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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4

네 개의 발바닥, 누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처용처럼 관객은 잠시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 사이 자명종이 울리면 두 개는 창쪽으로 돌아눕고 두 개는 침대 밖으로 빠져나간다. 엄마는 출근 준비, 딸은 등교 준비로 분주한 아침. 기영은 그들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다. 명예퇴직을 당하고 백수로 살고 있는 기영 가족의 소개를 발로 대신하는 첫 시퀀스에서 관객은 기영의 아내와 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볼 틈이 없다. 이 영화는 그렇게 반쪽의 이야기만을 보여주고 있다. 첫 시퀀스에서 관객이 기영의 얼굴과 표정만을 인지하게 되는 것처럼 아내와 어머니가 부재하는 이 영화 안에는 ‘인생은 놀이’라고 생각하는 감독을 닮은 남성들의 고충이 판타지가 되어 관객들을 자극한다.

'개길 때는 요령껏,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라.'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쯤 된다. 은행에서 일하다 쫓겨난 기영은 주식으로 퇴직금을 모두 날리고, 아내에게 하루에 만원씩 용돈을 받아,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형의 사무실에서 내기 바둑을 두면서, 딸의 친목도모를 위해 눈치껏 집을 비워주는 요령을 부릴 줄 아는 백수이다. 영화는 위의 모토에 충실한 기영을 중심으로 20년 전 해체된 밴드의 재결성을 다루고 있다. 물론 단순한 옛 밴드의 재결성이 아니다. 바로 지금 시대의 홍대클럽에 먹힐만한 현재형이 되어 컴백한다.

일상을 파고드는 균열


20년 전, 3년 연속 대학가요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해체된 락밴드 활화산. 리더였던 상우의 장례식장에서 밴드 멤버인 기영과 성욱, 혁수가 만났다. 이제부터 이야기는 뻔하고 단순하다. 음악을 저버리지 않았던 단 한명의 친구인 상우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의 유품인 기타는 친구들의 일상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선생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아내를 만나 먹고 살 걱정이 없는 기영은 다시 밴드를 하자고 친구들을 조르기 시작한다. 사뭇 귀여운 기영의 시위는 친구들의 일상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캐나다에 처와 아이들을 보내놓고 중고차를 팔면서 학비를 대는 혁수와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빡세게 살아가고 있는 성욱은 가족을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한다.

일상을 점령하는 판타지의 쾌락


연습실에서 연주를 시작한 그들의 일상은 음악으로 점철되어 간다. 사무실에서, 오토바이 위에서 연주 삼매경에 빠지기 일쑤인 그들의 일상에 생기가 넘치고, 그 생기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특히 드럼을 치는 혁수를 맡은 배우 김상호 특유의 표정과 스랩스틱에 가까운 몸연기와 무뚝뚝함을 가장하고 허를 찌르는 엉뚱한 베이시스트 성욱을 맡은 김윤석의 연기는 철없는 중년 기영에 맞춰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나름 완벽한 기타, 베이스, 드럼이 있지만 죽은 상우의 보컬자리가 골치다. 여기에 꼭 맞춘 것처럼 상우의 아들 현준이 가담한다. 이 영화가 어떤 현실의 단면과 판타지를 조합해놓은 것이라면, 현준의 존재는 완벽하게 판타스틱하다. 훌륭한 외모와 출중한 실력을 겸비한 현준은 그 매끈한 매력으로 영화 속 소녀들을 사로잡고,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여기에 귀를 즐겁게 하는 흥겨운 음악은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버지여, 짐을 벗어라


“오빠 딸은 좋겠다. 아빠가 밴드하니까. 우리 아빠는 아무것도 안하고 술만 마셔.”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영에게 클럽소녀가 말한다. 밴드를 한다고 했더니 “당신이 왜?”냐고 묻는 아내에게 성욱은 말한다. “하고 싶으니까.” 활화산의 첫 단독 공연 전날 아빠가 밴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기영에게 딸은 말한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낫잖아.”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해왔을까, 혹은 우리의 아버지들은 자식을 위해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을까. 일단 이 영화에서 아버지들은 짐을 벗어놓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의 모습은 철저히 반쪽의 얼굴이다.

잘난 아이의 넘치는 뒷바라지를 위해 밤낮으로 고된 노동을 하는 성욱이나 캐나다에서 바람이 난 것으로 추정되는 아내에게 이혼통보를 받는 혁수는 피해자로 보여진다. 울분을 삭히지 못하는 혁수를 위한 그들의 눈물의 연주와 캐나다행을 포기하고 빈 공간에 돌아온 혁수와 그들이 벌이는 아카펠라식 공연은 감정의 고조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해낸다. 그러나 관객은 갑자기 포기선언을 한 성욱의 아내의 기가 막힐 내면과 아들과 딸 중 유난히 아들만 챙기는 혁수의 아내를 볼 기회가 없다.

응석부려도 괜찮아


남성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이 영화가 남성 판타지를 그리고 있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치한 근거를 들자면 왜 혁수는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너바나 등등을 아들에게만 전수하고 싶어 하는가 혹은 죽은 상우의 자식과 성욱의 아이들은 왜 딸이 아니라 아들들일까, 현준의 어머니는 왜 부재중인가, 그러면서 밴드에게 환호하고 쫓아다니는 빠순이들은 왜 언제나 여자들인가. 그리고 셋 중 가장 호의적인 가족을 가진 기영의 자식은 왜 아들이 아니라 딸일까.

남성중심으로 전수되는 영역과 그것의 틀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상반된 남성적 욕망의 혼합된 투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까. 밴드를 재결성하는 주축이 되는, 가장 팔자가 좋아 보이는 기영이 내세우는 무기는 ‘요령’이다. 그 요령이란 바로 가장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응석이다.

즐거운 영화, 즐겨라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중년남성들의 판타스틱한 부활. 음악을 사랑하던 친구의 죽음이 엮어준 이들의 사연이 대중 앞에 낱낱이 밝혀지는 마지막 공연은 ‘라이브 공연’과 ‘조개구이’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기영과 성욱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다수의 엑스트라들을 불러 모은다. 환호하는 기영의 아내와 딸, 뒤늦게 나타나 아이들을 챙기는 성욱의 아내, 타국에 있는 아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뮤지션의 명단을 전수하는 혁수, 고인이 된 친구가 남긴 유작 ‘즐거운 인생’을 부르는 동안 그들의 갈등은 봉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서서히 뒤로 빠지는 카메라. 환호성은 멀어지고 고달픈 인생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기영이 쓴 “때론 힘들지만, 후회하지 않아”라는 ‘즐거운 인생’의 가사를 보고 “나는 매일 힘들고, 매일 후회해!”라고 일침을 가하는 기영의 처가 환호하고 일단 아버지들이 즐거우니 그걸로 된 거다. 그것으로 관객도 충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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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3


결코 달콤하지 않았던 [달콤한 인생]과 우아할 수 없었던 [우아한 세계], 그 반어적 화법으로 꼬여버린 인생을 우린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에둘러 가지 않는다. [즐거운 인생]은 정말로 ‘즐거운 인생’그 자체를 그리는데 공을 들인다.“사는게 어떻게 즐거울 수 있니.”“이 빌어먹을 현실을 보라구.”“ 에잇, 더러운 세상.” 물론 ‘인생’ 혹은 ‘세계’, 이 참을 수 없이 진중한 단어에 부과된 가치관은 제각각 자유다. 그러니까 [즐거운 인생]이 즐거운 인생을 그리려는 시도를 애시 당초 받아줄 용의가 없으신 분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이 영화를 볼 필요도 없다.

영화는 2시간짜리 판타지 놀이다. 앤딩 크레딧이 오르고 극장 밖을 나설 때 얄밉게 전해오던 그 이질감으로 영화 속 세계를 애타게 그리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즐거운 인생]은 이러한 극장에서 영화보기 체험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 킬링타임용 영화라는 게 아니다. 뭐랄까. 현재진행형 영화라 할 수 있겠는데, 꿈과 행복 등 ‘즐거운 인생’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영화 속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끝낸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식의 사려깊은 배려는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 속 밴드 ‘활화산’이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이 영화가 갖는 힘은 신기루처럼 서서히 사라진다.

이 영화를 지탱하는 두 가지 요소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영화 속 남자들의 환상.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바로 그때,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그들의 외침. 그리고 “나이들면 마누라보다 친구야” 라는 남성 연대의 끈끈함.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도 ‘활화산’만큼 촌스러운 작명센스를 보이며 ‘충고브라더스’ 라는 밴드가 등장한다. 그들 역시 중년이 되어 다시 모이는데 그 중 단 한명만이 지방 밤무대를 전전하며 음악을 한다.

다시 만난 친구들은 그에게 “넌 행복하니?” 라는 질문을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한다. 다른 상황, 그러나 같은 결론.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밴드를 떠나는 이들을 붙잡을 수 없지만 [즐거운 인생]의 인물들은 밴드를 구성하기 위해 서로를 붙잡는다. 두 영화가 놓인 지점이 다름을 알려주는 상황들.

둘째,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장근석이 연기한 현준이다. 현준이 없다면 이 영화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불안한 느낌이 어쩔 수 없이 드는 것도 바로 현준의 존재 때문이다. 중년 상대의 나이트 클럽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던 밴드 ‘활화산’은 오로지 현준 덕분에 홍대 클럽으로 레벨 업! 한다. (‘현준빠’ 들이 이미 죽치고 있을 정도로 그의 외모, 연주.보컬 실력은 진작부터 홍대 클럽에서도 통한다) 현준과 죽은 아버지 사이에 어느 정도의 교감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현준이 ‘활화산’이라는 곳에서 보컬로 활동하는 이유는 아비에 대한 일종의 ‘제의’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의 활화산 멤버들도 친구 잃은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친구 영정사진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기영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친구의 시선처럼 부감으로 찍혔다. 그 시선 앞에서 기영은 절대적으로 무기력하다. 불타던 기타는 그런 그에게 결정적인 구실로 다가오면서,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니까 현준과 활화산 멤버 사이의 암묵적인 제례의식.

덧붙여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이 영화에서 여성들은'덧붙여' 얘기되고 있다. 김호정이 연기한 기영의 처가 그 중 조금 독특한 위치에 있다. 경제력과 가장의 권위를 가진 그는 기영을 주눅들게 한다. 하지만 이게 조금 애매한 게 그가 기영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님 기영이 그렇게 요령있게 포지셔닝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

하여튼 그는 바람피는 기영에겐 철썩! 뺨 한대를, 음악하는 기영에겐 짝짝! 박수를 보낸다. 후회와 피곤함은 내 몫이니, 그대라도 꿈꾸소서? 환상 속의 그대를 보는 건 다시 내 몫이 될테니. 혁수와 성욱의 처에 대한 캐릭터는 설명이 부족하거나, 설명이 쉬워 다소 아쉽다.

남,녀의 환상과 제례 의식으로 이들의 영화 속 삶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여기서 하지 않기로 한다. 이 영화는 이런 종류의 질문을 요구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이미 서두에서 밝혔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준익 감독은 [즐거운 인생]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자기는 그걸 말이 되게 만드는데 애썼다. 라고 했다. 그렇다. [라디오 스타]도 그렇고, [즐거운 인생]도 그렇고, 말이 안 되거나 혹은 같은 의미로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클라이막스 지점에 가선 분명 울컥!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혁수는 마치 유언을 남기듯이 어린 아들에게 말한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너바나, 신중현, 사랑과 평화, 시나위 는.... 꼭 들어야 한다” 물론 아들은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이건 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읊조림이다. 이 읊조림은 20년 전 그가 락을 모르는 대학후배에게 했을법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더 이상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고 싶은, 오로지 즐거이 살고 싶다는 욕망이 진행형으로 드러난다.

[즐거운 인생] 은 판타지로서의 꿈을 무조건 지지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들이 꾸는 꿈이 한낱 백일몽에 불과할지언정 그 백일몽이 그려지는 과정을 무책임하게 쓱쓱 그리진 않는다. 그리고 꿈은 꾸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거라고, 행동하는 행복론을 거슬리지 않게 설파하고 있다. 인생 뭐 있어. ‘active' 하게 놀다 가면 그뿐인 걸. ‘아, 나도 기영의 생글거리는 웃음처럼 즐겁게 살아야지.’ 라는 다짐이 어린 시절 일기 끄트머리에 습관적으로 덧붙었던 ‘참 즐거웠다’ 식의 무심한 감상이 아니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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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2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악보를 쥐고...

장면 하나. [즐거운 인생]의 중반부. 활화산’의 기타리스트인 기영은 드러머인 혁수를 찾아간다. 혁수는 캐나다에 가족을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였고,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떠나려 한다. 기영은 떠나려는 혁수에게 악보를 건넨다.

후반부 장면을 보면, ‘활화산’의 멤버들 모두 이 악보가 쥐고 있다. 그 악보는 대학시절 ‘활화산’ 멤버였던 상우가 남기고 간 유작이다. 곡명은 ‘즐거운 인생’. 20년 만에 재결성된 ‘활화산’의 멤버는 백수 기영, 기러기 아빠 상호, 대리운전자 성욱, 그리고 상우의 빈 자리는 그의 아들인 현준이 채운다. ‘활화산’은 20년 만에 재결성된 락 밴드다.

장면 둘.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전편인 [세 친구]에는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비 오는 날 남자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찾아간다. [세 친구]에서는 그 여자 아이의 초상화를 가져간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그녀를 위해 작곡한 곡의 악보를 건네준다. 하지만 비참하게도, 그림과 악보는 비 오는 아스팔트위에 떨어진다. 떨어진 순수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비 오는 아스팔트위의 종이는 향수가 되어갔다.
두 장면을 놓고 봤을 때,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은 [와이키키브라더스]와 비슷한 이야기인 듯하다.

아니면 떨어진 그 악보를 주워서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다. 닮은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 과거 음악을 했던 친구들의 손에 악기가 없는 것. 어쩌면 [와이키키브라더스]의 성우([즐거운 인생]의 상우와 이름도 비슷하다.)가 죽은 걸로 가정했을 때, 나머지 친구들이 모여서 [즐거운 인생]을 찍은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엄연히 다른 판본의 영화다.


-과거를 불사질러라.

이준익의 영화 [즐거운 인생]의 출발점은 흔들리는 가부장(들)이다. 기영(정진영)은 아침이면 바삐 움직이는 아내의 눈치를 본다. 깨어있지만 잠들은 척하며 딸과 아내가 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는 백수다. 혁수(김상호)는 캐나다로 떠난 가족들을 부양하는 기러기 아빠. 성욱(김윤석)는 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해, 낮에는 택배 일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한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의 교육에 온갖 정성을 다 바친다. 그 때문에 성욱의 등골은 나날이 굽어져 가는 듯하다. 세 명의 남자들은 저마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아내에게 용돈을 받는 기영이나, 아내가 끓여주는 된장찌개가 그리운 혁수나, 매일 같이 돈 이야기를 하는 아내를 둔 성욱이나, 모두 다 지긋지긋한 현재를 탈피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들이 등에 짊어진 ‘가족부양’과 이 시대의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위신이다. 아버지로서의 위신이 늘 그들의 발목을 잡아왔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하게 만들었다. 혹은 그들은 불안해한다. 백수인 기영이 아내와 딸의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건, 그 자신이 이 시대의 가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즐거운 인생]은 가부장의 권위와 위신을 불사지르는 영화다. 이 때 위신이 떨이지는 것이 아니라, 활활 타올라 없어진다. 그건 20년 전 ‘활화산’이 다시 부활하면서 시작된다. 물론 계기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상우’가 어느 날 주검으로 나타났을 때부터다. 상우의 아들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기타를 태우려고 한다. 이걸 본 기영은 불 속의 기타를 건져낸다. 영화는 이때부터 시작한다. 다행히도 기타는 가방만 불탔지, 가방속의 내용물인 기타는 온전한 상태였다.

이준익은 과거의 것을 태워버린다. 이 때 불타는 건 내용물을 둘러싸고 있는 외피다. 기타 가방만 불타고 기타는 고스란히 남은 것처럼, 이 영화는 386세대가 등에 지고 있던 역사의식과 가부장의 힘겨움을 모두 불살라버린다. 그리고 직입한다. [즐거운 인생]은 점점 자아도취, 무아지경의 영화로 변해간다.

눈치 볼 것도 없으며, 과도한 의무는 피해가도 된다는 약간의 쿨 함이 영화를 가로지른다. 세 친구를 이해한다는 사람들의 시선도 꽤나 옹호적으로 변해간다. 이 때 [즐거운 인생]은 일종의 변화를 꿈꾼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그들의 외피를 하나 둘 태워버리거나, 타인의 시선을 바꾸어 나간다. 무엇을 불태우는 걸까? 이 영화의 ‘상우’라는 존재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세 친구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 같은 존재며 기억 저편에 위치해 있다.

그를 볼 수 있는 건 영정 사진을 통하거나 84년 대학가요제를 준비하던 ‘활화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통해서 볼 수 있을 뿐이다. 고로 ‘상우’라는 존재는 현재에 있는 우리들에게 가상의 존재이다. 세 친구를 모이게 하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거나, 유령처럼 영정 밖으로 튀어나와 친구들에게 ‘즐거움’을 찾으라고 이끌어주는 도우미 같은 존재다.


상우의 죽음 덕분인지 세 친구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버린다. 기러기 아빠 혁수는 결국,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캐나다로 떠나지 않는다. 택배와 대리운전을 병행하던 성욱은 대리운전을 그만둔다.-성욱의 택배가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이라면 야간운전은 아이들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한 노동이다- 기영은 애초에 버릴 게 없는 백수였으므로, 변화를 꿈꾼다. 아내를 설득하고 딸 아이에게 인정받는 아빠가 되는 것, 그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이루어진다. 기영은 점점 당당해진다. 백수보다는 기타리스트가 더 낳다는 딸과 아내의 시선은 그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준다.

특이하게도 세 멤버 모두 몸에 문신을 새기지만, 오직 기영만이 그 문신을 가족에게 보여줄 수 있다. 혁수는 캐나다에 가족이 있고, 성욱은 밤낮없이 일만하기 때문에 아내에게 문신을 보여줄 틈이 없다. 기영은 아주 자랑스럽게 밤마다 아내에게 문신을 들킨다고 말한다. 또 딸이 보는 앞에서도 어깨쭉지에 있는 문신을 드러내놓고 다닌다. 당당함! 즉 그는 아버지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반면, 변화한 자신을 보여줄 가족이 없는 친구나,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기회가 없는 친구는 변화한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있다. 기영은 스스로 타인의 눈을 통해서 자신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는 자다.

물론 영화는 세 친구의 껍데기를 모두 불태워버린다.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플래시백이 없다는 것. 즉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향수를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탈피해 현재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영화다. 물론 영화 전반에 걸쳐 과거를 추억할 만한 멜로디의 음악이 흐른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사회적으로 당당하지 못하고, 가정에서 홀대받는 386세대다.

누구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고, 각자의 추억 속에 산다면 웅크린 자폐아들의 향수일 뿐이다. 이준익은 그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가 싫었던 건지, 단순히 지금을 즐기자는 이야기를 건넨다. 상우는 죽었고 그 빈자리는 그의 아들인 현준이 차지한다. 그리고 현준을 둘러싼 건 아버지의 친구들인 ‘활화산’ 멤버들이다. 하지만 락 밴드가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과거를 향수해서는 안 된다. 또한 현재를 짓누르는 과도한 무게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껍데기를 불태우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무아지경에 빠지고 나서야 이 영화는 성대한 축제를 즐길 준비가 끝났다고 말한다. 해체 위기에 놓였던 ‘활화산’멤버는 각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 자리에 모인다. 비록 악기는 없지만, 입을 악기 삼아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지도 않은 기타와 드럼을 가진 것 마냥 신나게 한 판 연주를 벌인다. 이 때 카메라는 이들을 중심으로 360도 패닝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패닝은 난도질당한다. 도는 족족 중간 중간 끊어지고 다시 연결되는 어지러운 편집을 감행하는 데, 이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만약 360도 패닝을 한 컷으로 보여줬다면, 이들의 모습은 세 명이 하나가 되는 조화를 이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없이 난도질당하는 사이 이들은 각자가 하나의 쇼트를 담당하게 되고, 그 사이 이 세 명의 인물은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무아지경, 자아도취에 빠진 한 인물들의 모습이다. 기영과 혁수, 성욱은 그렇게 자기 세계와 행복에 미쳐서 빠져나올 줄 몰랐던 것이 아니었을 까? 비로소 자기를 둘러싸고 있던 껍데기를 불태워버린 마냥...

상우의 아들인 현준은 ‘활화산’이 해체되려고 하자 기영에게 부탁한다. 활화산이라는 밴드의 이름을 자신이 만들 밴드에 쓰게 해달라고. 이 때 영화는 명백히 과거를 불사질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에 조용히 반항한다. 현준 스스로 아버지가 싫어했던 음악을 다시 하는 것처럼 이들의 삶은 세상을 흔드는 변화가 아니라, 자기를 짓누르던 타자의 시선에 반항하는 것이다.

[즐거운 인생]은 불타버린 과거, 그 잿더미 위에서 다시 출발하는 도약이 필요하다고 넌지시 읊조린다. 이름만 빌려왔을 뿐, 그리고 사진만 남았을 뿐.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는 나약해진 자기를 추스른다. 이들은 말한다,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건 바로 그대이며 바로 나라고... 그러니 이 영화를 본 우리들도 쓸데없는 껍질일랑 불태 버리자! 인생은 즐거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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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요리와 이준익 감독

필진 칼럼 2007.09.12 17:41 Posted by woodyh98

2007.09.12



오래전, 저녁마다 TV에서 해주는 프로그램 중에 ‘오늘의 요리’라는 것이 있었다. 대게 오후 6시를 전후해서, 그러니까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에 맞춰 그날의 요리를 소개하는 프로였는데, 유명한 요리전문가가 나와서는 재료소개에 이어 요리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를테면 왕준련, 한정혜, 하선정, 한복선, 이종임 같은 분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되고 재조명된 요리의 달인들이었다고나 할까?

학창시절에는 어머니와 자주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곤 했는데, 그때 마다 어머니가 하시던 단골 멘트는 “세상에, 고기 넣어서 안 맛있는 음식이 어디 있다니!”였다. 그러면서 어김없이 “소고기 200그램 넣고 자잘한 재료 넣어서 만드는 음식을 별미라고 소개 하느냐”며 혀를 차곤 하셨다. 그렇다. 고기 들어가서 맛없는 음식이 있을까. 요즘 같으면 한우다 수입소고기다 하면서 구별 지어 고기 맛을 따지고 한우도 명품한우니 횡성한우니 약초한우니 하는 식으로 원산지와 사료로 차별화시키고 있지만 그 때만해도 소고기 먹는 것이 명절이나 생일에 한 번 돌아오는 연례행사인 시절이었으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정확히는 스스로 밥을 해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소고기를 넣어 만드는 요리가 무작정 맛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음식이란 재료도 중요하지만 손맛에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를 만드는 행위를 요리와 비교해도 한 치의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된다.

즉 감독은 요리사요 시나리오와 배우와 소품과 미장센을 포함한 모든 환경들은 요리재료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와 연기파 배우와 완벽한 공간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감독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일 아니겠는가. 소고기를 듬뿍 넣는다고 해도 손 맛없이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준익 감독은 손맛이 출중한 요리사로 불릴 만 한 사람이다. 이는 그가 음식을 만든다면, 있는 재료를 총동원하여 최상의 밥상을 차려낼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우연인지 몰라도 [라디오 스타]에서 중국집 주방장으로 출연한 그의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았나?) 시간이 조금 흘렀으나 [즐거운 인생]의 시사회를 통해 필자는 그것을 느꼈다. ‘인생은 놀이’라는 그의 인생관과 ‘요리하는 자’의 손맛이 영화의 면면에 깊게 배어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네오이마주의 9월 기획은 이준익의 [즐거운 인생]과 그의 영화세계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감독론부터 연기론, 개별영화 평론과 리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이준익의 영화세계를 탐구해볼 요량이다.
[즐거운 인생]의 스토리는 사실 뻔한 이야기와 예측 가능한 감정선 위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의 행동이 전부다. 그럼에도 이것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완성시키는 연출력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무수한 실패와 반복학습을 통해 비로소 가문의 손맛을 터득하는 것이 종부의 길이라면, 감독의 길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특별한 레시피 없이도, 누구나 탐내는 명품재료 하나 없어도 칼만 잡으면 제법 맛난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몇 안 되는 요리사, 우리시대의 즐거운 영화기능공 이준익의 [즐거운 인생]을 네오이마주가 작심하고 미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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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4
하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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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이 돌아왔다. 딱 1년 만이다. <왕의 남자>의 1000만 동원을 거쳐 <라디오 스타>로 자신만의 인장을 꾹 찍었던 그가 40대 아저씨들이 록 밴드에 도전하는 음악 영화로 귀환했다. 바로 오는 13일 개봉을 앞둔 <즐거운 인생>이다.

최근 SBS <스타킹>이란 프로그램에 40대 '동방신기'가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면 영화 속에는 록밴드 '활화산'이 부활했다. 20년 전 대학가요제 3년 연속 탈락이라는 화려한(?) 기록을 세우고 자진 해체한 록밴드 '활화산'. 리더인 상우의 죽음을 계기로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소주잔을 기울이던 와중 은밀한 눈빛이 교환된다. '그래, 까짓 것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은행에서 명퇴한 후 주식으로 퇴직금 날려먹고 선생님인 아내 선미(김호정)의 눈칫밥을 먹고 사는 리드 기타 기영(정진영), 초등학생 아들 둘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 운전을 하는 열혈 가장 베이스 성욱(김윤석), 중고차 판돈으로 캐나다로 떠난 자식과 마누라를 부양하는 기러기 아빠 드럼 혁수(김상호)가 그 얼굴들이다. 여기에 유일무이한 활화산의 노래 '터질거야'를 요즘 감각으로 불러 제낀 상우의 아들 현준(장근석)이 합세 하며 밴드는 활기를 띠게 된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비주류들 합치면 주류보다 훨씬 많다. 비주류들이여, 주류의 음모에 놀아나지 말자. 주류가 부러워하는 비주류가 되자는 거야"라며 록과 마이너리티, 유희 정신을 설파한 바 있는 이준익 감독. 세련된 영화 언어보다 대중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촌스러운 준익씨'의 최신작이 <라디오 스타>에 이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릴 기세다.

재가동된 '이준익표' 감수성

투덜이 L : "우리 오랜만인데? 꼭 '활화산' 멤버들이 다신 뭉친 기분이야."

시니컬 H : "우리도 이제 영화 속 현준이 처럼 스무 살이 아니잖아. 먹고 살다 보니 바빠져서 그런 것 아니겠어? 아, 영화 보면서 이런 감정 느끼는 관객들이 하나 둘이 아니겠구나."

투덜이 L : "선배는 작년에 <라디오 스타>에도 감동 먹었었잖아. 눈물 쏟는 거 옆에서 다  봤다고. 우리 준기 씨랑 우성 오빠가 빛났고 1000만 관객이 인정했던 <왕의 남자>는 그렇게 탐탁치 않아 하더니 말이야."

시니컬 H : "그건 개인의 취향과 기호라고! <라디오 스타>에서 '형이 와서 좀 비춰주라'라는 대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올해는 더 치열하다는데 작년 추석 개봉작 중 호평을 얻었는데 흥행은 가까스로 200만을 넘겼잖아. 기자들끼리 흥행 예측 내기 했었는데 지는 바람에 아까운 돈만 날리고 말이야."

투덜이 L : "올해도 기자 시사회 반응은 좋지 않았어? 아무래도 이준익 감독은 먹물들한테 인기 인가봐. 하긴 확실히 울리고 웃기거나, 영상이 세련됐거나, 잘나가는 스타들이 나오는 영화는 아니니까."

시니컬 H : "<라디오 스타>랑 겹쳐지는 부분만 봐도 그렇지. 한물 간 록스타랑 매니저와 록밴드를 결성하는 40대 아저씨들. 이준익 감독도 전작보다 '더 확장된 이야기'라고 하더라고. 하긴 주인공의 숫자도, 그 주변부 인물도 늘어난 데다 무엇보다 스타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인물들이니까."

투덜이 L : "아무래도 공감대를 형성할 관객층은 <라디오스타>와 비슷할 거 같지 않아? 지식인, 남성, 20대 중후반 이상 관객층 말이야."

시니컬 H :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왕의 남자>를 봐. 장생과 공길 외에도 연산군이나 처선의 시선을 확보하면서 폭넓은 관객을 끌어 들였잖아. <라디오 스타>의 그 짠한 정서나 '이준익표' 감수성이 그대로인데다 이 30, 40대를 위한 응원가는 어쩌면 보편성을 공유할 가능성도 적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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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덜이 L: "아무리 그래도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는 것 같아. 무기력했던 아저씨들이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뭉치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그마한 성공을 일궈낸다는 거. 최석환 작가가 이번에도 3일 만에 후다닥 시나리오를 썼다지?"

시니컬 H : "예쁘게 본다면 그런 순발력이 장점이고 까칠하게 본다면 독창성을 접어두는 거겠지. 사실 내러티브만 놓고 보면 여느 할리우드 장르 영화와 다를 것이 없거든. 올해 미국에서 히트한 영화 중에도 존 트라볼타가 나온 <거친 녀석들>도 아저씨들이 모터싸이클 타고 미국 횡단하는 이야기거든. 비슷한 소재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도 일본 원작이라잖아. 중년들의 꿈을 응원하고 일탈을 그린 영화들은 차고 넘치지."

투덜이 L : "자꾸 아저씨, 아저씨 하는데 당신도 얼마 안 남았거든? 중요한 건 우리가 공감할 만한 감수성이고, 또 소재로 록 밴드를 다뤘다는 차별점이 아닐까?"

시니컬 H : "그 놈의 한국적인 정서 좀 그만하자. 할리우드 대중 영화들이 전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건 물론 그간의 물량공세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지만 그 만큼 인터내셔널한 보편성을 지녔다는 의미도 간과할 수는 없거든? 전체적인 흐름이 무난하다는 건 미덕이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면 쌍수 들고 환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봐."

투덜이 L : "이 아저씨, 또 딴지 거시긴. 난 두 명의 실업자와 한 명의 기러기 아빠가 자기 꿈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우리 상황 안에 딱 대중영화 만큼의 현실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봐. 김윤석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매몰되어 있는 아내에게 '애들이 다야?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살아'라고 말할 때 울컥 하던걸."

시니컬 H : "그래. 이준익 감독이 관객을 울컥 하게 만드는 건 촌스러운 내러티브나 화면 구성은 아니니까. 라스트 공연을 앞두고 세 아저씨가 아카펠라로 록 연주를 하는 일종의 판타지 신은 누구라도 응원할 수 없게끔 만드는 끈끈한 정서로 가득 차 있으니까."

전략적인 '꽃미남' 장근석, 촌스러운 연주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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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L
: "아무래도 중년 배우들로만 이뤄진 캐스팅이 약하지 않느냐는 말들이 많던데 우리 근석이가 영화를 살려놨어. 10대나 20대 초반 여자 관객들을 위한 팬서비스랄까? 자기 반영의 개그기는 하지만 오디션 볼 때 나이트 상무의 은근한 눈빛을 봐. 딱 관객들이 스무 살 장근석을 바라보는 시선 아닐까?"

시니컬 H : "그렇게 좋았어? 그런 점에서 이준익 감독은 영악하기도 해. <라디오 스타>에서 '노브레인'이 담당했던 활력을 장근석과 트랜스픽션이라는 인디밴드가 맡았으니까. 노브레인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신은 은근히 웃기던데. 감독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 거지. <라디오 스타>와 비슷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구!" 

투덜이 L : "다른 이야기인데 여성관객들에게 얼마나 어필할지는 모르겠어. 현실 반영 차원인지 해석의 문제인지 세 명의 아내들은 악녀까지는 아니더라도 걸림돌처럼 느껴지거든."

시니컬 H : "뭐, 남자들이 철이 없으니까 구박받아도 마땅한 거 아닐까. 여성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지. 여성, 남성을 떠나서 늦더라도 '니 꿈 찾아 맘대로 살아봐'라는 이 지극한 판타지에 얼마나 공감하느냐의 문제겠지."

투덜이 L : "역시 아저씨도 철이 없으시군요. 그나저나 공연 장면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어. 연습 장면은 가볍게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무대에서 공연하는 장면은 여타 음악 영화에 비해 쾌감이 적더라고. 경쾌한 록 음악이 울려 퍼지는데 불구하고 말이지."

시니컬 H : "응. 연습 장면의 대사나 표정들은 밴드 경력 있거나 음악 좋아하는 친구를 둔 관객들이라면 쉬이 공감하겠지만, 록 공연의 활력을 화면으로 전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 비루한 인생에 대한 응원, 즐거운 놀이 같은 인생, 이런 모토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에 걸맞은 영상이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

투덜이 L : "그걸 상쇄하는 게 아무래도 배우들의 몫인 거 같아. 특히 구수한 아저씨 김상호는 최대 수혜자이자 <즐거운 인생>의 발견이야. 이준익 감독이 어찌나 편애하던지 클로즈업에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던데? 혁수 캐릭터도 셋 중에 가장 인간적이고 말이야. 드럼 칠때나 아이들과 통화할 때 짓던 그 환한 미소가 어찌나 귀엽던지 말이야."

시니컬 H
: "난 '아귀' 김윤석과 정진영씨 아내로 나온 김호정. 위의 그 김윤석씨의 대사도 좋았지만 판타지 신이라든지 소주 잔 기울이는 장면에서 특유의 너털웃음이 잘 살아있더라고. 김호정은 <플란더스의 개> <모두들, 괜찮아요> 등을 통해 바가지 긁는 아내 전문배우가 되어 버린 것 같지만 그 만큼 넉넉하고 현실감 있는 연기가 없었다면 선미 캐릭터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전락했을 거야, 아마."

투덜이 L : "추석 시즌 개봉 작 중 어떤 작품이 흥행적으로, 작품적으로 살아남을지 미지수이지만 <즐거운 인생>이 관심이 가는 몇몇 작품 중에 하나인 건 사실이야. 이준익 2년 연속 안타를 칠 수 있느냐도 궁금하고."

시니컬 H : "그러게. 기획이나 인물, 영화 자체는 참 뻔하고 촌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완성품을 보면 왠지 정감이 간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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