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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3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불가능한 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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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장원


보이지 않는 손

이해할 수 없다. 순응하지 않는 자가 쓴 맛을 보는 세상이다. 국가에서 실시한 학력성취도 평가를 거부한 교사들이 파면 혹은 해임되었다. 단지 아이들을 위해서 그들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고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뿐인데, 국가는 복종의 의무, 성실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얼토당토아니한 이유를 대어서 전례가 없는 중징계를 내렸다. 옳거니! 그들은 아마 본보기로 자신들이 의도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지를 과감하게 실행한 것이리라. 큰 일을 결정할 때는 그렇게도 우유부단 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존심과 관련된 일 앞에서는 한 순간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았다. 파면·해임된 교사들이 방송에 나와서 울부짓으며 말했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말도 안되는 불합리가 몇 천만의 국민이 보는 앞에서 자행되고 있다. 물론 그것을 집행하는 이의 손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국가에서 치르는 시험을 순순히 받아들인 교사들보다 중징계를 받은 이들이 행한 일의 값어치가 더 큼에도 불구하고, 법의 처벌 앞에 단 한순간에 심신은 무너져내릴 수 밖에 없다. 변화는 가능할까?


수오 마사유키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굉장한 흡인력을 가진 작품이다. 여기서 '나'에 해당하는 텟페이를 쫓아가는 관객들은 마치 텟페이의 편에 서서 촛불집회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그의 억울함을 공유하게 된다. 법정에서 텟페이의 재판을 지켜보는 방청객은 곧 영화를 보는 관객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재판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텟페이가 겪는 고통과 형사재판집행의 모순들의 실체를 보게된다. 그런 후에 비로소 왜 텟페이가 그토록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는 말을 묵묵히 내뱉는지를 알게 된다. 단 0.1%의 승리할 수 있는 확률에도 텟베이가 법정에 나갈 것을 선택한 이유는 당연해 본다. 왜냐하면 거의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장벽처럼 보이는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그것이 변화될 것이라는 생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99.9%의 사람들은 권력에 순복하고 마는 것이다. 텟페이는 그런 사람들 속에 숨겨진 목소리, 양심을 끄집어 내게 하는 캐릭터이다.



비전형성의 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철저히 전형적인 흐름을 벗어난다. 우리가 재판을 다루는 영화를 볼 때 보통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 작품은 피고인에 입장에 서서 진실을 규명하려 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피고자는 범죄를 저지른 극악한 인물, 냉혈인데 반해, 여기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인물을 보여준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피고인 자체가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죄를 짓지 않은 텟페이, 그는 피고인석에 앉아 있지만 우리들이 생각하고 그 자신이 느끼는 것을 종합해 볼 때 그는 피고인이라기 보다는 또 한 명의 피해자라고 해야 옳다. 더불어 비전형성의 힘으로 작품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부분은 '결말'이다. 텟페이와 가족, 주변 사람들로 인해서 거의 누명을 다 벗은 것처럼 보였는 데도 불구하고, 결국 텟페이는 유죄판결을 받는다. 출근 길 전철에서의 10여분 동안 있었던 일들의 오해가 오랜 기간 그를 피말리게 했음에도, 변명조차 제대로 늘어 놓지 못하고 패소하고 만다. 우리 또한 그 마지막에서 어느 정도의 답답함이 풀릴거라 믿었건만, 오히려 지독한 공포를 맛보게 된다. 전혀 해결되지 않는 막막함. 불가능한 변화들.


그래서 이 영화는 지독하게 어둡다. 어두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데 안개에 휩싸인 마음처럼 어두워 막막한 심정이다. 불합리라는 것은 생의 지옥에서 다시 불구덩으로 떨어뜨리게 하는 힘을 가진다. 그것을 깨달을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작품은 여러군데서 보여준다. 그 중 중간에 갑자기 판사가 바뀌는 대목은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 전까지 재판장을 지키던 판사는 피해자와 피고인 그리고 그들의 변호사들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듣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로 갔는지, 누가 보냈는지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는다. 갑자기 교체된 판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오로지 피해자 편에 선다. 그래서 그는 경찰과 국가의 권력의 한 대리인의 표상처럼 보인다. 만약, 한 쪽을 선택할 수 있지만 어리석게도 남들이 하지 않는 한 쪽을 선택하면 자신이 편해진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니 다시 텟페이가 항변할 수 있는 존재는 피해자측도 판사쪽도 아닌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러니 얼마나 어둡고 막막한 현실인가?



불가능한 변화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텟페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내 마음 속, 나는 아니면 된다.  난 그말이 엄청난 희망처럼 들렸다. 영화는 그 이후의 일은 전혀 보여주지 않고, 항소 후 재판이 이루어질 장소만 비추면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 그곳에서 텟페이가 전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기가 굳고 하게 처음부터 지켜왔던 신념, 그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진실을 밝혀줄 사람이 자기 주변에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이 작품은 우리가 이 사회에서 안고 살아가는 모순이 얼마나 사람을 고통스럽고 어지럽게 하는지를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진지함이 이 영화를 끝까지 바라보게끔, 다시 반추하게끔 하는 동력인듯 하다. 그 끝무렵, 파면 그리고 해임된 우리 교육 현장의 텟페이와 같은 교사들은 과연 희망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불가능한 변화를 '가능'으로 이루어낼 수 있을까? 그들이 가진 초심, 그리고 신념을 잃지 않는다면 난 어쩌면, 가능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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