선정합니다. 네오이마주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영화평론가와 영화기자 그리고 편집스태프와 독자 두 분까지 총 열 두 분이 질문에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공간을 빌려 감사를 전합니다.





네오이마주가 선정한 2008년 최고의 한국영화는, 신동일 감독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입니다. 2위인 <밤과 낮>과 박빙의 접전 끝에 1위를 차지했습니다. 1순위에서는 <밤과 낮>이 앞섰지만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전 참여자의 고른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막판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이용철 평론가의 말처럼 “이 영화는 최고의 만듦새라고는 볼 수 없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아쉽게도 2위에 머물렀지만 <밤과 낮>은 홍상수의 문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인 동시에 연초에 개봉되었음에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겨질 정도의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또한 데뷔작으로 베스트5에 이름을 올린 나홍진, 이경미 감독은 올해의 성취 또는 발견이라는 단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멋진 하루>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어김없이 순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비록 정식 순위에는 빠졌지만,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날 그 길에서> <경축! 우리사랑> <연인들> <마지막 밥상> <나의 노래는>이 그것들입니다. 실망스런 많은 영화들과 영화계를 둘러싼 많은 사건 속에서 건진 이처럼 보석 같은 한국영화들이 있었기에 한국영화는 내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년에도 한국영화는 그리고 네오이마주의 한국영화사랑은 계속됩니다. (편집장)




- 참여한 분들(무순)
백건영(편집장) / 이영(편집스태프) / 하성태(편집스태프) / 강민영(편집스태프) / 서유경(편집스태프) / 신태균(스태프평론가) / 박부식(영화평론가) / 서대원(무비스트편집장) / 이용철(영화평론가) / 민용준(무비스트기자) / 정희승(독자) / 빈장원(독자)








1위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신동일


(백건영) 세대론 위에 쌓아올린 계급과 자본의 바벨탑,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영) 통속 드라마가 사회와 인간과 세상에 촘촘히 자리 잡을 때, 한낱 영화가 얼마만큼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
(하성태) 올 한국 상업영화에서 이 만큼도 정치성을 띤 영화가 없다는 것이 개탄할 노릇.
(강민영) 2 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에 들어맞는 건,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서대원) 이런 영화가 이제 서야 나오다니 ㅜㅜ 오뉴월에 헛방귀 나오듯 허망하고 씁쓸하다
(이용철)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영화를 선택했다.
(신태균) 인생사 GIVE & TAKE, 그 지리멸렬한 관계의 층위를 해부하다.
(민용준)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이 영화는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연옥을 실감하게 한다.
(빈장원) 계급성과 관계성 모두를 아우르는 뚝심 있는 연출의 힘이 넘치도록 느껴지는 소외작.



2위 [밤과 낮] 홍상수


(백건영) 일상성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욕망의 구체화, 홍상수 영화 중 단연, 최고!
(하성태) 목욕탕 창 한 켠에 똬리를 틀고 앉은 돼지의 얼굴만으로도! 그러니까 이제 홍상수의 남자들은 집에 돌아와도 불안을 면치 못하는 게다.
(강민영) 홍상수의 영화는 '2년'을 견디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용철) 예술적 완성도로 보면 올해 작품 중 단연 최고다.
(민용준) 현실에서 곧잘 보지 못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들이 영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3위 [멋진 하루] 이윤기


(백건영) 우리도 꽤나 근사하고 실감나는 도시영화를 가지게 되었구나.
(서유경) 멋질 수 없는 하루, 그 사이에서 바라본 윤기 있는 관계.
(이용철) 감독의 주제의식이 계속 확장되고 심도 깊어지는 데 주목했다.
(민용준) 두 배우의 연기만큼이나 깊고 투명한 울림이 인상적이다.
(빈장원) 메마른 도시를 가로지르는 여정에서 생의 향기의 그윽함을 깨닫게 되는 그녀의 하루.



4위 [추격자] 나홍진


(백건영) 장르영화에의 성취와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우뚝 선 문제작
(서유경) 숨을 참았다. 그 시간도 아까워서. 몸이 오그라들게, 숨이 가쁘게, 그렇게 영화는 나를 추격해왔다.
(박부식) 이 영화 자체 그리고 이 영화를 둘러싼 모든 것이 '한국의 현실'을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영화.
(서대원) 관람 후 강장제 한 병 피로회복제 두알 복용할 만큼 심신이 고단한 영화! 그러기에 인상적인 작품!
(이용철) 그간 한국의 장르영화는 대중적 성취라는 측면에서 부족했다. 그런 점을 극본한 중요한 사례다.
(신태균) 언-해피엔딩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충격적 우화.
(민용준)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잘 만든 영화에 속한다.
(정희승) 지독한 감독 지독한 배우 지독한 마무리 그러나 빼어나다.



5위 [미쓰 홍당무] 이경미


(이영) 기괴하고 놀라운 캐릭터의 영화. 화해, 화합, 이해하는 척하는 마음 따위는 걸러낸 까칠한 일방통행. 특이하다.
(서유경) 삽질은 마음을 키우지 않고 팔 근육만 키웁니다. 삽질한 여자들만의 오덕스런 공유지점.
(박부식)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올 때 한국영화의 미래가 있다.
(서대원) 여드름 땀시 불타는 미스터 고구마 불렸던 내 유년시절을 한방에 환기시킨 이경미 감독의 근사한 입봉작!
(민용준) 여성 감독이 빈곤한 한국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스토리가 먹혔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5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백건영) 소재보다 사람에 집중한 임순례의 힘, 신파는 감동이 되고 추억은 눈물을 부른다.
(이영)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무난함에 진심을 전달하는 핵심을 가진 영화
(하성태) 스포츠드라마의 전형적인 플롯과 내러티브에 여성과 핸드볼이란 타자성을 절묘하게 매치시킨 임순례 감독의 뚝심.
(강민영) 기대했던 그녀의 작품에 2%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는 영화
(정희승) 빤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눈물의 도돌이표, 역시! 임순례



<6위 ~ 10위>










<순위권 밖 그러나 기억해야할 영화들>




- 참여자별 선정작 및 20자평

백건영(편집장/영화평론가)
[밤과 낮] 일상성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욕망의 구체화, 홍상수 영화 중 단연, 최고!
[멋진 하루] 우리도 꽤나 근사하고 실감나는 도시영화를 가지게 되었구나.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세대론 위에 쌓아올린 계급과 자본의 바벨탑,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추격자] 장르영화의 성취와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우뚝 선 문제작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소재보다 사람에 집중한 임순례의 힘, 신파는 감동이 되고 추억은 눈물을 부른다.


이 영(편집스태프)
[이리]와 [중경] 절망을 응시하게 하고, 희망을 귀담아 듣게 하는 이방인 감독의 메시지. 괴롭거나, 외롭거나, 그렇지 않거나...세상을 떠도는 절망과 희망의 기운에 대해 말하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무난함에 진심을 전달하는 핵심을 가진 영화
[고고70] 여전히 유효한 '닥치고 놀자!' 그들의 음악은 건물을 넘고, 그 때 그 시절의 억압된 열기는 시대를 넘는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통속 드라마가 사회와 인간과 세상에 촘촘히 자리 잡을 때, 한낱 영화가 얼마만큼 다양한 시선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
[미쓰 홍당무] 기괴하고 놀라운 캐릭터의 영화. 화해, 화합, 이해하는 척하는 마음 따위는 걸러낸 까칠한 일방통행. 특이하다.


하성태(편집스태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스포츠드라마의 전형적인 플롯과 내러티브에 여성과 핸드볼이란 타자성을 절묘하게 매치시킨 임순례 감독의 뚝심.
[밤과 낮] 목욕탕 창 한 켠에 똬리를 틀고 앉은 돼지의 얼굴만으로도! 그러니까 이제 홍상수의 남자들은 집에 돌아와도 불안을 면치 못하는 게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올 한국 상업영화에서 이 만큼도 정치성을 띤 영화가 없다는 것이 개탄할 노릇.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한 영화 안에서 60-70년대 한국 액션영화들과 장철(서극)의 외팔이 시리즈와 성룡의 활극을 한 꺼 번에 만나는 흥겨움. 류승완이여, 한국의 드 팔마가 되어주시라.
[고고70] 부족한 구석이 차고 넘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큼의 완성도를 지닌 음악영화가 드디어 나왔다는 점에 한 표!


강민영(편집스태프)
[밤과 낮] 홍상수의 영화는 '2년'을 견디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기대했던 그녀의 작품에 2%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는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 2 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에 들어맞는 건,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고고70] 누가 뭐라 하든, 여기서는 한 판 크게 벌리고 놀 자유가 있다!
[영화는 영화다] 저예산 상업영화의 재미. 제법 잘 짜여 진 연출의 재미. 이만하면 충분히 즐기고 놀 수 있는 영화의 '기능성' 풍족함.


서유경(편집스태프)
[비몽] 몸이 쓰라렸다. 정신도 욱신거렸다. 마음은 흐릿해졌다.
[미쓰 홍당무] 삽질은 마음을 키우지 않고 팔 근육만 키웁니다. 삽질한 여자들만의 오덕스런 공유지점.
[연인들] 알고도 손을 놓았고, 손을 놓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연인들]은 다가왔다.
[멋진 하루] 멋질 수 없는 하루, 그 사이에서 바라본 윤기 있는 관계.
[추격자] 숨을 참았다. 그 시간도 아까워서. 몸이 오그라들게, 숨이 가쁘게, 그렇게 영화는 나를 추격해왔다.


신태균(네오이마주 스태프평론가)
[고고 70] 놀이판의 신명으로 답답한 세상에 맞장 뜨다. 데블스는 최루탄 가스 속에서 연주하며 노래했을 뿐이고, 난 박수 치며 환호할 뿐이고.
[추격자] 언-해피엔딩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충격적 우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인생사 GIVE & TAKE, 그 지리멸렬한 관계의 층위를 해부하다
[사과] 농담 아니라 이 영화 보고 난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결혼이란 걸 꼭 해야 되는 건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평원을 달리는 사내들에 대한 집착으로 만들어낸 가장 비싼 마니아, 혹은 오마주 영화


박부식(영화평론가)
[미스 홍당무]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올 때 한국영화의 미래가 있다.
[사과] 결혼은 연애의 죽음, 그러나 삶의 새로운 시작임을 말해주는 영화
[영화는 영화다] 올해 한국영화가 거둔 가장 값진 수확
[마지막 밥상] 영화적 실험이 서사를 거스르지 않는 매우 독창적인 영화
[추격자] 이 영화 자체 그리고 이 영화를 둘러싼 모든 것이 '한국의 현실'을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영화


서대원(무비스트편집장)
[영화는 영화다] 노회한 충무로에 일침을 가한 애송이 장훈 감독의 멋진 데뷔작!
[다찌마와 리] 이런저런 눈치 안 보고 지 꼴리는 대로 찍은 류승완의 대 첩보어드벤처액션로망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이런 영화가 이제 서야 나오다니 ㅜㅜ 오뉴월에 헛방귀 나오듯 허망하고 씁쓸하다
[추격자] 관람 후 강장제 한 병 피로회복제 두알 복용할 만큼 심신이 고단한 영화! 그러기에 인상적인 작품!
[미쓰 홍당무] 여드름 땀시 불타는 미스터 고구마 불렸던 내 유년시절을 한방에 환기시킨 이경미 감독의 근사한 입봉작!


이용철(영화평론가)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영화를 선택했다.
[멋진 하루] 감독의 주제의식이 계속 확장되고 심도 깊어지는 데 주목했다.
[밤과 낮] 예술적 완성도로 보면 올해 작품 중 단연 최고다.
[사과] 한국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전범.
[추격자] 그간 한국의 장르영화는 대중적 성취라는 측면에서 부족했다. 그런 점을 극본한 중요한 사례다.


민용준(무비스트기자)
편집장인 백건영평론가의 부탁으로 리스트를 작성하긴 했으나 순위를 뽑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여하간 올해 개봉했던 한국영화 리스트를 쫙 펼쳐놓고 작품을 걸러냈다. 인상적이라 생각했던 한국영화의 목록은 이렇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추격자> <밤과 낮> <님은 먼 곳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멋진 하루> <비몽> <영화는 영화다> <미쓰 홍당무>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과속 스캔들>까지, 순서는 대략 개봉 순이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보지 못했고, 장률 감독의 <경계> <중경> <이리>도 못 본 관계로 리스트에서 누락됐다. 여하간 올해 내가 본 한국영화 중에 5편을 선정했다. 지극히 사적이고 순간적인 선택으로 좌우된 리스트일지도 모르니 지나친 간섭은 자제를 요망한다. 이런 개인적인 리스트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영화는 영화니까, 누가 최고라고 부추겨주지 않아도 고유의 가치는 보존되는 법이다. 순위는 그저 사족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여하간 내년에도 좋은 한국영화를 여러 편 만나길 고대한다.

[밤과 낮] 홍상수의 남자들은 언제나 비루하게 흔들리고 홍상수의 여자들은 그 흔들리는 남자에게 마음을 잘도 열었다 닫곤 한다. 밤과 낮이라는 차별적 서사 안에서 파리와 서울이라는 이질적 공간이 반대편에서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동시간에 놓인 반대의 영역적 공간이 물리적 시간을 반대편으로 밀어내며 서로의 차이를 동일하게 보존하고 있음이 체감될 때 이 영화는 온전히 신비롭다. 무덤덤하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되풀이 되는 순간들이 경이롭게 발견된다. 여성의 음부를 세상의 기원이라 말하는 쿠르베의 그림처럼 일상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영화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밤과 낮>은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실로 경이로운 영화적 체험이 아닐까. 현실에서 곧잘 보지 못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들이 영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미쓰 홍당무] <미쓰 홍당무>는 올해의 발견이다. 물론 <추격자>도 발견이라 말해야겠지만 <추격자>는 그보단 성과라고 말하고 싶다. <추격자>가 문법적 응용이라면 <미쓰 홍당무>는 문법의 창작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자 박찬욱 감독의 영향력이 종종 엿보이긴 했지만 <미쓰 홍당무>는 분명 이경미감독의신선한재능이앙칼지게드러난수작이다. 전혀 가늠할 수 없는 태도로 보편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동시에 생경한 드라마로 호응을 이끌어내고 종래엔 동감하게 만든다.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이경미감독만큼이나공효진과서우도발견이라할만한재능을드러냈다. 여성 감독이 빈곤한 한국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스토리가 먹혔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이한 창의력으로 말이다.

[멋진 하루] 오래 전 헤어졌던 전처가 찾아왔다. 350만원을 받기 위해서. 이상한 만남에 이어 이상한 동행이 시작된다. <멋진 하루>는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이상한 로맨스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모든 동선과 감정의 궁극적 종착지는 낭만을 통한 치유에 있다. 서울 곳곳의 풍경이 생경하면서도 드넓다. 카메라의 탁월한 구도 감각 덕분이기도 하지만 동행하는 두 사람의 심리 변화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에 적용되는 인상이다. 단 하루 동안 지속되는 동행엔 지난 로맨스의 낭만이 깃들기도 하고, 삭막한 현실의 암담함이 그늘지기도 한다. 그 만남은 결국 도피적 일탈이 아닌 치유적 여행이 된다. 350만원이라는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액수의 금액은 희수의 태도를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지나치게 넘치는 병운의 낙관적 태도는 그 예측불가능한 동선을 그린다. 삭막해서 무료한 삶에 생기가 돈다. 지난 로맨스에서 비롯된 채무관계가 추억을 복원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따뜻하다. 해프닝 같은 사연으로 깊은 드라마를 만들었다. 두 배우의 연기만큼이나 깊고 투명한 울림이 인상적이다. 지극히 사소한 방식으로 특별한 감수성을 선사한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골목을 빽빽하게 메운 차량들로 가득한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퇴근하고 나서도 상사의 복귀 명령에 다시 회사로 달려가야 할지 모를 불안감에 떨어야 하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이 영화는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연옥을 실감하게 한다. 물론 그런 비극 같은 상황을 엮어내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극적인 재미가 충분하다. 관계가 뒤엉키는 찰나가 파국으로 빚어지는 여정들이 흥미롭게 이어지고 펼쳐진다. 정치적인 메타포들이 하나같이 극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때때로 시치미 뚝 떼고 제 얘기를 한다. 가볍게 유희적이지만 한편으로 진지하게 엄숙하다. 소심한 척은 다하면서 극단적인 세기를 보여준다. 2년 만에 개봉했다는 게, 그리고 고작 4개관에서 개봉됐다는 게 아이러니할 정도의 수작이다.

[추격자] 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건 지루한 일이 됐다. 하지만 <추격자>는 분명 중요한 영화다. 날것의 기운이 곳곳에 배어있다. 그 기운이 장르적으로 밀착해서 완전한 몰입을 발생시킨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단순히 영화적인 영역을 넘어 시사하는 바가 많다. 비범한 재능을 지닌 신인 감독의 성공이, 탄탄한 내공을 지닌 연기파 배우들의 성공이, 그리고 그런 영화를 지지한 관객들의 움직임이, <추격자>의 진면목이다. 정서적으로 암울하고 지독하게 잔인한 이 영화의 악랄함이 끌어낸 호응의 수치야말로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솔직한 정서에 가깝다. 수많은 시상식이 이미 이 영화의 가치를 지겹게 설명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영화에서 부족한 어떤 요소가 분명 <추격자>에 존재한다. 물론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잘 만든 영화에 속한다. 우린 그것을 구별해야 한다. 이 영화가 이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배경에 대해서 유념할 필요가 있다. <추격자>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정희승(독자)
[영화는 영화다] 마지막 한 방을 위한 장훈의 김기덕식 간지 퍼레이드
[어느 날 그 길에서] 진정성이란 이런 것. 다큐멘터리의 처연한 매혹
[추격자] 지독한 감독 지독한 배우 지독한 마무리 그러나 빼어나다
[사과] 사랑에 관한 쓰디쓴 필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빤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눈물의 도돌이표, 역시! 임순례


빈장원(독자)
[멋진 하루] 메마른 도시를 가로지르는 여정에서 생의 향기의 그윽함을 깨닫게 되는 그녀의 하루
[나의 친구, 그의 아내] 계급성과 관계성 모두를 아우르는 뚝심 있는 연출의 힘이 넘치도록 느껴지는 소외작
[경축, 우리사랑] 불륜과 욕망을 시원한 바람처럼 유쾌하게 가로지르는 대범성을 가진 작품
[이리] 낯선 이들의 낯선 공간과 시간을 천사 같은 소녀를 통해서 어루만지는 장률의 솜씨
[나의 노래는] 확실한건 그래도 희망은 존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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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과 [이리]의 장률 감독

사람과 사람들 2008.12.01 09:19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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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절망의 두 도시를 희망으로 잇다


재중동포 영화감독 장률. 탈북자와 조선족이 나오는 지루하고 답답한 영화를 만든 사람.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시상과 러브 콜을 받았고, 영화는 아무나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영화를 시작했다는 일화, 유명한 배우를 기용하면서 리얼리티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마케팅의 술수가 낳은 여러 오해를 안고, 장률 감독을 만났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불편한 건 마찬가지라며, 사는 게 불편하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장률 감독 앞에서 내가 가지고 간 한 뭉치의 오해를 잘게 씹어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인터뷰 중간 중간 말문이 막혔다.

진심으로 부탁한다. 혹시 어쩌다가 <이리>를 보게 된다면 꼭 <중경>을 챙겨봐 달라. 반대로 어쩌다 <중경>을 보게 된다면 외면하지 말고 <이리>를 꼭 챙겨봐 달라. 당신을 위해서다. <중경>과 <이리>는 두 공간의 대화이다. 만약 둘 중 하나만 보고 만다면 당신은 어떤 의미에서든 힘들어 질지도 모른다. 물론 <중경>과 <이리>는 개별 작품으로도 완성도가 높다. 등장인물이나 공간에 대한 깊이와 내러티브의 세밀함에서도 두 작품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앞서 <중경>은 2008신디영화제에서 상영됐었고, 언론에서 떠들썩했던 대로 <이리>는 로마영화제의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감독은 말한다. <중경>은 폭발 직전의 도시이고, <이리>는 폭발 후 폐허가 된 도시라고. 장률 감독의 독특한 신작 <중경>과 <이리>는 그런 영화다. <중경>을 보면서는 <이리>의 진서가 그립고 <이리>를 보면서는 <중경>의 쑤이가 그리워진다. 재중동포 장률 감독이 만들어낸 두 도시의 대화에 동참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인터뷰 : 이영 | 사진: 권영탕

스타일이 아니라 공간이 달라졌다.

Q. <중경>과 <이리>는 원래 하나의 이야기이다. <중경>이 며칠 먼저 개봉을 하게 됐는데 어떤 글에 보니 관객들이 <이리>를 먼저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부분이 있더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A. 그것은 순전히 창작자인 나의 생각이다. 이 영화 두 편은 먼저 <이리>에서 시작됐다. <중경>을 먼저 촬영했는데, 생각은 <이리>에서 시작해서 <중경>이 나왔다. 그러니까 내 머릿속 사유의 순서로 보자면 <이리>가 먼저라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이다. 사실 관객들이 무얼 먼저보든 관계없지만, 제일 좋은 것은 두 작품을 같이 보는 것이다. <중경>,<이리> 혹은 <이리>,<중경>을 같이 틀면 거의 4시간 되니까 중간에 5~10분정도 쉬면서 내리 보면 제일 좋은 거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안타깝다. 극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


Q. 언론시사 기자회견 장소에서 <이리>는 한국 영화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가? <중경>은 중국영화라는 의미인지?

A. 아니다. <중경>도 한국영화 맞다. 한국에서 처음 찍은 영화가 <이리>고 이야기도 한국의 이야기이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영화라고 한 것이다. <중경>은 제작사, 투자사는 한국인데 중국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경계>도 한국 이야기지만 몽골에서 촬영했었으니, 정말 한국에서는 처음 찍은 게 <이리>라는 의미다.


Q. <경계>를 비롯한 예전 작품에 비해 <이리>는 카메라 워크나 내러티브의 진행이 좀 달라졌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른 여느 한국영화를 염두에 두고 찍었다는 의미로 생각했다.

A. 꼭 그런 의미는 아니다. <경계>를 비롯한 내 전 작품들 <당시>, <망종>, <경계>는 모두 조금 조금씩 다르다. 그 다름은 공간에 따른 것이다. <경계>는 몽골의 공간에서 그런 카메라가 나온 것이고, <이리>는 그 도시에 맞춘 카메라 워크가 나온 것이다.


Q. <이리>를 보고 난 평자들이 공간에 따른 카메라 워크뿐만 아니라 내러티브가 더 촘촘해지고 카메라가 더 인물에 가까워졌다는 평들을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의도한 것은 아니고 그저 공간을 따르고 그 안의 인물을 따른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과 인물의 구성대로 카메라 프레임이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지, 내 고집대로 어느 공간이든, 어느 인물이든 어떻게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다.


Q. 하나의 이야기를 국가를 나눠서 두 개로 작업한 것은 이례적인 일인 것 같다. 처음에는 ‘이리’에 대한 이야기를 찍어달라고 제의를 받은 걸로 아는데, 왜 <중경>을 찍게 되었는가? 그렇게 기획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A. 이유는 두 개다. 하나는 나를 보호하는 것이다. 내가 한국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래서 한국에서 영화를 찍는 게 너무 두려웠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다가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찍고 한국에서 찍으면 적어도 절반은 간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실패를 해도 절반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하나의 이유였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이리’에서 시나리오를 쓰는데 자연스럽게 ‘중경’이 떠올랐다. 공간과 공간의 대화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이리>와 <중경>이 그렇게 겹쳐져서 두 공간에서 모두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중경>을 먼저 찍고 나니까 두 공간의 대화에 더 자신감이 생겼다.


Q. 한국에서 촬영할 때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는지?

A. 어려운 점은 많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 어디에서나 영화 찍는 것은 다 똑같이 쉽지 않다.


Q. <경계>에 보면 몽골에 촬영 온 한국 사람들이 나온다. 감독이 막 소리 지르고 혼내는 장면을 보면서, 감독님이 한국의 영화 촬영 풍경을 우회적으로 넣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A. 그건 아니다. 다들 비슷하다. 시간 내에 완성해야 하니까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날카롭게 된다. <경계>에서는 그 곳에서 한국 사람이 나타나야 되는데, 그곳까지 오는 한국 사람이 없다. 영화 찍는 미친놈들이나 오지(웃음) 그래서 그렇게 설정했는데, 사실 영화 찍을 때 짜증도 많이 나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부드러운 감독이니까(웃음). 스텝들은 다르게 얘기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영화 속의 그 감독과 전혀 다른 감독이다(웃음)




진실을 찾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

Q. 이창동 감독과 친하신 걸로 아는데, 혹시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보셨는지? 솔직히 <이리>를 보고 나서 처음 느낀 당혹감이 <밀양>과 비슷했다. 일차적인 느낌인데, 모든 고통이 여자 주인공에게 가해지고 그것이 전시되는 것을 괴로운데 지켜봐야 되는 게 불편했다.

A. 진서는 천사다. 이창동 감독은 지독한 사람이고, 나는 부드러운 사람이다.(웃음) 전혀 다르다. <밀양>은 정말 지독하다.


Q. 앞에서 한국을 잘 모르니까 한국에서 영화 찍는 게 두려웠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감독님이 한국 감독이 아니니까 이방인의 시선으로 내부인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더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진서는 ‘이리’라는 도시의 어느 곳에나 편재하는 존재처럼 느껴지더라. 진서의 걸음을 따라 도시의 풍경이 보여 지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향에 전화하는 프레임에 진서가 항상 등장한다. 그에 반해 태웅의 캐릭터는 생경한 느낌을 좀 받았는데, 예를 들어 태웅이 외국노동자에게 해를 가하는 부분. 약자가 약자를 해하는 부분이 씁쓸하지만, 태웅이 그렇게 폭력적이 되어가는 것이 진서 때문이지 않나?

A. 사실 그 안에서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은 태웅이다. 태웅이는 천사가 아니라서 마음을 비울 수가 없다. 직업이 택시기사인 태웅은 도시를 많이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사실 택시기사가 소통하기는 참 어렵다. 내가 택시를 탈 때보면 기사들이 외로워 보인다. 말이 너무 많은 기사들도 있는가 하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기사들도 있다. 말하는 사람이나 말하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외롭다. 진서는 고통을 당하지만 그 아픔을 감싸 안고 소화해낼 수 있다. 천사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한다. 그런데 오빠 태웅은 진서를 천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여동생. 혈육. 그러니 얼마나 아프겠는가. 나한테도 그런 여동생이 있다면 똑같이 분노를 터트릴 것 같다. 말씀하신대로 진서는 항상 어느 공간이나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기쁨을 주고 도움을 준다. 그런데 태웅이 사람을 찾아가는 이유는 분노 때문이다. 태웅은 동생 월급을 안주는 학원 원장을 찾아가고 동생을 윤간한 베트남 전우회를 찾아가고 외국인노동자에게 진서에게 빨래시키지 말라고 찾아간다. 태웅은 진서가 주도해서 빨래를 가져오는 것을 모른다. 내 동생이 바보니까 시킨다고 생각한다. 태웅이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딱 3번인데 모두 분노 때문이다.


Q. 나중엔 그런 생각이 들더라. 태웅은 여러 번 동생을 죽이고 싶었겠구나.

A. 보통사람이라면 죽이고 싶지. 자기 동생이 그렇게 고생을 하고 엉망이 되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Q. 마지막에 죽은 줄 알았던 진서가 살아있다. 그건 죽은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A. 그건 나도 모른다. 왜 그렇게 설정을 했냐면 내 마음 속에는 그 진서라는 인물은 천사다. 천사는 돌아온다. 천사가 돌아오지 않으면 세상은 폭발할 것이다.


Q. 태웅이 진서와 바닷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물소리만 들린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더라.

A. 사람이 극도로 긴장을 하면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도심 한복판에서 싸움을 한다고 하면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자기 마음속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태웅은 동생을 물속에서 죽였다. 태웅에게는 물소리밖에 나지 않을 것이다. 그 소리는 만든 거다. 영화는 가짜니까(웃음) 가짜지만, 진짜 정서는 가짜에서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게 영화이고, 이 세상의 현실이다. 세상이 행복하면 예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Q. 보도 자료에 ‘리얼리티 영화’라는 표현이 있는데 맘에 안 들었다. 가짜로 진짜 정서를 만들어 내는 게 영화라고 생각하는가?

A. 그건 내가 한 게 아닌데(웃음) 예술이라는 게 세상에 나온 것은 세상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진실에서 진실을 찾아낼 수가 없다. 허구를 통해서 진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존재하는 역사책, 정치서적 따위는 다 믿을 게 못된다. 거기에는 진실이 없다. 특히 요즘, 만약 100년 후에 인터넷으로 지금의 역사를 본다고 하면 진실은 더 찾을 수 없을 거다. 옛날의 역사도 통치자들이 모두 꾸며낸 것들이다. 그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역사의 진실을 찾으려면 그 시대의 시나 소설을 찾으면 된다. 그건 다 허구인데도 진실은 거기에만 있다.


Q. 그래서 감독님은 진실을 찾기 위해 예술을 하고 계신 건가요?

A. 내가 예술을 하고 있나?

Q. 네~(웃음)


 



사는 게 불편하다

Q. 감독님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흥미로웠던 것은 감독님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친구에게 “영화는 누구나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A. 누구나 다 할 수 있는데, 영화를 찍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지금 좀 후회되는 것은 내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거다.


Q: 왜요?

A. 나보다 더 재능 있는 사람이 더 좋은 영화를 찍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많은 낭비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열정을 부어야 하고, 노동을 해야 하고, 자본이 들어가야 하고, 마지막에는 별것도 나오지 않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택시운전을 했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Q. 아니다. 너무 겸손하신대요?

A. 겸손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든다. 무력감? 무력감이 든다. 영화를 찍었다고 하지만 혼자 생각할 때 무슨 힘이 있나 그 안에. 방황이 더 심해진다. 다음에 내가 택시운전 하면 혹시 내 택시에 타시면 알아봐줘요.(웃음)


Q. 저는 감독님이 감독님인 게 더 좋은데요.(웃음) 한국이 많이 편해지셨나요?

A. 그건 아니다. 불편한 건 똑같다. 중국도 불편하고, 사는 게 불편하다.(웃음) 불편해도 부드럽게 다른 사람들을 대하자고 생각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출입국 관리소에 가서, 문도 열기 전부터 줄서서 다섯 시까지 기다렸다. 짜증이 얼마나 나겠는가.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노동자들이 거의 다 한국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다. 내 비자도 노동자비자이다. 나만 짜증나는 게 아니라 다들 짜증나는데 참아야지.




익산 역에서 윤진서를 만나다

Q. 윤진서씨 캐스팅은 어떻게 하셨는지? 어느 작품에서 윤진서 씨를 보셨는지?

A. 제일 처음 이리에서 봤다. 익산역에서 잡지를 하나 봤는데 윤진서씨 사진이 거기 있더라. 어떤 잡지의 표지에 나와 있었는데 나는 배우인지 몰랐다. PD랑 같이 갔다가 시나리오 쓴다고 역 안의 커피숍에 앉아 있었는데 잡지에 나온 윤진서 씨의 사진을 보고 절반 농담으로 “얼굴이 재밌다.”라고 말했다. 얼굴이 재미있다는 건 예쁘다기보다는 옆집에도 있는 얼굴이잖나(좌중 옆집에 그런 얼굴이 있으면 좋겠다고 난리법석) PD가 관심이 있냐고 묻길래 농담반 진담반으로 어떤 배우냐고 물었더니 요즘 잘나가는 배우라고 <바람피기 좋은날>에 나왔다고 하더라. 그 때는 그 작품도 못 봤을 때다. PD가 우리 영화에 쓸 생각이 있냐고 물어서 쓸 생각은 있지만 그 배우가 뭐가 답답해서 나 같은 사람이랑 영화를 하고 싶어 하겠느냐고 했다. PD가 연락을 했더니 시나리오 좀 보자고 하더라. 시나리오가 없다고 했더니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했다. 만났는데 시나리오가 없으니까 쓸데없는 얘기하고 돈도 별로 없다고 했더니 이상하게 윤진서 씨가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하게 됐다. 촬영 내내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자기 말로는 다른 현장에서보다 모범적으로 했다고 하더라. 다른 현장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웃음)


Q. 윤진서씨 연기에는 만족하시는지?

A. 영화에서 보면 진동 받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나? 표정이나 말투나...


Q. 그 전에 <경계>찍을 때도 서정 씨와 같이 작업을 하셨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배우들이 다른 영화에서 어떻게 연기를 해왔는지 알기 때문에 처음엔 그들의 연기가 힘들어보였다. 그런데 영화를 계속 보다보면 그들의 연기가 어떤 단계를 넘어섰다는 느낌이 오더라.

A. 나는 원래 그 사람들의 연기를 모르니까 내 눈엔 딱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따라와 주었다.


Q. 한국영화는 많이 보시는지?

A. 재작년까지는 많이 봤는데 그 후엔 거의 못 봤다. 영화를 만드는 일에는 사소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영화를 준비할 때는 시간이 별로 없다.


Q. 한국 감독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 혹은 아시아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혹시 동시대 감독들 중에 눈여겨보는 감독이 있나?

A.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나에게 그런 위치는 없는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자 때문에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인데...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



감독이 얼마나 외로우면

Q. <이리>에 나오는 태웅이 택시기사로서 겪는 에피소드들은 어떻게 생각해내셨는지?

A. 택시타고 요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어디에나 있다. 그 씬은 PD와 함께 택시타고 가다가 내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찾다가 교회가 보이더라. 교회에는 화장실이 있으니까. 태웅이 택시기사니까 손님들이 급해서 잠깐 어디에 세워달라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때 택시비 안내고 도망가는 사람을 여기다 세우기로 했다. 왜냐면 교회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곳이다. 그런데 택시비 안내고 달아난 사람은 교회 사람은 아니다. 중부시장에서 화장실 간다고 잠깐 세워달라고 하면 돈 내고 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장소에 세워달라고 하면 달아날 거란 생각은 거의 못할 것 같았다. 물론 교회나 신앙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Q. 태웅과 술을 마시는 여자 손님은?

A. 택시기사들에게 그런 일이 흔히 있다. 그 여자 손님도 외로운 사람이다. 여자는 익산에 누군가를 만나러 왔을 것이다. 익산 역에서 나와서 택시에 타서 전화를 두 번 하는데 처음엔 받지 않고 두 번째는 상대방이 전화를 끊는다. 그런 상태는 감정에 문제가 생긴다. 여자의 아픔도 거기에 있다. 성(性)이라는 것은 감정과 같이 가야 되는 것인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면 본능의 문제도 있어서 풀어야 한다. 그것을 해소한 후에는 외로움이 더 심해진다. 그게 아픈 거다. 감정 없이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상대 중에 가장 거부감 없는 사람이 택시기사일 수 있다. 택시기사는 잠깐 사람을 만나고 떠나는 직업이다. 또한 그 시간에 택시라는 작은 공간 안에 있는 것만으로 그런 분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택시기사라는 직업도 굉장히 외로운 직업이라서.


Q. <이리>는 그 두 남매로 인해서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처럼 보여 진다. 개인적으로는 그 곳이 30년 전 사고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도시라기보다는 외롭고 버려진 지방 소도시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모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택시 여자 손님도 그렇고.

A. 더 깊은 말을 하자면 감독이 얼마나 외로우면 거기까지 가서 사람들을 모아 영화를 찍었을까.(웃음)


음악이 영화를 왜곡하는 게 싫다.

Q. 혹시 뮤지컬 장르에 관심이 있나?

A. (되묻는다) 혹시 아는 제작사나 투자사를 아나? 돈이 있다면 당연히 하고 싶다.


Q. 영화에 노래가 많이 나온다. 배경음악이 아닌 배우들의 육성으로 불려지는 노래가 자주 나오는데 뮤지컬적인 재미를 느꼈다.

A. 아직 내 영화에 배경음악을 쓴 적이 없다. 소문을 들으니까 내 영화가 너무 답답하다는 얘기가 있더라.(웃음) 답답하니까 노래라도 넣어서 사람들 기분을 좋게 해주자 했다.


Q. 음악을 쓰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A. 이 후 작품들에 음악을 쓸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대가들이나 다른 감독들의 영화를 볼 때 음악이 나오면 집중이 된다. 내 감정이 있다면 음악은 그것보다 더 올라가던지, 더 내려가던지 한다. 그러면 아무리 대가들의 영화라고 하더라도 거부감이 생긴다. 그런데 딱 한 감독 작품은 거부감이 생기지 않더라. 짐 자무쉬. 그 사람 영화는 음악으로 출발하니까 그 영화에 내 감정이 음악 때문에 왜곡됐다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더라. 그래서 좋았다. 그런데 내가 음악을 쓴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다. 또 하나는 영화를 만들어보면 음악이 들어가지 않으면 만들기가 어렵다. 음악이 없으면 그 안의 문제점이 확 드러난다. 어디가 모자라고 어디는 어떻다는 게 다 나온다. 음악으로 그것을 다 덮는 거다. 나는 좀 어려운 일을 하는 게 좋다.


Q. 그 말은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있다는 말인가?

A. 자신이 있다기보다 아직까지 내가 겁이 없는 거다. 덜 성숙된 거다.


Q. 음악을 쓰지 않고, 씬이 길고, 카메라가 인물에 좀처럼 가까이 들어가지 않는 이런 스타일 때문에 작품이 더 무게감을 갖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같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인물보다 공간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는가? <이리>시사가 끝난 후 윤진서씨가 인터뷰를 할 때, <이리>를 촬영할 때 자신이 벽이나 의자나 탁자와 똑같은 선상에서 찍히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는데?

A. 그것은 그 사람 생각이다.(웃음) 인물을 중요시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영화는 사람을 찍는다. 그리고 영화는 사람의 감정을 다룬다. 그런데 사람은 공간 안에 있다. 공간에는 사람의 흔적이 모두 존재한다. 사람이 공간에서 나가도 카메라로 찍는 그 공간에는 그 흔적이 남는다. 사람이 얼마나 잘났다고 사람만 카메라가 계속 찍어야 되나. 사람은 공간 안에서 묻어나야 되는 거지, 공간보다 더 잘 나와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진서가 그 날 자신이 동물 같기도 했다는 얘기를 하던데(웃음)


정치적인 게 아니라 현실이니까

Q. 예전 인터뷰를 보니 역사적 사건은 감독님에게 늘 개인의 문제로 남아있다고 말하셨더라. <경계>나 <이리>를 보면 정치적인 암시들이 있다. <경계>에서는 북한 미사일에 관한 뉴스가 라디오에서 나오고, <이리>에서도 두 남매가 밥을 먹는데 TV 뉴스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모습이 나온다.

A. 그것도 내 생활과 관계된 것이다. 내 영화를 찍을 때 진짜 선거를 하고 있었다. 그게 생활이었으니까 그대로 나오게 하자. 그랬다. 그 영화 찍을 때는 어느 방송을 틀어도 대선 얘기뿐이었다. <경계>도 그랬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라디오를 틀었더니 그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찍고 나서도 사람들이 정치적인 거니까 빼자는 소리도 했었는데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됐다고 해서 그냥 갔다. 그게 현실이니까. 내가 그것을 이용하겠다는 게 아니라 진실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면 아, 이거 정치적이다 하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전혀 아닐 수도 있다.


Q. 세월이 지나면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예술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다.

A. <이리>찍을 때 진짜 길거리에서 대선 관련 인터뷰도 많이 하더라. 투표를 할 건지, 어떤가,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찍었다.


Q. ‘중경’이라는 도시에 대해 얘기해 달라.

A. 삼천만 인구,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사천성 근처에 있다. 번화한 곳이다. ‘이리’와 전혀 반대다. 그쪽은 터질 것 같고, 이리는 폐허 같다. 이리를 보면 중경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중경도 어느 날에는 폐허가 될 것 같다.


Q. 내 고향이 전남 작은 소도시이다. 사실 이리만 그렇게 공허하고 비어있는 건 아니다. 번화한 도시가 아니면 어디나 그렇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이든 노인들이나 갈 데가 없어나,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영화 <이리>가 단지 30년 전 사고를 형상화했다고 생각하면 불편한 점이 있다. 그런데 이게 <중경>과 같이 맞물릴 때 세계 어느 곳의 얘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이리>를 본 지인이 나와서 얘기하기를 마지막에 죽은 줄 알았던 진서가 살아서 돌아오는데 끔찍했다고 하더라. 진서를 천사로 생각하지 않고 ‘이리’의 고통이고 아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절대 고통과 아픔을 잊을 수 없어. 절대 사라지지 않으니까.”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작품이 나왔다면 책임을 못 진다. 아들 낳아놓고 아들이 무슨 일을 하던지 아버지가 다 책임을 질 수는 없지 않나. 나의 출발점은 천사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고통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세월이 지나보면 다를 거다. 그 사람이 오늘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10년 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란 게 그런 거다. 30대 때 생각과 50대 때 생각은 또 다르다. 그것도 재밌는 거 같다.


Q. 감독이란 직업은 사실 권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나? 감독님은 현장에서 작업하는 방식이 어떤지 궁금하다.

A. 그런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영화판에 보면 제일 나쁜 놈들이 감독이다. 궁금하면 다음 영화 찍을 때 현장에 와서 직접 보시라.(웃음)


Q. 계획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A. 영화감독들은 다 이런 질문에 계획이 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믿으면 안 돼.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작품 구상할 때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가 아니면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는가?

A. 작품마다 다르다. 그런데 이미지가 떠오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내가 찍을 영화의 한 장면이 갑자기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감독하는 사람들이 거의 망상증 환자들이잖나. <경계>같은 경우는 먼 길을 떠나는 어머니와 아들의 뒷모습이 계속 떠올랐었다. 그래서 하나를 만든 거지. 다 거짓말인데 그 안에 있는 자기감정은 진실해야 한다. 만드는 과정은 사실 재미없다. 지루하고 힘들고.


Q. 저는 그래서 그냥 보는 게 좋아요. (웃음)


노동비자 문제로 출입국관리소가 문도 열기 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기다리면서 무력감이 들었다는 장률 감독에게 인터뷰랍시고 시답잖은 질문을 뱉어내고 있는 게 송구스러웠다. 그래서 내친김에 매일 충무로에 있는 중부시장에 들러 멸치도 먹어보고 김도 먹어본다는 장률감독을 따라 명동을 지나 충무로를 걸었다. “나는 이런 길이 좋아” 구불구불한 좁고 지저분한 시장길. 공간과 인물에 대해 진심이 담긴 이해가 있다면 비록 허구일지라도 진실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률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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