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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정통토크쇼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시작한 박중훈 쇼가 지난 4월 19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초반부터 시청률과 관련해 말이 많았지만 예상 밖의 결정이다. 시청률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탓이겠지만, 복수 MC를 제안하며 프로그램을 살리려한 방송사의 의중에도 아랑곳 않고 박중훈은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EBS 외에는 좀처럼 채널을 돌리지 않음에도 이 프로그램만큼은 첫 방송부터 관심 있게 시청하였는데, 이유는 진행자에 대한 호감과 믿음도 있었고, 꽃 같은 20대가 활개 치는 TV에서 사십대 원톱 MC를 만나는 반가움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웃을 때마다 눈가에 드러나는 자글자글한 주름에서 <깜보>로 시작해 숱한 영화와 마주해온 나의 청춘시대를 새삼 떠올리기도 하였으니, 이런 까닭에 진심으로 장수하는 프로그램이 되어주길 바라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쇼는 폐지되었고 박중훈은 씁쓸하게 퇴장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우연찮게 이와 관련한 아연실색할 기사를 보게 되었다.

문제의 내용인 즉, 박중훈 쇼는 그동안 대한민국 방송 언론을 장악한 좌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었고, 도무지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TV로 불러낼 수 없었던 장동건과 김태희 등이 출연한 것이 그 사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통상적인 쇼 프로그램의 주관부서가 예능국인데 반해 박중훈 쇼는 기획제작국 소관이었음을 지적하였다. 한술 더 떠, 연예계 대통령이라 불릴만한 박중훈이 과거 한미 FTA와 스크린쿼터 반대투쟁에 선봉에 섰던 전력을 거론하면서 좌파 방송제작자들이 박중훈을 앞장세워 이념몰이에 도구로 쇼를 만들었으며, 박중훈 역시 정치입문의 수순으로 MC를 맡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였다. 요약하면, 박중훈 쇼는 좌파 방송인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하여 박중훈을 내세웠다가, 시청률 하락으로 좌초한 시대착오적인 기획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반미주의자인 박중훈이 할리우드 진출을 도모했다는 것 자체가 해프닝이고 미국을 졸로 본 처사라는 지적이다. 세상에! 이것이 유력 언론사의 데스크가 우리 문화계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니.

일개 방송진행자인 배우의 성향과 정치적 미래까지 거론하면서 쇼의 폐지에 반색하는 걸 보아 글쓴이는 구순기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임에 분명해 보인다. 기자의 생각대로 아니, 데스크의 주장대로 지난 10년간 진보좌파 세력이 방송연예계를 포함한 문화계 전반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사실이라고 치자. 정권이 바뀌었으니 정치적 성향에 반하는 인사와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받은 만큼 돌려줄 심산인지, 머리끝에서 발톱의 티눈까지 죄다 오른 쪽으로 이동시켜놓아야 나라꼴이 제대로 된다고 믿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학습효과의 가장 부정적이고 희귀한 사례를 사회 전반의 대립과 갈등으로 피워낸 악취란 아마도 이런 것을 일컫는 말일 게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 연예인과 국회의원이 질세라 “북한에 가라” “천황 밑으로 가라”고 논박을 벌이질 않나, 연예프로그램 하나에도 태산 같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좌파척결의지를 불태우질 않나, 상식 밖의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으니 이보다 강퍅한 세상이 또 있을라고. 시청률 저조에 따른 쇼 프로그램 폐지마저도, ‘더 이상 좌파의 이념에 시청자가 좌지우지되지 않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할 따름이다.

언젠가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대한민국의 우파는 양심이 없고 좌파는 체면이 없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내가 사는 나라가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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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다만, 해당 기사의 링크를 남겨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2009.04.24 15:02
  2. 좌파인지는 모르겠으나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중훈이나 교양pd들이 좌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박중훈 쇼가 재미없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글쎄요. 한마디로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는 그냥 하고 싶었던 쇼를 한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렇다고 유익했던 것도 아니었고. 포지셔닝이 잘못된 것이었는데 이를 두고 그런 해석을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저 쇼를 왜 저 사람이 저런 포맷으로 해야 했나 좀 의문스럽긴 하더군요.

    2009.04.24 15:34
  3. Favicon of https://slimer.tistory.com BlogIcon Slimer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극 우 적인 사람들의 이상한 의미씌우기 음모는 짜증을 유발하네요..

    2009.04.24 17:31 신고
  4. 마법사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우파라고 칭하는 자들이 정말 우파에 속하는 자들일까요? 권력과 사리사욕에 눈이 먼 승냥이 같은 짐승 새끼들이죠.

    2009.04.24 18:25
  5. Favicon of http://delpini.egloos.com BlogIcon 델피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좌파 우파 운운하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방송가에 뿌리 깊이 좌파의 세력이 내려있다고 쳐도, 그게 과연 좌파만의 문제일까요?
    좌파 우파의 이념을 떠나 그렇게 너는 진보적인 성향이 강하니 좌파다! 라고 단정짓는 생각이 가장 무서운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전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만, 좌파도 우파도 다 마음에 안들고 그냥 제 소신껏 행동하거든요. 요즘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말씀하신대로, 공인들의 무서운 발언,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언론에서 이념몰이를 위한 방송을 한다고 생각은 전혀 안합니다. 설사 그렇다 쳐도 깨어있는 젊은이들이 몰이 당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2009.04.24 20:03
  6. Favicon of https://hummingbird.tistory.com BlogIcon 벌새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세상 모든 것을 이념적으로 바라보면 끝이없죠.

    2009.04.24 22:14 신고
  7. 다리미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이~ 설마..

    그런 미친넘이 버젓이 한국에서 신문사에 기사 쓰고 할 리가..
    저런 기사를 낸 신문사는 아무래도 기자들 정신감정을 시켜야 정상일 것 같은데요.. ㅠㅠㅠㅠ

    2009.04.24 22:16
  8. 글쎄요  수정/삭제  댓글쓰기

    좌파우파 그런 깊게보는 시선이 없는 저로서는.

    박중훈쇼 재미없어서 안보게되던데요.

    조기조영 하게 된 제일 큰 이유는 재미가 없었기때문 아닐까요

    2009.04.24 23:19
  9. hoha  수정/삭제  댓글쓰기

    억지로 끼워맞춰보는데 전혀.... 공감도 안되고... ㅡㅡ;;
    제 기준에서 안 본 이유는 그냥 이유는 "재미없다" 입니다.

    2009.04.24 23:26
  10. Favicon of http://dicek.egloos.com BlogIcon 방랑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색깔론자들은 어디까지 가야 그놈의 색깔론을 그만둘까요.
    빨갛고 파랗고, 좌측편향 우측편향....

    제가 봤을때 이 나라는 진정한 우익, 좌익도 없는 겉만 번드르르한 이념쟁이들 뿐인데 말이죠.

    보수, 진보의 개념도 비틀린것같습니다. 일제시대때 친일한 놈들이 현재의 보수랍니다. 근데 그놈들은 원래로 치자면 진보쪽에 가깝지요.

    독립투사들 목숨바치고 머리카락 하나에 목숨 걸었던 사람들 그사람들이 보수라면 보수지요. 근데 그 사람들 그시기에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그럼 지금의 기득권층, 우파, 파란놈들은 진정한 보수라 볼수 있을까 말입니다.

    휴. 그냥 색깔론이 나와서 제생각을 지껄여봤습니다.
    어쨌든 저 이념분리적인 사고는 제발 하루빨리 사라졌으면좋겠습니다.
    신문,뉴스를 보기 싫을정도니말이죠.

    2009.04.25 16:36
  11. Favicon of http://georgesheen.tistory.com BlogIcon windytree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히 심각하시기는~

    전 그냥 재미가 없었어요. 박중훈과 비슷한 연배임에도. 그냥 그저 그랬어요.

    2009.04.27 15:17 신고
  12. Favicon of http://seekerjh.egloos.com/ BlogIcon 길벗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론의 찌라시스러움에는 백번 공감하지만 박중훈쇼 자체는 재미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스크롤을 내려보니 이미 비슷한 댓글이 여럿 달려있네요.

    2009.04.2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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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저녁 서교동. 9명이 참석한 가운데 네오이마주 5차 세미나가 열렸다. 프레시안무비 기자인 김숙현 씨의 발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 발제자는 ‘켄 로치의 영화들’에 붙여 진 ‘좌파’라는 딱지를 뗌으로써 감독을 둘러싼 담론의 한계를 허물 수 있을 것이라며 운을 뗐다. 아래는 이날 사용된 발제문과 토론문을 요약해 정리한 내용이다.


켄 로치를 둘러싼 담론에는 언제나 그의 정치성과 계급성이 중심이었고, 그는 언제나 ‘좌파 감독’의 수식어로만 불렸다. 물론 켄 로치는 언제나 첨예한 정치적 입장에서 계급을 중심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오긴 했지만, 켄 로치의 영화가 언제나 첨예한 계급성만을 다뤘던 것도 아니며 그와 그의 영화에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켄 로치의 영화를 둘러싸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절반으로 축소되고 만다. 지금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며 여전히 날카로운 통찰력과 시종일관된 깊은 휴머니즘과 유머가 배인 영화들을 만들고 있는 이 감독이 소위 ‘이데올로기의 종언’ 시대에 함께 이름이 지워지는 것은 매우 부당한 처사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는 언제나 재미있었고, 지금도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의 영화미학 역시 피상적인 리얼리즘의 수준이 아니라, (리얼리즘이 아닌) 리얼리즘을 둘러싼 담론의 한계를 깨나가며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본다.

연기에 경험이 없는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고 대체로 다큐멘터리 기법을 많이 차용했던 초기의 영화와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켄 로치의 영화들은 드라마의 극적 플롯이 강해지고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며 캐릭터들도 보다 선명해진다. 이것이 리얼리즘을 해치는가? 그렇지 않다. 현실의 풍경을 그대로 복제해내는 게 리얼리즘이 아니듯, 켄 로치의 영화들은 이런 ‘극적 장치’들을 통해 그 어떤 영화의 인물들보다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활기 넘치는 캐릭터들이 넘쳐나며, 다른 감독들이라면 쳐내고 말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이 사건들은 결코 지루하지 않을 뿐더러 그 자체로 캐릭터들의 ‘모험’을 다루듯 묘사된다. 그 와중에 켄 로치가 절대로 잃지 않는 것은 바로 ‘유머’이자 ‘공동체 정신’이다. 켄 로치의 영화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홀로 고독하게 고민하는’ 캐릭터들이 아닌, 무리지어 함께 토론하고 격렬하게 부딪히며 ‘함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 애쓰는’ 인물들로 채워진다. <하층민들>에서 무단으로 빈 집을 개조해 사용하는 일련의 노동자들의 장면들, <랜드 앤 프리덤>에서 내전의 와중에서도 바리게이트에서 웃고 울며 농담하고 노래 부르는 게릴라들이 등장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도 데미안은 홀로 고독한 결단 끝에 독립투쟁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고, 기차역에서 일련의 사건을 보며 결단을 내린다. 이들은 영국군에 체포당했다가 옆에서 테디가 고문을 당할 때 다함께 노래를 부름으로써 테디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서 소외돼 있는 이들은 영화 속 착취자들, 특히 최근작 <자유로운 세계>에서 점차 착취자의 논리를 완성해나가는 앤지다.

많은 이들이 켄 로치의 영화들을 절망과 비극으로 치닫는 영화들이라 말하지만, 나는 켄 로치의 영화야말로 진정한 희망의 영화라 생각한다. 그것은 영화를 단단히 떠받치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유머와 생기 때문이다. 켄 로치 자신도 말했듯, “단기적으로 보면 언제 어디서나 비극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절망적이지만, 사람들이 계속 싸우고 있고 앞으로도 싸울 것이기 때문에 낙관적일 수밖에 없는” 바로 그 희망을, 켄 로치의 영화들은 진지하게,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1. 랜드 앤 프리덤

대체로 ‘현재의’ 노동자 영화 혹은 청소년 영화들을 만들던 켄 로치가 1930년대로 돌아간 것은 바로 스페인 내전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대체로 공화군 vs. 프랑코 파시스트군의 싸움 정도로만 묘사되는 것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스페인 내전이지만, 켄 로치는 이 영화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이 영화는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반드시 세트로 봐야 하는 영화인데,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파시스트 군에 맞서 싸웠던 세 갈래 진영의 대립과 분열마저도 매우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무려 12분간에 걸친 토론장면이다. 이 장면은 여러 개의 컷으로 분할되어 있지만, 카메라는 단 한 번도 전체 회의장을 조망하는 부감 숏을 사용하지 않은 채 카메라의 높이를 발언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며 영화를 진행해 나간다. 땅과 재산을 집단화하자는 주장과 얼마간의 사유재산을 일정하자는 주장이 팽팽히 맞부딪치는 가운데, 대체로 주요발언자들은 한 컷에 한 명씩 담기는 미장센으로 연출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비교해서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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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유로운 세계


켄 로치가 최초로 피 착취자가 아닌 착취자의 입장을 그려냈다고 해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앤지는 ‘여성 프롤레타리아’다. 대자본가에게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인 그녀가 자신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 위에 서게 되며 서서히 소자본가로, 착취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켄 로치는 매우 치밀하게 그려나간다. 절대 악 vs. 선한 우리 편의 싸움이라는 쉽디 쉬운 공식의 영화가 아닌, 평범한 우리, 가난하고 힘없는 우리가, 우리의 사회에 우리보다 더 열악한 이들이 분포하게 됐을 때 얼마나 쉽게 착취자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그리는 영화. 사회가 점차 분화되고 다양해지는 가운데 피착취자의 그룹도 다양해지는 현실, 신자유주의의 가속화와 함께 점차 분열되고 고립되는 노동자의 말로를 고발하는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층민들>, <레이닝 스톤>, <내비게이터>와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김숙현_프레시안무비 기자)

<자유로운 세계>


이어 백건영 편집장은 토론문을 통해, 「켄 로치 Ken Loach의 영화세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살펴보아야 몇 가지 것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아일랜드 해방 전선과 스페인 혁명과 대처리즘과 영국 노동계급의 문제와 노동계급이길 포기한 하층민들의 삶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며 한 감독의 영화세계를 조명하기에는 벅찬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대변되는 켄 로치 영화의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서도 노동계급에 한정시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면서 프리시네마에 앞서 파악해야 할 것은 영국 뉴 웨이브라고 했다. 보다 세밀하게 말하자면 1930년대 존 그리어슨으로 대표되는 다큐멘터리 운동과 1950년대 프리시네마를 거쳐 뉴 웨이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나 1956년 시작된 영국 뉴 웨이브의 내력과 스타일을 살펴봄으로써 켄 로치의 영화에 대하여 단편적으로나마 탐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덧붙여 켄 로치는 ‘좌파감독’이라는 고착화된 수식에도 불구하고, 브리티시 뉴 웨이브의 적자로 또한 뉴 웨이브의 발목을 잡아왔던 미학적 한계를 가감 없는 시선으로 돌파해온 인물이며, 그의 영화는 스페인 혁명전선에서 아일랜드의 황량한 언덕까지, 맨체스터 공장지대에서 L.A 초고층빌딩 속까지 동서좌우를 막론하고 쉼 없이 횡단하고 종단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달리 보면 켄 로치만큼 적합한 대접을 받지 못한 감독 또한 드물다고 발제자의 주장에 동의하였다. 그러니까 관용구처럼 사용해온 ‘급진 좌파감독’이라는 수식으로 인해 켄 로치의 영화미학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김시광 씨는 켄 로치의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영화가 의외의 재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레이닝 스톤>을 예로 들었다. 이 영화는 딸의 성찬식 드레스를 사기 위한 실업자 가장의 눈물겨운 분투를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하층민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전순영 씨 또한 보면 볼 수록 켄 로치의 영화가 재미있다는 점을 들었는데, 다만 그의 영화와 영국 영화들이 다른 유럽영화에 비해 비평적으로 많이 다뤄지지 않는 배경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참석자의 사정 때문에 예정보다 이른 10시 경 세미나를 마쳤고, 못 다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어차피 켄 로치의 영화세계를 단 몇 시간의 세미나로 풀어낼 일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켄 로치의 영화세계가 오직 노동현장과 혁명전선에 들이댄 카메라에서 모든 것이 형성되었다는 단편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에게서 발견되었다는 점은 의미를 둘 만하다. 말하자면 켄 로치에게서 급진 좌파의 그림자를 벗겨내는 일이야말로 그를 진정한 거장에 올리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켄 로치 필모그래피 (텔레비전 드라마 작업 제외)

1967 불쌍한 암소 Poor Cow
1969 케스 Kes
1971 가족생활 Family Life (수요일의 아이 The Wednesday's Child)
1979 블랙 잭 Black Jack
1980 사냥터지기 The Gamekeeper
1981 외모와 미소 Looks and Smile
1986 파더랜드 Fatherland
1990 히든 아젠다 The Hidden Agenda
1991 하층민들 Riff-Raff
1993 레이닝스톤 The Raining Stone
1994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Ladybird, Ladybird
1995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1996 칼라송 Carla's Song
1997 명멸하는 불빛 The Flickering Flame
1998 내 이름은 조 My Name is Joe
2000 빵과 장미 Bread and Roses
2001 네비게이터 The Navigators
2002 달콤한 열여섯 Sweet Sixteen
2004 다정한 입맞춤 As Fond Kiss
2006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7 자유로운 세계 It's a... Free World
2009 에릭을 찾아서 Looking for Er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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