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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


"독립장편영화의 촬영감독들을 만나다"의 두 번째 주인공은 이미 너무도 유명해진 영화, <똥파리>의 윤종호 촬영감독이다. 윤종호 촬영감독은 한겨레 영화연출학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거쳐 김우형 촬영감독(<바람난 가족><그 때 그 사람들><오래된 정원>등 촬영)의 촬영부로 오랜 경력을 쌓았다. <똥파리>는 그의 첫 독립장편영화이다. 첫 영화가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휩쓸고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인 관심과 호응을 받으며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도,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고 조용했고, 또 신중했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똥파리>는 단순히 그의 필모그래피 첫 줄을 채워줄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시작한 이래 내내 가슴에 품어왔던 생각들을 담은 결과물이라서 일까, 그는 나지막한 음색으로 <똥파리>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씨네21』은 양익준 감독의 로테르담 참관기를 실었고 맥스무비는 배우 김꽃비의 로테르담 참관기를 실었다. 이제는 네오이마주가 <똥파리>의 삼인방 중 한 명인 윤종호 촬영감독의 이야기를 할 때다. <똥파리>는 4월 16일 개봉이다.


강연하 (이하 연): 사실 제가 학교 후배다. 알고 있었나.

윤종호 (이하 윤): 아. 들어서 알고 있다. 반갑다.(웃음)


연: 곧 <똥파리>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윤: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모르고 시작했는데,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이렇게 국내개봉도 하게 되서 기분이 좋다.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작업한 영화이기 때문에 더 애정이 간다.


연: 간단한 자기소개와 영화를 시작한 계기를 듣고 싶다.
윤: 원래 집이 전라도 광주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 갔다 와서 뭘 해야 될 거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러다 나의 집안 이야기,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영화를 선택하고, 무작정 대책 없이 서울로 올라왔다.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하려면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겨레영화학교에 들어가서 수강했다. 근데 연출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더라.(웃음) 촬영을 해봤는데 굉장히 재밌고 연출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촬영 쪽 일을 더 열심히 한번 해봐야겠다, 고 생각했다. 한겨레 나오고 나서 바로 충무로 현장으로 들어갔다.


연: 경력이 없는 초보자가 바로 충무로 현장에 들어가기 쉽지 않았을 텐데.
윤: 그 때 최두영(현재 두 엔터테인먼트 대표. 장률 감독의 <망종>등을 제작했다.).... 음 직함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웃음) 여튼 그 분한테 촬영 쪽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고, 그분이 소개시켜준 촬영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연: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감독,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윤: 허우 샤오시엔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들도 다 좋아하고. 아, <빌리 엘리어트>도 좋아한다.


연: <빌리 엘리어트>는 이 전에 인터뷰한 유일승 촬영감독도 좋아하는 영화로 꼽은 영화다.(웃음)
윤: 신기하다.(웃음) 사람은 다 욕망이 있나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최고의 정점에 올라가는 과정에 대한 꿈이랄까, 그런 것들에 대한...


연: 허우 샤오시엔은 나도 현존하는 감독 중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촬영한 영화 한 편만을 보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어쨌든 <똥파리>는 대부분 거친 핸드헬드 촬영에 컷도 많다. 촬영감독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는 건데, 촬영감독은 아무래도 연출자와 영화에 맞추어 촬영을 하다 보니, 실제 좋아한다고 말하는 영화와 직접 촬영한 영화 몇 편들 사이에서 거리감이 생기게 된다.
윤: 맞다. 둘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허우 샤오시엔은 역사적인 것과 가족적인 것을 결합시켜 영화를 만든다. 그래서 좋아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흔들리거나 혹은 정적이거나 하는 것과 영화의 시선은 꼭 함께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가 찍은 영화와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겉모양은 많이 다르지만, 인간에 대한 시선에 대해선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연: 그렇다면 촬영감독으로서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들 촬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윤: 허우 샤오시엔의 초창기 영화는 미장센이 강하다. 그러다 <밀레니엄 맘보> 때부터 카메라가 타이트하게 들어가면서 좀 분위기가 달라진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보면 촬영이 참 유연하다는 느낌이 든다. 늘 인물의 행동이나 한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는 많은 것들이 그 안에 가두어져 있지 않고 자유로워 보인다.


연: 어떤 이야기인지 알 것 같다. 좋아하는 촬영감독은 누구인가.
윤: 이와이 슈운지의 작품 대부분을 촬영한 시노다 노보루 촬영감독을 정말 좋아한다. (연: 아. <릴리슈슈의 모든 것> 촬영은 정말 슬프고 좋다.) <하나와 앨리스>가 이와이 슈운지와 함께한 마지막 작품일 텐데, 지금은 돌아가셨다. 그리고, <28일 후> 찍었던 안소니 도드 맨틀도 너무 좋다. 그 분은 너무 뛰어난 테크니션 같다. 영상 자체가 활력 넘친다. <28일 후> 보면서 그런 점에 정말 놀랐다.


연: 아까 말했듯 물론 영화에 따라 달라지는 거겠지만, 특별히 좀 더 선호하는 촬영스타일이나 기법이 있나.
윤: 음.. 기법 같은 것 보다... 나는 연출자랑 영화에 대한 얘기 하는 것도 좋지만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알아가는 과정이 작업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촬영컨셉을 잡고 라이팅을 어떻게 하고 그런 건 특별히 큰 원칙 없다.



연: 영화아카데미 시절이나 졸업한 직후 몇 편의 단편영화를 촬영한 걸로 알고 있다. 특별히 아끼는 영화에 대한 짧은 소개를 부탁한다.
윤: 음.. 아카데미 졸업작품 중 한 편인데, 제목은 <간의 무게>다. 가족 내에서 큰아들이 갖는 부담감을 그린 영화다. 큰아들이 간을 아버지에게 이식해주는 이야기인데, 그 시선이 아주 담담하다.


연: 이제 <똥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양익준 감독과는 원래 아는 사이인가.
윤: 아카데미 때 동기 작품에 양익준 감독이 배우를 했었다. 그 때 우리가 19기였는데, 양익준을 19기 객원이라고 부를 만큼 친했다.(웃음)


연: 처음에 <똥파리> 시나리오를 읽고 어떻게 생각했나.
윤: 사실 시나리오를 읽지도 않고 받자마자 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참 길구나....(웃음) 한 씬 자체도 길고, 전체적으로 일반 장편 시나리오보다 훨씬 길었다, 근데, 머리로 쓰여진 개념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정말 마음으로 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나리오를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정말 내가 읽어본 것 중 손에 꼽을 만한 시나리오였다. 그렇게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연: 사전 콘티 작업이 백 프로 이뤄진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한건가.
윤: 아니다. 콘티는 3주전부터 시작했는데, 집에서도 하고 공원 벤치에서도 하고 사무실에서도 하고... 20씬 정도까지는 핸드헬드가 아니라 꽤 자세히 포지션을 정하고 상황에 맞춰 쇼트들을 짰다. 하지만 그건 정말.. 그냥 '짠 거' 뿐이다. (웃음)


연: 그럼 현장에 가서 다 정한건가. 완성본은 대부분 핸드헬드다. 즉흥적인 느낌이 많이 들고.
윤: 콘티 짜는 작업은 정말 말 그대로 친분 다지기의 일환이었다. (웃음)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것을 한번 더 고민했고. 하지만 그게 직접 영상에 옮겨질 거라고는 생각 안했다. 여러 가지 다급한 상황이 많이 만들어졌고, 그러면서 연기나 영화가 진행되는 걸 보다보니 핸드헬드는 저절로 선택되어졌다.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았지만, 이게 우리 영화에 어울릴 거라고 같이 생각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감독이 배우다보니, 감독이 따로 배우한테 "이건 이런 감정이다" 설명하며 리허설 하는게 아니라 리허설이 곧 촬영이나 다름없었다.




 연: 음... 근데 상영본 포맷이 35mm던데, 그런 (즉흥적인) 작업이 쉽게 가능했나.
윤: 아, 촬영은 디지털로 했다. 파나소닉의 hvx200으로 찍었고, 후반작업에서 부산영화제 후반 제작지원을 받으면서 35mm로 blow up 했다.


연: 아- 몰랐다. 그럼 애초에 필름으로 완성본을 낼 계획은 없었던 건가.
윤: 서로 간에 암묵적으로 이걸 35mm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계획은 없었다. 사실 blow up을 하려면 촬영 때 좀 더 신경 써서 조정했어야 할 부분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못하고 넘어가서 아쉽다.


연: 감독이 주연배우 연기를 같이 겸하는 것이 평범한 경우는 아니다. 특별히 현장에서 느낀 다른 점이 있었을 것 같다.
윤: 일반적인 촬영현장의 순서와 일들 있잖나, 감독이 배우한테 지시하고, 나하고 얘기하고, 한 컷 찍고 배우랑 같이 모니터 보고... 이런 과정들이 좀 달랐다. 카메라 앞에 서서 감정 잡힐 때 자기가 "액션~!" 하고, 막 연기하다가, 편집점 생각해서 연기 끝나고 몇 초 있다 자기가 직접 "컷~!" 소리 치고. (웃음) 그리고 배우에 대한 연기연출 같은 방법들이, 본인이 배우다보니까 상당히 다른 배우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더라.


연: 일반적으로 배우와 감독이 둘이 커뮤니케이션할 시간은 많지만, 촬영감독과 배우가 둘이 이야기할 시간은 많지 않다. 근데 이번엔 배우와 일대일로 영화와 씬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배우와 촬영감독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했는지 궁금하다.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을 것 같고.
윤: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 같은 건 프리 프로덕션 작업 때나 촬영 전날 많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둘 다 이런 씬에선 연기를 이렇게 할 거고, 어떻게 해야 하고,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일일이 정해놓고 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정해 진 건 없었다. 감독 본인이 워낙 자신과 밀착된 이야기를 스스로의 몸으로 표현하는 거라 굳이 나한테 의논하지 않고 가는 부분에 대해서도 신뢰감이 있었다.



연: 특별히 자의적이지 않고 드라마와 인물에 충실히 따라가는 촬영이다. 대화 씬 같은 경우도 full shot- o.s- o.s 의 콘티뉴이티로 주로 이루어져 있고.
윤: 촬영을 하면서 그렇게 가는 것이 이 영화에 맞다고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클로즈업은 이거다, 하고 앵글을 잡아놓으면, 양익준 감독이 생각하는 클로즈업은 더 타이트하게 들어가는 거였다. 그만큼 감독은 카메라가 인물에 집중하길 원했다.


연: 인상 깊게 보았던 몇 장면들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학생시위현장에 상훈과 그의 패거리가 들이닥치는 장면은 이들의 구체적인 직업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굉장히 현장성 강한 느낌으로 액션장면들을 찍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 때 촬영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윤: 촬영 전 날 정두홍 무술감독님 밑에 있는 무술감독님이 오셨다. 사실 그 분도 영화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아무 정보 없이 오신 거였다. 기본적인 큰 동선을 감독과 내가 짠 후, 그것들을 설명해 드리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액션의 동선에 대해 그분이 제안을 많이 해주셨다. 천막을 어떻게 엎을 건지, 책상을 어떻게 엎으면서 이 쇼트를 시작해야 더 박진감 들고... 하는 것들 말이다. 촬영은 카메라 두 대로 진행했다. 주로 한 대는 미디엄 숏을 잡고, 한 대는 타이트한 클로즈 숏을 잡고 찍었다. 백 퍼센트 합을 완벽히 짜고 찍은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액션을 하고 있으면 카메라가 알아서 찍는 식이었다.


연: 많은 컷들을 빠르게 편집했더라. 촬영분을 거의 다 쓴건가.
윤: 거의 다 썼다.


연: 구로, 가리봉 등의 동네 이름이 직접적으로 등장해서 공간의 특성을 살리고 있다. 그리고 연희네 집, 오래된 골목길 여러 군데 등이 영화의 주요 공간으로 나오는데, 그 로케이션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윤: 연희네 집은 양익준 감독이 사는 집이다.(웃음) 애초부터 그 방을 생각했다. 대부분의 촬영지는 난곡에서 찍었다. 스탭들 방도 영화에 많이 나온다.(웃음) 상계동, 중계동, 세종대 근처 등등을 돌며 장소를 골라서 감독과 같이 가서 보고 생각했다. 연희와 상훈이 주로 만나서 대화하는 골목 아현동 달동네다. 거기는 양익준 감독이 어릴 때 살았던 곳이라더라.


연: 처음으로 상훈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장면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상훈이 아버지를 구타하는 내용인데, 때릴 때 문이 닫혀진 채 욕과 때리고 맞는 소리로만 영화가 진행되다가, 컷이 바뀌고 문의 반투명 창으로 클로즈업된다. 문은 끝까지 열리지 않는다.
윤: 그렇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문틈으로라도 보이는 게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문으로 타이트하게 들어갔을 때 그 폭력의 움직임이 아른아른거리게 나타났으면 했다. 그 장면은... 아직도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연: 문을 닫는 건 차단시키는 건데, 이건 관객에게 이 장면은 보여주지 않겠다, 고 결정한 거다.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뒷부분에서도 상훈이 아버지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을 가렸다면 이 영화에 대해 의심을 품었을 것 같다. 보여주기 힘든, 금기시 된 것을 끝까지 가리는 거니까. 하지만 뒷부분에 소름끼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나오더라. 나는 첫 번째 폭력에서는 관객으로서의 내가 그렇듯,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다가갈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윤: 음.. 비슷하다. 그 장면은 둘 관계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거다.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막'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막'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엔 영화 자체가 두 번씩 세 번씩 상훈이 아버지를 만나면서 그 막을 거두어들이는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 상훈의 연기는 늘 재밌는 리액션들을 동반하더라. 습관적인 욕뿐만 아니라, 대사가 끝나면 빤히 상대 얼굴을 쳐다보다 뺨을 때리거나 머리를 쥐어박거나 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한다. 촬영도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늘 잘 잡던데, 애초에 감독과 이야기했던 부분인가.
윤: 정해놓은 건 아니고, 촬영을 하면서 그런 리액션들이 상훈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디테일로 자리 잡아 갔다. 나는 정해져 있는 것이 많이 없는 상황에서 상훈이 감정에 의해 어떻게 움직이든 그것을 잘 잡아내야 했다. 리액션들이 잘 보였다면 다행이다.(웃음)


연: 재치 있는 three shot들이 눈에 띈다. 만화책 가득한 방에서 상훈과 그 똘마니 고등학생(웃음)이 방주인 남자를 마구 팬 후 함께 짜장면 시켜놓고 먹는 장면과, 후에 다른 집에서 똘마니 고등학생이 마당 가운데 앉아있고 꼬마애들이 양옆에 붙어 앉아있는 장면들. 이 때 보이스오버로 상훈이 꼬마애들의 아버지를 때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폭력적이고 어두운 내용의 씬이지만 그렇게 three shot이 등장할 때만큼은 아이러니하게 웃긴 느낌을 준다.
윤: 아이들이 똘마니 옆에 붙어 있는 장면에서는, 방 안에서는 완전히 난리가 나고 있는 상황이잖는가. 그 와중에서도 아이들에게 좀 편안한 장면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짜장면 먹을 때도, 그 폭력이 다 끝나고 난 다음 서로 때리고 맞고 했던 사람들끼리 같이 짜장면 시켜 먹는 게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편안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영화하고는 좀 동떨어진 정서인데, 그런 사소해 보이는 장면에서 편안함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연: 인사동 쌈지길 시퀀스와 시장 시퀀스가 인상적이었다. 촬영 중이라는 걸 크게 알리지 않고 다 펼쳐놓고 찍은 느낌이다. 리얼리스틱한 거리 풍경과 정서들이 잘 살아서 보기 좋았다. 또 두 장면 다 동시녹음이나 현장 앰비언스 없이 음악만 잔잔히 깔리더라.
윤: 배우들이랑 나랑 소수로 움직이며 찍었다. 배우들은 감정대로 놀고, 촬영자인 나는 그걸 알아서 찍고, 하는 식으로 진행했었다. 촬영 시작, 액션 구호 이런 거 없이 알아서 연기하고 알아서 다 캐치해서 찍고.(웃음) 아, 그리고 실제로도 동시녹음 없었다. 양익준 감독이 거기서는 음악을 조용히 깔고 싶다고 하더라. 인물들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기 때문에 좀 도드라지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연: 촬영했지만 편집본에서 빠진 장면 중 기억에 남거나 아쉬운 장면이 있나.
윤: 상훈이 처음으로 아버지를 구타하고 난 후 아침에 눈을 뜨기 전 꿈 장면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듯 정신없이 막다른 복도를 상훈과 카메라가 함께 뛴다. 문을 열려고 해도 여러 개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러다 한 곳의 문이 열리고 상훈이 그 곳으로 들어가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칼이 쥐어져 있고, 그걸로 누구를 찌른다.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죽은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또 하나가 있다. 상훈과 연희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후의 상황인데, 둘이 걷다가 연희가 힘없이 쓰러진다. 그 기회를 이용해서 연희가 상훈에게 살짝꿍 감정을 표현한다.(웃음) 앞에 보이는 모텔에 가자고 조르고, 상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연희를 업고 택시에 타는 장면이었다.


연: 듣고 보니 굉장히 중요한 장면들 같다. 두번째 말한 장면이 개인적으로 아쉽다.(웃음)  음.. <똥파리>가 다가가기 쉬운 영화는 아니다. 센 설정이나 거칠게 표현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그리고 뭔가 희망과 구원의 조짐이 보이다 결국엔 끊을 수 없이 순환되는 폭력의 면모를 보여주며 끝난다. 촬영감독으로서 영화를 어떻게, 얼마나 이해하고 작업을 했는지 듣고 싶다.
윤: 사실 콘티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얘기했던 건 사람 얘기다. 우리는 그 때 서로 양익준 감독이 살아온 얘기, 내가 살아온 얘기들을 나눴다. 그 중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내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양익준 감독이 알고, 양익준 감독과 그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알고. 그렇게 서로의 사적인 역사들을 공유하며 영화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연: 기억나는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윤: 음... 한강장면이 떠오른다. 야간 촬영에 크레인도 오고 탑차도 오고.. 전체예산 따졌을 때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면이었다. 근데 찍다 다 못 찍고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감독과 둘이 엄청 속상했지만 할 수 없다, 다음 날 찍자, 하고 담담하게 접고 돌아갔다.


연: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궁금하다.
윤: 연희 동생 영재가 상훈 따라다니면서 돈 받으러 다닐 때, 멍한 영재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좋다. 개인적으로, 영재에 대한 부분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재가 상훈에게 행하는 엔딩하고도 맞물려서.


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사적인 기억을 투영 시켜 촬영한 것이니만큼, 돌이켜 봤을 때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윤: 내가 하고 싶었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간에 경험을 하면서 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개인적인 부분들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진심이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연: 이제 연출자와 촬영자 간의 이야기를 해보자. 여러 명의 연출자를 많이 만났을 텐데, 이상적인 연출자와 촬영자간의 관계란 어떤 걸까.
윤: 영화적인 얘기는 사실 간간이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에 대한 성향, 뭘 좋아하는구나, 어떤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연출자가 쓴 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연: 현장에선 카메라 앵글의 각도 같은, 사소할 수도 있는 일로 감독과 촬영감독이 다툴 수 있는데, 양익준 감독과 현장에서 다툰 적은 없는지, 있다면 어떤 문제였는지 궁금하다.
윤: 음.. 연희랑 상훈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작은 다툼이 있었다. 조명팀과 나와의 문제와, 나와 감독과의 문제 사이에서 일이 좀 엉켰다. 카메라가 180도 선을 넘어갔을 때 조명이 이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내가 이야기하면 감독은 아 그런 건 별 상관없다, 고 말하는 입장이었다.


연: 확실히 감독과 촬영감독은 그런 부분에서 좀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친한 사이더라도 현장에서 그런 신경전은 당연히 생기게 되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윤: 적당한 긴장감은 오히려 영화에 더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친해진다는 건 정말 친구로서 친해지는 거다. 하지만 현장은 일하는 곳이고, 연출자와 나와는 친구인 동시에 함께 일하는 파트너니까, 적절한 긴장감 유지해 가면서 일하는 게 좋다. 사실 나는 말이 별로 없어서 잘 싸우는 편이 아니다. (웃음)


연: 둘이 생각이 정말 다른데, 감독이 나는 이건 꼭 이렇게 찍어야겠다 한다면, 이해가 될 때까지 토론하는 스타일인가, 일단 믿고 따라가는 스타일인가.
윤: 나는 두 번째 스타일이다. 촬영자는 어느 정도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연출자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끝까지 이해가 안된다면, 그냥 믿고 간다. 믿음이 중요하다.


연: 양익준 감독과 생각이 달랐는데 그 주장을 끝까지 밀고 간 경우도 있나.
윤: 오락실 장면에서 그랬다. 그 날도 아주 작은 의견 차이였다. 풀 샷을 찍었을 때 사람이 이쪽에 있었는데, 뒤집어 찍었을 땐 좀 달라져 있었다. 감독은 이렇게 찍어도 상관없다 했지만 그 때는 내가 우겨서 원래대로 만들어놓고 찍었다.(웃음)


연: 좋은 화면을 촬영자로서 구현하려면 예산을 들여 촬영장비와 조명을 좀 더 동원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길텐데.
윤: 그렇긴 한데, 나는 좀 더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공간에 대한 확보를 좀 더 신경 써서 잘한다면 그런 거 없이도 욕심을 부릴 수 있다.


연: 그런 문제와 연결해서, 독립영화현장에서 특별히 요구되는 촬영감독의 역할은 어떤 걸까.
윤: 상황에 맞는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다. 감독은 자기 이야기, 자기 영화의 어떤 장면이라도 다 찍고 싶어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 또 그게 연출자로서 당연한 거고. 이럴 때 촬영자가 판단력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빨리 생각해서 감독과 상의해야 한다.


연: 그 동안 쌓아온 상업영화 경력이 많다. 첫 독립장편영화 촬영과 비교해보면 어떤가.
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장단점이 있다. 책임감이야 둘 다 가지고 있는 거고. 상업영화는 맘 편하게 일할 순 있지만 여러 외부적인 요건이 많이 침범해 온다. 독립영화는 자유롭고 재미있지만, 욕심과 능력보다 늘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고 모자라서 아쉽다.


연: 앞으로도 또 독립장편영화를 촬영할 생각인가.
윤: 이제 개인 작업을 중점적으로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일하던 촬영부에서도 나왔고. 좋은 영화를 만난다면 장편이든 단편이든 가리지 않고 하고 싶다.


연: 로테르담영화제 참관기를 양익준 감독도 쓰고 김꽃비 씨도 썼더라.(웃음) 촬영감독의 첫 해외영화제 소감과 짧은 참관기를 들어보자.
윤: 나는 일단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동경이 컸다. (웃음) 로테르담영화제에 대한 기대도 컸고. 너무 흥분을 했었다. GV시간에도 같이 나갔었는데, 그 사람들은 정말 반응이 솔직한 것 같다. 다른 영화를 보러가서도 느꼈는데, 영화 보던 중간 중간에도 바로바로 들썩이며 표현하더라. 거리에서 만나면 막 우리 영화에 나오는 욕을 서로 하면서 우리한테 먼저 인사하고.(웃음)


연: 재미있었겠다. GV시간에 촬영감독한테는 어떤 질문이 오던가.
윤: 핸드헬드, 망원렌즈를 사용한 것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감독에게는, 한국에선 정말 저렇게 많이 때리고 욕을 많이 하냐는 질문도 나왔었다.


연: 만약 자신한테 그런 질문이 왔다면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나.(웃음)
윤: 음... "그건 영화적으로 하나의 표현수단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말꼬리를 흐리며) 지금은 그렇진 않다...?" (웃음)



연: 앞으로 특별히 촬영하고 싶은 영화에 대해 듣고 싶다.
윤: 정말 기술적인 영화를 해보고 싶다. 기술적이라는 건, 장르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런 걸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꼭 해보고 싶다.

연: 듣다보니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한국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윤: 음, <8월의 크리스마스> (웃음)


연: 앞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오직 영화만을 할 거라고 생각하나.
윤: 사실 요새 많이 고민 중이다. (웃음) 나는 영화보다도, 내가 앞으로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영화야, 내가 잘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좋은 작품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필요한 이런 고민을 잘 안 한거 같다. 지금은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집요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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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편영화의 촬영감독을 만나다' 특집의 첫 번째 주자는 <청계천의 개>를 촬영한 유일승 촬영감독이다. <청계천의 개>는 김경묵 감독(<나와 인형놀이> <얼굴 없는 것들) 연출)의 연출작이며, 지난 시네마디지털서울 2008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작품이다. 유일승 촬영감독은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촬영하였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재학 중인 학생인 동시에 상업영화 촬영부로도 활동하고 있다. <청계천의 개>는 '촬영감독 유일승'이라는 크레딧을 올린 그의 생애 첫 장편영화이다.

무엇이든 처음, 이라는 것은 떨리는 법이다. 첫 장편영화, 첫 번째 인터뷰...나 또한 인터뷰이로 촬영감독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각종 '처음'들이 함께했던 인터뷰를 네오이마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강연하(이하 '연'): 이 특집의 첫 번째 인터뷰이다.

유일승(이하 '승'): 안 그래도 인터뷰는 처음인데 많이 떨린다.(웃음)


연: 영화를 처음 시작한 계기와 함께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승: 시골에서 컸고, 거기서 열심히 극장 다니면서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때는 연출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영화과에 입학했고, 일 년 정도 공부를 하다가 카메라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촬영을 맡아 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엔 상업영화 촬영부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고, 홍경표 촬영감독님의 촬영부로 지금까지 네 작품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한예종 영상원 전문사에 들어갔다.


연: 연출에서 촬영으로 바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승: 특별한 계기가... 있다. 집이 지방이라 서울에 있는 학교를 혼자 다니기 힘들었다. 그 때 나는 군대 면제를 받았었는데 친구들도 다 군대 가고.. 그러다 집으로 내려가서 무슨 일을 할까 찾아보다가, 방송국에서 뉴스를 촬영하는 촬영팀 보조로 일하게 됐다. 굉장히 재미있어 보였고, 나중에 영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해보니, 항상 사건사고가 나면 발 빠르게 뛰어가 카메라에 담고 테잎을 전달해 뉴스를 전하는 일이더라. 그 때부터 촬영의 매력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영화 촬영보다는 다큐멘터리 촬영에 가까운 일인데, 정신없이 돌아가는 중에 선배들이 중요한 샷들을 선배들이 캐치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번 수입으로 카메라를 구입해서 나름의 나홀로 촬영감독으로(웃음) 이것저것 많이 찍어 보았다. 근데 나는 그림이 안 나오는 거다. 내가 문제가 있는 건가, 카메라가 문제가 있는 건가 고민이 되고. 제대로 나올 때까지 끝까지 찍어봐야겠다 하다가, 결국 이렇게까지 되었다.(웃음)

연: 영화를 하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늘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상대방의 취향이다. 어떤 영화, 어떤 영화감독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승: 정말 다양한 영화들, 감독들을 좋아해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힘들다.(웃음) 음..... 최근에 좋아하게 된 감독은 폴 토마스 앤더슨이다. 아, 그리고 스티븐 달드리 감독을 너무 좋아한다.


연: 아, 나도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들을 참 좋아한다. 그의 새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던데.


승: 맞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빨리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남성적이고 강한 느낌의 거대한 영화보다는,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영화들을 좋아한다.


연: 음. 그런 영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영화일까.(웃음)


승: 음... 아, 내가 영화를 하게 한 영화가 있다. 이와이 슌지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그 영화를 중학교 때 봤었는데 너무....


연: 이와이 슌지 영화는, 현재 영화공부를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첫사랑 영화목록에 자주 오르내리는 영화인 것 같다.


승: 그 당시에 되게 어렸었고,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해봐야 주류 할리우드영화가 다였다. 그랬던 때에 아는 누나가 제목도 안 써져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줘서 보는데, 아 세상엔 이런 영화도 있구나... 하며 충격을 받았었다.


연: 사실 나에게도 그 영화는 나름의 첫사랑 같은 영화다.(웃음) 좋아하는 촬영감독은 누구인가.

승: 여기서 만약 내가 홍경표 촬영감독님을 언급하지 않으면...(웃음) 국내 촬영감독 중에선 김우형 촬영감독님을 좋아한다. 특히 <오래된 정원>... <그 때 그 사람들>의 촬영도 좋았다. 외국 촬영감독 중에선... 디온 비비(<콜래트럴><마이애미 바이스>등 촬영)가 떠오른다. 빛을 다루는 능력이 현존하는 촬영감독 중에 최고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연: 추상적인 질문인데, 그렇다면 좋은 촬영이란 뭘까.

승: 요즘 하고 있는 생각은, 카메라가 크게 드러나지 않은 채 그 드라마에 집중을 제대로 하게 해주는 것만 해도 좋은 촬영이 아닐까, 하는 거다. 예전에 촬영할 때는 드라마가 빈약한 부분을 촬영이 채워줄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불가능한 것 같다. 두 가지가 서로 다르다고 해야 하나... 다양한 촬영기법들이 많이 생겼지만, 요새는 픽스 촬영이 가장 좋더라.



 
연: 이제 <청계천의 개> 이야기로 넘어가려 했는데, 방금 한 답변들과 <청계천의 개>는 정말 상반된다.(승:(웃으며) 맞다.) 사실 <청계천의 개> 같은 영화는 드라마가 중시되는 영화는 아니다. 극영화의 형식 안에 있지만, 기승전결의 드라마가 크게 드러나는 영화는 아니니까.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읽었을 때 이 영화는 어떤 영화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승: 처음엔... 이게 영화가 될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상업영화 촬영 감독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근데 <청계천의 개>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늘 전형적인 플롯구조의 영화를 전형적인 촬영방식으로 촬영하는 내가 어딘가에 갇혀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실험적이고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는 영화를 해 보고 싶었다. 아 근데 질문이? (웃음)


연: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떤 영화라고 생각했는지.

승: 아, 이걸 대체 어떻게 이미지로 풀어내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되었다. 고민을 정말 너무 많이 했다. 특별히 내러티브가 강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공간이 디테일하게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 같은 느낌도 강했고...


연: 원래 김경묵 감독과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

승: 아니다.


연: 처음에 어떻게 만나서 함께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승: 영화 구인 커뮤니티에 촬영감독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었다. 그걸 보고 지원했는데, 감독이 내가 좋았는지(웃음) 연락 와서 함께하게 되었다.


연: 만나기 전에, 김경묵 감독의 전작들을 본 적이 있었는지.

승: 없었다. 몇 번 만나서 얘기한 후, 자기가 찍은 영화라고 디브이디 줘서 그 때 보았다.


연: 충격적이었겠다.(웃음)

승: 충격적이었다.(웃음) <나와 인형놀이>, <얼굴없는 것들>.... 보여지는 이미지도 상당히 강렬하지만, 이 친구가 품고 있는 그 무언가가 너무 강렬해서, 이 영화를 내가 할 수 있을까하고 부담도 많이 됐다.


연: 콘티 작업 같은 프리 프로덕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승: 콘티는 사전에 상의한 것이 별로 없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전형적인 작업방식을 좀 탈피하고 싶었다. 대사가 있는 부분들의 경우 대강의 연결 느낌을 갖고는 갔지만, 촬영 당일현장에서 많이 고민을 해가며 찍었다.


연: (폭포가 방의 사진으로 이어지는) 첫 장면 같은 경우는 확실한 콘티뉴이티와 계획을 짜고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승: 맞다. 그런 부분들은, 감독의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있었던 부분이다. CG,세트 같은 것들까지 다 생각하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그 경우는 확실한 콘티가 있었다. 지하철 시퀀스들이나, 마로니에 공원 시퀀스 같은 경우가 콘티 없이 간 부분이다. 로케 부분은 현장상황이 계속 바뀌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 많아서(웃음) 사전에 했던 생각들과 많이 다르게 나왔다.


연: 청계천, 종로 낙원상가 앞, 거기서 퀵 줌으로 빠져 보여지는 압구정 거리, 허름한 뒷골목들 등 서울 안 공간의 느낌이 강한 영화다. 로케지들은 둘이 함께 헌팅을 다니며 결정한 건가.

승: 처음부터 공간의 느낌이 굉장히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타이틀부터 서울을 걸고 있지 않나.(웃음) 영화에 어울리는 공간들을 찾느라 둘이 많이 돌아다녔다.


연: 디지털이 독립영화의 대세를 이루게 된 건 이미 오래 전 일이고, HD카메라의 보급이 최근의 독립장편영화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청계천의 개>도 HD카메라로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승: 맞다. 파나소닉의 HVX-200이라고 하는, 소위 P2카메라라고 부르는 카메라로 촬영했다. 당시 그 카메라가 가격대비 좋은 화질이었고, 파나소닉 카메라들이 채도가 강하게 나와서 후반작업 때 컬러/흑백 전환과 색보정에도 좋을 것 같았다.


연: 경묵씨는 촬영 도중 단편에서 장편으로 바뀌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스탭들이 다 같이 하자 끝까지 하자고 해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촬영감독으로서 장편영화로 방향을 바꿨을 때 어땠나.

승: 이 작품을 하면서 돈을 받고 계약한 것도 아니었고, 딱 기간을 정해둔 것도 아니어서 사실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이 영화의 촬영감독으로서 시작해서 일한 거니까, 끝까지 책임지는게 당연하다. 장편으로 바뀌는 것이든 아니든, 맡은 거니까 당연히 끝내야지. 이 영화의 감독을 위한 것보다 나 자신을 위해 그게 맞지 않나. 물론 나를 도와주는 촬영, 조명팀들은 많이 힘들었을 거다. (웃음)



연: 영화의 구체적인 장면들 몇 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영화는 흑백화면과 컬러화면을 몇 번씩 전환하며 진행된다. 개인적으로 맨 처음, 방 안에서 거울을 볼 때 흑백으로 바뀌는 타이밍이 좋았다. 흑백/컬러 변환은 처음부터 약속되었던 건가. 아니면 후반작업 때 주로 결정한건가.

승: 컨셉만 있었다. 바뀌는 포인트는 처음에 잡아놓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편집을 하면서 바뀐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런 걸 대비해서 찍을 땐 다 컬러로 찍었다.


연: 처음에 이 영화가 흑백/컬러를 오가는 것이 왜 필요하다고 확신했는지 궁금하다.

승: 이 영화의 구조 자체가 나는 대비라고 생각했다. 공간의 대비, 컬러의 대비, 남녀의 대비..... 그렇게 컨셉을 잡아나가며 이야기하다 보니까 화면 자체의 컬러 대비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영화에서 남자의 욕구가 억눌려 있다 분출될 때, 관객이 가장 쉬우면서도 강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효과가 컬러의 대비라고 생각했다.


연: 성남 판교에서 찍은, 개와 대화하는 시퀀스는 무성영화의 형식을 띠고 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계획했었나.

승: 그런 컨셉으로 찍기로 계획은 했었다. 찰리 채플린 영화처럼, 픽스샷에 연극적인 화면들.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개가 너무 말을 안 듣더라.(웃음) 카메라 안에서 인물이 놀아야 하는데 개가 노는 걸 카메라가 따라가니까.(웃음) 원하는 대로 뽑아내지 못한 장면이다. 개가 훈련 잘 받았다고 했는데, 휴......


연: 아이와 동물은 정말 촬영의 적이 될 때가 많은 것 같다.(웃음) 영화에 등장하는 옷가게는 우연히도 내가 가끔 들르는 옷가게더라. 홍대에 있는... 거길 가봐서 아는데, 나름 특색 있는 구조의 가게 안을 카메라가 최대한으로 활용한 느낌이었다. 핸드헬드도 길고 강하게 쓰였고. 특별히 그 옷가게 씬 찍을 때 잡은 컨셉은 무엇인가.

승: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씬이니만큼 아주 중요했다. 최대한 인물을 따라가면서, 남자가 여자로 변하기까지 움직임이 하나였으면 했다. 인물의 감정을 끊지 않고 한 테이크로 표현하고 싶었다.


연: 녹사평역(지하철 6호선)이 등장한다. 거긴 원래 공간 자체도 초현실적이고 기묘한 느낌인데, 영화에선 데칼코마니처럼 그려져서 혼란을 더한다. 애초에 찍을 때부터 그런 효과를 생각하고 찍었나.

승: 아, 이런 것까지 말하면 김 감독이 곤란해지지 않을까. 영화의 비밀들이 탄로 나서..(웃음) 일단 지하철역 장면 전에 쫓고 쫓기는 인물들을 통해서 추격 장면의 빠르고 긴박한 컷들을 잘 살렸기 때문에, 이번엔 뭐 좀 다른 게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공간에 갔는데 공간이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생긴 거다.(웃음) 이런 구조에 맞춰서 그림도 좀 혼란스럽고 혼돈스럽게 살려보자고 김 감독과 얘기했다. 그 때 실제 연리목씨(여주인공 역할의 여배우)랑 다른 여자 분이 똑같이 분장해서, 처음엔 이 쪽에서 튀어나왔다가 또 갑자기 밑에서 튀어나왔다가 하는 장면을 한 테이크로 촬영했다. 데칼코마니처럼 한 효과는 원래 계획엔 없었던 거고, 후반작업에서 해보니까 실제보다 박진감 넘치는 느낌이 들어 감독이 선택했다.


연: 나는 영화를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때 봤는데, 그 때 GV에서 김경묵 감독이 지하철안 시퀀스가 많이 아쉽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획대로 안 되서 준비한 대로 잘 못 찍었다고.

승: 지하철 안은 여자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증폭시키면서 방에 갇혀지기 전 순간을 표현하는 공간인데, 지금처럼 노이즈 효과 같은 걸 많이 쓰려고 애초에 생각은 안했다. 지하철 행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 여자를 감싸고 영화 속에 배치되어 있던 사람들이 등장하며 압박하고.. 이런 계획이었다. 사실 다 찍긴 했는데 시간에 엄청 쫓겨 가며 찍어서 그런지 원하던 효과가 잘 나지 않았다. 그러면 디지털적인 측면을 살려서 이렇게 해보자 해서 지금과 같은 장면으로 나온 거고. 아마 감독은 편집하면서 그 시퀀스에 가장 많은 공을 쏟았을 거다. 고민이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안다. 찍으면서도 그 부분은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측을 못했다.


연: 지하철 다음 장면이, 경찰 남자한테 잡혀가서 방에 갇히는 장면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새카만 방안데, 영화에서 가장 인위적인 공간이라고 느꼈다. 촬영감독으로서 방의 의미를 처음에 어떻게 설정했는지 궁금하다.

승: 방은 일단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주인공 남자의 머릿속 공간일거라 생각했다. 그런 공간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건가에 대해 얘기하다, 구멍이 숭숭 뚫려서 빛이 쏟아지는 어두운 방이었으면 좋겠다고 감독에게 먼저 제안했다. 경묵이도 좋아하길래...(웃음) 관음증적인 공간, 그런 관음적인 욕구가 가득한 공간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마주하는 곳이기도 하고. 결국 남자주인공이 도달하는 가장 깊숙한, 심연의 공간이랄까...


연: 에필로그처럼 보이는 장면을 빼면, 마지막 장면이 청계천 씬이다. 원래 거기서 찍기로 청계천 측과도 다 얘기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당일날 틀어져서 제작부는 막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막고, 한 쪽에서 촬영부는 막 크레인 설치하고 진짜 힘들게 찍었다고 들었다. 근데,그런 뒷얘기를 모르고 봐도 그 장면은 정말 힘을 주고 사활을 걸고 찍은 장면 같다.

승: 처음엔 그렇게 힘들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처음 등장하는 폭포와 마지막의 청계천은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 힘들었고 압박이 심했다. 사람들 컨트롤 하는 게 제일 힘들더라. 어차피 그 장면은 지미짚 오퍼레이터 기사님한테 사전에 다 설명 드린 장면이었고, 통제가 너무 안돼서 촬영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나는 오히려 촬영보다 사람들 통제에 더 힘썼던 것 같다.(웃음)

말한 것처럼 아쉬운 점도 많지만 예상하지 못한 요인들 때문에 더 잘 나온 부분도 있다. 여자로 바뀐 다음에, 카메라가 크레인을 타고 여자의 옆얼굴을 슥 스쳐 지나갈 때 저 뒤쪽에서 강한 햇살이 여자의 머리 뒤편에 잘 묻어줘서 하이라이트가 살고 명암도 강하게 진다. 그런 부분은 촬영적으로 마음에 든다.


연: 영화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촬영적으로 들었던 느낌이, 카메라가 숨어서 혹은 자연스럽게 있지 않고 존재감을 확실히 가지고 간다는 거였다. 이걸 독립영화의 현장상황과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예산이나 현실적인 통제의 어려움에 타협하지 않고 촬영감독의 고집을 어느 정도 가지고 갔다는 얘기로도 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원래 단편으로 계획된 저예산 영화치고는 사용한 장비들도 꽤 화려하다. 크레인에, 몸에 부착하는 카메라까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 감독과 그런 장비들 사용에 대해 어떻게 의논하고 결정했을지 궁금하다.

승: 감독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라고 했다. 딱 하나, 방금 말했던 몸에 장착하는 카메라는 도기캠이라 하는데, 이거를 꼭 써야 하냐고 계속 말하더라. 예산의 압박 때문에. 계속 서로 눈치를 보면서 이걸 꼭 써야하나... 피디도 와서 이거 꼭 써야하나...(웃음) 고작 한 커트 찍는 건데.(웃음) 근데 그건 내가 막 밀어붙였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건 꼭 해야 된다고. 찍고 나선 경묵이가 되게 좋아했다.(웃음)


연: (웃음) 다들 반대하는데 꼭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승: 도기캠을 사용해서 그 장면을 표현하면, 주인공의 심리가 정말 나락으로, 갈 데까지 다 떨어졌구나 하는 느낌을 줄 거 같았다. 또, 큰 골목에 여러 작은 골목을 인물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동선과 공간이 재밌어서 그걸 한 테이크로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만약 예산이나 여러 문제로 그 장면을 단순하게 숏을 나누어 찍거나 했다면 시간문제도 그렇고 배우 감정 연결에도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 장비를 써서 좀 더 시간을 아낄 수 있고, 한 테이크로 가는 게 더 영화에 좋을 것이라 믿었다.



 
연: 상황의 제약 때문에 둘이 꼭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들이 있나.

승: 첫 장면을 찍은 폭포가 허가가 안 나서 도둑촬영을 했다. 도둑촬영이라 여러 가지 준비를 잘해갈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크레인이 있었으면 조금 더 시각적으로 힘 있는 느낌을 표현했을 것 같다. 그 때는 줌과 간단한 붐 아웃/붐 업 하는 장비만 사용했다. 카메라도 원하는 위치에 놓을 수 없었고... 맘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돌아갔다.


연: 사실 <청계천의 개>가 다루는 감정이나 세계가 보편적인 세계는 아니다. 여자가 되고 싶은 그 남자의 감정을 우리가 백 프로 이해하며 볼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촬영감독으로서 영화 속 남자주인공의 내면을 얼마나, 어떻게 이해하면서 작업했는지 궁금하다.

승: 아 나는...찍을 때도 그랬지만 아직까지도 이해를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한다. 내가 그 남자에 대해 더 충분히 이해를 많이 했다면 결과적으로 훨씬 더 잘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그래서 감독한테 많이 미안한 마음도 있다. 이전에 작업할 땐 배우의 동선과 사이즈, 앵글이 다 정해져 있었는데 이번 작품 땐 정말 모든 걸 열어놨었다. 배우에게 난 아무 간섭도 하지 않았다. 배우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고... 어떻게 보면 인물을 정말 잘 이해하고 더 다가가야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인물에 대한 어떤 벽이 있었던 거 같다. 찍고 나서 영화를 봤을 때 뭐랄까.. 다시 찍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이런 생각도 들고.


연: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뭔가.

승: 여자가 공원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여러 남자들이랑 눈빛 주고받는 장면들이 가장 맘에 든다. 그 장면도 시간에 쫓겼지만, 재밌게 잘 나온 것 같다. 거기 나오는 노래 부르는 사람들 동선도 다 현장에서 짠 거고, 텅텅 비어 있을 줄 알았던 공원이 무슨 수학여행을 온 애들로 가득 차 있고...(웃음) 그래서 사전에 생각했던 것과 다 다르게 찍었다.



연: (웃음) 이제 연출자와의 관계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연출자와 촬영감독은 촬영장에서 부딪힐 일이 많다. 예를 들어 둘이 사전에 같이 지금 장면은 클로즈업, 이라고 정해놔도 현장에 가서 촬영감독이 앵글 잡아놓으면 연출자가 와서 "내가 생각한 클로즈업은 이게 아닌데, 이것보다 더 얼굴로 크게 들어가는 거다." 한다던지, 풀 샷이면 또 서로가 생각한 풀샷 사이즈가 앵글이 달라서 "왼쪽으로 조금만 더" 한다던지 하는 사소해 보이는 일들부터 시작해서 꽤 많을 텐데.


승: 감독한테 처음에 얘기했다.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꼭 말해달라고. 물론 카메라 오른쪽으로, 이런 건 촬영감독 입장에서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선 좀 더 인물에게 집중했으면, 이런 느낌이 났으면, 하는 말들은 꼭 필요한 거다. 그래서 꼭 촬영 중간 중간에 말해 달라고 했다. 그래도 내가 그 느낌을 못 잡으면 더 직접적으로 말해 달라고 했다. 나도 이런 식으로 다 열어놓고 작업하는 건 처음이라 내가 놓치고 가는 게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작을 봤을 때, 감독이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촬영 때는 우리 둘 사이의 충돌보다는 감독의 요구를 내 스스로 못 찾는 거 같아서 내 스스로에 대한 좌절을 많이 했다. 지하철 씬 찍을 때 특히 그랬다. 이전까지는 그런 생각은 한 적 없었는데. 플랫폼에서 건너편으로 넘어가려고, 카메라 장비들을 촬영부 친구들이랑 같이 들고 가는데 나 정말 힘들다고, 이거 어떻게 찍어야 될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그런 얘기하고 그랬다.


연: 현장에서 크게 싸운 적은 한 번도 없나.

승: 크게 싸운 적은 없고 음... 아무래도 독립영화에서 진행을 조감독보다는 촬영감독이 나서서 주도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잖나. 조감독한 친구가 이렇게 나름 규모 있는, 긴 길이의 영화를 처음 해보는 거라 좀 서툰 점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조감독한 친구를 좀 꾸짖었었다. 일 좀 똑바로 하라고. 감독 입장에서는 그런 게 많이 불편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촬영중간에 진지하게 한번 얘길 하더라. 나 때문에 스탭들이 되게 힘들어한다고. 아니 그러면 영화는 어떻게 찍을 거냐, 제정신으로 그런 말하는 거냐고 내가 오히려 막 화를 냈다. 내가 그렇게 안하면 우리 지금 15회차가 아니라 30회차 찍을지도 모른다고, 감당할 자신 있냐고. 그런 얘기를 둘이 따로 했었다.


연: 조금 규모 있는 독립영화의 현장에선 아무래도 촬영감독이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욕심을 내게 되더라. 시간에 쫓기지만 여기서는 조명을 얼마만큼 써야 되니 시간이 얼만큼 필요하다, 라는 요구도 하게 되고. 반면에 연출 쪽이나 제작 쪽에서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지금그런 것보단 연출적인 것이나, 배우 연기나 현실 상황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이렇게 나올 때 서로 간에 충돌이 일어난다. 이럴 때, 영화의 완성도나 기술적인 퀄리티를 위해 고집을 세우고 가는 편인가, 아니면 일단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보는 편인가.

승: 그 부분에 있어서 지금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대학교 다닐 땐 정해져 있는 분량을 못 맞추고 찍은 적도 있고 그래서 보충촬영한 적도 꽤 있다. 요즘에는, 꼭, 절대로 정해진 분량은 무조건 맞춰야 한다. 어떤 촬영감독이 그랬다더라. 현장에서 노출계는 없어도 찍을 수있지만 시계 없이는 찍을 수 없다고. 이 말이 너무 가슴에 다가왔다. 만약 내가 부족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내가 원하는 lighting을 못 만들면 그건 내 탓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럴 땐 다음 분량을 빨리 찍어야 한다.

나는 지금 단편이나 독립영화를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후에 상업장편영화를 하기 위해 나를 발전시켜 가는 과정의 하나다. 내가 여기서 단편작업을 하면서 그런 걸 못 지켰는데, 상업영화 데뷔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더 예산도 커지고 하는데 말이다. 내가 원하는 걸 일부 포기하더라도 정해진 분량은 지켜 내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그리고, 촬영은 막 드러내려 노력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빛만 딱 나와도 이제는 찍을 수 있겠다.(웃음)


연: 학교 작업을 하면서나 상업영화 촬영부를 하면서 많은 연출자들을 보고 겪었을 것 같다. 좋은 연출자와 촬영자간의 관계란 어떤 걸까.

승: 그건 개개인마다 각자 다른 것 같다. 난 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감독한테 많이 의지를 하는 편이고, 아니면 이건 내가 진짜 잘할 수 있겠다 라고 믿는 부분에선 연출자한테 내 생각에 대해 요구를 많이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많은 친구들은,,. 그래도 다 다음 작품을 나랑 하고 싶어 하더라.(웃음) 그래서 나한텐 문제가 없나? 생각도 하고.(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물론 그들과 싸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들 작품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고. 너무 이끌려 가는 것도, 너무 버티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 싸우면 생각보다 작품이 잘 안 나오더라. 특히 단편영화는 서로 공부하는 의미에서 하는 것도 있으니까 서로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연: 독립영화현장에서 특별히 더 요구 되는 촬영감독의 자세는 무엇일까.

승: 이건 정말 <청계천의 개> 하면서 느낀 건데, 상황판단이 일단 되게 빨라야 한다. 항상 어떤 문제가 생길 때 늘 대비책을 갖고 있어야 할 거 같다. 정말 어떤 문제는 누가 생각해도 뻔히 생길법한 문젠데, 현장에서 대책 없이 당하니까 정말 당황스럽고, 거기에 대한 준비는 하나도 안되어 있고... 아니 내가 왜 이 정도도 예상 못했을까 자책도 많이 하고...


연: 아까도 말했지만 상업영화 촬영감독이 최종목표라고 했다. 만약 입봉하게 되더라도 독립영화 작업을 할 생각이 있나.

승: 지금도 그나마 유일한 숨통이 상업영화 일 없을 때 독립영화 촬영하는 거다. 그동안 쌓였던 어떤 힘든 것들을 창의적으로 푸는... 상업영화 데뷔하더라도 독립영화는 꾸준히 하고 싶다. 현장에 있으면서 느꼈던 건데, 상업영화 현장과 독립영화 현장의 감독, 촬영감독 간의 관계는 정말 다르다.


연: 어떻게 다르던가.

승: 아무래도 상업영화에선 감독님이 왕이시고, 촬영감독은 중요한 스탭이 되기 쉽다. 독립영화하다 상업현장에서 감독과 촬영감독 관계를 봤을 때 아주 쇼크였다.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감독한테 끌려 다니거나 하는 스타일이 전혀 아닌데도, 내가 생각했던 관계랑은 많이 달라 보였다.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 좀 상하관계 같은. 내가 잘해서 수평적으로 만들었음 좋겠지만 그렇게 안될 가능성이 더 많은 것 같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건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일하는 거다.


연: 그런 관계를 알고, 불만족스럽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목표를 확고히 상업영화 촬영감독으로 생각하고 있다.

승: 왜냐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내가 찍은 영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또, 돈을 많이 벌진 못할지언정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이미지로 영화의 메시지나 분위기나 감정을 표현하는 촬영감독의 기본적인 일은 같기 때문에, 어딜 가서도 내가 맡은 일을 잘해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연: <청계천의 개>는 자신에게 어떤 작품인가.

승: 그 동안 나는 굉장히 계산적으로 영화작업을 해왔던 거 같다. 프리 프로덕션 때 거의 모든 가능성들을 콘티 짜면서 다 해보고, 현장 가서는 콘티대로 찍고. 새로운 걸 뽑아내기보다는, 우리가 하려고 계획 했던 걸 얼마만큼 뽑았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닌데 이 영화가 그런 나를 깨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준 것 같다. 또 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처음 촬영을 맡아 한 작품이기도 하다.


연: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다.(웃음) 앞으로의 계획과 독립장편영화에 대한 특별한 꿈 같은 것이 있는지 듣고 싶다.

승: 잡혀 있는 계획으로는, 단편을 두 편 정도 더 할 것 같다. 단편작업을 조금 더 해서 내공을 많이 쌓고 싶다. 다음에 장편영화를 할 땐 좀 더 준비 열심히 해서, 정말 잘하고 싶다. 상업영화 현장과 독립영화 현장을 오가면서 일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이제는 내 능력을 좀 더 닦고 표현해 가면서, 내 개인적인 작업을 좀 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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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촬영감독은 감독의 눈이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에는 감독뿐 아니라 촬영감독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촬영감독의 존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흔하게 반복되는 말들로 이 특집을 기획한 이유를 쓰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 보자. 영화를 보면서 촬영감독의 존재를 잊는 일은 평범한 경우이며, 영화가 잘 되었을 때 그 영광이 감독 한 명에게 돌아가는 일 또한 자연스럽다. 나는 영화에 있어 이것이 어느 정도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촬영감독이라는 사람들이 궁금하다. 한 편의 영화에서 감독과 가장 가까운 공동 창작자임에도 주목 받는 정도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뒷자리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으로 영화는 '보는 예술'이다. 관객인 우리가 보는 스크린에 투사되는 영상을 (감독에 앞서) 촬영 순간부터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은 촬영감독이다. 영화의 창작자이면서 동시에 첫 번째 관객인 셈이다. 결국 윗 단락 첫 문장 또한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는 촬영감독의 특권이자 의무인 이 첫 번째 관객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찍혔을 수많은 쇼트들을 가장 먼저 보고 생각했을 사람들.

영화는 많은 예술 장르 중 상당히 테크니컬한 분야이다. 영화는 후기 산업화 시대의 기술 속에서 탄생했으며, 때문에 영화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기계와 기술 하에서 창조될 수 있다. 사실 감독은 추상적인 영감과 생각과 글자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그 추상을 영화라고 하는 실체로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조력자가 촬영감독이다. 나는 이것이 참 멋지고 능력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티스트이자, 테크니션이라니.

그렇다면 왜 '독립영화'의 촬영감독인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독립영화 현장이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멀리 있는 충무로의 촬영감독들을 만나기보다는 내가 조금이나마 알고 이야기를 듣고 때로 함께 일하는 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이 사람들이 한국영화계의 차세대 촬영감독 유망주가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하면서 말이다. 또 과거 <키노>나 <씨네21> 등에서 늘 일 년쯤에 한 번씩 촬영감독 특집을 하곤 했는데, 독립영화 촬영감독에 대한 정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기회에 "네오이마주"에서 먼저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기획했다.

영화의 선정은 독립장편영화 중 극장에서 정식개봉 했거나 유수 영화제들에서 여러 번 상영한 작품 중 인상 깊게 본 영화들로 먼저 골랐다. 그 후 촬영적으로 좀 더 관심이 가는 작품, 독립영화 진영에서의 위치나 경력, 시의성 등을 고려하여 최종 네 편을 선정하였다. <은하해방전선>(윤성호 연출)의 권상준 촬영감독, <청계천의 개>(김경묵 연출)의 유일승 촬영감독, <마이 제너레이션>(노동석 연출)의 이선영 촬영감독, <똥파리>(양익준 연출)의 윤종호 촬영감독, 이 그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두 사람은 (현재까지 발표된 필모그래피로만 보아서는) 독립영화 촬영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 만큼 독립영화 진영에서 쌓아온 경력이 상당한 반면, 또 다른 두 사람은 상업영화 현장에서 촬영부로 일하는 중간 중간 독립영화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 권상준 촬영감독은 독립영화계의 대표주자인 윤성호 감독과 함께 <은하해방전선> 이전의 많은 단편영화들부터 함께 작업해 왔으며, 이선영 촬영감독은 새로운 세대의 디지털 독립장편영화로 널리 회자되는 <마이 제너레이션> 이전부터 노동석 감독의 단편들을 촬영해 왔다. 이에 반해 유일승 촬영감독은 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작업한 독립영화로는 <청계천의 개>가 처음이며, 현재 홍경표 촬영감독(<지구를 지켜라!><태극기 휘날리며> 등 촬영)의 촬영부 제2조수로 있다. 윤종호 촬영감독 또한 김우형 촬영감독(<거짓말><바람난 가족><그 때 그 사람들>등 촬영)의 촬영부 제1조수로 일했으며 동시에 조금씩 독립영화 작업을 해 왔다.

인터뷰는 한 사람당 한 회씩 이루어졌고,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평소 독립영화를 관심 있게 보던 독자들이라면 '그 때 인상 깊게 봤던 그 영화', '그 영화제에서 보았던 영화', '보진 못했지만 어느새 알음알음 유명해진 그 영화'의 촬영감독이 누구고 알지 못했던 현장 뒷얘기는 뭐가 있는지 생각하며 봐도 좋을 것 같고, 독립영화에 특별한 관심 없던 독자들이라면 대체 독립영화 현장이란 일반 멀티플렉스에서 보던 영화와 뭐가 다른지,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일해서 먹고 사는지 같은 호기심을 가지고 살짝 엿보아도 좋을 것 같다. 누가 아는가. 2009년 봄 "네오이마주" 가 소개하는 이 네 명의 촬영감독들이, 몇 년후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감독 OOO' 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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