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주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2.28 [주노] 언젠가 다시 여기 오게 될 거다. (3)





미국개봉당시 7개 상영관에서 시작해 2,500개 스크린으로 확대된 영화, 개봉 12주차인 현재도 박스오피스 8위인 영화, 언론과 대중과 평단의 만장일치의 평가를 바탕으로 박스 오피스 17위에서 시작해 개봉 5주차에 1위를 쟁탈한 할리우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을 만들어낸 영화. 24억원의 제작비로 1,200억 원 이상 벌어들인 영화, 이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대체 무슨 영화일까? 10대 임신과 출산이라는 뜨거운 감자 위에 우정과 사랑이라는 토핑까지 뿌려 맛깔스럽게 완성시킨 [주노_Juno]가 그 주인공이다. 많은 이들이 16살 임산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엘렌 페이지 Ellen Page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고 있으나, 나는 J.K 시몬즈 J.K Simmons가 연기한 주노의 아버지에 주목하려 한다.

쉽게 생각해보자. 불과 열여섯 살밖에 안 된 딸에게서 임신사실을 통보받았을 때, 당신이 아이의 아버지라면 어떤 식으로 반응하겠는가. 곤죽이 되도록 패버린 후 집에서 내쫓는다? 아마 80년대에는 그런 아비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줄 담배를 피우면서 아이를 애써 외면해버린다? 충분히 그럴 만 하다. 아니면 애들 교육을 어떻게 했느냐고 아내를 책망하면서 가문의 몰락을 선언하고는 자리보전하고 누워버린다? 딱 가부장적 아버지의 모습이다. 사람마다 나라마다 이렇듯 상황에 대처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야 서로 다르겠지만, 당황스럽고 막막하고 가슴 답답함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터이다.

유럽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 중 하나로, 유태계 랍비의 아들과 이태리 가톨릭 신도의 딸이 결혼을 할 때 양가부모는 극렬하게 반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랑신부는 어쩔 수 없이 도망을 쳐 자신들끼리 교회에서 혼인을 한 후 양가에 통보를 한다. 그러면 양가부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신랑신부를 환영하면서 따뜻하게 맞아준다고 한다. 원칙은 고수해야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돼버리면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임신과 출산 문제를 놓고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주노가 현명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그녀의 아버지의 모습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이를테면, 아이의 임신과 입양결정 소식을 접한 엄마가 “네 건강부터 챙겨야 돼, 임산부 비타민이 뭔지 알아봐야 겠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주노, 그 부부 만날 때 내가 같이 가겠다”며 아이의 미래 먼저 걱정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게다가 “나는 네가 현명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라던 안타까운 읊조림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죄송해요”라는 주노 언행의 진정성을 유발시킨 멋진 화법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윽박지르고 단죄하기보다는 사안의 중요성과 해결방식에 치중하여 지혜롭게 대처하는 모습은 (비록 영화 속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부모들이 배워야 할 대목이라 하겠다. 더불어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가 없다. 주노가 16살이니 여기에 맞추어 보자.

우리나라 法에서는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의 권리는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16살인 주노도 법적으로는 임신과 출산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럼에도 10대의 임신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각이 곱지 않은 것은 왜인가? 이는 기혼자의 임신은 당연하고 성스러운 일이지만, 미혼이거나 미성년의 임신은 부정하고 불량한 행위의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며 섹스의 정당성이 기혼자에게 국한된다는 사고와도 무관치 않다. 특히 미성년자의 임신을 바라보는 사회적시선이 '한 생명의 잉태'라는 결과 보다는 임신을 위한 과정, 즉 어린 아이들이 섹스를 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이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임산부의 인권은 외면당한 채 못 된 행위를 한 비행청소년이라는 멍에만 뒤집어 쓰게 되니, 이 아이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당연히 낙태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조절할 능력이 없는 아이가 또 다른 생명을 온전히 지키기 힘들다는 건 불을 보듯 뻔 하다는 주장, 분명 일리 있기는 하나 원인과 문제해결의 접근방식은 여전히 전근대적이라는 얘기다. 반면 [주노]의 경우는 다르다.

주노가 부모에게 임신사실과 입양결정을 알리면서 내놓은 이유는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가 방으로 올라가자 주노의 아빠 역시 “난 아직 할아버지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시인함으로써 딸의 결정을 인정하고는 여전한 신뢰를 보내고, 주노의 양엄마 역시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진 않았느냐”고 낙태고려 여부를 묻고는, 아니라는 대답에 “아주, 용감하구나”라며 딸애의 결정에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낸다. 심지어 딸애의 임신사실을 접한 아버지는 격노하기보다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물은 후 “난 그 애는 그런 능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면서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데 일조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임신을 불러온 행위에 치중하여 질타하기보다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임을 인지하여 지혜롭게 앞길을 준비하는 모습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라면 귀담아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우리사회와 영화 속 주노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 사이의 차이점이 발견되는 지점이라 하겠다.

영화가 종반에 이르렀을 즈음, 완벽한 커플처럼 보였던 대리부모의 파경사실을 알게 된 주노는 한적한 도로 변에 차를 세워놓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영화를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이 장면은, 준비되지 않았던 소녀가 산모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체득한 어른스러움과 순수함의 가치를 알려주고 있다. 엉뚱하고 거침없던 16살 소녀가 아이를 가진 후 훌쩍 커버린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아버지의 조언에 힘을 얻은 주노는 진정한 사랑의 대상을 발견하게 되니, 아마도 그날 그 길 위에서 흘린 눈물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린 딸아이의 임신이란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사건은 아니다. 그렇다고 남의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상상만 해도 속상하고 암담하고 아이의 장래가 걱정되어 겁이 덜컥 날 만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주노의 아버지는 달랐다. 달라도 아주 다른 것이, 침착하고 의연하며 현명하고 유머까지 두루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처럼 흔치 않은 그럼에도 분명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그린, 근래 보기 드물게 아버지와 딸의 하모니가 속살거리는 멋진 이야기 [주노]에서 주인공 주노를 당당하고 지혜롭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음을 잊지 말자. 덧붙여 출산한 딸아이의 병실을 지키던 아빠가 주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건네던 말은 어떤 미사여구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데, 최근 몇 년 간 나는 이처럼 멋진 말을 영화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언젠가 다시 여기 오게 될 거다. 너의 때가 오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노.. 얼마전에 친구랑 봤던~~^^
    어떤 언니가 상받은 영화라고 추천해줘서 기대 많이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독특한 영화였어요~
    감상평두 잘 읽었습니다~ 재밌었어요

    2008.02.28 20:22
  2. 지나가던나그네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노 진짜 재밌게 본 영화였죠.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미국인 친구한테 한국에서는 중고생이 임신한다면, 타의에 의해서 학교를 그만두거나, 자퇴를 당하거나, 최소한 학교를 쉬어야 된다고 하자 놀라더군요.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임신한 여학생들을 꽤 볼 수 있는듯...미국에서도 미성년자의 섹스가 옳지 않다는 사회적 동의가 있긴 하지만, 그게 임신으로 이어진 경우에는, 과거를 비난하는 것 보다는 미래를 위한 현명한 결정을 더 강조하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대사 무척 마음에 들어했는데...후후...꽤 슬픈 대사이기도 했죠...

    2008.02.28 22:37
  3. 이런!!스포일러면 말씀을 하셔야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이 영화 보지도 않았는데!!!

    글은 잘 쓰셨지만 스포일러면 먼저 스포일러라고 하시는게 예의일듯!

    이 영화 볼 예정인데 이러면 기대감이 줄잖아요ㅠ.ㅠ

    2008.02.29 09:05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89
  • 53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