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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3 진짜진짜 미안해

진짜진짜 미안해

필진 칼럼 2009. 1. 13. 11:26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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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새해를 맞은 지 십 여일이 지났음에도 글쓰기를 멈추고 있었다. 몇 개의 외고를 쓰느라 진이 빠진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것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는 책을 읽는데 더 열중했다고나 할까. 에릭 홉스봄과 앨런 와이즈먼의 저작을 밀린 숙제하듯 독파한 후 잡은 것이 1960~80년대를 종횡무진 활약했던 일본의 전방위문화예술가 데라야마 슈지의 책이었는데, 그의 책을 읽다보니 에드워드 양의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 샤오장의 모습이 떠올랐고, 이내 1970년대 한국청춘영화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한 영화감독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지금이야 흔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70.80년대만 해도 부부가 방송 연예프로에 출연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부연예인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명사의 아내들이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는 법이 없던 사회분위기 탓도 컸을 것이다. 기억해보면 그 시절 텔레비전에서 만날 수 있었던 부부명사라고는 문여송 감독과 방송작가 김이연 외에는 거의 없지 않았나 싶다.

문여송과 김이연이라. 늘상 ‘대한민국 계약커플 1호’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한국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라는 설명도 어김없이 따라다녔던 그들이었다. 선 굵은 곱슬머리에 둥근 뿔테 안경을 쓴 문여송 감독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똑 부러지는 말솜씨를 자랑했던 김이연 씨가 방송에 나올 때면 내 어머니는 “저 둘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둘이 여적 같이 사는 것을 보면 부부 사이는 아무도 모른다니까”라며 신기해하셨고, 옆에서 신문을 읽던 아버지는 “아폴로 박사(조경철)와 전계현도 잘만 살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며 혀를 차시곤 했다. 물론 두 분에게는 계약커플이라는 단어 자체가 신기하거나 이해하기 힘들었을 테고,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셨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영화의 ‘映’자도 모른 채 그저 단체관람의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나의 학창시절, 문여송 감독은 몇 편의 하이틴영화로 추억의 필모그래피를 확실하게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어젯밤 문여송 감독이 향년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청춘영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트로이카(김응천, 석래명, 문여송)의 시대가 진짜로 막을 내린 셈이다. 이들이 만들던 청춘영화는 맥이 끊겨버린 지 이미 오래다. 청춘영화도 영화를 만들던 감독도, 그 영화에 열광하던 그 시절의 관객도, 무엇보다 ‘청춘’ 그 자체로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사회정서를 찾아보기 힘들다. 케사르의 말대로 「이렇게 세상의 모든 영광은 사라져」 가는 것일까? 30년이 넘도록 모른 척 잊고 지내다가 이제 서야 억지스럽게 지난 시절의 영화를 돌아보는 내 모습이라니. ‘진짜진짜 미안합니다’ 문여송 감독님, 부디 평화롭게 안식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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