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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빛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은 어머니와 천재들이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페드로 알모도바르


“원우랑 같이 고민하고 같이 바다로 갔으면 좋겠다“



백건영 : 전주 국제 영화제 한국 장편 경쟁에서 상영이 됐었는데, 반응이 어땠나?

최지영 : 그때 나는 길이 막혀서 관객과의 대화에는 참석을 못했고 배우 네 명이 GV를 했다. 바로 직후에 그 영화를 보셨던 분들이 블로그에 배우들과 GV를 했던 것을 상세하게 올려놓으셨더라. 처음 공개되었기 때문에 편집이나 사운드에도 미흡한 점이 많았는데 좋게들 봐주셔서 고마웠다.

일반 시사도 있었다. 그때 반응은 어땠나?

그때도 자리에 참석을 못했다. 후반 작업 중이어서 시사회 보러 온 관객들이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다시 작업하러 갔었다. 일반 시사 반응도 좋았다고 들었다. 두 군데서 시사를 진행했는데 중앙시네마에서 했을 때는 스텝들이 많이 오셔서 좋은 말들 많이 해주셨다.

후반작업 얘기를 했는데, 어떤 점이 맘에 안 들어서 계속 수정 한 건가?

전주에서 틀었던 게 최종본이 아니었다. 편집이나 사운드는 하는 데까지 해서 가자라는 생각이었고, 전주 다녀와서 지금까지 계속 수정을 좀 했다. 사운드 같은 경우는 큰 공간에서 틀었을 때 디테일한 부분들에 문제가 있어서 다시 수정하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다.

개봉 후에 또 수정할 생각이 있는지?

DVD 나올 때 할 수도 있는데...(웃음)


장편 데뷔작이다. 첫 장편이라서 부담이나 남다른 각오가 있었을 것 같다. 단편과는 달리 박지영, 김영재 등 알려진 배우들과 작업을 했는데 장단점이 있었을 텐데.

단편과 장편작업의 가장 큰 차이는 학교에서 작업을 하고, 나와서 하고의 차이 같은데... 인디스토리의 곽용수 대표님에게 이 영화 작업의 제안을 받은 게 작년 8월 말이었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었는데, 조건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12월 안에 다 찍어야 하고, 모든 과정이 방송통신위원회 규정 같은 게 있어서 제작비가 2억 5천만 원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지나고 나서는 PD님이 어려운 상황인데 좀 겁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때 당시에는 영화 찍는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단편을 찍을 때는 나에게 영감이 떠오르는 것, 내가 쓰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었는데, 기면증에 걸린 아이의 성장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그렇게 주어진 이야기를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조건 안에서 얼마만큼 뽑아낼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그것에 몰입하고 진정성을 끌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앞으로 연출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했었다. 이 경험이 모험이 되고 만약 잘 안됐을 경우 앞으로 못 찍게 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잘해내면 스스로 많이 컸다, 라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영 선배님과 김영재 씨 같은 경우는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 특별히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쓰는 스타일이 아닌데 시나리오를 쓰고 모니터링을 할 때 주변 분들이 아, 연희는 박지영이야, 이런 식의 말들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캐스팅을 할 때도 박지영 선배님 말고는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베트남에 계신 분한테 이렇게 작은 영화를 부탁드리는 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라는 생각도 있었고, 박 선배님이 안하시면 다른 분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흔쾌히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저도 20년 베테랑이신 분과 처음 작업을 해보는 것이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기가 세 보이는 부분도 있고 내가 제대로 준비를 못하고 급하게 들어가는 부분도 있고 해서 현장에서 휘둘려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많이 했는데 박지영 선배님이 시나리오를 좋게 보셨다. 자신도 딸을 키우고 비슷한 연령이시니까.

처음 오셨을 때 저에게 “앞으로 이런 얘기는 더 이상 안 할 텐데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낀 부분인데 이런 부분은 이해가고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가. 40대 여자는 이렇지 않아. 제일 위험한 것은 모르는데 아는 척 하는 거야.” 그런 식의 말씀을 해주셨던 것도 많이 고마웠다. 처음에는 ‘이분이 나를 간보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좀 지나서는 ‘이 사람이 나에게 자신을 맡겼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좋았었다. 큰 어른에게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영재 씨 같은 경우는 <사랑니>에서의 이미지가 좋았다. 그런데 똑같이 하면 그분이나 저에게 좋을 게 없었다. 그래서 좀 다른 부분을 보기를 원했었다. 물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늘 그런 것, 저 사람이었어? 이런 느낌 좋았다. 사실 좀 힘든 캐릭터였다. 모든 캐릭터들은 저의 한부분이 투영되었는데 선재 캐릭터는 제가 제일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모녀의 다리 역할도 해주시면서 역할이 잘못하면 느끼할 수도 있고 그래서 노선을 타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었다.

혹시 박지영 씨 때문에 시나리오가 바뀐 부분이 있나?

큰 부분은 아닌데 디테일한 것 같은 경우, 예를 들면 놀이터 신에는 약간 계절감 같은 게 있어서 원우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감기가 아니라 넘어져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오는 게 맞지 않겠냐?”라고 하셨다. 그리고 와인 바에서 친구 정아를 만나서 얘기할 때도, “내 나이쯤 되면 친구만나는 게 진짜 베스트나 꼭 가야되는 모임 아니면 친구 만날 일이 없어.” 그러셨다. 대사 같은 경우는 “이게 어떤 뉘앙스야?” 이렇게 물어보시고. 그런 면에서 디테일한 부분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순간 순간 고마웠다. 내가 아직 경험이 없으니까.

주인공 원우 역의 김예리는 오디션을 본 걸로 아는데, <푸른 강은 흘러라>를 보면서 묘한 매력을 지닌 배우라고 생각을 했다. 원우 캐릭터에 맞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함축적으로 얘기한다면?

한마디로 깡이 좋다. 예리의 경우는 <기린과 아프리카>를 촬영할 때 내가 하루 도와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쟤 참 잘한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 준비하면서 배우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오디션을 보면서 예리가 참 많이 생각이 나더라. <푸른 강은 흘러라>도 봤고, 예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 크로스가 됐다. 예리도 우리한테 연락을 해왔고, 나도 PD님께 예리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그런 인연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사실 리딩하면서 배우들이 잘한다, 못 한다 잘 모른다.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라는 대사를 예리가 울면서 했을 때, 내 마음이 뭉클했다.

이제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최 감독 영화를 보면 단편에서부터 장편까지 감독의 실제 어머니가 계속 등장을 하는데, 그걸 보면서 나는 ‘최지영 감독이 자기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계속 영상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개인의 기록이자 추억이면서, 기억인 모든 것을 총괄하는 작업인데 <산책>과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바다 쪽으로, 한 뼘 더>까지 이것을 모녀 3부작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계속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좀 했었다. 감독의 생각을 듣고 싶다.

기록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비밀과 거짓말>은 모녀 얘기는 아니었으니까 삼부작까지는 아니고, 지금 사실 하나 더 모녀 얘기를 생각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훨씬 더 개인적인 것이고 어떻게 보면 더 비주류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게 정말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런 부분에서 고민되는 부분도 있다. 그 작품이 정말 만들어진다면 엄마와의 기억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제 개인적인 욕망일 수도 있다.

단편 <산책>에서는 어머니와 딸이 나오고, <비밀과 거짓말>은 모녀 얘기는 아니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데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에서는 삼대 모녀의 이야기로 확장 된다. 단편의 어머니들이 수동적이고 고전적인 스타일이었다면 장편에서는 그 자식들이 성장을 해서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나오고, 원래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던 방식에서 한 단계 진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리뷰 쓴 것들을 읽어봤더니 멜로드라마, 성장 드라마 등 여러 가지 정의를 하고 있는데, 나는 <바다 쪽으로 한 뼘 더>를 ‘엄마의 성장 드라마’로 봤다. 왜냐하면 감독의 어머니가 단편부터 계속 출연하고 있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 가장 대사가 많고 또 그 대사들이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성장 드라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의 어머니는 서여사로 지칭되는데 다른 단편에 비해 유독 대사분량을 늘린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번 영화에도 엄마가 나와야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연희 역할을 할 수는 없으니까... 할머니라도 나와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10대 딸과 엄마가 나오는 영화들, 그런 영화에서 보여 지는 엄마들의 성숙한 모습, 그러니까 너무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이 싫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고등학생 키우는 엄마들은 그렇지 않은데...그 사람들도 애 키우는 법을 배우면서 같이 자라고 있는 설정이 더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대체로 할머니라는 존재는 집안에 있는 듯 없는 듯 오래된 가구처럼 있으면서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에 따라 특정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 속 서 여사의 역할도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삶이란 것에 대한 깨달음과 통찰의 말들을 나의 엄마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산책>에서 좋았던 장면 중 하나가 엄마가 전화를 안 받자 집으로 가는 기찻길 건널목에 서있는 장면이다. 단편들을 보면 인물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들에 꽤 시간을 쓰고 있는데,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에서는 제목처럼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가는 것 때문인지 집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많다.

얘기를 들으니까 그런 것 같다.(웃음) <산책>같은 경우는 그런 이미지들이 많이 있었다. 이 아이가 집에 있을 때는 어떻고, 밖에 있을 때는 어떻고, 집에 오는 길에는 어떻다. 내 경우도 학교에서는 즐겁다가도 집에 오면서 점점 표정이 굳어지는 그런 경험이 있었다. 어떤 갑갑함 같은 것. 전체적으로 그런 길의 느낌들이 <산책>에 있다. 길이라는 게 끝도 없고 가는 게 정처도 없고 가다보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만나고 그런 게 사는 거 아니겠어? 그런 느낌들이 있었다.

지금 사는 곳이 혹시? 한옥인가.

남양주에 살고 있는데, 한옥은 아니다. 그냥 일반 주택이다.

영화에 나오는 그런 구조는 아니겠다. 영화에서 마당이 있는 집이 나오는데. 단편에서도 그렇고 집들이 다 현대식 구조가 아니다.

그건 나의 로망이다. 아파트를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지금도 늘 땅 사서 집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목을 배워서 10년에 걸쳐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데(웃음) 그냥 그런 집들이 좋다. 그 자체에 이야기가 있는 것 같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그런 얘기들이 좋다. 아파트 같은 경우는 잠깐 살아봤는데 너무 너무 싫었다. 대부분 사람들의 집이 점점 아파트가 되어 가는데 골목이란 단어도 없어질 것 같고, 마당이란 단어도 없어질 것 같다. 뜰이란 단어도 그렇고. 초등학생들이 이 단어를 알까? 그런 것들이 슬프다고 생각했었다. <비밀과 거짓말>과 <바다 쪽으로...>는 암사동에 있는 집인데, 그곳은 개발제한구역이어서 집들이 그냥 남아있는데, 나는 그 동네가 좋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지키고 싶은 공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카메라 테크닉의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예를 들면, 원우가 빌딩 옥상 모서리에 앉아있는, 위태로운 아이의 모습 같은 장면은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장면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라. 영상 테크닉을 애써서 피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콘티 짤 때는 이동하거나, 포커스는 어떻게 하거나 등등, 이런 거 생각하는데, 막상 현장 가서 찍을 때는 그런 것들이 너무 이상하다.

이상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내가 평소에는 화장을 안 하는데 진하게 화장을 한 듯한 그런 느낌이다. 나도 <매트릭스>같은 영화도 좋아하는데 보는 것으로써 좋아하는 것이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치 너무 예쁜 여배우를 볼 때는 예쁜 것만 보느라고 연기에 대해서는 생각이 안 든다는 그런 느낌 있잖나. 영화도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싶다. 장면이 너무 예쁘고 현란하다 보면 거기에 빠져들어서 인물한테 몰입이 안 되고 인물의 감정을 놓치는 게 아닌가. 나는 인물이 잘 보이는 그러니까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원우라는 아이, 연희라는 사람한테 몰입이 돼서 따라가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배제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미국(텍사스)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쪽에 연고가 있었나? 어떤 공부를 했나.

연고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연출 전공을 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영상원에서 공부를 마쳤더라. 미국과 한국의 영화교육, 어떤 차이점이 있나?

커리큘럼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 것 같다. 미국은 굉장히 몇 년을 계속 답습하는 것? 그래서 늘 이 과목은 이 과목에 대해서 첫째 줄, 둘째 줄, 셋째 줄은 계속 똑같은 레퍼런스와 그런 식의 과제물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는데, 영상원은 같은 영화 연출이라고 해도 어떤 강사, 어떤 감독님이 오시느냐에 따라서 차이들이 많이 난다.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미국 애들이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웃음) 처음에는 어떤 과든지 한국 아이들이 앞서 나간다. 게다가 똑똑하고 성실한데, 아마도 남의 나라 와서 잘해야 한다는 그런 것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이라도 실수 하는 걸 두려워한다. 반면 미국 아이들은 계속 뭔가를 저지른다. “쟤는 학부 때 뭐했기에 아직도 저러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것에서 뭔가를 깨달아서 다음 과정에서는 뭔가가 튀어나오는 걸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연출을 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나?

이것만 하고 있다.(웃음) 이제 또 새로운 시나리오를 쓸 거다.

영화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영화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당연하다는 것은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건가?

그런 것 보다는 어렸을 때 아버지랑 같이 영화를 많이 봤다. TV에서 하는 영화도 많이 보고, 영화 얘기 하는 거나 영화배우나 영화감독을 외우는 걸 되게 좋아했었고, 다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중학교를 가니까 좀 다른 거다. 그리고 결정적이라고 해야 되나? 중학교 1학년 때 <마지막 황제>를 단체 관람 했었는데, 성안에 갇혀 있는 부이가, 밖에서 사람들이 행진하는 소리 때문에 마당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귀에 진동을 통해 느끼는 장면이 있다. 이때 카메라가 담장을 넘어가면서 사람을 비추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쇼크를 받았다. 이때부터 영화에 대한 생각을 막연히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프란시스 코폴라의 <드라큘라>를 보면서,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소재, 같은 캐릭터인데 풀어내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자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에는 여러 가지 분야가 있는데 연출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전에는 그저 만드는 작업을 좋아했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좋아했는데, 그런 것보다 영화 만들기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이랑 공동 작업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보다 훨씬 힘들고 어렵더라. 처음 영화를 만든 게 99년 한겨례 문화센터 6개월 영화 연출 과정인데, 사람들과 같이 작업을 하는 게 마냥 재밌지는 않더라. 그 때 좀 고민이 됐다. ‘이렇게 사람들하고 계속 부딪혀야 하나.’ ‘사람들 생각이 이렇게 다 다른데 과연 재밌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영화를 찍는 일이라는 게 각 부서의 장들이 있고 그들과 얘기를 하는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힘들 일은 아니다. 또 내가 그걸 그렇게 싫어하거나 못하는 건 또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감독의 파워가 전지전능한 면이 있었던 반면 산업화 분업화되면서, 영화가 감독의 것이 아닌 제작자의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는데, 연출자 입장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불만도 있을 것 같다.

어떤 느낌이냐면 내가 마린보이가 된 느낌? 내가 저 바다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딱 오니까 채가는 느낌. 그런 게 있어서 다소 아쉽기도 하다.

올 해 <워낭소리>가 사상 초유의 히트를 했다. 독립 영화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굉장히 높아진 게 사실인데, <낮술> <똥파리> 같은 후속작의 성적도 나쁘지 않다. 이런 흐름에 최 감독의 영화가 뛰어 든 셈인데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솔직히 별로 없다. 내가 욕심 부려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안 달 복달해 봤자 바뀌는 게 아니면 그냥 진인사대천명 같은 느낌으로 기다리는 거다. 나는 목숨을 걸고 찍었다. 관객들이 많이 찾아와주시고 공감해주시고 칭찬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큰 데, 그 장을 내가 다 만들 수는 없잖나?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 놔도, 그게 좋은 진열장에 있고 큰 마트 안에 있지 않는 한, 사람들이 쉽게 선택을 할 수 없잖은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감수해야 되고, 한 편으로는 이게 연극이 아니니 DVD로도 나올 거고, 매체로 계속 남는 거면, 사람들이 몇 주 안에 못 보더라도 계속 어딘가에서 계속 나올 거라고 믿는다.




단편이나 장편을 살펴보면 ‘병’이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항상 스며들어 있다.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건 아닌가? 기면증도 일종의 짧은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나와 엄마와의 극적인 화해 지점이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을 때였다. 사람들은 모녀사이가 좋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내가 유학 갈 당시 엄마가 병원에서 입원해 혼수상태에 빠지셨는데, 그 때 왜 난 쉽게 되는 게 없을까. 왜 꼭 뭔가를 힘들게 선택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뭔가의 갑갑함 때문에 유학을 선택했었던 건데, 막상 가서 보니 엄마 걱정, 집 걱정이 들었던 거다. <산책>의 경우 미국에서 먼저 시나리오를 쓰고 여기 와서 많이 각색 했다. 죽음이라는 게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언젠가는 한 번은 꼭 오게 되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산책>을 보면 극적이지 않은 극적인 장면 즉 ‘엄마가 칼을 들고 잡상인을 내쫒는 장면’이 있다. 엄마가 가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인데 감독에게 엄마란 존재는 어떤 건가?

...........가디언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하건 남들이 뭐라고 해도 항상 내 편인 사람.

<바다 쪽으로 한 뼘 더>에서 보면 원우가 “비밀과 거짓말 중에서 뭐가 더 나쁜 거냐”고 묻는다. 뭐가 더 나쁘다고 생각하나?

(웃음) .......글쎄 옛날에는 거짓말이 더 나쁘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비밀과 거짓말> 찍을 때도 그랬고, 그 비밀과 그 거짓말에 진심이 있느냐 없느냐. 그러니까 무엇을 위한 거짓말과 비밀이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절대적으로 이게 더 낫다 라고는 못 할 것 같다.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에서 원우가 앓고 있는 기면증이란 병 자체가 영화 전체를 굉장히 로맨틱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원우가 기면증이 아닌 다른 병이었다면 굉장히 신파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기면증이 위험하긴 하지만 장면 장면을 굉장히 낭만적으로 만들어 낸다. 게다가 애초에 기면증이란 소재를 시나리오 쓸 때부터 생각한 게 아니라고 했는데, 기면증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나?

케이스 스터디를 하는 동안, 기면 센터 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기면증 관련 카페에 올라와 있는 사연을 보고 내가 마치 환자인 냥 정모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 만나면서 이런 병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조심스러워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고, 그래서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기면증을 앓고 계신 지금은 한 30대가 되신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도 이 병에 대하여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늘 게으르고 나태한 아이로 인식되고 체벌 받다가 그런 상태로 군대까지 다녀왔는데, 그게 알고 보니 병이라니까. 그 동안 자기가 너무 불쌍해지더란다. ‘난 못 난 애가 아니었는데, 단지 그냥 병이 있었을 뿐인데. 난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 자기 위로가 된다는 거다. 혹은 기면증을 앓고 있는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어떤 정도의 고통을 겪는지 몰라서 정모에 참석하고, 단 하루만이라도 내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엄마들을 보면서 연희의 마음이 저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기면증을 앓고 있는 당사자들은 심적 고통이 엄청나거든. 기면증 때문에 전날 최대한 잠을 많이 자둔다거나, 약도 중독성이 강해서 4알 이상 먹으면 위험한데, 그런 약을 4알 이상씩 먹어야 할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분은 운전을 하다가 깨어보니까 사람을 치고 30킬로를 달려갔는데, 도저히 기억이 안 나더란다. 그 때 그 분은 자신이 살인병기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감옥에도 다녀오고, 그나마 병 때문에 감형은 받았지만. 그런걸 보면 이게 낭만적일 수는 없는 거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내가 만드는 것이 다큐가 아닌 이상 그걸 일일이 다 보여 줄 수 없는 거고. 다만 자신들이 병을 받아들이는 그런 과정들이 영화 속 원우한테는 드라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대해 주변 지인들에게 ‘성장영화고 바다가고 끝나.’ 이렇게 말했더니, ‘뻔하구나~’ 하더라. 그런데, 그곳은 아무나 갈 수는 있지만 원우는 가기 힘든 곳인 거다.

우연치 않게 피디님이 공부 좀 하라며 주신 책이 있다. 함민복 작가님의 『눈물은 왜 짠가』라는 소설인데, 소제목에 딱 ‘바다 쪽으로 한 뼘 더’가 있더라. 그 때가 때마침 제목을 고민하던 때였고, 어떻게 성장 영화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또 마침 시나리오의 마지막을 “아이가 한 뼘 더 자라있다.” 라고 써놨거든. 왠지 ‘한 뼘 더’란 단어와 ‘바다’가 매치되면서 ‘이거 좋다!’ 라고 했다. 보통 한국 영화들이 다섯 글자 세 글자인데, 이건 귀에 쏙 안 들어오니까. 곽 대표님도 ‘바꿨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냥 <바다쪽으로 한 뼘 더>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게 됐는데, 지금은 오히려 제목 예쁘다고 많이 말씀해줘서 기분이 좋다.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다큐멘터리로 찍어도 충분할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다큐멘터리를 해보고 싶은 신 생각은 없나?

내게 영화는 그냥 내러티브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화를 보는데 다 가짜로 보이더라. 모조리 만들어진 상황, 꽉꽉 짜인 상황 이런 것들이 답답하더라. 그런데 또 다시 어느 순간 다큐조차도 감독의 의도에 의해서 편집되고, 그게 진짜 다큐인가 기록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더라. 그래서 이게 꼭 다 진짜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럴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들면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만들어진 얘기니까 진짜 같이 다가 올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고민 했다. 유학 가서 처음 한 수업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수업이었거든. 엄마가 계속 영화에 나오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미션을 주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다. 엄마는 맨 날 집에만 계시고 단조롭잖나. 특별한 외출을 하던 가, 딸을 위해 특별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그런 것들이 엄마에게 살면서 이런 것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산책>의 경우에도 그런 마음이었다. 엄마가 병원에 있었을 때, ‘내가 만약 의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고, 영화감독이라는 게 참 쓸데없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누군가를 살려 낼 수 도 없고, 변호사처럼 누구를 도와 줄 수 도 없고. 이제는 영화감독 딸이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를 가디언이라고 했는데, 그럼 감독에게 영화는 뭘까?

영화는 영화다.(웃음) 어떤 분이 그러더라. 너무 신기하다고, 어떻게 다른 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이 쭉 영화감독 할 생각 만 했는지. 그렇다고 빨리 시작한 것도 아니고. 정말 영화가 너무너무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내가 되어가는 과정?’ 그런 생각도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내가 무슨 애기를 하고 싶은지 그런 거에 대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그것을 위한 도구인 것도 같고. 하나하나 만들어질 때마다 좋더라.

영화감독으로서의 삶은 만족하나? 생활인으로서 말이다.

생활인의 입장으로는........음....... 이걸로는 생활이 안 된다.

나이가 삼십대 중반을 향하고 있다.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잡은 친구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고, 자기 회의도 빠질 수 있잖나. 뒤늦게 영화를 공부하고 싶고, 감독이 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말해 달라.

나는 편집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었다. 사실 드라마 한 편 편집 아르바이트 한 수입이, 영화연출 수입보다 더 많았다. 이것도 몇 번 하니까 내가 이걸 계속 할 건가. 이러다가 시나리오 쓸 시간도 없고 영화도 못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더라. 또 사람들이 그러더라. 감 떨어지기 전에 빨리해라. 요즘은 그래서 드라마는 이제 좀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쪽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으면 영화 쪽 사람들이 저를 안 찾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시더라. “영화감독은 경마장의 말처럼 딱 차단하고 앞만 봐야 돼. 그런 사람한테 연출을 믿고 맡길 수 있지. 쟤는 연출 안 해도 이거 저거해서 잘 먹고 살 수 있으면 목숨 걸고 안 찍기 때문에 그런 얘한테는 맡기지 않는다.”고. 이제는 드라마 편집은 이제 그만하고, 최소한의 비용은 (저축 같은 건 차치하고) 영어 가르치는 걸로 충당하려고 한다. 편집 자체는 재미있는데, 못 찍은 영상이나 못 쓴 대본을 보면 내가 우울해지니까. ‘내가 찍어도 내가 써도 이것보다 더 잘하는데........’

몇 일전에 학보사 기자랑 인터뷰가 있었다. 끝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래서, “빨리 그만두라고” (일동 웃음) 그랬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러시면 어떻게 해요.” 근데 그게 쉽지가 않고. 그게 너무 늦은 나이에 돌아서기에는 온 길도 아깝고 가야할 길도 너무 멀고, 특히 우리나라는 나이에 대한 커트라인이 너무 많으니까. 한편으로는 사람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나의 20대가 정말 찬란했나 싶더라. 내가 만든 영화가 깊이가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데, 리뷰 보면 사람들이 너무 쉽게 얘기하니까. 나는 부드럽게 끌고 갈려고 말을 깎고 또 깎고 깎아서 겨우 바다로 데리고 왔는데, 한편으로는 어쩌면 영화는 내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연출자는 그런 과정을 모두 다 합쳐서 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이 모든 게 연출자가 감수해야 하지만, 한 가지 바램이라면, 단편 영화 제목처럼, 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이 만든 영화에 관한 리뷰는 다 읽어보나?


사실 요즘 기자들이 쓴 리뷰는 별로 안 궁금하다. 몇 개 읽어보니까 보도자료 그런 것 썼더라. 이게 도대체 본 거야 만 거야 그런 것도 있고 (웃음) 근대 요즘 전주 다녀오고 일반 시사회를 하니까. 블로그 같은 곳을 보면 영화 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봤는지 되게 궁금하더라. 내가 특별하고 대단한 얘기를 한 건 아니니까.


당신이 좋아하는 감독이 있다면?

클린틴 이스트우드를 너무 좋아한다. 어쩜 그렇게 뭐 하나 못 만드는 부분이 없는지 놀랍다. 영화감독이라는 게 이런 저런 경험하면서 인생 경험이 있어야지 풍부하게 얘기를 할 수 있잖나. 그리고 또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한다. <산책>에서 엄마가 칼 질 하는 거는 <오하이오>에 나왔던 장면이거든. 그 장면 너무 좋았고, <산책> 찍을 때, 멀쩡한 딸은 못하는데 좀 모자란 엄마는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까. ‘아! 그 장면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니까 잘 맞더라. 사람 사는 얘기에 대하여 지루하지 않게 사람들에 대하여 꾸준하게 어떤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또, 영화가 끝났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이 아니고, 열린 부분도 있고. 그런 부분을 보면서 나도 저런 대가가 되고 싶다.

닮고 싶은 한국 감독은 없나?

옛날엔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동경심이 없다고 할까. 옛날에 영화를 하기 전에는 감독들이 전부 마스터로 보였는데, 막상 학교 들어가서 그랬던 분들에게 배우니까 이제는 감독이라는 부분보다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이제 그래서 인간적인 부분이 먼저 보이더라. 그리고 영화라는 작업 자체가 감독이 혼자 잘났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은 담고 싶은 감독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면서 현장을 잘 이끌어나가는 감독님을 보면, 저런 걸 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감독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솔직히 어떤 느낌이 드나?

솔직히 어색하다.


어색하다는 건 자격의 문제인가.


“입봉하니까 기분이 어때? 장편 만드니까 기분이 어때?”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난 그냥 예전처럼 작업을 하는 것이고, 다만 작업이 좀 길어지고 얘기가 좀 길어졌을 뿐이다. 그런 느낌일 뿐. ‘감독이야!’ 그런 자부심은 별로 없다. 극장에서 개봉하고 TV에서 예고편도 하니까 이제 좀 그런 느낌이 들 긴 한다. 사실 단편 만든 때는 좀 불편했다. 그 때는 아직 학생이고, 그게 직업에 대한 호칭이니까 조금 불편하더라. 그리고 현장에서는 그냥 포지션의 느낌이다. 지금은 약간 아직 내가 직업란에 ‘감독’이라는 걸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일 할 땐 그렇게 쓸 수 있겠는데, 감독이란 직업이 연속적인 일이 아니니까. 쉬는 기간에는 ‘내가 아직도 감독인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그런 것에 대한 어색한 부분이 있어서, 한 세편은 해야지 감독이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 작품에 대한 힌트 좀 주실 수 있으신가?

다음번은 아들과 아버지........ (웃음) 글 쓰는 사람이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뭔가에 한 번 꽂힐 때가 있잖나. 두 가지를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는데, 둘 다 실제 있었던 얘기고, 둘 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끝으로 관객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예 노골적으로 관객들에게 제 영화를 이렇게 봐주세요. 그렇게 말해주면 더 좋겠다.


원우라는 아이가 연희라는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도 성장을 하고, 자신이 가진 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이랑 잘 지내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 그 과정에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전사를 알면 알수록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인물들이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묘사하고 인물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하여 관객들이 더 인물에 더 몰입을 하고, 그것을 통해 ‘저 여자 배우가 기면증을 연기하고 있구나.’ 그런 것이 아니라. ‘쟤 어떡하면 좋아’ 그렇게 하면서 원우랑 같이 고민하고 같이 바다로 갔으면 좋겠다.






일시: 2009년 5월 21일 오후 5시
장소: 인디스토리 사무실
진행: 백건영 편집장
사진, 녹취 정리: 이영 선임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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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6박 7일의 피곤한 첫 프레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영화제 마감 보고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첫 단어를 쓰기까지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렀고, 욕심만 앞 선 까닭에 썼다 지우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글은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의미 없는 수사로만 가득 차버리기 일쑤였고, 그 와중에 편집장님의 마감 시한 선고까지 더해지면서 매우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중단하고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고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첫 프레스 일정을 근사한 언어로 정리하고 싶은 초짜의 욕심이 4일이란 시간을 허망하게 허비해 버린 것이었다. 본디 못난 글 솜씨를 지니고 있으면서, 하루아침에 명문을 써지기를 기대한 나의 어리석은 행동이 자초한 자충수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남루한 문장력을 지니고 있지만 솔직담백한 글로나마 보는 이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내가 이 글을 쓰려 했던 본래의 목적을 상기해 보니, 일은 아주 수월해졌다. 나는 관객으로서 그리고 프레스 입장으로서 영화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하여 사적인 고백을 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영화제는 어떤 의미이며, 당신들에게 영화제가 어떤 의미인지를 되묻고, 이 화두를 통하여 일종의 선문답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그럼 먼저 고백하겠다. 나에게 영화제란 무엇인가?


영화제는 영화를 보는 곳인가? 영화에 관련된 사람을 만나는 곳인가?

영화제를 찾아다닌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4~5년 전부터 꾸준히 영화제를 돌아다니는 관객의 일원으로서 원래 나에게 영화제란, 다양한 영화를 선택해 만나 볼 수 있는 일종의 접견 장소였다. 그러니까 영화와 관련된 게스트들을 만나는 일은 부차적 차원의 일이었을 뿐, 본래의 목적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간의 기간 동안 내게 영화제는 푸짐한 만찬의 다양한 메뉴를 전시한 뷔페와 같은 곳이었다. 평소 볼 수 없는 다양한 영화들과 아직 아무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작품을 가장 먼저 본다는 그 짜릿함이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때문인지 그 때는 하루에 3~5편씩을 닥치는 대로 해치웠다. 밥보다 영화를 보는 편이 좋았으니까, 영화가 뭔지도 모르고 좋았던 시절이니까.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그저 새로운 장면과 새로운 형식이 나오면 두 눈이 휘둥그레져 새로운 경험에 짜릿한 오르가즘을 느끼곤 하였다. 이해보다는 감상이 내 중추신경계를 장악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누군가를 만날 시간도 좀처럼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기보다는 빨리 저 어두운 세계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기대했기 때문에.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영화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문법이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영화제에서 영화에 중독된 채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도 좁지만 인맥이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차 영화제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저명한 평론가 혹은 유명 감독처럼 매일 미팅 스케줄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영화제 기간 중에서 하루 정도는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영화제와 그간의 세상사는 이야기에 대하여 담소를 나누는 그런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프레스로 영화제를 경험하였다. 새로운 경험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영화제에서 부딪히는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만큼 영화를 보는 시간은 당연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생겼다. 영화제는 과연 영화를 보기 위한 곳인가. 아니면, 영화를 통해 영화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곳인가.

사진출처: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과연 영화제는 영화를 보기에 적당한 장소인가?


하루에 세 네 편의 영화를 보는 일이 과연 영화를 진짜 사랑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문제였다. 영화를 진짜로 좋아한다면, 오히려 하루에 세 네 편의 영화를 보는 일은 각기 영화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들이 그렇게 간단하게 잊혀질 평작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단 세계 3대 영화제(칸느-베를린-베니스)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로부터 초청되는 국내 영화들을 한 번 살펴보라. 이미 국내에서 한 차례 검증 받은 탄탄한 작품들이거나, 혹은 프로그래머의 고심 끝에 고른 역작일 것이다. 국내 영화제라고 그 고민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일단 영화제에 초청되어진 영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퀄리티를 믿고 따른다. 따라서 그 영화들이 앞서 얘기했다시피 그렇게 간단하게 기억에서 잊힐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제에서 연속으로 세 편 이상의 영화를 볼 때, 그 영화들이 가져다 준 그 강렬한 감정들은 분명 다음 영화의 기억 속 뒤안길로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영화를 온전히 감상하기에는 분명 하루는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감상이라 함은 영화를 눈으로 보는 시간뿐만 아니라, 자신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을 완벽에 이르기까지 정리하는 내면화의 시간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때론 그냥 정말 단순한 관람으로만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그렇다고 영화제까지 와서 하루에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한다는 것은 또 너무 아쉬운 일이다. 영화를 보는 행위에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곳이 또한 영화제이다.


그렇다면,
영화제는 영화를 통해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곳인가?


어쨌든 영화제는 영화에 관계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영화 하나로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든 것은 이번 취재 활동 덕분이다. 첫 프레스 활동에 욕심만 앞서 각기 다양한 측면에서 영화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 적이 있었다. 비록 그 결과는 수월하게 이루지 못하였지만, 내가 이 취재를 통하여 알게 된 사실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전주국제영화제라는 이름 안에 하나로 모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영화를 만들고 이를 영화제 측에 출품한 감독 및 출연진들과 프로그래머의 선정에 따라 초빙된 영화와 관련된 게스트들이 이 축제를 더욱 화려하게 밝혀주면, 이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환호해주며 열광하는 열정적인 관객들이 있다. 또한 이 둘 사이의 만남을 뒤에서 도와 줄 봉사자들과 영화제 스태프들의 노고가 곳곳에서 서려있으며, 이러한 뜨거운 만남을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홍보할 사명을 지닌 언론도 존재한다. 대체로 영화제를 움직이는 주체는 이러한 4개 집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제 프레스 카드를 부여받고, 또 ‘네오이마주 스태프’라는 직함을 부여받고 처음 참여하게 된 영화제에서 무엇보다도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진 경험은 기존의 영화제 측에서 부여한 만남의 기회를 뛰어넘어 자발적으로 각기의 주체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에 내가 관객의 입장으로 영화제를 참가했을 때는 영화제 측이 준비한 행사를 통해서만 게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상대자라고 해봐야 그 좁디좁은 인간관계 안에서 뿐이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일정은 사뭇 흥미로웠다. 영화제 첫 날부터, 나는 이번 영화제 두 개 부문의 수상에 빛나는 <반두비>의 신동일 감독과 기타 스태프 분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 호기 어린 목소리의 현장 스태프들이 보여준 이번 영화에 대한 자신감은 두 개 부문의 수상을 능히 짐작하고 남을 정도로 당당했다. 내가 이 긴 글을 쓰면서 고작 영화제에서 현장 스태프 분들과 술을 먹은 자랑을 하려는 의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영화 저널과 현장이 제대로 소통할 기회가 대체로 이런 곳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사오오 취기를 달래러 자리를 파하고 떠나는 분위기 속에서 현장 스태프들과 기자들 간의 이야기는 깊어져 갔다. 여기서 그것을 모두 밝힐 수 없지만, 초짜인 나에게는 정말 뼈와 살이 되는 중요한 얘기도 상당수 오고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영화 산업의 종사자 사이의 간극을 밀착시켜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영화제이다. 저널과 저널 사이의 유대도 보통과 다르게 영화제에서는 더욱 강해진다. 또한 관객과 저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밀착되어 같은 극장에서 동시에 숨 쉬어 그 온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비단 이것은 저널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감독과 관객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고, 영화제 스태프들은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같은 산업에 연을 맺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접점을 가지기 힘든 집단들이다. 따지고 보면, 현장과 비평 간의 괴리는 상당히 멀고도 멀다. 하지만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이들이 하나로 묶이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꽤나 의미 있는 일이다. 비평과 현장이 완전한 이해를 전제로 함께 일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런 자리를 통하여 서로를 알아보려는 노력은 필요할 것이다.



영화제를 즐기는 방법

이것이 단지 프레스 카드의 권능은 아니다. 영화제를 찾는 누구나가 이룰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방법을 이제야 터득했을 뿐이다.

먼저, 영화제에 와서 너무 많은 영화를 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는 하루에 한 두 편이면 충분하다. 그것을 가슴에 새기기에도 벅차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기를 추천한다. 그 사람이 일면식 없는 낮선 관객이더라도 상관없다. 그 역시도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설령 그들이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라도 영화제가 그대들을 하나로 묶어 줄 것이다.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그것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영화제에서 감독을 만날 기회는 의외로 많다. 영화제를 직접 찾을 정도의 열정이라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걸어올 낮선 이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 영화제는 영화를 전시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즐기는 축제의 역할도 가지고 있다. 즐기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과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함께 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화는 숙제가 아니다. 많이 본다고 누군가가 당신을 칭찬해주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본 또 다른 누군가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제를 즐기는 진짜 방법이 될 것이다.

끝으로 딱 한 가지만을 더 전하자면, 이 모든 경험을 글로서 정리하자. 표현되지 않는 즐거움은 즐거움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이를 언어로 내뱉으면 당시에 이 즐거움을 향유하게 되지만, 글로서 남기면 이 즐거움은 향기로 흡착되어 오래도록 남게 된다. 이상하게도 어렵게 시작된 글이었지만, 그 끝은 상당히 홀가분하다. 이것으로써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초짜 영화애호가의 어떤 단상을 마친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 차례이다. 당신에게 영화제는 어떤 의미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 조만간 새로운 영화제가 다가오기 전에 꼭 답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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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


영화를 영화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쇼트(shot)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카메라로 찍은 한 장면이 편집 과정에서 길이와 다른 여러 가지들이 조정된 후 최종적으로 완성된 영화의 한 쇼트가 될 때, 여기에는 감독의 결단이 들어간다. 나는 이 결단의 흔적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영화들이 진정 영화다운 영화라 생각한다. 전주에서 본 라브 디아즈의 <멜랑콜리아>는 매 쇼트마다 감독이 내렸을 결단들이 전해져 온다. 결단들은 비장하며, 비장함은 쌓여 슬픔을 낳는다. <멜랑콜리아>는 결코 글로 정리하여 이해할 수 없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역시 몇몇 쇼트들이 내포하는 결단에 대해 말해야 한다.

여덟 시간 동안 영화 속 90퍼센트 이상의 쇼트들은 인물에게서 멀리 떨어져 관찰자의 시선을 가진다. 사실 롱 테이크와 롱 쇼트의 연속들을 한 시간 넘게 보다 보면, 어느새 그에 익숙해진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와중에도 라브 디아즈의 롱테이크는 가히 엄청나서, 서너 시간이 지나도 적응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감독의 결단이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인물과 세계를 관찰하던 카메라가 '관찰하지 않을 때'이다. 황폐한 인물과 더 황폐한 공간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카메라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인물의 뒤를 따를 때, 나아가 인물의 눈이 되어 직접 공간을 볼 때.


영화의 첫 쇼트는 한 여관방에서 힘없이 짐을 푸는 알베르따의 모습이다. 이후 몇 개의 길고 긴 고정 쇼트들이 이어지다가, 매춘부의 옷차림으로 밖을 나선 알베르따의 뒤를 카메라가 걸으며 따르기 시작한다. 다음 쇼트는 모금 바구니를 든 수녀 리나의 얼굴로 넘어간다. 리나는 알베르따처럼 천천히 걷고, 카메라는 리나의 앞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며 뒤로 움직인다. 마치 알베르따의 얼굴이 리나의 얼굴 같고, 둘은 한 사람처럼 보인다. 내 기억으로 이렇게 핸드헬드로 인물을 따르는 쇼트는 이후 두어 시간동안 등장하지 않는다. '창녀와 성녀' 모티브를 눈치 챈다면 불쾌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지만 이 영화에는 잠시 후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며, 몇 시간 뒤 밝혀지는 그들의 상처와 반성으로 인해 저 두 쇼트는 특별함을 가진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슴 한구석에 묻어 둔 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극복하려 거리로 나선다. 혁명을 꿈꾸고 실천하던 소중한 이들은 죽음을 맞았고,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은 사라져 버렸다.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을, 카메라는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기는 힘들다는 듯 따라간다. 동행의 결단. 여덟 시간동안 카메라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영화에서, 시작 후 삼십분도 되기 전에 인물을 따라 걷는 쇼트가 쌍을 이루어 나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감독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함께 옆에서 혹은 뒤에서 그들과 걷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거대한 깊은 우울(melancholia)이 감독과 카메라를 멀리에 붙잡아 두는 것일까.

롱 쇼트의 다섯 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면 다시 한 번 쌍을 이루는 특별한 쇼트들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쇼트 중 가장 주관적이라 말할 수 있는 시점 쇼트다. 리나를 죽게 한 자신의 실험이 틀렸다는 것을 안 줄리앙이 보는 흘러가는 강물, 또 다시 사라진 양딸을 찾으며 문득 멈춰선 알베르따가 보는 흘러가는 강물. 그들은 강물 앞에서 무기력하다. 소중한 이의 죽음을 극복하려 발버둥 쳤고 시대와 싸웠던 시간을 긍정하려 노력했지만, 지금 이 순간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흔들리는 시선 속 어둠과 강물에서 나는 그들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좌절을 본다. 난데없는 시점 쇼트의 등장은 우리에게 그들이 보는 것을 함께 보며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함께 느껴보자고 제안한다. 이 또한 동행과 동조의 결단이다. 힘겹게 멀리서 지켜보는 카메라는 영화의 초반에 잠시 인물을 따르고 후반에 잠시 그들의 눈이 된다. 여덟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도 감독과 함께 아주 천천히 영화의 인물과 세계에 동화되어 간다.

언급한 주관적인 쇼트들보다 더 결단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두 시간, 3부에 나온다. 라브 디아즈는 여기서 카메라를 아예 놓아 버린 듯이 찍었다. 혁명에 실패한 세 남자가 울창한 정글 속에서 쫓기며 은신하는 장면. 화면은 온통 새카맣고 군데군데 하얀 점들만이 보인다. 그들이 잠깐 몸을 움직일 때 하얀 점이 움직인다. 수 분간 이런 장면이 지속된다. 도망자의 숨막힘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함이 프레임을 넘어서서 나에게 덮쳐 온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쇼트는 그들이 보는 한밤중 숲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감독은 우리에게 그들이 보는 암흑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결단 내린다. 동시에 그들이 견디는 시간을 우리가 함께 견뎌 내도록 결단 내린다. 이 결단은 세 남자 중 한 명이 연인 알베르따에게 쓰는 편지 중 한 마디, '이 전쟁에서 존재하는 모든 광기는 결국 슬픔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어.' 만큼이나 힘겹고, 슬프다.


영화를 본지 5일이 지나가는 지금에도 영화의 비장한 슬픔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감독으로 하여금 이 정도의 결단을 내려가며 영화를 찍게 만들었을까. 작고 나약한 나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어떤 기운이 여덟 시간 동안 스크린에 서려 있었다. <멜랑콜리아>는 이 기운을 영화가 자신의 생명을 얻는 '쇼트' 라는 것으로 구체화하여 표현해 낸다. 라브 디아즈는 가장 영화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한동안 이 영화를 내게서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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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음악 다큐멘터리는 마틴 스콜세지의 <샤인 어 라이트>같이 간명하게 음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있는 반면에, 김태용 감독의 <온 더 로드 투>와 같이 음악인의 행보에 그 초점을 맞춘 영화도 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의 경우, 어느 한 쪽에 치우치기 보다는 양쪽에 모두에 각기 한발씩을 걸쳐 놓은 그런 음악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다. 홍대를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민홍’과 ‘은지’로 구성된 혼성 2인조 밴드이다. 다양한 음악 활동을 위하여 객원 멤버들을 충원하고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기에 이르며, 객원 멤버 중에서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통해 데뷔해 큰 인기를 얻은 여성 보컬 ‘요조’도 포함되어 있다. 장장 1년 6개월이란 시간동안 동거 동락하면서 정성스럽게 기록된 이 영상은 다큐멘터리의 기록성이란 측면에 일단 충실하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 좀 이상하다. 다큐멘터리치고는 드라마가 굉장히 세다. 물론 이를 통하여 극적인 재미가 상당히 쏠쏠하지만, 이것이 원래의 자연스러운 진행인지, 아니면 연출에 의한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워낙에 구구절절한 사연을 지니고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없는 진한 드라마가 풍겨 나온다는 것이 무언가 미심쩍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인간극장 유의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경우 내레이션이 첨가되면서 극에 깊숙이 개입하고 이를 통해 드라마를 파생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조차도 불가능하다.)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해보자면, 일전에 <워낭소리>가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에 대하여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온 적이 있었다. 물론 <워낭소리>가 290만 대단위 관중 동원의 대박을 터트리지 않았다면, 이런 논란도 크게 부각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이 단순한 일회적 이슈거리 차원에서 제기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것은 관객과 영화 매체간의 일종의 장르적인 약속을 주지시키기 위한 경고인 셈이었다. 그러니까, 다큐멘터리라 명명해 놓고, 극영화를 보여주면서 이를 다큐멘터리로 인지하라고 강요한 연출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구두 경고인 셈이다. (김충렬 감독은 따라서 정한석 기자가 지적했다시피 <워낭소리>를 차라리 다큐드라마로 표방하던지, 그렇지 않다면 다큐멘터리에 맞게끔 편집해야 했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에서 극적인 전개를 이끌어 내기 위해 사용된 장치를 살펴보는 일 또한, 이를 통하여 볼 때 한 번쯤은 고려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이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를 이에 이입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보도록 하겠다. 그러니까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가 과연 극적인 효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조작 -그것이 카메라에 의한 조작이든, 편집에 의한 조작이든, 어떤 식의 이야기 조작이던 간에- 이 있는가를 따지는 것은 지금 우리가 다큐멘터리의 장르성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영화는 앞서 얘기했다시피 드라마가 강하다.

 


이야기는 이렇다. 소규모아카시아 밴드가 음악적인 다양한 시도를 하기위하여 객원 멤버를 모집하고, 객원 보컬인 ‘요조’도 영입되면서 원래 팀 보컬이었던 ‘은지’의 입지는 계속 축소되어 간다. 결국 공연에서 객원보컬인 ‘요조’의 백킹(일종의 메인 보컬 보조)만 맡은 ‘은지’는 이를 참지 못하고, 팀의 리더인 ‘민홍’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민홍’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때마침 팀 내 파트별 음악적 방향에도 트러블이 생기며, 상황은 악화 일로로 치닫게 된다. ‘민홍’은 팀의 객원 드러머와 베이시스트에게 잠시 휴식기를 권유하고, 팀의 보컬인 ‘은지’와 진솔한 이야기를 통하여 이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결국 ‘은지’와 솔로로 데뷔한 ‘요조’는 한 번의 파열음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록 공연장이라고 불리는 펜타포트의 무대 위에서 같이 노래를 부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스토리 자체는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문제는 이 방식이 너무 드라마 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드라마적인 구성이 다큐에 차용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한 번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워낭소리>의 편집 조작이 다큐멘터리가 가지지 못하는 극적인 효과 욕심 때문에 파생되었던 것처럼,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 또한 이런 인물간의 대립을 드라마적인 장치로 치환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노리지 않았는가에 대해서 확인 점검을 하는 일은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이 영화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하는 첫 번째 부분은 영화의 초반부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중심을 이끌어나가는 플롯은 뭐니 뭐니 해도 ‘은지’와 ‘요조’ 두 보컬간의 미묘한 대립과 갈등이며, 그것을 팀의 리더인 ‘민홍’이 조절해 나가는 것인데, 영화의 초반부에서 벌써부터 카메라는 ‘은지’와 ‘요조’사이의 불안한 공기를 포착한다. ‘은지’의 불만이 담긴 시선과 ‘요조’의 불안한 시선이 이어 붙는데, 여기서는 편집 조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선의 일치를 살펴볼 필요 없이 한 테이크로 간 화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은지의 시선이 요조 때문에 불만인 것인지. 요조의 시선이 은지 때문에 불안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드라마적인 작법에 해당하는 암시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차적인 의문점이 발생한다. 이 질문에 대한 자문자답을 해보자면, 이 다큐의 충실한 기록성이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 많은 기록들 가운데, ‘은지’와 ‘요조’ 사이가 나빠 보이는 장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물론 두 멤버간의 와해를 부추기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될 순 없지만, 일단 어떤 전조를 읽히도록 배치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편집에 의한 조작이 아니라 관객의 선택권의 문제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배치한 것에 분명 감독의 의도가 명확하지만, 그 의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다. 여기는 그래서 연출자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고 관객의 선택적인 문제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의문은 조금 다르다.


영화는 초반부의 이런 암시효과 이후에 ‘은지’와 ‘요조’ 사이의 불안한 관계를 점진적으로 밝히며, 종국에 가서는 둘 사이의 강렬한 파열음을 일으키며 발생하는 와해를 그대로 담는다. -‘요조’에 대하여 조금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알겠지만 이 장면이 바로 ‘요조’가 대중들에게 성공적으로 어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EBS SPACE 공감’ 단독 무대였다. 여기서 논외적인 부분이지만, 이 장면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특성인 숨겨진 뒷이야기에 대한 흥미로운 지점을 제공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두 번째 의문은 영화가 이런 작법을 시도하면서 ‘요조’라는 실제 인물에게 주인공과 대립되는 드라마적인 캐릭터를 입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는 시네마베리테의 형식에 가깝다. 간간히 화면 속으로 연출자가 개입을 시도한다. 직접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인터뷰를 다큐멘터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편집을 통하여 연출자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연출자의 의지란 무엇인가? 음악에 대한 열정이란 콘텍스트 적인 면모도 있지만, 방식 적으로 봤을 때, 이 다큐멘터리에서 연출자가 추구한 것은 드라마적인 구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아까 말 한 멤버들 간 의 불화가 최고조로 치달았을 때, 바로 인터뷰가 치고 들어오는데 이 인터뷰의 의도가 사뭇 의미심장하다. 팀 보컬인 ‘은지’의 인터뷰에 비중을 두고 기술하면서, 그 중간에 ‘요조’의 인터뷰가 인서트 된다. 이 인터뷰의 내용을 들어보면 불필요하게 ‘은지’의 편에 서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니까 ‘요조’가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배반하고 자신은 성공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만을 인서트 시킴으로서 완벽하게 ‘은지’라는 인물에 영화가 기운다. 그럼으로써 이 영상의 조합이 ‘은지’라는 인물에게 ‘요조’가 상당히 부당한 일을 저질렀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 부당함을 해소시키는 일은 ‘은지’와 ‘요조’ 간 의 직접적인 대화가 생략된 채 팀 리더 ‘민홍’에 의해서 ‘은지’가 위로를 얻어냄으로서 해소된다. 그러니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연출자가 장면을 선택적으로 취하여 인물간의 대립 구도를 구체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도 사실 이와 마찬가지 방식이 쓰인다. 그 역시 선택적인 장면을 취하여 프로파간다에 비견되는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 직접적으로 대립 아니 그 이상의 대항적 대상을 직접 명시함으로서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는 마이클 무어의 지목한 대상이 명시적인 캐릭터가 아닌 주체가 불분명한 거대한 집단 혹은 현상이란 점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현실과 연결 고리를 갖는 것은 어떤 대상의 피상적인 비난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의지 발아(대표적인 것으로 투표)였던 것에 비해, <소규모아카시아 밴드>에서는 대립적 캐릭터로 다루어야 했던 대상이 실제 단일 인물로서 다루어진다는 것은 아예 얘기 자체가 틀려진다. 그것은 명백히 관객이 이 드라마를 즐기기 위해서 그 인물에 관해여 공격적인 행세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어쨌거나 현실과의 접점을 가지는 장르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자신이 다루는 인물에 대한 책임 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극영화는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인물에 책임을 지 닐 필요는 없다. 영화에 아무리 흉악범이 나온 들 그것을 사회 문제로 치환하지 않듯이, 극영화 즉 만들어진 이야기 구조 안에서는 캐릭터의 성질에 대한 책임 의식 부재를 탓 할 필요는 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같은 영화의 악인 캐릭터에서 풍겨져 나오는 이런 비인륜적 태도는 영화적 매력으로까지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가 다뤄야 할 인물은 다르다. 특히 그것이 생존 인물일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다. 다큐멘터리가 가진 일종의 약속. 그러니까 진실성에 기인하다 보면, 결국 다큐멘터리의 인물은 다큐멘터리 안의 인물의 표상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드라마를 위한 극적인 장치로 대립적인 캐릭터를 설정한다.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 멤버들 간의 이해관계가 형성된 것과는 별개로 적대적인 캐릭터로 묘사된 이미지를 요조라는 실제 인물이 그대로 현실에서도 떠 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지는 진정한 문제는 이것이 실질적인 내용상의 문제 말고도 드라마적인 구성에서 파생되는 형식상의 조작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멤버들 간의 요조가 이해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 다큐멘터리의 극적인 장치를 통해 관객에게 호소하는 요조라는 인물을 이해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 문제. 즉 드라마를 구현하기 위해 극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채택한 것은 이 다큐의 충실한 기록성을 통해 편집이란 작업으로 시도된 일종의 다큐멘터리 연출로 이해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인 극적 구성을 위해 실제 인물에 캐릭터 설정을 덧씌워 파생하는 이미지의 불결함에 대해서는 결코 쉽게 용서될 문제가 아니다. 물론 나 역시도 성공을 위해 감사의 말도 없이 밴드를 박차고 나가 버린 요조라는 인물에 전적으로 동의 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영화의 극적 구성이 부여하는 캐릭터로 사용되어진 그녀의 이미지가 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 인하여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영화적인 힘을 무시하지 말라. 영화도 일종의 미디어이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경우 그것은 명명백백하다. 맨 끝에 이를 어설프게 미봉하면서 은지와 요조를 같은 무대에 세워 그 이미지는 지워졌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인상은 남고 관객은 그 인상을 토대로 사유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실제를 전복 시킨 가짜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일종의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사실 다큐멘터리치고 매우 재밌다. 나 역시도 이 영화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다큐멘터리란 장르가 가지는 관객과의 약속 즉, 진실성이란 측면에 의해 사료해 본다면, 여기서 나온 ‘요조’라는 인물에 대한 배려가 약간 아쉽다는 것이다. 요조라는 실제 인물은 드라마적인 구조를 위해 너무 쉽게 사용되어지고 버려진 느낌이 있다. 이것이 극영화가 아닌 이상 인물에 대한 배려를 해주었던 것이 필요했다. 아무리 사전에 조율되고 합의가 된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이런 제작 배려가 다큐멘터리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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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장원


단언컨데, 이번 전주국제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못 본 사람은 땅을 치고 후회하리라. 물론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관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작품은 시네필의 목마름을 채워주고도 남을 만큼 탁월하다. 더불어 이 작품은 전주가 발견한 드니 코데라는 감독(2006년 전주국제영화제 당시, 그의 데뷔작 <방랑자>가 경쟁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이 왜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신성인지(그의 4번째 작품은 올해 깐느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부문에 초청됨, 봉준호의 ‘마더’와 같은 부문에서 상영됨)를 멋있게 증명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가령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특별할게 없다. 자신이 인상깊게 보았던 작품<방랑자>을 있었는데 그 작품의 감독(드니 코데)이 새로운 작품<그녀가 바라는 모든 것>을 들고 찾아와서 상영되었을 때의 기대감,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의 묘한 충격과 만족감, 이런 것들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방랑자>는 쓸쓸하고 고독한 한 남자의 내면을 짧은 여정 속에 담는다. 묵묵히 잠겨 있던 불안전한 속내가 안정을 찾아갈 때 쯤, 영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죄를 지은 남자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과 자연을 통해서 끔찍했던 순간들과 파괴되어진 마음을 위로 받고 다시 자신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찾아올 지독히도 슬픈 외로움.

<그녀가 바라는 모든 것>은 <방랑자>에서 느꼈던 그 외로움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코랄린은 어머니를 어디론가 떠나보내고 아버지도 아닌 정체모를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애인으로 인해 혼란을 느끼며 자신의 출생 배경을 안 후 불안해 한다. 하지만 코랄린은 <방랑자>의 크리스티앙과 마찬가지로 좀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는 가난과 부재라는 큰 사슬에 묶여 있으면서도 그것에서 오는 불안을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면 가득 뿜어 내는 영화의 공간은 그녀의 아픔을 적셔내고 있다. 사막처럼 텁텁하며 사람의 흔적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 마을의 풍경은 을씨년하며 그 자체로 가난과 부재라는 큰 사슬을 묶어두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를 감싸는 대지는 전원의 풍경이 아닌 고통이 숨쉬고 있는 공간이다.

이것은 감독의 데뷔작 <방랑자>과 닮아있으면서도 또 다르다. <방랑자>에서 크리스티앙이 낯선 마을에 정착하면서 정서적 안정과 죄로부터의 구원을 받는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의 코랄린은 사람과의 만남자체를 곤혹스러워 한다. 옛 애인과 자신을 수시로 감시하며 구속하려 하는 보스와 그의 부하들 모두 그녀에겐 짐이 될 뿐이다. 팔려온 것으로 짐작되는 러시아 여인들과의 잠시 동안의 만남으로 인해 여유를 가지기도 하지만 그도 잠깐. 사건은 그녀를 영원히 구속해 버린다. 하지만 그 순간 대지는 아무 도움도 주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다. 잔인한 대지. 이런 배경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감독은 과감하다. 흑백화면 속에 담겨진 고요한 풍경은 비밀을 품고 있는 듯 그 자체로 감정을 표출한다. 이것은 코랄린의 표정 속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영화보기의 매력을 담고 있다.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가 탈출하고 싶을 때마다 찾았던 공간인 ‘숲’의 한 가운데를 보여준다. 그곳엔 홀로 남은 코랄린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바라는 대로 고통을 주던 사람들은 대지에서 하나둘씩 사라지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던 쓸씀함과 고독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녀는 ‘숲’으로 들어가지만 그곳에서조차 상처를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홀로 남은 숲은 마치 그녀를 꼭 닮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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