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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상반기 한국 장르영화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비 블러드>의 공통점은?
 
올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답은 두 영화를 연출한 코엔 형제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모두 한때 미국 독립 영화의 기수들이었다는 점이다. 작가적 고집과 안목을 갖춘 그들이 아카데미에 입성함으로써 예술적 상업 영화 감독의 이름을 공고히 한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이러한 예는 차고도 넘친다. 이건 상업적이거나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을 옹호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스릴러의 장인 알프레드 히치콕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과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의해 재발견됐고, <죠스>와 같은 재기발랄한 장르 영화로 시작한 스필버그는 지금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거장의 자리에 올랐다.

우리 사회 최고의 순간을 추격해보자

영화 장인들이 만든 상업영화들이든 아니든, 영화는 결코 단순한 오락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학자 수잔 헤이워드는 "장르적 관습들도 '진화'하고 경제적·기술적·소비적 이유들로 변형을 겪는다, 그것들은 역설적이지만 보수적인 동시에 진보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고 기술한 바 있다.

장르는 제작·마케팅·소비 과정을 통과하면 세상, 그리고 관객과 조응한다. 다시 말해, 동시대의 분위기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건 우리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1·2월 개봉해 한국 영화 흥행을 주도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추격자>는 스포츠 드라마와 스릴러라는 장르적 외피를 쓰고 있지만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충분히 기능한다. <바보><숙명>과 <GP 506> 또한 멜로와 느와르·공포라는 장르 안에서 의도였든 아니든 한국 사회의 무의식들을 품고 있다.

한국영화들이 점점 장르의 틀에 매달리고 있다. 관객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산업적인 요구임을 감안하더라도 좀 더 총체적인 시각으로 읽을 필요성을 느낀다. 각기 다른 장르지만 어떤 영화는 장르성에 포획되고, 또 어떤 영화는 작가적 인장을 찍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와 대중 사이에 흐르는 어떤 공기가 포착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 감안하고 올 해 개봉되어 관객들의 관심을 받은 우리 영화 5편을 거들떠보도록 하자.

<우생순> 감동의 외인구단, 지금 이 곳에 서있다

사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크랭크인 전부터 말들이 많았던 프로젝트다. 작가주의 를 표방했던 임순례 감독이 '아줌마'들을 주인공으로 핸드볼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중성이 검증되지 않은 감독에, '제3의 성'이라 희화화되는 인물군으로, 비주류 종목을 영화화한다고 했으니, 촬영 종반까지 투자가 마무리되지 않아 그리스 로케이션을 짧게 끝내야 했다는 말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실화'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영화가 승승장구하자 이러한 약점들은 오히려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사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스포츠 드라마의 장르성을 바탕으로 '아줌마'라는 마이너리티를 보듬은 휴먼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은 '오합지졸들이 결국 자신만의 감동적인 승리를 일궈낸다'는 스포츠영화의 공식을 지켜내면서도 그녀들을 '건강하게' 긍정한다. 경기 신에서조차 카메라를 너무 들이대지 않고 폭넓게 조망하는 동시에, 올림픽이 끝나면 또다시 빚더미와 비정규직의 비루한 삶으로 돌아가는 미숙을 응원하는 것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흥행이 한국 대중들의 실화 신드롬에 기댄 측면이 다분하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임순례 감독은 분명 장르 공식을 배반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서서 기어이 작가적 인장을 찍어냈다.

물론 엔딩의 실제 인터뷰 화면이 '오버'라는 지적도 있지만 한국 사회 내에서 핸드볼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눈물의 극대화나 현실의 환기, 두 측면 모두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가치는 소재와 캐릭터들의 생생한 묘사로 장르성을 넘어서며, 전복과 연대 그리고 생생한 현실감을 성취해냈다는 데 있다. 그것도 과거나 무국적의 공간이 아닌 지금, 이 곳을 딛고 서서 말이다.

<추격자> 전력을 다해 뛰는 당신, 그냥 버티시라

500만 관객 동원을 목전에 둔 <추격자>는 "<살인의 추억> 이후 최고의 스릴러"라는 상찬을 듣는 중이다. 비슷하게 <공공의 적>이 연쇄 살인범과 '좀 덜 나쁜 놈'의 대결이란 소재를 코미디로 풀었다면, <추격자>는 초반부터 범인 영민(하정우)의 정체를 드러낸 뒤, 이를 뒤쫓는 보도방 주인 중호(김윤석)의 피로감을 뒤쫓는다.

자기가 사지로 내몰았던 보도방 여자들 중 미진(서영희)만은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 전직 경찰이지만 지금은 이른 바 '포주'인 중호가 24시간 넘게 영민을 뒤쫓는 무의식에는 이러한 자괴감과 무력감·절망이 뒤섞여 있다.

그렇다고 영화는 그가 개과천선할 여지를 마지막까지 조금도 내비치지 않는다. 한국이란 시스템이 낳은 기형적인 산물은 '사이코패스' 영민이 아니라 폭력적이고 천민자본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진 중호일테니.

'범인이 누구일까'보다 '범인을 중호의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이냐'를 쫓아가는 <추격자>의 서스펜스는 바로 미진의 생사 여부에서 발생한다. 틈틈이 그녀의 탈출기를 관전시키던 나홍진 감독은 미진이 영민의 손으로 무참히 살해당하는 순간을 생생히 중계한다.

이전 희생자들이 죽음은 건너뛰었건만 미진만은 슬로우모션과 클로즈업 기법을 사용, 흩날리는 피를 친절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관객 모두가 살기를 바랐던" 미진의 죽음은 관객들의 공분을 일으키려는 나홍진 감독의 철저한 계산인 셈이다.

현실에서 뒤이어 터진 안양 초등학생 살해범과의 비교는 너무나도 게으르고 우연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미진의 무참한 죽음을 재현하면서까지 리얼리티와 분노를 요구하는 <추격자>의 방식에서 강력범죄와 '사회적' 죽음에 부지불식간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를 본다.

많은 관객들과 글쟁이들이 그 장면의 윤리성을 제기했지만 그럼에도 500만 가까운 관객들이 <추격자>를 찾는 이유는, 그러한 강력범죄를 대리 경험하고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마치 미국 관객들이 이러저러한 영화와 드라마로 9·11 테러를 소비하는 것과 비슷하게.

<추격자>가 품은 한국 사회의 공기는 오물 세례를 받는 서울시장이나 경찰의 무능함에 있지 않다. 우리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아무리 '중호'처럼 전력을 다해 뛰는 자가 있더라도 죽고 말 거라는 절망감이 그 요체다. 그리고 나홍진 감독은 관객들에게 사이코패스들은 어떤 심리적 원인도 없고 지켜줄 시스템도 낡았으니 그저 "버티시라"고 충고하려는 듯 하다. 그게 바로 미진이 죽어야했던 이유일 것이다. 

<바보> 구질구질한 뒷골목은 어디로 가고...

시작부터 <바보>는 젊은 독자들이 열광한 강풀의 동명 원작 만화와 경쟁해야 할 운명이었다. 원작 만화 <바보>는 20대 중후반 독자들이라면 동네에 한 명씩은 있었던 '바보' 형이나 친구를 아련한 추억의 시공간과 우리 동네로 불러낸 뒤, 지금은 사라져가는 가치인 그의 순수함을 본받자고 권유하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바보 승룡(차태현)이의 순수함에 감화된 첫사랑 지호(하지원)는 손을 놓았던 피아노를 치러 다시 외국으로 향하고, 뒷골목 인생이었던 친구 상수(박희순)과 애인 희영(박그리나)은 자영업자와 일자리(비정규직인지 정규직인지는 확실치 않지만)를 얻어 새출발을 도모하고, 고등학생인 동생 지인은 장애인 오빠의 진심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바보>는 희생의 멜로드라마다. 그러나 영화에서 바보 승룡이가 첫사랑을, 동생을, 친구를 위해 희생하고 떠나가는 궤적을 그리는 동안, 원작에 등장하는, 술파는 카페 여급 희영과 상수의 이야기는 대폭 줄였다.

구질구질한 인생사가 녹아든 상수와 희영의 어두운 이야기는 얼개만을 남겨둔 채, 차태현과 하지원, 두 선남선녀가 연기한 승룡이와 지호의 애틋한 감정에 치우쳤다. 원작 <바보>가 지닌 감동의 폭이 영화 <바보> 속에서는 오히려 반 토막이 나버렸다.

영화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 지닌 의미를 중시해 동생 지인의 감정선을 세부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어찌보면 '바보'의 희생과 죽음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었던 '바보'들의 격리와도 같은 과정으로 보인다. 원작의 애잔함과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과감히 버리고, 또 급작스런 영화적인 결말을 대신해, 오빠를 이해하는 동생과 그를 아끼는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결말을 그렸다면 영화 <바보>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변모했을까?

<숙명> 너무 게으른 인생투정... 꽃미남이라도 안 괜찮아



<숙명>은 송승헌과 권상우가 없었다면 완성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두 한류 스타의 출연으로 투자를 보장받았을 이 영화는 <파이란>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애, 그 참을수 없을 가벼움>을 연출했던 김해곤 감독의 작품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시대착오이다.

사실 느와르, 갱스터 장르는 사회에 기생하는 악과 그 안에서 바둥거리는 주인공들을 비장미로 버무려낸 장르다. 구조적으로 거의 신화화된 장르이면서 우리에게는 <스카페이스>보다 <영웅본색>류로 친숙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숙명>은 진짜 그러한 신화화되고 장르화된 길을 어설프게 밟으려고 한다.

심히 삐걱거리는 건 현실적인 대사들과 지극히 전형적인 타입의 캐릭터들이 부딪칠 때다. 김해곤 감독표 생생한 '대사빨'은 철중 역의 권상우가 욕을 입에 달고 나와도 체화되지 않은 상태이며, 오히려 돋보이는 건 무시무시한 '자학의 달인' 도완역의 조연 김인권이다.

한껏 멋을 낸 송승헌의 내레이션이 공허해 보이는 건 이 영화가 꼭 2008년이 아니어도 괜찮을 만큼 우정·배신·파멸이라는 장르의 공식을 '수박 겉핥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폭' 회사의 네 친구가 끝내 막다른 제 갈 길을 간다는 수컷들의 인정투쟁기 <숙명>은 그 만큼 시대착오적이다. 아무리 ‘나쁜놈’ 철중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는 상황이 아파트 건설 건이라고 치더라도, 이건 다 <우아한 세계> <짝패> <비열한 거리> 등이 써먹은 소재다. 미안하지만 '꽃미남이지만 괜찮아'라고 하기엔 <숙명>을 보는 우리의 감수성은 훨씬 더 성숙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시길.

<GP 506> 장르의 미로에서 길을 잃은 분단 미스테리



공수창 감독의 <알 포인트>는 가장 뛰어난 한국산 호러 영화 중 한 편이다. '손에 피를 묻힌 자,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는 경고는 베트남이란 한정된 공간과 우리 아버지들이 피를 묻혔던 공통의 원죄의식을 불러일으키며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알 포인트>와 함께 공수창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하얀전쟁>까지 포함해 '밀리터리 3부작'이라 부를 수 있는 <GP 506>은 비무장지대의 최전방 경계초소 GP(Guard Post)를 배경으로, 공포의 동인을 귀신이 아닌 원인 모를 바이러스로 치환했다. 21명의 소대원이 죽어나간 그 자리에 당도한 또 다른 21명의 소대원들. 그들이 목도한 믿지 못할 상황이라는 점은 전작과 닮았지만 말이다.

폐쇄성과 원죄의식을 장르와 역사에 버무려냈던 전작과 달리 <GP 506>은 일단 중반까지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나"에 대한 미스터리 구조에 매달린다. 무리수를 둔 반전과 이중의 회상 장면은 수사 담당 노 원사(천호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이유를 대더라도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이러한 섬세한 장치들이 '분단이 낳은 정체모를 바이러스'가 빚은 참극이라는 주제의식과 조화를 이루었나 하는 대목은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그건 우리를 불안하게 했던 '타자'와 그로 인한 심리적 동요가 선명했던 <알 포인트>와 달리 <GP 506>의 지향점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은유하는 바가 분단이 빚어내는 피로감과 상처들이라는 건 짐작 가능하지만 <GP 506>은 그걸 친절히 설명해 주지 않을 뿐 더러 의도적인지 편집상 실수인지 모호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중립적인 노 원사를 통해 그걸 덮어두기 위해 모두 다 희생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니까 '남북군사'문제는 어디까지나 은폐되어야 하고, 그것으로 평화를 유지해야 된다는 기이한 서사 구조. <알 포인트>의 명백한 역사와 달리 공수창 감독이 고민했을 지점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영화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점들이 <GP 506>을 갸우뚱하게 만든다. 만약 예산이 적은 B급 영화였다면 분단의 상처로 발생한 좀비들이 비무장지대를 넘어오는 전복적인 결말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같은 비극일지라도 오경필 중사만은 살려두었던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영화는 그렇게 현실은 반영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진정 행복한 순간은 궁지에 몰려 자살을 기도한 미숙의 남편이 살아남아 병상에서 눈물을 흘릴 때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미숙은 승부던지기에 실패한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리라'는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

다소간의 판타지라고 추궁할 관객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한국영화들은 너무나도 '죽음'을 비장하게, 그리고 손쉬운 선택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걸 너무나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건 장르 법칙과 상관없는 문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제외하고 장르가 다른 네 편의 영화 모두 주요 인물들이 죽어나갔다.

어쩌면 한국 사회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비약하자면 생계형 혹은 사회적 죽음과 맞먹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는 뜻일 수 있단 얘기다. 그걸 장르 영화들은 장르 법칙이란 허울에 숨어서 반영하고 있는지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관객들은 현실을 비정하게 직시한 영화들도, 말랑말랑하기 만한 로맨틱 코미디도 외면하고 있는 중이다. 조폭코미디를 봐도 웃다가 꼭  번쯤은 울어줘야 하고, 비극적인 결말에도 적잖이 길들여져 있다.

상위 몇 퍼센트를 제외하곤 우리가 꼭 그렇게 불안정하게 혹은 감정의 진폭이 큰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영화는 그렇게 현실은 반영하는 중이다. '다이내믹 코리아'에서도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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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fql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생순..보면 특히 한국 여성의 삶이..잘..특히..문소리분.. 남편이 빚져서..그것 독촉 받고..빚갚으려..일하고..애 들쳐 업고 다니고..그런 분 은근히 많던데...
    추격자..는 요즘 범죄들..의 결정판..영화..

    2008.04.10 14:16
  2. 꼭 흥행이 돼야만 영화가 잘만들어 진건가?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보 연기자들 연기도 좋았고 원작과 많이 비슷하게
    배경도 지었고 영상미도 보였다 우생순은 그냥 그 선수들 사생활 이야기가 아닌가 보고 재미있을지는 모르지만 관객들에게 얻게해주는것은 별로 없다

    2008.04.10 18:10
  3. 아 저기..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간히 스포일러가 보이는데; 더 많은 분들이 보시기 전에 스포일러가 있다는 말씀을 앞에 명시해주셨으면 합니다

    2008.04.10 23:23

임순례 감독의 초심 혹은 진심

필진 리뷰 2008. 1. 28. 15:27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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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김소영 교수는 어느 페미니즘 좌담에서 임순례 감독은 자신의 미스터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짐작컨대 그 말은 페미니즘 영화와 여성감독을 이야기할 때 임순례 감독을 언급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임순례 감독이 여성감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여성’을 소재로 영화를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가 여자핸드볼을 소재로 아줌마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그래서 기대했었다. 결과는? 좋았고 좋지 않았다. 아줌마는 있는데 핸드볼은 보이지 않았다.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했을 때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영화의 인천의 공기는 낯익고 익숙했지만(임순례 감독은 인천출신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낯설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 영화가 [세친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그 영화에 대한 코멘트를 부탁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세친구]는 성장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성(性)을 넘어 인간에 관해

여자들은 절대 모르는(모른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여자들은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군대’이다. 군대에 관한 그 많은 이야기들, 술자리가 깊어지고 남자가 둘만 있어도 절대 빠지지 않는 소재가 ‘군대’이다.(남자가 한명이어도 군대얘기는 가능하다. 사용 가능한 최상급 표현들이 모두 들어간 모험담도 들을 수 있다.) [세친구]가 나왔을 때, 그 리얼함에 많은 남성들이 탄성을 토해냈고,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계보에 임순례 감독은 인장을 찍었다. 그 작품을 여자가 찍었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미스터리였다.

10년이 지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을 본 후 다시 본 [세친구]는 생경했다. [세친구]가 성장영화가 아니라는 감독의 말에 동감했고 그녀가 영화로 전달하고자 하는 초심이 최근작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줌마를 소재로 한 [우생순] 이후에도 임순례 감독은 페미니즘 영화감독의 카테고리 안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성(性) 넘어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냉정한 것이 아니라 ‘삶’이 그렇다

“어떤 성이건 연령이건 내가 스크린에 올리고 싶은 인물은 외형적으로 그다지 매력도 없고, 행복해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삶은 초라해 보이지만 세속적 기준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보다 구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세편의 장편 중 직접 각본을 쓰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자, 유일하게 여자들이 주인공인 영화 [우생순]은 그렇게 [세친구]와 닿아있다. [세친구]에서 전혀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우울함에 젖어든 많은 관객들(누군가 올려놓은 네이버 지식 중 우울한 영화의 목록에 [세친구]가 포함되어 있다.) 혹은 평자들이 흔히 하는 잘못된 생각은 감독의 시선이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우생순]을 보고 임순례 감독의 영화가 밝아졌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잘못이다.


임순례 감독은 “영화는 대리만족이라는 판타지 기능과 함께 현실을 일깨워주는 기능도 갖고 있다. 나는 판타지보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해보자는 것뿐이다. 그건 내 취향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세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임순례 감독이 인식한 현실에 다름아니고, 많은이들은 그녀의 시선에 공감을 표했다.


영화는 세상을 보는 창

임순례 감독에게 영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과 같다. 단편 [우중산책]의 배경인 낡고 허름한 극장과 [세친구]에서 비디오 앞에 나란히 앉은 세 친구는 임순례 감독의 초심을 보여준다. 여고생 때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 떠는 것 말고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다는 임순례 감독에게 영화는 세상을 보는 창이지 않았을까.


[우중산책]에서 다룬 온갖 자잘한 일들이 일어나는 무료한 일상과 한낮의 소나기는 [세친구]에서의 주변에 위치하고 있지만 겪을 수 있는 풍파는 하나도 거르지 않는 듯한 주인공들과도 닮아있다. 한국사회의 폭력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감독은 부득이하게 학교와 군대와 상관관계에 있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택해 [세친구]를 만들었다. 그 후 좌절된 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감독은 나이트클럽의 밴드와 꿈을 잃어버리고 다양한 직업을 가지게 된 중년 남성들을 주인공 삼아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든다. 두 편의 장편이 나오는 동안, 감독은 예상한 만큼의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보았다고 말했다.

개봉 10여일 만에 100만을 돌파했다고 떠들썩한 [우생순]이 아쉬운 이유는 아줌마를 통한 세상은 보이는데 우리가 모르는 핸드볼의 세계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쪽은 임순례 감독이 관심이 없었거나 모르는 세계인 것 같다.(“너는 세계 최고의 선수”라던가 “너는 핸드볼을 위해 태어났다”라는 대사가 나올 때는 어찌나 간지럽던지.) 그렇다해도 앞선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세상을 맛본 관객들에게도 [우생순]은 실망스럽지 않다. 그녀의 초심이 여전히 보이기 때문이고 무난하게 많은 관객들의 취향에 맞추면서도 진심을 잃지 않는 균형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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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daumlove BlogIcon Neofox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세친구를 참 인상깊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우생순을 못 봤지만, 뭐, 사람의 본질이 변하겠어요? 꼭 챙겨보려구요. 나름 대중적으로도 성공하는 것을 보면, 제 일이 아님에도 훈훈해지는것 같습니다.
    좋은 평 잘 읽고 갑니다.

    2008.01.28 17:13
  2. ...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매한의견과 에매한글 에매한결론 .....

    2008.01.28 17:33
  3. 멋진당신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 핸드볼과 운동선수들의 일상적 고민이 잘 보이던데... 님은 핸드볼을 너무 잘 아시거나, 아주 모르시거나 둘 중의 하나인 듯합니다. 적어도 이 영화는 1992~2004년 핸드볼이라는 우리에겐 인기없는 스포츠가 이룬 세계적인 성과를 안쓰럽고 고맙게 기억하는 다수의 일반관객들에게 코드가 맞춰졌기 때문에, 아줌마도 보이고 핸드볼도 보이고 운동선수들의 지리멸렬한 삶도 보이는 중층적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웬지 님께만 안보이는 핸드볼도 우리들의 기억을 자극하면 아주 잘 보이고 있습니다.

    2008.01.29 08:18
  4. Favicon of http://click.interich.com/?pf_code=100116108701103441 BlogIcon 인터리치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생순글 공감갑니다.
    글 잘보고갑니다^^

    참!! 그리고,,
    저희 인터리치ucc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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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드센스와 비교하셔도 손색이 없을겁니다^^
    애드센스클릭율과 단가때문에 재미못보시는 요즘
    블로그수익을 저희 인터리치로 다각화해보세요~

    2008.01.29 12:20






냉정함을 강요받는 시대다. 우리들은 자기 보호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서 내것을 지키거나 혹은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열정이란 것이 의미롭기는 하지만, 자칫 열정의 소용돌이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 순간 지금껏 쌓아온 인생의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것. 지금의 시대는 이렇게 냉정함을 우리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동물은 욕심이 너무 많은 존재다. 냉정함속에 자신을 가리고 살지만, 실은 한번쯤 내질러 보고 싶은 욕구, 즉 열정의 목마름 또한 안고 살아간다. 아, 한번쯤 기회가 된다면 끝까지 달려가보고 싶다는 생각들. 시대가 강요하는 냉정함은 결국 개인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열정에의 의지를 완벽하게 억누르지 못한다.

그러나, 열정에 빠져 삶을 송두리째 휘둘리든, 혹은 가까스로 이성의 힘을 빌어 냉정을 유지하던, 인생이란 것이 우리에게 해줄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그 무엇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더라도, 혹은 객관적 판단의 끈을 놓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든, 인생이란 것은 어떻게든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살아가든, 냉정하게 살아가든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없다. 가장 강력한 승자는 '어떻게든 되어진다'는 인생의 느긋함일 뿐이므로.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에는 이 인생의 느긋함이 들어있다. 비주류스포츠에 열정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 그들이 핸드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상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빚어지는 마찰을 스포츠 영화의 드라마틱한 전개를 빌어 보여준다. 영화속 인물들의 작은 사연들. 개개인이 모여 이뤄내는 스포츠맨쉽. 흔히보기 어려운 스포츠 장면의 재현. 영화는 열정을 다하고 있다. 핸드볼과 핸드볼을 하는 선수들의 사연에 대해서 우리생의 최고의 순간이었다는 신파의 경지까지 열정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 영화의 열정에 현혹된다.

그러나, 우생순이 단순히 이런 열정만을 보여주었다면, 이 열정은 휴머니즘의 외피를 두른 신파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우생순의 열정은 싸구려로 전락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영화속의 빛나는 열정들 사이로 보이는 냉정함때문이다.

우생순은 한 인물을 부각시키는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인물들의 사연을 쪼개고, 그것을 슬쩍슬쩍 들여다 보고, 그렇게 핸드볼이란 것으로 선수들을 엮어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승리 혹은 패배의 클라이막스로 몰아치는 대신, 그 몰아치는 열정의 순간에 호흡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인물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김정은과 문소리가 핸드볼 코트에서 서로 공을 던지며 대치되는 장면에서도, 그들에게 감정이입될 수 있는 클로즈업을 미룬채, 바스트 샷으로 인물들을 잡아낸다. 분명 클로즈업을 사용했더라면,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들수 있었을 장면을 그 순간의 열정을 잠시 접어둔채, 냉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과정이 중요하다? 혹은 결과가 중요하다? 글쎄, 실은 그 무엇이든 중요할 수 있고, 혹은 그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러닝타임 120분이 넘어가는 스포츠 영화를 한편 봤다. 비주류 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의 희노애락에 관해 관객들은 조금씩 동화되어 가고,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그들이 안타깝게 놓친 승리. 즉 패배의 순간에 영화는 끝이난다. 아, 이렇게 선수들이 열심히 했구나. 라는 그들만의 과정에 박수를 칠 것인가? 혹은 그들이 남긴 결과에 안타까움을 보낼 것인가? 그들의 열정도 빛이 났고, 안타까운 패배가 남긴 드라마적 감동도 대단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열정과 냉정을 아우르는 느긋함이 있다.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는 것. 다만 어떻게된 되어질뿐이지 않을까?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것은 말이다. 이토록 드라마틱한 이야기에서 느긋함을 끌어낼 수 있는 연출의 묘미에 놀라울 뿐이다. 매번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일 수도 있고, 혹은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다만, 시간과 호흡하며 느긋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 인생의 무언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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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영화평의 저열함

필진 칼럼 2008. 1. 23. 11:55 Posted by woodyh98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세간의 평가를 살펴보면 예상과는 달리 분명하게 선이 그어진 호평과 혹평이 공존하는 형국이다. 어떤 영화라고 일방적 찬사가 있겠냐마는 최근 우연히 읽게 된 어느 인터넷 신문의 비판은 납득하기도 힘들거니와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비판이 아니라 작심하고 트집 잡아 제목 장사 한 번 해보겠다는 심산으로 쓰인 저급한 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글을 통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최종심급을 논하거나 변론하려는 것이 아닌, 특정 영화를 논평함에 있어 오로지 글재주에 의존하여 철저하게 목표지향적인 글쓰기에 담긴 위험한 사례를 지적할 것이다.

우선 이런저런 경로로 읽은 이 영화와 관련한 여러 비판 중에 다수를 차지하는 내용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과 빤한 결말을 위해 감동으로 치장했다는 점, 그리고 스포츠 영화치고는 너무 느리고 느슨하다는 것 등이었다. 그런데, 이제부터 필자가 문제 삼으려는 글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었다. 즉, 리얼리티가 전혀 없는 왜곡 일색이라면서 “국가대표훈련, 관리시스템에 대한 고증이 부족하고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많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감독이 선수에게 존댓말을 쓰는 장면’ ‘감독과 선수가 크로스컨트리 경기를 하는 장면’ ‘감독 지시에 선수가 반박하는 장면’ 등인데, 이러한 리얼리티의 부재가 마치 관객의 수준에 못 미치는 형식미의 부재를 가져왔다는 식으로 단정 짓고 있다. 반면, 고증이 잘 되어 리얼리티가 살아난 영화로 [쉬리](1998)와 [신데렐라 맨 Cinderella Man](2005)을 내세우고 있으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을 뿐 아니라 일일이 반박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야한 논리 앞에 기가 막힐 수밖에.

[쉬리]야말로 마이클 만 Michael Mann의 [히트 Heat](1995)가 보여준 시가전을 고스란히 복제 하였으되, 마이클 만의 영화가 가진 디테일의 십분의 일도 못 따라가는 영화였다. 이를테면 총알이 소진되어 탄창을 갈아 끼우는 장면 하나만 놓고 보아도, 모델의 구경과 제원을 정확하게 습득하여 사용한 [히트]와 이것이 거의 일치하지 않는 [쉬리]를 비교하는 것부터가 우스꽝스럽다는 말이다. 또 [신데렐라 맨]은 어떤가. 비록 이 영화가 짐 브래독이라는 실제 선수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리얼리티 구현에는 성과를 거뒀는지 몰라도, 영화가 리얼리티만 살리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것이던가. 이 영화에 쏟아졌던 비판을 아는지 모르는지, 글쓴이는 오로지 자기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에 맞게 윤색하여 해괴한 논리를 내놓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리얼리티는 무엇인가? 영화를 되짚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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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결승전 후반, 공항에서 발길을 되돌린 한미숙은 패배 직전의 팀을 극적으로 구원하고 연장전으로 몰고 간다. 이때 교차편집으로 보여 지는 그녀의 움직임과 오버랩 되는 공항 장면들. 화면 너머에는 고통스런 삶을 내려놓고자 약을 먹은 남편 규철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이 지점에서, 한쪽의 희생을 통해 다른 한쪽을 소생시키는 식의 관습적 작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즉, 주인공 자신이나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상징적 또는 실질적 죽음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침으로써 이야기는 극적인 반전과 감동적 결말을 향해 순항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 작법의 과다, 과잉사용은 자칫 신파로 변질시켜놓기 십상이니 어떤 감독이라도 이러한 시퀀스 삽입을 쉽게 결정할 수 는 없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순례 감독의 영화에서 이러한 것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중산책]은 물론이고 [세 친구]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어느 작품에도 이러한 작위성이 발견되지 않았건만, 어찌된 일인가. 규철의 자살시도와 한미숙의 결승전 복귀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명감이 가족보다 우선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임순례가 상업주의에 굴복한 증거인가? 천만에!

다시 조규철의 음독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짐작하건대, 조규철 역시 꽤 잘나가던 핸드볼 선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은퇴와 동시에 돈 관리에 실패하여 사기를 당하고 빚까지 떠안게 되면서 불행이 시작된다. 사실 세상물정 모르기로, 교사와 군인, 경찰과 운동선수가 첫 손에 꼽힌다. 한 우물만 파다보니 잇속차림을 잘 못하기 때문일 테다. 조규철 역시 오로지 핸드볼만 알고 살아온 인생이다 보니 세상에 나오는 순간 장님이 되었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선수들이 맘 놓고 뛸 팀 하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울분. 그러니까 인프라만 제대로 갖추었더라면, 선수층이 두터워 주전의 체력저하를 줄일 수만 있었더라면, 그까짓 유럽의 텃세쯤 넘어설 수 있었던 아쉬움. 바로! 엔딩 크레디트에서 보여 진 임영철 국가대표 감독의 목맨 장면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다시 말해 조규철의 음독장면이 단순히 극적효과를 위한 장치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리얼리티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드러내는 그 자체이고, 성적지상주의의 스포츠 문화가 빚어낸 운동선수들의 어두운 이면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조규철의 음독이며, 자살시도라는 극적인 장치로도 소생시키기 힘든 것이 한국 핸드볼의 현재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도대체 리얼리티의 부재로 인해 영화의 행간이 지워지거나 중심이 허물어진 장면이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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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영화 평을 읽을 때마다, 비판을 하지 않으면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강박에 사로잡힌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저널리스트 뿐 아니라 개인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대체로 정확한 근거나 통계자료 없이 에둘러 일반화시켜버리는 비판 도구의 허술함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가령 문제의 글의 일부를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형식미의 기본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그 필수적 요소는 바로 철저한 고증이다.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운영시스템을 100% 재현해내면서 동시에 주제의식을 살릴 수 없었을까?”

언뜻 보면 충분히 일리 있어 보이는 주장이지만, 실은 영화의 맥을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다. 의사의 오진으로 인해 처방 받은 약이 몸에 들을 리 만무하듯, 이런 유의 비판은 영화나 관객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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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걱정스러운 일은 한국영화를 위한답시고 들이대는 이러한 글들이 인터넷 언론을 중심으로 대량 생산되어 유포되고 가벼운 여론형성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남들이 호평하는 영화에 대한 비판을 대단한 감식안의 산물인양 우쭐대면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경우, 글쓴이가 영화의 시작화면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자막을 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의 실화를 기초로 했으되, 실제와는 다른 것도 있다는 문구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에 담긴 이야기와 엔딩 크레디트에서 보여 준 임순례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빤히 알 만한 이가) 우격다짐으로 비판전선에 나섰다는 점은 적이 개탄스럽다. 게다가 영화의 제작과정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꿰뚫은 양 고증과 기획과정까지를 넘나드는 비판을 해대는 것은 인터넷 매체의 부작용 중 하나인 ‘이유 없이 비판하고, 욕먹는 기사로 이슈화하기’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묻고 싶어진다.

필자라고 이 영화가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불만스런 부분이 많다고 해야겠다. 특히 임순례 감독답지 않은 몇몇 장면은(소개팅에서 실망한 상대의 차를 들이 받는 장면이나 규철이 안 감독에게 장난감과 돈을 건네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실망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말 하려는 바를 훼손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점과 대형제작사와 손잡고 만든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일정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거듭 말하건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담긴 리얼리티는 단지 핸드볼 경기의 규칙과 선수들의 행동양식과 태릉선수촌과 국가대표 관리시스템 등의 재현 따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마이너리티와 아줌마의 힘과 소외된 스포츠 영화라는 관용구를 글에 사용하면서 난데없이 리얼리티의 부재라니! 그렇다면 대체 무슨 재주로 공통적 메시지를 읽어냈다는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니 “고양이를 그렸는데 호랑이를 그리지 않았다고 화를 내면 곤란하다”고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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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rcus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평론가들은 어려운말 좀 섞으면서 비판만하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나봅니다.
    실례로 영화평론하는 형님한테 그쪽 얘기들어보니 가관이더군요..영화는 까야 제맛이다
    라는 전제를 시작으로 글을 쓴다고 하더라구요. 특히 한국영화는요.
    근데 솔직히 리얼리티 스포츠 영화를 보고 싶으면 다큐멘터리나 인간극장을 봐야죠.
    극장갈필요 있을까요

    2008.01.23 18:05
  3. 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우행순을 별로 재밌게 보지 못했는데요.
    글쓴님이 "리얼리티의 부재"를 정말 느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적인 비판이라 하셨지만, 전 영화 내내 집중할수 없었습니다.

    비인간적이던 감독이 하루아침 달라지는 점,
    쓸모없는 내용인데 굳이 끼어넣은 것들(글쓴이가 위에서 지적한 소개팅,역도부원들과의 마찰 등),
    그리고 연기력.. 김정은 문소리,김지영의 꺽꺽대는 과장된 연기는 저를 허무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핸드볼 연기인데 핸드볼 모션은 정말 눈물나도록 비참 그자체였습니다.
    그토록 실감안나는 운동 영화는 정말...
    선수들이 준비를 많이 했다길래 기대했더니만..ㅠㅠ
    선수연기를 하는 분들이 안되면 구도나 빠른 컷,흔들리는 촬영법 등.. 모든걸 동원해서라도
    커버할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색함만 그득 느꼈을뿐입니다.
    (제가 스포츠를 좋아해서 몇번이고 녹화장면을 봐서 그런걸수도..)

    아무튼 기대했던 만큼의..그리고 소재의 빛나는 가치만큼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2%가 아닌 22%는 부족한 영화인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우행순의 비평 글들이 더 와닿더군요.

    2008.01.23 18:06
  4. 릴리슈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평론이란게 제생각에는 이렇습니다..
    일반인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영화속 감독이 주고자하는 의미를 관객에게 알려주고,
    또한 장면 장면 속의 의미를 설명해줌으로서 일반 관객에게 보다 자세한 정보를 주어
    영화를 관람하면서 더 많은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영화 평론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일반적인 거구요.. 영화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것또한 평론이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가끔 웃기지도 않는 행동을 하는것은 자신의 지식의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신들만의 전문용어만 주루룩 나열하면서 자신이 감독의 위에 올라있는듯한 비웃는듯한
    말들만 늘어놓죠.....

    예전 고 정영일 선생이 말씀하신게 생각납니다... 영화"쉐인"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찾기위해 하루종일 극장에서 쉐인만 봤다고 7번째에서야 쉐인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찾았고, 그래서 이 영화가 진정 우리에게 주려한 의미를 알았다고.... 지금 영화평론가들은 영화를 몇번이나 보고 말하는걸까요? 보기나 할까요? 어떤 사람은 보지도 않고 쓴다고 하더군요...

    (쉐인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엔딩크래딧올라가면서 쉐인이 말에서 떨어져죽죠.. 그게 총잡이의 서부시대는 종료되고 정착민, 농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라네요...)

    2008.01.23 19:02
  5. 에테메난키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판만 하는 영화평이 아니라, 편집자가 그런식으로 교정을 본것입니다. 논란거리가 있어야 신문이든 잡지든 사람들이 볼테니까요.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에서 말하는 혹평은 해외사례와 비교했을때 혹평 축에 끼지도 못합니다.
    영화판 ' 파이널 판타지 ' 가 개봉했을때 평론가 중 한사람은

    " 제작비의 98%가 캐릭터의 머리카락을 표현하는데 쓰였으며 나머지 2%는 배경묘사에, 그리고 시나리오엔 커피 한잔 가격 정도가 들어간 영화 "

    라고 표현했었고. ' 미녀 삼총사 2 맥시멈 스피드 ' 개봉 당시엔

    " 감독은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세 여자를 데리고 돼지우리보다 못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비평가는 영화가 아무리 재밌어 보여도 발전을 위한 문제점을 제시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지, 관객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특정영화를 찬양하라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2008.01.23 20:40
  6. 평론가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론가일 뿐입니다.
    윗분께서 거론하신 것처럼 자극적인 내용을 쓰는 평론가도 있죠.
    그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글쓰는 방법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영화좀 볼줄 알고 글좀 쓰는 사람의 감상평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는거 같아요.
    영화만 재미있으면 그만 아니겟어요? ^^

    2008.01.23 21:00
  7. 멋지십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그런 저열한 비판을 하는놈들 보면 합당한 비판이라면 모르겠는데 무조건 한국영화는 안돼.. 한국은 안돼라는식의 이상한 정신질환을 가진 애들이 많죠.. 다른 선진국의 영화는 털끝만큼의 장점이라도 있으면 추켜세우기 일쑤구요.. 멋진 글.. 통쾌한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계속 좋은글 써주십시요.

    2008.01.23 21:01
  8. 동의합니다. 그러나...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판과정에서 영화 우생순에 관한 약간의 스포가 있네요.
    미리 약간의 스포가 있다고 말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2008.01.23 21:20
  9. 선배로서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반까지는 읽히는 글이군요.
    그런데 그 이후는 너무 부실합니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만한 논증이 나오다 마네요.
    히트와의 비견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신데렐라맨은 뭐하러 건드리다 만 것이며 우생시의 대중적 코드에 대한 지나친 비판을 비판하는 것도 뭐하러 그들의 입장만 옮겨놓고 마는 것입니까?.
    나머지는 전부 사정을 아는 사람들끼리 거두절미 하면서 막연하게 이야기하다가 결론을 내는 식이고요.
    이렇게 함부로 내뱉는 것에는 글쓴이야말로 은연중에 상업적으로 감안되어야 할 관습적 영화의 성격을 무시하는 태도가 깔려있는 것 아닐까요?.
    평자들에 대한 비판은 물론 개인 블로거들의 수준보다도 좋을게 없어보이는 수준입니다.
    님의 글에는 주제 파악 못하는 혈기가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나쁠 것 없는 문제의식에 대한 평가마저 본인 스스로가 오버하는 바람에 날려먹는 격인 것이지요.
    아무튼 앞으로 더욱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2008.01.23 22:20
    • 음..  수정/삭제

      글쎄요. 님의 연세가 얼마나 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님이야 말로 '선배'라는 되도 않는 우월 의식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거야 말로 오버에 오만인거죠.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서적인 리얼리티를 무시한 어느 평자의 무지함에 대한 비판일텐데 정작 핵심적인 부분은 비껴가고 선배니, 주제 파악 못하는 혈기니 하는 자극적인 문구 동원해가며 언어의 칼날을 날리시는 것을 보니 님도 그다지 나을 건 없어 보입니다. 말은 장황하지만 그 속을 파고 들면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여느 악플들과 다를 게 하나 없는 덧글이군요. 아무튼 앞으로 더욱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2008.01.24 00:42
  10. 미순순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닥 재밌게 막 빠져들게 보진 못하겠더라구요..
    뭐 엄청난 노력이 보이지도 않고;; 원래 잘하는 사람이 그냥 나가서 잘하게 된거같던..
    그치만 저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겠더군요..

    근데 저도 윗분말 동감 ㅋㅋ 신데렐라 맨은 뭔지는 모르겠으나;;
    읽는데 왜 그 얘기는 중간에 빠졌을까.. 싶은 ㅇㅅㅇ
    그치만 재밌게 잘 읽었어용 ㅎㅎ

    2008.01.23 22:32
  11. 야옹야옹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평론가의 역할이 그 영화에 대한 객관적인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자기 생각에 따라 글을 쓰는 것 뿐인데 어째서 욕을 하는건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그리고 평론가들에게는 그들만의 잣대와 논리라는게 있습니다. 아무리 잘나가는 초일류 기업이라도, 경영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부족한 점이 있는 것 처럼요.. 그 사람들은 "이 영화 ~는 부족하지만 재미있었다"라고 감상문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 부족했고 ~해 보였다" 라고 본인생각에 잘못된 부분을 짚어주는 사람이에요.. 많은 분들이 평론가의 역할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 계시지 않는거 같아요... 디워때도 불거졌던 문제지만-_-
    평론가들의 글을 읽고 괜히 흥분하고 욕하고 이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블로그, 평론 모두 자기 생각을 쓰는거 아닙니까.. 알아서 읽어보고 걸러낼껀 걸러내고 받아들일껀 받아들이면 되지 왜들 그렇게 흥분하면서 까대시는지.. 그건 평론가들이 관객을 깔보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거랑 좀 모순되지 않나요?? "하여간 평론가들이란.."이러는 관객이나 뭐가 다르다는건지 모르겠네요.
    쨌든 이 영화는 너무 보고 싶네요. 감독님의 와이키키브라더스를 엄청 재밌게 봤던지라 ㅋ

    2008.01.23 23:54
  12. 옛날부터 내려오는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스개 소리가 하나 있죠. "딱히 볼만한 영화가 떠오르지 않을 땐 영화평론가가 내린 각 영화의 별점을 보고 별점이 낮은 순서대로 보라. 그리고 평론가로부터 최악의 영화평을 받은 영화는 반드시 보라."라는.... 예전엔 정말 이걸 말 그대로 해석해 최악의 영화평을 받은 영화들을 우선으로 봤다는 ㅋ 물론 모르고 스쳐 지나갈뻔한 주옥같은 영화를 발견하는 계기도 되긴 했습니다만, 영화평 그대로의 영화도 있더군요. 지금에서야 느끼는 이말의 본뜻은 아마 평론가의 주관적 판단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소신대로 영화를 선택해라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나라 만큼 권위에 종속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도 흔치 않아서 영화 선택에 있어서도 그 분야의 전문가를 자청, 또는 인정받는 평론가의 평가에 의존하는 관객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그러다 보니 평론가의 평가 자체에 큰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는 듯. 하지만 영화라는 장르가 교과서가 아니라 해석과 느낌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예술의 한 장르이며 평론가도 일반 관객에 비해 영화에 대해 조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 그 본질은 일반 관객과 같은 주관적인 인간임을 인정한다면 평론가의 평은 참고만 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영화를 보는데 그다지 지장은 없을 듯 하군요. 사실 개인적으로 이 글 제목만 보고 상업적 논리에 매몰되어 자신의 주관을 포기한다든지 어느 파, 주류, 비주류등 일종의 섹트를 설정해놓고 평론하는 일부 평론가의 문제가 나올걸고 기대했는데 단순히 평론가의 주관적인 평가 자체를 논하는 글이어서 약간 아쉽기는 하네요^^

    2008.01.24 00:11
  13. 루루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사실 실망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만약 4년전 아테네의 기억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정말 재미 없는 영화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영화에서 주는 감동은 전혀 없었습니다.
    연기또한.. 안습이죠.. ㅜㅜ 특히 엄태웅은 감독연기를 해야할지 김정은과의 멜로라인을 끌어갈지 헤매고 있더라구요..
    진짜 하나하나 말하며 끝이 없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영화입니다.
    더 잘 만들었으면 600만은 갈 영화였는데.. 300만에서 그칠것 같아요..
    마지막 엔딩타이틀에 올라가는 선수들의 스틸컷이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2008.01.24 01:08
  14. Favicon of http://blog.naver.com/thetorne BlogIcon 인어소년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경우엔 영화는 아주 감동적으로 봤는데요 (별 4개 반) 우생순이 well-made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님께서 비판하시는 그런 영화평을 읽어보면서 "맞아, 나도 그런 부분 때문에 간간히 깬다고 생각했어." 라고 생각했구요. 개인적으로 돈을 지불하고 선택하는 만큼 늘 well-made 영화를 찾으려고 고심하는데요- 물론 그거야 단순한 취향의 문제일 뿐입니다 - 우생순의 경우에는 well-made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도 상당히 만족스럽더라구요. 마치 제 어머니가 엄청난 실력의 요리사는 아니지만 어머니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 것처럼요^^ 아마 님께서는 정말 황당한 영화평을 보시고 많이 답답해 하시는 것 같은데, 가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비평을 하는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좀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디워 사태처럼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08.01.24 01:10
  15. 구라통신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칭찬만하면 거만해지기 마련인데.. 비평은 더욱 조심하게 됩니다.... 솔직히 극찬보다는 비평이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을 견디지 못한 감독 스텝은 영화찍을 자격이없죠...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말 거만한거죠

    2008.01.24 01:12
  16. 확실히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영화평론가들이 그런면이 있죠 신문같은거 보면서 많이 느꼇구요. 영화평론가들이 쓰는 글들중에 잘만들었다라고 말하는 평론글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요. 저도 한때 영화평론가들이 쓰는 글과 부가되는 별점으로 영화를 많이 판단했었는데 어느순간부터는 그런글 하나도 안 믿게 되었습니다. 아마 저같은 분들이 많으실꺼에요 평론글 보고 영화 판단하시는분들. 물론 평론가들도 생각만 한다면 뭐라 할 논쟁은 안되지만 이런 평론글들의 상당수가 신문이나 매체에 실린다는거죠. 그럼으로써 남들이 보기에는 좋을수도 있는 영화가 한사람의 개인적인 잣대로 아주 쓰레기 졸작이 될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영화 하나 말아먹게되는건 쉽게 되죠. 글쓴분과 동감으로 명쾌한글 잘 읽고갑니다

    2008.01.24 01:25
  17. 으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쉬운 부분도 많앗지만 그래도 재밋엇다고 생각하고 본 영화였습니다.

    2008.01.24 01:32
  18. 적멸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분들은 오해하고 있는데, 블로거의 뜻은 '왜 우리 나라는 무조건 트집잡고, 제대로 조사도 안해본채 다 아는척 비평을 해대는걸까' 가 아닌가 싶군요.
    실제로 우리나라는 일단 비판하고 보는 면이 강해보입니다.
    재밌거나, 신선한 부분을 부각시키는건 '출발비디오여행' 에 맡겨버리고,
    영화잡지는 트집잡기만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 싸이트에서 20자 평으로 영화를 고르구요.



    결론은 병진들의 합창

    2008.01.24 03:54
  19. 이건아니지않습니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에 찾아보니 고뉴스라는 곳에 변희재씨가 쓴 글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실명과 실제글을 인용하셔서 거론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비겁한 글이네요,,
    님의 글 역시 읍소 그 이상은 아닙니다.
    네오이마주라는 훌륭한 인터넷[매체]에 실리기에는
    아주 게으른 기사라고도 할 수 있고요,,

    2008.01.24 07:09
  20. Favicon of http://blog.daum.net/jan4700 BlogIcon 터미네이터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비평은 없었으면 한다.. 나는 재미있게 봤는데 좋지않은 영화평을 들었을때 감동이 반감되 버려요.. 아주 맥이 풀린다고나 할까? 어이 없기도 하고, 기분도 나쁘고..
    악평은 자제해 줬으면 하네요...
    안그러면 미래전사 터미네이터를 보낸다...

    http://blog.daum.net/jan4700
    제주배우

    2008.01.24 10:04
    • ㅋㅋㅋ  수정/삭제

      그럼 당신이 영화 비평 안보면 되잖어. 살다 살다 별 같잖은 소릴 다 보겠네. ㅋㅋㅋ

      2008.01.24 11:45
  21. 답답하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만 보고 적습니다 제목이 하두 우스워서...낚시글인지... 어느님 말씀처럼 해외평론가는 더합니다 디워해외평론 봤습니까? 어떻게 800만이 이영화를 봤는지 모르겠다
    댁같은 사람때문에 디워가 논란이 불거진겁니다 평론을 그냥 넘기면 되는데.. 평론가 글에 욕하고 따지고,,, 감성적입니다 따지고 태클거는 직업인 사람에게 감성을 요구하나요?
    그러니깐 댁같은 사람때문에 이송희일 글이 나왔고.. 진중권은 매국노 취급당했습니다
    그리고 어이없어서 이명박이 우생순보고 눈물흘렸다는데 ... 우생순보면 이명박 생각나 짜증이납니다 답답하니다

    2008.01.24 10:23
    • 도화  수정/삭제

      동감합니다

      2008.01.24 10:39
    • 여보세요  수정/삭제

      비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거랑 어처구니 없이 단체로 실력행사 들어가서 생떼를 쓴거랑은 구분이 되어야지요. 그 놈의 디워는 참 아무 때나 튀어나오는군요. 이젠 좀 잊혀질 때도 되었건만.

      2008.01.24 11:49



실어증의 극복, 대중성의 획득


그동안 임순례 감독의 두 편의 장편 영화의 주인공들은 '실어증'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말 수가 적은 인물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두 편의 영화의 주인공들 즉 <세친구, 1996>의 무소속(김현성)이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의 성우(이얼)는 분명히 서사의 중심에 서 있기는 했지만 동시에 일종의 관찰자이기도 했다. 무소속과 성우는 자신의 친구들의 몰락 과정을 지켜 보면서 동시에 자신의 몰락을 접하게 된다. 일단은 서사적 관점에서 이 점이 임순례의 최신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미숙(문소리)과는 확연히 다르다.

따지고 보면 임순례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친구 집단들은 일종의 도플갱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중심 인물들은 '아줌마'라는 사회적 정의의 범주에 들어가거나 그 주변부의 인물들이다. 그건 변두리 동네에서 별볼일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하류층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았던 <세친구>나 쇠락해가는 온천 지역을 전전하는 뜨내기 밴드의 모습을 담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결코 '주류'가 아니며 늘 떠밀려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미 우리는 임순례의 두번째 장편 영화에서 그의 영화적 주제를 경험한 바 있다.



'꿈을 이룬다면 행복할까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친구>는 도무지 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였고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어린 시절 꿈을 이루었지만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 꿈을 조금은 이루고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임순례는 쉽사리 '우리가 행복해진다'라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모 평론가가 이야기했듯 임순례의 영화들 속에서 점점 '희망'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세친구>는 암울한 영화였다. 인생에서 가장 재기발랄한 시기를 보내야 할 세 아이들은 막 들어선 사회에 이리저리 떠밀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보낸다. 아이들의 삶을 결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이기는 하지만, 영화내내 주인공이 경험하는 C급 뮤지션의 세계는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은 언뜻 희망을 보여준다. 이 두 편의 영화들에 비하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주인공들은 적어도 혼자가 아니며 어떤 거대한 감동을 맞이한다. 이 세 편의 영화들을 통해 임순례는 여전히 희망 따위는 오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스포츠 영화의 규칙과 리얼리즘 영화의 감성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잘 알려진 것처럼 세계 최초의 핸드볼 영화이며 한국 영화에서는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영화다. 하지만 <우생순>은 전통적인 의미의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대개의 스포츠 영화는 궁극적으로 승리의 게임(경기의 결과와는 상관 없이 주인공의 성장이라는..)을 다룬다. 주인공들은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고 마침내 어떤 승리의 순간을 맞이하고 그것이 성장을 낳는다. 그래서 대개의 스포츠 영화는 암담한 첫 경기와 마침내 승리하는 마지막 경기의 모습이 늘 잡혀 있게 된다. <우생순> 역시 외형적으로 그런 형태로 시작되고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첫 시작은 미순의 소속팀인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해체된) 효명건설의 핸드볼 대잔치에서의 승리에서 시작되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런 영화적 설정과는 달리 이런 구성이 앞서 말한 데로 경기력 향상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스포츠 영화인 <록키>는 3류 지하 경기나 하던 필라델피아의 퇴물 복서 록키 발보아(실베스타 스탤론)가 인내와 원시적인 훈련 방법으로 (무하무드 알리 급의) 헤비급 세계 챔피언 아폴로(칼 위더스)와 명승부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록키는 놀라운 경기력 향상을 하게 된다. 팀 스포츠를 다룬 올리버 스톤의 <애니 기븐 선데이> 역시 그러하다. 이 영화의 첫 부분에서 샤크스는 허술한 팀이다. 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감독 토니(알 파치노)의 부임과 더불어 팀은 변화하고 마침내 승리한다. 하지만 <우생순>이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다른 의미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썰렁한 관중석의 핸드볼 경기장은 철저히 마이너리티에 속해 있는 핸드볼의 현실을 반영한다. <우생순> 역시 핸드볼 팀의 성장을 다루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부분이다. 더구나 <우생순>의 마지막 경기 장면의 박진감은 할리우드산 스포츠 영화들 또는 <슈퍼스타 감사용>같은 영화와 비교해 보아도 2% 정도는 부족해 보인다. 그런 차이는 감독이 말했듯 '기초 자료'의 부재에서도 발견될 수 있을 것이기는 하다. 즉 무수히 많은 야구 영화 위에 세워진 <슈퍼스타 감사용>과 달리 최초로 만들어진 핸드볼 영화인 <우생순>은 경기 장면을 영화적으로 구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우생순>의 본편이 끝난 후 보여지는 실제 핸드볼 경기 장면 속의 선수들의 리얼한 표정의 스틸 사진들이 영화 속 경기 장면보다는 더 감동적이며 박진감 있게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생순>의 결말이 감동적인 것은 이 영화가 임순례 감독의 장점이라고 할 '리얼리즘' 또는 '시대 정서'에 철저히 기반한 영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 속에서 선수들은 '여성'이라는 이유 더 나아가서는 '나이 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한국 사회가 맞이한 '경쟁 논리'라는 체계 속에서 처절히 깨어져 나가는 개인들의 모습을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지금의 20대는 이미 현실적인 배틀 로열(Battle Royale) 게임에 들어서 있고, 10대는 대학교 입시를 둘러싼 배틀 로열 게임에 들어서 있다. 문제는 이 무자비한 게임이 국민경제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데 에 있다. 이미 한국 경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포디즘(Fordism) 시대를 훌쩍 넘어서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모적인 게임, 그저 살아남기 위한 '획일성'의 경쟁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이 야릇한 사디즘적인 게임은 즉각 중지되거나 최소한 완화되어야 할 것이다. 」

- 우석훈, 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p.18.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급속히 경쟁 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과정 속에서 이른바 '승자독식게임'이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당연히 그 속에서 주류와 비주류, 메이저와 마이너의 구분은 좀 더 뚜렷해진다. 임순례의 <우생순>은 날카롭게 포스트 외환위기의 한국 사회의 고통을 담아내고 있는 영화다. '아줌마'는 생활 경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이며 <우생순>의 주인공 미숙(문소리)이 처한 현실 역시 평범한 아줌마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은근히 철저히 엘리트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스포츠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는데(운동 밖에 모르다가 사업해 패가망신한 미숙의 남편 규철의 에피소드) 빚더미를 떠 안은 미숙의 경제적 고통은 우리 기억에서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생생한 여성 묘사


이 영화 속의 중심 인물 여성 네 명은 모두 차별을 받고 있는데 현실적인 삶의 영역에서 고통 받는 미숙, 커리어우먼의 면모 속에서도 이혼녀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혜경(김정은), 운동을 위해 복용한 약 때문에 불임 판정을 받은 정란(김지영), 외모적인 차별을 받는 수희(조은지)가 모두 그러하며 또한 이들은 나이 많은 여성 즉 '아줌마'라는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 나아가 남성 코칭 스태프들에게 여성성을 인정 받지 못하는 핸드볼 팀 전체가 차별을 받는 장면도 등장한다. <우생순>이 자아내는 강력한 여성 연대는 이런 현실적 고난 속에서 비롯되며 바로 이것이 <우생순>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타자화되지 않으며 타자화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맞서는 인물들로 묘사된다.

필자는 <우생순>이 진보하는 한국 상업 영화의 긍정적인 모습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 영화의 균형 감각은 탁월하다. 스포츠 영화의 장르적 구성틀에다가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정서가 잘 결합되어 있으며 이 것이 이 영화를 감동적으로 만들어나가는 탁월한 힘이다. 또한 임순례라는 감독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깊은 애정은 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관객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세친구> 정도를 제외하면 임순례의 두 편의 영화는 모두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귀엽기까지 하다. 그것은 임순례라는 감독이 캐릭터를 연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우생순>은 오래간만에 심금을 울린 영화였다. <우생순> 속의 핸드볼 선수들은 저 멀리 신전에 위치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인물들처럼 느껴진다. <우생순>은 또한 IMF 이후의 '배틀 로얄'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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