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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4 소설 <봄날>과 [화려한 휴가]의 차이

2007.08.14

문학이 80년의 광주를 다뤄온 어떤 방식
<봄날>과 [화려한 휴가]의 차이


 ‘아아, 끝내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이 나라의 국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서울은, 부산은, 대구 ․ 인천 ․ 대전 사람들은 이 순간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토록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왔는데도, 끝끝내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고 마는구나. 아아, 결국 우리들만, 우리들의 도시만 이토록 홀로 처참하게 버림 받고 말아야 한단 말인가……’
(임철우, 『봄날5』, 문학과 지성사, 336p)



80년 5월 항쟁의 막바지, 광주 시민들은 외로움과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27일 새벽, 이 고립된 도시로 그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길 바라마지 않았다. 마침내 공수부대가 도청을 밀고 들어왔을 때, 자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으리라. [화려한 휴가]에서 신애(이요원)가 27일 새벽, 가두방송으로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라고 절규하던 그 목소리야 말로 광주 시민들이 그토록 원하던 투쟁의 요체였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인간 최고의 의무를 타인을 기억하는 데 있다고 했던가. 광주를 기억하는 건 결국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역동의 시대를 살아내 온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 거기에서 바로 광주를 되돌아보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의 문제는 중요하다. 추억으로 고착화 시킬 것이냐, 여기, 오늘, 현재와 맞닿아 인식하느냐는 큰 차이를 지닌다. 물론 장르의 차이를 인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에 바로 2007년의 [화려한 휴가]가 지니는 시간차와 우리 문학이, 우리 소설이 견지해 왔던 온도차를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살아남의 자의 슬픔과 참여의식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밀양]의 모티브를 제공해 준 이청준의 단편 소설 「벌레 이야기」는 광주 항쟁의 책임자 처벌을 둘러싼 당혹함을 은유한다. 아들을 잃은 어미가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다는 살인자. 이청준은 광주 청문회가 한창이던 1988년, 한 유괴범이 사형 직전 종교로 구원을 받았으니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사건을 화두로 삼았다. 이제는 노작가가 된 이청준은 20년 전, 기가 막힐 정치적 화해 제스추어를 보고 인간 심리의 본질적 문제로 심화 확장시킨 작품을 내놓은 셈이다.

관점을 달리 할 수 있겠지만 「벌레이야기」처럼 80년대 광주를 다룬 소설들은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탄압 앞에서 암울한 은유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정권은 지성계를 대표하던 두 계간지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 강제 폐간하는 것은 물론 고은, 송기숙, 황석영 등 광주와 관련됐거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한수산, 현기영 등을 보안사로 끌고 가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 문학은 공히 1980년대 초, 중반까지 오월, 남쪽 등으로 은유적인 형상화 작업을 거쳐야 했었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다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중에서

강냉이 풋고추/ 눈 속의 겨울 애벌레와도 같은/ 죽지 않는 이 땅의 서러운 힘들이/ 저 숨죽인 그리움의 밀물 소리로/ 우리 쓰러진 가슴 위에 피어나고 있음을./
-곽재구, 「그리운 남쪽」중에서

우리 시에 있어 광주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아도르노의 테제와 비견될 만하다. 본래 자아와 세계가 일치하는 속성을 지니는 서정시는 물론 80년 이후 우리 시 중 일부는 좀 더 직접적인 운동성을 뛰어왔다. 80년대 초반 발행된 계간지 ‘오월시’를 본거지 삼아 지속적으로 광주를 알레고리로 녹여내던 시인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시대 분위기를 외재화하며 광주를 직설적으로 끌어오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고은, 황지우, 김준태, 김용택, 백무산, 조태일 등이 오월을 노래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까지 김남주의 「학살」과 같은 연작시나 광주항쟁 관련 시선집인 『누가 그대 큰 이름 지우랴』나 『하늘이여 땅이여, 아아 광주여』가 묶여져 나온다.

한편 광주와 문학과 관련 빼놓을 수 없는 텍스트가 1985년 소설가 황석영이 전남사회운동협의회와 함께 발간한 광주 민중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다. ‘5.18’을 몸소 체험한 200명 이상의 광주 시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이 기록은 80년 5월 광주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첫 번째 성과물이다. 이전까지의 소극성과 달리 광주와 관련한 단편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것이 이 시기며, 이후 6월 항쟁과 맞물려 광주를 노동자 계급의 시각에서 재조명한 홍희담의 「깃발」이 발표된 해도 바로 1987년이다.

80년대 후반 광주는 리얼리즘과 노동문학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쳐버린 소녀의 독백체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진술한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장선우의 [꽃잎]을 낳았고, [박하사탕]에서 공수 부대원을 시작으로 참호하게 망가져갔던 영호(설경구)는 정도상의 「십오방 이야기」에서 시민군인 동생을 사살한 소대장을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가 대학생들과 마주하게 되는 공수 부대 출신 만복의 형제와도 같다. 이밖에 지식인의 부채의식에 초점을 맞춘 「밤길」, 광주출신 소설가로 유명한 공선옥의 「목마른 계절」, 이순원의 「얼굴」, 문순태의 「일어서는 땅」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성과 신진 작가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시각에서 광주를 형상화해 낸 것이다.

물론 그 전까지 광주의 아픔을 꾸준히 다뤄 온 작가는 단연 임철우다. 80년 5월, 전남대 영문과 출신이던 그는 자기 체험의 참혹함을 작품세계에 꾸준히 녹여냈다. 아이들을 낳지 못하는 마을(「불임기」)로 광주를 형상화하거나 수배로 열다섯 곳이나 거처를 옮기거나(「동행」) 마지막 밤 친구의 외침을 묵살하고 미쳐버린 친구(「봄날」)로 천형과도 같은 부채의식을 소설 속에 그려왔다.

하지만 미시사와 개인주의 열풍이 휩쓸고 간 90년대 이후 문학은 더 이상 광주를 기억하는 것에 게을러 진 것도 사실이다. 광주에 관련된 소설이 거의 90년대 초반까지 집중됐으며 2000년 이후 관련된 작품이 홍희담의 소설집 『깃발』, 송기숙의 『오월의 미소』, 황지우의 희곡 『오월의 신부』정도라는 점은 27년이란 세월을 감안해도 아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들이 광주를 놓아 주고 동시대로 시선을 옮긴 것은 무엇보다 1998년 5부작으로 발간된 임철우의 『봄날』이 이루어 놓은 성과 때문이기도 하다.



총체성을 담보로 한 고통의 성과물

“한때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흐린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시간들. 그 시간 속의 목소리, 웃음, 빛깔, 체취, 움직임들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을 거침없이 거슬러 올라, 오래 전 지상에 머물렀다 떠난 무수한 인간의 꿈과 절망, 사랑과 고통에 생명을 불어넣어 우리들의 눈앞에 되살아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그들과 다시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를, 나는 꿈꾼다. 그 가당찮은 망상이, 혹은 끝내 버릴 수 없는 소망이 내게 소설을 쓰게 한다.”
(임철우,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2002.10.09, 『한국일보』 인터뷰 중에서)



5부작 『봄날』은 공간적으로는 광주, 시간적으로 5월 17일에서 27일 새벽, 그 열흘간에 집중한다. 극중 영남대 대학생인 명기의 30일자 에필로그는 다시금 시작해야 한다는 작가의 다짐이며 서울은 공수부대가 광주로 입성하기 직전 필연적으로 등장시키는 동국대가 전부다. 임철우는 그간 단편적으로, 은유적으로, 후일담 형식으로 파편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광주를 정면으로 돌파해내기 위해 10년을 쏟아 부었다. 귀신들의 원혼을 달래어 온 고통의 그 10년.

임철우는 소설적 리얼리티는 물론 총체성을 담보해내기 르포 형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드’ [24시]의 시간 단위는 아니더라도 마치 황석영의 항쟁 기록에 기초한 듯 날짜와 시간을 명기해 시시각각 급박하게 돌아갔던 당시 광주의 상황을 복원해낸다. 여기에 격렬한 시위의 복판이던 금남로와 도청을 중심으로 광주 시내 지도와 철저히 봉쇄된 언론을 대신했던 ‘투사회보’의 내용, 계엄군의 경고문, 그리고 사망자들의 실명과 정확한 일시, 사망 경위까지. 이 같은 실제 기록은 5권의 막바지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5.18’ 일지와 함께 픽션을 넘어 광주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특히 소설 속 생생하고 세세하게 재현된 참살의 현장을 목도한 뒤, 97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석방될 때까지의 일지를 읽고 있노라면 학살자에 대한 분노는 배가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은 6.25의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아버지 한원구의 세 아들, 무석, 명치, 명기다. 초반과 말미에 등장하는 한원구가 광주의 비극이 바로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맞닿아 있음을 명시하는 인물이라면 집을 나온 일용 노동자 무석, 강원도에서 근무하다 고향인 광주로 차출된 공수부대 하사 명치, 전남대 연극반 단원이자 투사회보 선전 작업에 뛰어드는 명기는 광주 항쟁을 구성하는 세 축을 대변한다. 여기에 계엄군의 비인간적인 폭력에 맞서 항쟁의 한 복판으로 뛰어드는 무석의 노동자 친구들, 실존인물인 윤상원에서 따온 민주재야 세력을 대표하는 들불야학의 윤상현, 무력했던 언론과 지식인을 대표하는 기자 김상식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또한 참혹하게 죽어갔던 사망자들의 다성적 목소리도 주변인물과 엮어내 소설적 구성에 무리 없이 담아내고 있다.

『봄날』이 담보해낸 총체성은 열흘간의 대하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다층적인 인물들과 생생한 재현이 전부는 아니다. 명치와 그 동료들의 갈등을 통해 신군부에 꼭두각시였던 계엄군 개인의 혼란은 물론 당시 무능했던 언론이나 민주 재야 세력의 현실을 직시함으로서 균형 잡힌 시선을 견지한다. 또 윤상현과 김상섭의 대화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민주 항쟁과 학살을 묵과한 미국의 자국 중심의 이기적 행태도 자연스레 고발된다. 이러한 현실 인식과 함께 ‘5.18’의 시작과 최후까지 저항했던 원동력이 풀뿌리 같은 생명력을 지니고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이었을 분명히 한다.

‘폭동이 아니야, 이 자식아. 이건 항쟁이야. 저 수많은 시민들은 지금 저마다 목숨을 내걸고 싸우고 있는 거야. 네 눈엔 저게 폭동으로 밖엔 보이지 않아? 폭동이라니,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폭동이라는 게냐’
(임철우, 『봄날 3』, 문학과 지성사, 221p.)

‘인간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니 군중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김상섭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임철우, 같은 책, 229p.)

하지만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봄날』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계엄군을 몰아낸 뒤 시민들이 맛 본 해방구의 짜릿함도, 아버지와의 화해의 순간도, 달콤하지만 짧게 끝나버린 첫사랑 때문만도 아니다. 학살의 끔찍한 현장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은 소설을 읽는 동안 어쩌면 찰라 일지 모른다. 임철우가 복원해 낸 10년간의 기억은 우리에게 심상한 정서와 뚜렷한 분노, 이 두 감정을 나란히 전달해 준다. 도청에서 사그라져든 목숨들, 그리고 숱한 부상자들. 왜 그들이 자국 군대에게 처참하게 학살당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물음이 결국은 우리 현대사에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분노와 더불어 또 다른 현실 인식을 체험하게 된다. 역사에 결코 단절이란 있을 수 없다는 진실을 믿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2007년의 블록버스터 영화 [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에서 김지훈 감독이 작가적 인장을 찍은 단 한 장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라스트 신애의 상상신이다. 죽은 자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고 홀로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살아남은 자 신애. 임을 위한 행진곡이 깔리는 이 라스트 신은 상업적인 엔딩에서 약간은 비껴나 있지만 광주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민주주의란 정의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신념대로 의롭게 앞서 간 이들과 반면 따르지 못하고 폭도로 내몰려야 했던 산자 신애. 하지만 그 간의 역사적 궤적을 놓고 봤을 때 그들이 하늘에서 웃고 있을까 하는 문제는 곰곰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27년이 지난 지금, ‘5.18’을 100억짜리로 재현된 상업영화 한 편으로 소비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 말이다. 어쩌면 망각하고 있었지 모를 우리들을 위한 면죄부의 증거로 이 블록버스터를 소환해 낸 것은 아닐까.

바꿔 말하면 너무 늦었거나 너무 타협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서울 그리고 지식인들인 어디에 있었느냐를 자기 성찰한 [꽃잎]이 나온 것이 1996년이다. 10년 전에도 발포 순간의 아픔은 소녀(이정현)가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지든 흑백 플래쉬 백으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민우(이준기)가 준우(김상경)의 품안에서 죽어가고, 나주댁(나문희)이 아들의 관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신애가 준우와 작별하던 그 눈물의 스펙터클을 위해 100억 들였다는 점에서 [화려한 휴가]는 너무 타협했다. 대중들의 감성에 맞게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유사한 구조로 만들었다지만 영화를 본 고등학생이 왜 사건의 인과관계 빠져있느냐는 불평이 나올 정도라면(김귀현, “10대들이 말하는 영화 <화려한 휴가>, 그리고 '전 장군'”, 『오마이뉴스』, 2007.08.12.) 이건 영화적인 타협이자 불성실한 계산으로 봐도 무방하다. 곱씹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의 정점에 광주가 그 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명시했던 [박하사탕]과 비교해도 너무 늦었다. 한 논객이 왜 하필 지금이냐며, 주인공들이 호남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며 대선용 영화라고 헛소리를 해대는 건 전적으로 감독과 제작진의 탓이다.

[봄날]로부터 10년 뒤, 80년 5월로부터 27년 만에 도착한 [화려한 휴가]는 절반의 공과는 가져갈 것이 분명하다. 2시간 동안의 감정의 소비를 통해 공적 기억의 자명종을 울리는 일.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신애의 절규는 아프게 다가온다. 망각은 과거 중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망각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망각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라는 야스퍼스의 전언이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 유의미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봄날]이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과 같은 필독서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것이 유감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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