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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2 임권택, 우리 시대의 마지막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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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임권택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많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임권택은 1980년대 이후로 계속해서 작가로 명명되어온 감독으로, 그는 현재 쏟아져 나오는 다수의 역사 영화의 현 상황을 직접 체험해 걸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임권택은 한국 역사와 한국 영화사를 아울러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산 증인’인 동시에 한국 영화에 대한 향수와 비판을 동시에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감독이다.

임권택은 수 년 간의 연출부 생활을 바탕으로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라는 액션물을 통해 데뷔했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이후 약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임권택은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1년 전이었던 2007년 봄, 꽃이 흐드러지는 계절에 임권택은 자신의 백 번째 영화 <천년학>을 완성했다. 임권택의 <천년학>은 그가 걸어왔던, 그리고 쌓아왔던 시간에 대한 가능성을 완곡하게 열어두는 장치인 동시에 또 다른 결말의 시작이었다. 한 평생을 사회와 혼돈 속에서 묵직하게 지켜온 임권택의 삶은 오로지 그의 영화에만 온건히 녹아있다. 때문에 임권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여기서 ‘이해’라는 말은 여전히 가당치 않은 말이지만), <천년학> 이전, 그리고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취화선>과 <서편제>를 포함한 다른 영화들을 훑어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임권택의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시기로 구분된다. 시기로 따지면 1990년대 이전 영화들과 1990년대 이후 영화들이 그것인데, 보통 그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하는 작품들이었다. 임권택은 데뷔 당시 다소 폐쇄적인 영화계의 틀을 겪어야 했으며, 이는 곧 감독과 제작사, 그리고 흥행 간의 고려를 통해 지원 유무를 결정하는 값을 낳았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통해 스크린에 비로소 감독으로 이름을 보태게 된 임권택은, 이후 상업 영화의 전선에서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이후 70년대로 들어서면서 임권택은 엄청난 다작을 했는데, 이는 당시 그가 제작자와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흥행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확인시켜주는 예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와 같은 해에 발표된 <전쟁과 노인>, 그리고 그의 전쟁 영화 중 가장 수작으로 꼽히는 <낙동강은 흐르는가>를 포함한 한국 영화 산업의 붐도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났다. 임권택의 초기 전쟁영화들은 대부분 같은 결말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쟁 영화는 대체로 소재의 오락성에 의해 관심을 받기 쉬운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임권택의 전쟁 영화는 동시대, 혹은 전 시대 감독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주로 한국 전쟁 초기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 임권택의 70년대 영화들은, ‘소년’의 눈으로 읽힘을 받는 장면이 곳곳에 명확하게 쌓여있다. 그리고 곧 이것은 비극적 결말을 낳는다. 임권택의 73년작 <증언>은 전쟁 통을 겪은 감독 자신의 체험이 가장 짙게 반영된 작품이다. <증언> 역시 전쟁 초기의 혼란스럽고 악몽과 같은 상황을 서술하는데, 이 영화는 정부 슬하에 제작된 영화이지만 임권택은 단지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전쟁이라는 단어의 참혹한 경험을 알리는 데 치중한다. 전쟁 영화에서 임권택의 연출은 주로 사격과 진압을 포함한 전투 장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특유의 서스펜스 영화적 분위기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낙동강은 흐르는가> 또한 임권택이 바라본 전쟁 당시의 직접 체험을 영화를 통해 간접으로 투영한다. 이들은 모두 박진감 넘치는 서사를 꾀하고 있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붕괴(<낙동강은 흐르는가>)와 주변 상황의 급격한 변화(<깃발 없는 기수>)를 토대로 철저하게 무너지는 양식을 취한다. 때문의 임권택의 초기 영화, 그 중 전쟁 영화는 폭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유혹적 상황에서 결국 파탄에 이르는, 다시 말해 형언할 수 없는 ‘긴박감’을 낳는다. 이는 한국 전쟁 영화에서 매우 드문 양상에 속하는 것이다.

70년대를 뛰어넘어 80년대로 들어서면서도 임권택은 전쟁에 대한 확고한 시선을 고수한다. 이것은 한국 전쟁 밑바닥에서 시작된 역사와 더불어 그곳에서 파생된 각종 범죄에 대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데, 85년작 <길소뜸>은 정면에서 바라보던 전쟁을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변화를 가져다준다. 시선을 현대로 돌려, 텔레비전의 영상을 통해 이산가족의 현실을 여성의 삶을 통해 풀어낸 <길소뜸>은 자식과 부모간의 근본적인 유대 관계를 건드린다. <길소뜸>의 화영은 역사가 쏟아버린 잔재를 끌어안고 최대한 감정을 자제한다. 화영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친자를 부인하는 장면에서 <길소뜸>의 점프 컷이 발생하는데, 이는 곧 <길소뜸>을 전후해 쌓아왔던 임권택의 전쟁사를 하나로 폭발시키는 과정의 마지막이다.

90년대로 넘어온 임권택은 그의 영화사에서 두 번째 시기를 맞는다. 90년대 이전의 연출이 임권택에게 있어 실험과 반복을 시도하게 했다면, 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감정과 서사에 충실한다. 임권택은 전쟁, 그리고 역사 이야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눌러 담아왔던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의 출발점은 81년작 <만다라>와 91년작 <개벽>이다. 두 작품은 이후 임권택의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도발적인 작품이다. <만다라>는 자신을 지우거나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떠도는 로드무비다. <만다라>는 이후 <서편제>와 <취화선>, 그리고 <천년학>을 잇기 위해 존재하는 발판과도 같다. <만다라>의 지산 스님과 옥순은 시간을 매개로 간극을 형성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두 사람의 서사는 펠리니의 <길>과 상통되는 사건을 만드는데, 주목할 것은 지산과 옥순의 두 번째 만남에 있다. 옥순과 지산이 처음 만났을 때 욕망과 사랑의 결정체를 낳았다면, 그들의 다음 만남은 자연스레 추억이 전제된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지산은 옥순을 다시 만난 후에도 본가였던 종교로의 회귀를 꾀하지 않는다. <만다라>의 결말은 <개벽>의 최시형과 맞닿아 있다. <만다라>의 지산과 <개벽>의 최시형은 역사의 정 중앙을 걸어가는 동시에 도망과 안정점으로의 모색을 보여주지 않는다. <만다라>에서 이어진 애정에 대한 감정은 <개벽>의 결말과 맞닿는다. <개벽>은 역사 영화로서는 엄청난 서사와 깊은 사상을 입힌 농도 짙은 실극이라 하기 마땅하다. 그렇기에 <개벽>의 이야기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으며 오히려 알 수 없는 몰입도를 낳는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개벽>이 단순 동학운동의 처음과 끝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개벽> 이전의 임권택 영화들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로맨스의 서술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개벽>은 마지막인 최시형의 총살 장면, 온전한 샷 바이 샷이 아닌 최시형의 부인의 눈으로 봉기의 결말을 선언함으로 막을 내린다. <개벽>의 마지막 은 감정을 증폭시킨 채 어떠한 테크닉도 발하지 않은 순수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이로 인해 완성되는 <개벽>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완벽한 영화다.

<개벽>이후 임권택은 역사의 공간에 서 <태백산맥>을 낳는다. <개벽>에서 화두로 작용했던 인간 본연의 사상, 그리고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모든 상황들은 <태백산맥>에서 정지된다. <태백산맥>은 <개벽> 이후 현대의 역사를 사는, 말하자면 ‘그 시대’에 존재했던 사람들을 위한 분노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태백산맥>의 서사가 임권택의 역사서중 가장 난해하고 목으로 넘기기 힘든 거친 것이었다면, <태백산맥>과 거의 동시에 제작된 <서편제>는 <만다라>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서편제>는 길의 종착점을 알 수 없는 임권택의 두 번째 로드무비로, 판소리를 매개로 한 유봉과 송화, 그리고 동호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편제>가 임권택의 미학을 완성시킨 것이라는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작용한다. <서편제>는 <만다라>에서 참아 온 한국, 혹은 인간의 정서를 대폭 반영한다. 하지만 영화는 길을 따라 떠도는 세 가족의 모습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소리’를 통해 ‘노래’한다. 진도 아리랑이 길게 울려 퍼지는 <서편제>의 롱테이크는 현실에 상처받은 한 가정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다. <서편제>에는 아들과 아버지, 아버지와 딸이라는 부모 자식 간의 형용할 수 없는 정서가 녹아있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곧이 읽혀서 솎아낼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서사임은 분명하다. <서편제>는 그것을 ‘음악’을 통해 건드려 낸 것이다.

이후 임권택은 <축제>를 통해 가족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가족을 묻는 방법을 표현한다. <축제>의 기억은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구성원 모두의 시각을 통해 완성되고, 이는 곧 장례로 이어진다. <축제>와 <창>에서 이어진 <춘향뎐>은 <서편제>와 동시로 임권택의 영화 중 가장 중요한 공간을 차지하는 영화다. <서편제>의 연장선은 <천년학>이 아닌 <춘향뎐>이다. 임권택의 <서편제>에서 시작된 ‘소리’에 대한 갈망은 <춘향뎐>에서 극대화된다. <춘향뎐>은 서사가 없다. 이것을 조금 더 돌려 말하자면, 임권택의 영화 속에서 지금까지 중요시 되어오던 이야기 자체가 <춘향뎐>에만 유독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권택은 인물을 이루는 환경에 눈을 돌린다. <춘향뎐>은 대사가 아닌 노래로 남는 영화다. 전문 배우가 아닌 신인을 대거 등용해 배우에 대한 파격을 감행한 영화는, 그로 인해 ‘춘향’과 ‘몽룡’의 현실성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춘향뎐>의 이미지와 소리는 다른 형식과 방식을 빌리지 않은 본연 그 자체로 존재한다.

<춘향뎐>이 한반도 안과 밖에서 외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임권택의 서사 또한 완벽한 안정점(그렇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은)을 터울 짓게 된다. 임권택의 세 번째 로드무비인 <취화선>은 영화라는 한정적인 시간 안에 속할 수 있는 어떤 ‘인물’의 최대 값을 이미지로 불어넣은 것이다. <취화선>은 오원 장승업이라는 거친 화가의 궤도를 좇기 위해 몇 가지 방점과 전환점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아름다운 영화다. <취화선>은 2002년 칸느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사건을 발생시키며 동시에 한국에서 장기간 상영으로 전환된 영화이기도 하다. 이전의 작품들이 하나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라면 <취화선>은 앞서 말한 <개벽>과 <서편제>, 그리고 <춘향뎐>의 사건을 하나로 뭉친 결과물이라 하겠다. <취화선> 이후에도 임권택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계속적인 진보는 <하류인생>의 태웅으로 전환되고 마침내 <천년학>으로 귀속된다. <서편제>에서 이야기 하지 못했던 남녀의 정은, 수 년이 지난 후 <천년학>에서 진정성을 달고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오른다. 이제 더 이상 동호는 송화를 그리워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송화는 동호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천년학>은 동호와 송화, 그리고 임권택 자신의 환상을 통해 ‘영화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짙은 정의를 내린다.




<춘향뎐>이후 연속성을 보이던 임권택의 영화들은 <천년학>을 전환점으로 삼고 회귀한다. 때문에 <천년학>의 시퀀스들은 철저하게 분할되지 않은 채 하나의 원을 이룬다. 임권택의 역사 속에 또 다른 획을 그은 <천년학>은, 그가 걸어온 길만큼이나 굴곡진 영화인 동시에 아련한 기억을 형상화하는 영화다. 임권택의 영화는 시간의 연속이라는 이론을 단적으로 정의내리는 것들이다. 위에서 열거했던 영화들 외에 임권택의, 이를테면 <티켓>이나 <아제아제 바라아제>, <짝코>, <족보>와 같은 작품들 모두 거듭되는 시간 속에 존재할 때 빛을 발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임권택을 더 이상 거장이라는 명칭으로 국한할 수 없다. 만약 한국에서 ‘옳은 영화’가 그립다면, 그 해답은 임권택의 영화들에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를, 그것도 근작을 아직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감히 말해) 무료로 받는 엄청난 수혜에 가깝다. <하류인생>의 마지막 나래이션은 이렇다. "태웅은 이후에도 몇 년을 더 그 일에 종사하다가, 1975년 전업했다. 그의 인생이 맑아지는 조짐이 보였다." 임권택의 영화는 태웅의 내일을 알 수 없듯이 이미 스크린 밖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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