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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31 [기담] 상실의 고통, 그 쓰디쓴 흔적
  2. 2007.08.11 기담 (2)
2007.08.30

상실(喪失).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또는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상실’은 도처에 널려있다. 처음이 있으면 끝도 반드시 있다는 우주 불변의 진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라지는 것들의 출현은 필연이기 마련이다. 사람 사이에 있어 상실은 어떤 관계가 실제적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됨을 뜻한다. 그러니까 ‘당신과 나’라는 고리가 ‘떠난 자와 남은 자’로 바뀌어버리는 것.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이 경험은, 특히나 그 원인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것일 때 보다 비극적이다. 죽음의 도래는 그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관계를 기억 속에 봉인해버린다는 점에서 무자비하기 때문이다. 남은 자가 ‘영원한 상실’이라는 거역 불가한 명령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슬픔을 삼키는 것뿐이리라.

물론 죽음의 일방적 통보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때도 있을 테다. 이를테면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닥친 불의의 죽음 같은 것. 삶의 불확실성이 최악의 상태로 표면화된 그런 경우, 극에 달한 고통과 절망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십상이다. 요컨대 어떤 상실은, 남은 자의 남은 생마저 송두리째 상실케 한다.

영화 [기담]은 그처럼 수용 불가한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기담]에서 인물들은 죽음이 내린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명령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명령 불복종은 떠난 자들을 ‘지금 여기’에 복원시키고픈 욕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불가능에서 가능을 찾으려는 눈물 서린 그 욕망은, 마침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떠난 자의 귀환을 둘러싼, 말 그대로 ‘기이한 이야기.’

이처럼 [기담]은 상실이 남긴 쓰디쓴 흔적에 뿌리를 두는 영화다. 공포를 담되 단지 공포로만 수렴되지 않는 중층의 정서가 필요한 셈. [기담]이 나름대로 구축한 서스펜스적 요소는 아마도 그 정서들을 효과적으로 엮기 위한 고민의 산물일 테다. 결과적인 말이지만 그 고민이야말로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 ‘흐름’을 장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실천적 지표가 아닐까 싶다.

사실 ‘다양한 감정의 충실한 전달’이라는 과제가 비단 [기담] 앞에만 놓였던 것은 아니다. 근래 한국 공포영화들이 주로 다뤘던 내러티브 ―원혼의 복수, 그 원인으로서의 아픈 과거 등― 또한 공포감을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만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하지만 그들 영화 대부분은 개별 이미지의 표정을 동위의 디제시스 시공간 안에 녹여 넣는 데 실패하지 않았던가. 군데군데 놀람의 장치를 향한 지독한 집착 탓인지는 몰라도, 공포와 그 근원 사이의 감정적 거리는 한없이 멀어져갈 뿐이었다(이른바 뜬금없는 ‘사다코의 망령’은 이제 영화용어사전에 등재해도 좋을 판이다).

ⓒ 영화사 도로시[기담]이 반가운 까닭은 그런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담]은 상실의 아픔과 그 확산으로서의 공포 사이의 정서적 간격이 지극히 좁은 영화다. 간격이 좁다는 말은 서로 어긋날 수도 있는 감정들이 한 덩어리로 적절하게 묶여있음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공포를 상실의 무게에 짓눌린 검붉은 자국 같은 것으로, 상실을 공포의 전이를 부르는 악성종양 따위로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정도.

정서 간 이뤄지는 이런 무리 없는 전환은 [기담]이 ‘흐름’을 통제하는 데 능숙한 영화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담]은 개별 숏들 자체로 무언가를 전달하기보다는, 숏들을 동일 선상에 놓고는 일종의 리듬에 맞춰 흘려보낸다. 그 리듬을 지정하는 명령은 놀랍게도 ‘정교한 서사를 구축하라’가 아니라 ‘과장된 묘사를 응용하라’이다. [기담]에서의 이미지들은 누군가가 ‘말을 하지 못했기에’ 존재한다. 소중한 사람을 불의에 잃어버린 고통은 모든 할 말조차 앗아가기 마련. [기담]은 타인과의 나눔이 불가능했을 최초의 상실감을 직접 언급하는 대신, 상실감이 초래한 파국의 세계를 다양한 악몽의 형태로 과장되게 묘사하는 쪽을 택한다.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과거의 심리적 고통이 절절히 피부에 와 닿는 이유는, 그 과장이 끊기는 부분, 그러니까 묘사와 묘사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긴장과 이완을 오가며 공포를 증폭시키던 리듬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 호흡을 멈추고는, 극도의 외로움이 몰고 온 구슬프고도 애잔한 리듬에 마침내 자리를 내어준다. 꿈에서 깨는 순간이자, 상실의 애통함이 현실에서 다시금 환기되는 지점이다. ‘쓸쓸하구나’라는 마지막 대사는, 꿈에서 깼을 때 읊조릴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말일 테다.

시대 자체가 ‘상실의 시대’인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삼고도 그것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아쉽지만, 어쨌거나 순수 공포라는 관념에 상당히 근접했다는 점에서 [기담]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스크린에 ‘비정상’을 전시하고 놀래고 타자화하며 무섭다고 호들갑 떠는 영화들과 달리, [기담]은 상실이 낳은 비극의 입체화를 통해 평범한 일상에도 공포의 씨앗은 늘 잠재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삶과 죽음, 또는 기쁨과 슬픔 사이에 경계는 사실상 없으며, 확실한 것은 삶의 불확실성뿐이라는 역설. 무서움을 경유해 안타까움으로 접어들었던 [기담]이, 언제든 다시 무서운 얼굴로 돌아올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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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필진 리뷰 2007.08.11 17:53 Posted by woodyh98
2007.08.10


[스포일러 있습니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기담]의 이야기는 평이한 것이다. 도입부의 [식스센스]를 연상시킬 뻔한 트릭과 "나는 오늘 죽었다."라는 나레이션을 통해 영화의 결말을 얼추 상상하는 것이 가능할 뿐더러, 각각의 에피소드 역시 창의적인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기담]의 이야기들이 각광을 받는 것은 그간 한국공포영화들의 시나리오가 얼마나 삐걱댔는지에 대한 반증 - 귀신이 나온다는걸 하나의 사실로 만든 세계에서 이야기의 논리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만 - 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물론 [기담]의 시나리오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공포영화의 내용이 너무 복잡해도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뿐더러,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풀어냄에 있어 모자람이 전혀 없거든.

[기담]은 사랑이라는 소재를 다룸에 있어 보다 진한 감정들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것은 안생병원의 철거라는 분위기와, 영화가 택한 40년대의 경성이라는 고풍적 배경이 지나간 것에 대한 아련함을 더욱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대부분 지나간 것에 더욱 애틋함을 느끼는 법이다. 이야기가 아닌 감정에 치중하고 있기에, 영화는 확실히 정적이다. 동시에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좀 더 설명하자면 [기담]은 보여주지 않기의 미덕을 실천하는 작품이다. 물론 영화의 색감이나 비주얼이 매혹적인 것은 사실이며, 영화의 적지 않은 매력들은 보여준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기담]은 의외로 눈으로 본 것보다 훨씬 파격적일 수 있는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첫번째 에피소드의 경우에는 시체와의 정사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그것은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환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담]은 근래 내가 본 한국공포영화 중 어둠을 가장 매력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어둠이 무서운 이유는 그 속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던가.

영화의 백미는 단연 두 번째 에피소드다. 나는 황병기의 [미궁]을 안 지 15년은 되었지만, 아직도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칼 가는 소리 때문도 아니고, 여자의 곡소리 때문도 아니었다. 별 내용도 없는 이야기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을 속도로 중얼대는 그 목소리를 참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상상을 했더니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말인데, 이 영화 두 번째 에피소드의 귀신은 제법 무서웠다. 봐라, 하면 할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다른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해도, 고주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 이상은 할 영화다. 정말 무서운게 어떤건지를 이만큼 잘 보여주는 연기가 있었던가?

각설하고, 영화 [기담]은 한 마디로 근사한 작품이다. [기담]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감독의 가장 큰 무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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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omepageyangpa.tistory.com BlogIcon 좋은기억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컨텐츠는 늘 나를 기쁘게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우울한 소식도, 남북 정상회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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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를 통한 세상이 더 아름다워 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최고의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7.08.11 18:25 신고
  2. Favicon of https://neoimages.tistory.com BlogIcon woodyh98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디79/ 우리 블로그에 들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종종 뵙겠습니다. 우리 매거진 홈페이지에서도 뵙죠^^

    2007.08.13 21: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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