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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스포일러 있습니다)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한강다리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통화중이다. “원금에 이자를 합쳐서 총 액수가 2억xx원이 넘는다구요… 이제야 용기가 생기네요.” 비장한 표정의 이 남자, 다리 아래로 출렁이는 한강 물 속으로 몸을 날린다. 이윽고 카메라는 섬으로 떠내려 온 남자의 주변을 훑는데 시커먼 강물에 어딘가 낯익은 풍경이다. 여기가 어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던 남자의 눈에 저 멀리 강물 너머로 63빌딩이 보인다. 그렇다. 이곳은 바로 한강 한가운데 떠있는 무인도 ‘밤섬’. 그렇게 어이없게 시작된 이 남자 ‘김 씨’(정재영)의 밤섬표류기, 영화 <김씨 표류기>는 첫 장면부터 코믹하고 명료하게 주인공의 처지를 설명한 후 시종일관 군더더기 없이 직진한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김 씨는 그러나 기쁘지 않다. “지지리도 못나서 죽지도 못했다”며 넥타이로 목을 매려고 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설사로 이번에도 실패. 하지만 볼일을 보던 중 발견한 새빨간 사루비아꽃이 너무나 탐스럽다. 쭉쭉, 있는 힘껏 빤다. 달고 맛있다. “백년 만에 빨아본다”는 그 사루비아꽃이 낭패스럽던 그를 서럽게 울린다. 엉덩이를 깐 채로 엉거주춤 대성통곡하는 그의 뒷모습이 애처롭다가도 너무 웃겨 눈물이 난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몰입하게 하는 힘은, 바로 야생 배우 정재영의 열연이다.


캐스팅 못지않게 핵심을 콕 찔러주는 간결하고 재치 있는 대사도 맛깔난다. 대화할 상대가 없어 외로운 김 씨가 독백처럼 읊조리는 내레이션도 어눌한 듯 코믹하게 제 몫을 해낸다. 119에 전화를 거는 장면, ‘오리배’ 견인 장면 등의 현실 풍자에서는 감독의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자신의 양복을 입혀서 만든 허수아비와 대화하는 장면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의 톰 행크스와 배구공 ‘윌슨’을 연상케 하지만, <김씨 표류기>의 허수아비가 훨씬 더 정겹다.(허수아비의 머리는 30년 전통의 ‘오뚜기 케첩’ 깡통(식당용)이다. 아, 중년 관객을 배려(?)한 감독의 센스라니!)


죽지 못해 사는 남자의 밤섬 생존기

혼자서 척박한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김 씨가 벌일 고군부투는 일찍이 ‘로빈슨 크루소’로부터 <캐스트 어웨이>에 이르기까지, 이미 관객들에게 익숙한 그림들이라 자칫 식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죽어야 사는’ 남자가 죽지 못해 살다가 새로운 목표를 찾게 되면서 강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지만 그 목표가 터무니없이 사소하다는 점, 고전 멜로 영화에서 사랑의 증표로 등장하던 ‘병속의 편지’가 히키코모리인 여주인공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도구라는 설정 등, 발상의 전환으로 플롯이 안고 있는 위험을 비켜나간다.


또한 주인공을 자살로 내몬 상황과 서울이라는 대도시 안에 있지만 아무도 그 존재에 대해 관심이 없는, 그 자체로 ‘외톨이’인 ‘밤섬’이라는 공간이 갖는 상징성까지, 2009년을 사는 한국인(엄밀히 말하면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정서가 관객들에게 동질감을 부여한다. 아무튼 목을 매려다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우리의 김 씨, ‘언제라도 맘만 먹으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여기는 무인도, 아무도 그에게 태클을 걸지 않는다. 빚 독촉을 받을 일도, 신용불량자로 마음고생할 일도 없으니 힘들게 자살을 시도할 필요도 없다. 이왕 건진 목숨, 조금 더 살아보기로 한다. 이제 살아 있는 몸뚱이는 배가 고프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먹을 것이 없다. 이름 모를 버섯을 뜯어먹어 본다. 잠시 움찔했지만 먹다가 죽으면 오히려 일석이조, 죽기로 작정하니 세상에 거칠게 없다. 그야말로 “사는 게 참 편해졌다.” 일단 살기로 결심하고 나니 이 황량한 무인도 ‘밤섬’이 달라 보인다. 물살을 타고 밀려온 쓰레기 더미를 뒤지니 쓸 만한 것들이 꽤 있다. 버려진 오리배를 주워 보금자리도 꾸미고 물고기 잡는 방법도 터득해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해나간다.


그의 일상은 나날이 새롭게 진화할 뿐 아니라 점점 흥미진진해지기까지 한다. 밤섬 주민 김 씨에게는 더 이상 목을 조이는 넥타이와 양복이 필요 없다. 사각 팬티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도시라는 인위적인 틀을 벗어나 원초적인 욕망에 집중하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자발적으로 노동하는 삶, 그 단순한 일상들에서 이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씨의 섬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쓰레기 속에서 발견한 인스턴트 자장면의 스프 하나가 그에게 간절한 욕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머리를 쥐어뜯던 그는 새똥을 통해 천금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김씨, 땅을 갈고 새똥 뿌리고 물주고…. 뙤약볕에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어도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궁리하고 몰두한다. 지금의 그에게 자장면 한 그릇은 살아갈 이유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


히키코모리 그녀의 밤섬 관찰기

밤섬이 내려다보이는 한강변의 어느 아파트, 20대 초반의 여자 ‘김씨’(정려원)가 사는 곳이다. 히키코모리 생활 3년째, 좁은 방안에서 모든 일상을 영위한다. 열성적으로 미니홈피를 꾸미고 네티즌들의 칭찬 댓글에 만족해하며 온라인 쇼핑으로 세상과 접촉한다. 칼로리를 재어 음식을 먹고 만보기로 운동하는 등 나름의 규칙을 정해놓고 하루하루 열심히 산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망원카메라로 달 사진 찍기다. “아무도 살지 않기에 아무도 외롭지 않아서” 좋아하는 달은, 그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다. 그런 그녀의 카메라에 어느 날 한 남자가 우연히 포착된다. 바로 밤섬의 김 씨, 덥수룩한 머리털과 수염, 팬티만 입은 그를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생명체라고 생각한 그녀는 지구인을 대표해서 그에게 안부를 전하기로 마음먹는다.


여자 김 씨의 캐릭터, ‘히키코모리’는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지만 수면 위로 부각되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혹은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외톨이’다. 얼굴의 흉터와 학창시절의 따돌림이 그녀를 고립시킨 원인이라 짐작케 하지만 사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지난 세월이 너무 외롭고 힘들었을, 그래서 자신의 세계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그녀의 삶은 무채색이다. 마르고 생기 없는 김 씨 캐릭터를 배우 정려원은 최선을 다해서 구현한다. 명연기는 아니지만 캐릭터에 몸을 맞추는 성실함을 보여준다. 밤섬 김 씨의 사진을 찍으며 매일매일 살아있는 걸 확인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드디어 그와의 교신을 위해 과감히 외출을 감행한 그녀, 몇 개월을 기다려 답장을 받고는 뛸 듯이 기뻐한다. 유일하게 편견 없이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상대이기에 너무도 고맙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그가 그녀를 궁금해 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 고민하던 그녀, 가짜 얼굴이 담긴 편지를 보내려다 그만 포기한다.


차가운 현실 틈 속 희망 한 조각

한편, 김 씨는 나뭇가지 위에 걸린 병 속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 얼굴도 모르는 이와 교신을 주고받게 된다. ‘완벽하게 심심’하던 삶에 찾아온 예기치 않은 만남은 새로운 설렘과 기대를 가져다준다. 강너머 어딘가에서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게 되자 강가의 흙위에 답장을 쓴다. ‘How are you?’로 시작된 인사는 어느새 ‘Who are you?’로 바뀐다. 처음엔 인사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궁금해진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진다. 그런데 답장이 없다. 기다리는 김 씨는 괴롭다. ‘Why?’라고 신호를 보내고 고민한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니 삶이 다시 복잡해진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어언 몇 개월이 지나고 결국 메마른 밤섬의 땅에 기적이 일어난다. 드디어 옥수수가 열린 것. 그렇게 손수 만든 자장면을 먹는 날, 김 씨의 두 볼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래 나도 꽤 쓸모 있는 사람이었던 거야.’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안식처란 없는 법일까. 김 씨는 환경정화를 위해 들이닥친 이들에 의해 밤섬에서 쫓겨난다. 그렇게 빈손으로 떠났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도시, 그는 잠시 유보되었었던 현실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그에게 닥친 위기를 지켜보던 그녀,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그를 만나야 한다. 이대로 그와의 끈을 놓아 버리면 영영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을 가두었던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간다. 환한 햇살도 사람들의 시선도 두렵지 않다. 상처 입은 그가 또다시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아마도 그녀는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당신이 내 삶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다’고 그에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외톨이들,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다

영화 <김씨 표류기>는 한정된 공간, 두 명의 주연배우, 단선적인 플롯이라는 소박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다. 도심 속 실제 무인도에 고립된 남자와 아파트숲 속 자신만의 무인도에 갇혀 있던 여자와의 만남이라는 소재는 신선하고, 일상을 꼼꼼하게 묘사하는 솜씨도 성실하다. 물 흐르듯 잔잔하게 이어지는 영화의 리듬감을 살려 주는 코믹한 대사와 세태 풍자는 정겹다. 캐릭터 묘사와 에피소드에서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번뜩이지만 산만하지 않고 짜임새 있다.


물론 인물들의 사연이 축소되고 현실을 단순화시키면서 깊이가 결여된 점과 뒷심이 딸리는 듯한 엔딩은 아쉬움으로 다가 온다. 하지만, 곁가지를 과감히 쳐내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투박함은 듬직하면서 여유롭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진솔한 유머와 위로는 따뜻하다. 외롭고 지친 인생을 격려하는 감독의 진심이 마음을 짠하게 한다. 삶의 풍랑 속에서 외롭게 표류하던 두 ‘김 씨’가 서로의 존재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지만, 소통을 시작하고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기까지는 적극적인 의지와 실천이 필요했다. 그는 주체적으로 경작하는 인생의 맛을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희망의 의미를 깨달은 그녀는 자신을 억누르던 타인의 시선에서 탈출해 그녀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할 용기를 얻게 된다.


비록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일지라도, 오래도록 지켜보며 손을 잡아주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조금 덜 외로울 것이다. 그런 사람을 찾고 싶다면 지금 당장 눈을 크게 뜨고 창밖을 내다볼 일이다. 용기를 내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인생이라는 거대한 풍랑 속에서 계속 표류하게 될지도 모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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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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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구원투수를 자임한 충무로의 승부사 강우석 감독이 <강철중: 공공의 적 1-1>을 들고 다시 강호로 나왔다. 지난 2006년 <한반도>로 비평적 실패를 맛본 후 와신상담해온, "한국영화 침체와 거품의 책임이 시네마서비스에 있다"며 자신이 세운 회사에 칼끝을 겨냥했을 정도로 비장한 출사표를 던진 그였다. 그로부터 1주일, 실로 오랜 만에 한국영화가 박스오피스를 점유했다는 뉴스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이 있었음에도 흥행과 작품성을 동일시해온 일부영화인들의 아전인수식 논리에 반감을 가졌던 터라, 또 관객 수로 영화를 평가하려는 언론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겨온 터라 나까지 나서서 호들갑 떨 이유는 없겠으나 소위 '봐 줘야 할' 영화목록에 <강철중>이 있었음은 인정해야겠다. 요컨대 <강철중>은 단 한 가지 이유로 필자를 만족시켰으니, 다름 아닌 정재영과 그가 연기하는 이원술이라는 인물이 그것이다.

집단적 기억을 소환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경험과 절묘하게 조우시키는 것에서 강우석의 장기는 십분 발휘되곤 했다. <투캅스>에서 <공공의 적>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던 반면 <공공의 적>의 속편 격인 <강철중>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의 제목만 놓고 본다면 주인공은 꼴통형사 강철중이어야 하고, 실제로도 강철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강철중과 대극에 놓인 이원술이라는 캐릭터이다. 그러니까 정재영이 연기하는 새로운 공공의 적 이원술은 주인공을 능가하는 카리스마를 품어내며 스스로 외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인데, 이를테면 대극의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가 충동하는 영화에서 악당의 역할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공식에 지나치게 충실함으로써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장르영화들의 경우와는 달리, 이원술은 강철중과 경찰이라는 견제세력 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캐릭터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예로 <범죄의 재구성>에서 천호진이 연기한 '차 반장'과 <씬 시티>에서 미키 루크가 분한 거리의 파이터 '마브' 등이 외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로 꼽히지만 이 분야의 최고는 단연 <배트맨>의 '조커'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필자는 (강우석이 의도했건 안 했건) 주인공 강철중과는 별개로 이원술이라는 캐릭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연기한 정재영 또한 재삼 언급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영화에서 이원술에 대해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은 자신의 입으로 부르짖는 내면화된 그의 본질이다. "나는 칼질하는 깡패인데 세상은 나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며 보란 듯이 사자후를 토해내는 그의 모습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이때 본질을 숨긴 채 가공된 현실 위를 활보하는 이원술을 악마의 현신으로 탈바꿈시키는 영화적 장치는 의도적인 클로즈업과 독특한 화법이다. 즉 강철중과는 달리 (영화 포스터에도 나와 있듯이) 이원술의 지나치게 매끄러운 턱은 가까이서 보기 불편할 정도로 관객을 압도하고 있는데, 이는 거친 내면과 본래의 모습을 감추기 위한 장치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기 위한 강박적 위장술이라 하겠다. 이처럼 이원술의 내면이 정재영의 얼굴을 빌려 완벽하게 재현될 때, 대극에 있는 강철중의 추레한 현실은 극대화되고 이것이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이다. 이원술은 강철중의 존재 이유이자 기원(起源)인 셈이다. 무성영화의 스타들이 그랬듯이 배우가 얼굴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음을 기억한다면 <강철중>의 정재영 또한 이에 뒤지지 않은 얼굴 하나로 이원술을 연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쉽게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자 정재영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재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또한 이원술은 신경질적인 얼굴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독특한 화법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예측불허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어눌한 듯 무식한 듯 그러나 핵심만 잘라서 던지듯 내뱉는 정재영의 말투는 법보다 주먹, 말보다 칼이 앞서는 이원술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문성근과의 독대와 경찰서로 찾아가 강신일 앞에서 뿜어내던 살기는 필자로 하여금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 긴장감을 촉발시킬 정도였다.

장진 감독의 페르소나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로 일찌감치 인정받아온 정재영이지만 <거룩한 계보>와 <마이캡틴 김대출> <나의 결혼원정기> 등 그가 근작에서 맡은 캐릭터들은 다분히 인간적이고 세상사에 서툰, 악마적 이중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때문인지 <킬러들의 수다>나 <피도 눈물도 없이>의 정재영을 기억해볼 때 이제는 한 번쯤 냉혹한 인물을 연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차에 만난 이원술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강철중>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정재영의 연기만 놓고 본다면 이렇듯 생생하고 소름끼치는 그럼에도 악인으로 단정 짓기 힘든 캐릭터를 연출해낸 강우석의 능력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공공의 적>이 '강철중'이란 안티히어로를 탄생시켰다면 <강철중>은 오히려 '이원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어쨌거나 틀에 박힌 설경구의 연기에 식상해질 즈음 찾아온 정재영이 세공해낸 이원술은 내가 <강철중>에서 얻은 유일한 소득이다.


(추신) 적지 않은 매체들이 강철중을 일컬어 '서민형 캐릭터'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물론 마케팅사의 보도 자료에 의거했거나 기자의 판단에 따라 기술되었을 테고, 후줄근한 옷과 덥수룩한 외모에 중산층과는 먼 경찰이란 직업을 감안하자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표현이기는 하다. 그러나 강철중이 전세방에 살고 전세보증금이 궁하다는 것만으로 서민형 캐릭터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이것은 신흥기업 회장 이원술과의 대구를 이루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보여 지는데, 강철중 스스로가 실토했듯이 "뇌물도 받고 삥땅도 좀 친" 게다가 1편에서는 마약까지 빼돌린 부패한 경찰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서민'이라는 표현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다. 유사한 예로 '시골총각은 순박하고 어눌하며 건실하다'라던가 '장애인은 순수하고 착하다'는 식의 고정관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도식화된 평가와 편견이 빚어낸 섣부른 단정은 비평적 사고에 장애가 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유의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잣대는 시선의 확장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감독의 의도마저 오인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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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의 귀환을 환영하며

필진 칼럼 2007.07.26 15:04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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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6
하성태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는 빌딩에서, 공항에서, 미국 전역에서 투덜투덜 거리며 죽도록 고생하는 안티 히어로다.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오다 유지)는 관료주의 일본 사회에 맞서 완간서를 묵묵히 지키는 현장 ‘지키미’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강철중(설경구)이 있다. ‘단무지’인데다 부패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패륜아를 처단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엘리트 연쇄살인범 조규환(이성재)를 결국 매다 꽂았던 열혈남아 강철중. 액션이 주를 이루는 할리우드와 관료주의와의 갈등과 코미디를 적절히 섞은 일본과 비교 [공공의 적]은 한국식 형사물의 새 장을 개척한 바 있다. 그 강철중이 검사가 아닌 형사로 돌아온다. 바로 [강철중](부제: 공공의 적 1-1).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물론 강우석 감독이 있다.

충무로 토종 자본의 선봉장인 시네마서비스의 실질적인 수장이자 [실미도]로 가장 먼저 천만 관객의 깃발을 꽂은 바 있는 강우석 감독이 장기인 코미디 영화로 복귀한다. 지난 16일 강우석 감독은 일제히 보도 자료를 내고 [강철중]이 장진 감독에 의해 시나리오 작업 중이며 설경구, 정재영, 강신일 등이 이미 캐스팅 됐다고 전했다. 검사로 변신해 설교조의 직설화법을 날렸던 [공공의 적2]와 달리 1편의 분위기에 코미디가 강화될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비는 40억 가량이며 내년 3월경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단다.

강우석이 코미디, 그것도 [강철중]으로 복귀하는 데에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이유는 적지 않다. 우선 강철중 캐릭터. 몰래 마약을 거래할 정도로 썩어있고 입에 욕지거리를 달고 살며 조폭인지 형사인지 구분이 가질 않을 정도로 손버릇이 나쁜 강철중은 한국영화 사상 가장 생생한 형사 캐릭터였다. 그와 필적한 상대라면 두드러진 형식미 안에서 간간이 인간미를 풍겼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형사(박중훈)를 꼽을 수 있겠다. 몸무게를 불린 것으로 모자라 실제 성격이 아닐까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맞춤옷을 입은 듯한 연기를 선보인 설경구의 힘도 물론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때려잡는 [공공의 적]의 형사 강철중은 기존 선악구도를 과감히 깨트리며 묘한 쾌감을 주었던 한국 영화사상 명 캐릭터 중의 하나였다.

[공공의 적3]라는 프랜차이즈의 프리미엄을 살짝 내려놓은 것도 칭찬할 만 하다. 여기에는 [실미도] 이후 [공공의 적2]와 [한반도]를 통해 현실 사회에 직설화법으로 일관했던 강우석 감독의 자기 성찰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학 재단 비리와 일본의 군국주의를 절대 악으로 상정, 그에 맞서는 내러티브 구조와 절대 선인 캐릭터를 구축해 현실에 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전작들은 강우석 감독 본인의 이데올로기와 대중의 욕구를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버린 바 있다. 시사프로그램의 에피소드에서 착안, 고등학생을 조폭으로 길러내는 조직과 어리바리 조폭 두목(정재영)과의 한판 승부를 다룰 예정이라는 [강철중]은 코미디와 풍자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장르 클리쉐와 시민과 국민으로서의 열망을 전면에 배치했던 [공공의 적2]와 [한반도]와 달리 날카로운 풍자와 유니크한 코미디의 결합이 되지 않을까 싶다. KnJ엔터테인먼트를 쌍두마차인 장진 감독이 코미디에서 장기를 보여온 것도 기대를 모으는 대목.

또 한국 영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지금, 또 다시 강우석 감독이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도 이채롭다. 무모한 시도가 아니냐는 [실미도]로 어쨌든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도 그가 아니던가. 특히 쇼박스 측이 극장 지분을 매각하고 CJ엔터테인먼트 측도 신작들에 메인 투자를 꺼리는 등 한국 영화 투자가 급격히 얼어붙은 상황에서 강우석 감독이 간판타자로 활약하고 있는 마지막 충무로 토종 자본 시네마 서비스의 행보는 사뭇 공격적이다. 올 상반기 [밀양] [바람피기 좋은 날] [황진이]를 거쳐 김유진 감독, 정재영의 [신기전], 정지우 감독, 박해일, 김혜수의 [모던보이], 엄정화, 박용우, 한채영, 이동건의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외에도 [궁녀], [기다리다 미쳐],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싸움] 등 다양한 장르 영화들이 포진되어 있다. 지난해 활황 속에 착수했던 기획 영화들의 실패로 올 상반기 적자를 기록한 쇼박스나 기대를 모았던 대작 영화들의 참패로 타격을 입은 CJ엔터테인먼트가 주춤하고 있는 것과 비교했을 때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화제를 모았던 ‘강우석 펀드’도 한국 영화 위기를 맞아 물 건너 간 상태에서 마지막 게임에 승부를 건 ‘타짜’ 강우석. 반갑기 그지없는 ‘강철중’ 카드를 꺼낸 그의 귀환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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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maggot.prhouse.net BlogIcon 한방블르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당히 흥미로운 평입니다. '한국 영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지금, 또 다시 강우석 감독이 구원투수로 등장한'것이란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승부사인 강우석만이 흐름을 읽고 공공의 적으로 귀환것이 아닐까 합니다. 장진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게 한것도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강감독은 감독보다는 제작자나 기확자로 남는 것이 위기의 한국영화를 위하여 더 나은 길이 아닌가 합니다.

    2007.07.27 23: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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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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