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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01 성룡, 그 늙어가는 광대의 주름을 바라보다 (33)





흔히 우리가 영화 안에서 “작가”라는 존재를 규정 지을 때 내거는 조건을 일관된 개성과 그 속에서 변함없이 빛을 발하는 남다른 주제의식이라고 정의 내린다면 흥행의 최전선에서 지속적으로 대중취향의 영화를 만들어왔던 성룡이라는 인물은 작가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예술적인 질감과는 영 거리가 먼 존재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1980년대 홍콩영화의 전성기에 자웅을 겨루었던 소위 홍콩 느와르의 감독들이 재발견되고 재평가 받을 때에도 여전히 질시 섞인 시선을 받다가 헐리우드 진출과 함께 뒤늦게 어느 정도 평가의 영역을 할애 받고 있는 듯한 그이지만 쏟아지는 시선 속의 편견은 여전하며 보여지는 영화적 한계선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뀔 시간 동안 제자리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이자 스타인 성룡의 얼굴 구석구석에 자리한 주름들을 찬찬히 뜯어보는 작업은 그 안에 투영된 스타를 향한 우리들의 욕망을 돌이키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그 동안 만들어 왔던 영화들 속에 은연중에 숨겨져 있던 사회적 징후들을 살펴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름 자체가 특정 장르를 떠올리는 영화인은 흔치 않은데 성룡이라는 인물이 그 흔치 않은 범주에 포함되고 있으니 분명 논의의 가치는 있다고 여겨지는 바이다. 작가주의의 한 기틀은 일관된 스타일이고 장르란 영화 시장의 수요와 공급 사이에 이루어진 접점이 형상화 된 것이라 얘기한다면 자신만의 고유성을 지속시켜 하나의 보편적인 소우주로 자리 매김 시킨 성룡의 영화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작가와 장르를 동시에 아우르는 작업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엔 성룡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가치에 대한 온당한 평가도 필요할 것이다. 무겁지 않은 즐거움으로 대중을 위로하는 것 또한 문화 예술의 중요한 의무이기에.


WHO AM I – 내가 누구게?

성룡, 혹은 성룡 작품의 출발은 그다지 남다른 구석을 갖추지 못하였다. 거의 제살 깎아먹기 식의 아류들을 남발하는 홍콩 영화산업의 병폐 속에서 이소룡의 부재를 채워 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출발한 수많은 용들 중의 한 마리에 불과했던 그가 오늘날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선배들과의 차별화 전력에서 비롯된다. 호금전, 장철, 그리고 이소룡의 영화들을 감싸고 있던 아우라는 유교적이고 장엄한 무사도, 본토의 대륙적 기질에서 계승한 호연지기, 여기에 원한과 복수라는 고전적 테마였다. 물론 초기의 성룡 영화들도 선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초기작들의 연이은 실패 속에서 그가 내린 결정은 선배들의 막강한 그늘을 스스로 박차고 나오는 것이었다. 성룡을 아시아의 스타로 등극시켜준 [취권]은 이러한 부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충과 효에 기인한 유교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은 여전하나 여느 협객과 다르게 좌충우돌하며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을 내쳐버리는 모습은 차별화를 위한 그만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소룡을 때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성룡은 누구나 때릴 수 있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영웅협객이 아닌 유약한 파이터로 규정 지어온 그의 영화행보는 70년대를 주도했던 두 가지 조류, 즉 이소룡 류의 권격물과 허관문 류의 소시민 코미디를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엄격하고 장엄한 무사도 대신 평범한 직업의식 또는 가학적이다 싶을 정도까지 죽도록 고생하는 캐릭터로 자신의 캐릭터를 고정시키고 그것을 구심점 삼아 채워져 나가는 그의 영화들은 무협물 보다는 분명 헐리우드 무성 영화들과 더 닮아 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그를 단련시켜온 경극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겠으나 공간 및 각종 소도구들과 함께 복작거리는 그 과장된 몸짓과 표정연기는 세간의 평대로 버스터 키튼과 같은 무성 영화시대의 배우를 연상케 한다. 오늘 날까지 이어온 성룡 영화의 특징을 규정지은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프로젝트 A]의 저 유명한 시계탑 장면에서 그는 찰리 채플린과 해롤드 로이스의 흔적을 동시에 끌고 들어온다. 1980년대 홍콩의 배우에게서 발견하는 1920~1930년대 헐리우드 배우의 얼굴. 한 마디로 혼성모방에 잡종 캐릭터라 할 수 있겠으나 바로 그런 모습에 중국 본토에서 떨궈져 나와 영국의 식민지로 긴 세월을 보내온 홍콩이라는 도시의 얼굴이 각인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홍콩이란 도시 역시 잡종, 짬뽕들의 천국이니까.

이런 홍콩의 특성에 대해 논할 때 1997년 본토반환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오래 전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상당히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고 끊임없이 홍콩의 정체성을 옭아맸던 이 거대한 강박 관념에 대해 성룡은 단 한번도 정치적인 견해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세상 속에서 거대 담론과 거리를 둔 채 그저 주어지는 일상대로 적당껏 체념하며 살아가는 홍콩 소시민의 얼굴이 그에겐 있다. 끊임없이 허무주의를 논하고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던 홍콩 느와르의 주인공들이 실은 대륙을 활보하던 과거를 그리워해온 “도시 속의 강호인”이라면 성룡은 그 시절을 잊거나 혹은 단절시킨 채 살아온 “도시인”이다.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 소시민에게 현실을 뒤집을 괴력 따윈 없다. 그저 참고 견디며, 서로를 돕고 사는 것이 최선이며 기왕에 살아갈 것이라면 웃으며 버텨내는 쪽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터. 바로 여기서 성룡 특유의 낙관주의가 베어 나온다. 대공황 시기의 미국이 위안과 억압된 욕망의 대리수행을 위하여 내놓은 얼굴이 슈퍼맨과 배트맨 같은 히어로들이었다면 본토 반환 직전의 홍콩이 내어놓은 얼굴들 중 하나는 성룡이었던 셈이다.

가끔은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영국관료에게 부국강병을 주장하기도 하고([프로젝트A]), 몸으로 부딪히는 블루칼라의 서러움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지만 ([폴리스 스토리]) 그는 늘 유쾌하고도 일상적인 색채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성룡의 소시민적인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영화 중 하나가 [A계획 속집]이다. 신해혁명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동참을 권유하는 혁명동지들에게 건넨 성룡의 대답은 자신의 직업인 경찰 업무에 충실하면서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도우며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97년 이후의 홍콩에 대해 심각한 어조를 보였던 [C.I.A](원제는 WHO AM I)에서 내가 누구냐며 절벽에서 내질렀던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돌린다면 아마도 성룡은 “나는 중국인”이라는 대답 대신 “나는 홍콩인”이라는 대답을 주지 않을까? 끊임없는 하강과 추락으로 점철된 행보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하는 소시민들 입장에서 보자면 어찌할 수 없이 ‘웃음은 나의 힘’일 수 밖에 없다.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화려한 비상 대신 원점회귀로 일관한 영화 속 그의 모습들은 홍콩인의 자조적인 낙관성을 대변한다. 아마도 거세게 타올랐던 홍콩 느와르라는 소 장르의 수명이 그리 짧았던 이유도, 또 같은 것을 보여주고 또 보여줘도 질리지 않는 성룡 영화의 생명력도 이러한 소시민적인 동질감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PROJECT A TO Z, 成龍作品의 모든 것.

1. 하강하는 영웅의 이미지

유머가 없는 액션은 폭력일 뿐이라는 영화관을 강변하는 성룡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온건하고 안전한 “연소자 관람가”용 오락물들이다. 그러나 급진적인 구석도 없지만 또 보수적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헐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적인 화합에 대한 메시지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예들 들자면 [리썰웨폰]같은 영화에선 일종의 대체가족을 형성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는데 이에 반해 성룡의 영화들에선 가족이 등장하는 것 조차 드물다. 형사가 되었건 조폭이 되었건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면, (또는 영화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하하 호호 하며 오손 도손 지내야 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고독한 늑대를 자처하는 것도 아니면서 영화 속에 부재한 가족의 빈 자리는 성룡의 귀가를 번번히 방해한다. 그런 면에서 [러시아워2], [샹하이 나이츠]에서 보여지는 아버지 원수 갚기는 성룡 영화에서 상당히 생소한 설정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복수극조차도 대규모 공동체의 결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쯤에서 그의 영화가 언제나 해피엔딩을 지향하면서 헐리우드 식의 해피엔딩과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해피 투게더를 외쳐대는 멜러 드라마적인 결말 대신 자신이 처한 위치를 되돌아보는 성룡의 웃음은 원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성향을 지녔고 그로 인하여 신화, 혹은 공동체 내에서 완결되는 해피엔딩으로의 승격을 거부한다. 예를 들자면 [폴리스 스토리 1]에서의 멋진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속편인 [구룡의 눈]의 오프닝에서는 전편의 그 사건으로 인해 교통경찰로 좌천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고 [미라클]에서 기적을 일으켜 놓고도 한마디 말 실수로 인해 동료들의 핀잔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 속에서 영웅의 서광을 제공하는 장엄한 공간 연출 따위는 찾아 볼 수도 없다. 늘 좁다란 공간 속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받히며 먼지 구덩이를 헤매기 일쑤다. 이처럼 비장한 남성신화와 람보처럼 국가적인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마쵸 히어로의 무용담을 비껴나가는 노력들로 인하여 성룡의 영화들은 대중과 친근한 정서적 교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거의 탈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을 영화들을 만들어오긴 했어도 그 속에서 시대를 돌아보고 위로하려는 시도를 찾아낼 수 있음 또한 바로 저 교감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터. 지금은 비디오샵 어느 한 구석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있을 올드 무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거의 채플린에 비견할만한 예술적 야심을 내보였던 [미라클]에서 그가 제시하는 것도 일종의 회귀성을 띈, 자조적 낙관주의다.

때는 90년대를 목전에 둔 1989년, 오우삼이 [첩혈쌍웅]으로 홍콩 느와르의 절정에 올라섰고 왕가위가 자신의 시대를 알릴 채비를 갖추던 그 때, 성룡은 시계바늘을 1930년대로 되돌려 잠깐 동안의 기적에 대해 이야기 한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포켓 속에 가득한 행복]을 리메이크한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장기인 맨손 아날로그 액션을 후순위로 미뤄두고 [시티라이트]에서 채플린이 그러했듯 누군가를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그 어수룩하고 순진한 모습으로 인하여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의 얼굴을 버스터 키튼이 아닌 찰리 채플린과 더 닮아 보이게 한다. 대공황에 몸살을 앓던 채플린의 1930년대와 본토반환의 불안감에 시달리던 홍콩의 1980년대 말, 그리고 [미라클]에서의 혼란스럽지만 훈훈한 공기가 있는 1930년대. 이 세 개의 시공간을 연결하는 삼각구도 속에서 성룡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분명 냉철한 통찰이 아닌, 향수와 온정이지만 여기엔 엔터테이너로서의 자각과 근심이 담겨 있다. [타이타닉]에서 배의 침몰 직전까지 음악을 연주하던 그 악사들을 연상케 하는 따뜻한 가슴,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침몰하는 배를 건져낼 순 없었듯 성룡 또한 엔터테인먼트의 위력이 지닌 유효성을 은연중에 절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신화를 창조하려 들지도, HAPPILY EVER AFTER를 외쳐대지도 않는 것이다. 열성팬임을 자처하는 류승완 감독이 규정지은 “하강하는 영웅의 이미지”는 비단 액션연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2. 고통의 다큐멘터리

이데올로기적인 담백함과 신화성의 거부가 성룡 영화 세계의 내부를 채우고 있다면 외골격을 구성하는 것은 역시 특수효과 없는 액션 연출일 것이다. 마치 뮤지컬에서 멜로디만을 삭제한 듯 안무처럼 절묘하게 합이 맞아 떨어지는 액션시퀀스는 근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성룡의 영화들을 찾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플롯의 짜임새라는 면에선 다소 헐거워 보이긴 하지만 원형질에 가까운 활극의 쾌감은 자본력과 기술력으론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인간적인 체취를 동반하기에 그의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으레 한 수 접어주고(?) 보기 마련이다. 어쩌면 연출에 있어서 플롯의 최소화, 스타일의 최대화를 표방한 호금전과 성룡이 유일한 공통점을 보이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지속적으로 일관되어 온 그 힘 하나를 이유로 들어 눈에 띄는 결점들 마저 모른 척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목숨을 담보로 한 스턴트 앞에서 재미를 넘어선 어떤 감동까지 느끼게 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타임지가 1995년에 [취권2]를 그 해의 베스트 무비 중 한편으로 선정하면서 덧붙였던 “관객의 즐거움을 위하여 죽음을 감수하는 고통의 다큐멘터리”라는 코멘트는 그간의 성룡 영화에 대한 가장 적절한 평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의 즐거움은 허구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구현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내던지고 부딪혀야 한다는 성룡 영화의 흥미로운 모순점에 대한 명쾌한 지적.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작가적 서명이나 다름 없는 N.G모음이 아니더라도 영화와 성룡 스스로가 펼치는 곡예의 다큐멘터리, 즉 픽션과 논픽션이 중첩되는 대목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폴리스 스토리]의 클라이맥스인 백화점 샹데리아 낙하씬을 예로 들어보자. 비장한 눈빛으로 증거물을 챙겨 달아나려는 악당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 극중 캐릭터인 진가구 형사이지만 뛰어내리기 직전 기합을 내지르며 스턴트를 감행하는 것은 실제의 성룡 자신이다. 만약 영화적인 완벽함을 추구한다면 여기서 N.G를 불렀어야 마땅할 것이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처한 형사가 기합을 넣고 자세를 가다듬는 것은 영화의 호흡에 위배되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성룡은 대규모의 스턴트를 선보이는 그 순간에 캐릭터를 지워내고 실제 자신의 모습을 새겨 넣는다. 바로 여기서 테크놀로지에 역행하며 영화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성룡의 작가적 이미지가 완성된다. 온전히 육체의 기예로만 이뤄내는 정직한 스펙터클과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에 대한 가장 솔직한 자기고백. 그런 연유로 성룡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신작 감상이 아니라 계속해서 부서지고 망가져온 세월의 흔적도 함께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록 이제는 50을 넘긴 나이와 스턴트 더블의 비중이 점점 더 높아져간다는 사실이 보는 이를 안쓰럽게도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액션을 하고 또 그로 인해 고통 받는다.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전설이 된 이소룡과 달리 자글자글한 주름과 함께 늙어가는 성룡에게는 살아남은 자의 업보가 느껴진다. 아마 타임지가 말했던 그 ‘고통’에는 살아남은 자의 업보마저도 포함되는 것이었으리라.


턱시도를 입은 취권의 달인

진정한 의미에서 성룡의 작가시대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로 한정된다. 제작, 감독, 주연에 틈틈이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던 그 때가 완전작가로서의 성룡이 지닌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 헐리우드 진출 이후, 전세계적인 인기 속에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긴 했지만 이 시기의 영화들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아쉬움은 오프닝과 함께 떠오르던 成 龍 作 品 이라는 네 글자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 이는 단순히 글자 몇 개 지워내 버린 차원을 떠나서 영화 전체에 가해지던 지배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대규모의 스턴트가 줄어들고 외국인 파트너에게 상당 부분의 자리를 내주어야 하며 성룡 본인의 딱딱한 영어발음도 감수해야 한다. 어쩌면 이 모든 건 헐리우드의 토대 위에서 전지구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에 따른 한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고유한 영화적 성향과 특유의 캐릭터를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다발적으로 헐리우드에 진출했던 홍콩의 다른 영화인들과 비교해 볼 때 더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성룡의 철저한 자기관리가 빛을 발한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한결 같은 성룡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헐리우드가 그에게서 바라는 것 역시 단순한 액션 머신이 아니다.

비록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혀놓긴 했어도 소탈한 이미지를 끌어낸 [턱시도]에서 변함없는 소시민의 얼굴을 보았고 SINGING IN THE RAIN을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멋진 액션을 선보인 [샹하이 나이츠]에서는 기술력의 도움 없이 표정과 손짓만으로 관객을 열광시켰던 고전 배우의 흔적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블루 칼라이고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려 안간힘 쓰는 어릿광대 피에로이다. 또 헐리우드의 기대에 부응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적당껏 조절하는 타협안을 내놓긴 했어도 여전히 거창한 오리엔탈리즘의 포장을 내세우는 것은 자신의 영역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다. [신화 : 진시황릉의 비밀]이 그 보기 드문 예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도 성룡 고유의 액션 공식과 원점회귀성만은 지켜지고 있다. 허나 그렇다 해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땀에 절은 육체의 기예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던 1인 스펙터클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그 자리를 옛 시절에 대한 향수와 특수효과, 또, 외국인 파트너와의 만담으로 채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왠지 모를 서글픔마저 자아낸다. 그러나 성룡 영화가 내세우는 테마가 신화의 거부와 하강의 이미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기서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는 정말로 자신의 영화관을 온몸으로 강변하고 있는 셈이다. 성룡은 점점 더 나이 들어가고 둔해져 간다. 인기도 예전 같지는 않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분명 하락세에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정교한 위장술을 동원하지는 않는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피곤해 보였던 [뉴 폴리스 스토리]나 크리스 터커에게 크레딧의 맨 앞자리를 내주어야 했던 [러시아워3]에서의 모습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이상 웃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스스로에 대한 자조일지도 모른다. 지난 수년간을 그는 의혹의 시선과 함께 관통해 왔다. 아직 주연배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는 하지만 허허실실한 웃음 속에서도 권법을 위한 취기의 수위를 조절해나가야 되는 취권의 고수처럼 그는 그렇게 위태로움과 기대감의 한 복판에서 서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허리춤에 달린 술병에 술을 채울 것인가 말 것인가. 병을 가득 채운다 할지라도 비틀대는 권법의 묘미를 맛볼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성룡이 보내온 근 30년 동안의 시간과 액션스타로서 얼마 남지 않은 앞으로의 시간, 이것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하느냐는 순전히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흐느적대는 몸놀림과 주먹코의 미소가 멈추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 누군가 열정을 다해 쌓아올린 하나의 세계가 비로서 천수를 다하게 되는 순간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얼마 남지 않은 아날로그 장인들의 퇴장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수효과의 힘을 빌어 진짜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감쪽 같은 가짜를 만들어낼 순 있어도 정말로 진지하게 실제 상황 그 자체에 도전하는 이는 서서히 사라져 간다. 하나 둘씩 잊혀지는 것이 많아지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성룡이라는 영화인은 곧 지나버릴 시절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화석인 양 우리 앞에 서 있다. 이제는 ‘누군가의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위해 온몸을 날려가며 시대의 한 축을 떠받쳐온 그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내줘야 되는 것이 아닐까? 급격히 늙어가는, 그러나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할 우리 시대 최후의 ‘위대한 액션 광대’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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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성룡 팬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쉬워하거나 늙어간다고 서글퍼하지 마라 .. 그래도 썪어도 준치다... 안그래 ?

    2008.02.01 21:31
  3. Favicon of http://. BlogIcon 나는야 행운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행운아입니다..
    어려서부터 성룡이라는 명배우와 함께 커왔다는 것 말입니다.
    성룡의 영화는 안본 것을 찾는 것이(있을까 모르지만) 더 빠를 정도죠..그가 주연이 아니었던 영화들부터..우연치 않게도 그렇게 다 보게 되더군요..

    늙어가는 것이 안타깝지 않습니다..썪어도 준치요? 그건 튀겨먹을 생선에나 비유하십시요..
    성룡같은 인물과 한시대를 같이 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성룡 사랑합니다~앞으로 계속 스크린에서 뵙기를 바래요~아자!!

    2008.02.01 21:51
  4. 청룽이아니라성룡이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로젝트A'시절부터 열혈팬이 되었는데 이제는 늙어가는 성룡형님이 안타깝네요.
    성룡형님덕분에 버스터 키튼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도 행운이고.
    성룡형님과 한시대를 같이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앞으로는 성룡형님도 몸 생각하셔서 조심조심해주셨으면 하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08.02.01 22:15
  5. 성룡대신 주성치?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성룡의 뒤를 이을 스타일의 액션스타는 정녕 나오지 않을런지요....주성치도 코믹한 액션을 추구하지만, 성룡같은 주위사물을 이용한 코믹한 액션의 맛은 나지 않더군요...

    2008.02.01 22:31
  6. 이상호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느끼는거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그 무엇이란~

    2008.02.01 22:50
  7. 액션쌈닭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대...는 싫어요~.... 영웅으로 바꿔주세요~!!!!

    2008.02.02 00:31
  8. 캔디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라 표현 할까요..그냥....최고 라는 말뿐..^^

    2008.02.02 01:29
  9. 위대한 광대~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대가 뭐 어떤가요~ 성룡 스스로가 광대를 자처했고, 본인도 자랑스러워 했는데...!
    70년생인 저도 러시아워 3보면서 성룡 눈가에 주름 보고 참 마음이...ㅜㅜ
    어렸을 때 취권 보면서 소화자 영감이랑 옥신각신 하던 모습이 겹쳐지더군요...
    그래도 성룡은 참 많은 걸 이뤘어요. 특히 국제적으로 아시아 남성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바꿨고...
    이만하면 후회없이 노년을 보내도 될 듯 해요. 그동안 액션때문에 몸 성한 곳 없을텐데, 남은 여생은 몸 보신 잘 하며 행복하게 보내셨으면 해요~ *^^*

    2008.02.02 02:14
  10. 백두호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광대...장인... 이 말이 가슴에 와 닿네요.
    이제 다시는 저런 배우, 광대를 못 볼 것이라는 말을 감히 합니다..
    홍콩에 가서 직접 얼굴을 보기도 했었지만, 정말 사람좋고 한국도 이해를 하는,
    몇 안되는 사람인데.. 주름살이 늘어나는 얼굴을 보면서 내 청춘도 같이 지나갔네요..;
    언제까지나 나의 영웅, 광대로 남아주기를....!!

    2008.02.02 04:37
  11. 요즘도  수정/삭제  댓글쓰기

    케이블에서 성룡영화나오면 오래됐지만 꼭 보게되고 그러네요.. 폴리스스토리랑 빅타임 정말 재밌게봤는데~

    2008.02.02 04:42
  12. 성룡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 한번도 성룡을 배우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성룡을 연기를 하는 스턴트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성룡의 연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설퍼기 그지없고 발전이 없는 몇 안되는 영화출연자이다!
    성룡의 연기를 객관적으로 보길 바란다!
    항상 어수룩하다!

    성룡은 단지 스턴트맨 역할을 직접하기 때문에 인지도가 올라간 케이스로 배우라고 하기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성룡은 스턴트를 직접하는 영화출연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2008.02.02 06:12
    • ...할말없게 만드네  수정/삭제

      그럼 어느정도가 잘하는건가? 설룡이 찍은 영화중 도대체 몇개를 보고 말하는거지?

      2008.02.02 10:38
  13. 위에  수정/삭제  댓글쓰기

    짜져

    2008.02.02 06:34
  14. 위에 또라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짜져

    2008.02.02 06:34
  15. 그래도 성룡팬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성룡..이제는 제법 나이를 느낄수 있게 되었지요. 하지만..그래도 전 성룡이 좋습니다.
    그의 영화는 뭐랄까....보고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가볍고...편안하고...

    그래서 지금도 새해가 되면 올해는 어떤영화가 나올까 하며 기다리고 있지요.

    언제까지나 그만의 색깔을 갖고 그만의 모습을 유지했으면 합니다.

    ^^

    2008.02.02 07:57
  16. 하늘나라5852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룡의 기사라 눈에 금방 뛰어 읽었습니다...^^ 음 근데 내용중 다소 애매모호한 부분이 꽤있네요. 예를 들어 오늘의 성룡을 있게한 [취권]은 주연일뿐 그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 기획이나 영화구성흐름과는 관계없죠.제작자는 오사원이고 감독은 너무나도 유명한...헐리웃뿐 아니라 세계유명 액션스타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원화평입니다.그 이후 그맥락을 이어받아 성룡이 최초로 감독과 주연을 한것이 [소권괴초]이고 당시 힛트를 하면서 제작자로써 인정받았지요. 저역시 팬으로써 그의 모든영화는 DVD소장으로 아직도 즐겨 봅니다. 특히 황금트리오(성룡,홍금보,원표)의 출연작은 모두가 최고의 영화입니다.헐리웃건너가서 찍은 영화중 갠적으로는 [프로텍터]가 젤 좋았던것 같습니다. 러시아워,상하이씨리즈 보다도...^^

    2008.02.02 09:51
  17. 오복성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소룡은 아무도 때릴 수 없지만 성룡은 누구나 때릴 수 없다. 정말 공감 ㅠ_ㅠb
    몸으로 행하는 정직한 액션, 연기. 정말 성룡의 특징을 잘 잡아내셨네요.

    예전에 만화 드래곤볼을 두고 만화가 이충호씨가 한 말이 있습니다. "1억권이 팔렸다. 1억명이 그걸 보고 웃었다. 설령 이 만화가 아무런 교훈적 의미나 거창한 예술성이 없어도, 1억명을 한번씩 웃게 만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 아니겠나"

    더욱이 성룡의 경우는 그의 웃음은 참으로 정직하고, 인간미 넘치고, 그러면서 우리네 일상속을 파고들지요. 성룡은 충분히 위대한 배우입니다. ㅜ_ㅜ

    2008.02.02 09:58
  18. BJ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주변 지형, 조형물을 활용하는 성룡 특유의 액션 연기가 압권이죠. ㅠㅠ
    우리 나라에서 성룡영화의 흥행이 예전만 못해서
    왠지 성룡에게 '팬으로서' 미안한(?) 마음도 생기곤 합니다. ㅋ

    2008.02.02 10:47
  19. 광대..  수정/삭제  댓글쓰기

    늙어가는 시대의 광대라는 말이 참..가슴이 아프네요..
    성룡 아저씨의 작품을 많이 보았고..어느 언론에서나 나오면 꼬박꼬박..보는데..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ㅠㅠ
    어린마음에는 항상 늙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성룡스타일의 계보를 이을만한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밖에..
    성룡아저씨가 자신의 뒤를 따라올 후배들을 진심으로 웃으면서 액션현역에서는..
    한발 물러났으면 좋겠어요..
    '성룡' 알라뷰~♡

    2008.02.02 11:49
  20. x large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봤습니다.ㅎㅎ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군요...
    저도 오래전부터 성룡영화를 좋아했고 요새는 어렸을때처럼 재미가 없어도 불법 다운이라도 받아서 꼭 챙겨보고 있습니다. 확실히 예전 같이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은 많이 줄거나 거의 없어졌더군요...
    쓰신 글은 여러방면으로 공감이 되지만 '광대'라는 표현은 좀 어울리지 않는군요... 쓰신분의 글을 읽고 나면 더더욱 광대라는 표현은 글과는 불화감이 드는 느낌입니다. '광대'는 그에게 붙이기엔 너무 한정적이고 좀 천한느낌입니다. 그저 광대와 같이 한평생 특별한 의미도 없는 영화를 만들어온 그이지만 '광대'라는 표현의 굴레는 확실히 벗어났다고 여겨집니다. 광대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예술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 됩니다.. 아니 오히려 왠만한 잡종 예술인보다는 대중문화예술인으로써 헤아릴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니 그보다 높게 평가 되야 하지요.

    2008.02.02 17:17
  21. Favicon of http://ㅇㅇㅇ BlogIcon 블랙맘바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영원한 성룡의 팬 성룡이여 영원하라 !!!!! 꺄~~~~~~~~~~~

    2010.08.0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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