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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두 번째로 찾은 <다크 나이트>에 대한 말꼬리

오랜 만에 만났던 지인이 <다크 나이트>를 아직 보지 않았다고 해서 내친 김에 한 번 더 보자는 마음도 들고, 월요일이라 아트시네마도 문을 닫았으므로 사람 북적거리는 메가박스로 향했다. 그리고 충분히 힘겨운 놀란의 <다크 나이트>를 두 번째 관람했다. 처음보다 망연자실한 기분이 들었다. 굳이 이 '멋진' 영화를 '두 번'봐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혹시나했던 망상은 역시나 '현실'이 되어 머릿속에 안착했고,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엄청난 거리감과 공허함을 '또' 맛볼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다크 나이트>를 봤을 때, 북적대는 기자들 사이에서 영화 세트에 나올 법한 용산 CGV의 장관에 맞물려 허탈한 한숨을 지었던게 기억난다. 그때는 <다크 나이트>의 존재가 스쳐지나가는 한 순간의 꿈에 불과했고,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배트맨의 기운에 약간 못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당연하게도, <다크 나이트>는 원래의 것에 치중한 배트맨 시리즈의 연장성인 '히어로'물이 아니었으므로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것은 캐릭터가 아닌 고담시 자체의 설정이었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히스 레져가 덧입혀진 것을 좇기 바빴으며, 이미 많은 애정을 주었던 지나가버린 배우의 얼굴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아우르는 카메라와 비칠 듯 비쳐지지 않는 배트맨의 실루엣은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를 모조리 부수어내기 충분했다.

첫 번째에는 영화 전반의 현상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두 번째에는 영화 속에 녹아내리는 캐릭터들의 열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앞뒤가 구분지어지지 않을만큼 확연히 눈 속에 각인되는 사실은, <다크 나이트>는 단 한 순간도 단추를 느슨하게 만드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든 형사가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구해내고 모든 진실을 덮어 배트맨을 불완전한 반 영웅으로 만들어 낼 때 읊조리는 대사는 기타 히어로물에서 충분히 보여질 수 있는 진부한 것이다. 사라지는 영웅의 모습, 그리고 그것과 사운드 오버랩되는 타인의 독백, 그리고 웅장한 익스트림 샷과 이어지는 거대한 엔딩크레딧. 만일 <다크 나이트>의 치밀한 짜임새와 더불어 세 가지의 캐릭터가 맞물려 공존하는 각도 자체가 증발되었더라면, 이 평이한 대사는 영화에서 가장 큰 오점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정의'나 '진실'이라는 개념을 들먹거리며 대화를 쳐내는 하비 던트는, 배트맨의 등 뒤에서 세상을 다 가진 청순한 어린 양처럼 다시 한 번 '정의'라는 말을 토해내고, 곧바로 자신의 이념을 실행에 옮긴다. 이건 명백한 샷 리버스 샷이 존재하는 방패와도 같은 설정이다. 하지만 한 톨의 간극도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다크 나이트>의 복선이, 바로 이런 교훈적이거나 농밀한 주제를 담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과 악, 그리고 선악을 판단할 수 없는 이중성의 잣대. 인간군상의 모든 것이 <다크 나이트>에 녹아있다. 재밌는 것은, 이들은 철저히 자리를 지키는 동시에 한 번 엇나가면 되돌리기 힘든 '루미 큐브'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한 가지의 선을 그은 후, 그 선을 중심으로 인물들을 어지럽게 섞어낸다. 여기서부터 캐릭터들의 자유의지가 실현되고, 동시에 사건과 배경이 성립한다. 선을 넘나드는 시민들과 배트맨, 그리고 조커의 캐릭터는 모두 '고담'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엄청난 숫자의 고담 시민들은 선 하나로 갈려진 두 인물 사이에서 피해와 희열을 맛본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 자체는 조커가 악의 캐릭터로, 배트맨이 (가정하자면) 선의 캐릭터로 분화될 수 있는 유일한 계기가 되는 동시에 두 사람을 절대 가를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낳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허망한 꿈이 낳은 것이 하비 덴트라는 전형적인 '공무원' 캐릭터다. 하비 덴트는 조커를 증오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조커의 가면을 쓴 후 자신의 지지층에 맞선다. <다크 나이트>에서 하비 덴트의 구역을 명확히 가르는 것은 그가 들고다니는 동전인데, 영화의 초반에 비교적 깔끔한 색을 띄던 하비의 동전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직후 백과 흑의 양면으로 이분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비는 동전을 끌어안고 종전과 다를 바 없는 운에 맡긴 결정을 내려가며 모든 것을 판단한다. 하비의 동전이 절대 선이었다면 하비의 '사고를 당한' 동전은 절대 악이다. <다크 나이트>는 하비의 동전과 같은 소재를 통해 순식간에 조커와 내면적 배트맨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인간성이 곳곳에 숨어있음을 끊임없이 토해낸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배트맨이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 이유, 조커가 배트맨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와 동등하다.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과 조커를 위한 영화가 아니다. <다크 나이트>는 고담시의 어두운 모습을 잡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조커와 배트맨, 그리고 하비 덴트와 고든 형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을 통해,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모조리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영화다. 때문에 조커의 카드가 하늘 높이 흩뿌려지는 순간에도 제2, 제3의 조커가 생성되며, 총을 들고 경찰 뱃지를 달고 있는 '선한' 사람들 조차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는다. 세 인물로 대변되는 감정선의 실타래는 엄청나게 복잡하지만 논리정연하게 진행되고, 그것이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하나로 섞여 세 인물이 아닌 전혀 다른 공포를 경험하게 한다.

<다크 나이트>에서 보여지는 조커의 과거를 단순 악당의 진실된 모습을 짚어낸 가슴 저린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영화를 '완전히' 잘못 본 것이다.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순간조차 '장난'이라는 명분을 떼어내지 않는 조커의 실루엣은 단 한 순간도 진지한 면모를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상처에 집착하지만 결코 치부를 드러내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해가며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몸을 사리지만, 그와 동시에 몸을 내던져 자신에게 모든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여기서 의문.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했던 <다크 나이트> 속의 조커는 과연 '악인'이 될 조건을 가지고 있는걸까. 그를 단순 살인과 방화, 약탈이라는 법의 잣대로 판단하여 악당이라는 호칭을 붙이기에, 조커는 다른 사람들과 너무도 닮아있지 않을까. 지문과 DNA, 치아기록이 없는 조커의 실제는 배트맨의 존재 구실을 맞추기에 불과하다.


영화를 반복해서 보아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건, 취조실에서 배트맨에게 호되게 당한 후 자신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경찰관에게 말을 거는 조커의 모습이다. 땀에 절어 하얗게 칠한 분장이 벗겨지고, 원래의 살색이 드러날 때 조커는 아주 잠시동안 우리가 기억하는 배우 '히스 레져'의 모습을 비춘다. 조커의 클로즈업이 배트맨의 클로즈업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등장하지만, 한 순간도 조커의 얼굴에서 히스 레져를 발견할 수 없음은 슬프도록 소름끼치는 일이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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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12 BlogIcon 12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크나이트 3번 봤네요. 근데 또 다시 보고 싶어요.

    2008.08.20 15:47
  2. 내용은 공감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지인이라는 표현은 좀 안쓰면 안되나..
    너도 나도 지인..그냥 친구나 동료라고 하는게 낫겠다..

    2008.08.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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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히어로'를 위한 '히어로'의 영화, '맨' 시리즈에는 빠지지 않는 여러 가지 공식들이 있다. 영웅 서사의 중심에는 대부분 출생의 비밀, 혹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겪고 있는 인물들이 놓여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신분과 주변인들 사이에서 갈등한다. 때문에 헐리웃의 영웅물들은 자의와 타의가 버무려진 오락과 윤리의 기대심리를 낳는다. 지금까지 그들은 거의 모두 그런 삶을 살아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다크 나이트>에 예외가 있다면 바로 위와 같은 영웅들의 공식이다. '배트맨'이라는 인물 자체가 추구해왔던 캐릭터로서의 이야기는 물론 '절대 선'과는 거리가 멀다. 어두운 수트를 입고, 낮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곤경에 처한 고담시를 정화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가 행하는 범죄 행위도 그와 비례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늘 이기는 게임을 지향해왔으며 배트맨 주변의 인물들 또한 그가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언제나 옳은 결정을 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왔다. 헐리웃 영웅 시리즈에서 배트맨은 유일무이한 수준으로 선과 악의 경계에 걸쳐있는 히어로다.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의 윤리를 등에 짊어지고, 조커의 탈을 써 세상을 조롱하는 묵직한 이야기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크리스토퍼 놀란은 캐스팅, 혹은 원본에 맞물린 이야기를 전작에서부터 이어가는 대신 놀라울 정도로 절제를 지키며 조커와 배트맨을 혼합시킨다. 때문에 <다크 나이트>는 화려하고 치밀하게 짜여져 있는 오락영화의 중심 요소 대신, 두 캐릭터간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선과 악에 대한 윤리 쟁점을 선보인다. 클래식한 거리는 뚜렷한 대결 구도를 보이지 않는 배트맨과 조커의 특성을 드러내기에 최적이며, 그 안에서 파생되는 모든 인물들의 동기는 더이상 히어로의 단순 휘발성을 강요받지 않는다. 어둠의 도시를 꿰뚫는 <다크 나이트>의 카메라는 배트맨과 조커 사이에서 항상 최적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배트맨'이라는 인간, 혹은 히어로의 플래시백을 남발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양쪽을 모두 혼합시키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가. 확실히 이건 '열광할 만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한 가지 더 놀라운 것, 그리고 마음을 안타깝게 만드는 것.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의 역할을 소름끼치도록 능수능란하게 소화해 낸 히스 레져. 스크린을 보고 있으면, 조커와 배트맨의 혼합점 사이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잔상은 크리스천 베일의 마스크보다 히스 레져쪽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조커가 사라지고 배트맨의 모습으로 영화가 막을 내린 후 엔딩크레딧이 올라갈때야 비로소 히스 레져의 부재를 깨닫는다. 하얀색으로 덧칠된 조커의 분장 뒤로 히스 레져의 얼굴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놀라운' 영화에서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 그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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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lan9.co.kr/tt2 BlogIcon 주성치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스레저 아닌듯
    ...

    2008.07.28 13:15
  2. Favicon of http://www.neoearly.net BlogIcon 라디오키즈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영화는 히스 레저의 영화였습니다.ㅡㅜ

    2008.07.2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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