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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1 네오이마주, 당신은 누구십니까? (1)
  2. 2007.08.07 2007년 여름, 어느 한 주의 기록

네오이마주, 당신은 누구십니까?

필진 칼럼 2008. 2. 11. 16:43 Posted by woodyh98

지난 한 주간은 유독 영화 관련 종사자들을 만날 일이 많았다. 이들 중에는 영화감독도 있었고 제작사 담당자도 있었고 평론가도 있었으며 웹-미디어 회사 직원과 웹 사이트의 운영자도 있었다. 만나는 이들마다 내게 던진 하나같은 질문은 “네오이마주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물어온 질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 질문만큼이나 많이 접한 이야기는 “확실한 색깔을 찾을 수 없다”는 정체성 부재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확실한 색깔이 결여된 것은 편집방향의 문제이고 곧 편집장의 책임일 테다.

고백하자면 네오이마주는 이 공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어야 했다. 다시 말해 영화비평을 통해 한국영화계에 손톱만큼이라도 기여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했다면 그것은 정보제공에 불과한 글쓰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만 뒤지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감독과 배우의 필모그래피 나열 따위의 글과는 일찌감치 이별을 고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찌해야 한다는 것인가.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판을 건드려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데 있다.

요컨대 판을 건드리는 행위는, 영화를 둘러싼 갖은 양태의 문화를 점검해야 하는 일인 동시에 영화산업의 매트릭스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요구되는 일이다. 또한 이 땅에서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10년여의 연대기적 사건과 지금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개인 극장주들과 영화인들이 충무로 골목에 새겨놓은 저마다의 사연과 영화 한편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역학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함부로 판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마추어적 사고와 시각으로 어설프게 접근하고 감으로 때려잡아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매체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는 영화관련 소식 중에서 제대로 된 판 이야기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들의 능력을 넘어선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중심에 다가가긴 쉽지 않은 때문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놓은 통계자료에 의존하고 통합전산망이 던져주는 관객 숫자에 기대어 점유율을 운운하며 한국영화의 위기와 부활을 외쳐대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네티즌들의 주장 속에 담긴 영화산업 전반에 관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막연한 추측과 과잉일반화의 오류에 함몰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것은 ‘관객’논리이다. 그러나 이때의 관객은 다수 관객이 아닌 ‘그날 그곳에 글쓴이와 함께 있었던 일부 관객’일 따름이다. 이는 ‘관객’을 방패막이로 내세워 자신에게 날아올지도 모르는 비판의 칼날을 피하려는 비겁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 도저히 계량화시킬 수 없는 것을 일반화하고 객관적 사실로 둔갑시키고는 ‘관객’이라는 유령과 한정된 애독자의 호의를 빌려 영화를 재단하고 평가하여 기어이 한국영화산업까지 아우르는 글 한 편을 써내는 능력, 감탄만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이처럼 사실보다는 가십과 추측에 의존하여 이슈를 만들어내고 수용자 구미에 맞도록 글을 생산해온 일부 황색저널과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안전판 위에서 취향대로 재단해온 일부 블로거들의 전력은 웹 공간에 속박된 리뷰와 담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제 “네오이마주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가에 대한 대답을 할 차례다. 앞으로 이곳은 사실에 입각한 실질적이고도 정교한 비판 도구를 사용하여 현재의 한국영화와 영화판을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영화비평이 대접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감독과 제작자에게 직접적 도움이 될 만한 비평언어의 부재는 물론이고 매뉴얼 북 수준의 영화평의 창궐과 무관치 않다. 제작과 함께 하지 않는 비평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영화에 대한 비판과 상찬은 다른 진영의 몫으로 남겨 놓고, 앞으로는 영화와 영화판에 도움 되는 비평에 역점을 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정착되고 널리 인식될 때만이 네오이마주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봄이면 지금보다 훨씬 간명해지고 단순하게 구성된 섹션으로의 컨텐츠 통폐합을 통해 네오이마주의 목소리를 한곳에 모으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제대로 된 깊이를 가지면서도 확실한 색깔이 드러날 때, 보다 많은 영화인들이 이곳에서 자신과 자신의 영화이야기를 논의하거나 탐독하게 될 것이다. 소리 없이 이곳을 찾아오는 많은 그림자 군단, 특히 영화제작 일선에 있는 이들의 보다 적극적인 의사표현과 활동을 권하는 바이다. 무엇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는 것 다 이루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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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oonworx.egloos.com/ BlogIcon moonworx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산적이고 사려 깊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오이마주가 이러한 현재를 잘 극복하고 더 좋은 모습으로 유지될 수 있길 바랍니다.

    2008.03.26 16:29

2007년 여름, 어느 한 주의 기록

필진 칼럼 2007. 8. 7. 14:10 Posted by woodyh98
2007.08.06

남들이 어디로 바캉스를 갈까 고민하는 동안, 영동고속도로 교통상황에 귀 기울이며 지름길을 선택하는 동안, 또는 혹여 상사의 휴가와 겹쳐져 눈초리 받을까 노심초사 하는 동안, 휴가비는 얼마나 나올까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시네필들이 극장순례를 계획하는 동안, 나는 꼼짝없이 몇 편의 영화에 시달리고 매달려 살아야 했고, 그런 사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잉마르 베리만 두 감독이 한날 타계했다. 독립영화 쇼 케이스에서 만난 어느 독자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 세대가 저물고 있음을 절감했다. 여전히 날은 덥고 갈증은 심해지지만 한국영화계를 달구고 있는 이슈에 비하면 나의 더위 타령은 한낮 투정에 불과하다.

지난 주, 광주의 모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은“[화려한 휴가]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방송국과 인터뷰를 한 두 번 한 것도 아니지만, 한 시간 가량 특집방송용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에 적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의 극장가를 돌면서 관객의 반응을 보고,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대표도 만날 것이며, 영화평론가 2명과 인터뷰를 할 계획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이런저런 약속의 과정이 오가면서 인터뷰는 주말에 이루어졌다. 40분가량 이어진 인터뷰를 통해서 솔직한 느낌을 털어놓았다. 이미 글을 통해 밝힌바 있지만, 영화에 담긴 감독의 시선과 그 시선을 지배하는 역사의식, 그러니까 ‘80년 광주를 둘러싼 섣부른 화해와 용서의 과정에 대한 고민 없음’이 문제라고 말했다. 꽤나 날선 표현으로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NG한 번 부르지 않은 PD가 고마울 따름이다.

영화를 비평하는 일이 이렇듯 값싼 노리개로 전락하고 무수한 사람들의 세치 혀에 놀아나면서 저잣거리의 개처럼 천대받았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이제 비평가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정도로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익히 알만한 비평가는 물론이요 평소에 잘 들어보지 못하던 이름들마저 인터넷에 떠돌면서 누리꾼들 손에 난도질당한 후, 충무로의 개로 격하 되더니 기어이 효수당하는 지경에 놓여버렸다.  정말로 웃음이 터지는 것은, 영화평론가를 마치 충무로의 하수인인양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돈을 주면 잘 써주고 안 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씹어버린다는 내용의 근거 없는 험담들과 과잉일반화의 오류 덩어리들. 대체, 영화제작자와 감독 중 한국의 영화평론가를 고깝고 친밀한 존재로 여기는 이가 몇 이나 된다는 말인가. 오히려 한국영화가 어려운 때임에도 힘을 실어주지 않는 다는 섭섭함이야 말로, 평단을 향한 충무로의 속내가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2007년 8월의 영화담론은(정확히 담론이라 할 수 도 없는)피아의 식별도 모호하고,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완전히 넘어선 집단히스테리의 사육제로 변모중임에 분명하다.

이제 한 편의 영화 앞에서 인간의 존엄과 인격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신의 체면과 명예 역시 별무소용이다. 영화에 매진하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처럼 영화가, 그리고 영화인이, 또한 영화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진흙탕 속에서 버둥대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 거의 절망적이다. 이것이 올 여름,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는 영화와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풍경들이다. 과연 이것을 영화이야기라 할 수 있는가. 유의미하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독자여러분께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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