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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


<24시티>는 <소무> <플랫폼> <세계> <스틸라이프> 등을 만든 지아장커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띤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작년 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에서 처음 관람했다. 이쯤에서 고백할 것 한가지. 나는 지아장커의 영화들을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며, 그가 각종 비평에서 받는 대단한 찬사들에도 크게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24시티>는......보고 나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좀 지루했다.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유명한 배우들을 마치 청두의 노동자들처럼 연기시켜 인터뷰를 한 작업에 대한 놀라움은 있었지만, 그래서 무엇을 위해 앞서 말한 작업들을 한 거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찜찜한 마음을 영화에 갖고 있던 중 다시 영화를 보았다. 두 번째 관람 후 나는 '아, 두 번 봐야 할 영화였구나.' 라고 직관적으로 생각했다. 여전히 모호했고, 그러나 감동적이었다. 영화는 과거 찬란했던 때 청두에 몸담고 노동했던 다수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자식으로 태어나 현재의 중국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사람을 인터뷰한다. 이 중엔 진짜 노동자도 있고 (<색, 계>의)조안 첸, (지아장커의 전작 대부분에 나온)자오타오와 같은 배우들도 있다. 이 지점에서 다큐와 극영화는 기묘하게 서로의 몸을 합친다. 그리고 그 몸에 내러티브의 전개에 분열을 내고 모호함을 더하는 장면들까지 겹쳐진다. 노동자들은 쑥스런 얼굴로 카메라와 눈을 맞추며 오래도록 서 있고, 어릴 적부터 여기서 컸다는 어린 여자아이는 밤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옥상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탄다. 조용히 응시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말을 뱉어내는 인터뷰이들과 아련함을 자아내는 시들과 또 다른 영상들이 합쳐질 때, 영화는 그만의 리듬감을 갖고 움직인다.

하지만 지아장커는 '영화적 형식'을 혁신하는 데서 멈추는 감독이 아니다. 그에게는 영화만큼 윤리와 예의가 중요하다. 24시티는 우리가 쉽게, 혹은 함부로 영화 속 대상들에게 감정이입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현실을 담는 다큐멘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진정한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관객은 참을성 있게 그들의 쉼없이 이어지는 말을 들어야 하고, 때론 흐름을 깨는 여러 장면들에 몸을 맡겨야 한다. 인내심 없는 관객이었던 나는, 첫 관람 때 아마 '듣기'에 실패했을 것이다.

또 하나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은, 과거를 노스탤지어의 감정(만)으로 바라보지 않는 영화의 시선이었다. 과거를 떠올려 재구성하고 추억하는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그 시간에게 향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병을 앓고 그를 불러내어 오는 것은 예술가의 숙명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 그 병은 영화가 더 나아가지 못하는 독이 된다. 영화가 존재하는 시점은 '지금 여기', 즉 현재다. 무턱대고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를 지탄할 때 그 영화는 자기부정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지아장커는, 분명 과거를 생각하나 '그래. 그 때가 좋았어.' 식의 단순한 노스탤지어적인 생각으로 끝맺지 않는다. 다만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노동이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던 시대를, 시간을 추억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재구성한다. 그리고 이제 과거와는 다른,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을 중립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세대는 "저는 노동자의 딸이니까요" 라고 말하면서, 청두를 허물고 들어서는 최신식 단지 24시티에 부모님을 모실 거라 말하는 세대다. 영화는 이 앞뒤 모호한 발언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청두의 노동자들을 찍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조용히 응시한다. 영화의 시선은 현재진행형의 시선임과 동시에, 스러져 가는 과거의 시간들을 찬란한 생명의 시간으로 되돌려 기억하는 성숙한 향수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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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이것도 보여줄 수 있다'라는 가능성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의 전령사인 헤르메스를 발목에 날개가 달린 신으로 묘사해 놓았다. 등 혹은 어깨죽지에 날개가 달린 것이 아니라 발목에 날개를 그려넣은 까닭은 헤르메스의 동적인 움직임을 더욱 강조한다. 과거 신화의 주인공은 제우스였는데, 제우스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존재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천둥과 번개를 이용한 물리적인 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헤르메스로 대표되는 전달꾼이 있었기 때문이다. 헤르메스를 전령사로서 기능하게 하는 힘, 즉 전령사로서의 설득력을 갖게 하는 것은 제우스의 힘에서 기인한다. 마찬가지로 제우스의 힘을 유지시키는 것 또한 전령사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권력과 통신이 일인에게 집중되고 하나의 망을 통해 파급됐다는 과거 정치 구조를 은유한 것과 같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헤르메스가 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권력을 분산해준다. 1인에게 부여되는 권력은 같지 않다. 얼마나 더 접근성이 뛰어난 통신망이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디지털을 통해 생성해낸 텍스트는 그것이 비공개가 아닌 이상 최소한의 접근성을 허용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힘을 가진다. 여기에서 중요한 방점이 하나 찍혀야 한다.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없는가. 전자의 경우는 '아고라'와 '광장' 등을 통한 정치 활동은 이 힘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과거에도 존재하던 방식의 소통이 새로운 매체를 타고 원활해진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디지털 상에서 당장의 힘을 발휘할 것을 목표하지 않으나, 이 힘이란 것은 질량불변의 것이어서 어느 방식으로든 새어나오게 돼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영역에서 발휘된다.

디지털을 통한 활동은 주로 웹을 통해 하이퍼 링크를 타고 이뤄지는데, 하이퍼 링크의 기본 성질은 동질성 혹은 유사성에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동질성이라거나 유사성이란 것 자체에서 체계성이나 논리성이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 페이지에서는 중대하게 다뤄질 수 있어도, 링크를 타고 들어간 다른 페이지에서는 단지 한 구절로 기록돼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을 목적에 맞지 않는 '쓰레기 정보' 혹은 '정보 바다의 범람'이라고 부르는 관점이 있고, 디지털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정보들을 잘 분류해내어야 한다고 권장한다. '올바르게'라는 말에 적힌 말에 대해 우리는 좀 생각해봐야 한다. 이 말을 '효율적으로' 라는 말로 바꿔 쓰일 때 더욱 분명하게 의미가 전달된다.

효율적인 방법과 체계적인 논리가 권장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디지털을 효율과 논리로서만 대하던가. 그보다는 검색창에 친 한 가지 키워드를 통해 상관관계가 상이한 것들이 하나로 엮여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때, 그것이 더 큰 정보를 제공하거나 발상의 전개를 도운 경험은 없었을까. 논리성과 체계성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생산해내거나 수집하는 과정에서는 핵심내용으로 수렴될 수 있는 자료들만을 필요로 한다. 그 밖에 검증하거나 논증하기 어려운 자료들은 쳐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해당 텍스트 자체의 힘은 강력하게 길러주지만, 너무도 예각화를 시킨 나머지 채택되지 못한 다른 자료들과의 연계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 추측이나 직관, 그리고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나' 느껴지는 것으로 이어낼 수 있는 것을 '갖다붙이기'라고 하여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해버리기도 한다.

이제 '그것이 무엇이든, 얼마나 멀리 있든' 상관없는 세계가 펼쳐졌다. 논리성과 체계성은 필요조건으로 삼고, 그것의 지배력에서 자유로워져도 괜찮은 것이다. 저 멀리에 무엇이 있다고 상상했으면 그것과 관련된 키워드를 통해 상상한 그 이상을 볼 수 있다. 이 확장은 단순 탐험의 차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키워드 하나로 확장된 세계를 경험하고서는 다른 키워드를 발견하기도 하고 발명해내기도 한다. 한 가지 키워드로서 추려낼 수 있는 키워드는 무한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두뇌 속에서는 키워드를 조합해낸다. 고로 이 세계의 화두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묻는 게 아니라, 연결시켰으면 이제 뭘 볼 것이고 뭘 만들어낼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24시티>를 감독한 지아장커는 CinDi2008 관객토크에서 매체의 자유로움이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낀 에너지를 표현과정에서 역동적으로 풀어냈다는 의미다. 디지털은 우리 현실에 조합을 통해 나온 경우의 수 대부분을 등장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결과로 세상에 보여질 텍스트는 분명 필연성을 갖고 있으나, 일일이 논증해내기 보다는 그 바탕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디지털을 통한 창작, 소통과정을 통해 보다 다양한 것들이, 이전에는 차마 보여지지 못했던 것들이 영상과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아울러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 당신이 볼 세상은 양적으로 얼마나 커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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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Di 2008에서 보낸 10시간

필진 리뷰 2008.08.24 10:56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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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영화제를 찾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의외성이다. 카탈로그에 소개된 시놉시스 몇 줄을 보고, 감독 이름 하나만으로 선택한 영화들이 발견의 기쁨을 줄 때, 영화제를 찾는 즐거움은 몇 곱절이 된다. 그러고 보면 오늘 시네마디지털2008에서의 선택은 절반이 넘는 성공이라 자부할 만하다.

먼저 2회 . 오호라, <크레이지 스톤>의 닝 하오다. 그가 올해 완성한 중편 <기적세계>는 압축된 액션활극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도망치는 범죄자와 뒤를 쫓는 형사 사이의 긴장감과 추격의 서사. 그 틈으로 끼어드는 여자 인질과 인질범의 대치가 주는 긴장감. 이를 매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온라임 게임. 6세대의 리얼리즘이나 장이모우의 무협 대작만이 존재할 것 같은 대륙에 닝 하오 같은 순한 오락 영화를 만드는 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 <기적세계>다(정성일 선생은 <본 얼티메이텀>을 언급했다!). 무엇보다 28분이란 시간 안에 두 인물의 성격을 명확히 각인시키는 것도 모자라 아슬아슬한 서스펜스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라스트의 반전은 보너스다.

이런, 아무런 정보가 없다보니 당혹스러움은 배가 된다. 로토스코핑? 인도 출신 거리의 철학자가 설파하는 명상과 점성술, 그리고 삶에 대한 철학이 그럴싸한데, 내용에 따라 얼굴을 제외한 배경과 형체가 바뀐다. 그렇다. <스캐너 다클리>와 <그녀는 예뻤다>에서 확인한 바 있는 바로 그 기법이다. 감독은 <스캐너 다클리>에 참여했다는 애니메이션 디렉터로 참여했다는 밥 새비스턴. 이런 게 바로 형식과 내용의 합일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현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심금을 울렸다.

아, 고민 없는 선택은 종종 괴로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김곡, 김선의 <임계밀도>와 <자살변주>가 그러한 예다. 실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 작품에 대해서는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찰리(<미녀삼총사>의 바로 그 찰리에서 따 왔다는!)라는 연쇄살인마와 그에 맞서는 여주인공의 이야기, 라고 김선 감독이 설명했다. 내러티브가 있다고 GV에서 강조했지만 이 실험영화는 필릭커(그렇다, 그 깜빡거림!)와 네거와 포지티브 필름의 교차, 노이즈 사운드에 대한 영화적인 실험이다. 아, 이런 건 도저히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닝 하오 감독이 준 오락적 쾌감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영화라는 것만은 명심하시길.

뒤이어 마주한 작품은 개막작 상영에서 영사사고가 났다는 바로 그 <24 시티>다. 와우, 지아 장커에게 경배를! <스틸 라이프>와 마찬가지로 <24 시티>는 사그라지는 공간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과 존경을 보낸다. 이번엔 청두라는 공장지대다. 청두는 비행기 군수 공장 ‘팩토리 420’가 들어 서며 전쟁 후 번창했던, 우리와 비교하자면 울산과 같은 도시다. 종종 등장하는 공장의 입구를 정면으로 담은 롱 숏으로 시작하는 <24 시티>는 공간의 영화이자 ‘언술’의 영화다. 형식적으로는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 허물기. 지아 장커는 청도라는 공간을 이미 90년대 후반에 담으려고 계획했다는데, 이 죽일 놈의 형식이 문제였단다. 그래서 그 후 고민을 거듭하며 100여명이 넘는 노동자와의 인터뷰 끝에 극영화를 고집할 필요도,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로 빼곡히 채울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래서 모두 8명의 인터뷰로 채워진 이 영화는 실제 인물과 조안 첸을 비롯한 중국의 유명 배우들이 뒤섞인 형태로 완성됐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8명의 노동자 개개인의 사정으로 그리는 ‘청두’의 점묘화다. 우리는 각기 다른 세대가 기억하는 청두와 팩토리 240에 대한 사정을 청취하고 혹은 그 이야기를 건네는 그들의 얼굴을 관람하며 그들의 기억에 동참하게 된다. 누구는 좋았던 시절을 회고하고, 누구는 공장의 꽃이었던 젊은 시절과 그에 빚진 현재를 한탄하며, 누구는 그 공장에서 은퇴한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노동자요, 노동자의 자식이라는 점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일찍 늙는다”거나 “잎은 무성해도 뿌리는 다 하나”라거나 하는 전언은 그들이 사회주의 중국의 ‘노동자’임을 잊지 않게끔 한다. 결국 그들이 건설했지만 쇠락해 가는 청두는 그 스스로 사회주의 중국의 역사이자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의 증거인 셈이다. 결국 지아 장커는 이 실제와 허구를 뒤섞은 인터뷰집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중국공산당이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젊은 세대에게 감추고 싶어 하는 그 진실로서의 역사.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마치 사진을 찍을 때 포즈를 하고 멈춰 카메라 앞에 선 노동자들의 면면이다. 아련한 과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그 땅에 발을 디디고 선 현재의 얼굴이 묘하게 겹치는 것이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울림을 전달해 준다. 지아 장커를 주목하는 이유는 속도전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과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24 시티>, 개봉 하면 놓치지 마시라.

물론 영화제에서의 선택이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기적의 메데아>가 딱 그런 경우다. 우훗,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몇 번이고 읽었지만, 그게 다 최소 5년 많게는 10년이 넘은 일이라 ‘메데아’라는 캐릭터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씀. 메데아는 사랑과 복수의 화신인 전형적인 악녀지만 그러한 메데아의 궤적이 반대로 가부장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자벨 위뻬르가 연기한 이렌 또한 비슷한 캐릭터일 수 있겠지만 영화는 분절된 플롯과 널뛰는 편집으로 인해 신화의 인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구조를 자랑한다. 아, 유럽영화 특유의 ‘아트’ 영화 분위기를 시종일관 뽐내고 있기에 이 영화를 진심으로 즐기기 어려웠다, 솔직히 고백한다.

하지만 <기적의 메데아>가 불러온 열패감을 해소시켜 준 고마운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린다린다린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의 야마시타 노부히로. 42분짜리 소품인 <참 작은 세계>는 기이한 SF 영화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을 보지 않았으니 비교하기는 힘들고, 다른 전작 두 편과 비교하자면 이 영화는 <린다린다린다>에 가까운 작품이다(그러니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보고 약간 당혹스러웠다면 안심하시라). 100년 뒤 많은 이들이 화성으로 이주했지만, 한 시골 학교에서 의욕 없는 선생님과 세 명의 초등학생, 그리고 괴짜 남자가 살고 있다. 영화는 6학년 학생의 졸업식을 준비하는 이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다. 그런데 별다를 것 없는 꼬마 아이들의 동심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게다가 간단한 설정만으로 SF적인 분위기를 띄는 것도 독특하다. 또 무심한 듯 언뜻언뜻 비춰지는 인간미,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일상, 아이들의 천진함 등이 뒤섞여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그러니까 왠만해선 미워할 수 없는 아기자기한 소품 되겠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는건 뒤이어 상영된 다큐멘터리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다. 야마시타가 필모그래피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던 <요짱>이란 작품을 찾아가는 여정인 이 작품은 감독으로서의 자의식과 자괴감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포복절도하던 중간 성찰을 요하기도 한다. 모리구치라는 시골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출연으로 가능했던 <요짱>은 ‘시민참여형’ 영화의 선구자 격인(?) 습작 영화지만, 야마시타 본인에 의하면 몇 년 전에 못 만든 <참 작은 세계>의 동생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두 작품을 연이어 보고 있노라면 야마시타 노부히로가 곧 필견의 걸작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좋은 영화를 만들, ‘진정성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느끼게 된다. 서두를 필요 없다. 그는 벌써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만들었고, 이제 33살이다. 이런, 33살 이란다.



자,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에만 지아 장커, 닝 하오, 야마시타 노부히로라는 아시아의 거장과 촉망받는 두 명의 작가를 만났다(지아 장커는 내 바로 옆을 그것도 두 번이나 스쳐지나갔고, 심지어 GV에 늦어 화장실 앞에서 후다닥 뛰어가는 코믹한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캐릭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그러니까 영화제의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 시간표를 좍 늘어놓고 누구를 만날까 하는 설렘, 그리고 자신의 안목이 이 정도라고 자랑할 수 있는, 일상에서 얼마 되지 않을 거드름, 마지막으로 어떤 작품을 선택하더라도 기본은 하는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영화제의 성장을 확인하는 안도감. 이 모든 것이 CinDi에서 느낀 감정의 편린들이다. 대중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CinDi’여, 제발 오래오래 살아 남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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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23일 토요일 14:40
압구정동 CGV 1관
진행 : CinDi 2008
정리 : 서유경 (네오이마주 편집스탭)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질문: 어떻게 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는가?

지아장커 : 이 영화는 지난 98년과 99년에 기획해서 시놉시스를 쓰고 있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찍지 못했다. 당시 중국은 경제 개발 계획에 의해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국영기업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그에 반해 매우 어렵게 생활했다. 이에 대해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풀어낼 수 있겠지만 미학적인 측면으로는 찍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작년 쓰촨성의 칭따오에 있는 이 공장(팩토리 420)을 발견했다. 비행기 엔진 공장이었는데 1958년에 세워져서 약 50년 동안 운영된 공장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이 공장이 모두 없어지고 그 위에 아파트가 세워졌다. 국영비행기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이 부동산 시장에 들어가 아파트촌으로 바뀌는 과정이 아이러니했고, 재밌는 상황이라고 봤다. 공장노동자만해도 3만명이 넘고 그 가족까지 포함하면 약 10만명이 넘는다. 공장 옆에 위치한 기숙사는 노동자들의 숙소로 이용되고 국가에서 운영하는데, 노동자들의 일상생활 공간이다. 마흔이 넘어 퇴직한 사람도 많은데 연금으로 살기도 한다. 58년도부터 작년까지의 50년 역사에 대한 기억이 공장이 없어짐으로 인해서, 그 중요한 기억을 중국인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 1년동안 칭따오에 7, 8차례 방문했다. 지진이 일어나던 그 전날 그 작업을 모두 끝냈다. (* 2008년 5월 12일 쓰촨성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질문 : 미학적 표현방법을 찾지 못해서 찍지 못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24시티>를 찍을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인가?

지아장커 :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한다. 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 130명을 모두 인터뷰 했다. 인터뷰를 하려고 사람들이 많이 읽는다는 칭따오 신문에 광고를 냈는데 아무도 인터뷰하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기숙사로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할 사람들을 찾았다. 130명을 인터뷰하면서 뭔가 되겠다는 상상력이 생겼다. 그것이 찍으면 찍을 수록 넘쳐났다. 이걸 왜 다큐멘터리로만 해야하는지, 극영화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다보니 <24시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역사의 변화를 변화 자체로가 아니라 상상력을 불어넣어 인간이 변화를 겪는 중에 느끼는 부분들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현재 중국사회를 인식하고 중국의 역사를 생각할 때, 그 현실 속에서 어떤 감정이 중요한 것인지 고민한다. 원래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는 허구 부분이 있었다. 상해에서 온 사람의 이야기는 80년대로 돌아간다든지 다른 배우는 50년대로 돌아가는 등의 부분인데, 그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언어로서 이 영화를 끝맺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4명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이 배우들 또한 다른 등장인물인 노동자들처럼 인터뷰를 하게 해서 영화를 완성했다. 액션이나 움직임이 있는 게 아니라 언어로서 이 영화를 완성하는 것이, 하나의 시도였다. 편집할 때 좀 더 열어놓고 생각하려고 했다. 편집과정에서는 픽션을 넣기도 하고, 노동자가 등장하는 화면에 초상화처럼 사진에 찍힌 듯 화면에 넣기도 하고. 예전의 방법대로 표현하는 것도 있다.


질문 : 감독이 허구적인 시나리오를 쓴 부분, 즉 배우들이 인터뷰하는 부분도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게 아닌가?

지아장커 : 네 명의 배우들이 나온다. 처음에 아기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여려평'이다. 예전 티엔주앙주앙(田壯壯)의 <푸른연>(1993)이란 영화에도 나온 아주 유명한 배우다. 두 번째 배우는 '조안 첸'은 <마지막황제>에 나왔던 배우로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연기했다. 세 번째배우는 진건빈이라는 농구공을 들고 서 있던 인물이다. 마지막 배우는 자오타오이고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인터뷰 내용에 나온 것 처럼 실제 있었던 일이다. 동북지방 사람이 서남지방 칭따오에 몰려올 때 아이들을 잃어버린 일이 잦았다고 공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술했다. 그 아이들이 군수용품을 생산하는 공장의 첫 희생자였던 셈이다. 실제 이 사건의 어머니는 만나서 얘기를 나누긴 했지만 인터뷰에 응하지 않아서 찍지는 않았다. 상하이 여인의 모습은 공장에 다니는 중년여인의 모습이다. 예전 80년대 변혁의 시대에 자신의 청춘과 사랑을 상실해버린 여인들이다. 농구공 남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데, 여기서 연기하는 건 실제보다 4살 많은 걸로 해서 과거 시대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했다. 그리고 그 단락 인터뷰를 하고 야마구치 모모에의 노래가 나온다. 그 시절 일본에서 꽤 유명했던 연예인인데, 이 또래에게는 굉장한 우상이었다. 그 남자가 말했던 얘기는 다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네 명의 배우는 중국에서 굉장히 유명하다. 중국 관객이 보면 어느 부분이 허구이고 현실인지 분간 가능하다. 처음에 인터뷰하는 과정에서는 예전에 그런 방식이 없었기 때문에 기교 자체가 없어서 어색해서 아무 것도 찍지 못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찍는 과정에 대한 방법을 천천히 알게 됐고, 그 뒤에는 노동자들이 말문을 열었다. 그걸 온 몸으로 몰입해서 듣는다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었다. 이 공장을 운영하던 제도는 평등에서 시작했으나 개인의 존엄을 무시하는 사회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현재는 자본주의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이 과정에 대한 기억을 기록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역사가 많은 사실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기록들을 문화적, 예술적 방식으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감독인 나 자신도 역사적인 무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역사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했다.


질문 : 실제와 허구를 구별하려는 목적에서 유명배우를 기용했다고 했는데, 관객들의 경우에는 노동자의 실제 인터뷰를 보다가 유명배우를 발견하고 '이것이 진짜가 아니라 거짓인가?'라고 놀랄 수도 있다. 이 점을 고려했는가?

지아장커 : 갑자기 배우가 나와서 혼란이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소는 고려했지만 나중에는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방법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영화를 찍는 방법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편집과정에서는 더 많은 것을 추가했다. 가령 노동자를 인터뷰할 때는 곧장 시작하지만, 배우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링겔을 맞으며 등장한다거나, 상하이 여인의 경우에는 경극을 하며 나오는 등의 경우가 있다. 관객들이 그들의 캐릭터를 볼 수 있도록 장치한 것이다. 사실 우리 생활 속에서도 희극적인 요소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런 영화를 마음대로 찍을 수 있게 해준 프로듀서에게 고맙다.


질문 : 중국 관객들은 알 수 있지만 외국인들은 누가 배우인지 모른다.

지아장커 : 당연하다. 사실 공리나 양조위가 연기가 해도 영화는 똑같게 나온다. 하지만 돈이 없으니까.


질문 : 조안 첸은 매우 유명한 배우인데 프로듀서의 역량으로 캐스팅한 것인가?

지아장커 : 아니다. 내가 조안 첸도 내가 결정햇다. 조안 첸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은 모두 영화를 찍는데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엄청나게 많은 대사들이 나오고 인터뷰 형식인 것이다. 조안 첸은 배우로서나 노동자로서 진실된 이야기를 펼쳐야 한다는 것에 걱정을 많이 했다. 처음 촬영할 때는 배우들이 거부감을 느꼈으나 다들 나름의 노력을 통해 몰입했다고 본다. 조안 첸의 경우에는 다른 영화를 찍자마자 칭따오에 와서 자기와 비슷한 연령대의 주변 여인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몰입했다. 여령평의 경우 실제나이는 훨씬 적은데 분장과 의상으로 나이 먹은 듯 표현했다. 이 4명의 배우들이 나오는 인터뷰는 한꺼번에 오케이 할 수 있었다. 마치 무대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촬영을 끝내고 스탭들이 박수를 쳤다. 여령평은 인터뷰를 하는 중에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몰입해서 연기한 것이다. 칸느에서 이 영화가 상영됐을 때 조안 첸이 "5일동안 찍어놓고 제가 칸느에 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5일을 촬영했지만 30년의 세월을 연기했다"라고 답했다. 또 짧게 촬영했으나 촬영기간은 1년이었다.


질문 : 조안 첸을 두고 그녀가 젊었을 때 연기한 샤오화를 닮았다는 얘기가 영화에서 나온다. 조안 첸이 샤오화라는 것을 중국인들이 다들 잘 알고 있어 재밌어하는데 외국인들은 잘 모를 것이다.

지아장커 : 그 부분은 외국인과 함께 나누지 못해서 굉장히 아쉽다. 조안 첸은 1978년 샤오화를 찍었는데, 그 시기가 문화혁명이 막 끝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사랑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중국인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았다. 모두들 조안 첸을 알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시절의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샤오화를 연기했던 당시의 모습과 이 영화에 등장하는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것이 당시를 돌아보는 청춘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안 첸에게는 처음 촬영할 때 샤오화를 닮은 인물을 연기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 칸느에 가서 영화 편집본에 샤오화 부분을 넣었는데 그걸 보고 조안 첸이 울었다.


질문 : 그간 영화를 디지털로 만들어왔는데, 어떤 영향이 있었다고 보는가?

지아장커 : 2001년 전주에서의 "삼인삼색"때문에 <공공장소>를 촬영했다. 꼭 디지털로 이걸 찍었어야만 했고, 소니 DV로 찍었다. 그런데 피사체와 나 사이에 그렇게 가깝게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버스정류장, 당구장 심지어는 좁은 버스 안에서까지 모두 디지털로 촬영이 가능했다. 그 카메라를 보면서 사람들은 긴장하거나 도망치지도 않았고 오히려 굉장히 자연스럽게 대했다. 그 사람들의 체취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찍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흥분하게 했다. 자유롭게 시를 쓰듯 영화를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디지털로 작업해왔는데, 어떤 것을 찍고 싶다고 생각만하면 바로 한 달 안에 달려가서 찍으면 된다. 현재 중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늘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난다. 디지털이기 때문에 바르게 찍을 수 있다. 농담을 하자면 중국의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디지털이 발명된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중국의 변화를 디지털이 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객관적으로는 어떤 인물과 생활 양상을 빠르고 가깝게 기록해둘 수 있다. 주관적으로는 어떤 CG 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색을 입힐 수 있는데, 이것은 디지털 이전의 기술로는 할 수 없던 영역의 것이다.


질문 : 디지털때문에 허구적인 부분과 다큐멘터리 요소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지아장커 : 디지털이 영화를 찍는 전통적인 시스템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디지털을 통해 굉장히 많은 양을 역동적으로 찍을 수 있고 매번 새로운 방법을 통해 영화를 찍을 수 있다. 130명의 노동자를 인터뷰하는 가운데 극영화를 찍고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걸 가능하게 했다. 극영화를 찍고 싶다고 해서 다시 돌아가 작업에 대한 예산과 세세한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이 필요없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나와 함께 갈 수 있었다. 매체의 자유로움이 이런 실험을 할 수 있게 격려한다. <스틸라이프>같은 경우 공간이 굉장히 초현실적인 공간처럼 보이고 있다. 도시의 2/3가 철거된 상태여서 마치 외계인의 공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 도시에 이상한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이 날아가는 건물과 비슷하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CG로 그런 성격이 더욱 드러나게 표현했다. 예전에는 디지털이 단순히 값이 싸거나 간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기술적인 부분이 미학의 가능성을 훨씬 넓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실험이고, 이것 이후에 디지털 예술이 등장할 거라 예상한다. 그리고 디지털이 필름영화를 모방하는 것에 대해서는 권장하지 않는다. 디지털만의 성격이 있으므로 그것만의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2004)에서도 드라마 속에서 디지털과 인터넷의 세계를 그린다. 인물과 인물, 단락과 단락, 즉 인터넷에서 볼 수 있을 듯한 그런 것을 다룬 것이다.


관객 질문1 : 감독에게 공간이란 어떤 의미인가?

지아장커 : 아이디어는 크게 두 가지면에서 가져온다. 첫째는 인물을 보면서 이야기를 상상한다. 둘째는 공간이다. 빈 공간 자체가 삶의 흔적이 묻어있기 때문에 생명이 있다고 본다. 그 안에 인물의 스토리가 분명히 있고, 나는 그걸로 영감을 얻는다. 영화적 미학을 공간 자체가 나에게 주는 듯 하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미술감독과 공장에서 장면 시작을 하기로 했다. 또 영화 속에서 노동자의 기숙사와 그 뒤쪽으로는 멀리 도로가 보이고 아래에 건물들이 보이는 공간에 붉은 옷을 입은 아이가 등장해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 있다. 처음 그 장소를 발견했을 때 그 공간이 주는 공허함이나 조용함을 보고 찍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공간이 주는 감각을 증폭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이 공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며칠 동안 기다렸다.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나타나서 그 자리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그래서 그걸 찍은 것이다.


관객 질문2 : 중간에 <홍콩>의 주제가가 틈틈이 나왔는데, 어떤 의미인가?

지아장커 : 엽천군이 불렀던 노래인데 세 번 사용했다. 개인적인 이유이기도 한데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아픈 게 있다. 이 음악은 감정을 동요해보기 위해서 썼다. 오우삼 영화에서 보면 알겠지만 그 영화는 과거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어떤 위기의 우리의 인생에 대한 부분들을 다룬다.


관객 질문3 : 인물과 공간의 생활소음이 그대로 들린다. 그 외 각 시퀀스마다 나오는 영화 음악의 선택기준이 궁금하다. 그 전작과는 달리 음악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느겼다. 극영화를 만들기 위한 효과인가?

지아장커 : 두 가지 음악이 나온다. 작곡가가 만든 부분이 있고 유행가를 직접 차용한 부분이 있다. 작곡가 두 명과 함께 했다. 일본의 하노이고 대만의 링챵이다. 영화의 앞부분은 교향곡 같은 음악에서 시작해서 뒷부분은 전자음악으로 끝난다. 음악을 통해서 색깔의 변화를 두고 싶었다. 엄숙하던 시대에서 개인의 시대로 가는 과정을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 노래는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이다. 유행가의 사용은 등장인물들이 그 당시 시대를 이야기할 때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시절의 유행곡이다.


관객 질문4 :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최근작인 영화들이 떠오른다. <동>이나 <무용>은 다큐멘터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스틸라이프> 가 많이 떠올랐다. 실제 <동>에서 발상했고 <스틸라이프> 안에서도 <동>에서 찍은 장면이 삽입됐다고 들었다. 영화가 현실을 견뎌내길 바랬다는 말을 했다. 어쩌면 허구 속에 현실이 들어와있는 것으로 보인다. <24시티>에서는 오히려 같은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관계를 줄이고 있지만, 어쩌면 현실 속에 네 명의 허구적인 배우가 있는 것처럼 오히려 현실 속에 허구가 있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짓는다는 측면에서 <스틸라이프>와 <24시티>의 변별점이 있는가. 혹은 <스틸라이프>처럼 원칙을 세워놓은 게 있는지 궁금하다.

지아장커 : 비슷할 수도 있다. <스틸라이프>는 <동>을 찍다가 극영화를 찍는데 허구적인 시나리오를 써서 극영화를 만든 것이다. <24시티>가 다른 점은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에서) 허구를 넣은 것이기 때문에 <스틸라이프>는 극영화이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요소가 한꺼번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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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대중에게는 극장은 물론이고, 극장 밖에서의 환상도 필요하다.” - 아돌프 히틀러

티베트 학살과 스촨성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중국의 고위인사들은 베이징 올림픽은 영향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스모그에 지구환경 오염의 주범임에도 환경올림픽을 내세우는 뻔뻔한 민족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정상과 스포츠스타들이 중국의 인권과 환경문제를 질타하며 보이콧을 선언했을 때, 나는 정말 베이징 올림픽만큼은 철저하게 실패하기를 바랐다. 이런 가운데 베이징 올림픽의 막이 올랐고 그 화려하고 성대하게 준비되었다는 개막식을 보았다.

거칠게 말해서 장이모가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총감독에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내게 개막식은 보나마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개막식을 끝까지 시청한 이유는 호기심에서가 아닌 장이모와 중국의 합작품이, 그러니까 중국정부가 투자 제작 배급을 맡고 장이모가 감독을 맡은 또 하나의 민족주의블록버스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본 사람마다 느낌이야 제 각각이겠으나 한마디로 예상한 만큼을 보여주었으되 대단하거나 장엄한 느낌은커녕, 중국의 자아도취가 만들어낸 최고의 돈지랄(이런 저속한 표현 말고는 도무지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을 보았다는 허탈함 뿐이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목적성이 드러나는 구성으로 인해 지루하기 짝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랬구나! 결국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이 중심 된) ‘하나의 꿈, 하나의 세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야욕의 신호탄에 불과했구나. 그러니까 전 세계인의 화합과 꿈이 담긴 잔치 한 마당에서 오로지 자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첨단기술로 변화한 오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중화주의 예찬에 몰두한 장이모 연출의 개막식은, 아무 내용과 미학적 고민 없이 오로지 첨단기술에 의존해 영상혁명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블록버스터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는 말이다.

사실 1천억 원을 쏟아 부은 210분짜리 개막식의 총책임자로서 장이모만한 인물이 또 있을까? 중국인민의 고단한 삶과 끈질긴 생명력을 황토빛으로 채색함으로써 일찌감치 세계영화계의 인정을 받은 반면, 중국 내에서는 반체제 문화예술인의 대표적 인사로 낙인찍힌 그였다. 문화혁명기의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중국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인생을 성찰하는 영화 <인생>의 제작을 위해 가짜 시나리오를 당에 제출했고, 주연배우 ‘갈우’에게서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뽑아낸 장이모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그가 돌연 할리우드와 손잡고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하에 국책영화 <영웅>을 만들었을 때, 뒤이어 내놓은 <연인>과 <황후화>로 중화주의의 홍위병을 자처했을 때 더 이상 그의 영화에서 기대할 것이 없음을 확신했다. 민중의 한 사람에서 당의 영웅으로 화려한 변신을 이룬 장이모. 그러니 이번 올림픽의 총 연출자는 장이모가 아닌 다른 인물이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었던 셈이다.

장이모의 변절은 이미 1999년 <책상 서랍속의 동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을 때부터 전조가 보였으니, 그 어느 때보다 수상결과에 말이 많았던 이 영화제에서 장이모는, 더 이상 검열의 위협을 받는 감독이 아닌 중국정부의 지원 아래 놓인 감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귀주이야기>와 별 다를 바 없는 농촌리얼리즘과 선전영화를 방불케 하는 무리한 해피엔딩은 장이모의 영화가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장이모가 영화 ‘장인’의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중국정부의 선전덕분이었다. (할리우드로 떠난 첸 카이거가 돈 때문에 변절한 세속주의자로 인식되는 것과 비교해보라) 때문인지 장이모를 보고 있노라면 등소평이 강조했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절로 떠오른다. 영화를 만들던 쇼를 하던 개막식 연출을 하던, 위대한 중화사상을 세계만방에 알리면 그만이다? 내가 베이징 올림픽의 순수성을 의심했던 것도 순전히 장이모 때문인지 모르겠다. 또한 개막식을 보면서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했던 레니 리펜슈탈 Leni Riefenstahl이 떠오른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히틀러는 이미지 조작이 대중을 선동하고 그 영혼을 포획하는 데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치임을 안 파시스트였다. 그런 그에게는 두 명의 문화 조력자가 있었으니 ‘극장’의 레니 리펜슈탈과 ‘극장 바깥’의 알베르트 슈페어가 그들이었다. 슈페어가 극장 바깥에 나치의 망상을 건축물로 만들어낸 반면, 리펜슈탈은 보다 상징적이고 환상적인 방법으로 대중을 선동하게 되는데,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의지의 승리>와 베를린 올림픽을 소재로 만든 <올림피아>로 명실상부한 나치의 대표적 예술가로 자리매김한다. 때문인지 개막식만 놓고 보면 베를린 올림픽과 베이징 올림픽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게다가 장이모의 개막식은 미학적 측면에서 아무런 감동과 감흥을 안겨주지 못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적어도 리펜슈탈의 영상은 후대에게 분명한 것 하나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나치의 현상과 그 현상의 힘 그러니까 신비화와 볼거리를 통해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목적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영상을 통해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가히 선동매체로서의 영화의 힘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러나 장이모의 개막식은 오직 규모와 스펙터클의 과잉만으로 채워놓았을 뿐 아니라 철저하게 닫힌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장이모에 대한 평가가 완성된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훗날 장이모는 리펜슈탈의 발치도 좇아갈 수 없는 평가를 얻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리펜슈탈이 ‘오로지 자신의 예술’에만 관심 있던 감독이었고, 나치를 옹호했던 무수한 예술가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철저히 버려졌으며 히틀러 이후 다시는 영화를 만들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해 근래에 들어 왜곡된 부분의 수정이 조심스럽게 시도되고 있는 반면, 장이모의 경우는 갈 수 록 오욕의 노예로 전락할 소지가 농후하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변질되어버린 한 예술가의 인생이 국가패권주의와 병치되고 있음을 발견하는 기분은 이처럼 찝찝하고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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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노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막식에 대해 쓴 블로그를 다니면서도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댓글을 달지 않았는데... 저도 솔직히 좀 지루하더군요. 넘치는 불꽃놀이, 이제그만이 절로 나오는 붉은색물결..(어찌나 붉은색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방대한 분량을 다 인력으로 해내야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몇 레파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남자들만 등장하더라구요.. 예술리다 뭐다 저는 잘 모르지만, 지루하고 좀 촌스럽던걸요. 하지만, "오~"하는 것도 있긴했어요..^^;

    2008.08.12 14:58
  2. 지나가는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공감입니다.
    이번올림픽은 분명 중국을 한차원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것입니다.
    하지만 올림픽의 기본정신에는 크게 벗어나는 올림픽같지 않은 올림픽으로 남을것 같네요.

    다음에 중국이 다시한번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면,
    좀 발전된 자국만을 위한 올림픽이 아닌 세계평화와 스포츠의 정신에 맞는 그런 올림픽으로 발전시켜 개최하길 바랄뿐.

    지금의 중국수준에는 이것도 최고의 최선의 보여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2008.08.12 15:15
  3. Favicon of http://wnsgud313.tistory.com BlogIcon 꿈별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와 같은 생각이시군요..

    정말 별볼일 없었습니다.

    그래픽빼면 뭐가 남는지...

    중국의 문화자랑이었지만

    그마저도 지루하고 (서양인들은 좋았을라나)

    자아도취라는 말이 딱들어맞네요.

    2008.08.12 17:17
  4. 레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심스러운 한켠의 생각으로는
    연출가로써의 자질이 뛰어났던 장이모감독이
    조국의 검열에 자식같은 작품이 낱낱히 찢어발겨지는 걸
    지켜 봐야만 했을 때의 상실감도 무시 못할듯 합니다..
    시대와 장소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감독인거죠..

    중화사상에 깊이 쩔어 있는 중국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하고자 했던 대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듯한..
    아둔한 중국의 고위관리자들은
    장이모..라는 세계로 뻗어 나갈 재능을 가진 뛰어난 연출자를
    자국의 홍보용으로 소모하는 우매함을 범해버린 듯합니다

    2008.08.12 17:19
  5. Favicon of http://cyworld.com/kwangdol BlogIcon 박광석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절하고 예리한 문장
    잘봤습니다.

    2008.08.12 17:22
  6. 후훔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기내 국가에서 하는데 자기국가 위주로 행사를 짜는게 당연하지 않나요
    우리도 올림픽이나 월드컵때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릴수 있도록 행사를 짰던걸로 기역하는데요..

    특히 올림픽때는 우리나라가 자유 국가 였나요?

    2008.08.12 17:28
    •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수정/삭제

      우리나라 올림픽 개막공연의 내용 중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민족이 각기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다같이 강강수월래를 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강강수월래라는 한국 전통의 문화를 활용해도 그것이 나타내는 것은 온세계가 하나가 되는 올림픽의 정신이었죠(당시 서울올림픽은 사상 최초로 공산권과 서구권이 한꺼번에 참가한 올림픽이라는 의미도 있었고)

      2008.08.13 00:58
  7. 제임스뽄드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말고도..
    개막식 지루하게 봤던 사람이 있었군요.

    툭하면 불꽃놀이..
    붉은색 물결.
    뽕빨을 빼래는듯.. 각장마다의 엄청난 시간들..
    그리고 기승전결없이 항상 "기"와"승"으로만 진행되었던 개막식.

    감동도 없고 뭐가 가슴에 남는것도 없이
    그저 돈많이 싸질러서 했구나

    역시 중국애들은 기예좀 해서 몸이 부드럽구나.
    뭐 그런생각밖엔....

    2008.08.12 17:33
  8. 비가온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중국이 싫으신거네요 ㅋ

    2008.08.12 17:34
    • -_-  수정/삭제

      좀 된 덧글에 토달자니 웃기지만..
      그 나라 국민성과 분위기를 이성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보고 기껏 낸 결론이 '너 중국에 <감정>있구나'라면.. 소 귀에 가곡을 읊었구나. 어익후야...

      2008.08.23 03:12
  9. 히나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가려운 부분을 개운하게 긁어주셨어요~
    보면서 탄성과 함께 돈지랄 제대로 했구나...했는데
    쨌든 그네들 쪽수 많은거 하나는 제대로 어필했던 개막식이었어요..

    2008.08.12 17:41
  10. 비슷한 의견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개막식 보다가 졸려서 잠들었는데;;
    첨엔 불꽃들 화려하고 그러더니 나중엔 그냥 그렇고,
    또 별로 평화, 화합 이런게 아니라
    중국이 최고 이런걸 보여주는거같아 보는내내 불편했는데,

    2008.08.12 21:38
  11. 어이가없어서...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자리는 중국이 주인공이 되야하고 되여야하는 자리였다. 우리나라가 88년때 한복입고 춤춘것과 중국과 뭐가 다르지? 세계최고의 감독과 중국이라는 한 나라가 몇년을 준비해서 만든 210분이였다. 그걸 깐다는것도 참 어이가없다.

    2008.08.12 23:37
  12. 몽환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코멘트 잘 안쓰는데...꼭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어요.

    아무리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표방하며
    국가 발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 무역을 허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공산 국가' 중의 하나입니다.
    아직도 중국 내의 온갖 매체들은 공산당의 검열을 거치고 있고
    철저히 당에 충성하는 인민을 양성하고 있으며
    아직도 그런 인민 앞에서 공개 처형이 실시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중국은 북한과 다를바 없는 공산국가입니다.
    차이점이라면 북한이 좀 더 폐쇄적이라는 것이겠지요...

    얼마전에 중국 내에서 논란이 되었던 영화 "苹果(Lost in Beijing)” 가 있었죠.
    중국 당국 입장에서는 음란성을 문제점으로 제기했지만
    사실은 그들이 그렇게도 내보이기 싫어하는 중국 뒷골목 음지의 풍경,
    적나라하게 보여진 중국 내 물질 만능풍조 등이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아마 자격정지 되었을 겁니다...영화 못만들게...

    당의 말 한마디면 잘 돌아가던 공장도 문을 닫아야 합니다.
    올림픽 기간동안 모든 공사 금지, 유흥업소 운영금지, 시설 낙후된 상점 영업금지...
    우리나라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중국에선 당연한 것처럼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 안에서 장예모 감독이 어떻게 "活着(Lifetimes-인생)" 같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예술성을 썩혀 버리기 싫으니, 현실에 순응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은거죠...
    하물며 올림픽 개막식은...말 할 것도 없죠...

    아무리 이웃나라고, 여행이 자유로워 지고, 무역이 활발하다고 해도
    중국은...우리가 상상하는것 이상으로 위험한 공산국가 입니다.
    중국 당국의 제한 속에서 장예모 감독이 이만큼 해 낸 것도...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2008.08.13 02:04
  13. 송세림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펜슈탈이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건 다른 사실이네요. 제가 알기로는 70이 넘는 나이에 스킨스쿠버 자격증 따서 해양다큐멘터리를 만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08.08.13 02:06
  14. 구름사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장이모우의 중화주의 나팔수 노릇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 되었구요. 이 글 위에 극우 선동가로 변신한 소설가 이문열이 겹쳐 떠오르는군요. 장이모우나 이문열이나 이제 예술은 끝났고, 정치만 남았죠.

    2008.08.13 09:46
  15. Favicon of http://j-jaywave.net BlogIcon 지나가던 과객입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이모우는 모국에서 자신의 나라의 돈으로 영화를 찍을 수 없었던 감독입니다. 그의 영화와 포퍼먼스가 점점 눈요기가 되왔던 것은 그렇게 해야만 해외자본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욕을 먹으며 앞장서야하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죠.

    세상에 예술적으로 평가 받고싶지않은 감독이 어디 있겠습니까... ^^

    2008.08.13 11:19
  16. 파밀리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려함 속에 숨어 있었던 열등의식을 보셨군요. 장예모는 불쏘시개 내지 일개 도구에 불과하고요. 그가 아니었더라도 제 2 제 3 의 장예모가 줄을 섰을 겁니다. 한족의 문화가 융성한 때가 마지막이 언제입니까? 자기들 말대로 한나라 아니면 당나라 때 인가요?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진 중국인들에게 흔히 있는 컴플렉스입니다. 중국 공산당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차이니스 컴플렉스를 이용해 13억 인구가 똘똘 뭉치게 하는 것 보십시요. 히틀러 이후 최고입니다. 아무도 티벳얘기를 하거나 미국인 살인사건 얘기를 하거나 심지어는 한해에 8000 명씩 처형하는 나라에서 인권 얘기 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대단 대단.

    2008.08.13 11:28
  17. 장예모가 왜 대단한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사실 예전 국두나 붉은수수밭을 봤을 때에도 장예모가 왜 대단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중국의 검열에 시달렸다구요? 하지만 그의 이전 영화에서도 그렇게 예민한 장면은 별로 없습니다. 장예모가 의식적으로 반체제적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의 까다로운 검열이 사소한 장면으로 발목 잡았던 거죠.

    마치 심재철 같은 사람이 민주화운동때 돌멩이 좀 던졌다고 유세떠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듯해요. 장예모라는 사람은 그냥 영화 잘만드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합니다. 강제규 같은 사람이랄까요? 중국에서는 영웅일지 모르겠으나 특별히 의미를 찾기는 힘든 사람입니다.

    2008.08.13 11:32
  18. 하늘하늘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 ;;; 실망을 안겨주었던 ;;; 시작할때 카운트다운 북....그거 빼고는 성화도 정말 허접이었다...역시 아테네가 신선한 충격이었다...경기장안에 물을 넣을 생각을 하다니...대단해..진짜...

    2008.08.13 13:03
  19. keisuke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이모우는 무대연출감독으로 딱이다. 쓸데없이 엄청난 제작비 쏟아부어 <영웅> <연인> <황후화> 같은 희안한 영화를 만드느니 스펙타클만을 자랑하는 무대연출감독으로 모자람이 없다. 개막식을 지루함 없이 그런데로 흥미롭게 봤다. 고액의 영화제작비는 차라리 중국 외진 곳의 어린이들의 교육과 환경에 쓰이는 게 낫다. 이런 의견을 중국정부가 들을 리는 물론 없지만..

    2008.08.1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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