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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음악을 즐긴다는 사람들―필자의 경우에는 클래식―의 음악 감상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공연장에 가서 직접 듣는 것. 그러나 이 방법은 우선 그 공연이 열릴 때와 본인의 시간이 맞아야 하고(대부분의 공연들은 기껏해야 이틀 열리니), 가격도 만만치 않다. 필자 같은 가난한 음악 애호가들은 외국 유명 오케스트라나 지휘자가 오면 그 엄청난 가격에 눈물을 머금고 포스터만 쳐다볼 수밖에 없으며, 국내 공연도 저 멀리 3층에서 ‘1층이나 3층이나 똑같은 음악이 흐른다’를 위안 삼아 보이지도 않는 연주자들을 실눈을 떠가며 보기 마련이다.

그 다음 방법이 CD를 사서 집에서 듣는 방법. 아무 때나 본인이 편한 시간에 감상할 수 있고, CD 값도 요새 많이 싸진 데다 한번 사면 반영구적이니 경제적이다. 그러나 이 방법 또한 한 가지 문제점이 있으니, 제대로 된 음악을 들으려면 주변 기기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라는 것. 그리고 좀 괜찮은 스피커들은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역시 클래식 애호가인 필자의 남편은 과감히 질렀고, 필자의 잔소리를 한동안 감수해야 했다(물론 지금은 필자도 잘 듣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세 번째 방법이 음악 영화를 보는, 그리고 듣는 것이다. 이때는 필히 사운드 시설이 잘되어 있고, 스크린도 큰 대형 극장에 가는 게 필수적이다. 평소에는 멀티플렉스의 횡포에 대해 온갖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필자도, 음악 영화를 보러 갈 때는 멀티플렉스의 첨단 시설에 대한 애찬론자가 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인다. CGV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입체 음향으로 <카핑 베토벤>(2006)의 하이라이트인 ‘9번 교향곡 합창(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 Choral)’의 초연을 볼 때(그리고 들을 때)의 그 가슴 떨리는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음악 영화를―뮤지컬 영화는 제외하고―편의상 음악가의 전기 영화와 영화 음악이 주가 되는 영화로 나눌 수 있다면, <카핑 베토벤>은 전자, <원스>(2006)는 후자에 속할 것이다. <카핑 베토벤>이 ‘베토벤’이라는 한 음악가의 생애 어느 한 시기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그의 음악들을 들려주는 식이라면, <원스>는 음악 위에 내러티브가 얹어가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즉 음악이 먼저고, 그것에 맞춰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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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카핑 베토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필자의 취향이 클래식임을 참고할 것―영화의 중심 내용이 ‘합창’의 창작과 초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합창’의 초연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광의 순간이 영화 엔딩쯤에 위치하는 전기 영화의 정석에서 벗어나고 있다. 1824년 ‘합창’의 초연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베토벤은 그동안의 침체기에서 벗어나 여러 현악 4중주곡과 영화에 나오는 ‘대(大)푸가(Grosse Fugue in B minor, Op.133)’ 등을 남겼는데, <카핑 베토벤>은 이 대푸가의 실패를 청중들이 냉정히 일어나 하나 둘 나가고 이어 쓰러지는 베토벤의 모습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지어 음악적 동지이자 정신적 연인(이라고 생각되는) ‘안나 홀츠’마저도 그 곡에 대해 ‘어글리하다’고 표현한다. 엄청난 성공 뒤에 바로 뒤따르는 실패는 감독 아그네츠카 홀랜드(Agnieszka Holland)가 이 영화를 단순한 위인의 전기 영화로 만들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안나 홀츠는 ‘대푸가’를 이해한다. 그리고 영화의 맨 처음 ‘대푸가’가 흐르는 가운데 마차를 타고 달리는 안나가 창밖의 풍경과 음악의 조화에 대해 온몸으로 느끼는 장면이 다시금 환기되는 것이다. <원스>에서 음악과 내러티브가 완벽히 하나로 녹아든 것처럼, <카핑 베토벤>의 이 첫 장면은 음악과 이미지가 명실 공히 하나가 된 보기 드문 광경이다.

이 밖에도 <카핑 베토벤>에는 주옥같은 베토벤의 여러 음악들이 나오지만, 역시 가장 뇌리에 남는 것은 앞서 말한 ‘합창’과 ‘대푸가’이다. 특히 교향곡에 성악을 삽입한 ‘합창’은 그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기준으로도 혁신적인 곡이다. 영화에서 베토벤은 온갖 기행을 행하는 괴팍한 인간으로 나오지만, ‘합창’을 작곡하고 연주할 때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초인(超人)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신이 자신을 통해서 음악으로 말한다고 안나에게 말하는데, 그렇다면 ‘합창’은 신의 가장 아름다운 언어 중 하나일 것이다. 70분이 넘는 연주 시간에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네 명의 독창자와 합창단이 가세하는 방대한 스케일 때문에 종종 그 유명한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가 나오는 4악장만을 따로 떼어 연주하곤 하는데, 그건 근사한 정식 코스요리에서 앞의 애피타이저랑 주 요리는 생략하고 디저트만 먹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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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게 시작하다 ‘운명’에 버금가는 웅장한 선율이 터져 나오는 1악장에 이어, ‘Molto vivace(빠르고 생기 있게)’라는 뜻 그대로 경쾌하면서도 선율이 춤추는 듯한 2악장. 그리고 느리게(Adagio) 흐르면서 너무나 아름다워 슬픈 3악장에 바로 이어지는 4악장은 슬픔 뒤의 기쁨과 환희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생생히 느끼게 해준다. 격렬한 첫 선율로 4악장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희의 송가’의 주제 선율이 고요하게 흘러나오다 빠른 템포로 이어진다. 그리고 먼저 베이스의 선창이 있은 후, 네 명의 독창자들이 입을 모아 주거니 받거니 ‘환희의 송가’를 부른 다음 합창단의 노래가 이어진다. 필자는 오케스트라와 인간의 목소리가 이렇게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환희의 눈물’을 (마음속으로) 흘리곤 했다.

그러니 거의 15분에 다다르는 ‘합창’의 연주 장면이 나오는, 특히 4악장에만 할애하지 않고 전 악장(특히 3악장)을 조금씩 다 들려주려고 노력한 <카핑 베토벤>은, 필자에게 있어 최근 겪은 가장 짜릿한 영화 체험이 아닐 수 없다. 영화를 보기 전에 필히 ‘합창’을 먼저 들을 것을 권하는 바이다. 굳이 유명 오케스트라의 CD를 살 필요도, 고가의 스피커를 구입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듣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들어라. 그리고 <카핑 베토벤>을 만나라.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아니 귀를 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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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5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곡이 뭐냐고 물어오면, 나는 주저함 없이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이라 답해왔다. 모차르트도 바흐도 브람스도 로시니도 또 차이코프스키도 좋지만 내게 있어 베토벤은 절대적 숭배대상이다. 그는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듯 범접할 수 없는 음악세계를 창조한 인물이었다. 때문인지 그의 음악은 장엄하되 아늑하며 절제 속에서도 자유롭다. 바흐가 헨델과 비발디 등의 바로크 음악에 가까이 서있고, 모차르트 속에 클레멘티의 궁정연가가 남아있는 반면, 베토벤의 음악은 완전히 다른 유형을 추구한다. 고전주의의 최고봉이면서 낭만주의로의 가교역할을 했던 인물, 루드비히 반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은 이렇듯 절대적이고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리를 오선지에 남기기 위해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내야 했다.

[카핑 베토벤_ Copying Beethoven](2006)은 베토벤 일생의 마지막 시기, 그러니까 9번 교향곡 <합창>의 초연을 며칠 앞둔 시점을 배경으로 그의 카피스트인 안나 홀츠라는 가상의 여성을 내세워 거장의 말년을 조망하는 한편 그 시대 여성음악가의 험난한 노정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영화적으로만 보자면 빼어나다고 평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지만, 베토벤과 그의 음악을 버팀목 삼아 엮어가는 이야기는 클래식의 문외한이라도 흥미롭게 받아들이기 족할 정도이니 (애초에 음악영화임을 전제로 한다면)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도 있을 터이다.

당연히 영화의 초점은 <합창>교향곡 초연에 맞춰져 있다. 덧붙이자면 감독은 이 장엄한 작품의 이면에 스며든 이름 없는 이들, 특히 안나 홀츠라는 여성 작곡가지망생의 열정과 재능이 베토벤의 음악세계에 삼투되어 재창조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여자가 작곡을 한다니, 개가 뒤로 걷는 것처럼 우스운 일"로 여겨지던 시대에 악보를 베끼고 몸종에 다름없는 위치에 놓인 여성을, 위대한 작품의 초연을 성공적으로 견인한 장본인으로 그려냈다는 것은 감독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입증하는 대목이다. 이를테면 아그네츠카 홀란드 Agnieszka Holland 감독은 이 불멸의 작곡가의 음악적 동지로 한 여성을 내세우고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표현하는 일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설득력 있게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누구보다 권위적이고 남성적이며 고집불통의 마에스트로가 한낱 자신의 악보를 베끼는 여학생 발 앞에 무릎 꿇게 될 줄이야! 모름지기 ‘위대한 작품은 이성이 감성을 억누를 때 탄생한다’ 는 경구가 실현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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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갓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애송이가 무례하고 거친, 당대 최고의 마에스트로와 음악적 교감을 이룬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닐 터. 따라서 감독은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마에스트로와 안나의 관계를 <합창>교향곡의 초연 무대까지 유보하더니, 열광의 무대에서야 두 사람을 음악적 동지로 결합시켜놓는다. 외형적으로는 베토벤의 귀를 대리하는 역할에 불과하지만, 거장의 음악에 대한 내면의 경외감이야 말로 모든 차이와 배경을 넘어 중심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음악회 장면에서 베토벤과 안나를 번갈아 잡아내는 카메라의 현란한 패닝은 남녀의 격정적 정사를 방불케 하며, 두 사람의 손가락이 서로를 어루만지듯 흐느적거릴 때의 분위기는 어느 포르노보다 에로틱하다. 또한 정점에서 폭발하며 희열에 휩싸인 두 인물의 표정은 천상의 소리를 맛본 자의 오르가즘에 다름 아니다.

바흐와 헨델의 모습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리스트와 바그너를 혼동하는 이들일지라도 베토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흉상이나 초상을 통해 널리 알려졌거니와 사자갈기 같은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인해 한번 보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카핑 베토벤]은 우리가 기억하거나 상상하는 베토벤의 모습 바로!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런 영화다. 게다가 에드 해리스 Ed Harris 의 완벽한 변신은 악성의 현현이라 칭하기에 손색없으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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