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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펄프 픽션>의 초반부, 한 음식점에서 두 남녀가 음식을 먹으며 음식점을 털 궁리를 한다. 그들은 다 먹어버린 음식을 앞에 두고 앞으로 자신들에게 다가올 일들과 맞물릴 기묘한 미래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 설정’을 실행하고 영화는 막이 오른다.

이어지는 <펄프 픽션>의 첫 번째 에피소드, ‘두 킬러’의 이야기. 킬러가 직업인 쥴스와 빈센트는 임무를 수행하러 차를 타고 가면서 햄버거에 관한 이야기들로 입씨름 중이다. 치즈에 대한 대화로 운을 뗀 빈센트와 쥴스는 가볍게 입씨름을 주고받으며 암스테르담과 ‘치즈’라는 단어의 원어 표기에 대한 쓸데없는 대사를 내뱉는다. 그들의 대화는 치즈로부터 햄버거로 흘러가고, 햄버거 사이에 끼인 치즈로 다시 회귀한다. 두 킬러의 총부리는, 치즈 이야기만큼이나 어이없게 두문불출한다. 곧이어 킬러들은 목적지에 다다르고, 임무 수행의 쾌거를 코앞에 놓고 표적물을 바라본다. 이때 킬러 중 한 명, 쥴스는 자신이 죽일 사람 앞의 햄버거 세트를 바라보며 빈센트와 차 안에서 했던 햄버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쥴스는 공포에 떠는 ‘피해자’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프라이트를 한 입에 털어내고 햄버거를 두 입으로 조각낸다. 쥴스가 손으로 큼지막하게 썰어 입구멍에 쑤셔 넣은 햄버거 가운데 ‘치즈’가 지저분하게 삐져나온다. 쥴스는 햄버거와 음료수를 모조리 먹고 다시 먹잇감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는 성경구절을 외우며 정해진 목표를 사살한다. 쥴스가 외우는 성경구절은 에스겔서 25장 17절.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인의 길은 사면 열렸으나 악인의 사욕의 길은 막히리라. 착한 사람은 축복을 받아 의인을 암흑의 계곡에서 구하고 그는 형제의 보호자며 잃은 아이를 찾은 자라. 형제를 해치고 음독시키려는 심한 진노와 큰 분노를 내가 쳐부수리니 복수의 매를 맞고 원수는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되리라」

장면 전환. <펄프 픽션>의 두 번째 에피소드, 빈센트의 이야기. 보스의 아내를 즐겁게 해줘야하는 임무를 받은 빈센트. 빈센트는 보스의 아내 미아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 빈센트는 스테이크를 시키고, 미아는 햄버거를 시킨다. 미아와 빈센트는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그 ‘저녁밥’의 힘을 빌어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트위스트를 추는 사이로 발전한다.

마지막 점프 컷, 부치의 에피소드. 쥴스, 빈센트와 같은 보스를 두고 있는 부치는 시합 도중 다섯 번째 라운드에서 내려오라는 보스의 명을 어기고 오로지 긍지 하나만으로 상대를 때려눕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급기야 부치의 상대는 사망에 이르게 되고, 겁이 난 부치는 줄행랑을 친다. 설상가상 부치의 애인은 실수로 부치가 애지중지하던 할아버지의 유품을 아파트에 두고 오고, 어쩔 수 없이 부치는 그것을 찾으러 다시 아파트로 돌아간다. 부치는 자신을 노리는 보스 일파가 아파트 내에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안심하며 찬장에 있던 인스턴트 패스트리를 토스트기에 넣는다. 이 때, 우연적으로 부치는 토스트기 옆에 놓여진 총을 발견하고, 그를 죽이러 잠복했던 빈센트를 죽인다. 부치가 먹으려던 인스턴트 패스트리, 그리고 그것이 구워지는 시간, 불과 몇 초의 간격으로 빈센트는 나가떨어진다.


<펄프 픽션>의 중심축을 이루는 위의 세 가지 에피소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렇다 할 서사 자체가 없다는 것. 둘째, 음식으로 인물들 간의 사건사고가 엮여진 다는 것. <펄프 픽션>에는 먹고 마시고 죽고 죽이고 피가 난자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난잡하게 흩어진다. 입에 넣고, 침대에 쓰러져 숙면을 취하고, 배설하고, 섹스 하는 것들은 인간의 가장 강한 본능적 욕구들이지만 <펄프 픽션>의 먹는 행위는 다른 무엇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비중을 차지한다. 턱을 이용해 음식을 씹다가 몇 분 뒤, 화장실서 배에 든 ‘무언가’를 배출해내고, 저녁 혹은 아침을 먹다가 바로 얼굴을 난자당해 죽임을 당한다. 마치 시뻘건 정육점의 비계 덩어리를 보는 마냥 역겹지만, 돌고 도는 악과 악의 수레바퀴 속에서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인간 본연의, 그리고 <펄프 픽션>의 가장 큰 욕구를 보여주는 매개체이다.



햄버거의 의미, 그리고 키치아트(Kitsch Art)

<펄프 픽션>의 뿌리는 ‘Pulp(종이)’로 만들어진 ‘Fiction(허구)’으로, TV가 등장하기 전 가장 유행하던 다양한 장르의 잡지와 비슷한 읽을거리를 주는 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었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었고 누구나 원하는 장르들이 혼합되어,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글들을 때로는 고상한 척, 때로는 천박한 척 고를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펄프 픽션’이다(펄프 픽션이라는 단어 대한 설명은 영화가 시작할 때 사전을 인용해 보여 진다). 이런 유래를 가지고 있는 영화 <펄프 픽션>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과도하게 등장하는 아이템은 ‘햄버거’다. 몸에 좋지 않지만 맛있는, 그리고 아주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결정체가 바로 햄버거다. 햄버거의 성분은 확답을 할 수 없을 만큼 잡다한 재료들이 뒤엉켜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햄버거의 맛과 그 질을 따지기도 지나가는 말로 훑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햄버거라는 소재는 여러 가지를 버무려 덮어버린 축약적 음식에 불과하다. <펄프 픽션>의 여주인공 미아는 빈센트와 함께 중산층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 그녀의 메뉴는 사이드 메뉴가 더해진 ‘고급’햄버거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킬러 쥴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청년도 죽기 직전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청년이 먹고 있던 햄버거는 ‘싸구려’, 혹은 하위의 품질을 대변한다. 위의 두 사람이 먹는 햄버거는 각기 다른 선상에 놓여있는 음식이지만, 그들은 햄버거라는 음식을 통해 같은 방식으로 배를 채운다.



모든 것이 섞여진 햄버거와 ‘펄프 픽션’. 작고 가벼운 아이템인 햄버거에 대한 이야기와 이미지는, <펄프 픽션>을 통해 솎아내기 힘든 인물들의 사투에 대한 일시적 암시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에는, 다원주의에서 파생된 키치(Kitsch) 정서가 짙게 녹아있다. ‘키치’는 1900년대 초에 ‘모으다, 주워 모으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1920년 이후 국제적 용어로 자리매김한 단어다. 키치는 기존의 사물인 A와 B를 병합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복합 예술의 현상 중 하나인데, 키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이라는 구분선이 필요하다. 키치 아트는 입체파와 더불어 다양한 시도를 제한하지 않던 독일 표현주의와, 미국 전기 추상에서 나타나던 ‘콜라주(Collage: 붙이기)’기법이나 ‘포토 몽타주(Montage: 합성)· 포토 꼴라주’로부터 발전되어왔다. 키치는 이후 대중예술과 상위예술의 경계를 흐린다는 점에서 여러 학자들의 지적을 받았던 예술 형식이다. 유명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키치 아트를 “참된 문화의 가치에는 무감각하면서도 특정 문화만이 제공할 수 있는 오락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난 대체 문화”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키치 아트는 여러 가지 단어를 포함한다. 키치는 주로 대중성이라는 설정을 토대로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취하는 예술이다. 키치의 종류 중 눈 여겨 보아야 하는 것은 가판대의 싸구려 잡지, 그리고 상업성이 짙은 낱장의 만화와 복합적인 영화(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할리우드 영화로 대변되기도 한다) 세 가지다. 키치의 또 다른 의미는 ‘진품이 아닌, 모조의’라는 것으로, 사회가 구별지어낸 기호에 정식으로 반대하는 대중의 취향을 재치를 섞어 범벅한 것이 키치가 대변하는 예술형식인데, 키치의 존속을 이루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문학, 그 중에서도 ‘펄프 픽션’이었다. 미술, 혹은 사회 현상의 아방가르드적 요인을 포함하는 키치 아트는 다각도에서 형형색색의 모습을 띄는 카멜레온과도 같다. 키치는 개인의 기호와 취향으로도 존재하는데, 영화 <펄프 픽션>은 특정 층위에 국한되는 고상하고 그럴 듯한 이야기를 신랄하게 비꼬아 표현했다는 점에서 키치 아트의 연속점을 보여준다. <펄프 픽션>의 이미지는 잣대가 없으며, 그로 인해 생성되는 신선한 이야기는 영화의 앞과 뒤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재미가 녹아있다.

키치는 어느 속성에 의해 판가름되지 않고 올곧이 문화, 그 중에서도 상업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예술이다. 또한 키치는 단지‘미술’이라는 장르로 국한되지 않는 문화다. 이웃집의 아이가 연극 발표에서 공주님 역할을 맡게 된 사실을 알았다면, ‘이웃집 아이’는 ‘나’라는 화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순간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는 곧 타인의 이야기, ‘키치’로 변모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던 <펄프 픽션>의 서두, 쥴스가 목표물을 죽이기 전에 읊조렸던 구절은 성스러운 책의 역할을 맡은 ‘성경’과, 난잡하게 흐트러진 살육 현장이 낳은 ‘인류악’이라는 두 개의 코드를 낳는다. 이것 역시 모방에서 시작해 새로운 논쟁을 생성시킨 키치적인 일화다. 키치가 쓸모없는 것들을 긁어내는 데서 시작했다면, 이제 그것은 수 십 년을 거쳐 현대 사회로 넘어오며 자극에 갈증을 느끼는 대중을 표방하는 거대한 수식어로 작용하고 있다. <펄프 픽션>에 열광하는, 타란티노의 영화들에 열광하는 당신. 코카콜라와 햄버거가 자본주의의 폐해를 내포하고 있음을 머리로는 인식하지만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당신 또한 <펄프 픽션>의 주인공들과 ‘죽여주는’ 일상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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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 옛날 지금은 유명을 달리하신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영화음악실>이라는 라디오 영화 음악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엔 새벽에 했었지요. 기다리다 잠이 오면 녹음테이프의 버튼을 누르고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들었던 <영화음악실>의 내용 중에 정성일 님이 그해의 베스트를 뽑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리스트에는 처음 들어보는 한 감독도 같이 끼어 있었습니다.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 그렇게 한번 듣고는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그 후로 몇 년 뒤에 <펄프 픽션>이 칸 영화제의 그랑프리라는 화려한 수상 경력과 함께 여느 해외 영화제 수상작들과 같이 수상을 위주로 홍보되어 상영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직은 상 받은 영화들에 대한 환상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칸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등등 알려진 영화제들의 수상작들은 꼭 챙겨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칸 영화제 그랑프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되었고, 그 영화를 본 충격은 아마도 <영웅본색>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과 같은 전율을 느꼈습니다. 아니 상 받은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가? 이 영화의 뒤죽박죽된 서사 구조가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보았다는 기쁨이 컸습니다.

그 후로 비로소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을 보게 되었고, 그 영화는 조금 지루했지만 이미 전에 본 주윤발과 이수현 주연의 <용호풍운>에 오마쥬를 바친 영화라고 알고는 참 이 감독이 대단한 영화광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조금은 한심한 옴니버스 영화 <포룸>을 보고는 조금 설마 했었지만 이후에 나온 <재키 브라운>을 극장에서 보고는 참 이 젊은 감독이 대가의 연륜을 느끼게 할 만큼의 감독으로 성장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국내에 <재키 브라운> dvd는 왜 아직 출시가 안 되는지)

<재키 브라운>의 대단한 여운을 간직하고 있었던 저로서는 그 작품이후에 정말 한동안 타란티노의 작품을 볼 수 가 없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마침내 대단한 영화를 하나 들고 나오게 됩니다. 이름하야 <킬빌1>, <펄프 픽션>의 그 허약한 마약쟁이 말라깽이 처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라 왠지 불길했었지만 결과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들을 이렇게 한 영화에 담아서 보여주는 구나!!! 하면서 말이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찍고, 존경하는 영화들에 대한 경의와 오마쥬를 거침없이 날리는 타란티노의 이 영화는 정말 영화의 재미가 무엇인가? 아드레날린이란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한 타란티노 감독의 훌륭한 대답 같습니다.

<킬빌1>이 개봉하고 난 뒤 저는 타란티노가 오마쥬를 바친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운 좋게도 리마스터링된 버전의 장철 영화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vol.2 를 몹시 기다리던 저는 과연 vol.2에는 어떤 영화에 존경을 바칠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뭐 이번에도 사무라이 영화나 쇼 브라더스의 무협영화에 대한 오마쥬가 나올 것으로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킬빌2>가 개봉하던 날, 저는 또 한번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 대단한 <킬빌1>를 뛰어넘는 영화가 나왔다고. 물론 서부영화에 대한 오마쥬가 주가 되고 무술영화에 대한 오마쥬가 맛을 내지만. 그 와중에 아마도 가장 대단하다고 느낀 장면은 바로 키도가 무덤에 산채로 매장을 당하고, 그 관속에서 스승님을 떠올리며 무덤 속을 탈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아레나>가 흐르고, 키도가 손가락을 길게 펴서 관을 주먹으로 가격하는 순간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명장면입니다.


2. 이렇게 타란티노의 옛날 영화 이야기를 한 이유를 말 한다면 그 동안의 타란티노 영화의 모든 것을 보실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한국인으로서 타란티노의 그 수다장면을 즐길 수는 없지만 그 수다장면을 참고 견딘다면 정말 대단한 영화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돌려차기하고 내려찍기 하는 순간 정말 저도 모르게 덩달아 박수를 치게 되며, 그 옛날 존 카펜터나 존 랜디스의 영화들에게서 느꼈던 B무비의 독특한 매력과 주체하지 못하고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족) 타란티노가 이런 영화로 돌아와 주었으니 피터 잭슨 감독도 한번쯤은 외도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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