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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딜가나 "Made in China"이다. 정말이지 중국이라는 나라는 공산품 생산에 있어서는 최강국처럼 느껴진다. 그 많은 인구수만큼이나 숨막힐 것 같은 대량의 제품들이 중국에서, 중국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적은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충분한 노동력때문에 어느덧 중국은 약속의 땅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옷'의 생산에 관해서는 말할나위 없이 황금지대다. 그렇게 생산된 옷들은 세계 각 나라에 전해지고 우리는 상표에 표시된 "Made in China"라는 마크를 통해 우리가 입는 대부분의 옷의 생산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지아장커는 특이하게도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관리자가 아닌 노동자)을 관찰한다. 누구도 잘 관심갖지 않는 공장 노동자들을 포착하는 순간부터 <무용>은 시작된다. 카메라 속에는 마치 신경숙 소설의 <외딴방>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람들이 핏기도 없는 얼굴로 생산라인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고단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삶의 무료함'이 묻어난다. '하고 싶어서 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함'이라고 써진 표정들은 닫혀진 문을 문틀과 문틀 사이로 넘고, 비좁은 구내식당에서 서서 점심을 청하며, 고질적인 병으로 보건의에게 상담을 받는다. 지아장커는 생산라인에 서서 반복적으로 똑같은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을 패닝으로 보여주는데 그 카메라 또한 그들처럼 무심하다. 패닝을 통해 라인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이동해 나가지만 오히려 똑같은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선것처럼 그들에겐 웃음의 꽃이 없다. 웃음없이 만들어진 옷들은 이동하고 이동해서 노동자들을 결코 구원할 수 없는 중산층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두번째 이야기는 자연을 닮은 옷만들기를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마커의 일상으로 향한다. 그녀는 한참 파리에서 자신의 패션쇼를 준비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대량생산으로 똑같이 만들어지고 인간의 숨결이 들어있지 않은 공산품은 그녀에게 악취를 풍길 뿐이다. 그녀는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서 흙내음이 느껴지는 옷들을 만들고 그것을 '무용'이라는 브랜드로 승화시켜 사회에 내놓으려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거름진 땅은 우리가 입는 옷이 놓여질 공간이 되고 하나하나의 옷에 의미를 더하게 한다. 하지만 난 그녀의 '친환경주의'적인 태도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자연에 맞닿은 자연을 보존하는 옷을 통해 혼탁해진 지구의 환경을 구하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만들어 낸 옷들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작인 <동>에 이어서 아티스트 2부작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마커를 지아장커 역시 결코 옹호하려 들지 않았음을 난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철저하게 첫번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반론인 두번째 이야기는 옷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광산마을 '샨시성'으로 흘러간 마커의 고급스러운 차를 바라보고 있는 한 광부의 무표정한 모습에서 끝이 난다. 마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를 몰고 있는 마커에서 이야기는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철저하게 그녀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진행될거라 믿었던 관객들은 순간 의아해 할 것이다. 더구나 그가 즐겨 그의 영화에 등장시키는 마음의 고향같은 곳. 바로 그가 태어난 샨시성의 외딴 곳을 비추고 있다.

광부는 표정이 없지만 그렇다고 첫번째 이야기에 등장했던 고난한 공장 노동자들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그에게는 어떠한 고단함보다는 평범한 삶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무언가가 들어있는 봉지를 가지고 그는 길을 걷는데, 얼마 후 그가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수선집이다. 옷수선을 하기 위함이다. 수선을 마치고 2위안을 달라고 하는 주인앞에서 그는 3위안을 주려고 하면서 웃지만 그렇다고 주인은 더 받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카메라 속에서 지아장커의 여유가 묻어난다. 생각해 보면 그의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가난한 서민들이었고, 작은 도시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욕심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전에는 옷도 만들었다는 한 광부와 그의 아내는 이제는 돈이 없어서 다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이미 평범한 삶이 제 옷에 맏기 때문에.

남성의 몸을 다루는 데에 이미 익숙한 지아장커는 석탄가루로 인해서 온 멈이 까맣게 된 광부들의 샤워장면을 통해서 굉장한 몸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감동'과 비슷한 것이다. 손톱까지 까맣게 된 광부들은 마치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를 밀고 있는 것처럼 몸을 닦고 있다. 그들의 더럽혀진 몸에서 살아가는 흔적이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전혀 누추해 보이지 않고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한다. 전율은 그들이 벗어난 작업복에 카메라가 비추어졌을 때 '절정'을 이룬다. 그들의 작업복은 매일같이 더럽혀져 빨아도 빨아도 소용없을 만큼 색깔이 변해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살아가는데 정말로 필요한 보물인 것이다. 마커의 눈에는 무시의 대상이었던 같은 표정의 공장 노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업복이 그들에게는 살아가는 땅의 흙이 묻어있고 땀내가 가득한 꼭 있어야 될 물건이라는 것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의 카메라는 역시 무심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자는 이미 떨리고 있다. 그래서 마커가 이야기 했던 '무용(쓸없음)'이라는 브랜드는 여기서 철저히 '무용지물'이 되고 누구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작업복이 '유용(쓸있음)'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정작 지아장커가 전율의 순간을 세번째 이야기에 와서야 포착해 내는 것도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가난한 민중들의 소세계에 가깝다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무용'이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디자이너 마커는 동명의 브랜드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쓰지만, 실상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뿐이고, 절실히 필요한 것은 환경을 생각하는 옷이 아니라 누군가가 편히 입고 살아갈 수 있는 옷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난 지아장커가 왜 엉뚱한 길을 계속해서 가려고 할까 의문을 가져봤다. 누구보다도 중국의 급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던 그가 예술가에 대한 3부작을 이어나간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용>은 완전히 내 생각이 빗나갔음을 반성하게끔 하는 작품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들을 통해서 자기가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다시금 사실적으로 정리하려고 함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씻는 샤워실에 아무렇게나 올려진 땀내 가득한 옷이 절실히 쓸모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분명 누군가는 맘 속 깊이 감동하게 된다는 것이 그를 누구도 제1의 시네아스트에서 내려놓지 않는 이유이다




이제는 어딜가나 "Made in China"이다. 정말이지 중국이라는 나라는 공산품 생산에 있어서는 최강국처럼 느껴진다. 그 많은 인구수만큼이나 숨막힐 것 같은 대량의 제품들이 중국에서, 중국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적은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충분한 노동력때문에 어느덧 중국은 약속의 땅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옷'의 생산에 관해서는 말할나위 없이 황금지대다. 그렇게 생산된 옷들은 세계 각 나라에 전해지고 우리는 상표에 표시된 "Made in China"라는 마크를 통해 우리가 입는 대부분의 옷의 생산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지아장커는 특이하게도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관리자가 아닌 노동자)을 관찰한다. 누구도 잘 관심갖지 않는 공장 노동자들을 포착하는 순간부터 <무용>은 시작된다. 카메라 속에는 마치 신경숙 소설의 <외딴방>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람들이 핏기도 없는 얼굴로 생산라인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고단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삶의 무료함'이 묻어난다. '하고 싶어서 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함'이라고 써진 표정들은 닫혀진 문을 문틀과 문틀 사이로 넘고, 비좁은 구내식당에서 서서 점심을 청하며, 고질적인 병으로 보건의에게 상담을 받는다. 지아장커는 생산라인에 서서 반복적으로 똑같은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을 패닝으로 보여주는데 그 카메라 또한 그들처럼 무심하다. 패닝을 통해 라인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이동해 나가지만 오히려 똑같은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선것처럼 그들에겐 웃음의 꽃이 없다. 웃음없이 만들어진 옷들은 이동하고 이동해서 노동자들을 결코 구원할 수 없는 중산층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두번째 이야기는 자연을 닮은 옷만들기를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마커의 일상으로 향한다. 그녀는 한참 파리에서 자신의 패션쇼를 준비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대량생산으로 똑같이 만들어지고 인간의 숨결이 들어있지 않은 공산품은 그녀에게 악취를 풍길 뿐이다. 그녀는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서 흙내음이 느껴지는 옷들을 만들고 그것을 '무용'이라는 브랜드로 승화시켜 사회에 내놓으려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거름진 땅은 우리가 입는 옷이 놓여질 공간이 되고 하나하나의 옷에 의미를 더하게 한다. 하지만 난 그녀의 '친환경주의'적인 태도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자연에 맞닿은 자연을 보존하는 옷을 통해 혼탁해진 지구의 환경을 구하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만들어 낸 옷들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작인 <동>에 이어서 아티스트 2부작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마커를 지아장커 역시 결코 옹호하려 들지 않았음을 난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철저하게 첫번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반론인 두번째 이야기는 옷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광산마을 '샨시성'으로 흘러간 마커의 고급스러운 차를 바라보고 있는 한 광부의 무표정한 모습에서 끝이 난다. 마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를 몰고 있는 마커에서 이야기는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철저하게 그녀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진행될거라 믿었던 관객들은 순간 의아해 할 것이다. 더구나 그가 즐겨 그의 영화에 등장시키는 마음의 고향같은 곳. 바로 그가 태어난 샨시성의 외딴 곳을 비추고 있다.

광부는 표정이 없지만 그렇다고 첫번째 이야기에 등장했던 고난한 공장 노동자들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그에게는 어떠한 고단함보다는 평범한 삶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무언가가 들어있는 봉지를 가지고 그는 길을 걷는데, 얼마 후 그가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수선집이다. 옷수선을 하기 위함이다. 수선을 마치고 2위안을 달라고 하는 주인앞에서 그는 3위안을 주려고 하면서 웃지만 그렇다고 주인은 더 받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카메라 속에서 지아장커의 여유가 묻어난다. 생각해 보면 그의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가난한 서민들이었고, 작은 도시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욕심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전에는 옷도 만들었다는 한 광부와 그의 아내는 이제는 돈이 없어서 다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이미 평범한 삶이 제 옷에 맏기 때문에.

남성의 몸을 다루는 데에 이미 익숙한 지아장커는 석탄가루로 인해서 온 멈이 까맣게 된 광부들의 샤워장면을 통해서 굉장한 몸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감동'과 비슷한 것이다. 손톱까지 까맣게 된 광부들은 마치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를 밀고 있는 것처럼 몸을 닦고 있다. 그들의 더럽혀진 몸에서 살아가는 흔적이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전혀 누추해 보이지 않고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한다. 전율은 그들이 벗어난 작업복에 카메라가 비추어졌을 때 '절정'을 이룬다. 그들의 작업복은 매일같이 더럽혀져 빨아도 빨아도 소용없을 만큼 색깔이 변해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살아가는데 정말로 필요한 보물인 것이다. 마커의 눈에는 무시의 대상이었던 같은 표정의 공장 노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업복이 그들에게는 살아가는 땅의 흙이 묻어있고 땀내가 가득한 꼭 있어야 될 물건이라는 것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의 카메라는 역시 무심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자는 이미 떨리고 있다. 그래서 마커가 이야기 했던 '무용(쓸없음)'이라는 브랜드는 여기서 철저히 '무용지물'이 되고 누구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작업복이 '유용(쓸있음)'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정작 지아장커가 전율의 순간을 세번째 이야기에 와서야 포착해 내는 것도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가난한 민중들의 소세계에 가깝다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무용'이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디자이너 마커는 동명의 브랜드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쓰지만, 실상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뿐이고, 절실히 필요한 것은 환경을 생각하는 옷이 아니라 누군가가 편히 입고 살아갈 수 있는 옷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난 지아장커가 왜 엉뚱한 길을 계속해서 가려고 할까 의문을 가져봤다. 누구보다도 중국의 급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던 그가 예술가에 대한 3부작을 이어나간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용>은 완전히 내 생각이 빗나갔음을 반성하게끔 하는 작품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들을 통해서 자기가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다시금 사실적으로 정리하려고 함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씻는 샤워실에 아무렇게나 올려진 땀내 가득한 옷이 절실히 쓸모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분명 누군가는 맘 속 깊이 감동하게 된다는 것이 그를 누구도 제1의 시네아스트에서 내려놓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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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oulsdrain.tistory.com BlogIcon Samuel's  수정/삭제  댓글쓰기

    별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아장커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전주국제영화제때 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마지막편의 이야기는 스틸라이프의 감동이 그대로 느껴지는 추억이 담긴 영화였습니다.

    2008.05.26 09:19 신고
  2. keisuke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지아장케의 영화는 어느 한 순간 필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한참 후에도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구요. 대개 그러한 장면은 감독이 무심한 듯 카메라를 들이댄 장면인데도 말입니다. 그의 시선은 지금 중국의 영화감독 중 매우 소중한 시선으로 여겨집니다.그의 영화작업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바래봅니다.
    기회가 닿으면 이 영화를 한번 감상하고 싶네요.

    2008.08.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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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6세대 영화, 삶의 본질을 말하다』를 통해 본 현대 중국과 중국영화

중국인의 맹목적 애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지난달 27일 베이징올림픽 국내 성화봉송 행사 당시 중국 유학생들이 벌인 막무가내 폭력 시위가 발단이다. 우리의 "오 필승 코리아"와 비견할 "파이팅 올림픽" 혹은 "중궈자요(中國加油)"를 외친 중국 젊은이들. 그들에겐 지금 브레이크가 없다.

그렇다. 20년 전 우리가 그러했듯 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 정부는 지금 고도성장을 과시라도 하듯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베이징 서우두 공항, 세계 최대의 돔형 공연장, 항조우만 대교 등의 위용을 선전하는 중이다. 그리고 문화대혁명과 89년 천안문 사태라는 아픈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티벳 사태에 대한 국내·외의 비난 목소리를 중국 성장의 걸림돌로 인식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주로 천안문 사태 이후 영화를 찍어 온 중국의 6세대 감독들은 이미 영화를 통해 중국의 가치관 혼란을 비판하며 예술적 브레이크를 걸어 온 바 있다. 주선율(主旋律, 중국식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영화들을 반대하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조명해 온 이들의 작업에 비춰본다면 이번 폭력 시위는 분명 당황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의 자리를 차지한 자본주의와 또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 90년대 이후 중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중국 6세대 영화, 삶의 본질을 말하다』의 저자 안상혁, 한성구는 중국 6세대 감독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중국의 현재와 이상, 그리고 우리의 삶을 성찰적으로 바라보자고 권고한다.



천안문 운동에서 시작된 6세대 감독들의 뿌리

최근 영화 주간지 <씨네21>이 국내 감독과 국내,외 평론가 92명을 대상으로 1995년부터 2008년 현재까지 베스트영화 톱 10을 뽑았다. 그 결과 중국 제6세대의 기수인 지아장커(賈樟柯)의 <스틸 라이프>가 1위로 선정됐다. 중국 동시대인들의 삶을 가감 없이 그리며 세계적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지아장커가 국내외 평론가 그룹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것이다.

중국에는 지아장커와 같은 6세대 영화들 외에도 위에서 예를 든 주선율 영화와 <영웅> <무극>과 같은 다피엔(大作, 대작) 영화를 포함, 연말연시를 겨냥한 흥행작인 하세편(賀歲片) 영화들이 존재한다. 장이머우와 첸 카이거 감독 등 5세대 감독들이 '변절'이란 비판을 감수하며 주류 중국 영화를 접수했다면, 6세대 감독들은 정식 개봉 보다 여전히 해외영화제와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국 6세대 감독들의 특징으로 저자들은 6세대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들어 "6세대라는 명명 자체가 타당한가"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외연 확대가 진행 중인 6세대 감독들의 특징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

▲ 소도시 주변인들의 주인공으로 '현실로서의 삶'을 내세우며 ▲전통 미학의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답지 않지만 '진실이 아름다운 것(以眞爲美)'을 천명하고 ▲ 직선적 시간관이 지닌 억압성을 거부하며 클라이맥스도, 결말도 존재하지 않고 ▲ 5세대와 달리 감동적 드라마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으며 ▲ 롱테이크를 활용한 다큐멘터리 기법 등 이른바 '낯설게 하기' 장치를 즐기며 ▲ 아버지의 '권위'와 '중심'에 대한 해체를 주장하고 ▲ 정치적 선언이나 주장, 계몽적 기능 등 거대담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럼 6세대 감독들이란 누구인가. 저자들은 "1960년대 생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 사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 활동을 시작한 젊은 영화인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1989년 천안문 운동을 직접 경험한 세대로 상업주의 문화, 탈이념화, 탈정치화 조류 속에서 개인의 생존 체험과 불안정한 심리 상황에 관심을 갖는다"고 정의한다. 문화대혁명으로 폐쇄 당했다 다시 개교한 베이징영화학교에서 공부한 첫 세대들인 이들에게 천안문 운동은 더 없이 중요하다. "복잡한 문화현실과 불만스러운 5세대에 대한 전복으로서 등장한" 6세대 감독들은 자본주의 상업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개성적인 영화관을 드러내는 동시에 주선율 영화와 같은 주류 상업 영화를 거부한다.

이들의 선두주자인 장위엔(張元) 감독이 <북경 녀석들>을 세상에 내놓았던 1993년까지 6세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장위엔의 <광장> <동궁서궁> 등으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키고 지아장커가 1997년 <소무>를 발표한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제6세대는 중국은 물론 서방세계에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지하전영(地下電影), 독립 영화의 젊은 기수들이 중국 영화의 한 축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들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을 빌려와 6세대 감독들이 "'아버지의 법'에 강력히 맞섬으로써 어떤 환상이나 광기의 드러남으로 표현되는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요약한다. 탈중심적인 목소리가 결국 중국 사회를 뛰어넘어 동아시아인들의 실존적 삶에 긍정을 보태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소개한 작품들 중 동시대성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6세대 감독들의 영화들을 먼저 살펴보자.



한반도 대운하의 결과를 예언하는 <스틸 라이프>

우선 2006년 베니스 영화제 금사자상을 수상한 <스틸 라이프>의 배경은 지난 2006년 완공된 샨샤(三峽)댐에 묻혀버린 펑지에 지방. 영화 속 공무원이 "물론 문제는 있죠. 2천 년 된 도시가 단 2년 만에 헐렸으니까요. 문제가 있으면 천천히 해결합시다"라고 말하는 곳이다. 주인공은 광부 한산밍과 간호사 션홍. 두 사람은 16년 전 돈을 주고 사와 자신의 딸까지 낳았지만 곧바로 헤어져야 했던 전처와 바람을 핀 남편을 만나러 각기 이 지역을 찾는다. 중국식 개발의 극단을 보여주는 샨샤댐은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잃게 했다. 담배, 술, 차, 설탕 등 중국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네 가지 필수품으로 챕터를 나눈 이 작품은 한산밍과 션홍의 여정 사이로 파괴와 개발이라는 중국 전체의 변화상을 은유한다.

데뷔작 <소무>에서 리얼리즘에 입각해 시골출신 소매치기가 소도시에서 맞는 격변기의 일상과 개방 속의 중국 관료주의를 비루하게 그렸던 지아장커는 <스틸라이프>에서 고단한 일상과 이를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 그러나도 또한 벗어날 수 없는 모순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또한 전처를 찾고자 공사 현장을 전전하는 한산밍과 주도적으로 이혼을 선택한 션홍의 엇갈리는 행보를 통해 "포기와 결정"의 문제를 제기한다.

다큐멘터리와도 같던 전반부는 비현실적인 샨샤 지방에 UFO가 날아가는 장면 등과 같은 환상을 통해 "위기와 긴장, 낭만이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생존 현실"임을 반영하며 심리적인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중국의 비현실적 개발이 가져다 준 슬픔을 이겨내자는 일종의 격려이자 다독임. 어쩌면 <스틸라이프>는 우리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대운하에 대한 동시대 아시아 감독의 경고이자 충고이며 예술적 대응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감시와 처벌에 저항하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뒤섞인 격변기인 현재의 중국. 6세대의 대표주자 장위엔(張元)는 여전히 관료주의 권력에 저항할 것을 부르짖고 있다. 2006년작 <아이들의 훈장>은 은유적으로 잔존한 중국 내 관료주의를 비판한다.

주인공 세 살배기 사내 아이 판칭칭은 군인 아버지에 의해 사설 유치원에 맡겨진다. 수백 명이 단체 생활을 하는 이곳은 상상할 수도 없는 규율이 존재한다. 구령에 따라 대변을 보고, 식사 전 반드시 소변을 봐야 하며, 잠들기 전엔 꼭 엉덩이를 씻어야 하는 이곳, 무시무시하다. 아이들을 전쟁 포로를 다루듯 하는 유치원의 지상 목표는 질서요, 규율이다.

누가 뭐래도 영화의 유치원은 사회주의, 관료주의 중국의 은유일 것이다. "유치원을 떠나는 게 좋은 거라 생각하지 마. 사실 여긴 너의 일생 중 가장 행복하고 걱정 없는 시절이란다"라고 말하는 선생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아이들에게 빨강 꽃을 나눠 준다. 아마도 장위엔의 교과서는 '원형감옥'의 철학자 미셀 푸코가 지은 『감시와 처벌』 아니었을까. 규율에 대한 훈련은 처벌과 보상, 이 두 가지가 병행된다고 했던 푸코 말이다. 결국 선생에게 빨강 꽃을 얻으려다 포기한 아이가 유치원을 탈출해도 갈 곳은 없으며, 유일한 안식처는 달콤한 꿈 속 뿐이란 결말은 더없이 비관적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보기에 좋다"는 뜻의 '看上去很美'. 장위엔은 시대 배경을 분명히 했던 왕숴의 동명 소설과 달리, 의도적으로 시대를 흐리게 해 놓았다. 그러니까 인간이 존재하는 언제, 어디서나 이러한 권력시스템의 문제는 상존한다는 의도인 셈이다. 정치에 민감함 베를린과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 영화에 상을 수여한 것도 단순히 중국 정치상황을 빗대서 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변방 몽고와 티벳

6세대 감독들의 관심은 중국의 변방에도 닿아 있다. 내몽고 유목민 여인의 삶을 조명한 <투야의 결혼>과 중국의 서부, 티베트 칭장 고원의 영양 밀렵꾼과 순찰대원이 서로 죽고 죽였던 실제 사건을 다룬 <커커시리>가 그 두 작품이다.

2007년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투야의 결혼>은 몽고지방에서 태어난 왕취엔난(王全案)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를 여주인공 투야의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이야기는 대초원에서 우물을 파다 불구가 된 남편과 두 아이를 봉양해야 하는 투야가 두 번째 남편을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커커시리'는 중국의 서부 칭장고원에 위치한 자연보호구역을 지칭하는, '아름다운 청산, 아름다운 소녀'라는 의미의 티베트어. 이 지역은 1985년 이전까지 100만마리 이상의 티베트 영양이 서식하고 있었지만 모피의 수요 증가와 가격 폭등으로 밀렵이 성행, 현재 2만 마리 정도 밖에 영양이 남지 않았다고 한다. 루추안(陸川) 감독의 <커커시리>는 베이징에서 영양 자연보호구역 순찰대를 취재하러 온 기자의 눈을 통해 이 지역에서 일어난 실화를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낸다.



투야의 눈물나는 삶의 역정을 그리는 <투야의 결혼>은 "광활한 대지로 카메라를 돌리"면서도 "개혁개방의 기운과 부딪혀 진통을 겪고 있는 내몽고인의 일상을"을 그려낸다. 거친 일상의 고통을 이겨내는 삶을 순환을 그리는 이 작품에 저자들은 거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됐던 역사적 사실을 전제로 "투야는 현재 중국에 사는 몽고인으로, 반신불수의 바터는 그 위상과 기능을 상실한 몽고에 대한 향수"로 환원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반면 "자연과 국가, 사회적 의무 등을 강조하면서도 전체 속에서의 죽음의 의미와 반영웅적 개인을 강조"하는 <커커시리>는 현재의 티벳 사태에 대한 전조로 읽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작품이 "국가나 종교 등에 의해 만들어진 상징에 의해 개인의 생존의 문제가 가려지고 주변화 되고 있는 것"을 재현한다고 말한다. 이 전언은 고스란히 작금의 중국 정부에게 돌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종교적 탄압 외에도 지하자원과 지정학적 위치 등을 이유로 티벳 민중의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는 중국 정부에게 말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비판적 성찰

이 밖에 저자들은 위의 네 편을 포함, 모두 24편의 6세대 감독들의 영화를 소개하며 '일상성과 방황 그리고 환상' '금기와 전복, 그리고 불편함' '순례와 해탈' 등 다소 철학적인 6가지의 소제목으로 분류해 놓았다. 그러나 겁먹을 건 없다. 6세대 감독들의 영화들이 모두 다 무겁고 어려운 것만은 아니며, 저자들의 설명을 따라 가다보면 저절로 호기심이 생길 테니.

<빨간 버스>의 경우 문화혁명 시기부터 현재까지 40여 년 동안 한 여인이 겪은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다. 한국에서도 일찌감치 소개된 <귀신이 온다>는 <붉은 수수밭>의 배우 출신 지앙원(姜文)의 연출작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항일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우화 같은 드라마다. 또한 권총을 잃어버린 소도시 경찰관을 주인공으로 삼은 루추안의 <사라진 총>은 여전히 국가와 권력에 대해 탐구하지만 소재는 여느 상업영화만큼이나 친숙하다. 실직 노동자와 창녀의 보듬음을 그린 노동자 출신 시인 감독 왕차오(王朝)의 <안양의 고아>는 산업화가 낳은 타자들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동성애를 주제로 삼은 장위엔의 <동궁, 서궁>과 다이스지에(戴思杰)의 <식물학자의 딸>, 상하이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택했지만 작가주의에 가까운 몽환적 백일몽과 일본인과의 낭만적인 로맨스로 갈리는 로우예(婁燁)의 <슈주>와 장이바이(張一白)의 <상하이의 밤>까지. 이렇게 중국 6세대 영화는 한마디로 단정 짓기에는 힘들지언정 분명 동시대성을 잃지 않는 힘과 함께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다.

"관습적인 것이 아무런 비판 없이 향수된다면, 새로운 것은 혐오감을 가지고 비판되어진다."

저자들이 언급한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말이다. "반항과 반역 , 금기에의 도전"을 통해 중국의 주류 가치관을 부정하고 있는 6세대 감독들. 하지만 그들은 "삶의 질서에 놓인 부정성"을 표출했을지언정 삶이 지닌 "진정성에 대한 성찰"은 놓지 않았다.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는 그들의 영화를 다시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급속도로 자본주의와 민족주의를 찬양하고 있는 중국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대중적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중국 6세대 감독들은 점점 더 할리우드 산업과 닮아가며 동시대성과 비판정신을 잃어 가고 있는 한국 영화계와 우리 관객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가까운 이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화'라는 민족주의에 함몰되고 있는 중국 젊은 세대들이 무협과 코미디 일색으로 현실을 지우는 주류 다이엔 영화보다 6세대 감독들을 응원해야하지 않을까. <중국 6세대 영화, 삶의 본질을 말하다>는 이들 6세대 감독들에 대한 친절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P.S 1 <중국 6세대 영화, 삶의 본질을 말하다> 안상혁, 한성구 지음 -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56쪽, 15,000원

P.S 2 이 책에 소개된 영화들 중 <귀신이 온다>, <스틸 라이프>, <투야의 결혼> 등을 제외하고 정식개봉된 작품이 적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 외에 <수쥬>가 비디오 출시 되었으며, <커커시리>, <상하이의 밤>, <아이들의 훈장> 등이 환경영화제와 CJ 중국영화제, 그리고 KBS 명화극장에서 소개됐다. 이 영화들을 직접 보기 위해서는 아마존이나 부둑이하게 어둠의 경로를 이용해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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