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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광


김태곤 감독님 혹은 그의 영화 <독>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겠다거나,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거나, 공포영화니까 내가 적임자라던가 등의 어떤 거창한 이유 없이, 단지 감독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독자 인터뷰를 신청했다. 인터뷰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전혀 없는지라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다소 겁이 나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정신으로 겁 없이 질러보았다. 이렇게 막무가내 식의 결정을 내린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늘 생각처럼 만만치는 않은지라, 기일이 닥쳐와도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뭘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모르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야 모르는 거니까 그냥 영화나 보고 가자라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영화 얘기 할 거니까 영화 보고 가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 두 번 딱 감상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인터뷰는 인디스토리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는데, 김태곤 감독님과 편집장님 그리고 나, 세 명의 인원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인디스토리 직원께서 찍어주었다. 인터뷰에 앞서 네오이마주는 인터뷰 내용을 중간에 커트하거나, 분량을 줄이는 일이 없으니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대로 모두 말하라고 당부했고, 그에 대해 감독님은 그럼 더 위험한데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김시광(이하 ‘인’) :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김태곤(이하 ‘독’) : 사실 영화 마니아가 아니었다. 영화를 무슨 영화관에 찾아가서 보거나, 영화제를 찾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 다들 그랬듯 비디오 빌려보고, 우뢰매나 애들 다 보는 그런 영화만 극장에 가서 보고는 했다. 영화가 너무 좋다, 영화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기 전에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글짓기를 좋아하게 된건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잘 쓰면 상을 주니까.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런 기회가 별로... 칭찬 받으니까 좋더라. (웃음) 아, 내가 글을 잘 쓰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갔다. 그 때도 딱히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는 건 없었다. 근데 그 때 당시 [나]라는 드라마가 유행했다.


인 : 본 적이 없다.

독 : 방송반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아이들의. 그걸 보고나니 방송반이 가고 싶어졌다. 오디션을 통해 방송반에 가입했다. 거기서 처음 카메라를 접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무슨 과를 가야하고, 앞으로 뭐를 해서 먹고 살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글도 잘 쓰는 것 같은데 영화감독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 : 그 때가 정확히 언제쯤?

독 : 고등학교 1학년 말이었다. 원래는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다. 과외 선생님이 그 때 한양대에 다녔었는데 한양대에 영화과가 있다 이런 말을 전해 듣고 하면서, 애니메이터보다는 영화감독이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술 전공한 애들보다는 그림을 훨씬 못 그릴 테니까. 그 때부터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인 : 그러면 글쓰기를 좋아했었다는 것 하고, 영화를 하기 전에 소설을 쓴다는 스타일은 같은 연장선에 있는 것인가.

독 : 그렇다.


인 : 그럼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영화를 만든다는 것과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

독 : 내가 소설가로서의 꿈을 가졌다고 하면 글쓰기에만 전념하겠지만, 내 경우의 소설은 영화를 만들기 전 단계 정도로 생각을 한다. 시나리오 쓰는 것은 솔직히 재미없지 않나. 계산적으로 플롯을 짜야 되고, 처음과 끝에 대한 아귀라든지 그런 강박이 있어서 그런지 시나리오는 재미가 없다. 그런데 그 전에 소설을 쓰는 단계에서는 끝을 생각하지 않고 쓸 수가 있다. 내 소설 쓰기 방법은 내가 소재를 잡고 쓰기 시작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디테일을 묘사할 수도 있고, 또 그 날의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는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전단계로 쓰다 보니 내 소설을 읽어보았던 측근들은 네 소설이 약간 영화 보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소설 자체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차이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


인 : 예를 들어 [독]의 경우에도 영화를 만들기 전에 중편소설 하나 썼다고 들었다. 혹시 볼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독 : 사실은 출판을 컷이랑 묶어서 필름-북처럼 하기로 했었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 그 전의 소설을 읽어보니까 손발이 오그라들더라. 두려움에 다시 들춰내서 보고는 했었는데. 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직접 주는 방법 외에는 없다.


인 : 직접 받는 방법 외에는 못 보는 것?

독 : 그렇다.


인 :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영화 <독>하고 소설 [독 안의 노인]하고는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감독의 스타일대로라면 영화라는 것은 약간 짜여 진거고, 소설 같은 경우는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뻗쳐나가는 그러니까 자유도가 높다고 해야 할 텐데. 결정적으로 달라진 부분은 없는가.

독 : 나는 인간의 심리라든지 그 디테일이 너무 좋다.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이 소설 쓰면서는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들 자체가 상당히 디테일하게 많이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의 사건들이라든지, 영애의 심리라든지 그런 것들도 좀 더 디테일하게 많이 들어가 있다.


인 : 앞으로도 계속 시나리오 작업은 소설쓰기로 대체할 생각인가.

독 : 그렇다.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데, 조금씩 쓰는 거라서. 어쨌거나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항상 김태곤의 소설을 쓰고 있다.


인 : 첫 작품을 공포영화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독 : 공모전이 있었다. 원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대학원에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게 학부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 공모전에 이게 될까 안될까를 반신반의하면서 써놓았던 소설 중 하나를 시나리오화해서 제출했다.


인 : 그러니까 BK 지원 말인가.

독 : 그렇다. 이 작품을 위해서 몇 년간 준비하고 이랬던 것이 아니라,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무조건 찍어야 했던 것이다. 첫 작품을 공포영화로 해야겠다 이런 건 없었고, 써놓았던 소설 중에 이 정도 예산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는 이거겠다, 라고 해서 만들게 된 거다.


인 : 예산은 어느 정도 들었는가.

독 : 대략 1억 원 정도 들었다.





인 : 이제 영화로 들어가 보자. 실은 내가 인터뷰를 해본 경험이 없어 조금 앞뒤가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독 :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고. (웃음)


인 : <독>은 반전이 있는 영화다. 그런데 이 반전이라는 게 결말에 가서 앞에 했던 얘기들을 완전히 뒤엎는 영화는 아니고, 아 그랬구나, 라고 설명해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그래서 반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독 : 반전의 미학이 있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나 그런 것. 그러나 <독>은 그런 충격적인 반전을 노리고 만들지는 않았다.


인 : 그렇다면 너무 약한 영화니까. (웃음)

독 : 장르적인 재미나 영화 보는 재미에 있어서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는 하지만. 예를 들어 처음부터 드러내고 시작하는 것과 그것을 숨기고 시작하는 것 사이에서 굉장히 고민을 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기대감이 떨어질 거라는 걱정이 있었다. 이미 다 알고 있고. 저래서 저랬구나, 라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아떨어지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안으로 페이크성 장치들을 조금 집어넣었다. 아이의 행동이라든지, 남자의 불편한 심리상태라든지. 이런 것들이 왜 이렇게 될까, 무엇 때문에 그렇지,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간 다음에 아 이래서 그랬구나, 그리고 그 반전 후에는 더 극악스러운 상황까지 몰아가는 식의 구조를 잡고 영화를 만들었다.


인 : 회상을 제외하고서는 시간상으로 순서대로 흘러가는 구조임에도, 혼란스럽다거나 시간이 조금 뒤틀리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처음에 이 남자가 손에 밴드를 감고 있는데, 그 밴드를 왜 감았는지에 대해서는 그 이유가 나오지 않은 채 후에 어항 장면에서 딸 때문에 손을 다치게 된다거나. 부인이 욕실에 들어가는 장면은 없는데 욕실 안에 있다가는, 다른 이야기로 잠시 넘어갔다가 여자가 욕실에서 나오는 장면부터 시작한다거나.

독 : 그런 시간의 뒤틀림까지 계산을 하고 가지는 않았다. 다만 불편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게, 편집하는 지점들이 갑작스럽게 끝나는 장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런 장면들은 아마도 내가 인서트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니까 씬과 씬이 부딪히는 장면들에서는 사운드라든지 이런 걸로 대체하고 싶었고, 인서트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느낌보다는 충격, 충격, 충격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삐거덕 거리는 느낌의 톤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촬영할 때도 그렇고, 편집할 때도 그렇고, 조금 씬과 씬이 부딪히면서 좀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게 나중에 결말로 봤을 때 좀 더 그런 것들이 파편처럼 기억에 다시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 : 영화의 초입부터 확실히 중간까지는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 느낌이 많이 난다. 새로운 집에 이사를 갔는데 이웃들이 필요 이상 다가오는 것 같고, 거기에 뭐가 모를 불안함과 비밀이 있는 것 같고. 결정적으로 장권사라는 사람이 몸에 좋은 거라고 음료를 줄 때, <악마의 씨>의 한 장면을 생각했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 것 같다. 혹시 영화를 만들기 전 참조했던 공포영화가 있는가.

독 : <악마의 씨>도 많이 봤었고, 기요시 감독 영화도 많이 봤었다. 의식적으로 참고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 두 영화들은 내가 많이 좋아하는 공포영화들이다. 이를테면 <회로>같은 영화.


인 :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 그 때 준 음료가 이상한 것이었나. 후에 장권사가 미애에게 쿠키를 줄 때, 미애 엄마가 이상한 거 버리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던데.

독 : 중요한건 장권사가 이 집에 오는 구실이었지, 음료가 중요한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계속 장권사가 미애 엄마를 계속 불편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보통 친한 교회 사람들끼리는 김치도 나눠먹고, 반찬도 주고 가고 그러지 않는가. 편집된 장면에는 그 음료를 먹으려다가 버리는 장면이 있었다. 양은용 씨의 당시 감정 상태가 상당히 중요했다. 남자는 친하게 지내려 하는 거고, 여자는 너무 싫고. 그런 반대편에 있는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의 경우에는 원래 미애의 설정 자체가 아토피가 있는 아이였다. 나중에 막 긁기도 하고. 사실 아토피에 대한 설명들을 해야 할까, 좀 숨겨둬도 되지 않겠나, 등등을 고민했다. 시나리오를 15고까지 쓰면서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들어갔었는데, 그 중에 아이의 음식에 엄마의 강박관념도 있었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 드러났듯 아이의 할머니가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고 하는 것이 발로가 된 것일 수도 있고, 아토피의 원인이 할머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단 음식을 아이에게 준 것에 대해 화가 나는 그런 거랄까.


인 : 회상 장면에서도 양은용 씨가 어머니에게 밥을 줄 때 뭔가를 타는데, 제목 때문인지 그게 자꾸 독처럼 보이더라. 그 때 할머니가 아이에게 음식을 주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할머니 음식에 약을 탔기 때문 아닌가.

독 : 이것도 어떻게 보면 숨겨진 이야기인데, 치매가 걸린 노인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깨어 있으면 괴로우니까 일정량의 수면제를 먹이는 거다. 자면 편하니까. 이 여자 역시도 쭉 그렇게 해왔던 거고, 남편도 묵과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아이에게 먹이면 안 좋을 테고.


인 : 이런 것들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음으로써 좀 혼동되는, 재미있는 구석들이 많은 것 같다. 만약 양은용 씨가 할머니 음식에 독을 탄 것이었다면 남자에게 모두 당신 잘못이라며 몰아붙이는 것은 회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불공평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의 죄가 없지 않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영화를 보면서 헛다리를 짚고 상상을 너무 뻗쳐나간 것 같다.

독 : 그게 좋지 않나.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웃음)


인 : 독, 그러니까 또 생각이 나는 건데. 집들이 장면에서 독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에피소드가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할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가.

독 : 사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경비실 아저씨가 “사실은 말이야,” 이런 식으로 괴담처럼 얘기하기보다는 그냥 툭 던지는 느낌으로 정보를 던지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조금 껄렁한 형의 입으로 얘기를 펼치도록 했다. 주인공은 아파트라는 그 희망하는 공간에 왔음에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사실 그 발로가 독에 빠졌던 기억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파트는 자신이 원하는 욕망이 아니라, 남이 원하는 욕망에 투영을 한 거다. 자기의 욕망 자체가 자기가 정말로 바랐던 게 아니면 뒤틀릴 수밖에 없다. 모 아파트에 살고 싶고, 8학군에서 편입되고 싶고. 사실은 그런 것들은 모두 남이 만들어놓은 욕망이다. 우리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욕망에 의해 가고 있는데, 그 결과는 역시 굉장히... 그 욕망을 이루었을 때 굉장히 허탈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 : 독과 아파트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니까. 그리고 다른 소재, 종교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본인이 생각하는 종교를 표현한다면.

독 : 사실 다른 종교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기독교, 개신교를 다녔었다. 부모님도 그렇고, 집안 자체가 다 기독교 집안이다. 종교는 굉장히 숨기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 때문에 가족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어머니를 보면, 그렇게 나이가 든 중년 여자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생각해보면, 교회를 다니면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를 만난다는 순기능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종교 자체는 정말 좋은 것 같은데, 그것을 믿는 자들이 잘못 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은 굉장히 극단적으로 나와 버린다. 이것은 공권력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사람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나를 반대하는 자는 다 사탄이 된다. 그런 식으로 나오는 얘기들을 많이 봤다. 사람들 때문에, 종교 때문이 아니라.


인 : 영화에서 그려낸 종교에 대한 이미지들은 주위에서 한 번씩 봤음직한 그런 것들이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에서 장권사라는 인물은 주인공의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의 본질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짚고 접근하는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독 : 사실 나는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100% 아니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분명히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있더라. 마치 내 뒤통수 너머의 뭔가를 보는 것처럼.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 어머니의 친구들도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서 장권사의 캐릭터를 따왔다. 물론 그들의 말이 모두 다 맞지는 않는다. 그런데 10번 중에 다섯 번은 맞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그 사람들을 맹신하게 만드는 거다. 사실 장권사가 미애 뒤통수 너머의 무언가를 봤다기보다는, 나는 미애 역시 공범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 한 집에 살지만 남편과 아내가 할머니에 대해 한 마디도 얘기를 안 한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이고. 서울로 함께 상경하면서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역시 묵과하고 있는 거다. 나중에 나오지만 이 아이가 나오면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고민이 있는 거다.


인 : 처음부터 설명되는 영화가 아니라 뒤에서 설명되는 것이 많다보니까, 애가 둘째를 시기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나도 그렇게 버릴 거라고 말하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솔직히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나서 그게 모두 이해가 된다기보다는, 기억을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때문인지 두 번째 볼 때 영화가 더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이사 온 날 남자가 “형 나 오늘 힘든 날이었어요.”라고 얘기를 한 이유를 알고 보면 그 장면이 더 괴롭기도 하고.

독 : 나는 다 안다. 왜 이러는지에 대해서. 하지만 관객은 그렇지 않다. 그걸 복기하는 시간이라는 게 너무 기니까. 정보의 양이 너무 많으니까. 그런 것들이 그러니까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첫 영화인 탓이겠지.


인 : 그래도 그런 게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사실이다. 템포도 그렇고. <독>이라는 영화가 어려운 영화는 절대로 아니지만 분명히 놓치는 부분은 좀 있을 것 같다. 알고 보니 디테일이 엄청나게 풍부하더라.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영화의 반도 못 본 것 같다. 사실 두 번 봐도 재미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인건 분명하니까, 내 입장에서는 최고의 칭찬이다.


독 : 감사하게 생각한다. (웃음)


인 : 영화 전체를 두고 감독의 입장에서 내가 이 장면은 정말 공들여 찍었다, 그러니까 본인이 특히 아끼는 장면이 있다면.

독 : 작정하고 사람들이 좀 무서웠으면 좋겠다는 장면들은 다 어려웠다. 사실 현장은 전혀 안 무섭고, 난리가 아니니까. 좀 더 무섭게, 이상한 표정, 이런 장면들이 사실 참 어려웠다. 내가 28살 때 찍었던 건데 내가 봐도 어설픈 점들이 보이는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장면보다는 식탁 씬에서 영애와 형국이 대화하는 장면들이 대체적으로 좋다. 기도하고 나서 툭 치고 일상적인 대사를 나누는 것, 그 때 대사의 톤이라든지 대화의 템포라든지. 사실 그 장면을 찍을 때 두 배우들이 안 좋았다. 감정이 안 좋다기보다는 상황들이 조금 힘들어가지고.


인 : 좀 예민해진 상태였나.

독 : 그렇다. 워낙 빡빡한 일정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 장면들과 그 때의 긴장감들이 연기로 잘 나온 것 같아서 정말 좋았다. 놀이터 씬도 애착이 간다.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밤에 놀이터에 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 놀이터에 들어가기 전 풀숲을 걷는 느낌들이나 그런 것들은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거라서.


인 : 주연배우가 굉장히 영화하고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독 : 내가 인맥이 많지는 않았다. 영화 자체가 학교에 다닐 때 시작되다보니 인맥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 오디션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몇몇 영화나 이런데서 봤던 분들을 생각도 했었는데 워낙 규모가 작고, 감독 역시도 필모그래피가 뛰어난 게 아니다보니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임형국 씨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시나리오를 누굴 통해서 봤는데, 대한민국에서 이 남자 주인공의 역할을 가장 잘 할 사람이 나”라는 자신감이 차있는 내용의.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다. 한 번 오라고 했고, 단편영화들을 봤는데 너무 너무 좋았다. 너무 전형적이지도 않고, 약간 못하는 듯한 연기인데 그게 계산되어 있는 거고. 그런 연기들이 너무 좋았다. 시나리오 얘기하면서 술도 많이 먹었는데, 그 때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다.

양은용 씨의 경우는 독립영화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시더라. 나는 잘 몰랐다. 사실 영애 캐릭터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몰랐다. 일단 여자이기도 하고, 애 엄마이기도 하고, 임신 중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이 캐릭터 만큼은 여자배우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 하면서 오디션을 봤는데, 그 때 양은용 씨가 나타났다. 우리 스탭들이 다 좋아하더라.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기존에 연기하신 것도 찾아보고, 주위 분들에게 들어보고, 만나서 보니까 정말 정확하게 연기를 잘 하시는 분이더라. 이 분이라면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잘하셨고. 아역의 경우 너무 전형적인 연기들을 한다. CF에서 나오는 그런 “더 주세요.” 같은 자기가 아이가 아닌 것 같은.


인 : 그런 아이의 판에 박힌 연기를 보면 솔직히 가증스럽다.

독 : 아이 자신도 가증스럽게 느끼는데, 그렇게 가르치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는 그런 아이니까. 그런 연기들만 하는 것 같다. 또 기존에 영화에 많이 나온 아역들은 개런티가 안 맞고. 그랬었는데 미애를 맡은 류현빈이라는 아이는 연기경험이 없었다. 그런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들이 훨씬 자연스럽더라. 생긴 것부터가 포스가 느껴지기도 하고. 잘 못하지만 상황들을 던져주면 되게 흡수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50명 정도, 아니 그 이상 오디션을 봤었는데, 결국 현빈이를 택하게 되었다.


인 : 주연들도 그렇지만 배우들을 잘 쓴 것 같다. 장로님이나 권사님. 장로님 죽기 전에 상당히 위엄 있는 그 목소리 같은 것이나, 웃으실 때 가끔씩 공포스러운 느낌을 보여주는 권사님이나.

독 : 하하하.





 

인 : 영화의 큰 줄기는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가 두고 온 것에 대한 이야기고, 거기에 들어맞는 예로 고려장을 든 것 같았다. 그래서 상당히 사회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영화는 사회적인 영화라고 한다면?

독 : 근대화 과정은 아닌 것 같다. 고려장이라는 게 워낙 오래 된 거라서. (웃음) 사실 그렇게 큰 담론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었다. 사실 얘기가 나의 집안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이든 노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폭탄 같다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94살에 돌아가셨는데, 2개월밖에 못 산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도 2년을 더 사셨다. 그 때 할아버지와 모시고 사는 부모님 사이에 굉장히 미묘한 기류가 느껴지더라. 내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할아버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죠?”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그냥 천수까지 사시다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 영화는 그 다큐멘터리를 극단적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부모가 있는 모든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만약 내 부모가 나이가 들어서 아프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무의식이나 의식에 있어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아닐까? 근대화의 과정에서 두고 온 부분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지 않았다.


인 : 훨씬 더 작고 개인적인 그런 영화였구나.

독 : 좀 더 사회적으로 본다면 아까도 욕망에 대해서 말했지만, 그게 현대화되는 과정에서라기보다는 좀 더 잘 살은 욕망이라든지, 그 욕망 자체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게 뭔지에 대해서 깊이 고찰하지 않고 보여 진... 내가 보고 부러웠던 것에 대한 욕망에 대해 꿈을 꾸면 잃어가는 모습이 많이 보일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렇고.


인 : 영화가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아파트는 결국 욕망의 산물인데. <독>의 아파트는 건물 상태도 그렇고, 엘리베이터도 그렇고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서울에 있으니까 상당히 비싼 집이기는 할 텐데. 그런 아파트로 결정한 이유가 있을까? 굉장히 근사한 아파트가 아닌 이유가.

독 : 사실 그게... 그런 집을 섭외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인 : 섭외라고 하면, 그 집은 어디서 찍은 건가.

독 : 누나 집에서 찍었다. 사실 굉장히 화려하고 좋은 아파트를 제가 본 적이 별로 없다. 타워팰리스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아파트라는 공간 자체가 너무 집집마다 다르고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다. 타워팰리스도 사실 그 이름을 사고 싶은 거지, 그 공간을 사고 싶은 생각은 아닐 것 같다. 너 어디 살아? 나 아파트 살아. 이런 것.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렇게 단체적으로 살고 있는, 그렇게 낡은 아파트라는 자체에서 할 이야기도 많다고 느꼈다. 개발이라던가, 아파트라는 이미지라던가.


인 : 그러니까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참된 행복을 찾는 법인가.

독 :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다. 누가 자꾸 물어보더라. 이 영화의 주제는 뭐냐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고. 그건 내가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인터뷰에서 나온 것처럼 그냥 부모님에게 잘하자 그런 정도.


인 : 영화의 주제만큼이나 디테일에 많이 신경을 쓴 것 같다.

독 : 영화를 찍으면서 절대로 놓치고 가지말자고 했던 게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OK 컷을 안 내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빠듯한 일정으로 영화를 찍었었는데 편집 할 때 보면 내가 그냥 넘어가자고 했던 부분들이 항상 후회가 되더라. 후회 없이 찍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특히 배우 연기에 대해서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대사라 던지, 표정이라 던지,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독>이 미장센이 훌륭한 영화는 아니지만, 배우 연기까지 놓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인 : 꽤 좋게 나온 것 같다. 그런 디테일에 대해 스스로 만족을 하는가. (웃음)

독 : 그러니까 어떤 기자분이 질문을 했던 건데, 어떤 칭찬이 가장 기쁘냐, 칭찬을 조금 들었을 텐데 그 중 어떤 칭찬이 가장 좋았냐고 한다면 나는 배우연기가 좋았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았다. 나도 거기에 가장 공을 많이 들였고, 배우들도 너무 잘 해주어서.


인 : 공포의 세공사라는 별명이 있던데.

독 : 완전 쑥스럽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놀리고. 얘 별명이 뭔지 알아, 공포의 세공사야 그러면서 깔깔깔깔거리고.





인 : 인터넷을 보니까 ET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런 말을 했더라.

독 :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 그렇게 물어서. 내 최종의 꿈은 ET 같은 영화를 만드는 거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왔나? 그 기사.


인 : 사실은 나도 제목만 봤다. 나오면서 클릭하다보니까 재미있는 제목이 있길래. (웃음) 다음 작품 준비하고 있나.

독 : ‘지금 빨리 데뷔해서 어떻게 결과물을 내야겠다.’ 이렇지는 않다. 그냥 내 친한 형들이 입봉을 준비하고 있어서, 조감독 생활을 몇 년 정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


인 : 욕심이 없는 건가.

독 : 아니다. 평생 영화한다고 치면. (웃음)


인 : 이 영화에 대해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독 : 단편영화를 몇 편 찍었다. 그 중 학교 과제로 만든 <태곤아, 영화가 뭐야>라는 실험영화가 있었다. 상영 후 GV 시간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태곤아 영화가 뭐냐 그러시더라. 나는 영화로 다 얘기했는데. 그렇게 말했더니 됐고 그래서 영화가 뭐냐고 묻더라. 쫄아서 꾸역꾸역 말씀드렸던 것 같다. <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별로 없다, 사실. 그냥 열심히 찍었고요, 이런 말은 관객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 아닌가. 열심히 찍었든 안 찍었든. 귀엽게 봐주세요. 아... 뭐.


백건영(이하 백) : 영화를 보면 독립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공포장르를 선택했지만, 별로 무섭지 않은 영화였다. 코미디 영화가 일단 웃겨야 하고, 공포영화가 일단은 무서워야 된다는 맥락에서 무서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대체적으로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카메라가 클로즈업이 그렇게 많지가 않고, 근거리 샷을 많이 찍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어찌 보면 아파트에 이사 와서 윗집과 벌어지는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퍼즐이 풀리는 것을 보면 이곳의 얘기라기보다는 형국의 시골에서 있었던 일, 그러니까 원죄에 해당되는 그것에 가서야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다. 그렇다면 저 영화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이전에 나왔던 모든 장면들이나 사람들의 관계에서 공포적인 어떤 느낌은 주었을지언정, 실질적으로 이 영화를 과연 공포영화의 범주로 봐야 하는 걸까 라는 의구심이 하나 들었다. 이것은 차라리 추리, 서스펜스 쪽에 가깝지 않을까.

독 : 사실 공포장르에 대해 찾아보거나 즐겨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르에 대한 법칙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좀 거부감이 있었다. 특히나 한국 공포영화들을 보면 영화에서 이렇게 강요하는 듯한 느낌의 샷들과 그런 분위기 조성 자체 그걸 원치 않았었고. 사실 이게 원래 공포영화가 아니라고 봤을 때에 공포에 대해 느끼는 것과 공포영화라고 했을 때 느끼는 거와는 다르다. 실제로 부산영화제에서 보고 나온 사람들은, "야 이거 공포영화잖아 뭐야 나 공포영화 못 보는데" 이런 반응이라서, 아, 이거 공포영화 아니에요 이러고 다녔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생각하고 본 사람들의 충격은 더 크더라. 반면 로테르담 영화제 갔을 때는 '헝그리 고스트'라는 공포섹션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그 나라 사람들은 공포라는 장르를 굉장히 재미거리로 보더라.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나오면 낄낄낄낄 웃고, 이런 식으로 보다보니 내 영화를 보니까 그게 아닌 거다. 솔직히 상당히 분위기가 안 좋았다. 애초에 만들었던 방식 역시도 내가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어떤 사회적 드라마의 어떤 입장을 다루었고, 또 인간의 관계라든지 심리라든지 이런데 더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공포요소들을 빼기가 그랬던 것은 외압도 좀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 효과적으로 관객들을 더 많이 보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의 문제였다. 사실 공포장면들이 많지가 않았다. 그렇게 완성하다보니까 너무 밋밋한 영화가 되어버리더라. 그래, 그럼 무서운 장면에서는 무섭게 하자. 못한다는 얘기 듣지 말고, 해버리고 욕먹자. 피해가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흐름상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면들을 다시 찍었다. 또 영화를 마케팅을 하고 홍보하는 차원에서 미묘한 지점들이 있었다. 이건 덜 무서운 공포영화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 부분들은 내가 잘 모르는 거니까, 맡기고 가자라고 생각했다. 크게 무서운 거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관객 분들은 실망을 많이 하는 것 같고. 의외로 드라마 쪽에 대해서 기대를 안했다가 보신 분들은 좀 좋은 말씀을 하시는 것 같고. 그렇다.


백 : 포스터를 보면서 왜색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신지옥>이랑 비교하는 보도 자료가 떴던데. <불신지옥>도 똑같이 고립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고,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기독교 그보다 더 심한 광신도가 나오고 그런 점에서 묶이는 데가 있는 것 같다. <불신지옥>이 전형적인 한국영화라는 느낌이 있었던 반면에, <독>은 아파트 같은 경우의 디테일에서 일본 냄새를 맡았다.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으면 느낌이 좀 정리가 될 것 같은데. 독립영화에서 저런 포스터가 정말. 오랜 만이다.

인 : 왜색이 조금 나기는 했다. 특히 도입부의 매미소리는 전형적인 일본영화랄까. 쓰르르르르르 하는 매미소리를 처음 들었던 게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매미가 쓰르르르르르 이렇게 우나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독 : 그 매미소리 하나까지, 그렇게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다. (웃음) 나도 일본영화를 중국영화보다 더 좋아한다. 섬세해서, 영화 자체가. 그게 사운드의 영향도 참 큰 것 같고, <에반게리온>을 보면 어딘가에 저 공장 소리가 들린다. 그런 것들은 영화에 전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분위기들은 조성에 기여한다. 그런 면들이 사실은 너무 좋았었고. 사운드 믹싱에는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썼다.


인 : 사람들이 기대하고 온 것과는 다른 영화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영화는 기요시에 가까운데, 포스터는 시미즈 다카시 풍이니까. 그래도 처음 볼 때보다는 확실히 두 번째 볼 때가 더 좋은 영화다. 관객이 관람을 한다면 오히려 그게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놀이터 씬 같은 건 잘 빠졌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백 : 부엌 장면을 보면 상당한 시골에 속한 정도인데, 그들이 상경하자마자 도시화되는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 시골 사람들이 딱히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시골이라는 공간 속에서 꿈틀대는 욕망, 이런 게 좋았다.


인 :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독 : 고맙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족함을 느꼈다. 경험 미숙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느끼기에 나는 감독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기 보다는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했던 것 같다. 두서도 없었고. 반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오이마주의 독자가 인터뷰어라는 기회를 좀 더 많은 독자들이 활용해보기를 감히 추천해본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뷰어에게 독자라는 절대적 면죄부가 주어진다. 물론 내게 기자라는 명함이 주어졌다면 상당한 자괴감에 빠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가 원숙한 인터뷰어와 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주로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감독이라는 점도 안심이 된다. 둘째, 인터뷰 분위기는 정말 화기애애하고 즐겁다. 직접 감독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돈을 주고서도 쉽게 얻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경험임을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애정의 대상이 생겼다는 것이, 이 인터뷰의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 영화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개인적 경험이 추가될 때, 훨씬 큰 애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거니까. 나는 김태곤이라는 감독이 향후 좋은 필모그래피를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그러니 겁 없이들 질러보시라.






진행.정리: 김시광(독자회원)
사진: 서상덕(인디스토리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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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미약한 시작

네오이마주가 세상에 나온 것이 2005년 10월 31일의 일이니 3년 8개월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해 여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와 박광현 감독의 눈부신 데뷔작 <웰컴 투 동막골>이 숱한 화제를 불러왔고, 뒤이어 서극 감독의 <칠검>과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에 실망한 이들의 비판이 십자포화처럼 난무하던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2005년 가을의 일이었다.


이미 그때도 영화의 유효기간은 한 달을 넘기는 법이 드물었다. 1년은 고사하고 몇 달만 지나도 개별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평자들의 끝없는 담화와 재평가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는 것, 그리하여 오래도록 회자되고 언젠가는 다시 관객과 만나게 되는 것이 개별 영화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라면, 그 작업에 기꺼이 뛰어들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결국 이런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난 영화를 다시 꺼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마당과 기꺼이 이 작업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문가집단의 힘을 빌리기에는 바탕이 취약했고 붐을 일으키는 형태를 취하자니 글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었다. 결국 생각해낸 것은, 영화광들의 소환이었다. 그렇다! 영화광들이어야만 했다. 네오이마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단순히 영화를 소비하는 주체로서의 관객이 아닌, 소비해버린 영화를 다시 집어 들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집요하게 재평가하고 고함치고 싶은 이들을 중심으로, 영화광들이 모여 영화를 이야기하고 비평하는 웹-진 네오이마주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와일드 번치>의 한 장면을 보면 훔친 자루에서 은이 아닌 쇠뭉치가 나오자 윌리엄 홀덴이 연기하는 ‘파이크’가 실망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는다. "우리도 앞으론 머리를 써야 할 것 같아." 때는 서부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미 자동차와 비행기가 다니는데, 그들은 시대에 낙오된 퇴물 총잡이가 아니던가. 같은 맥락으로 영화가 개봉하고 1년이 지나기도 전에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을 정도로 관객들은 너무 많은 영화와 정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지금이야 말로, 영화광들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네오이마주가 21세기의 영화광과 90년대의 영화광의 평온한 조우와 겸허한 자존심을 소환코자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90년대의 추억의 한 자락이나 붙잡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의 역량과 열정이 지금 영화광보다 월등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 손에 《키노》나 《로드쇼》 《스크린》 유의 잡지를 들고 다니던 그때의 영화광들은 무언가 하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그 무언가는 반드시 영화적이었으며 영화로 세상을 배우고 영화를 매개로 소통했다는 것이다.




다시 영화광을 위하여!

60년대로부터 80년대를 관통하는 리얼리즘의 탐색과 90년대 코리안 뉴시네마를 재평가하는 것이 평론가나 영화학자들의 몫이라면, 적어도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주석은, 그 중심에 있었던 영화광들의 손으로 쓰여 져야 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영화의 조로현상은 비단 충무로의 감독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광들의 세대교체 역시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이다. 90년대에 학교를 다녔거나 갓 사회에 발을 디뎠던 영화광들이라면 현재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 일터인데, 이제야말로 영화가 보여준 세상을 몸소 체험하였고, 세상의 이치를 알 만한 나이니 영화에 대한 안목과 시각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좋은 영화 한 편이라도 더 보겠다던 순수한 꿈틀거림과 오랜 흑백필름 앞에서 눈물 적시며 영화의 선각자를 만나는 가슴 뜨거운 느낌이 사라졌을지라도, 거창한 고민과 열정의 시대에서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을지언정, 선뜻 앞서지 못하는 불안감과 평온함을 추구하는 게으름의 찌꺼기들을 벗어나야 할 때이다. 이 대열에 누구인들 끼지 못할까. 문화학교서울의 사당동 시절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시절을 거쳐 지금의 낙원동까지, 시네필의 성지와도 같은 서울아트시네마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관객들이어도 좋고, 작은 영화와 독립영화에 매료된 관객이라도 좋다. 혹은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관객이어도 무방하다. 검색 포탈보다 정보량이 적다고 영화 전문사이트를 외면하고, 상업영화보다 지루하다고 독립영화를 외면하고, 할리우드 영화보다 스펙터클이 약하다고 한국영화를 외면하다 보면, 한국 영화와 영화담론이 실종 될 런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광은 어떤 영화가 언제 어느 극장에서 개봉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름지기 영화광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혹여 놓칠세라, 한달음에 달려가 구매한 표를 소중하게 쥐고 영화 상영 직전까지 요동치던 그 설레던 마음을 기억하고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진실로 진실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비아 크리스텔이 <마타하리>에서 무슨 옷을 입고 나왔는지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접속>의 수현과 동현이 만나는 피카디리 극장 앞 장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 긴 줄도 마다 않던 열정과, 열화같이 피어오르던 뜨거운 가슴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열정이 다시금 하나 될 때, 한국영화를 위한 또 다른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이제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고마운 이들을 기억하며

네오이마주가 4년을 달려오면서 세상에 펼친 많은 영화이야기들을 자양분삼아 『네오이마주 오프라인 판』 을 펴낸다. 16면 국배판에 격월간 발행이다. 모두들 이미지와 비주얼에 집착하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지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타이포그래피로 채워놓았다. 더러는 생소하고 낯설지도 모른다. 때문에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도록 미려한 타이포그래피를 더하고 여백의 미를 살려 편집했다. 시간이 흐를 수 록 편집과 글의 완성도가 더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창간호의 특성상, 독자의 글을 싣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다음 호부터는 온라인 웹진에서 선택된 독자의 글도 실리게 될 것이다. 네오이마주 오프라인 판은 25일 오늘!, 영화관(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씨네큐브, 아트하우스모모, 미로스페이스, 시네마상상마당)에서 만나실 수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 동안 많은 필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모두 열정적으로 글을 써주었고 나름의 위치에서 기여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오프라인 판 출간을 계기로 그들을 다시 소환코자 한다. 또한 수고로움을 마다 않고 글을 보내준 객원필자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특별히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추천사를 내어준 김영진 평론가와 민병훈 감독의 후의에 각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무엇보다 네오이마주가 오늘까지 달려올 수 있도록 산파는 물론이고 인큐베이터를 자처하여 물심양면 지원과 애정을 아끼지 않은 (주)렉시테크의 장주식 선배와, 힘든 시절임에도 발행비용 고민을 해소시켜준 (주)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독자의 성원이 없었다면 오늘을 맞이하기 힘들었을 터이니 어찌 잊을 것인가.

이제, 창간호를 지난 시간 변함없이 네오이마주를 기억하고 응원을 보내준 독자에게 바친다. 네오이마주는 변함없이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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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죽을 힘을 다해 침묵 속에 살아남았고, 10년간 가슴을 쥐어짜며 떠들어댔지만 공식적으로 그녀가 얻은 것은 패소 판결이었다. 대법원의 패소 판결 직후 송신도 할머니는 말한다. 그래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10년간의 투쟁 끝에 비공식적으로 그녀가 얻은 것은 ‘마음’이다. “신도 믿지 않고, 사람도 믿지 않는다”는 송신도 할머니를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 자리 잡게 한 것은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모임)’의 사람들이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오게 생긴 사람”이었다고 송신도 할머니의 첫인상을 회상하는 지원모임의 사람들. 처음부터 그들에게 송신도 할머니가 요구한 것은 ‘마음’이었다. “너는 가정도 있고 새끼들도 있는데 자기 일처럼 내 일에 뛰어들 수 있겠느냐”고 다그치는 할머니에게 선뜻 약속의 손가락을 내어주던 그들은 약속대로 송신도 할머니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 마음은 하나의 파장이 되어 일본을 덮었고 이제 한국에 전해질 차례다.



너무 많다고? 아직 충분치 않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냐는 관객의 질문에 안해룡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주위 분들에게 일본에 계신 욕쟁이 할머니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일본 위안부 문제는 3.1절이나 광복절 아이템”이지만 자신이 10년간의 지원모임의 영상기록물에서 찾은 것은 “할머니와 지원모임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짚어준 감독은 이 영화의 특별함에 대해 알리고 있다.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극장을 찾은 지루함을 감추지 못한 몇몇 학생들의 말처럼 종군 위안부에 대한 영상물은 많다. 대중에게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시리즈와 앤서니 길모어 감독의 <잊혀진 증인을 찾아서>, 김동완 감독의 <끝나지 않은 전쟁>이 있다. TV용 영상물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작업들까지 더한다면 그 양이 얼마가 될지 잘 모르겠다. (필자의 지인도 학교 과제물로 ‘나눔의 집’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

작년 말, 미국의 박스오피스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로 채워졌다는 기사가 떴다. 톰 크루즈 주연의 <발키리>를 비롯해, <줄무늬 잠옷을 입은 소년>, <아담 레저렉티드(Adam Resurrected)>, <더 리더(The Reader)>,<디파이언스>등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이미 여기저기서 논의된 대로 21세기는 홀로코스트 문학과 홀로코스트 산업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네오이마주에 개재된 <부재, 상실, 그리고 1980년 5월 18일 광주: 5.18의 영화적 재현과 그 한계>라는 글에서 임경규 교수는 “홀로코스트 문학의 홍수와 그에 따른 적절한 재현 방식의 모색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볼 때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자 하는 사회적 의식(ritual)이라 할 수 있다. 이 사회적 추모의 과정 속에서 폭력적 과거는 현재형의 언어로 수없이 반복된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과거형으로 기억될 수 있는 현상적 경험의 영역을 초과하는 리얼의 침전물이기 때문이다. 이 반복은 기억 주체의 의지적 반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억이 주체를 압도한다. 기억의 반복적 침략은 주체를 과거 속에 함몰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과거에 대한 추도와 장례식이 가능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투쟁과 치유의 시간들의 기록

홀로코스트를 다룬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작품은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반복해서 복기함으로써 세계는 망각을 통한 기억을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종군 위안부를 다룬 작품들의 시선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해왔다. 95년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가 ‘나눔의 집’에 모여 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재와, 이들의 증언을 통해 처참한 과거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집중했다면, 2008년 김동원 감독 <끝나지 않은 전쟁>은 세계 각지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고증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시아를 넘어선 세계의 문제로 각성시키고 있다. 그리고 2009년 안해룡 감독의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10년이 넘는 투쟁의 시간이 송신도 할머니에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겁나게 씩씩한 욕쟁이 송신도 할머니”의 모습과 환하게 웃으며 일본 노래와 한국 노래를 섞어 부르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모습은 아픈 역사를 간접 경험한 세대에게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면죄부가 될지도 모르고, 어떤 비극들은 ‘홀로코스트 산업’이라 일컬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이용될지도 모른다. 2007년 <화려한 휴가>가 개봉했을 때 5.18에 대해 논의되던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에 따른 적절한 재현 방식의 고민과 모색은 필요하겠지만 오늘 다시 종군 위안부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만나는 일은 반갑기 그지없다.

16세에 종군 위안부에 끌려간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의 여고생들 앞에서 증언하던 날 유난히 눈물을 참지 못하고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힘겹게 내뱉은 말은 “다시는 나와 같은 일을 겪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여러 집회를 통해 “전쟁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 온 송신도 할머니. 그녀는 결코 지지 않았다. 그녀는 잊지 않았고, 살아남았고,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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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40년을 함께 한 오래된 파트너가 있다. 한 평생을 ‘농군’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와 그의 발이자 충직한 일꾼이 되어 준 한 마리 늙은 소. <워낭소리>는 정직한 카메라와 시종일관 툴툴대면서도 이 둘의 관계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네 소소한 삶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특히나 문자 그대로 ‘묵묵히’ 일에만 매진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옆에서 또한 말없이 제 몫을 다하는 소의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지며 여러 해석의 차원과 큰 울림을 가져다주는 작품이다. 특히나 속도전의 가치를 강요하는 이 시대에 할아버지와 소의 느릿하지만 묵직한 진정성은 아릿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방송 다큐멘터리로 잔뼈가 굵은 이충렬 감독이 3년 넘게 할아버지의 삶을 기록한 <워낭소리>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데 이어 2009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경쟁부문에 진출해 있다. 이제 우리는 검증된 양질의 다큐멘터리를 직접 스크린으로 만날 일만 남았다. 그 전에 이충렬 감독이 직접 들려주는 작품의 뒷얘기에 귀 기울여 보자.


하성태: 곧 선댄스영화제에 참석한다고 들었는데, 요즘 인터뷰 때문에 정신없겠어요.

이충렬: 살다보니까 선댄스도 가고, 미국도 가보고. 20일에 가서 한 폐막에 맞춰 26일까지 있을 거예요. 제 선택이라기보다 선택을 받은 거라 모든 것이 당황스럽고 반신반의해요. 실감도 나지 않고요. 영화에 대한 열망이 없던 방송 PD였기 때문에 더 더욱 그렇고요. 가보면 또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생소하고 상당히 부담스러울 뿐이죠. 다만 <워낭소리>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호감을 가져주니까 좋긴 한데. 어떻게 표현을 못하겠어요.


할아버지는 건강하세요?

옛날보다 안 좋으시죠. 나이가 들어가시니까. 노환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 일은 계속 지금도 하세요. 할머니가 건강이 좀 안 좋으신 거 같고. 젊은 소가 이명박씨를 닮은 것 같아요. 엄청난 속도전에 대단히 빨라요, 무식하고.


어린 소들이 일반적으로 그런 줄 알았는데 그 소 성격이 좀 더 그런가 봐요?

그 소가 성격이 그래요. 그래서 할아버지랑 잘 안 어울리죠. 할아버지는 소를 타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배달된다는 느낌이 드니까. 역시 파트너는 정해지는 거 같아요. 그 할아버지와 소와 관계가 깨져버렸으니까. 영혼이 죽어버리면 육신이 남더라도 결과적으로 오래가지 못하겠죠.


영화 속에서 제일 짠한 장면이 할아버지가 술 한 잔 걸치시고 (늙은 소와)같이 죽고 싶다고 말할 때였는데요.

그 양반은 이렇게 보면 되요. 그 분을 신성화하거나 천연기념물로 볼 소지가 있어요. 농약을 치지 않고 사료를 안 쓰는 농법이 대단한 철학에서 나온 걸로 볼 수 있는데 그게 절대 아니에요. 불편한 다리를 가진 할아버지가 자기 일부이던 소가 없어지면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매달리는 거죠. 그렇게 미화하면 안돼요. 제가 그 분들 삶을 ‘오픈’시키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고.


아, 맞아요. 그랬다간 ‘기봉씨’처럼….

어휴. 기봉이 전에 <그 곳에 가면 영자가 산다>는 인간극장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피살됐고, 영자는 절로 들어가 비구니가 됐어요. 그럼 안 된다는 거죠.


다큐멘터리가 무서운 부분 중 하나가 그런 점 인 것 같아요.

조선일보에서 그 쪽에 사진을 찍으러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사람들을 특화시키려고 하는지. 전 할아버지를 특화시키려고 한 적이 없거든요. 제가 오랫동안 할아버지를 괴롭혀 드렸잖아요. 저 때문에 소가 죽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그 분 삶은 자신 뜻대로 가야지 구경거리가 되면 안 되잖아요. 그렇게 된다면 모든 원인은 저한테 있는 거고요. 아드님한테도 알려지게 하지 말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런데 SBS에서는 벌써 내려갔다 왔다고 하더라고요.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딜레마가 그런 부분 아닐까요? 카메라와 대상과의 거리 설정 문제랄까. 시간도 시간이고 얼마나 대상과 관계를 잘 맺는가도 문제고요.

제가 원래 방송으로 시작했는데, 방송 시스템은 작가들이 리서치를 많이 하고 PD들이 현장에서 찍은 걸로 협의해서 편집을 해요. 저는 사실 그런 시스템이나 제도에서 실패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혼자 작업을 하면서 실패도 많이 했어요. 방법은 깨지고 실패하면서 배우는 거 밖에 없어요.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워낭소리>를 시작하던 당시는 멋있게 얘기해면 비장하고, 그대로 얘기하면 마지막 선택이었어요. 실패를 거듭하면서 돈도 많이 깨지고 울화병으로 얻은 공황장애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었거든요. 그렇게 황폐해진 순간에 마지막 승부수를 건 거죠. 이전의 문법이나 화법으로는 안 되는구나 싶어서 과감히 방향을 틀었는데 다행히 성공을 한 것 같아요. 모든 감독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매몰되는 경험을 한 번은 다 하거든요. <워낭소리>는 철저하게 나보다 관객들이 볼 때 어떤 작품이 될까를 염두에 뒀어요.


그럼 극영화 같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조금 황당하겠어요. 어차피 다큐멘터리도 편집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우리가 말하는 독립이라는 것이 확고한 테두리를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원래 자기 땅이 있었는데 뺏겼으니 나라를 찾아 독립 운동을 하는 거고(웃음). 다큐 정신이라는 걸 잘 알고 거기에 충분히 동의해요. 그런데 다큐라는 이름으로 다 용서되고 재미없어도 된다는 건 아닌 거 같아요(웃음). 그렇다고 해서 ‘대중 추수적’으로 천박하게 기생하면서 비유를 맞추는 건 문제가 있겠지만.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다큐 본연에 맞을지 모르지만 ‘리얼’이라는 것에 대해 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선택사항인지 의무사항인지 말이죠. 결국 삶을 훼손했느냐 조장했느냐의 문제겠죠. 있는 그대로의 원형질을 가지고 편집해도 날 것은 있는 그대로기 때문에 감흥이 없어요. 악센트도 없고. 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내 문법이나 화법을 썼을 뿐이지 본질적으로 드라마다, 아니다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워낭소리>의 포인트가 일하고 늙고 사라진다는 존재론적인 의미를 반추했다면, 근본적으로 사라짐에 모든 것이 걸려 있어요. 그래서 정서를 차근차근 단층들로 쌓아 올린 거죠. 할아버지와 늙은 소, 할아버지와 젊은 소, 젊은 소와 늙은 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계, 할머니와 늙은 소, 젊은 소의 관계들을요. 그래서 촬영도 카메라 두 대를 가지고 리액션을 다 찍었어요. 계절도 그래요. 그저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 거에요. 그저 계절을 찍는 것과는 접근 방식이 좀 달라요. 그래서 좋은 풍경도 뺐어요. 단지 기계적으로 계절을 기록한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요.


인물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담는 것이 중요했다는 얘기로 들려요.

미디엄 숏, 롱 숏이 많은 이유도 딱 하나에요. 할아버지와 소의 걸음처럼 내가 그들의 일상에 템포를 맞춰야지 내가 빠르거나 느려버리면 이미 마찰음이 나고 자연스럽지 못한 거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카메라워크가 결정이 났고 그 형식이 최적의 작법이었던 거죠. 이야기를 가장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다 보니 그렇게 편집을 한 건데 그게 죄라면…(웃음).


아버지와 소라는 주제 자체가 굉장히 설득력 있어요. 그 아이템을 잡은 시기가 2000년이라고 들었는데 꽤나 오래됐네요.

독립 방송PD들은 소재에 굉장히 민감해요. 방송은 아이템을 어떤 걸 잡느냐에 따라서 반은 승부가 갈리니까. IMF 시기에 가부장이 붕괴되면서 수난을 당하는 고개 숙인 가장의 이미지가 많았잖아요. 그래서 저 또한 아버지에 관심을 가졌고요. 전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잊혀 지는 거라는 걸 독립 PD생활을 하면서 직감했어요. 꿈과 현실이란 부분에서 괴로워하며 줄타기를 했던 시기였거든요. 그러면서 고개 숙인 아버지와 그 슬픈 사라지는 일을 매치시킬 수 있었죠. 이충렬이란 사람이 꿈을 가졌지만 별 볼일 없이 명함도 못 꺼내고, 결혼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 잊혀 진다는 위기감이 아버지에 대해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다는 느낌과 맞물린 거죠. 전 무언가를 대비시킬 때, 가장 최악일 때 반대로 가장 최고였던 걸 보여주면 그 간극들이 이상하게 마찰을 일으킨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유년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던 아버지와 소, 그들의 전성기를 되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아버지의 느낌이 사금파리 같았거든요. 사금파리는 깨어진 그릇의 파편들이잖아요. 한때는 빛났으나 지금은 필요 없어진 사금파리와 같은 존재들이 아버지와 소라는 느낌이 들었던 거죠.


그럼 점에서 캐스팅이 정말 탁월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들의 교감과 헌신을 통해 소위 일한다는 것, 나이 든다는 것, 병든다는 것, 사라진다는 것의 존재론적인 의미들을 곱씹어 보자, 되씹어 보자는 측면으로 기획을 했어요. 그래서 바로 2000년도에 캐릭터를 찾아 나섰는데 조건이 필요했죠. 그 대상이 좀 ‘올드’해야겠다, 정상적인 거 보다 핸디캡이 있어야겠다. 그래야만 그들의 고난과 헌신이 빛을 발하고 사람들이 절실하게 느낄 것 같았어요. 쇠락한 고향에, 그 고향을 닮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닮은 소.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가 방송 출신이다 보니 뿌려놓은 곳이 많잖아요. 예전에 일했던 이장님, 농협, 우시장 이런 대 개인적으로 전화를 드려서 연락망을 확보하고 수시로 연락을 드렸죠.


그렇게 몇 년이 걸린 거죠?

2005년도에 봉화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대상에 대한 감은 왔지만 이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고 소가 어떤지 몰라 정보를 리서치 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중요사항을 찍으며 생활해 보니 그 분의 일상이 보이고, 동선이 보이더라고요. 2005년 겨울에 젊은 소가 들어오면서 대결 구도가 보였고요. 그 관계들이 보이니까 밀어붙였죠. 2006년 12월에 소가 죽었는데 2007년 4월까지 젊은 소를 찍었어요. 햇수로 3년이 걸린 거죠.


촬영이 힘들었다는 것이 짐작이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촬영감독이 여러 명이더라고요.

더 많았는데 뺀 거예요, 너무 많아서(웃음). 제 돈으로 완성한 것이 아니니 그 사람들이 저를 기다려 주지 않잖아요. 한두 달 외국 나가는 것이 돈 더 되고 하는데 무작정 기다려줄 수는 없으니까요. 전체적인 기조는 명확했어요. 핸드핼드는 일체 말고 죽든 살든 지켜봐라! 특히 비디오는 못 찍어도 좋으니 오디오는 찍어라. 왜냐하면 카메라를 들이 대면 원형질이 안 나와요. 할아버지가 자꾸 의식하고 다른 말을 하니까. 그래서 “그림은 눈에 보이는 허상일 수 있다, 차라리 소리에 집중해라”고 했죠. 소리가 좋으면 그림은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제목도 워낭 ‘소리’잖아요. 자연의 소리와 화면이 매치되면서 사색의 순간을 제공한다는 점이 매력 있었어요.

그림은 다 똑같아요. 일상은 반복되니까. 아무리 예쁜 그림을 넣어도 사람들이 정작 느끼는 것은 자기 유년의 기억이나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소리에요. 주술 같은 거죠. 새소리, 소 울음소리, 아버지 헛기침, 신음 소리. 보는 것은 큰 감흥이 없어요. 눈 먼 사람이나 귀 먹은 사람이나 다 똑같이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리얼리티라고 생각하거든요.


반면 촬영으로 강세를 준 부분도 있잖아요. 우시장에서 고속촬영으로 찍었다거나….

아, (우시장에서 소를 팔러 갔을 때)집으로 가라고 하는 장면이요? 그건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떤 순간보다 당황스러울 때 귀가 먹먹하고 정지된 것 같잖아요. 그 땐 할아버지 생에 있어 가장 치욕적인 순간일 수 있어요. 소도 두 번 눈물을 흘리는데, 처음이 헤어짐의 눈물이라면 두 번째는 자존심의 눈물이죠. 그 장면은 그냥 기법이라기보다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젊은 소가 할아버지가 쳐서 쓰러뜨리는 장면에서 정지 컷이 있잖아요. 그건 제가 (화면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제가 잡혔기 때문이에요. 그걸 잘라내기 위해서 정지 처리 한 거고요. 처음부터 지켜보는 것이 의도였기 때문에 과감하게 스틸을 걸었던 거지 다른 의도는 없어요.


하하. 저도 그렇고 관객들도 굉장히 놀랐는데 그런 사연이 있네요. 사실 그런 얘기들 있잖아요. 종군 사진기자가 급박한 상황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느냐, 사람을 구해야 하느냐 하는, 직업 정신에 관한.

위험할 때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지, 아무리 직업이 좋아도 그건 나쁜 놈들이죠. 직업 정신은 무슨. 자기가 총 맞았을 때 카메라를 안 놓으면 직업 정신인데 남 죽을 때 좋은 장면 찍으려고 하면 나쁜 놈들이죠.


내레이션은 할머니 목소리로 대체했잖아요. 그건 할머니의 인터뷰 부분과 실제 화면과 겹쳐 놓은 목소리를 모두 사용한 거죠?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할머니를 내레이터처럼 보이게 하자는 것도 있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그런 기법을 쓴 거죠. 인터뷰 같지만 서로 주고받는 대화처럼 보일 수 있게.




개인적으로 욕심이 났던 장면은 없었나요? 이런 건 꼭 찍고 싶었다 하는.

초반엔 임팩트 있는 장면을 잡고 싶었어요. 송아지 낳는 장면도 그렇고. 그런데 며칠을 기다려도 안 나와서 출발했더니 3시간 있다 낳았다고 하더라고요. 외양간이 무너졌다고 해서 달려갔더니 불도저가 밀어버리고. 솔직하게 길 위에서 소가 쓰러져 죽기를 바랐던 마음도 있었어요. 일 하다가 처참하게 죽었으면, 하는 사악한 마음도 가졌었고.


다큐멘터리 작가라면 충분히 그런 욕심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편집하고 관객 반응을 보면서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장면을 포착해서 넣었다면 영화가 잘 되지 않았겠다 싶어서. 예를 들어 늙은 소가 죽을 땐 제가 찍었더니 더 비장한 마음으로 거칠게 찍었어요. 그런데 그 부분 첫 장면이 할아버지가 넘어 진 늙은 소에게 일어나라고 욕하는 거잖아요. 사실 소가 넘어지는 장면이 있었다면 관객들이 저 할아버지 정말 잔인한 사람이다, 어떻게 소가 쓰러져 죽을 때까지 가혹하고 노동을 시키느냐고 했을 거예요. 뒤에 감동이 전혀 살아날 수 없다는 말이죠. 차라리 못 찍은 것이 더 좋은 효과를 내지 않았나 싶어요. 사람들은 매번 센 걸 원하지만 그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느꼈죠. 또 그런 쪽으로 승부하면 안 되겠구나, 쓸 때 없이 욕심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굳이 소가 쓰러지지 않아도 그간 할아버지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있고 전달이 된 거 같아요.

딱 하나에요. 감정을 켜켜이 단층처럼 쌓아갔잖아요. 지금 얘기한 부분들이 그걸 허무는 작업이었고, 그것이 관객들의 가슴을 치는 걸 원했죠. 그건 철저히 (카메라가) 관계 속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놓친 장면 중에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요.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겠죠. 더 좋은 장면이 많았어요. 서로 교감하는 장면도 그렇고. 제가 상주하면 더 찍을 수 있었겠죠. 근데 또 너무 많으면 도식적일 수 있어요. 적당한 게 좋죠. 전반적으로 충만한 거 보다는 조금 허하게 비쳐졌으면 싶었어요. 커트도 너무 넉넉하면 사람들이 배부를 거 같아서, 간질간질한 상태에서 끊어버렸어요. 보여줄 때는 확실하게 보여줬지만. 머리로 인식하기보다 가슴으로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철저하게 어린 시절에 느꼈던 정서를 가지고 진행했죠.


그 장면은 일부러 연출한 건가요? 읍내에서 농민들이 FTA 관련 시위를 하잖아요. 그 앞에서 할아버지와 달구지를 끄는 소가 딱 멈춰 서자 관객들이 자지러지던데.

자기 고집대로 사는 할아버지가 세상에 나가 달구지를 탄다는 것 자체로 구경거리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구시대의 질서와 새 시대의 질서나 풍경들이 부딪칠 때 어떤 문제가 나올까 고민했죠. 연출한 것이 아니에요. 할아버지와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전 차를 타고 와서 먼저 동선을 잡았죠. 시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 바로 저거다, 저 앞을 지나면 그림이다 하는 감이 왔는데 다행히 (소가) 서는 거예요. 게다가 카메라가 두 대였으니 너무 쉽게, 너무 자연스럽게 찍었죠. 감독의 정치적인 의도라기보다 할아버지가 스쳐지나가는 풍경이고 삶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봐줬으면 좋겠어요. 관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봐야할 부분이고, 또 웃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요.


만약 소가 안 죽었다면 영화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그랬다면 계속 찍었겠죠. 원래 의도한 것이 사라지고 늙는 것에 대한 기록이었으니까. 또 제가 방송 몇 년인데요. 소를 보니까 딱 심난한 거예요. 걸어가는 것 보니까 이미 다 죽어가요(웃음). 또 자주 넘어지기도 했었고. 중요한 건 그렇게 넘어지고 나서 소 얘기만 나오면 할아버지 얼굴이 진지해지는 거예요. 그때 갈 때까지 가도 되겠다 싶었죠.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추석 장면은 여러 감정들이 들더라고요.

부산국제영화제 버전은 좀 악의적인 편집을 했었어요. 자식들이 나쁘다는 걸 떠나서 할아버지 뜻 말고 자식들끼리 의사결정을 해서 소를 팔자고 하는 모습이 안 좋게 보였어요. 사실 모든 자식들이 그렇잖아요. 나도 저러는 구나 싶기도 하고. 우리 자식들의 모습을 초상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워낭소리>가 부모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지만 나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해요. 할아버지가 쓰러졌다 일어나는 장면도 그래요. 우리네 아버지들은 저렇게 쓰러지면서도 고난을 딛고 꿋꿋하게 일어서는데 우리 자식들은 안 그러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자기가 부모님한테 무얼 했나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 느낌들을 바랐죠.


저도 많이 찔렸어요(웃음). 퓨전국악 그룹 ‘아나야’의 음악은 많이 쓰인 편은 아니지만 울림이 있더라고요.

오리지널 스코어하고 라디오 소리, 또 현장음이 있잖아요. 원래 라디오 소리로 음악이 많이 들어가는데 저작권 때문에 부득이하게 다 편집을 했죠. 의도와 다르게 뉴스 소리로 시사적인 내용을 넣을 수밖에 없었고요. 음악은 피아노와 대금 위주로 갔어요. 신파가 될 것 같아 이 친구들이 만들어 온 음악을 많이 잘라 냈어요. 그 보다 아쉬운 건 타이틀이 뜨고 소가 걸어갈 때 ‘봄날은 간다’란 노래를 쓰고 싶었거든요. 그 가사가 소의 인생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쓸 수 없어 아쉬웠죠.


확실히 <봄날은 간다>가 대중적으로 명확하게 의도를 드러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음악다큐를 해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안 되는 건 하지 말자 싶었죠(웃음)





좀 큰 얘기 해 보자면, 방송이지만 다큐멘터리 활동을 오래 해 왔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본인만의 자의식이 있다면요.


참 조심스러운 부분인거 같아요. 꾸준히 영화 쪽에서 다큐멘터리 활동을 해 왔던 감독도 아니고. 다큐의 본질은 같지만 역시나 표현 방법이 다른 거 같아요. 좀 더 원칙이나 본질을 확보하려는 쪽이 독립영화 진영이고, 좀 더 엄격하고 민감해 하는 것 같고요. 방송은 다큐라고 하지만 온갖 잡것이 다 들어가 있는, 돈으로 뿌려대는 테크닉이라고 할까요? 드라마 형식으로 촬영한다거나 CG를 쳐 바른다거나, 절대 그러면서 유익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그건 현상적인 측면일 수도 있겠죠. 전 실패를 하면서 그간 가져왔던 생각을 바꿔왔어요. 저도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다큐를 도구로 봤어요. 다큐가 보통 시대적인 요구에 의해서 프로파간다로 시작됐음은 분명하지만 세상은 변해 가는데 자꾸 칼이나 총으로만 쓰려고 하는, 변혁이나 비판으로만 편식을 하려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저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에 집착하다보니 실패했던 거 같고. 또 다큐는 치외법권 같았어요. 재미는 없어도 의미만 있으면 된다는. 그래서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들한테서는 점점 멀어진 것 같고요. 너무 창작자만을 위한, 연출자만을 위한 다큐라서 그런 건 아닌가 싶고. 문제의식이 있고 철학이 잇는 건 좋지만, 관객들과 소통도 못하고 피드백이 없으면 안 돼요.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조리사가 이 음식이 건강에 좋으니까 맛이 없어도 일방적으로 먹으라고 편식을 시키는 건 안 되죠. 원형질이 보존되고 원재료에 리얼리티가 확보된다면 조미료를 뿌리더라도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저는 그것이 리얼리티를 손상시킨다고 보지 않아요. 원형질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 방식의 문제죠. 우리 일상은 판타지가 없나요? 우리가 꾸는 꿈이나 상상은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리얼리티라고 규정해버리니까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다큐멘터리도 판타지가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지금은 분명 다양성이 존재하잖아요. 저도 살아보니 구호나 이슈보다 나이 먹을수록 모든 게 내 마음으로 향하는 거 같아요. 자기성찰이라고 해야 하나? 일상으로 들어와서 내면으로 천착하는. 전 소소함의 위대함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나 소와 같은 무명씨들의 소소함,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다큐멘터리에요.


정리를 하자면 사적인 거에서 보편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그런 주제들 말인가요?

왜냐하면 저도 사적이지 않은 것들을 많이 고민해 봤지만 우리 사회는 운동가들도 그렇고 그런 분들이 너무 과잉이에요.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은 일정정도 사적인 부분을 긁어주면 더 좋겠다 싶은 거죠. 어떤 사람들은 다큐를 혁명이라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 시인이라고 봐요, 사람들 마음을 바꾸는. 제가 하는 작업이 대단하지 않고 작은 부분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일상을 가장 잘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게 극형식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고요.


많은 분야를 섭렵하다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해 봐야겠다 싶었던 건 언제인가요?

처음엔 애니메이션을 했는데 그림이라는 작업이 완전히 단순 작업공이에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싶어 연출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일본에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좌절되면서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리면 되겠지 싶었어요. 이것저것 다 해 보다 마지막에 만난 것이 다큐멘터리였어요. 전 비전향 장기수, 동성애자, 무당 같이 센 얘기를 주로 했었어요. <사이에서>가 나오지 않았다면 무당 이야기를 먼저 했을 텐데.


선댄스도 다녀와야 하고, 정신없겠지만 혹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면요.

<워낭소리>보다 좋은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근데 사람이 간사해지더라고요. 이전 아이템들 다 파기해버렸어요. 당장 죽을 거 같았는데 살아나니까 예전 아이템들은 할 수 없더라고요. 사람들 잣대가 일단 <워낭소리>가 될 테니까 더 조심스러워지는 거 같아요.



진행.정리 : 하성태(편집스태프)
사진: 강연하(편집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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