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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1 [파주] 읽기

[파주] 읽기

필진 리뷰 2009.11.11 14:18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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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원


"이선균에게는 특별히 어떤 영화를 보라고 한 건 없고 철거민이나 당시 학생운동을 그린 다큐멘터리들을 보라고 권했다. 서우의 경우도 딱히 어떤 영화의 어떤 느낌이라고 말한 건 없고, 영화에서 절친한 친구인 미애랑 계속 친하게 어울려 지내니까 <메이드 인 홍콩>(1997) 같은 영화에서 친구들이 어울리는 방식이 참조가 될 거란 얘기는 했다. 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친구들끼리 우정을 나누고 서로 살갑게 의지하는 그런 모습, 그렇게 현실을 이겨내는 힘 같은 것 말이다. 두 배우 모두에게 멜로영화를 추천한 건 없다"- 박찬옥, 씨네21과의 인터뷰 중

확실히 내 느낌이 맞았다. 매체에서 반복되는 '안개에 휩싸인 미스테리한 멜로'의 느낌은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이다. 박찬옥이 회화를 그렸다고, 멜로의 장르에 더 깊이 천착했다고 하는 평은 황폐한 공간의 프레임에 갇힌 채 안개에 휩싸이자 밀려오는 착각이다. 인터뷰 기사도 한 두 건에 그칠 정도로 박찬옥은 설명(감독의 변)을 꺼린다. 그의 영화처럼 극도로 내밀하다. 이러한 태도는 이 영화의 홍보에 대해 (거의 낚였다는 수준으로) 불만을 표출한 꽤 많은 관객들에게 오히려 아무 것도 변명하지 않는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듯 하다. 이 영화가 일반개봉을 통해 베일을 벗자, 확실한 것 하나는 봉준호식 카테고리가 박찬욱식의 이미지로 덧칠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이 박쥐로 홍보되어 있었다고 말하면 지나친가. 봉준호의 박해일이 과장된 유머를 버리고 박광수의 문성근과 그 어느 지점쯤에서 만난 것으로 느껴지는 이선균이 마치 밀양이나 박쥐에서의 송강호처럼 홍보된 것은 개봉을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었나. 그렇다면 이 영화는 영리한 멜로 드라마라고 말해도 흠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 흠될 것이 없는 일은 매체들과 평자들을 통해 어느정도 이야기 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충분친 않아보인다. 개봉관에서 곧 사라질 듯 한데 직무유기아닌가 싶다. 이 영화는 2009년에 개봉한(개봉이 가능했던) 한국영화들 중 단연코 특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게 <파주>는 오히려 이 감독의 진작의 데뷔작 같았다. 더 잘 짜인 느낌이 아니라 부러 헐거워진 느낌이다. 7년 전과 3년 전과 현재의 서사를 느슨하게 엮은 듯한 영화의 구조는 오프닝에서 도로의 안내판을 통해 아래서 위로 슥 보여주고 마는 무심한 영화 제목의 등장과 맞물려 영화적 인과가 아닌 풍경의 재현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처음 보는 듯한 낯선 이미지들은 혼란스러웠던 80년대에 태어나(그 시절을 모르고) 2009년 현재 성인이 된 젊은 청춘들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의 풍경일 것이다. 이처럼 <파주>는 <질투는 나의 힘>보다 훨씬 비상업적이며 반드라마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80년대로 회귀한 것 같은, 그 시기의 독립 영화들의 사회 다큐멘터리적인 풍경를 담고 있다. 박찬옥은 자신의 영화의 궤도를 막 들어선 90년대로 돌려와 <파업전야>(1990)나 <그들도 우리처럼>(1990) 같은 사회 드라마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듯하다. 물론 이는 당연히 이명박 정권하의 시대가 그 시절로 역행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의 유사함(전투경찰과 화염병과 최루탄의 재등장)만으로 이 영화가 탄생한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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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운동권이 곧 주류였던 386세대들의 현재, 여전히 정권에 맞서 제도권 밖에서 투쟁하는 모습을 정면에 보여준다. 사회주의 학생운동은 개발을 거부하는 철거민 대책회의로, 야학은 공부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데모의 주동자로서 늘 수배령에 쫓기는 신세인 이선균을 주로 하여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정서는 실패한 혁명에 대한 좌절감 혹은 죄의식이다. 이선균이 결혼한 운동권 선배(김보경)와 사랑을 나눌 때 아이가 죽어버리고, 파주로 들어와 밤에 떠도는 빨간 옷의 여인(향숙을 연상시키는, 심이영)과 결혼을 하지만 그녀는 원인모를 가스폭발로 사망한다. 이 사고사들은 우연적인 것이었으면서도 그 날, 그 때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선균에게 큰 죄의식을 남긴다. 영화엔 운동권 스스로의 나르시시즘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퇴행적인 정서가 아니다. 그들은 현 시대를 향해 자신을 투영하려 한다. 현재의 탈이데올로기의 시선을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서보려 한다. <그들도 우리처럼>이 아니라,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질문한다. 어떠한 평가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처럼 그들은 다소 위축되어있거나 비관적이다.

철거촌에서 벌어지는 데모의 풍경, 특히 전경이 포크레인으로 이 마지막 레지스탕스들의 거처를 내려찍는 장면같은 것은 멀티플렉스에서 보는 상업영화란 환경적 틀에 전혀 걸맞지 않는 전율을 안긴다. 이 전율은 체험으로서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사회적 사실주의의 일환이다. 하지만 멜로의 정서로 시대를 재현하려는 이 영화는 오히려 80년대를 재현할 때 할 말을 하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했던, 검열과 편집으로 대중친화적 멜로 드라마만이 남아 우리를 더 공허하게 했던 7-80년대 영화들에서 보였던 절망적 슬픔이 다른 풍경으로서 전달되기도 한다. 박찬옥은 이러한 사회에 대한 정치적 위기감을 파주, 남한의 최전선 즉 휴전선의 횡단영역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그곳을 마치 마지막 저항의 집결지처럼 묘사한 후 온통 안개로 둘러싼다. 하지만 그 누가 이 안개를 욕망에 갇힌 멜로의 불안한 정서라 운운하고 말 것인가. 비유에 비유되어 갇히는 수많은 우리의 눈들, 대중영화를 보는 우리의 뻔한 눈들은 더 이상 시선이 아니며 모험도 없다. 과거의 정치, 역사를 재현하는 문제를 사유하지 않고 어떠한 확언도 어렵다는 듯 풍경의 정서에 취하며 접어버리는 것은 그 시절의 공식적 영화화를 어떤 식으로든 꺼려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니까 <파주>의 '안개'는 물질이냐 정신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내면의 심리적 문제, 실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입지의 문제. 즉 그것은 모호한 사랑의 분위기인가 80년대의 최루탄 연기인가를 우리에게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멜로가 전혀 부유하는 안개처럼 대중적 장치로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적 투쟁을 둘러싸고 있는, 참여하면서도 관찰하고 있는 서우의 불확실한 시선, 그런 그녀와의 멜로가 이선균의 원죄의식에 관련하여 작용되는 은유의 지점이 중요해진다. 우선, 이선균에게 멜로는 김보경에서 실패의 정서로, 심이영에서 죄의식의 정서로 고착되었다가 제 3의 시선인 서우의 앞에서 아주 느리게 서서히 회유한다. 이 불명확해보이는 감정은 영화의 마지막, 서우의 숙소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실상을 밝힌다. '처음부터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란 그의 고백은 혁명과 사랑의 실패, 그 과거로부터의 자의적이자 동시에 타의적인 구원으로서의 것이다. 한편 서우에게 이선균은 언니를 빼앗아간,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혈연을 앗아간 주범이면서 동시에 첫사랑과 같은 동경의 인물이다. 모순적인 감정을 보이는 그녀는 이선균을 동경하고 사랑하면서도 그를 소유할 수 없음을 불길하게 예측한다. 20대의 가장 순수했던 정신이 이미 그 시절(80년대)에 바쳐진 후 더 이상 순수함을 회복할 수 없음을 머리가 아닌 육감으로 절감한다. 그녀는 그의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대상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스스로 안다. 그렇기에 그의 곁에 머물지 않고 가장 사랑할 때 떠나간다. 박찬옥은 그 시절의, 그리고 현재까지 이 사회의 변두리 그러나 실제의 최후의 보류선에 서있는 모습의 운동권의 자화상을 2009년의, 서우의 시점을 통해 거리감을 두고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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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처음과 끝을 서우의 불명확한 시선의 이동감으로 처리함으로 그 내면을 회유하며 끝까지 이선균의 내면을 우리에게 밀착시켜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곳곳의 지점마다 386의, 이선균의 시점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충분히 불편하지 않을 만큼 개입한다. 서우가 가출하기 전 도려낸 이선균의 얼굴이 없는 결혼사진이 후에 언니가 죽고 난 후 이선균에 의해 발견된다. 서우의 눈에 불필요하게 느껴졌던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이선균이 자신이 잘려 나간 사진을 들여다보는 순간 이 땅의, 이 사회에서의 자신의 자리가 없음에 대한 회한적 정서가 깊이 파 들어 온다. 이 정체성 없음과 정처 없음의 외부인의 정서는 결국 사랑을 고백한 순간 배신당하고, 감옥에 힘없이 걸어 들어가는 처지가 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멜로는 시도자체가 불필요했던, 실패를 염두한 정서였단 말인가.

영화는 오토바이에 올라 타 파주의 끝, 군사분계선을 앞두고 있는 철조망을 횡단하며 불안하고도 쓸쓸한 눈동자를 한 서우를 오래도록 보여준다. 그야말로, 부산영화제에서 김정과 정성일의 영화와 함께 보았다면 더 없이 흥분했을 장면이다. 김정의 <경>이란 영화에서 동생을 찾아 나섰으나 실패한 양은용의 자동차안에서 멈춘 카메라, 그 안에서 국가를 떠나 아시아 하이웨이로 들어서는 자동차의 긴 행렬, 그리고 정성일의 <카페 느와르>에서의 마지막 장면, 요조의 오토바이가 그녀의 밝은 표정과 함께 경쾌하게 질주하던 신이 각각 역방향에서 겹쳐온다. <파주>의 엔딩은 <경>의 엔딩에서의 정서와 닮아있다. 하지만 박찬옥은 그 정서의 대상을 철조망 너머로서 분명하게 상정하고 있다. 넘을 수 없어 빙빙 돌고 있다. 그 철조망은 이선균의 감옥을 확장한 2009년의 것이다. 멜로는 완벽하게 정서적으로 갇혔다. 이제 명백해졌다. <파주>의 안개는 물질이다.

p.s 이 영화에서 <밀양>을 거론하는 것은 좀 성급한 처사로 보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가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것, 그 후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파국의 드라마,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있는 교회가 등장하고, 죄와 감옥이 등장하고, 면회장면이 등장하여 성경구절을 읊조리는 것. 이러한 틀에 가까운 요소들 말고 그 어떤 주제가 유사하단 말인가. 이창동 영화의 정서에 그 어떤 정치가, 그 어떤 투쟁의 결과로서의 입지가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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