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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필드>(Cloverfield)와 <잠수종과 나비>(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이 두 편의 영화는 얼핏 보아도 굉장히 판이한 성격의 영화들이다. 전자가, 김윤진의 출연으로 국내에서 더욱 화제가 된 TV 시리즈 [로스트] 또는 <미션 임파서블 3>의 J.J. 에이브람스의 영화라면, 후자는 96년 ‘장 마이클 바스키아’의 인생을 그린 영화 <바스키아>로 입문한, 화가이자 감독인 줄리앙 슈나벨의 영화다. 아직 감이 오지 않으시는지. 전자가 역동적 화면의 구성으로 관객을 몰아치는 영화라면, 후자는 관객을 차분히 사색의 여정으로 인도하는 쪽에 가까운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두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적’ 차원에 있다. 서로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였던 두 편의 영화가 바로 이 지점에서 교합한다.

먼저 <클로버필드>. 이 영화는 ‘액자형식’을 취하고 있다. 짤막한 오프닝을 제외한다면, 극중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발견된 캠코더 기록 내용 자체가 영화의 전부다. 촬영된 캠코더 분량이 멈추면 영화도 역시 끝이 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점이 극중 캠코더의 그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캠코더를 들고 촬영하는 극중 등장인물 허드와 그의 친구들은, 부상으로 꼼짝 못하는 다른 한 친구를 구출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느닷없이 출현한 어느 괴생물체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 생사의 현장을 담고 있는 캠코더의 시점과 구도는 당연히 질서정연하지 못하다. 쉽게 말해 화면이 무지막지하게 요동을 친다는 말이다. 앞좌석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라면 십중팔구 극장문을 나서면서 역정을 낼 것이다. 영화를 보러 가신다면, 필히 유념하시길.

이번엔 <잠수종과 나비>다. 이 영화의 눈-카메라는 일단 캠코더가 아니다. 그리고 ‘전혀’ 요동을 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 영화의 시선은 <클로버필드>와 마찬가지로 역시나 ‘불편’하다. 왜 그리고 어째서? 역설적이게도 <잠수종>에서 카메라는, <클로버필드>와는 달리, 너무 움직이지를 않기 때문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뿐만 아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가 수십여 일 동안의 의식불명 상태를 거쳐 서서히 깨어나는 장면을 묘사할 때는, 장 도미니끄 보비의 시선과 동일시된 카메라-눈의 초점조차 흐리멍덩하다. 다만 이 ‘불편함’에는 연출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프랑스의 패션잡지 편집장 장 도미니끄 보비는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왼쪽 눈을 제외한, 신체의 어느 부분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제 그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오직 왼쪽 눈 하나뿐이다. 그리고 감독은 <잠수복>의 카메라-눈을 장 도미니끄 보비의 시선과 일치시킨다. 이제 카메라의 시선은, 아니 장 도미니끄 보비의 시선은 ‘한정’된다. 그는 고개조차 돌릴 수 없지 않은가. 잊지 마시길.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신체기관이라고는 왼쪽 눈 하나뿐임을.

그렇다면 <클로버필드>와 <잠수종과 나비>가 칠팔천 원과 ‘귀중한’ 시간을 내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기꺼이 선사하는 이 ‘불편함’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극단적인 핸드헬드(들고찍기)와 줌인, 클로즈업, 초점이 잡히지 않는 흐릿한 이미지 등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영화 <클로버필드>의 형식은 관객의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영화적 세계와 관객의 세계, 즉 현실을 갈라 주는 심리적 경계선인 ‘스크린’의 존재감도 <클로버필드>에선 아주 쉽게 잊혀진다. 보이는 ‘허구의’ 이미지가, 아주 잠깐 동안이라고 할지언정, 이것은 어쩌면 현실이 아닐까 싶은 순간적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마치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의 영화 클립 <열차의 도착>이 상영되던 어느 프랑스 지하카페에서, 영화 관람자들이 자신들에게로 거침없이 다가오는 열차의 이미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지상으로 대피했다고 하는 저 일백 년 전 일화와 마찬가지로. 캠코더로 촬영된 화면이 꺼지고 잠시 후 영화는 종료된다. 종료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아주 잠깐, 스크린에서는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켜지는 암등. 그럼에도 관객의 정신이 그제까지도 현실로 쉽게 돌아오지 못한다. 얼얼하다. 그리곤 안도의 한숨이 배어나온다. “나는 살아남았구나.”

<잠수종과 나비>의 장 도미니끄 보비는 왼쪽 눈을 제외한 모든 신체적 기능을 잃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몽상’하는 것이다.(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 “나에게 남은 건 이제 ‘기억’과 ‘상상력’이야.” 하지만 몹시 궁금해진다. 그가 말한, 아니 몽상한 “기억과 상상력” 앞 생략된 빈 공간의 임자는 ‘그럼에도’인가, ‘고작’인가. 그러니까 “‘그럼에도’ 나에겐 기억과 상상력이 남아 있어”인가, “‘고작, 겨우’, 내겐 기억과 상상력만이 남아있을 뿐이야”인가.

“죽지는 않았지만,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비된 상태에서 의식은 정상적으로 유지됨으로써, 마치 환자가 내부로부터 감금당한 상태”, 이름 하여 ‘라크트-인-신드롬’(locked-in-syndrome)이라는 상태가 지속된다. 장 도미니끄 보비는 이것을, 답답한 ‘잠수종’에 덕지덕지 갇혀있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잠수종’은 철교의 기초 공사 따위에서,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 일할 수 있도록 만든 큰 종 모양의 잠수복을 말한다.

헌신적인 언어치료사의 도움으로 15개월 동안 무려 20만 번에 달하는 왼쪽 눈의 깜박거림으로 알파벳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완성한 그의 책 『잠수복과 나비』(국역본 제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잠수복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나들이 길에 나선다. 시간 속으로, 혹은 공간을 넘나들며 날아다닐 수도 있다. 불의 나라를 방문하기도 하고, 미다스 왕의 황금 궁전을 거닐 수도 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상력 혹은 몽상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장 도미니끄 보비가 잃고 얻은 것이 있다면 이것일 것이다. 허나 바슐라르 같은 이는 ‘잃은 것’ 없이 그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통재라.



<잠수종>의 언론시사가 있던 바로 다음날, 배급사의 마케팅 부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울려왔다. 아무래도 영화에 대한 평가가 양분되는 것 같아 초조해하는 눈치였다. <클로버필드>와 <잠수종과 나비>의 일종의 연출적 모험을 그저 우리는 간단없이 ‘형식주의’로 치부하고 비판의 칼자루를 쥐어야할까? 삶의 실제 내용과 유리된 관념의 형식, 추상의 형식에 불과한 것일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977년 이리 역 폭발사고를 배경으로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잔존해있는 상처와 고통을 담아낼 예정이라는 영화 <이리>의 재중교포 감독 장률. 그가 얼마 전 개봉했던 자신의 영화 <경계>와 관련하여 남겼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오른다. 몽고의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했던 <경계>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은 한 박자 느리게 움직인다고 한다. 인물이 카메라의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질 때까지 카메라는 요지부동이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카메라는 사라진 인물의 뒤를 쫓는다. 이를 두고 장률은 촬영감독과 적지 않은 의견 충돌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형식주의’라는 이유에서다. 장률은 반박했다 한다. 느린 카메라의 움직임 그 자체가 실제 몽골인들이 살면서 겪는 시선의 움직임이라는 이유에서다.

장률은 이렇게 말했었다 한다. “도시에서 우리는 잠시 한눈을 팔면 누군가를 향한 시선을 놓칩니다. 몽골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참 있다가 고개를 돌려도 앞서 봤던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초원에서 시선의 움직임은 그렇게 느릴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진폭이 가져다주는 울림은 실로 굉장한 것이다. 그의 삶의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기실 내용을 외따로 배제한 형식도 없을 것이요, 그 역도 마찬가지인 법이리라. <클로버필드>와 <잠수종과 나비>의 ‘불편한 형식’의 정체는 내 보기에 이런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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