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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의 복귀를 바라보며 든 단상

필진 칼럼 2008. 2. 5. 11:54 Posted by woodyh98
하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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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이 잠잠했던 건 농을 섞자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한미 FTA와 스크린쿼터 투쟁의 일선에 나선 그에게 대중은 냉혹했다. <올드보이>를 통해 국민 배우의 자리에 우뚝 올라섰던 시간은 부지불식간에 ‘어제의 영광’이 되어버렸다.
 

황정민은 ‘무릎팍도사’에 나와 말했다. “배우 나부랭이가 할 일이 뭐있겠냐. 진실한 연기를 하는 거 밖에.” 하지만 대중들에게 최민식은 배우가 지켜야할 선을 넘은 것으로 인식됐다. ‘쌀투쟁’ 집회에서 농민들에게 사죄의 절을 하고,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외치고, 각종 매체와 이론가로서 한미FTA와 스크린쿼터 철폐의 부당함을 역설한 것이 그의 ‘활동’ 이력 전부다. 그 결과는 캐스팅 1순위, 연기파의 대명사였던 배우에 대한 철저한 망각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참여정부는 수명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고, 스크린쿼터는 관객들의 머릿속에 배부른 영화인들이 못 만든 영화를 구제하기 위한 핑계거리로 전락했으며, 단 한 번의 광고 출연으로 ‘사채 광고를 찍은 국민배우’로 전락해 버렸다.
 

그런 최민식이 신작 소식을 타전했다. 지난해 <검은 땅의 소녀와>를 선보인 전수일 감독의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이 그 신작이란다. 내용인 즉, “공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한 네팔 노동자의 유골을 그의 가족에게 전해주고자 히말라야 고산마을을 찾아간 ‘최(최민식 분)’의 이야기”란다.

의미심장하다. 공장에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의 유골을 그의 가족에게 전해주고자 고향으로 찾아가는 또 다른 노동자. 이건 중국인 ‘파이란’의 유골을 들고 오열하던 강재와는 차원이 다르다. <검은 땅의 소녀와>에서 사북이후 잊어버렸던 탄광이란 공간을 동시대에 되살렸던 전수일 감독이 최민식을 선택한 이유가 단지 연기력과 유명세 때문일까. 그럴 수 있다. 예술영화가 숨을 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스타의 캐스팅이니까. <해안선>의 장동건을 떠올려 보라. <해변의 여인>의 고현정은.
 

하지만 이런 외적인 요인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한국 공장에서 사망한 네팔 노동자를 한국 사회와 한국 영화로 바꿔치기 해도 될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든다는 점이다. 그토록 경고했던  한미FTA와 스크린쿼터 폐지를 관망했던 ‘우리=가족’에게 유골을 전달해주는 최민식이라니. 과도한 망상인 것이 분명하지만 섬뜩하면서 아릿한 감정이 드는 것은 왜 인지.

과연 영화가 어떤 꼴로 완성될지 모른다. 전수일 감독의 동녘필름과 <올드보이> <식객>의 쇼이스트가 제작비 4억을 투자한다고 하고, 네팔에서 한 달 가량 촬영할 거란 얘기도 들려온다. 이러저러해도 좋은 작품이 완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화한 의식에 따라 실천에 나선 한 개인이 이렇게 몰락하는 건 옳지 않다. 여론이 악화되기 전에 찍은 광고로 몰염치한 연예인의 선봉에 오르는 것도 과도한 돌팔매다. 경제만 살려도 된다, 는 세상이지만 이건 한국과 한국영화계의 손실이다. 최민식이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스크린에 복귀하는 날, 제일 먼저 티켓을 끊고 발품을 들여 어느 극장에라도 향해야겠다. 최민식의 반가움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P.S 댓글을 보고 본문에서 빼 먹은 것 같아 덧붙인다. 최민식이 사채광고를 찍은 걸 고운 시선으로 보면서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가 거의 첫번째 타자였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정치적 활동을 한 인물이기에 더욱 타겟이 됐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건 형평성의 문제인 거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사채광고에서 얼굴을 빼지 못했지만 친근한 이미지로 무마했던 탁재훈, 사채광고에 학력위조까지 문제가 됐지만 '태조왕건'과 '대조영'의 최수종 등 사채 광고에서 활약한 배우들은 수 없이 많다. 정치적 견해를 밝혔다고 해서 그에게 더 짙은 혐의를 씌우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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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용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행일치가 안되는 배우, 진실한 연기가 되려나?

    2008.02.05 14:33




돌보지 않는 독립적인 삶, 전수일

여기 아무도 뒤돌아 보지 않는 땅, 아무도 돌보지 않는 소녀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보는 소수의 관객이 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건 때론 위태롭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검은 땅의 소녀와>는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수일은 로컬리티의 특징을 가지고 영화를 찍는 감독이다. 철저히 충무로를 벗어나 자신의 주활동 무대인 부산에서 '동녘필름'이란 제작사를 차리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단 한편도 흥행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없지만 아직도 그는 최소 2년에 한편씩은 신작을 내고 있다. 그의 영화 작업에 대한 열정은 지방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표본과도 같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가 사는 공간을 그리고 이야기하는데 더욱 친숙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변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의 영화에는 원작이 있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향(태백)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그의 전작을 보면 강원도 탄광촌을 찾아가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정처없이 유랑하는 그들은 배회하며 그곳에서 흔적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지나간 추억을 그리워할 뿐 다시 그곳을 이내 떠나고 만다. 그런데 <검은 땅의 소녀와>는 좀 다르다. 소녀와 아버지, 그리고 오빠는 이미 탄광촌에 산다. 그들은 예전부터 그곳에 계속해서 살아왔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전 영화들이 탄광촌의 희미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더 구체적으로 그곳의 광경을 묘사하고 사라져가는 것의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진폐증으로 직업을 잃고 보상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 해곤은 마치 곧 있으면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게 될 태백의 탄광촌과 같아 보인다.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았지만 남은 것은 마음의 상처와 육체의 아픔인 해곤과 일자리로 인해 사람들이 떠나고 폐허처럼 흉측한 몰골이 된 태백이 뭐가 다르겠는가?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아픔들을 전수일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변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으로 표현한다.

땅위의 천사 영림

그런 해곤에게 영림은 유일한 낙이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오빠 동구를 보살피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영림으로 인해 해곤은 꿋꿋히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가끔씩은 외면할 때도 있나보다. 새로운 장사를 시작한 해곤은 사기를 당하고 그 어떠한 해결방법도 구해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술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영림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가 바라는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 최후의 방법을 실행한다.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영림은 감독 전수일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예전 고향의 모습처럼 보인다. 9살 소녀로서는 견딜 수 없는 세계로 가득하지만 영림은 그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닭장속에는 암탉이 꼬꼬댁 꼬꼬댁~'하며 해곤과 차 속에서 부르는 모습은 그녀의 행위로 인해서 얼마나 주변 사람들이 위안을 받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래서 영림은 '천사'와도 같다. 천사는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하려 한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어 보이는 마지막 장면. 천사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오빠 동구는 장애시설로, 아버지 해곤에게는 라면에 쥐약을 섞어 먹게 한다. 그러면 세상에서 구원받을 줄만 알고.

검은 땅, 사북

검은 땅, 사북은 그런 곳이다. 진심으로 다가서려 해도 진심이 허용되지 않는 메마른 땅. 그곳에 남기 위해서는 먼지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곳. 그나마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질 땅 위에서 그리움으로 가득찬 가슴은 운다. 그곳을 멀리 떠나 '히말라야'로 간 전수일은 또 무엇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게 될까?

더불어 조영진

<밀양>에서 아이 유괴범으로 등장해 전도연의 가슴을 흔들고 간 조영진은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전도연의 아픔을 고스란히 끌어안는다. 더불어 <내 안에 부는 바람>의 '노인' 편에서 노숙자로 등장했던 그가 그의 주변을 함께 배회하던 지체 아이와 함께 10여년이 지나 아버지와 아들로 나온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그리고 그때의 노인은? 영림네 가족을 말없이 껴안는 동네 아저씨로. 이렇게 전수일의 작품은 전작과의 연결고리를 잘 살펴보면 더더욱 흥미로운 점이 생긴다. 아직 챙겨보지 못한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도 그래서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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